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라쿤맨 비기닝]
권룡여제 용화정이나 겨우 야매로 마스터 유저가 된 백리의 사이에는 크디큰 차이가 있었다.
만약 서로 진심으로 붙었다면 백리는 조금 버티다가 참패할게 분명한 수준이다. 그나마도 방어에 특화된 태극나선경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승패를 가리는게 목적이 아니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파아앙!!!
묵직한 라이트 훅을 손바닥으로 받아내고 그걸 흘려서 얼굴에서 비껴나가게 했다. 권룡여제는 백리의 반응에 감탄을 표했다.
"훌륭하군. 반사신경은 꽤 쓸만하구나"
"여동생이랑 싸우다보면 난데없이 급소를 노려올 때가 있어서......"
"기습에 반응한다는건 좋은 버릇이지. 계속하마"
"계속 안해도 되는데!!!"
칠 생각으로 날린 공격이 막혔지만 권룡여제는 오히려 웃었다.
겉보기에는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더라도 실제 나이는 50세가 넘었다. 가면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더라도 젊다는건 알아볼 수 있는데 그 정도 나이차가 있다면 장래가 유망한 아이를 보는 부모의 마음이 된다.
그리고 바르게 크라는 뜻에서 매를 드는 부모가 있다. 물론 권룡여제가 바로 그 타입이다.
그녀는 연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파공성을 일으키고 충격파에 휘말리면 그것만으로도 머리가 울릴만한 묵직한 주먹이다. 백리가 그걸 맞는다고 죽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무지하게 아플거라는건 확실했다.
"으아, 으아아아아!!!"
백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분주하게 손과 다리를 움직였다.
신체스펙에서 부터 밀리지만 한가지 백리가 우위를 점하는게 있다면 바로 태극나선경이다.
태극을 기반으로 '분해'의 이치를 중점으로 두고 개발한 무공이기 때문에 여타 다른 무공보다도 더욱 심오한 묘리를 담고 있다. 그 덕분에 빠른 권룡여제의 주먹에도 정면에서 흘려낼 수 있었다.
물론 그것 뿐만은 아니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힘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된다. 백리가 마스터 유저가 되어서 최소한의 신체능력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흘려내기는 커녕 그대로 얻어 맞았을 것이다.
"태극을 그리는 그 움직임......나선을 접목시킨 보법.....기억이 날듯 말듯 한데"
"제가 아니라 이쪽에 볼일 있던거 아니예요?!"
"반은 그렇지"
"반이나 그렇다는 거잖아!!!"
쩌저저저적!!!
허공에서 수십번의 권격이 오갔다. 귀가 아파올 정도의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퍼진다.
"나름 기본기는 충실한것 같군. 하지만 실전 경험이 부족해"
"그거야 당연한건데....."
"도대체 어떻게 마스터 유저가 된거지?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오를만한 경지가 아닐텐데?"
".........."
"침묵을 유지 하겠다는 것인가?"
"말 못할 방법이라서요"
마스터 유저인 것과 마스터 유저를 양산할 수 있는 방법은 여파가 다르다. 만약 최악이 마스터 유저를 만들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그 진실의 여부는 둘째 쳐놓더라도 그를 노리는 정도가 달라질게 뻔하다.
비록 그 방법은 더 이상 쓰지 못해도 사람들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마치 진실과는 상관없이 유언비어에 선동당하는 사람처럼.
"힘, 기술, 둘 다 괜찮지만 경험이 빠져서 맹탕이군. 하지만 반대로 경험을 쌓는다면 나름 괜찮겠어"
"어, 정말요?"
"그러니 여기서 속성으로라도 경험을 때려박아 넣어주는 편이 낫겠지"
"결론이 이상한데요?!"
"그 실력으로 마스터 유저라고 난리치다 죽는것보단 차라리 낫지 않나?"
잠깐의 공방으로 백리의 대략적인 실력을 판단한 권룡여제는 자세를 달리했다.
가장 먼저 다리를 어께 넓이로 벌렸다.
"어? 그러고 보니 여태까지 발 기술은......"
"그래서 경험이 부족하다는거다"
그녀의 강렬한 로우킥이 백리의 다리를 후려찼다.
뻐억! 하고 뼈가 부러지는것 아닌가 싶은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 충격에 한순간 백리의 자세가 무너져 휘청거렸다. 그에 권룡여제의 주먹이 날아들었고 왼쪽 어께에 묵직한 권격이 백리의 몸을 튕겨내 땅을 구르게 만들었다.
"커억?!"
"실전에서는 주먹 뿐만이 아니라 사지 전부를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죽을 뿐이니까. 주력이 맨손인건 당연하더라도 최소한 하단의 방어는 신경썼어야지"
숨을 몰아쉬면서 백리는 빠르게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야매로 마스터 유저가 되긴 했지만 그만큼 자신감이 생겨서 어디가서 맞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손도 못쓰고 맞았다. 백리는 작게 투덜거리면서 불평했다.
"어, 엄청 쌘거 아니예요......? 이기는건 몰라도 버티는건 자신 있었는데.....!"
[저거 그나마 전생 기억이 희미해서 약한거야. 마룡후 용하연의 무기는 원래 대검이거든]
"도대체 예전에는 얼마나 강했던거예요?"
[그레이네 제자놈들은 죄다 한가닥씩 하는 놈들이야. 특히나 마룡후는 공간참을 방어 무시 공간참을 노딜레이로 날려대서 밸런스 씹폭망이였지]
"돌겠네요"
[야! 근데 앞! 앞! 싸우던 도중인데 어딜 한눈팔아?]
"앗!!!"
중단을 노린 옆차기가 백리의 옆구리를 노려왔다. 막기에는 늦었으니 흘려낸다. 발을 움직여 태극의 이치에 따라 부드럽게 움직이고 날아오는 발차기의 흐름을 이용해 허리를 틀어 흘린다.
그러면서 더해진 회전을 허리에서 어께로, 어께에서 팔로 전해주어 비틀어 관수(貫手)를 찌른다.
마치 드릴처럼 비틀어져 나간 관수는 권룡여제의 귓가를 스쳐지나갔다. 맞추지 못했지만 상당히 좋은 카운터였다. 권룡여제도 놀란 눈으로 백리를 다시보았다.
"방금 그건 괜찮았군. 태극권을 기반으로 해서 상대의 힘을 역이용 할 수도 있는건가? 좋아, 아주 좋아"
"어, 음......반사적으로 한거라서 솔직히 운이 좋았던건데요"
"겸손한게 오만한 것보다 좋지. 심성도 나쁘지 않구나"
그녀는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의 아집으로 가득한 인간들만 보다가 이런 풋풋한 청년을 보니까 정화되는 느낌이다.
중국은 포스 유저 최다 보유국이지만 그 중 일부를 티벳이나 대만 같은 곳에 파견하여 무력적으로 압박하고 있었다. 이미 그 지역에는 충분히 차원진에 대비 할 수 있는 숫자의 포스 유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쯤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독립을 원하는 지역이나 소수민족들도 마찬가지다. 딱히 포스 유저가 아니더라도 마스터 유저인 그녀가 있기에 유사시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나라에서 살다보니 짜증나는것 투성이다.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당의 높으신 분들은 전부 목을 쳐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남은 일이 귀찮아진다. 나중에 더 힘들어질걸 생각해서 두는 것이지 그녀가 그런 사람들을 인정한게 아니다.
"마음 같아서는 두고두고 가르쳐주고 싶군. 하지만 내 옆에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내가 이 나라에 오래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지. 적어도 지금 가르쳐줄 수 있는건 전부 가르쳐 줘야겠구나"
"안가르쳐줘도 되는데요!!!"
"강해서 손해볼건 없다"
그건 그녀의 인생의 지론이다. 용화정으로서도, 그리고 아직 자각하지 못하는 용하연으로서도.
권력이던 금력이던 무력이던, 힘을 가지고 있어서 나쁠건 없다. 약자가 강자의 먹이가 되는 약육강식의 논리는 예전부터 보편화된 것이다. 현대의 인간이 자애와 자비로 그 논리를 벗어나 탈피하기에는 아직 천년은 이르다.
"지켜야 할 것이 있지 않나? 그렇다면 강해지는게 좋다.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라면 더더욱"
"........."
"눈빛이 달라졌군. 좋은 반응이다"
백리에게 가장 강한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최악이다. 전 차원적으로도 최악만큼 강한 초월자도 찾기 드물기에 만일의 경우에는 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사람이다. 손은 두개 밖에 없고 몸도 하나다. 유사시에 바로 도와주러 올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만약 그런일이 생긴다면 최악이 가장 먼저 챙기는건 시온이다. 그 다음이 예진이나 백리 정도니까 정말로 위급한 상황일 때는 스스로의 힘으로 지키는 수 밖에 없다.
"여동생이 있다고 했나? 최소한 여동생 정도는 지킬줄 아는 남자가 되어야 할텐데?"
"걔는 자기한테 덤벼드는 사람이라면 자진모리 장단으로 두들겨 패서 경찰서로 끌고갈 아이라......"
"남매 사이가 좋은 모양이군"
"그냥 평범한 수준이죠 뭐"
잡답은 거기까지. 두사람은 자세를 다시금 잡았다.
백리는 호흡을 가다듬고 손 뿐만 아니라 발도 신경을 집중했다.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게 아니라 오감을 전부 사용해야 한다.
예전이라면 불가능했겠지만 영혼의 격이 올라 보는 시야가 달라졌다. 평지에서 보는 것과 산 위에서 보는 것에는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포스를 운용하는 능력부터 오감까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와라, 이번에는 선공을 양보해주지"
"여태까지 실컷 패놓고서 그런 소릴 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백리는 거절하지 않았다. 마구잡이로 달려나가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힘을 사용해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혔다.
허공에서 주먹과 주먹이 교차한다. 내질러지는 권룡여제의 일권을 백리가 손등으로 받아치고 팔꿈치로 명치를 노려오자 몸을 비틀어 피한다. 그리고 다시금 그 회전을 통해 추진력을 얻고 다시금 카운터. 아까와는 제법 다른 형태의 공방이 오간다.
만약 권룡여제가 조금만 더 진심으로 공세에 들어간다면 기세가 역전되겠지만 최소한 외부에서 볼 때는 대등한 수준의 공방이 오가는 것으로 보인다.
"라쿤맨 2호가 권룡여제랑 호각으로 싸우고 있어......!"
"설마 2호도 마스터 유저였나!!!"
"이건 특종이다!!"
"아싸! 땡 잡았다!!!"
마지막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익숙한 기자 아가씨의 발언이지만 충격파가 위협적으로 울림에도 불구하고 기자들은 멀리 떨어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정도 거리는 벌리더라도 최대한 확대해서 촬영하고 있었다.
마스터 유저인 두사람의 귀에도 충분히 들릴만한 목소리였지만 지금 거기에 신경쓸 여력은 없었다. 백리는 최대한 손과 발을 놀려 권룡여제를 공격했으나 제대로 된 유효타는 주지 못했다.
[이대로 장기전으로 가면 너한테 제대로 된 기회는 오지 않아. 한방 먹여주고 싶냐?]
"네!!!"
[새끼 여유 없다고 간결하게 대답하는거 봐봐. 그러면 잠깐 도와줄께]
어떻게 도와주려고요? 하고 속으로 되묻는 백리였지만 최악이 계속해서 통신을 통해 이야기를 건냈다.
[태극나선경에서 중요한건 태극과 나선이야. 태극은 힘의 흐름을 다스리고 나선은 그 힘을 응축하거나 완화시키지. 그렇다는건 곧 네가 받는 충격을 전부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있다는 소리야]
백리가 무림인도 아닌데 무공의 묘리 같은걸 설명해야 알아들을 수 있을리 없다. 하지만 영혼의 격이 올라가 이해력이 높아진 오성은 실전을 통해 점차 깨우쳐지고 있었다.
[바깥에서 오는 힘을 바깥으로 흘려내려고 하지마. 바깥에서 오는 힘을 몸으로 흘려서 자기걸로 만들어. 아직 분해의 이치는 네가 이해하기에는 이를지 몰라도 그거는 지금 할 수 있으니까]
무슨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어떤건지는 감을 잡았다.
백리는 오가는 공방 중에 다시금 맹렬하게 권격을 날렸다. 권룡여제는 적극적으로 공세로 접어든 백리의 모습에 의문을 표했다.
"방어와 카운터에 집중해도 모자를텐데 왜 공세로 나섰지?"
"글쎄요!!!"
속도가 늘었지만 그래봤자 권룡여제의 스펙에는 따라가기 힘들다. 허공에서는 서로의 주먹이 격돌하면서 파공성만 들릴 뿐 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방이 오간다.
"조급해졌나? 하지만 싸울 때 그런식으로 나온다면 틈을 내보이게 되는 법이다.....지금처럼!!"
한순간, 백리가 호흡을 하기 위해 기세가 줄어드는 순간 권룡여제의 맹격이 백리를 덮쳤다. 정확히 백리의 안면을 노린 주먹은 빠르고 매서웠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 백리가 노리던 때다. 아무련 변화 없이 순수하게 힘으로 내질러진 주먹은 백리가 흐름을 받아내기에 적절했다.
"아까의 복수!!!"
주먹은 아슬아슬하게 비껴맞는다. 마스크를 스쳐지나가면서 일부가 박살나지만 신경쓰지 않는다. 오히려 그 힘은 머리에서 목을 타고 아래로 향한다. 근육의 탄성은 힘을 증폭시키고 그 힘은 힘을 받은 부분에서 멀어질수록 증폭된다.
그리고 다리에 닿은 힘이 허리힘과 합쳐져 힙찬 로우킥을 날렸다. 처음에 한방 먹었을 때와 같은것을 되돌려준 것이다.
콰아앙!!!
권룡여제의 다리에 묵직한 로우킥이 들어갔다. 하지만 백리와는 다르게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름드리 나무를 후려찬듯한 반탄력만 느껴질 뿐이다.
"어......?"
"응용력은 좋군. 발 기술도 금새 배우다니. 군더더기는 많지만 아까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니, 어떻게 그걸 맞고도 아무런 타격이 없는거예요?! 최소한 휘청거리기는 해야하지 않아요?!"
"천근추의 수법이다"
"진짜 무공?!"
차이점이 있다면 내공 대신 가이아 포스를 사용해서 쓴 수법이다. 특성조차 아닌 기술이지만 오히려 그게 그녀에게는 더 잘 맞는다.
"나름 성장한 것 같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마. 이번에는 좀 더 굴ㄹ.....아니, 심화 과정으로 넘어가는게 좋겠지"
"으아아악! 굴린다고 했어! 방금 굴린다고 했어!!!"
백리는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