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라쿤맨 비기닝]
세상을 살아가면 온갖 인간 쓰레기들을 종종 본다. 아니, 자주 본다.
보통은 그런 쓰레기들은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을 배려하기 않기 때문에 생긴다. 물론 사람이 이기적인건 당연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만한 선이 있는 법이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매너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영화에서는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는데 깊게 생각해보면 절절히도 맞는 말이다.
매너가 없이 난동을 피우는 놈을 우리들은 사람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무식한 등신 새끼일 뿐이지.
"아저씨, 지금 뭐라고 했어? 씨발년?"
"그래 이 새끼야. 뭐 어쩔래?"
여태까지 무시했지만 시비를 걸었는데 계속 무시할 생각은 없다. 만약 내가 시비가 걸린거라면 똥 밟았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겠지만 그 대상이 예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손님, 죄송합니다. 바로 경찰 부를테니까 일단 진정하세요!"
"괜찮아요, 사장님. 잠깐 이야기 좀 하려고요"
나는 슬쩍 견적을 내어 보았다. 가까이서 보니까 후줄그레한 모습이 단순히 취향이 아니라 그럴 수 밖에 없는 상황 같았다.
다른건 몰라도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있지. 좋은 사람을 판단하기에도 좋지만 인생 막장의 쓰레기들을 판단하기에도 딱 좋은 특기다.
"남의 딸내미한테 지금 씨발년이라고 지껄였냐 지금? 조용히 밥 먹고 있는데 왜 시비질인데 늙은이 새끼가"
"이 새끼가! 니는 애미 애비도 없냐!!!"
"시설 출신이라서 없다. 어쩔래?"
"그러니 성격이 그 모양 그 꼴이지!"
"난데없이 패드립 박는 꼬라지 보니까 니도 없나보지? 아니, 나야 대공황 시절에 잃었는데 댁은 늙어서 뒤졌나보지? 아니면 댁같은 자식 둬서 홧병으로 죽은거 아니야?"
"이런 시발 새끼가!!!!"
그는 옆에 있던 빈 밥공기로 내 머리를 후려쳤다. 까앙! 하고 울려퍼지는 소리에 주변에서 구경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짧게 비명을 질렀다.
그래봤자 아프지도 않다. 역장도 안쓰고 육체도 일반인 수준으로 낮춰도 아프지 않을 정도의 타격에 불과했다. 잘 먹지도 못하고 술만 처먹는 불균형한 식사 습관을 장기적으로 들인 사람의 근력은 거기서 거기에 불과했다.
"사장님, 바로 경찰 부르세요"
"네? 아, 네!!"
우리나라 법은 시비가 걸리면 먼저 때린 쪽이 불리하다.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지만 먼저 맞았다면 법정 공방을 가던 뭘 하던 이쪽이 이긴다는 소리다. 김 변호사님도 있으니까 나중 일을 두고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아, 아저씨. 그만해요. 전 괜찮아요"
"가만히 있어. 이런 쓰레기 인생 사는 새끼한테는 본때를 보여줘야지"
"시벌, 애미 애비도 없는 어린놈의 새끼고 어른한테 못하는 말이 없네, 엉!!!"
"그래서? 댁은 나이 처먹었다고 할말 못할말 가리지도 않는데 어쩌라고?"
"이런 시벌놈의 새끼!!! 개 잡놈 같은 새끼! 너 같은 새끼들 때문에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인거야!"
난데없이 주제가 사회 분야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건 이쪽이 전문이다.
애초에 저딴 성격이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사는데 그걸 전부 사회 탓으로 돌리는건 전형적인 꼰대들의 마인드다. 정말 가지가지 하는구나.
"시벌 육시럴놈들의 새끼들......이렇게 살 수 있는게 전부 다 박통 덕분인데 그 은혜도 모르고 공주님에게 못된 짓이나 하고 말이야!!!"
"무슨 박통? 여대생 끼고 양주 처마시다가 총 맞고 뒤진 박통, 아니면 무당한테 나라 팔아먹어서 역대 대통령 최초로 감옥간 박통?"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가!!!"
그는 다시금 내 머리를 밥공기로 후려치려고 했다. 하지만 그 전에 잽싸게 먼저 밥공기를 가로채서 그의 눈 앞에 보여주었다.
"아저씨, 내가 왜 맞고만 있는거라고 생각해?"
스테인리스로 만들어진 밥공기를 손아귀에 쥐고 그대로 힘을 준다.
까드드득! 금속이 우그러지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가게가 조금 넓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가게 끝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에게까지도 충분히 들리고 보인다.
소리조차 위협적인데 눈 앞에서 보면 기분이 어떨까? 아무리 술을 마셔서 인사불성이 되었어도 사람은 목숨의 위기 앞에서는 정신을 차리는 법이다.
"어, 어?"
으스러지다 못해 압축된 스테인리스 밥공기는 그대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만큼 구겨졌다.
나는 그걸 다시금 그의 손에 쥐어 주었다. 방금 전 까지만 하더라도 멀쩡했던 밥그릇이 종이처럼 구겨져서 느껴지는 딱딱한 감촉은 현실을 깨닫는데 도움을 줄거다.
"내가 왜 댁을 한대 후려패지 않는 줄 알아? 댁을 패면 깽값 물어줘야 해서 그런거야"
예진이에게 쌍욕을 했는데 겨우 깽값이 아까울리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뒤지기 직전까지 팬 뒤에 식물인간으로 만들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한가득이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아무리 좋은 변호사를 써도 귀찮아질게 뻔하다. 저런 쓰레기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그 정도의 힘을 들일 가치조차 없다.
"나는 당신 같은 사람은 엄청 잘 알지. 사회에 적응할 줄도 모르는 주제에 과거의 영광에나 빠져서 남들에게 민폐나 끼치고. 결국에는 길거리에 나앉게 된 주제에 무료 급식소나 전전하다가 돈만 생기면 좀 더 건실한 일을 할 생각 없이 술이나 처마시는 쓰레기 노숙자 인생이지?"
"어......."
나이가 막 7,80대 할아버지도 아니고 팔뚝이 삐쩍 마른데다가 건강 상태도 나쁘고 안색도 나쁘다. 관상이 아니라 겉모습만 봐도 대충 알만한 일이다.
수염도 제대로 면도하지 않아서 제멋대로 자란 턱수염이 삐쭉삐쭉 나 있고 옷도 잘 보면 오래 입어 때가 묻고 색이 바랜 티가 난다. 보통 저 정도로 입었으면 버리고 새걸 사 입는법인데도 말이다.
"댁을 패는 것도 쉬운 일이고 깽값을 물어 주는 것도 쉬운 일이지. 근데, 그러면 그 돈으로 당신 술이나 마실게 뻔하잖아? 내가 왜 당신 좋은 일은 시켜줘야 하는건데?"
나는 아무리 시온이 없어서 생산적인 일을 한다. 아니, 오히려 다른 어떤 손해도 감수하기 때문에 지극히 조용한 삶을 지내고는 한다.
그런 인생과 비교하면 눈 앞에 있는 새끼의 인생은 정말 쓰레기 같다 못해 재활용도 못하는 폐기물이나 다름 없다.
"그런 쓰레기 같은 인생 사는 기분은 어때?"
"이 새끼가.....!"
"댁이랑 비교하면 나는 엄청나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생각하는데? 엄청 예쁜 마누라도 있지. 귀여운 딸도 있지. 빚도 없는데 집 있지 직장 있지. 돈 많지. 어딜 봐도 당신한테 꿇릴게 없는 인생이야"
힘으로 패서 굴복시키거나 죽이는건 지극히 간단하다.
당장 눈 앞의 쓰레기를 끌고가서 죽이는 것도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는건 힘으로 하는게 능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적 고통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하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쓰레기 인생을 사는 놈하고 성공한 인생을 사는 나하고 서로 비교해서 자괴감을 가지게 만들면 그건 평생 간다. 추억이 영원히 남듯이 지금의 감정도 영원히 기억된다.
"그러니까 집도 없고 애미애비도 없고 자식도 없고 돈도 없는 아저씨. 작작하고 밥이나 처먹어. 알았어?"
"이런 개놈의 새끼!!!"
놈이 상을 엎었다. 물론 통짜 나무로 되어 있어서 보잘것 없는 그의 근력으로는 무리지만 먹고 있던 국밥 뚝배기를 뒤집어 엎었다는 소리다. 반찬과 국물이 사방으로 튀지만 슬쩍 뒤로 물러나 나한테는 한방울도 닿지 않았다.
그는 엎은 뚝배기를 잡고 나를 향해 휘둘렀다. 휘청거리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잘도 움직이는데 맞아줄 가치도 없었다. 게다가 국물 튀면 나중에 빨래할 때 귀찮아.
여기 젊은 사장이 그를 붙잡아서 말렸다. 덕분에 나한테 다가오지 않아서 편하다.
"손님! 진정하세요!"
"시벌 새끼! 개 잡놈의 새끼! 내가 누군지 알고 날 무시해!!!"
"그러게, 궁금해서 그런데. 어디서 뭐 하시는 분이세요? 저는 건물 몇채 있고 작은 게임 회사 사장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어디서 무슨 일 하시길래 저보다 나으신데요?"
"부모도 없는 개잡놈이!!!"
"응, 너는 돈도 인성도 없어. 고작해야 국밥집에서 민폐나 부리는 손님 역할이 니가 할 수 있는 전부지? 아니, 애초에 손님도 아니구나?"
"뭐어, 이 새끼야?"
"아저씨, 먹은거 돈 낼 밥 값은 있어?"
우뚝, 하고 그가 휘두르던 뚝배기 그릇을 멈추었다.
아무래도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댁이 먹었던거 낼 돈 없다에 바깥에 주차해 놓은 내 스타렉스 건다. 쫄리면 뒤지시던가"
"돈 있어 새끼야! 있다고!!!"
"그래? 사장님, 이 아저씨 처먹은거 얼마입니까?"
"......막걸리 2병에 순댓국 하나 해서 만 천원이요"
이야, 역시 국밥이 가성비가 죽이네. 술을 두병이나 깠는데 만원이 조금 넘냐.
밥 한끼 먹으러 왔다면, 그 와중에 막걸리를 두병이나 처마셨다면 분명 그만한 돈이 있어야 정상이다.
요즘은 카드를 주로 쓰니까 카드를, 하다못해 현금이나 핸드폰 카드 결제 서비스 정도는 가입해 있어야 정상이다.
근데 저 아저씨는 카드던 현금이던 핸드폰이던 셋 다 없거든. 내가 장담한다.
"밥 먹었는데 돈 없으면, 그건 무전취식이지? 애초에 손님도 아닌데"
"돈 있다고 새끼야!!!"
"그럼 어디 보여줘봐. 겨우 만 천원가지고 뭐 어떤데? 요즘 카드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하다못해 지갑에 만원 정도는 있다고? 아, 지갑조차 없구나 쓰레기 인생 아저씨"
"이 새끼야아아아아아!!!"
아, 폭발했다.
자괴감이 폭발했는지 그는 버둥거리면서 자신을 붙잡은 사장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아무리 취객이라도 기본적인 스펙에서 차이가 있는데 벗어날 수 있을리가 없었다.
나이 든데다 영양도 제대로 공급받지 못해서 삐쩍 마른 팔뚝의 꼰대와, 국밥집에서 일하는 젊은 사장님의 체력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신고받고 왔습니.....아, 잠시만요!!!"
그리고 경찰이 왔다.
* * * *
영어로 폴리스가 적힌 형광색 조끼를 입은 건장한 경찰 세명이 경찰차를 타고 왔다. 그리고 행패부리는 놈을 잡고 있는 사장님을 도와서 그를 제압하고 수갑을 채웠다.
"야!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지 알고 이 짓을 하는데! 엉!! 엉!!!"
"그니까 아저씨 무슨 일 하는데? 나 처럼 어디 건물이 있어, 아니면 회사 사장이야? 그 전에 먹은거 돈 부터 내고 봐야지. 설마 밥 먹은거 낼 돈도 없는 주제에 자기가 누구냐고 떠드는건 아니지?"
"야!!! 이 개새끼야!!!!!"
내가 말을 험하게 하니까 경찰이 제지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황은 명백한데다 이쪽은 증인까지 있었다.
가게 사장님 뿐만 아니라 직원 아주머니들, 거기에 같이 식사하고 있던 손님들까지. 전부 내 편이지 그놈 편은 아니였다.
"상황 설명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 네"
경찰 두명은 그 아저씨를 연행했다. 곱게 나가려는 기색이 없었기 때문에 은빛이 블링블링한 수갑을 채워서 경찰차에 태웠다. 얼씨구 꼴 좋다.
나와 가게 사장은 그놈이 했던 일들을 설명했다. 잘 먹다가 난데없이 고성을 지르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친 것도, 사방에 욕을 해대면서 인상을 찌푸리게 만든 것도.
"그러다가 그놈이 제 딸한테 시발년이라고 욕하더라고요"
"딸이요?"
되묻는 경찰의 물음에 나는 걱정스런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던 예진이를 돌아보았다.
다시금 말하지만 예진이는 포스 유저라 시온에 비하면 떨어져도 분명 미녀인데다가 미녀는 뭘 해도 이득을 보기 마련이다.
예진이와 눈이 마주친 경찰은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나이 지긋한 사람도 아니고 잘해야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다. 쑥쓰러운 감정도 들법하다.
"예진이는 아직 미성년인 아이라서요. 무시하려고도 했는데 시발년 소리 듣고 욱해서 말다툼을 벌이게 됐죠"
"그렇군요"
경찰의 얼굴이 진중한 표정이 되었다. 적당히 사무적으로 처리하려던 모습이 의무감 가득한 모습이 되었다.
"김 변호사님 부릅니까?"
"혹시 모르니까 일단 불러"
시온이 슬쩍 다가와서 물었다. 따로 사건 기록을 하던 경찰이 단숨에 안색이 굳어진다. 물론 나쁜 의미가 아니라 그 반대의 의미로서 말이다.
"크흠, 누구십니까?"
"아, 이쪽은 제 아내입니다"
"아아, 그러시군요. 업무 중에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참 예쁘시네요"
시온은 그냥 조용히 있어도 될거 왜 굳이 나와서 귀찮은 일을 하려는지는 몰랐지만 금새 알 수 있었다. 사건진술 하는 척 하면서 그놈에게 좀 더 불리하게 만드려는 속셈이다.
"가만히 있던 저희 딸 아이가 난데없이 쌍욕을 들으니까 마음이 아픕니다. 게다가 언쟁을 벌이면서 그 사람이 먼저 저희 남편에게 밥공기로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경찰은 내가 우그러트린 밥공기를 보고 의문을 표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남들보다 힘이 좋아서요. 아, 포스 유저는 아닙니다. 포스 유저는 저희 마누라랑 딸아이가 그런거고요"
"그래서 예쁘신건가요? 부럽네요"
"복 받았죠 뭐"
나는 어디까지나 피해자였다. 아무리 언쟁을 벌였어도 그건 정당방위로 인정되는 수준인데다 나는 폭력을 휘두른적이 없다. 아, 언어폭력이나 팩트폭행이라면 또 달라지겠지만 아무튼.
우리 뿐만이 아니라 사장님과 직원, 그리고 손님들에게서 증언까지 모으고 가게 내부의 CCTV 영상까지 확보한 경찰은 안심하라는 듯 인사를 건냈다.
"걱정마십시오. 남편분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없을테니까요. 부상이 거의 없기는 해도 먼저 폭행까지 휘둘러 맞으셨으니 폭행 사건으로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마 내일 쯤 저희 변호사님이 경찰서로 찾아갈겁니다"
"아시는 변호사분이 계신가요?"
"저희 집 전담 변호사님입니다"
".......그러시군요"
아까 밥그릇으로 한대 맞은걸로 화가 난 모양이다. 시온이 감옥에 처넣으려고 작정한 기색이 역력했다.
물론 나도 찬성이다. 보통 다른 범죄자라면 감옥 가서 편하게 밥 먹고 맘 편하게 사는게 아니꼬와서라도 죽이겠지만 상대는 집도 절도 없는 노숙자에 돈도 없는 아저씨다.
밥만 잘 먹는다고 좋은게 아니야. 자고 싶을 때 자고 술이나 마시던 새끼가 군대 같은 교도소 들어가서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데다 술도 못마시는 꼴이 얼마나 괴롭겠어?
반성이라도 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와서 또 그런 쓰레기 인생이나 살거다.
나한테 느꼈던 자괴감을 영원히 잊지 못하고 평생 느끼면서 말이야.
그런 쓰레기한테는 그런 여생이 어울린다.
"얼굴 관리 하십시오"
"아, 미안"
슬쩍 입꼬리 올라가는 나에게 시온이 주의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