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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6화 〉[라쿤맨 비기닝] (153/507)



〈 156화 〉[라쿤맨 비기닝]

슬슬 돌아가겠다고  해두니까 귀신같이 소피아가 와서 느닺없이 말했다.

"대련을 부탁해도 되겠나?"


"뭐지? 처맞고 싶다는건가? 뭐임? 대체 뭐임?"


아니, 마스터 유저들은 죄다 욕구불만인가? 어째 제이콥 빼고는 만나본 사람 중에서 안싸워본 놈이 없네.


내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그녀가 고개를 저으면서 말했다.


"그런게 아니다. 실력을 겨뤄보고 싶다는거지. 마스터 유저는 국제적 문제가 끼어 있어서 서로 싸우는건 암묵적으로 금지되어 있다는건 알고 있겠지?"

"아, 나는 한국 쪽이기는 해도 정체가 드러나지 않아서 별 문제가 없다?"


"그 비슷한 이유다. 게다가 내가 이길거라는 가능성도 적으니까"


본인도 이미 납득한 문제다. 소피아의 실력으로는 아무리 해봤자 수킬로미터에 영향을 끼치는게 전부다. 물론 힘의 압축과 범위가 비례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대치의 차이다.

요컨데 대충 공격해도 수십킬로미터 단위인 나랑 전력으로 해도 수킬로미터인 그녀랑 격차가 있다는 소리다.


블러디어에 대해서 위성 사진으로 파악한 그들이라면 내 실력에 대해서는 전부는 무리더라도 일부는 파악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일부만으로도 혼자서 지구 정복 가능할거라고 짐작도 하겠지.

"좋아, 장소는?"


"마련해  곳이 있다. 관저에서 좀 떨어진 곳이지만 괜찮겠나?"

"운동  해서 가지 뭐"

물어볼 것도 있고 말이지.

내가 여태까지 싸운 마스터 유저는 이경진 아저씨, 히비키, 윌(제일 짧게 싸웠지만)등이다. 지금 소피아까지 합치면 4명이나 될거다.


만나본 마스터 유저만 제이콥을 더하면 5명이니 거의 다 만나본 격이다. 나머지 3명은 기회가 있다면 만나겠지. 일단 중국 쪽은 확실하고.

나는 소피아를 따라서 차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꽤 멀리 떨어진 곳이지만 상당히 넓었는데 모스크바 같은 한 국가의 수도에 넓은 훈련장 같은게 있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수도 방위팀의 훈련을 겸하는 곳이다. 20년 전 대공황 이후로 우리 나라는 포스 유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지"


"야, 개쩐다. 우리 나라도 본받아야 하는데"


물론 러시아에 비하면 한국이 엄청 작은 나라인건 맞으니 수도 한복판에 이런 넓다란 장소는 마련하는건 어려운 일이다. 다른건 둘째쳐도 땅값부터 만만치가 않을테니까.


하지만 그래도 지원해준다는게 어디냐. 아무리 이경진 아저씨가 마스터 유저라서 억대 월급을 받아도 다른 나라 가면 억이 아니라 수천억을 받는게 일상이다. 당장 눈 앞의 소피아의 연봉을 물어도 이경진 아저씨의 몇배는 될껄.

결국 나라 크기에서 나오는 차이인가? 아무튼 본론으로 들어가자.


"따로 사용하는 무기는 있나? 이쪽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맨손으로 싸웠다고 하던데?"


"인생사 맨손으로 와서 맨손으로 가는 법이지. 무기 같은거 없어서 못싸우는 등신이 되고 싶지는 않거든"


"그런 쪽으로는 동감이군. 알겠다"

"그런데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이 있어 보이는데?"

나와 소피아가 방문한 곳은 마치 거대한 돔구장 같은 넓이와 높은 천장을 자랑하는 운동장 같은 곳이였다. 바닥도 꽤나 고운 모래로 이루어져 있어서 혹시나 바닥에 처박혀도 충격이 상당히 줄어들것 같아 보인다.

물론 그것 뿐만이 아니라 단련을 위한 다른 운동 기구들(포스 유저 전용이라 덤벨도 기본 100킬로부터 시작하더라)이 널려 있고 한편에는 대련용 목검이나 방패 등등의 무기류도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 우리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였다. 포스 유저는 그렇다 쳐도 멀리 떨어진 구석에서 여러가지 장비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일반인들이 있었다. 아마 하는 짓으로 보아 가이아 포스 분야의 연구자들이려나.

"괜찮다. 저들의 안전은 따로 지킬테니까. 그리고 서로 죽이기 위해 싸울것도 아닌데 그들에게 피해가 갈 정도로 싸우진 않을것 아닌가?"


"이경진 아저씨랑은 다르네. 그 아저씨는 너무 정직하던데"

"정직한 것과 솔직한건 다르지"

"하긴 그래"


정직과 솔직, 둘은 비슷해 보여도 다르다. 정직하다고 솔직한건 아니고 솔직하다고 정직한건 아니니까. 이걸 바로 이해할  있으면 철학과로 가는 편이 좋을껄.


아무튼 대련장 위로 올라갔다. 그어진 라인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대련에 지장될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이건 전투도 아니니까 싸우기 전에 조금쯤은 소개해주고 싶어서 말을 걸었다.

"난 맨손 격투가 특기야. 가이아 포스를 쓰긴 하더라도 특성은 없고. 따로 쓸 수 있는 이능은 있어도 그건 죽이는데 특화되서 이런 싸움에서는 못써. 그쪽은?"

"주로 사용하는 특성은 동결이다. 그걸로 대기 중의 수분을 얼려서 얼음을 만들어서 공격하는 편이지"

"........?"

아니, 그건  이상하지 않나?


대기중의 수분을 얼려서 얼음을 만든다는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도  수 있는데 뭐. 하지만 그거 상당히 효율이 나쁘다.

아무리 습도가 높아도 그 수분으로  얼음을 만드는데 양이 많을리 없다. 여러가지 지장이 많을텐데 차라리 이능력으로 보충해서 수분을 기반으로 얼음을 만들면 또 모를까.

"아무튼 싸워보면 알겠지. 선공은 양보해줄께"


"사양하지 않고 받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소피아는 느닺없이 허공에서 얼음을 얼려 큼직한 마름모 꼴로 만들어 굳혔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사출해 나에게 쏘아냈다.

피하기도 귀찮아서 주먹을 날려 박살냈다. 형태도 남기지 않을 생각으로 날렸는데 생각보다 쉽게 부서지지 않았다.

잠깐만, 나 이 얼음 어디서 본것 같은데?


"왜 그러지? 무슨 문제 있나?"


"아니, 좀 신경쓰이는게 있어서. 계속 해봐. 나는 괜찮아"


"그러면  더 많이 가보도록 하지"

쩌저저적!!

시설 내부의 공기나 바깥 날씨도 그리 춥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기온이 10도 정도  떨어진듯 싸늘한 공기가 와닿는다. 그리고 그 반동처럼 그녀의 등 뒤에 얼음 조각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전되는 속도나 형성되는 얼음의 크기나 상당하다. 그녀와 비슷한 수준의 빙공(氷功)의 고수나 빙계 특화 마법사라 할지라도 같은 시간에 같은 힘으로  정도의 얼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아니, 애초에 이거 얼음이기는 한건가? 차갑기는 해도  정도의 얼음을 만들기에는 들어간 가이아 포스가 턱없이 부족한데?


나는 일단 빠르게 피하면서 그녀가 쏘아대는 얼음을 피했다. 아까와는 다르게 원뿔형의 고드름같이 생긴 얼음 조각이 빠르게 날아와 내가 서 있었던 자리에 틀어박힌다.

"원거리 특화 형태인가봐? 계속 그렇게 쏘아대는걸 보면?"

"근접전도 어느 정도 할줄 안다"

"원거리 전부보다는 아니지?"

이기기 위한 승부 같았다면 그냥 닥치고 접근해서 얼굴에 몇대 쥐어박고 끝났을거다. 하지만 목적이 그냥 대련이면 기왕 하는김에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싸워주는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에서 나한테 해준 대우가 그리 나쁘지 않았는데  정도는 해줘야겠지?


날아오는 얼음 조각들을 피해고 쳐내면서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기습처럼 그녀에게 접근해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땅 속에서 솟아난 얼음이 내 손목을 노려왔다. 얼음치고는 마치 날붙이처럼 날카롭고 포스까지 깃들어 있어서 설령 인간이 아니라 적성종이라도 어디 한군데쯤 잘려나갈법한 위력이 있었다.

나는 내지르던 주먹을 멈추었다. 솟아 오르던 얼음은 내 손목에 닿았지만 조금의 지장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멈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내 역장의 강도를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내 역장은 개념에 간섭한 공격이나 의지가 깃든 공격이 아니면 뚫리지 않는다. 설령 그런 쪽의 공격이라 하더라도 일정 수준에 오르지 않는다면 통하지 않는다.

물론 소피아의 얼음은 나에게 통하지 않았지만 부서지지 않았다는 것 하나만으로 칭찬해줄 수 있다. 자동차가 아무리 튼튼해도 전력으로 달려서 처박았는데 멀쩡하면 그게  이상한거니까.

"내가 이걸 어디서 봤더라......"


직접적으로 만난적 없는 사람의 기술이기는 하지만......내 사촌 중에서 이걸 카피해서 사용하는 변태 새끼가 한놈 있었다.

나는 거리를 벌리고 슬쩍 물러나서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어릴때 어떤 변태같이 보이는 동양인이랑 만난적 있어?"


"........그걸 왜 묻지?"


"내가 아는 사람 같아서"

예전에 한번 이야기 한적 있을 것이다. 3대 명문가에 대해서 말이다.


류씨 집안, 스토리텔러 가문, 최씨 가문. 이렇게 셋. 그 중에서 내가 있는건 지금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최씨 가문이다.

우리 가문은 딱히 한 차원에 있는게 아니라 나도 모를 정도로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특징적인건 최씨라는 성과 자기 목숨은 내다버릴 정도로 이타적이라는 점. 그리고 괴상한 이름이다.


내 이름이 최악인거 보르면 모름? 어떤 부모가 애 이름은 최악이라고 지어? 차라리 최고나 최선이면  몰라도. 물론  악자는 악할 악(惡)자가 아니라 악착할 악(齷)자지만 말이다.


아무튼 개중에는 나를 비롯한 초월자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최고의 영웅을 목표로 하는 나이트로드(Night Lord) 최길현이 그 예다. 사람 성격은 너무 좋아서 탈이지만 만약 내가 죽어서 시온이 혼자 남는다면 걔한테 맡길거라고 생각할 정도다.

그리고 다른 사촌으로는......최강인이라는 놈이 있다.


이름 실화냐고? 실화다. 리얼임. 이름 짓는 센스 하고는.....!


아무튼 그녀석은 '미쳐버린 자연의 군림자'라는 이름으로 자기 학파를  정도의 마법사다. 원소 계열 중에서는 그 녀석을 뛰어넘을만한 녀석은 없다고 자부할 정도로 실력이 좋아서 나랑 비슷한 수준은 아니더라도 내 바로 아래쪽에 위치할 정도였다.

"그 새끼 막 어린애 좋아하고 변태스러운데 이상하게 솔직하고 그러지 않았어?"

".......맞다"

"정작 좋아한다고 말하면 기겁을 하면서 물러나고"

".......그랬지"

"어린이는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이라고 지껄였지?"

"......."

소피아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생각하는 그 새끼 맞는 모양이다.


우리 최씨 가문 사람들은 누구나 이타적인 성격을 타고난다. 당장에 나만 하더라도 시온만 멀쩡하면 남이 얼마나 죽어도 상관없고 내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수 있다. 시온이 심장 뽑아달라고 하면 이번 환생 포기하고 뜯어줄 수 있다.

나이트로드 최길현은 그냥 모든 사람들이 대상이다. 그래서 전부 구하려고 대영웅을 목표로 하는거고.

최강인은......그 새끼는 소아성애자다.


아, 물론 어디까지나 별명일 뿐이지 실제로 어린애들에게 성욕을 느끼는 변태 새끼는 아니다. 만약 진짜 그런놈이였다면 내가 진작에 찢여 죽였을테니까.

그놈은 원래 죽은 사람이였다. 처음부터 알던 혈육은 아니지만 진짜로 사촌지간인 최길현의 말에 의하면 처음 보던 어린애를 구하기 위해서 트럭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거 참 새끼 성격 하고는.

아무리 착한 사람이라도 자기가 죽을걸 뻔히 아는데 망설임없이 몸을 던지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놈은 처음보는 아이를 구하려고 달려든거다. 그런 면에서는 확실히 우리 집안 사람이다.

아무튼 최강인은 그때 죽었지만 사후에 데스 로드랑 계약을 하고.....여러가지 일을 겪어서 전 차원적으로 손꼽히는 마법사가 되었다.

"언제 만났어? 대공황 시절에?"

"그 비슷할 때 만났지. 내가  몇살 때였던걸로 기억하는데......당시에 여러가지를 가르쳐주고 국가의 보호를 받을 때까지 도와주었다. 생명의 은인이지"


"나중에 따로 찾아보면 나오려나?"

"그럴지도 모르지. 워낙 혼란스러운 시기여서 확신은 할 수 없다만"


20년 전의 대공황 시기라면 나도 전생 기억 각성도 못한 어릴때라서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만약 그때도 전생 기억 가지고 있었으면 부모님 죽게 냅두진 않았겠지.

이 세상에 초월자가 없던건 확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나임을 자각하고 있을 때의 경우다.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던 시절은 나도 모른다.

"좀 특이하다 싶었더니 동결의 묘리인가. 그놈 특기가 그거였으니 당연하겠지"

"뭔가 알고 있나?"

"그럭저럭"

나보다 격이 높은 초월자 중에 '동결'이란 능력을 가진 로드가 있다. 나는 만나본적 없지만 최강인은 직접 만나서 그녀의 능력을 분석해서  알고리즘을 파악하여 자신의 마법과 접목시켰다.

그 결과가 지금의 이름높은 마법사인 최강인을 존재하게 만들었다. 능력이란건 이 세상에서 제일 뛰어나고 효율높은 힘이다. 100의 힘으로 손실없이 온전히 100의 힘을 내게 해주니까 말이다.


아무리 그 카피라고 하더라도 그 효율은 마법이나 무공에 비할바가 아니다. 요컨데 그 새끼 혼자 쇼 미더 머니 치트키 쓴거나 다름없다.

그놈이 가르쳐줬다면 뛰어난 얼음의 동결도 이상할게 아니다. 물리적인게 아니라 개념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으니 어지간해서는 쉽게 부서지지 않고 또 다루기도 엄청 쉽다.


"네 이명이 [눈의 여왕]인 것도 그놈이 붙여준 이름이지?"

"............"


"거 참 힘들겠다. 다른건 몰라도 그 나이까지 그런 별명으로 불리면 좀 그렇지 않아?"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 하기 딱 좋은 나인데~"

슬쩍 트로트 가사를 날려주니까 대답으로 얼음이 날아왔다. 아까보다 큼직하고 훨씬 벼려진 얼음들이다.

빠르게 몸을 비틀어 제자리에서 피하던 찰나. 한순간 발이 묶였다. 고개를 내려다보니  발목에 얼음이 얼려져 움직임을 막고 있었다.

아무래도 고운 모래속을 섬세하게 특성을 사용하여 내 다리를 잡은 모양이다. 오, 대충 상대하니까 이런거에도 걸리는구나.

하지만  틈을 노린 그녀의 공격이 날아왔다. 우선 내 주위에 얼음 기둥들이 솟아나 더 이상 피할 곳을 줄이고  위에 거대한 얼음 덩어리가 생겨났다.

무게만으로도 수톤 단위에 육박해 보이지만 마치 고드름이 돋아낸 처가및 마냥 뾰족하게 솟아난 얼음이 눈에 보였다.

그대로 떨어지면 상당히 무서운 상황이 연출될것 같았다. 나만 아니였다면 말이지.

나는 떨어지는 얼음 덩어리를 향해 조금 진심으로 멸룡을 담아 발을 수직으로 차올렸다.


약간의 퍼포먼스를 담는 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다고 생각해서다.

"멸룡굉천익(滅龍轟天翼)!"

콰아아아앙!!


내 몸을 중심으로 퍼져나간 멸룡이 내 주변에 꽂혀 있던 멸룡을 소멸시키고 직격한 얼음덩어리를 그대로 가루로 만들었다.


멸룡은 꽤나 최상위에 속하는 이능. 증오를 가진 자만 사용할 수 있어도 위에서 세는게 빠른 위력 높은 이능력이다.


"방금 그걸 그렇게 간단하게......!"


"근데 착각하는 애들 참 많더라"


".......?"

"멸룡굉천익은 내려찍기 기술이야!"

여기서 시밤 쾅!!!


콰아아아아앙!!!

아니, 이건  너무 했군.

나는 반으로 쪼개지는 대련장을 보면서 뒤늦게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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