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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0화 〉[라쿤맨 비기닝] (157/507)



〈 160화 〉[라쿤맨 비기닝]

내가 예전에 이야기한 절대자란 존재에 대해서 기억하는 사람은 알고 있을 것이다.

태초에 의지가 있었고,  의지에서 절대자가 탄생했다. 그 당시에는 의지 외에는 정말 아무런 개념도 없어서 절대자들이 모여 힘을 사용해 세상을 창조해냈다.


요컨데 절대자란 신이나 마찬가지다. 오히려 인간의 상상에 기반한 신보다 훨씬 더 전능할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절대자란 존재는 강함도 강함이지만 그 위치가 다르다. 가장 약한 절대자만으로도 능력 사용 없이 언령만으로 세계를 복속시킬 수 있다.

지금 그녀가 마음만 먹는다면 별을 박살내는 것도, 반대로  몇개 만들어내는 것도 쉽다.

무엇보다 운명에 절대자는 내 상사이기도 하다. 정확히는 이쪽 파벌의 상사.

"나는   얼굴 보러오면 안되는거야?"

"거 참 낯짝도 참 두껍다. 한 일이 있는거 알면 나 같아서는 부끄러워서 짜져있을텐데"

"그런거 신경 안쓰는 타입이거든"


"아, 그래서 팬텀이 쫒아온다는거 무서워서 정보 교란까지 하고 그래?"


운명의 절대자. 이름은 페이트 더 데스티니. 흔히 페이트라고 불리지만 이름을 부를만큼 친한 사람은 별로 없어서 보통은 운명의 절대자라고 불린다.


그녀의 이름으로 부르는건 성격 좋은 창조의 절대자나 우리 사천왕 중 최강인 시작과 기원의 절대자 정도다. 님 태초부터 살아왔는데 인간관계 엄청 좁네요.


아무튼 운명의 절대자는 전 차원적으로 쌍년이다. 운명이라는 개념의 주인이라서 그런게 아니라 하는 짓이 영 별로거든. 솔직히 나도 빡칠만한 일이 몇몇 있는데 참고 넘어가는거지.

"댁 얼굴 보는건 간만이네. 나도 환생 10회차 전으로는 본적이 없었는데. 얼마만이지?"


"네 시점으로는 대충 1200년 정도네. 그런데 초월자라도 평균 사망 나이가 120살인건 너무 적지 않아?"

"그만하면 살거 다 살고 누릴거 다 누리고 사는구만 뭘. 그리고 그보다 훨씬 전에 죽은 적도 있고, 더 많이 산적도 있어서 괜찮아"

나라고 젊을 때 죽는건 싫지만 가끔 가다 그런적이 있다. 대표적으로 예전에 심판의 절대자 그레이한테 죽었을 때가 20살인가, 30살인가 그랬을거다.

하지만 그래도 보통 평균 나이는 100살 안팍이다. 대충 인간 수명 비슷하게 살다가는 편이다.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무슨 일로 왔어?"


"잠깐 경고 좀 해주러"


"무슨 경고?"

"예상 외의 변수가 끼어들었거든"

변수?

보통 그녀가 변수라고 칭할만한 것은 별로 없다. 기껏해야 나나 나이트로드인 최길현처럼 가능성의 특이점인 녀석에게나 듣는 말이다.

내가 2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로드급이라고 취급하는 것 처럼, 로드는 2개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자는 3개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능력 중에서 하나로 운명의 절대자는 이 세상의 모든 운명을 계산할 수 있어서 그녀의 예측을 빗나갈 존재는 없다.

그녀가 직접 변수라고 부른다면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데 말이야......

"그게 뭔지 직접 말해줄 생각은 없지?"

"당연하지"


"아주 지랄을 납셨네"

그녀는  상사이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내가 환생자로서 환생을 거듭하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자살해서 이 윤회를 끊을 수는 있지만 환생 자체를 막는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지옥행 프리패스기도 하고, 가끔 가봐야 견학이다. 전에 염라대왕이 그녀한테 굽신대는 것도 봤다.


왜 저런 존재가 나 같은것에 관심을 가질까 생각해보지만, 그럴 때마다 나오는 대답은 '장기말이니까'라는 단순한 이유였다.

나 정도 되는 초월자도 기껏해야 장기말이다. 아, 물론 사천왕이긴 하지만.

"조심하는게 좋아. 변수가 너무 커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거든. 되도록이면 나대지 말고"

"댁이 할 소리냐"


"그리고 사람  작작 죽이고"


"오 시발 존나 많이 죽여서 인과율 계산 다시 하면 존나 재미있겠다. 그치?"

인간의 운명을 짓는만큼 죽이면 다시 다음 생이 있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당장 지구의 전 인류를 죽이면  운명을 다시 계산할  밖에 없다.

물론 그래봤자 잠깐 고민하고 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의 인구가 70억 정도인데 그거 전부 죽였다고 해서 그녀가 머리아파질 일은 없다. 우주에서 봐도  정도 숫자는 별거 아닌데 차원적으로 보면 얼마나 작겠어?


"그나저나 저번에 나타난 블러디어 제 7군단장 루루. 그년을 부른건 당신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걸"


"지랄 이단 옆차기 하고 앉았네. 아무짓도 하지 않았겠지만 인과율 조정해서 일부러 이쪽으로 오게 만든거 모를줄 알아?"


차원진이 담벼락에 구멍 뚤려서 거기로 나쁜 사람이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결국에는 그 집을 발견해야 들어오던가 말던가 하는 법이다.

루루 정도의 초월종이 난데없이 지나가다가 발견했다고 보기에는 누군가 손을 썼다는 편이 확률적으로 더 신빙성이 있었다.


"킹 블러디어도 눈치 깠어"

"어머, 그래?"


마지막에  블러디어는 나에게 운명의 절대자가 무엇을 꾸미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모르는척 하긴 했지만......지금 생각해보면 앞으로 그녀가 할  뿐만이 아니라 루루가 이 지구에 온 것도 함께 이유를 물어본 것일 가능성이 높다.

킹 블러디어는 원본이 원본인지라 머리도  굴러가니까.

"블러디어를 적으로 돌릴 생각이야? 차원종을 적으로 돌리면 빡센데"

"그런 변수를 끼워넣을 생각은 없어. 그건 어디까지나 너를 위해서였으니까"


"너무한거 아니야? 아무리 요즘 어지간한 상대로 경험치가 쌓이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다짜고짜 블러디어라니?"

"이미 로드를 상대로 싸워서 이겼으면서 엄살이 심하네"


"그거야 그 새끼가 등신이였던거고"

"로드는 아무리 못나도 로드야. 절대자가 되기 바로 전 단계의 초월자라고. 그런 초월자를 죽였다는건 그만한 실력이 있다는 반증이야"


나는 환생자가 되었을 때부터 그녀의 장기말이였다. 특히나 쓸모가 있어질 정도로 키워지기 위해서 종종 트러블을 맞이한다.

생각해보면 여태까지 내가 만난 인연이나 사건 사고들은 전부 그녀가 만든 안배일지도 모른다. 진짜 어디까지가 의도적인건지 모르겠다니까.


이번의 루루와 싸운 것도 아마 나를 성장시키기 위한 발판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경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내가 역경을 맞이하고 그걸 넘을수록 나는 좀 더 쓸만해지는 장기말이 된다.

지금도 환생 초창기랑 비교하자면 폰이 체스판 끝까지 가서 프로모션으로 퀸으로 바뀌는거나 다름없다. 진짜 이능력 하나 모르던 시절이 비유한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나저나 님 취향 참 이상하네. 나 같은거 말고도 로드될 가능성 있는 놈들 몇명 키워서 구슬리는 편이 낫지 않아?"

"지금으로도 로드를 죽였던 네가 로드에 이르면 얼마나 강해질거라고 생각해?"


"거 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적다니까"

"가능성의 특이점이 그렇게 말해봤자 설득력이 없어"


운명의 절대자는 우아하게 조각 케이크를 포크로 잘라 먹었다. 옆에서 사진을 찍으면 거의 화보가 나올것 같은 모습이지만 나는 보기만 해도 극혐이다.

난 막 뒤에서 수작부리는 흑막같은 애들 별로더라. 차라리 '좋아, 내가 직접 나서겠다'같은 대사를 치고 금색 건틀렛 끼고 인피니티 스톤이라도 모으고 다니면 또 모를까.


"내가 로드 일보직전이라도. 제일 중요한게 부족하니까 오르지 못해"


"반대로 그거 외에는 전부 충만한 상태잖아?"

"결정하는데 시간 존나 오래걸릴껄"

로드(Lord)란 초월자의 경지 중 하나. 종의 한계를 벗어나고 영혼과 육체의 의미가 없어지는 경지다. 스스로 영혼을 파괴하는 행위 외에 내가 환생에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면 그건 로드가 되는 일이다.

권한이 달라지기에 가지는 힘도 다르다. 지금의 나는 기껏해야 육신으로 발휘하는 힘 정도지만 로드에 이른다면 온갖 이치와 진리를 다룰 수 있다.


솔직히 나는 로드에 언제 올라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지만, 가장 중요한게 빠져 있었다. 그걸 만족시킬 수 있을 때까지는 오를 수 없다.


그걸 이미 성급하게 결정지어서 불완전한 초월자가  녀석을 알고 있으니까.

"한두해 고민해서 될 일도 아닌거 가지고 너무 재촉하지 맙시다. 오케이?"

"보통은 살면서 자기가 깨닫는걸로 결정하기 마련인데. 너는 오히려 너무 인간다워서 문제구나"

"양자택일 극단적이야 넌~, 너무 긴장 하지 마라~"


"가끔 생각없이 내뱉는 말을 보면 행동은 예측할 수 있지만 정신 세계는 예측할  없다는게 나도 한계가 있다는걸 느낀다니까"


 내가 이런거에 뭐 보태준거 있수?

아, 인과율 보정 해줬구나. 하기사 운명의 절대자가 아니였으면 예전에 워 로드와 싸우다가 뒤졌을게 뻔하다.

전쟁이란 개념을 반신 삼아 초월자가 된 녀석은 다수에게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앞에서는 상성이 나쁘다. 다른 로드였다면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게 뻔하다.


......한편으로는 의문스러운게 있다. 전 차원을 뒤져도 수십밖에 없는 초월자도 경험치로 삼아서 날 키워서, 도대체 어디에 써먹을 생각인지 말이다.


나는 그녀의 밑에 있지만 그녀의 생각을 전부 아는건 아니다. 킹 블러디어가 물어봤던 말에 모른다고 대답했던 것도 사실 진짜로 몰라서 그런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다.

과정을 모르는건 아니다. 결과를 모를 뿐이지.

아마 그녀의 계획을 알고 찬동하는건 우리 사천왕 중에서 창조와 기원의 절대자, 그리고 위즈덤 로드 정도다.

"슬슬 가봐야겠네. 커피랑 케이크는 잘 먹었어. 너도  아이랑 오붓하게 지내야지"


"온 타이밍 봐서는 이미 한거 알고 온것 같은데 아냐?"

"글쎄?"

"아, 좀 이런데서 능청 떨지 말자. 남 부부 생활에 그렇게 관심 가지면 민폐야"


"내가 그런거 신경 쓸것 같아?"

"응, 느금마"

"애초에 부모 없이 태어난 우리들에게 그런 욕을 해봤자 웃기지도 않아. 화도 안나는걸?"

"태초부터 살아온 거기에 거미줄  노처녀"

"............"

아, 이건 도발 성공했군.


"도발 실력은 초월자 중에서 최강이라니까.....가기 전에 하나  해두고 갈까. 네가 이번 생에서 친하게 지내는 아이 있지?"

"누구? 백리?"


이번 생에 한정해서 내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몇 없다. 그 중에서 아이라고 표현한다면 나보다 나이가 적을거고. 그러면 백리나 루리 밖에 남지 않겠는데 묘하게 루리가 아니라 백리라는 쪽에  확신이 기울여진다.


"잘 대해줘. 그 아이의 선택이 꽤 막중하니까"

"아니, 왜 하필 백리야? 걔는 엄청 평범하더만"

"운명이란건 본인의 능력과는 상관없는 법이야. 저항해도 결국에는 들이닥치는 법이지"

남을 이용하고 써먹다가 쓸모 없어지면 버리는 더러운 성격이지만 내가 그녀를 따르는 이유는 하나다.

이 일을 대가로 시온을 받았으니까.


인간이였던 시온이 하논으로 환생하고, 수많은 차원에서 하필이면 나와 만나서 결혼을 하는데는 결고 우연으로는 볼 수 없다. 성격도 맞고, 수명도 의미가 없는 그녀 자체가 내 일에 대한 보수다.

선불로 받았으니 값을 치를 때까진 일을 해야지. 그 뒤에는 손절각이지만.

"거의 근처까지 왔네.....생각보다 빠르지만 예상한 범위 내야. 그러면 나중에 보자"


키득키득, 어린애처럼 웃지만 기분 나쁜 느낌이 한가득 드는 웃음 소리와 함께 그녀는 뒤에 갈라진 틈새로 넘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겨우 몇초 후에 바닥이 그림자로 물들어 꿀렁이면서 누군가 솟아 올랐다.

[그 쌍년 어딨어?]


"남의 집 올때는 초인종부터 누르고 오지 그래?"

[아, 네 신혼집이였냐? 미안하다]


저번에 가이아 교 사건으로 만난적 있던 팬텀이 귀신같이 뒤쫒아왔다.

하기사 운명의 절대자 때문에 자기 마누라가 죽은적 있다면 개빡칠만도 하지. 만약 시온이 그년 때문에 죽으면 나도  생각 안하고 덤벼들거다.

운명의 절대자는 저렇게 만들어둔 적이 엄청나게 많다. 그중에는 초월자도 많아서 절대자라도 지금까지 살아있는게 용할 정도다.

"이미 한발 늦었어. 벌써 돌아갔거든"

[염병, 출력이 위인데 기술에서 밀리나. 옛날부터 이거 때문에 개고생을 했는데]

"이래서 재능충은 안된다니까"

[뭐 임마]


팬텀은 정말로 비상식적인 재능의 소유자다. 수백, 수천년을 살아도 로드에 오르지 못한 사람도 있지만 그는 서른이 되기 전에 로드에 오른 괴물이다. 단지 속성으로 경지만 높여서 지식이나 경험적인 면에서는 부족하다.


진짜 로드라는 경지가 어느정도인지 모르면 와닿지 않는다.

[그년이랑 무슨 이야기 했냐?]

"그냥 잔소리나 조금 하던데? 아, 지금 생에서 알고 지내는 동생보고 잘 대하라는 말도 하더라"

[그것만?]

"응, 그것만"


변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으로서는 나도 모르는 일이니까.

팬텀은 혀를 찼다. 아니, 전신을 개념화해서 어둠으로 물들이고 겉모습만 인간 형태를 취하는 주제에 혀가 있는건가 싶지만 대충 느낌상 그랬다.

[간만에 처 나왔다 싶었더니 놓쳤나. 하던 것도 끊고 나왔는데 개빡치네 진짜]

"똥 싸다 나옴?"

[부부 생활 하다 나왔다 새꺄]


"아, 그 기분 참 좆같지......돌아가면 바가지 긁히겠네"

[친정 안간다고 하는게 어디냐]

"형수님들 친정 없......아니, 이 드립은 했다간 내가 좆되는 수가 있군"

[잘했다]

"뭐래, 이 드립의 원조 주제에"


옛날에 같이  마실때 형수님한테 이 드립 쳤다가 심하게 고생한 팬텀의 이야기를 들은게 지금도 생각난다.


그래서 나도 가끔 비슷한 드립 나오면 자동으로 멈춘다. 고마워요 패드립의 수호신 팬텀! 아, 어감도 은근 맞네.

그때, 막 씻고 나온 시온이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도 옷은 입고 있어서 불상사가 생기진 않았다.


그녀는 팬텀을 보고 나름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아, 당신입니까. 꽤 간만입니다"

[안녕하세요, 제수씨]

"그이가 또 뭐 잘못했습니까?"

[아뇨, 개인적으로 좀]

"남의 집 올 때는 초인종부터 누르는게 좋지 않습니까?"


[......아, 그건 죄송합니다]


팬텀은 나름 말이 통하는 초월자라서 예의를 안다. 인간미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했다는걸 알면 가진 힘이 있어도 억지를 부리지 않았다.

그래서 파벌이 다름에도  친하게 지내는거지만.....일단 나는 그와 잠깐 이야기를 하기 위해 따로 나가기로 했다. 집에서 이야기 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일단 나가자. 좋은 치킨집이 있으니까 거기서 이야기 하자고"

[난 먹을거에는 까다로운데]

"퍽이나"


나도 마찬가지거든?

대마왕.


요리 잘함.


드래곤 싫어함.

어디서 많이 본듯한 초창기 판타지 소설 주인공 설정 같은 주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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