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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화 〉[라쿤맨 비기닝] (170/507)



〈 173화 〉[라쿤맨 비기닝]

노골적인 예감이  불길함을 건들고 있었다. 내가 아무리 미래를 보는 능력은 기껏해야 몇초 정도에 불과해서 예진이처럼 몇일 뒤의 미래를 보진 못하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인 일이라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저 여자의 목적은 나다.


"아무리 그래도 방한 일정을 이렇게 갑자기 잡아도 되는거예요? 마스터 유저면 보통 며칠 전부터 이야기 하고 입국하거나 그럴텐데"

"그러게 말이다"


포스 유저는 기본적으로 해외 파견이 아닌 이상 외국으로 나가기는 힘들다. 포스 유저라는  자체가 하나의 흉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마스터 유저라면 거의 핵폭탄 취급이다. 난데없는 파견이라 하더라도 걸맞은 절차가 있는 법이다.

보통은 일주일, 차원진 때문에 급한 상황이라면 가는 도중에 처리해도 하루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소리소문도 없이 파견도 아닌 방한이라면 억지로 밀어붙인게 눈에 보인다.


거기다가 볼일이 있을만한 사람이 나 밖에 없다.

......되도록이면 호전적인 성격은 아니였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다짜고짜 싸우자고 덤벼드는 무식한 성격인 뇌근들은 싹다 나가 죽었으면 좋겠다. 여자가 그러면 매력 포인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실제로 그러면 민폐도 그런 민폐가 따로 없다고.




[갑자기 방한을 결정한 중국의 마스터 유저인 용화정씨는 입국   다른 공식적인 행사에 참가할 예정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용무에 의한 것이며 따로 예정에 없던 일이기에 정부의 협조는 필요치 않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건 빼도박도 못하고 나한테 볼일 있는 놈, 아니 년이군.


그런데 왜지? 내가 그렇게 걸릴만한 일이 있었나?


나는 곰곰히 생각하면서 권룡여제에게 걸릴만한 일이 뭔가 있을지 생각을 해보았다. 여태까지 조용하다가 다짜고짜 지금 와서 접근한다는건 뭔가 다른 일이 있었다는 소리다.

 사건이라고 해봐야 러시아에서 블러디어 습격 사건 정도인데......권룡여제가 거기에 관심을 가질까? 솔직히 조금 의문이 든다.

솔직히 지금 당장 생각나는 걸로는 그냥 쌘놈 찾아서 넘어왔다고 생각하는 편이 제일 신빙성이 높다. 일반화는 안하고 싶지만 만약 중화사상이라도 가지고 있는 골빈년이면 상종하기도 싫다.


"일단 자고 생각하자. 오늘 너무 좆같은 일이 많아서  이상 생각하기 싫다"


"아저씨 현실도피 하시는 거예요?!"

"내일 생각하겠다고 내일. 어차피 상대 목적이 뭔지도 모르는데 지레짐작하기도 그렇잖아. 누구한테 물어보려고 해도 시간이 늦어서 지금 걸면 민폐고"

".......아, 그러네요. 의외로 상식적인 대응이네"

"넌 날 뭘로 보는거니"


"생각없이 깽판치는 아저씨요"

"정답이다 연금술사!!!"

"아니, 거기서 인체연성이?!"


참고로 마지막 태클은 시온이 걸었다. 음, 역시 이런 드립은 시온이 귀신같이 받아준다니까.

아무튼 지금 당장 해결할  있는 일이 아니다. 상대도 조용히 왔는데다 목적도 밝히지 않았고 이경진 아저씨한테 전화 걸기에는 시간이 늦었다.

제일 중요한 이유로는 여기서 더 기분을 잡치고 싶지 않았다. 기분이 나빠도 지금보단 내일 기분이 나쁜게 낫다.

내일의 나!  부탁해!!!


"결국 책임 회피잖아요?!"


"책임 회피가 아니야! 내일의 나에게 역할을 맡기는거지!"

"그게 그거 아니예요?!"

"예진 학생의 태클 거는 실력이 늘어나는걸 보니 절로 흐뭇해집니다"


"이래야 우리 집안이지"

"성인 되면 짐 싸서 나갈 준비나 해볼까......."

우리집 특) 애들 교육에 안좋음.


예전에도 이런 분위기여서  좋았는데.....아, 그때는 나 외에도 스사노오씨도 있었는데 캐미가 잘 맞아서 매일매일을 개드립으로 보내는 즐거운 나날이였다. 역시 사람은 그냥 친구 100명보다 불알친구 1명이 제일 낫다니까.


"그럼  부탁해 내일의 나!!!"

일단 모든 일은 내일의 나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하루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   *   *  *



"시발, 어제의 나 죽이고 싶다......"

"원래 사람은 다 그런 법입니다. 후회는 언제 해도 늦습니다"

"하다못해 어제 대충 상황 파악이라도 해놨으면 아침에 이렇게 일어나기 싫지는 않았을텐데......"


"오늘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입니다. 월요병을 찾는거라면 하루 일찍 찾아온거 아닙니까?"

"어차피 이제 일도 안하잖아"

"내 남편이.....백수!!!"

"그건 좀 그런데......"


"일 안하는 남편을 제가 부양하면서 먹여살려야 한다니........흠, 대꼴"


"아니, 우리 마누라에게 내가 모르는 수비범위가?!"


"저는 당신이 글러먹은 성격이여도 좋아할 자신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성격을 살짝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옛날 어린이들은 비디오 쾌청 돌리면서 나오던 호환마마를 무서워한다고 어쩌고 하던데 요즘은 호에엥, 마마 거리는게 무섭다"

".....수유 대딸 플레이?"

"아냐!!! 그리고 그건 내가 전에 여자로 환생 했을  해준적 있잖아!!"


"아, 레즈 보빔 섹스 할 때 한 적이 있으니까......솔직히 그 반대도 꼴리긴 합니다"

"심연을 들여다본 느낌이야......!"

"팬텀씨가 실제로 그러면 역광 때문에 상대도  안보인다고 했습니다"

"뭔놈의 역광이야"

아무튼 처리해야 할 일이다. 어차피 중국의 마스터 유저와는 언젠가 조우할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좀  일찍 들이닥쳤을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일단 뉴스부터 보자. 아침에 하는 뉴스라면 최소한 어잿밤에 뭔가 따로 정보를 확보했다면 거기서 나올거다.

대충 씻고 거실로 나와서 TV를 켰다. 경쾌한 오프닝 음악과 함께 아침 뉴스가 나온다.


아니, 요즘은 그냥 24시간 뉴스 채널도 있지만 그래도 아침 뉴스는 챙겨보는게 좋지. 나도 어지간하면 신문이나 뉴스는 챙겨보는 편이니까.

사회 돌아가는 꼴을 알려면 이런게 좋지. 아무리 내가 산으로 들어가서 자연인이 되더라도 못해도 라디오는 들어서 사회 소식은 들을거다.

"뭐 다른건 있습니까?"

"아니, 없는데"


따로 정부에서 마련된 곳이 아니라 유명 호텔에서 방 잡고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마스터 유저가 수도를 떠나 있어도 될까 싶지만 중국은 마스터 유저 최다 보유국이니 나름의 여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다른 국가에 파견 요청을 하는건 그놈들이 대만이나 티벳 쪽에 마스터 유저를 파견해서 그런 것이다. 그냥 소수 민족이나 지들 독립하고 싶다는 곳은 좀 내버려 둬라 짱깨 새끼들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중국인을 짱깨라고 부르는건 너무하지 않냐고? 내 스승님도 중국인이긴 하지만 일단 내가 아는 강호의 도리를 하는 중국인은 천안문에서  죽어서 남은건 짱깨 뿐이다.

"권룡여제에 대해서 나오는건 그냥 호텔에 머무르면서 아무런 외부 활동이 없다는  뿐이야. 뉴스로 얻을 정보는 없겠군"


"마스터 유저 최강이라고 하면 감시가 있어서 몰래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 다 감안하고 조용히 있는것 같은데"

남의 나라 수도에서 마스터 유저가 목적도 밝히지 않은채 조용히 있다고 한다면 과연 그 기분은 어떨까. 잘은 몰라도 높으신 분들 몇몇은 똥줄이 타지 않을까.

악수하는 사진이라도 한방 찍으면 모를까 개인적인 용무라면 그럴 의무도 없는 법이다. 연예인이 휴가 나갔다가 촬영 현장 봤는데 출연료도 안주는데 거기에 끼어야 할 의무가 없는거랑 같다.


"진짜 왜 왔지? 짐작 가는게 없는데"

"정보가 부족합니다"


"그럴 때는 좋은 사람이 한명 있지"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전화번호부를 뒤져보았다. 음......일단 걸어볼 사람이 두명 있다.


한명은 조인형 팀장. 한국 포스 유저 연합에서 일하는 만큼 그 사정도 밝을테고......다른 한명은 이경진 아저씨. 이쪽이 더 확실하기는 하지만 같은 정보가 주어지면 정답에 가깝게 유추할 수 있는 사람은  팀장 쪽이다.


어차피 두명 다 전화 할거지만.

"여보세요?"


[아! 간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그제까지만 하더라도 그럭저럭이였는데 어제 소식 듣고 개판 쳤지 뭐"


[권룡여제 때문입니까?]


"그 여자가 볼일 있는 사람이 나 일것 같은 예감이 팍팍 들거든"

[근거는요?]


"내 특성"


정확하게 말하면 특성이 아니라 능력이지만.

오히려 더 정확하니까 그냥 적당히 넘기는게 낫다.


"아무튼 소식 들은거 있어? 쉬쉬하면서 조용히 퍼지는 소문이라도"

[저희도 어제 다짜고짜 들은 이야기라서 크게 들은건 없습니다. 일단 명목상 경호로 권룡여제가 머무는 호텔 인근에 파견 나와 있지만......]

"솔직히 별 쓸모도 없는 감시라는게 본인 스스로 잘 알고 있지?"

[그렇긴 합니다. 맘만 먹으면 저희 전부 쓰러트리는 것도 가능하고, 반대로 저희 모르게 빠져나갈 수도 있는데 말이죠]

"아는 사람이 권룡여제가 마스터 유저 최강이라더라"


[본인 의견은 어떠십니까?]

"맞는 말 같아"

조 팀장은 마침 감시역으로 나가있던 모양이다. 그러면 정보를 얻거나 접선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어디보자......그러면 어떻게 떠봐야 할까?


이런 상황에 내가 나가서 만나보는면 제일 간단한 방법이지만 반대로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들어가는 꼴이다. 딱히 나한테 메리트도 없는데 거기에 응해줘야  필요는 없다.

"잠깐만 기다려봐. 난 일단 이경진 아저씨한테 전화 좀 걸어볼께"


[알겠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먼저 문자로 넣어주시죠. 일단 경호 임무 중이라서요]

"알았어"


나는 전화를 끊고 다음에는 이경진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몇번 이어지다가 이윽고 받았다.


"아저씨, 간만이네. 잘 지냈어?"

[나야 그럭저럭이지만......자네는 아닌 모양이군]


"갑자기 찾아온 누구누구 덕분에 말이지"


[이쪽도 마찬가지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이경진 아저씨의 목소리에서는 감출 수 없는 피곤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권룡여제 때문에 고생하는건 나만이 아닌 모양이다.  참 사람 한명 가지고 엄청 귀찮아지는구만.

근데 더 짜증나는건 이명이 간지난다는 점이다. 이경진 아저씨의 천검이나 히비키의 슈텐도지는 어떻게 넘어가더라도 권룡여제(拳龍女帝)는 거의 무림 별호 수준 아니냐? 아니, 제(帝)자 들어가는 별호는 무림에서도 드물다.


나도 차원단위 이명은 있는데 그렇게 간지나는 칭호는 아니라고! 맘 같아서는 천살제(天殺帝)를 받고 싶은데 그건 이미 스승님의 별호라 할 수 없이 흉제(凶帝)정도로 만족하고 있다고!

물론 겨우 지구 하나에서 부르는 별명하고 차원단위 문명에서 칭하는 제(帝)의 칭호는  의미가 다르지만.......왕(王), 제(帝), 황(皇). 셋 중에서 하나라도 있으면 초월자 인증이라서 나도 어디가서 무시 안당하는 초월자지만 그래도 좀 더 폼나는 별명을 원해!


아, 그렇다고 황(皇)은 좀. 왕(王)은 강함의 상징, 제(帝)는 위업의 상징이라면 황(皇)은 악명의 상징이다. 나야 대마왕이 일이니까 어지간해서는 그 칭호 받을 일은 없다. 대마왕은 알고보면 환경미화원이랑 비슷한 일이니까.


"아저씨 권룡여제랑 아는 사이지? 막 파견 나가면 종종 보곤 했을거 아니야. 그러고보니 러시아의 소피아도 비슷한 소리 하던데 맞지?"

[그렇긴 하지]

"뭐 때문에 왔는지 그거나 좀 물어봐주면 안될까?"

[.......개인적으로는 거절하고 싶지만 신세진게 있으니 거절하기도 그렇군]

"왜? 권룡여제랑 척진거 있어? 사이 안좋아?"

[아니, 기본적으로 마스터 유저간에 관계가 나쁜 사람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네. 애초에 사이가 나쁠만큼 자주  것도 아니니 말이야. 하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꺼려진달까.......]


"하긴, 하반신 사정 생각하면 아저씬 여자 무서워해야 할 나이이긴 하지"

[난 재혼 생각이 없을 뿐이지 아직 팔팔해!!!]

"연애 해본적도 없는 모쏠들이 결혼 안한다고 핑계대는거랑 비슷한거 알아?"

[크으으윽, 이걸 보여줄 수도 없고......]


"아무튼 아저씨. 뭐가 꺼려지길래 권룡여제랑 만나기 싫은거야?"

[그게......]

조금 망설이는 기색이 있었다.


이야기를 꺼내려다가 멈칫하고 쉽게 이야기를 시작하지 못했지만 차분하게 기다리니까 본인도 마음을 먹었는지 천천히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마스터 유저로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녀를 만난 적이 있었지. 정확하게 말하면 마스터 유저 검증 할  쯤일까? 지금이야 마스터 유저는 3개의 마스터 유저 보유국에서 초청을 해서 인정을 받는 절차가 확립되어 있지만 그 시절에는 마스터 유저의 숫자도 얼마 없었으니까 나는 처음으로 마스터 유저로 인정받은 그녀에게 검증을 받게 됐지]

"흐음, 나는 그쪽에 관심이 없어서 세세한 이야기는 모르거든. 흥미로우니까 계속해"

[.......당시에는 마스터 유저라고 해도 중국이 경제적, 사회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과대 퍼포먼스라고 믿고 있었지. 나도 경지를 넘었다는 자각은 있었으니 차이가 있더라도 얼마 크진 않을거라고 자만했네]


"그러다 처맞았구나"

[그걸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 해야 하나? 나도 체면이란게 있지 않은가?]

"내가 알기로 체면 따지다가 훅 가는거 한순간이더라고. 자존심이 밥 먹여주는건 아니니까 그런거 버려버려"

나야 시온만 있다면 자존심 같은거 세우지 않고  자신 있다. 내 앞에서 시온 욕이랑 패드립만 안치면 나만큼 안전한 사람도 드물껄.


내가 백리한테 해주는걸 다른 사람한테도 그런다고 생각해봐?  괜찮은 인간이지?

[지독하게 당했지. 애초에 싸움이란게 성립되지도 않았으니까 문제될 일도 없었네. 아마 지금 싸운다 하더라도 잘해야 승산이 3할 정도일까]

"뭔소리야. 유색공명기 있는데도?"

[그야 당연하지. 내가 그걸 깨우치는데 가장 큰 도움을 받은게 바로 그녀니까]

"............"


한순간 오싹한 느낌이 등 뒤를 타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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