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57화 〉[라쿤맨 비기닝] (154/507)



〈 157화 〉[라쿤맨 비기닝]

 조절 잘못한듯. 야외라면 몰라도 천장이 있는 곳이니까 그거까지 계산해서 조절했어야 했는데.

내가 내려찍은 발차기에 갈라진 천장은 복구하는데 꽤나 돈이 들어갈 것 같이 보였다. 햇빛이 그대로 들어와 비친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도 대련을 관전하던 사람들은 환호했다. 특히나 연구자 쪽에서 더욱.


"방금 그 공격 데이터 수치는 어쨌어?!"


"가이아 포스는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수치가.....!!!"


"굉장해! 근처에 있던 우리도 멀쩡한데 방금 그 공격에 담긴 힘은 전술 핵 정도야! 도대체 어떤 원리지? 그만한 힘을 개인의 힘으로 다룰 수 있는건가? 힘의 압축은?"


"이걸 보십시오! 근처에 있던 금속 조각이 서서히 소멸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건 도대체 어떻게......으아아아악?!"

"아니?! 그걸 만지면 어떻게 해?! 야, 거기서  때!"


멋모르고 멸룡이 깃든 파편이 손을 대었던 한 연구원의 손가락에 아주 미세하게 멸룡이 닿자 황급히 능력을 사용해서 손가락의 살점 일부를 잘라냈다.

만약 그대로 뒀다면  한짝이 아니라  전체가 소멸될 수 있었다. 의지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인은 이능력에 대한 저항력이 전무하다시피 하니까.


손가락의 살점 일부가 잘려나갔지만 지혈을 하고 나서도 그들의 연구욕은 그칠지 몰랐다. 오히려 지혈을 하고 있는 연구원에게 달려들어서 그게 어떤 느낌이였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미안하다. 원래 저런 사람들이라"

"한군데 열중하는건 좋은데 최소한의 조심성은 길렀으면 좋겠는데"


"주의시키도록 하지"


원래 한군데 열중하는 사람들은 제지하기 어려운 법이다. 우리 마누라도 덕질 토크 들어가면 알리언 박사마냥 LA에서부터 시작해서......하고 이야기가 들어가는 법인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이해 못할건 아니다. 다만 조심성만 가져달라는 뜻이다.

대련은 끝났다. 이경진 아저씨가 멸룡굉천익으로 승부 봤는데 끝나지 않는게 이상한거다.


야구 하다가 전력으로 던졌다고 생각했는데 첫타에 홈런으로 쳐내면 기운 빠지는게 당연하지. 그래서인지 소피아는 약간 기죽은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외모다. 솔직히 어디 가서 맞선 봐도 외모로 먹고 들어갈 정도로 예쁘다.


근데  마누라가 더 예뻐서 눈이 높아진것 같다. 역시 시온이 짜세라니까.

"방금 그 기술은 뭐지? 뭔가 회색빛 기운이 서린건 봤는데. 가이아 포스는 아닌것 같다만"


"멸룡. 설명하기는 좀 그러니까 가이아 포스보다 사용처는 한정되어 있지만 위력은 훨씬 위의 이능력이라고 알아둬"


순수 위력만 비교한다면 아무리 가이아 포스를 개발하고 특성을 익혀도 멸룡에 비교가 안된다. 창조의 절대자가 만들어낸 무공인 만룡무를 4가지나 엮어서 만들어낸 힘이라 출력은 물론 개념적인 우위에서도 밀린다.


애초에 창조의 절대자가 절대자 중에서 존나  이유가(전성기 기준) 다른 절대자들이랑 같이 힘을 썼어도 본인의 힘을 기반으로 해서 그런건데 그가 만든 무공이 약할리 없었다.

생각해봐. 회사 창업주랑 그 동업자랑 누가  우위일것 같아?


물론 다른 절대자 클래스가 약하다는 소리가 아니다. 신이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의 전능함을 가지고 있다면 절대자는 그걸 초월한 존재니까. 죽은사람 살리는건 아무 절대자 찾아가서 해달라고 하면 해준다. 그만큼 별거 아니니까.

나도 사람 죽이는거 잘하지만, 약간은 사람 살리는 것도  수 있다. 존나 빡세긴 해도 못하는건 아니거든.

"아무튼 좋은 싸움이였다. 나도 얻은건 많았으니......슬슬 점심 시간인데 식사라도 할텐가?"

"나는 먹을거에는 까다로워지는 사람이니까 맛있는 걸로 부탁해"

"근처에 잘 가는 식당이 하나 있지. 거기라면 마음에 들거다"


대련도 끝났지만 어차피 물어볼 것도 있어서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애초에 이번 대련에 응한 것도 물어볼게 있어서 그런건데 밥 먹을  물어보면 된다.


어디 근사한 레스토랑이라도 가나 했더니 근처에 있는 꽤 오래 되어 보이는 가게였다. 대충 봐도 10년은 장사한것 같은 느낌이 물씬 풍긴다.

오래된 가게인만큼 시설이 낡아서 위생에 염려가 생기지만 그래도 나름 관리는 하는지 생각보다 더럽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단골인 곳이다. 보르시치가 맛있지"


"아, 그거?"

원래 이름은 보르시지만 나라마다 부르는 명칭이 다르니까 어떻게 부르던 상관없다.

나는 옛날에 파워디지몬 방영할 때 들어본 요리 이름이라서 나름 기억에 남아 있다. 대충 러시아식 갈비탕 비슷한 느낌? 예전에 러시아에서 일할 때 먹어봤는데 약간 새콤한 느낌이 더 들어가서 나름 괜찮았다.

가게의 주인으로 보이는 풍채 좋은 아주머니가 소피아를 보고 반겨주었다.


"소냐! 소냐가 왔구나! 옆에 있는 사람은......?"

"나라의 일입니다"

"아, 그러니? 일단 앉으렴. 금방 요리를 내올테니까"

거 마법의 단어 아니야? 가게에 이상한 라쿤 가면을  사람이 나타났는데 나랏일이란 단어 하나로 물어보지도 않고 넘어가다니.

하지만 편하기는 해서 일단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소냐라니? 소피아의 애칭인가?

멀쩡한 성인 여성에게 그렇게 부르기에는 나이가 있고,  오랜 지인으로 보인다.


"대공황 시절에 먹을게 없었을 때 저분이 공짜로 주시던 보르시치로 살아남았지. 나 말고도 당시에 그런 사람이 여럿 있었다"

"좋으신 분이네. 요즘 저런 사람들이 드물던데"


"세상이 팍팍해진다는 증거지"

요리가 나오는데 걸린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미 끓여놓았던 것을 다시금 데우기만 하면 됐기 때문에 금방 나왔다.


붉은색 국물에 쌓여 있는 길게 썬 야채들과 그 위에 얹어진 양고기와 흰색의 소스의 대비는 꽤나 맛있어 보인다.

일반적으로 붉은색 국물이라고 하면 매울것 같았지만 하나도 그런 느낌이 없었다. 애초에 매운 재료는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국물이 붉은건 적색 비트를 사용해서 그런 것이다.

살짝 국물을 떠서 먹으니 새콤한 맛과 함께 야채 즙이 만들어낸 풍성함과 양고기의 기름진 맛이 느껴진다.


오오, 맛있다. 내가 아무리 요리를 잘해도 한 분야에만 수십년을 투자한 장인들의 솜씨는 무시할게 못된다.

양고기 건더기에 야채까지 풍성하게 얹어서 떠먹으니 참 좋다. 특히 위에 얹은 사워크림 같은 흰색 소스가  어울린다.


"잠깐 실례"


".......?"


나는 잘 먹고 있는데 소피아는 그릇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가게 한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서 흰색 내용물이 든 병 하나를 따서 보르시치 위에 풍성하다 못해 수북할 정도로 흰색 덩어리를 얹었다.

머임? 대체 머임?

들깨가루 같은건가 생각하던 찰나, 병에 쓰여 있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저거 마요네즈잖아.

"이제 됐다"

"아니, 마요네즈를 그렇게 많이 넣어?!"

"이렇게 먹어도 꽤 맛있다. 개인적으로 취향이지"

"살찐다 너"


"포스 유저는 많이 먹는다. 이거 한접시로 열량을 채울 수 있다면 오히려 이득이 아닌가?"

마요네즈를 얹은 보르시치를 그대로 섞어 국물에 휘휘 젓자 붉은색의 투명하던 국물이 핑크색이 되었다. 아니, 기름기 때문에 약간 형광 느낌도 난다 야.

하지만 꽤나 어울린다는건 부정하지 않겠다. 한국식으로 치면 설렁탕에 김치 국물 넣는 격이다. 사람마다 취향은 있어도 결국에는 맛있게 먹겠다고 하는거니까 괜찮지 뭐.

러시아 사람들이 마요네즈 잘 먹는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건 처음이다. 내가 보통 러시아에서  먹을 때는 전투식량 정도가 다였으니까.

추운 날씨를 생각하면 열을 내기 위해서 기름진거랑 알콜이 들어간걸 많이 먹는게 당연하긴 한것 같다. 역시나 마더 러시아.

"근데 하나 물어보고 싶은게 있는데. 괜찮아?"


"뭔가?"

"마스터 유저에 올라갔을 때 어땠어?"


"흠........"


약간 민감한 문제인지, 아니면 말하기 어려운 문제인지 소피아는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싶은가?"


"말하기 싫으면  안해도 되고"


이경진 아저씨에게 전화 걸어도 되는데. 중요도가 그리 높지는 않아서 제일 가까히에서 직접 들을 수 있는 사람에게 물어본 것이다.


만약 대답하기 싫다면 넘어갈  있다. 어차피 물어볼 사람은 또 있다. 이경진 아저씨라면 나한테 빚진 것도 있으니까 말해줄거다.

"그게 아니라 나도 확실하지 않아서 그렇다. 그때의 기억은 애매해서 남아 있는게 별로 없으니까"


"애매해?"


"지금으로부터 10년  쯤이였나......"

소피아가 마스터 유저로 각성하기 전에, 한창 러시아는 대공황 시절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동분서주 하고 있었다.


보통은 수도권 방위를 위해 대기하겠지만 당시에는 마스터 유저도 몇명 없었고 그때의 소피아는 마스터 유저도 아니라 러시아 전 지역을 돌아다니며 파견을 나갔다.

"그러다가 야쿠츠크 지역에 파견 나갔을 때 잠시 권룡여제와 공투한 적이 있었지"


"용화정?"


"같은 여성 포스 유저라서 나름 통하는 면도 있었으니까"

마스터 유저가 아니였어도 소피아의 실력이라면 당시에도 상당히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을 것이다. 내가 능력 자체를 써서 그런거지 보통은 이능력에 능력의 알고리즘만 적용해도 사기적인 효과가 나온다.

변태 취급 당하는 사촌인 최강인도 그거 하나로 7대 마법사 반열에 들었는데 오죽하겠어. 같은 힘으로 같은 수준에서는 정말 극렬하게 차이가 날거다. 개념적인 요소도 들어갔으니 적성종 조지는 것도 인간형 적성종이 아니면 은근히 쉬울거고.

"야쿠츠크 지역은 중국과 밀접한 지역이였다. 거기서 발생한 규모가 큰 차원진을 처리하기 위해 3일 정도 분주하게 싸웠지"

"3일이나?"


"나온 적성종의 숫자만 하더라도 수천에 달했다. 지금에 비한다면 쉽게 잡을 수 있어도 당시에는 그런 노하우가 많이 쌓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초동 대처도 완벽하지 않았고"

도심으로 흩어진 적성종, 그걸 추격하고 싸우다가 체력이 거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마스터 유저로 각성했다.


"마치 전력으로 달리다가 시야가 새하얘지는 느낌과 비슷했지. 내가 처음 포스 유저로 각성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잠시간이지만 거기서 느낀건 시선과 목소리였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선택 되었다고 생각한거야?"

"그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나를 선택하면서 막대한 양의 가이아 포스가 흘러 넘쳤으니까"


나는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가이아 포스는 특이한 힘이다. 막 마나나 기처럼 대기중에 떠다녀서 몸속에 축적하는 이능력이 아니다.


나야 인피니티 포스 코어로 생성해서 사용하지만 가이아 포스는 외부에서 끌어들이는 힘이 아닌 내부에서 나오는 힘이다. 하지만 그 힘이 어디서 나올까?


짐작이 가는 부분은 있다. 예를 들어서 나의 인피니티 포스 코어는 영자기관이다. 영혼 자체에 속하기 때문에 환생을 하더라도 이어지는 힘이였다.


그와 같은 기술을 쓸수는 없을테지만 최소한 초월자 반열에 든 존재가 개인의 영혼에 약간의 영자회로를 새겨준다면 그걸 통해서 가이아 포스를 공급받을  있다.

추측에 불과하지만 내 이론이 맞을것 같다고 생각한다.

확신을 얻으려면 그 영자회로를 한번 봐야 하지만 지금 당장 할 생각은 없다. 어차피 회로만 새겨져 있다면 마스터 유저나 일반 포스 유저나 그 크기의 차이일테고 그러면 크게 문제 될건 없으니까.


"라쿤맨, 네가 싸워본 마스터 유저 중에서 나는 어느 정도 수준이지?"

"세상에서 가장 의미없는게 누가누가  쌔냐인데. 그걸 묻는거야? 새어나가면 상당히 골치 아파질텐데?"

"개인적인 의견을 묻는거다"


"글쎄......"


일단 1위는 부동의 이경진 아저씨. 2위는 히비키, 3위는 윌, 4위는 제이콥이다.


여기서 소피아가 들어간다면 히비키랑 같이 공동 2등이다. 솔직이 둘이서 싸우면 누가 이길지 좀 애매하거든.

아무리 기억을 잃었어도 히비키의 전생은 초월자 반열에 들었던 요괴인 슈텐이다. 본인 이명에 걸맞는 전생이라서 이게 인연인가 싶더라.

소피아가 '동결'의 묘리를 조금이나마 얻었다 할지라도 히비키의 재능이나 의지력은 무시할 수 없다. 둘이 싸운다면 거리의 문제겠지. 거리를 두면 소피아가 이기고 거리를 좁히면 히비키가 이기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마스터 유저는 중국과 터키, 그리고 호주 쪽이겠지?"

"그런데?"


"아마 초월자인 너를 제외한다면 마스터 유저 중에서 최강은 권룡여제일거다"

"정말? 무슨 근거로?"

"그 시절에도 최강이였으니까"


일단은 이경진 아저씨한테도 한번 물어보는 편이 좋을것 같았다.


다른 포스 유저라면 모르겠지만 중국은 이미 가볼 계획이 있다. 아마 충돌하거나 만날 가능성이 높겠지.

무슨 대륙의 기상도 아니고. 중국 출신이라고 막 무공같은거 배워서 그런거 아니야? 어디 절벽에서 떨어졌더니 기연을 만나서......아, 이 레파토리는 꽤 오래됐구나.


무림인 무시할거 못된다. 내가 쓰는 기술들은 죄다 아류에 불과해도 그 기반이 되어준 무공을 가르쳐준건 마찬가지로 무림인이였던 스승님이였으니까.


그리고 그분 가슴이 참 컸어.

"특징 같은거라도 있어? 전투 스타일이라던가"

"기본적으로 너와 같은 맨손 격투 스타일이다. 나도 격투기 정도는 배웠지만 그쪽은 훨씬 수준 높은 느낌이 나더군. 기본적으로 만능형이라서 신체로 할 수 있는거라면 어느 쪽이던 다 잘하지. 특징이 없는게 아니라 전부 잘하는게 특징이다"

"호평이네"

"그만큼 인정 할만한 사람이니까. 아마 만나본 사람은 그녀와의 격차를 알고 있을거다. 한국의 마스터 유저인 천검도 같이 일한 적이 있으니까 마찬가지겠지"

솔직히 소피아의 실력은 어디가서 꿇리는 실력이 아니였다.


지금 내가 매긴 마스터 유저 순위만 보더라도 히비키랑 공동 2등인데. 만약 철저하게 원거리 전투만 고집한다면 이경진 아저씨랑도 좋은 승부가 될 정도다. 물론 질 확률이 높은건 둘째쳐도.


그런 실력을 가진 사람이 순순히 자신의 낮음을 인정할 정도라면 합당한 격차가 있다는걸 자각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격차는 당사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크다.

권룡여제 용화정......생각보다 만만치가 않을지도 모른다.

.....앗, 갑자기 내 감각이 불길한 느낌을 예고하고 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