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70화 〉[라쿤맨 비기닝] (167/507)



〈 170화 〉[라쿤맨 비기닝]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국밥 체인점에 들어서자 뜨끈하고 구수한 냄새가 반겨주었다. 가게 안에는 일행끼리  듯한 사람도 있었고 혼자 와서 적당히  먹고 가려는 사람도 보였다.


앉아 있는 손님들의 나이나 성별도 각각 다르지만 젊은 여성이 찾아오기에는 그리 세련되지 못하다. 나나 시온이나 그런건 신경 안쓰니까 들어와도 어색하지는 않지.

"저도 이런데 올 때는 같은 시설 애들이랑 같이 오거든요. 남자 혼자라면 몰라도 여자 혼자서 여기 오기에는 좀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남자가 파스타 집에 혼자 가서 밥 못먹는거랑 비슷하구나"

그림의 문제다. 국밥 집에 남자 혼자 밥 시켜서 먹는 것 하고. 파스타 집에서 여자 혼자 파스타 시켜먹는거. 솔직히 그 두개는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진다. 요컨데 고정관념 비슷한거라고 할까.

혹시 모른다. 요즘은 혼밥족이란게 많이 늘었으니까 그런 곳에서 혼자 밥 먹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야 여럿이서 먹는게 좋으니까 혼자 밥 먹는건 드물다. 시설에 있을 때도 최대한 두명 이상에서 먹으려고 했었다.

아, 다시 시설 생각나네. 전역한 후로 연락도 안했는데 거기 있던 다른 애들은 잘 지내려나. 나랑 비슷한 나이인 애들은 자립했겠지만 아직 어린 애들은 거기에 있을거다. 그 성격 나쁜 원장도 그대로일까?


 사람 성격 나빴는데 말이지.....하지만 폭력은 쓰지 않았다. 수전노에 나쁜 성격 때문에 욕을 많이 먹긴 하지만 최소한 도는 넘지 않았었다. 선을 넘지 않았다는건 갱생의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지만.....뭐, 나중에 한번 가볼까.


"어서오세요. 세분이신가요?"


"네, 3명이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적당한 자리에 앉아서 메뉴판을 흝어 보았다. 기본적인 메뉴는 순댓국이지만 그 외에도 국밥집 특유의 뼈 해장국이나 수육, 편육까지 있었다.

체인점이라서 특출난 맛은 기대할 수 없지만 평타는 치기에 나쁘지 않다. 야, 근데 한 그릇에 6000원이라니 역시 국밥충이 가성비 어쩌구 할만하긴 하다. 요즘 세상 물가에 이런 가게 찾는건 힘들지.


"저는 순대국밥 특으로 하겠습니다"


"아, 저도 같은걸로요"

"그럼 난  해장국"

"아니, 거기서 뼈 해장국을?!"

"뭐 어때. 고기 나오는거 한입 줄께"


"그럼 됐습니다"

"겨우 국밥 하나씩 먹어서는 배도 안찰테니까 다른 것도 시키자. 수육 큰거 콜?"


"편육도 시킵시다"

"편육 같은건 요즘 애들이 먹던가......"


"전 괜찮은데요"

"그럼 편육도 큰걸로? 흠, 그리고 그냥 먹으면 별로니까 소주도 두어병 정도 시킬까"

"운전하셔야 하지 않아요? 음주 운전은 큰일나는데"

"어차피 그거 마셔도 안취해"


나나 시온이나 신진대사가 일반인이랑 비교해도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 고작 그거 마시고 취하겠냐? 일부러 조절하지 않으면 보드카를 병나발로 불어도 취하지 않는다.

그래서 맘 편하게 술 마시고 싶을 때는 좀 귀찮지. 초월자용 술은 그래서 비싸다니까.

겨우 소주 정도야 그냥 반주 축에도 못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이랑 마시면 좀 밍밍하잖아. 음료수랑 마시기에도 궁합이 안좋고. 국밥 먹다가 달달한 음료수 들어가면 입안이 텁텁하다.


결국 남은건 소주 정도다. 국밥에 소주라. 딱 좋은 조합이지.

"여기 주문이요"

"네, 뭘로 드릴까요?"

"순댓국 특으로 두개랑 뼈 해장국 주시고요, 편육이랑 수육  다 대짜로 하나씩. 그리고 소주 두병이요. 참이슬 빨간걸로. 잔은 두개만 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홀에서 일하는 직원은 두명 정도였는데 한명은 사장으로 보이는 젊은 아저씨다. 기껏해야 30대 정도. 다른 한명은 지긋하신 아주머니. 주방 안에서는  두명이 일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바깥의 날씨는 선선하다 못해 약간 쌀쌀한 느낌이 들고, 그러자 문득 겨울이 온다는 사실과 함께 아직 이번 생에서 시온을 만나고 1년도 되지 않았다는걸 깨달았다.


시간은 참 요상하단 말이야. 느리게 간다 싶다가도 지나고 보면 또 빨라. 여태까지 수천년의 환생을 겪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도 그리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군생활 같군. 만약 공감하는 사람은 군필이다.


"아, 이거......우리 오늘 동굴 가서 무대 선거 영상 인스타에 떴어요"

"어? 진짜?"


"네, 정작 라쿤맨 검색하다 나왔는데 정작 저는 짤리고 아주머니만......"

"이게 바로 미모의 차이입니다"


"저도 어디 가서 모자란 외모는 아니거든요?! 아주머니가 엄청 예뻐서 그런거지!"


시온이 성장 폼으로 돌아다니기 위해서 포스 유저 등록을 한 이후로는 따로 사진이나 영상에 관해서 처리를 하지 않기로 했다. 만약 그러면 꽤나 시선이 몰릴거고......아니, 지금도 충분히 시선이 몰려서 내가 라쿤맨인거 언제 들켜도 이상하진 않지만 그래도 노골적으로 숨기는 것보단 낫다.

그래서인지 인스타나 페북 같은 곳에 자주 올라오는것 같다. 요즘 시대에 그러다가 신상 안털린거 보면 꽤나 신기하다.

"그런 부분이야 이미 제가 처리 해둬서 그런겁니다"

"그랬어?"


"신상 털리면 분명 도를 넘는 사람이 나올겁니다. 아무리 스토커라도 사지를 비틀어 죽이는 꼴을 보는건 한번이면 족합니다"

"하긴"


"방금 무서운 말 지나가지 않았어요?!"


"별거 아니니까 신경 꺼"


시온은 외모 때문에 종종 스토커가 생긴다. 하지만 시온 성격상 아무리 악한 성향을 지닌 사람이라도 직접 손을 대는건 꺼려한다. 아무리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불법침입을 한 스토커라도 섣불리 공격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있는거다. 힘 쓰고 사람 죽이는 일은 내가 제일 잘하니까. 게다가 보통은 디폴트 폼인 시온을 보고 오는거라 어린애에게 성적인 것을 느끼는 변태 새끼거든. 그런 놈들 꽤 자주 있다.


시온 몰래 조진 놈들도 있긴 하지만 시온 앞에서 조진 놈은 하나 있다. 그놈은 목적이 강간이여서 어지간해서 시온 앞에선 살인 안하는 나도 개빡쳐서 사지를 비틀어서 좀 냅둔 후에 죽였다.

세상에는 임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대는 개같은 새끼들이 있다. NTR충은 갓-루리루리가 나름 처리하기는 하는데 그래도 너무 많아서 탈이다.

"주문하신거 나왔습니다"

"어? 부속고기는 따로 안시켰는데요"

"서비스예요, 서비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사장님도 남자라고 시온과 예진이를 보며 웃으면서 식탁 위에 주문했던 요리들을 내려놓았다. 우리가 주문한  외에도 순댓국에 들어가는 부속고기만 모아놓은게 하나 더 올라온다.


미녀는  해도 이득을 본다더니......나도 여자로 환생하면 그런 대우 종종 받긴 하지만 그때는 외모보단 몸매 때문인데.


아무튼 공짜는 좋은거다. 시온에게 거는 개수작은 극혐해도 이런 쪽이라면 환영이다. 흑심이라기 보다는 순수한 호의니까.

나나 시온이나 예진이나 잘먹어서 남을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약간 부족할까 걱정스러울 뿐이다.


소주병을 까득, 하고 뚜껑을 따서 잔에 따랐다. 꼴꼴꼴꼴, 하는 느낌으로 따라지는 소주에서는 그 특유의 알콜 향이 난다.


"저는요?"

"집에서는 모르겠는데 바깥이잖아. 물이나 마시렴"

우리 치킨집에서도 미성년자한테는 술 안팔에서 저번에 고삐리들이랑 그 사단이 났었는데 이런 가게는 또 오죽할까. 민폐는 끼치지 말자.

나와 시온은 쨍, 하고 가볍게 건배를 했다. 중간에 끊지 않고 한번에 원샷. 소주 특유의 쓴맛과 그 안에 숨겨진 희미한 단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코를 찌를듯 올라오는 알콜 냄새도 함께.

"크으으, 국밥 비주얼은 죽여주네"


"겉보기에는 뼈 해장국이 짱입니다"


"솔직히 국밥은 가성비는 좋지만 건강 생각하면 나쁜 메뉴인데 말이야"


시온과 예진이는 각자 자기 취향에 맞춰서 다데기를 넣었다. 시온은 양껏, 예진이는 깔끔한 맛을 좋아하는지 적당히 넣었다.

나는 뼈 해장국 위에 얹인 들깨 가루를 조금 털어내고 그 아래에 있던 뼈를 집어 들어올렸다. 내 주먹만한 크기의 고기 붙은  덩어리가 두개 정도 들어 있었다. 살을 발라내면 정작 먹을 수 있는건 얼마 되지 않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붙어 있는 고기 양이 상당하다.


이런데는  안좋으면 끓이느라 고기가 떨어져서 별로 뜯어먹을 것도 없는 꽝을 뽑을 때도 있는데 말이야. 아니, 보통은 그런건 건너 뛰고 다른걸로 주겠지만.

"일단 하나는 뜯어먹고 다른 하나는 살만 발라서  말아 먹을  같이 먹어야지"

"역시 우리 남편은 맛잘알입니다"


"보통은 다 그렇게 먹지 않나?"


두둑하게 붙어 있는 살점 하나를 젓가락으로 뜯어내자 부드럽게 분리되었다. 바로 한입 먹자 담백하면서 고소한 맛이 느껴진다. 크으, 역시 뼈 해장국은 이런 맛이지!!

절로 술을 부르기에 다시금 소주 한잔 따라서 쭉 들이켰다. 그리고 반복해서 고기를 뜯는다.


"이럴줄 알았으면 감자탕으로 시킬껄 그랬나"


"그건 다른거 아니예요?"


"원래 1인분으로 나오면 뼈 해장국이고 다인분으로 나오면 감자탕이야"

"아, 처음 알았어요"

고기를 큼직하게 발라내서 시온이랑 예진이에게 하나씩 맛보라고 앞접시에 담아 주었다. 두사람이 먹는건 순댓국 특 사이즈이기는 한데 슬쩍 주변을 살펴보다 다른 사람들이 먹는 것보다 양이 조금 다른듯 보인다.

적은건 아니고 많다고. 아니, 사장님 장사 이렇게 하시면 망해요. 두명이 예쁜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주는데다 서비스까지 주면 어떻게 합니까.


"아, 맛있다.  해장국도 맛있는데 순댓국도 맛있어요"

"부속고기부터 골라먹는구나?"

"저도 반은 먹고 반은  말아 먹을때 같이 먹으려고요"

순댓국에는 여러가지 부속고기들이 많이 들어간다. 가게에 따라서 어떤걸 넣는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래도 꽤 충실하게 넣은듯 보인다.


정작 순대는 몇개 안들어갔는데 순댓국이란게 아이러니 하지만 말이야.

한참 잘 먹다가 수육과 편육이 그제서야 생각났다. 아직도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수육은 지방 부분이 붙어 있어도 담백해 보이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접시에 두어점 담아서  위에 새우젓만 살짝 올리고 먹는다. 담백함과 짭짤함이 어우러지고 씹으면서 지방의 고소함이 이어진다. 새우젓의 짭짤함을 넘어선 짠맛은 지방 부분의 고소한 맛이 잡아주고, 지방의 느끼함은 새우젓이 잡아주는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이루고 있다.

음, 존맛. 이거도 소주 안주구만.

술도 어느 정도 들어가고 건더기도 얼추 먹어서 슬슬 밥을 말아먹을 때가 되었다. 공깃밥에 담겨져 있는 밥을 그대로 수저로 퍼서 뚝배기에 투척하고 휘휘 젓는다. 나는 아까 미리 발라놓은 고기들도 거기에 넣고 잘 섞는다.


뼈를 빼니까 국물이 별로 없어서 조금 걱정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고기와 함께 시레기까지 한수저 퍼서 먹으니 칼칼한 느낌과 들깨 가루의 고소함이 올라온다.

"역시 사람은 국이랑 밥을 먹어야 해"


"그 뭐더라, 그런 이야기도 있지 않습니까? 밥상의 주인은 국이라고. 중학교인가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걸로 기억납니다"

"식객에서는 밥이라고 나왔지만. 솔직히 둘 다 맞는 말이기는 하지"


엄밀하게 말하면 한국인의 주식은 밥이지만 그렇다고 밥만 먹을수는 없는 노릇이다. 반대로 국만 먹으면 또 짜다. 결국은 밥이랑  둘  먹어야 한다.

그런데 솔직하게 말해서 밥이랑 국만 있어도 어지간한 한끼는 해치울 수 있잖아. 만약 그런 식으로 계속 밥상의 주인을 따지고 들어가면 솔직히 김치 들어가야 하지 않냐. 있어도 안먹을 때도 있지만 없으면 허전하잖아.


소주가 모자랄  같아서 소주도 한병 더 시키고 오독오독한 식감이 매력적인 편육도 취향에 따라 새우젓이나 김치 올려서 먹고 있을 무렵. 등 뒤에서, 그러니까 우리 뒷자리에서 고성이 들려왔다.

"엉!  시벌 새끼들이 말이야. 내가 으떤 사람인줄 알고 엉! 날 무시하는 새끼들 만큼 그런 개잡놈 새끼들도 또 없다고! 엉!!"

발음이 많이 새는 목소리다. 우리 바로 뒷자리가 아니였더라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알아듣지도 못할 그런 목소리였다.


슬쩍 돌아보니 혼자서 순댓국밥 하나 시키고  먹고 있던 후줄그레한 아저씨 한명이 앉아 있었다.


그나마 순댓국도 특자도 아니고 그냥 작은것인데도 불구하고 상 위에는  막걸리통 두병 정도 놓여 있었다. 아무리 소주보다 도수가 낮아도 두병이나 마셨다면 어지간히 주량이 센게 아닌 이상 어느정도 취했을 것이다.

시온이 슬쩍 그 사람을 보더니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외에는 알아보지 못할 수준이라서 의미 없지만 보통 시온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매너가 없는 사람들이다.

"냅둬, 여기가 우리 가게도 아니고 가게 사람들이 처리해야 할 진상이지 뭐"


"그래도 저런 사람들 보면 이해가 안갑니다. 돈 많고 권력있는 사람들이 그러는건 원래 그런 족속이니까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상에서 저러는 사람들은 무슨 정신병 있는거 아닌가 싶습니다"


"원래 그런 사람 많은거 알잖아"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뒷 좌석에 앉아 있는 아저씨는 계속해서 고성을 질러대며 쌍욕을 했다.

대부분 오갈데 없는 혼잣말이나 다름없는 신세한탄 비슷한 거였고. 그나마도 상당수는 가까이에서도 알아듣지 못할만큼 웅얼거림이 가득했다.

"이런 시벌 새끼들. 시벌 년놈들. 개시이이이발!!!"


"손님, 조용히 해주세요. 다른분들 식사 하시는데 방해되잖아요!"


"아, 네네. 조용히 하겠습니다. 네에"

보다 못한 사장님이 나와서 말렸지만 그때 뿐이였다. 건성으로 대답하고 사장이 물러가자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금 고성을 질러댔다.


그냥 목소리가 큰건 참을  있겠는데 쌍욕을 하는건 슬슬 나도 기분이 나빠진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의 민폐는 그냥 무시하고 넘기는게 제일 좋다. 괜히 끼어들었다가 트러블만 생길 뿐이다. 괜시리 덤터기 써서 좋았던 기분 망칠 필요는 없다.


"이  썅놈의 새끼들아!!"

"손님! 한번만 더 그러면 경찰 부를꺼예요!!!"

"경찰? 불러봐! 경찰 불러봐!!!"

가게 안의 사람들은 짜증난다는 눈 반, 싸움 구경 하는것 같은 눈 반으로 사장과 후줄그레한 아저씨 두사람의 말다툼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와 시온은 철저하게 무시로 응대했다. 관심도, 흥미도 없는 척 하면서 조용히 밥만 먹었다. 그 편이 제일 낫다.

하지만 예진이는 아니였던 모양이다. 예진이가 사장과 다투는 그놈을 보다가 시선이 마주쳤다.

"뭘 봐 시벌년아!!!"

"............."


그건 확실하게 대상을 지정하고 내뱉는 말이였다. 그 대상은 시선을 마주친 예진이였다.


시온이 아니더라도 예진이는 내가 가족으로 받아들였는데 그렇다면 내가 화를 내야할 이유는 충분했다. 앞으로 일어날 트러블도 감수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뜨끈한 국밥과 술이 들어가 후끈하던 몸이 차갑게 식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