소설리스트

〈 180화 〉[라쿤맨 비기닝] (177/507)



〈 180화 〉[라쿤맨 비기닝]

가게로 들어서자 단정한 정장을 입은 중년의 남성이 카운터에서 인사를 건냈다.


그의 시선이 나에게서 시온으로 향하자 약간의 텀이 생겼다. 시온의 외모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는 조형미가 있기 때문에 처음보는 사람은 넋놓고 보는게 당연하다. 이번에 만나야 하는 그 재벌 2세 새끼는 처음 만날 때 그러다가 사고냈지 않던가?

하지만 직종에 충실한 사람인지 그는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장인정신이 훌륭하다.

"어서오십시오.......아, 혹시 예약은 하셨습니까?"


"시온이란 이름으로 되어 있을겁니다"

"확인했습니다. 이쪽으로 올라오시지요"

그가 명단에서 시온의 이름을 확인하고 윗층으로 안내했다. 1층에서는 이미 완성된 옷을 전시하고 담소를 위한 작은 티 테이블을 마련해 두었다면 2층에서는 본격적으로 재단을 하기 위한 공간이였다.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가게라면 예약이 밀려있을것 같기도 한데. 그러면 며칠 전부터 예약을 해둔거야?"


"......."

"애초부터 나랑 같이 올 생각이 만만이였던거구나. 특히 꽤나 오래 전부터"


"당신은 이런 가게는 숨막혀 하지 않습니까?"

"니가 가면 간다니까"

바늘 가는데 실 간다.......옷 만드는 가게라서 생각나는 딱 좋은 비유다.

2층으로 올라가자 나이 지긋하신 중년의 여성분이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단정하게 입은 옷에 비해 주머니에는 줄자를 비롯한 재단에 필요한 도구가 슬쩍 삐져나와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시온의 외모는 여성에게도 가리지 않고 통하는지 한순간 멈칫거렸다.


"아.....어서오세요. 두분이신가요?"


"네, 저와 그이 옷 좀 맞추려고 합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2층 한 구석에 마련된 장소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패턴의 원단을 비롯해서 기본적인 정장이나 드레스가 걸려 있었다. 직원으로 보이는 다른 여성 두명이 정리를 하면서 샘플로 보이는 옷가지들을 몇개 꺼내고 있다.

"어떤 식으로 입으실건가요? 업무용이신가요? 아니면 파티용이신가요?"

"너와 그이 둘  파티용으로 한벌씩입니다"

"아, 두분 부부신가요?"

시온이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중년 여성은 웃으면서 샘플 몇개를 꺼내서 보여주었다. 배색을 맞춘 정장과 드레스. 기본적으로 회색을 베이스로 하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수하지도 않.....아, 잠깐만. 방금 전에 모순된 단어가 들어간 것 같은데.

패션의 세계는 심오하다. 패션이란건 결국에는 심미관이나 유행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피카소의 그림도 모르고 보면 그냥 어린애 장난 같은 그림으로 보이는데 나한테 패션을 들이대봤자 잘 모른다.

난 여자가 되어도 드레스는 커녕 대충 티셔츠에 청바지 입고 나간다고. 치마 입어본 적이 몇번이나 있더라.....


아무튼 이런쪽의 센스라면 나보다 시온이 위다.

"흠, 디자인은 마음에 드는데 그이 정장은 검은색으로 해야 하겠습니다. 밝은 색은 그이랑 어울리지 않습니다"


"난 평생 검은색이지. 하이고"

"전 그래서 마음에 듭니다. 옷 고를 때 색 걱정할 필요 없지 않습니까?"

"쇼핑할 때 간단하긴 하겠다 야"


나는 인상이 더러운 부작용 덕분인지 밝은색 계통은 어울리지 않는다. 정장이라고 해도 보통 노골적인 빨간색이나 파란색은 쓰지 않지만 약간이라도 밝은 색이 섞인 옷은 내가 입으면 별로다.

검은색에서 살짝 봐줘야 회색 같은 무채색이 나한테 주로 어울린다.

"그러면 사장님은 검은색 계통에 패턴은 어떤걸로 하시겠어요? 요즘은 이런게 괜찮은데"


중년 여성이 나에게 몇가지 원단 샘플을 꺼내 보여주었다. 같은 검은색으로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옷의 패턴이 조금씩 다르다. 약간 푸른빛이 도는 옷도 있고, 회색을 섞어서 조금 밝아보이는 것도 있고,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다 거기서 거기같냐.


"원래 패션이란건 이런거에서 갈리기 마련입니다. 사소해 보이는게 더해져서 결국에는 완성을 이루는거니까  고르는게 좋습니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 아니야?"


"그건 제가 200퍼센트 완성하니까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아, 하긴 그렇지"

"어머, 두분. 금슬이 너무 좋으시다"

중년 여성이 웃으면서 나한테  몇가지를 추천해 주었다. 시온 쪽에도 여성 직원 두명이 붙어서 이런저런 장식이나 레이스들을 기본이 되는 옷에 붙여보고 있었다.

나는 일단 남색이 섞인 검은색에 가까운 패턴을 고르고 시온에게 다가갔다. 내가  패션은 몰라도 우리 마누라에게 어울리는건 아주 잘 꿰고 있지.


"일단 베이스는 밝은 색 계통으로 하고......네가 주인공도 아니고 결혼식도 아니니까 너무 밝은색을 빼면......베이지 색? 내 옷이랑 어울리려면 약간 진한 베이지색이 나으려나? 넌 장식 많이 달린거 안좋아하니까 치마 끝에만 프릴을 조금 넣는게 좋을것 같고. 아, 형태는 원피스지? 너 원피스 편해서 좋아하잖아. 요즘 날도 쌀쌀해지니까  원피스 쪽이 낫겠다"


"......당신 패션 관련되서 말이 그렇게 많았습니까?"

"내 옷이면 몰라도  옷이면 당연히 그래야지. 기성품 사는게 아니라 맞춰서 입는거면 그만큼 신경 써야하고"


게다가 시온의 취향이랑 어울리는 패션은 내가 잘 알고 있다.


애초에 시온의 말대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인데 시온 혼자서 200퍼센트 완성하고 있으니 솔직히 아무거나 대충 입어도 상관없다. 아마 그냥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나가도 모델소리 들을껄.

크윽, 나도 여자로 환생하면 나름 모델 소리는 듣는데! 외모는 그럭저럭인데 가슴이랑 허리랑 골반이.....어우야.


성장폼의 시온이라도  가슴이 거유거나 그렇지는 않다. 적당한 한손으로   있을 정도의 꽉찬 C컵일 뿐이다. 어? 그러면 거의 D컵이니까 거유 아닌가?

자고로 거유는 D컵부터 시작한다. D라는 글자 형태를 봐봐, 완전히 거유 전용이잖아. 나는 여자로 환생하면 아무리 작아도 D컵이니까 별로 감흥 없어도 그 정도 되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의 시선을 모으는 법이다.


아, 그렇다고 작은 가슴을 싫어하는건 아닙니다.  취향은 금발, 안대, 빈유 트리플 조합이라고. 작은 가슴을 좋아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가슴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거유파던 빈유파던 크기만 다를 뿐이지 결국에 거유를 좋아한다는건 다르지 않다. 이거슨 진리.


"두분 잘 어울리시네요"

"입에 바른 말이라도 감사합니다. 솔직히, 겉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걸 알고 있어서"


"진심으로 하는 말이예요, 아무리 선남선녀라도 사이가 나쁜 부부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TV에서도 종종 유명 연예인 부부의 이혼 소식도 들려오잖아요? 그런걸 생각하면 두분은 정말 어울리세요"

나랑 시온을 보면 그냥 미녀와 야수 수준인데......성장폼인 지금도 그렇게 보이는데 하물며 디폴트 폼일 때는 어떻겠냐. 괜히 경찰 아저씨가 수상쩍어서 물어보는거 아니라니까.


내가 말한대로 새로 샘플을 가져와 꾸미면서 조금씩 완성시키자 대략적인 형태가 완성되었다. 그동안 여자들의 수다는 둘째 치더라도 말이지......


나야 대충 패턴 정하고 끌리는대로 정해서 맞추니 금방 끝났다. 치수만 재서 재단하면 끝이다.


여자들은 쇼핑만 오래 걸리는 줄 알았는데.....!

"파티용이면 그 전까지 완성해야 하는데. 날짜가 언제인지 알  있을까요?"

"다음주 토요일입니다"

"그러면 5일 정도 남았고......시간이 조금 빠듯하겠네요. 사모님 것은 몰라도 사장님건 조금 오래 걸릴지도 모르는데.....반수제로 하면 시간이 단축되는데 어떻게 할까요?"


"수제로 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당장 작업 시작해서 빠르게 하면 충분히 금요일까지 작업할  있겠지만. 먼저 들어온 주문이 있어서요"

"흠......"


솔직히 그냥 옷도 아니고 정장 한벌 맞추기에는 너무 늦게 왔다. 막 다음주에 입어야 하는데 그것도 수제 정장이라면 더더욱.

게다가 이런 가게라면 선주문이 있는 것도 따로 계산에 넣어둬야 했었다. 애초에 방문도 예약을 받는 가게인데 이런걸 생각못한 우리 잘못이 크다.


"무리한 부탁 드리는거 아닐까 싶을지도 모르지만.....토요일 전까지 완성해 주신다면 2배 어떻습니까?"

"......네?"


"금요일까지 완성해주시면 2배. 목요일은 3배, 수요일은 4배, 화요일은 5배. 만약 내일까지 만들어주신다면 6배로 내겠습니다"

선주문이 뭐냐! 시온에게는 돈이 있다!!!


이 세상에 돈으로 안되는 일이 없다고 하는데.....그럴 때는 돈이 부족한게 아닌가 생각해봅시다.


물론 나는 돈으로 뭐든걸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금은 딱히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는건 아니다.

여기가 공공기관도 아니고 기름칠 좀 했다고 잡혀가진 않으니까. 설령 선주문한 다름 사람들의 옷이 늦어져도 양해를 구하거나 위약금을 물어주면 되는 부분이다.


마냥 힘과 권력으로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고, 되돌릴 수 없는 짓을 돈으로 해결하려는 것도 아니면 나도 그럭저럭 너그럽다. 그리고 우리 마누라가 하는 일인데 솔직히 편애가 없는것도 아니고.

잠깐 생각하던 중년 여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빨리 만들 때마다 받을 수 있는 금액이 늘어나는데 은행 이자를 복리로 받아도 이정도는 아니다.


"알겠습니다. 그러면 사장님은 내일 한번 오시겠어요? 사모님 옷은 여기서 큰건 끝낼  있는데 사장님 정장은 가봉 후에 한번 입어봐야 하니까요"


"내일요? 알았어요"

아무래도 내일이나 모레 중으로 끝낼 생각인듯 보인다. 괜히 고생시키는거 아닌가 몰라.


의외로 내 옷에 비해 시온의 옷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원래라면 여자 옷이 더 오래 걸릴것 같은데 왜 금새 끝나는가 하면......

"어머머, 사모님. 핏이 너무 좋으셔서 저희가 많이 손볼 필요가 없겠어요"

"그렇습니까"


"혹시 화장품 어떤 브랜드 쓰세요? 피부도 너무 고우시다"

"딱히 애용하는건 없습니다"

외모도 몸매도 끝내주는 시온에게는 옷도 딱히 맞출 필요가 없다. 후줄근하게 입어도 그게 패션이 되는 미모인데 신경쓸게 뭐가 있나. 코디나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편한 타입이다.


그런데 우리 마누라 화장품은 물어보지 마. 집에서도 로션 하나만 바르고 다니는 사기 피부라고.


뭐 하나 바를 필요가 없으니 집에 있는 화장대에도 로션이랑 크림 종류만 몇개만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것도 몇달이나 지난 지금도 계속 그대로 있더라. 얼마나 안쓰는거야.


"대충 끝났습니다"


"욕 봤다"

"저도 여자지만 여자들 대화는 조금......"


"친한 사람들이랑은  터놓고 이야기 하면서 뭘 그래"

"여자는 그냥 대화해도 내면에 다른 뜻이 깔려 있기에 대화하기가 껄끄럽습니다. 여자어가 괜히 있는줄 아십니까?"

"솔직히 나도 여자어는 조금......"

"그럼 서로 똑같지 않습니까?"

둘이서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나 시온이나 치수까지 재었으니 대충 끝났다. 언제 나올지는 몰라도 최소한 다음주 토요일 전까지는 나오겠지. 빠르면 내일 가봉한거 바로 손봐서 나올지도 모르겠고.

자고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만 있으면 못할게 없다. 단, 윤리와 도덕이 보장되었을 때. 사람 목숨도 돈으로 살  있으면 그건 중세시대 농노나 다름없지 안그러냐?

보니까 중년 여성분이 여기 사장인듯 하다. 1층 카운터에 있던 중년 남성은 남편이고 부부끼리 운영하는 가게인것 같다.  사람이 한 가게에서 일하고, 보기 참 좋네.

"저도 당신 가게에서 일하는거 보고 싶습니까?"

"집순이가 그런말 하는거 보니 참 기특하긴 하다"


"저도 할 때는 합니다"

"내가 너 일하는건 됐고 어디 같이 운동하는건 보고 싶은데, 혹시 생각 있으면 집  헬스장에서 같이 운동이나......"


"갸아아아악! 구와아아아악!!!"

"그렇게도 운동이 싫냐?!"

"일이란건 노동으로서 생산적인 일이지만 운동이란건 결국에는 칼로리를 소모하는 일입니다! 운동을해서 결국에 뭘 얻게 된다는겁니까!"

"근육"

"헬스에 몸 바친 사람 같은 대사 하지 마십시오"

"덤벨 몇 킬로까지 들 수 있어?"

"아무리 그런식으로 말해봤자 저는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마누라에게 있어 일하는 것과 운동하는건 범주가 다른 모양이다. 하기사 옛날 사람이 지금 사람을 보면 가뜩이나 먹을것도 없는데 일하는 것도 아니고 왜 쓸데없이 움직이냐고 뭐라 했겠지.

나도 시온이 운동하는걸 마냥 기대하는건 아니다. 어차피 살이야 보기 싫을 정도로 찐것도 아니고 평소에는 마른 체형이니까 오히려 살짝 찐 편이 더 낫다.

근데 운동하고  뒤에 땀에 축축하게 젖은 우리 마누라를 물고 빨고 핥고 싶다고.

솔직히 그거 개꼴리는거 아님? 난 가능.

가끔 가다가 우리 마누라한테 아쉬운게 있다면 운동 별로 안해서 땀투성이가 된게 별로 없는거랑 겨드랑이랑 사타구니에 털이 안나는거 정도일까. 여자들은 그쪽을 제모하는게 많기는 한데 솔직히 있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둘 다면 더 좋고!

"물고 빨고 핥는거라면 나중에 실컷 할겁니다"

"뭔데? 뭘 하려고?"

"그거는 나중에 중국에 갔을  보면 됩니다. 딱  쯤에 끝날것 같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도대체 뭐가 끝난다는거지. 솔직히 뭔지 짐작도 못하겠다.

아마도 이벤트 3탄 같은 느낌인데. 여태까지 어지간한 플레이는 다 해봐서 떠오르는게 없다. 저번에 이벤트 2탄으로 자궁간 플레이도 했는데 그것보다 더 기상천외한 플레이라고? 얼마나 매니악한지 상상도 안가는데.


"그리 멀지 않았습니다"


"뭔진 몰라도 일단 기다리고 있을께"


솔직히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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