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65화 〉[라쿤맨 비기닝] (162/507)



〈 165화 〉[라쿤맨 비기닝]

불금이 지나고 맞이하는 아침은 기분이 좋다. 주말의 시작이자 휴일이기 때문이다.


백리도 오늘은 휴일이니까 쉬겠지. 크으으, 자영업자에게 휴일은 아무 꿀물이나 다름없다. 아, 지금 난 아니구나.


아무튼 아침에 나갈 준비를 했다. 대충  길은 외워도 뒀고 핸드폰 네비에 주소를 저장도 했으니 여차하면 그거 보고 가도 된다.

"여자가 두명이라 시간이 좀 걸리네"

우리 집 욕실은 두개다. 나와 시온이 쓰는 부부침실 쪽에 하나. 그리고 거실 쪽에 딸린게 하나. 그래서 두명이 동시에 씻을  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음.....내가 여자로 환생했을 때도 머리 감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지만  정도까지는 아니였는데. 만약 욕실이 하나였다면 이 두배쯤 걸렸을테니 못해도 한두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했을것 같다.

이해를 못하는건 아니지만 외모는 가꿔봤자 어차피 죽으면 끝이다. 반대로 울 마누라 같은 경우는 평생 미모에 변화가 없을테니까 상관없다.


"준비 다 됐습니다"

"뭐야, 간만에 외출인데 성인 폼? 요즘 너무 자주  모습 쓰는거 아니야?"

"예진 학생이 있어서 그런겁니다"

".......?"

문득 시온이 디폴트 폼으로 같이 외출하면 어떻게 보일까 생각해 보았다.


일단 나랑 시온이 단 둘이 있는다면 수상한 남자와 같이 있는 예쁜 외국인 여자아이 같은 엄청나게 불안하고 수상쩍은 모습이지만 예진이가 같이 있으면......외국인 여자아이를 데리고  젊은 부부? 대충 그런 느낌이다.


어린애 취급받기 싫어하는 시온이라면 확실히 디폴트 폼보다 성인 폼을 선호할 것 같다.

"제가 왜요?"

"저야 디폴트 폼이더라도 외견만 불법이지 호적상으로는 합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진 학생은 겉으로나 호적상으로나 불법입니다"

"경찰 아조씨가 이놈 하고 잡아갈 가능성이 만땅이지. 솔직히 어딜 가도 눈에 띄니까 기왕이면 트집 잡힐게 없는게 좋으니까"


"아주머니가 예뻐서 고생이시겠어요"


경찰한테 걸려서 심문 당한게 한두번이지. 몇달 전처럼 다짜고짜 납치범으로 몰려서 수갑 찼던것 같은 일이 상당히 있다. 문명이 발전해서 치안 유지가 꽤 잘된 세계라면 당연한 일이다.

자기 일 하다가 오해 생긴건데 나도 나름은 이해해 줘야지. 근데 미국 같은데서 난데없이 총맞으면 기분이 참 더럽다.

이래서 총 없는 나라가 좋다니까. 최소한 지나가다 총 맞고 초월자 커밍아웃 할 일은 없잖아.

"스타렉스! 짱짱한 탑승 인원! 존나 넓은 내부! 짐칸 개큼!!!"

"효율주의자도 아니고 뭐 그렇게 발광합니까"

"난 원래 많이 타고 넓은 차를 좋아해. 버스 기사 같은 것도 생각해본적 있는데 생각외로 더러운 꼴 많이 볼것 같아서 포기했거든"

전에 여름 휴가 갈때 탔던 스타렉스를 상가 주차장에서 끌고왔다. 크으으, 이 승차감! 람보르기니랑은 다르지!

폼나기에는 람보르기니가 짱이지만 편의성을 따지만 람보르기니보다 스타렉스가 더 위인게 당연하다. 겨우 2명 탈  있는 차하고 12명 탈 수 있는 차하고 같겠냐?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가족 여행 갈 때 이 차만큼 든든한건 없다. 캠핑카 수준은 아니더라도 며칠 여행갈 때 가지고 갈 물건을 걱정할 필요가 없으니까.

"점심은 거기 가서 먹자. 식당이던지 아무거나 있을테니까 기왕이면 가까히 있는데서 먹는게 편하니까"


"맛은요?"

"원래 관광지 음식은 평타는 치더라"


광고까지 하던 관광지라면 손님들 때문이더라도 식당 요리 퀼리티 정도는 신경 쓴다. 그렇지 않으면 사먹을리기 없으니까.


하다못해 거기 주변에 장사 하러 나온 푸드 트럭이라도 있을껄? 내가 장담한다. 원래 요식업계 종사자들은 척하면 척이라고.

주말 아침이라서 그런지 출근 시간대에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오늘 같은 날에도 출근하는 사람은 있겠지만......크윽, 불쌍하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불쌍한 이여. 그대들의 근무는 추가수당으로 보답받을지니"

"중소기업은 그런거 없습니다"

"그건 사장이 나가 뒤져야 하는거고"


우리 (주)시온은 수당 때문에 자발적으로 야근도 하고 있다. 그래서 꽤 진도가 빨라서 아마 이번달 내에 어느정도 결과가 나올것 같다. 나중에 가면 베타 테스터 모집이라도 해봐야 하는거 아닌게 모르겠네.


아무튼 간만에 편하게 운전하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람보르기니는 평소에 타고 다니면 어디서 긁힐지 모르니까 조심스럽게 운전할 수밖에 없지만 스타렉스는 아니니까.


기스 난걸로 수억 가는 차하고 박살나도  돈으로 몇대는  살 수 있는 차하고 같냐.


"우리 남편이 성능충이였다니"


"아니, 누가 성능충이야?! 나는 아무리 쓸데없는 캐릭터라도 애정 하나만으로 키우는 사람이라고!"


동굴은 광명역을 지나야 해서 중간에 코스트코도 있을거다. 음......가성비는 괜찮은데 우리 회원가입 했던가? 아니면 거기 가서 회원가입 바로 해도 되겠지 뭐. 돌아가는 길에 들러도 나쁘진 않겠다.


잡담을 나누면서 가다가 예진이가 중간에 끼어들어서 차를 멈추게 했다.


"아, 잠깐만요. 여기서 세워주세요"

"왜? 동굴 쪽은 여기서  더 가야 하는데? 아직 광명역에도 도착 안했어"


"여기에서 바로 갈 수 있는게 있데요. 코끼리 버스 운영한다는데"


"거 참 언제 들어본 추억의 단어냐. 놀이공원 같은데 가봐야 있지 않아?"

"저번에 잠실 놀러 갔을 때는 못탔습니다"


"거긴 실내라서 그런거고"


야외에 위치한 놀이공원이라면 편의성을 위해 따로 표를 팔아서 운영하는 이동수단 하나쯤은 있다. 여기도 마찬가지인걸 보면 나름 운영은 잘 하는 모양새다.

그거 때문인지 근처에 주차장이 있었다. 무료는 아니였지만 시립이라서 그런지 나름 주차비는 쌌다. 나갈 때 동굴 입장권 있으면 할인도 되니까  거기 가라고 만들어놓은 느낌이다.

"표지판 보니까 저쪽인것 같은데. 걸을 수 있겠어? 오늘따라 힐 신고 나오고. 동굴 같은데 가는데 복장이 너무한거 아니야?"

"이 정도는 되야 보호자 느낌 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도 나름 여자니까 힐 정도는 문제가 안됩니다. 한겨울에도 미니스커트를 입는데 고작  정도는 가뿐합니다"


시온은 치마 부분에 레이스가 달린 푸른 바탕에 꽃무늬를 장식한 롱 원피스를 입었다. 거기에 검은색 하이힐은 덤.


평소에 잘 신지 않는거지만 오늘따라 신으니까 각선미가 돋보인다. 예진이도 포스 유저라  미모 하기에 나랑 둘이 붙어 있으면 젊은 부부로 보일지도 모르는데 시온이 있으니 오히려 예진이가 앳되어 보인다.


작은 백 하나 들고 어께죽지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넘기니까 모델이 따로 없었다.


"저도 반에서는 인기 많은데 아주머니 보면 자괴감이 들어요"

"외모로 초월자 비교하는건 아니야. 보통 초월자는 외모가 개쩔거든"


"근데 아저씨는 왜 그래요?"


"뜬금없이 뼈를 때리니까 가슴이 아프다......."

"아! 죄송해요! 진짜 그런 의미로 물어본게 아니라 궁금해서 물어본거였어요!!"

".......난 영혼 레벨로 이 모습이 디폴트라서 그런거야. 그나마 옛날에는 더 인상이 나빴어"


사람 하나 죽일것 같은 외모랑 눈매만 더러운거랑 비교하면 지금이 장족의 발전을 한거나 다름없다. 솔직히 눈만 가리면 외모는 평범하니까.

표지판을 따라 산 쪽으로 걸어가니까 매표소에 더불어 사람들도 많았다. 주로 어린애와 같이 가족들끼리 오거나 커플들끼리  사람들이 많았다.


후......가족끼리 왔다가 기분 나빠질 일은 드물겠다. 설마 가족이나 여친이랑 왔는데 수작부리는 개새끼들은 없을테니까.


"3명이면 6000원입니다"

"청소년도 가격 똑같아?"


"어린애만 따로 1000원이고 나머지는 다 2000원입니다"


"싸긴 한데 할인이 박하군"

"요즘 애들은 어지간한 성인보다 몸무게  나가는 사람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왜,  절 보세요?! 저 몸무게 많이 안나가거든요?!"

"근육이랑 가슴 생각하면 못해도 50킬로는 넘....."


"꺄아아아아!!"


여자애의 몸무게는 프라이버시니까 넘어가도 포스 유저라서 생기는 근육이나 발육을 생각하면 40킬로대는 훨씬 넘는다. 예진이는 못해도 50, 많으면 60킬로대라고 생각되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균형잡힌 몸매와 키가 있어서 그렇게 살쪄보이지 않는다.

줄을 서서 표를 구매했다. 코끼리 열차는 배차 간격이 15분 정도로 그리 길지 않았지만 기다리는데 의외로 시간이 느리게 갔다.

"원래 기다리는 시간은 느린 법입니다"

"요즘 버스도 어지간해서는 배차 간격이 10분 안팍인데 너무한거 아니야?"


"수지타산 생각하면 이 정도가 딱 좋은 모양입니다"

"이럴 시간에 걸어가는게 낫겠다. 예진이 너도 포스 유저니까  킬로미터 정도는 그냥 걸을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아주머니가 결사반대 할걸요"


"제 체력은 평범한 성인 여성보다 좀  좋은 정도입니다. 그리고 멀쩡하게 문명의 이기를 놔두고 산 타는 취미는 없습니다"


"저기 산책로도 있다"

"........"

"악! 아파! 내 옆구리! 악!"

시온이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니, 그거 은근히 아퍼. 하지마.


예진이는 그런 우리 두사람의 모습을 보고 웃었다. 예전에 아틀라스 실험실에서 구출해온거 생각하면 밝아진것 같아서 마음이 놓인다. 애들은 역시 웃어야 제일 좋은 법이다.


"아, 열차 왔어요"

"저 정겨운 모습은 운영하는 곳에 달라도 여전하구만"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는 효율 쩌는 차량입니다"

"어? 그러네?"

"탑승 인원 생각하면 확실히....."

그만큼 기름값은 많이 들겠지만 탑승할 수 있는 인원을 생각하면 그 기름값은 별거 아니다. 못해도 수십명은 타는데 기름값이 대수냐?

버스 기사를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이런 버스 기사면 나쁘진 않을것 같은데. 운행중에 트러블 생길 가능성도 적고.

아무튼 열차에 탑승했다. 한 열에 5명씩 앉을  있는 차량에 10줄씩 해서 한칸. 그게 2칸 늘어서 있으니 총 100명이 탑승할 수 있었다. 아마 애들 생각하면 더 탈 수 있을것 같기는 한데 솔직히 그만큼 사람들이 몰려있지는 않았다.

아직 아침이라서 그런가? 나중에 시간 지나면 더 올 가능성이 높다.

"옛날 추억 생각나네. 예전에 놀이공원 갔을 때 부모님 손 잡고 코끼리 열차 타고 공원 시설까지 이거 타고 올라갔거든"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예요?"


"엄청 옛날에. 나 환생 1회차 때. 그때 있던 부모님은 물론이고 동생들도 다 죽었지"


"아, 음......죄송해요"

"괜찮아. 어차피 사람 죽는건 당연한 일이니까. 지난 일로 별로 신경 안써"

나는 추억을 회상하기는 해도 슬퍼하진 않는다. 초월자가 아닌 이상 사람은 언제나 죽을 수 밖에 없고 지금의 나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많이 겪었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시온 정도일까.

이럴  보면 시온이 수명 없어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환생해도 끊어지지 않고 다음으로 이어지는 인연이란건 더없이 소중하다.

동굴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주변의 경치도 구경하고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산을 타며 올라가니 도착하는건 금방이였다.


"오, 은근 사람이 많네. 아침인데도 많은거 보면 인기는 어느정도 있나 보구나"


"가까워서 구경하기 좋은 관광지라 그런거 아닐까요?"


"외국인도 좀 있네"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아, 가장 가까이에 한명 있었구나. 깜빡했네.....아, 잠깐만. 넌 외계인이잖아!"


"겉모습은 외국인입니다"

"그럼 난 겉모습은 인상 더러우니까 마피아냐?"


"거기 소속이였던 적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마누라가 마피아였던거지 내가 마피아인건 아니고"


"부부는 일심동체입니다"


"아, 그건 인정"

"두분 다 속이 느글느글 해질 것 같은 꽁냥꽁냥은 그만하시고  내리시죠?"

"남친 잘 사귀십시오, 예진 학생"

"지금 남친 없다고 시비거는거 아니죠?!"


"저에게는 묵비권을 행사할 권리가 있습니다"


"에이씨! 확 백리 오빠랑 사귈까보다!"


"그건 안돼!!! 초월자까진 아니더라도 납득할 정도의 쌘놈 아니면 내가 납득 못한다!!!"


"아니?! 거기서 팔불출이?!"

열차의 문이 열리고 우리들은 바로 내렸다. 근처에 매표소가 있어서 바로 그쪽으로 향해서 표값을 확인해 보았다.

일단 성인은 6000원이고 청소년(예진이)은 3500원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광명 동굴이 있는 광명시에서 살고 있다면 그 반값인 3000원과 1800원으로 입장이 가능하다.

안타깝게도 우리 집은 광명시가 아니라 서울시에 속하는지라 그 혜택을 받을  없다. 흠, 광명시 사는 사람들은 좋겠구만. 이럴 때만 주어지는 혜택이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일단 표는 샀고. 들어가면 되는데 동굴이 어느 쪽이야? 표지판도 잘 안되어 있네"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안내해줘서 겨우 길을 찾아갈 수 있었다. 가까워서 그런지 표지판도 설치하기 아까웠던거냐. 어째 불친절하네.


아무튼 여기는 산 중간쯤으로 보이는 위치다. 고개를 들어보면 정상이 눈에 보일 정도라서 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저 아래에 보니까 따로 무슨 시설 같은 것도 있습니다"

"아래쪽은 주차장 아니야? 아, 진짜 시설 같은것도 있네? 나중에 내려가보자"

차 가지고 왔다면 아마  쪽에서 주차하고 영락없이 여기까지 걸어 올라왔을 판이다. 나야 상관없는데 우리 마누라가 피곤해서 문제지.


직원이 안내해준 길을 따라서 가지 중간에 꽤 괜찮은 시설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뭔가 공연을 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스테이지라던가, 아니면 경사에 만들어놓은 작은  같은 시설이라던가 말이다.


특히나 강 같이 만들어놓은 수로에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날씨가 시원하긴 하지만 아직 햇빛이 강하기 때문에 애들이 참 잘 놀고 있었다.

"애들은 귀엽습니다"

"그치?"


".....저도 하나 가지고 싶습니다"

"그건 나중에"

"아! 저기 동굴 입구 보여요!"


예진이의 말에 길 끝을 올려다보니 동굴이 보인다. 거기에 다다르니  동굴 입구가 눈에 보이고 거기서 시원하다 못해 추운 한기가 불고 있었다.


만약 여름이 왔다면 에어컨도 따로 필요 없는 피서지지만 하필이면 가을이라 추운 것 밖에 안됐다. 겨울에 왔으면 큰일나는거 아니야? 얼어 죽겠다 야.

우리들은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표를 내밀고 안으로 입장했다. 어둡긴 하지만 그거야 초반만 그런것 같고 천장에서 비추는 빛이 우리가 가야할 길을 비춰주고 있었다.


"와,  잘 꾸며놓은 것 같네요. 그러고 보니까 안에는 와인이나 젓갈 같은 것도 판데요"

"아니?! 그걸  이제야 말해?!"

와인이랑 젓갈이라고? 먹을거라면 내가 사족을 못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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