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9화 〉[라쿤맨 비기닝]
곡괭이, 흔히 공사나 채굴용으로 자주 쓰이는 도구다. 군대 다녀온 사람이라면 오함마랑 야전삽과 마찬가지로 접해보기 쉬운 공구 중에 하나다. 진지 공사할 때 그거 하나 들고가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지.
하지만 묵직한 쇠를 달고 있는만큼 무기로서의 효용성도 대단하다. 오함마와 비교하면 전체적인 충격량은 떨어질지 몰라도 일점 파괴력만큼은 훨씬 위다.
나온 그 순간에 바로 기습. 거기에 무기를 들어서 오히려 좀 더 약하긴 하지만 그 파괴력은 상식을 벗어난다. 산이 통째로 울릴 정도의 힘은 단숨에 놈의 어께를 박살내 팔을 날려버렸다.
쿠구구구궁!!!
묵직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울린다. 나는 히죽 웃으면서 다시금 곡괭이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내려찍었다.
"위력은 줄인 연발!!!"
쾅! 쾅! 쾅! 쾅! 쾅! 쾅!!!
공사용으로 인부들이 쓰는 공구인데 가벼울리는 없다. 하지만 능력을 빼고 내 근력만 보더라도 이 정도 무게는 무겁지도 않다. 한번 휘두르는데 소닉붐이 일어날 정도로 후려쳤다.
적당히 할 생각은 없었다. 미국에서 나왔던 놈을 조질 때는 약간 진심이였을지 몰라도 지금 나는 개빡친 상황이다. 게다가 내구력 특화인 놈이라서 힘도 더 들어갔다. 아마 지금 후려치는걸 미국에서 나왔던 놈이 처맞으면 죽거나 뒤지거나 둘중 하나일껄?
"내가 시발 곡괭이로 신을 죽이진 않았는데 신을 죽인건 맞거든? 뒈져라 옵티머스 프라임!!!"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죽었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비스트워즈가 되서 살아가고 있다고! 시바! 동물로 변식하는 로봇이라니 개쩔지!!!
콰앙! 쾅! 콰아앙!!!
[끄아아아아악!!]
"비명도 질러? 이 새끼 저번보다 지성이 늘었구나? 그래봤자 복날에 개새끼만도 못하지 새꺄!!!"
개고기 먹는걸로 지랄하는 녀석들이 있다면 일단 소나 돼지부터 말리고 오라고 하자. 채식주의를 추구하겠다면 존중해줄 의향은 있지만 겨우 한 종 먹는것 가지고 지랄하면 평생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살던가.
원래 남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게 인간의 원죄인 법이라고!!
"근데 존나 팼는데도 안죽다니. 니 새끼 좀 하는구나"
나는 잠깐 숨 좀 돌릴겸 놈의 옆구리에 곡괭이를 박아넣은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든 후 침을 뱉었다.
빡쳐서 팼는데도 멀쩡한걸 보면 라프 에너지의 농도나 양이 장난 아닌듯 보인다. 내가 하는 공격들은 대부분이 역장을 통해서 데미지를 주기 때문에 개념적인 효과가 강한데 그걸 버틴다는게 그 증거다.
상당히 신기한데. 내가 작정하고 팼는데도 아직 숨이 붙어 있고 형태가 남아 있다니.
중국에서 나타난 것도 이거랑 비슷하다거나 조금 떨어지는 수준이였다고 하더라도 보통 마스터 유저로는 상대하기 어렵다. 이경진 아저씨라도 이 정도 수준이라면 누가 시간을 벌어줘서 유색공명검 쓸 기회를 마련해주지 않으면 못이긴다. 사실상 그거 없으면 그냥 그런 수준이고.
"도대체 중국의 마스터 유저는......"
[갸아아아아악!!!]
"시끄러 이 새끼야"
콰아아앙!!!
괴성을 지르는 놈의 아가리에 박차기를 날려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차원진 안빼, 이 새끼야?"
옆구리에 박아둔 곡괭이는 그대로 둔 채로 놈의 대가리를 잡고 후려쳤다. 퍽! 퍼억! 하고 묵직한 충격이 울려퍼진다.
이제 초월자 커밍 아웃도 한만큼 더 이상 참을 필요도 없지 적당히 했다면 러시아에서 먼저 그랬을 것이다.
"간만에 가족끼리 놀러왔는데 그걸 방해해? 운명의 절대자가 수정한 결과겠지만 그래도 니 새끼 자체가 없었으면 참을만한 트러블이였을거 아니야. 이 새끼 사람 개빡치게 만드네"
슬슬 마무리를 할 때가 됐다. 이 정도면 존나 아플테니까 보내줘야지. 빨리 끝내야 나도 집으로 돌아가고 상황도 정리되지.
나는 마무리 삼아서 곡괭이를 뽑아들었다. 죽음을 직감했는지 놈은 몸부림을 쳤지만 이미 도망가지 못하게 능력으로 구속시켜서 막았다.
남의 가족 여행을 방해했다면 뒤질 각오는 했어야지 새꺄.
"잘가라 씹쌔야"
[카아아아아악!!]
"응, 느금마"
나는 곡괭이를 거머쥐고 휘둘렀다.
단숨에 놈의 대가리가 허공을 날았다.
* * * *
나는 놈을 조지고 시온에게 돌아왔다. 예진이는 걱정 하나 하지 않은 얼굴로 나를 반겨주었다.
"아, 오셨어요?"
"많이 기다렸어?"
"별로요"
동굴 안에서 피난해 있던건 두 사람 뿐만이 아니라 먼저 관광 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에 꽤나 많았다. 아마 안에 있는 사람 생각하면 수백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요즘 들어서 적성종 출현이 많은가......아니, 그건 둘째치더라도 수준이 너무 높아졌는데"
"왜요? 이번에 나온 적성종은 쌨어요?"
"인간형 나왔더라"
"아, 그거.....TV에서 봤는데 마스터 유저 아니면 답 없는거 아니예요?"
"일반 유저로도 쓰러트릴 가능성은 있기는 한데....."
적성종은 포스 융합 현상이 일어나야 쓰러트릴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쓰러트릴 수는 있는데 그건 마스터 유저나 가능하지 보통은 불가능하다.
아무리 라프 에너지량이 많아도 결국 소형이니까 그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겠지만 못해도 5분이다. 그 동안 놈이 일으킬 인명피해만 생각하면 지옥이 따로 없을거다.
인간형 적성종이 마구잡이로 나오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안나오는건 아니다. 저번에 미국 갔던 이후로 종종 나오는 것 같은데......씨, 진짜로 우리 호라이즌 타고 화성 가서 테라포밍 하고 거기서 살아야 하는거 아니야?
지금이야 한번에 한놈씩 나와서 다행이지 만약 두마리 이상 함께 나오면 마스터 유저도 죽는다. 핵을 날려도 죽을것 같지 않고 이대로 두면 인류 멸망하는건 시간 문제로 보인다.
일단 지구의 아틀라스랑 프로메테우스를 조지고 그 뒤에 넘어가려고 했는데......생각보다 시간이 없을것 같았다.
적어도 올해 내에 중국으로 넘어가서 해결 보던가 그래야 할 판이다.
".....이번달 말에 중국행 티켓 예약해둡니까?"
"그래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준비는 해두겠습니다. 음, 그렇게 보면 이번달 스케쥴은 빡빡할지도 모릅니다"
"뭐야, 어디 또 갈데 있어?"
"해외는 아니고 아직 정해진 것도 없습니다"
아무래도 따로 나가야 할 일이 있는 모양이다. 내가 아니라 주로 시온이.
천생 집순이인 시온이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집 밖으로 나가야 할 일이라면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거나 사업적인 일일 가능성이 높다. 혹은 그 둘 다거나.
"오늘 여행은 망쳤네요. 오전까지는 괜찮았는데"
"이렇게 된거 다음에 또 날 잡아서 놀러가면 되겠지. 시간은 충분해"
비록 여행 분위기는 날아갔어도 다음 기회는 있다. 망친 당사자.....아니, 놈을 죽여서 스트레스도 얼추 풀렸겠다 집에 돌아가서 밥 먹거나 아니면 중간에 다른 가게에 들러서 배부르게 먹고 기분 좋게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면 그만이다.
나는 예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어색할지도 모르는 모습이다. 내가 아무리 눈매 때문에 노안으로 보여도 아직은 20대 후반 쯤으로 보이고 예진이는 포스 유저인 덕분에 성인이나 마찬가지니까.
예진이는 처음에는 조금 놀란듯 했으니 이윽고 받아들였다.
외견은 아닐지 몰라도 내면은 당연한 일이다.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와, 겉은 젊어도 이미 부모가 된 적도, 아이를 기른 적도 많은 나는 꽤나 어울린다.
"......사실 아까 시온 아주머니가 광장 무대에서 딸이라고 해주셨을 때 기뻤어요"
"세상에는 피보다 깊은 정이 있는 법입니다"
시온도 마찬가지다. 지금이야 성인 모습이지만 평소 같은 디폴트 폼이라도 모정이란게 당연히 있다. 오랜 세월 살아오면서 인연이 되면 친자식은 아니더라도 키워온 자식은 있다. 비록 그 아이가 자신보다 먼저 죽을지라도 최소할 살아 있을 때 만큼은 부모로서의 정을 주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예진이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이번 생에 죽을 때 까지는 딸 아이로서 키울 생각이다. 친자식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 생각 없다.
세상 사람들이 키운 부모와 길러준 부모 사이에서 괜히 고민하는게 아니다. 핏줄을 무시할 생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도 중요한거다.
"흠.....슬슬 상황도 정리 되는것 같습니다. 아마 나가도 될겁니다"
시온이 따로 어딜 해킹해서 안 것인지 상황을 정리한 국가 소속 포스 유저가 시민들을 안정시키며 다시금 바깥으로 안내했다.
"여러분! 적성종은 격퇴했습니다! 차원진도 닫혔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천천히 순서를 맞춰서 바깥으로 나오십시오!"
"나, 아까 저기서 라쿤맨 봤는데 라쿤맨이 잡은거 아니야?"
"뭐 정말?"
바깥으로 나가면서도 사람들이 웅성이며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들 눈 신경쓰지 않았으니 도망치거나 중간에 누가 봤던 사람이 있는건 당연할거다.
애초에 개빡쳐서 달려나간건데 그런거 신경 쓸 틈이 있나. 시온이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건 처리할 수 있겠지만 목격자를 제거하진 못한다.
아마 내가 동굴 안까지 들어오는걸 본 사람은 있어도 이 안의 사람 중에서 나를 찾는건 솔직히 힘들껄.
내가 적성종을 미리 조져둔 덕분인지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아마 인간형 적성종의 코어도 두고 왔으니 그것만으로도 개이득이라 그쪽에 눈이 돌아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지 되었던 코끼리 열차 노선도 다시 운행되었고 우리들은 빠르게 동굴에서 나와 처음 차를 주차해 두었던 주차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기념품은 챙겨놓은 것 봐.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목숨보다 기념품이 중요한거냐며 가지가지한다는 눈으로 봤을껄"
"가지가지 하니까 갑자기 가지 생각납니다"
"엑, 전 가지 별론데요"
"가지 싫어해?"
"그 물컹한 느낌이 싫어요. 시설에 있었을 때 반찬으로 나왔었는데 그때도 별로 안좋아했고요"
"그거야 맛있는 가지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사건이 끝나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특이할것 없는 잡담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아까 있었던 일을 잊기 위해 떠들었다.
그나저나 저녁은 뭘 먹는게 좋으려나. 고기냐 생선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저도 원래 야채라면 별로 안좋아합니다. 하지만 몇개 좋아하는게 있다면 그 중 하나가 가지입니다"
"아주머니는 가지 좋아하세요?"
"예전에는 안먹었지만 그이가 워낙 요리를 잘해서 그렇습니다"
"내가 우리 마누라한테 야채 먹이려고 한 노력을 생각하면 상상을 초월할껄. 1,200년 단위가 아니야"
시온은 편식은 하지 않기에 가리는건 없지만 선호하는게 없는건 아니다. 야채가 들어간 요리를 안먹는건 아니지만 야채보다 고기를 더 좋아하기에 예전에는 고기만 먹었다.
그나마 내가 어떻게든 야채를 먹이려는 시도를 해서야 지금에 이르렀다. 수백년에 걸친 식이요법 대성공이다!
한번에 고기 세점 들어서 쌈장에 찍어먹기만 하는 상황에서 고기가 두점으로 줄고 쌈을 싸서 먹을 뿐이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야채를 어느 정도 먹긴 한다.
가지도 그 노력의 일부다. 야채 맛있게 먹이려고 내가 얼마나 손을 썼는데!
"특히나 가지 튀김은 맛있습니다. 물컹한 식감 때문에 먹기 싫다면 가지 튀김은 먹을 수 있을겁니다. 튀겨서 수분이 날아가니 물컹한 식감도 사라져서 고소하고 맛있습니다"
"가지 튀김.....솔직히 튀기면 신발도 맛있다고 하지만 가지 튀김은 진짜 튀김 중에서 새우에 버금가는 재료지. 만약 둘중 어느거 먹을래 하고 물어보면 나도 어느걸 고를지 한참 고민해야 할 정도로"
"그렇게 맛있어요?"
"개인적으로 짜장 이랑 짬뽕 수준의 박빙이야"
"그러면 한번 먹어보고 싶네요. 아저씨는 요리 잘하니까 엄청 맛있을것 같아요"
"나중에 날 잡고 만들어볼까. 가지 요리 특집으로 하면 꽤 괜찮을것 같은데"
가지는 무쳐 먹어도 맛있고 말려 먹어도 맛있고 튀겨 먹으면 제일 맛있는 재료다. 이렇게 활용할 수 있는 재료도 솔직히 몇 없다.
요리사로서는 편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까다로운 재료기도 하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으니 더 맛있게 만드려면 궁리를 해야하거든. 하지만 개인적으로 추천하는건 역시나 가지 튀김. 그리고 그 가지 튀김에 소스를 얹은 어향가지 같은 식의 요리다. 크으으, 술 땡긴다.
"그나저나 저녁 뭐 먹을래? 들어가서 먹어도 괜찮긴 한데 그래봤자 장 보러 들어가기도 그래서 남은걸로 밥 먹을테니까 밖에서 먹는게 나을텐데"
"음, 솔직히 뭐 먹을지 딱히 생각해둔게 없어서 잘 모르겠어요"
"샤브샤브는 어때?"
"그건 이미 지난번에 저희들끼리 쇼핑 갔을 때 먹었습니다"
"그러면 뭘 먹는게 좋으려나"
돌아가는 길에 곱창집 하나 있으니까 거기 갈까? 전에 시온이랑 먹기는 했지만 예진이랑 먹은건 아니니까. 아, 요즘 애들이 곱창 먹을 수 있나? 잘 모르겠네.
친구는 아니지만 형식이가 아는 사람 중에 어머니 쪽이 결벽증이 있어서 내장류를 못먹기 때문에 순대도 못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떡볶이야 먹을 수 있지만 순대를 못먹는다니.....그렇다는건 순댓국이나 그런것도 똑같을거 아니야. 그 맛있는걸!!!
그런거 생각하면 요즘 젊은 애들이 곱창 같은거 먹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개인 취향이라서 징그럽다고 안먹을수도.
"전 그런거 잘 먹는데요? 돈 없을 때는 애들이랑 같이 국밥집 가서 밥 먹기도 했거든요"
"하기사, 국밥이 가성비가 죽이긴 하지"
심심할 때 동네 국밥집 가서 아무거나 하나 시키고 소주 한병 때려도 보통 만원 안팍이다. 밥만 먹으면 5000원에서 위아래를 오간다. 돈 없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좋은 가게가 국밥집니다. 배고프고 시설 출신이라 용돈도 별로 없는 애들이라면 더더욱.
나도 종종 시설에서 받은 용돈 들고 시장에 있는 순대국밥집 가서 밥을 먹고는 했다......그러고 보니 내가 자랐던 시설은 요즘 어떠려나.
"국밥이라. 적당히 밥 한끼 먹기에는 딱 좋긴 합니다만"
"뭐야, 기왕 나와서 국밥 먹고 들어가려고? 먹는거에 가성비 따지는 성격은 아니였잖아?"
"간만에 국밥 먹는 것도 나쁘진 않아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꽤 예전에 먹을것 같아서 갑자기 땡기기도 합니다"
"그럼 저녁 메뉴는 결정 됐나"
그냥 국밥 한그릇만 먹기도 그러니까 가서 다른 것도 시키자. 정말로 싼 국밥집이 아닌 이상 국밥 외에도 다른 메뉴는 있다. 주로 수육같은거. 만약 순대국밥을 판다면 따로 부속고기 세트도 있을 것이다.
"찾아보면 맛집도 있겠지만 근처에 괜찮은 체인점 같은 국밥집 있으면 거기로 가볼까"
"국밥 먹느니 그 돈으로 국밥 사먹겠습니다"
"으아아악! 국밥충 꺼져!"
먹을거 먹는데 가성비를 따질거면 세상에 국밥이나 라멘이나 카레나 딤섬만 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