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화 〉[라쿤맨 비기닝]
모스크바로 돌아가는 헬기의 안, 조종사를 빼면 있는건 나를 비롯해서 소피아 나브틸로바 라스콜.....아! 시바! 러시아 애들 이름 참 뭐같이 짓는게 특기냐!
타케하야스사사노오노미코토보다 더 혀를 씹겠다! 아는 신이라서 그 이름은 어느정도 익숙해졌다 치더라도!
아무튼 헬기 안에는 나 빼고 소피아와 다른 군인 몇명 정도였다.
군인들은 나를 보고 침을 삼키는걸 보면 꽤나 긴장한 듯 보였다. 하기사, 저런 참사의 반은 내가 한듯 싶은데 그걸 생각하면 자기 목숨은 파리 목숨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정작 소피아는 내 맞은 편에서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뭔가 대화를 하거나 물어볼 것이라도 있을것 같았는데 의외였다.
저쪽에서 말을 걸지 않는다면 이쪽에서 말을 걸면 될 뿐이다.
"방향을 보면 모스크바 쪽인데. 높으신 분이라도 만나러 가나?"
"체포가 힘들다는건 안다. 그러니 사정청취 후에 판단할 일이지"
소피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은 정치 쪽과는 무관하다는 투였다.
나는 손짓을 하면서 다시금 말했다.
"피곤해서 좀 쉬고 싶은데, 건드리는건 그만둬"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포스 가지고 탐색하지 말라는 뜻이야. 내가 눈치 못챌줄 알았어?"
아까 전부터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쿡쿡 건드리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니라 가이아 포스로, 하지만 역장 때문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제서야 눈을 뜬 그녀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아, 눈동자도 파란색이네.
"도대체 무엇과 싸운거지?"
"내가 참사를 일으킨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가봐?"
"몇시간 전에 지원 요청이 들어왔었다. 적성종도 아닌 핏빛의 소녀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참혹한 대학살을 저지르고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곧바로 출동했지만......"
"용케도 헬기가 무사했구나"
"중간에 추락해서 한번 갈아탔지"
생각외로 솔직하고 강직한 타입인가. 나쁘진 않은데.
무뚝뚝해 보이고 푸른색 머리칼 때문에 차가운 미녀같이 보이는 소피아는 겉으로는 내색하고 있지 않지만 속으로는 경계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게 당연한거다.
수백만명이 죽어나간 대참사. 거기에 나타났던 블러디어, 그리고 나. 순순히 응해주지만 정보가 없는 그들로서는 그럴만한 상황이다.
"적성종인가? 인간형에서 더욱 발전한 타입의?"
"적성종 따위가 아니야. 블러디어지"
"블러디어? 그건 뭐지?"
"설마 다른 차원에 지성체가 인간 밖에 없을거라고 생각하는건 아니지? 적성종도 있는 마당에"
"........"
소피아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화가 났다는 뜻이 아니라 뭔가 생각하려는 쪽의 반응이다.
"그 블러디어란 녀석에 대해서 알고 있나?"
"블러디어는 이름이 아니라 종족명이야. 나랑 싸웠던 녀석의 이름이라면 루루고"
"이름은 귀엽군"
"이름만 귀엽지"
사람을 산채로 먹는 괴물을 어떤 이상성욕자들이 좋아하겠냐. 아무리 변태 새끼여도 자기를 먹는 미소녀를 좋아할 놈은 없다.
......있다고? 거 취향 참.
"블러디어는 초월종이야. 그들은 단순히 물질적인 것을 초월해서 개념적인 것을 다루지. 거기다가 플래닛 이터라서 인간이던 별이던 가리지 않는 포식자들이야. 현재 지구 문명 수준으로는 죽이기는 커녕 쫒아내지도 못해"
"그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나는 초월자니까"
아마 초월자라고 밝히는건 이게 처음이 아닐까. 언젠가 이런 때가 올줄은 알고 있었지만 생각외로 빨랐다. 못해도 몇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몇달만에 그러니까.
여태까지는 마스터 유저라고 불렸지만 지금 만든 참사는 마스터 유저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그 선을 넘었다. 핵을 날리면 죽는 필멸자의 한계를 넘어선 일은 초월자가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
"초월종, 초월자.......그렇다면 너는 인간이 맞는가? 아니, 질문을 바꾸지. 지구인이 맞는건가?"
"난 한국으로 돌아가면 대공황 시절에 잃은 부모님 대신 키워준 시설 원장님이랑 시설이 멀쩡하게 남아 있다고. 부끄러울것 없는 지구인이야"
인간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힘들지만 지구인이라고 한다면 단호하게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다.
환생자의 좋은 점은 여기에 있다. 이런 문명 사회의 경우에는 신분 문제는 확실하거든. 시온처럼 해킹을 할 수 있는게 아닌 이상은 불법적인 수단을 써야하니까.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까 하는 이야기인데. 그쪽의 높으신 분들에게는 미리 충고 좀 전해줘. 이번 사태로 죽은 사람들에게는 나도 물론 애도를 표하지만, 그 책임을 나한테 물을 생각을 하지 말라고"
"수백만이 죽었는데도 말입니까!"
"보리스!"
소피아의 옆에 있던 군인에게서 고성이 튀어나왔다. 그녀가 그를 붙잡아서 다시금 자리에 앉혔지만 한번 흥분한 감정은 식혀지지 않는다.
"지금 한두명도 아니고 수백만명이 죽어나갔는데. 그 책임을 묻지 말라고? 우스꽝스런 가면이나 쓴 노란 원숭이가!"
소피아가 보리스라 불린 군인을 제압해서 기절시켰다. 한대 쳐서 그런게 아니고 그저 접촉한걸로 기절시킨걸 보면 신경계에 특성을 사용하여 기절시킨걸로 보인다.
기절시킨 보리스를 다시금 좌석에 앉히고 안전벨트로 구속시킨 다음, 그녀는 나에게 정중하게 사과했다.
"방금 전에 부하가 저지른 무례는 정중하게 사과하겠다. 내가 책임지고 군법 회의에 넘기도록 하지"
"거기에 가족이라도 있었던 모양이지. 대충 넘어가. 그 마음이 이해 안가는 것도 아니니까"
나도 일을 하거나, 아니면 환생 하다보면 종종 내가 죽인 사람들의 가족이 와서 원망을 토해내는 일이 있다.
그런 일로 항상 마음 상하면 우울증에 걸리는 법이다. 그러니 동정은 하더라도 크게 마음을 쓰지 않는다.
"변명인 것 같지만. 만약 내가 없었더라면 못해도 지구 문명은 그대로 사라졌을거야. 블러디어들은 고작 억 단위의 인간을 먹어치우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으니까. 내가 그 녀석과 싸우느라 생긴 피해가 낫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그게 그나마 최선책이였지"
".......피해를 더 줄일 방법은 없었나?"
"그러면 뭐? 다른 차원에서 괴물같은 종족이 나타날테니까 다들 준비하세요, 하고 방송이라도 때렸을까? 아니면 다른 곳으로 유도해서 싸웠으면 됐지 않냐고? 그렇게 세상 일이 자기 맘대로 돌아갔으면 참 좋겠는데 말이지"
내가 사람 죽이고 싶어서 죽일 때도 있지만, 반대로 죽이고 싶지 않은데 죽여야 할 때도 있다. 지금처럼 싸움의 여파로 사람들이 죽어나갔을 때다.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전부 신경써서 싸우기에는 상대가 너무나 강했다. 하다못해 적당한 초월자였다면 재산피해는 몰라도 인명피해는 최대한 줄여서 싸웠을텐데 하필이면 상대가 블러디어라서 문제였다.
그나마 제 7군단장인 루루가 나와서 다행이지. 그 위에 놈들이 나왔다면 중간에 싸우다가 승산이 안보여서 도망쳤을 가능성이 높다.
비슷한 수준의 다른 초월자였다면 죽을 각오로 싸워도 다음 환생이 있겠지만 블러디어에게 죽으면 영혼째로 흡수당한다. 즉, 나도 죽을 수 있다는거다.
"하지만 나도 이번 일에 대해서는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 다른 것도 아니고 적성종도 아니고 초월자 때문에 애꿎은 피해가 생긴건데, 어느 정도 보상은 해야지"
"어떤 것으로?"
"그거야 그쪽이 아니라 윗분들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는거고. 그래서 내가 순순히 따라가고 있잖아"
길게 대화를 나눈것도 아닌데 어느새 저 멀리 번화한 도심이 눈에 띄었다.
도시가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그 싸움의 여파로 일어난 지진이나 충격이 있을텐데도 불구하고 겉으로 보기에는 나름 치안이 잘 잡혀있는듯 보인다.
예전에 학교 세계사 시간에 러시아는 대공황 시절에 꽤나 많은 피해를 봤다고 하던데 그래서 대비가 철저한 모양이다.
내키진 않기는 하지만 높으신 분이랑 이야기를 할 시간이다.
* * * *
러시아 정부 쪽에서 나에게 대하는 태도는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정중했다.
주된 원인이 나는 아니지만 수백 만명의 인명을 날린 원흉 중 하나인 나를 체포도 아니고 화려한 방에 쉬라고 하고 식사까지 챙겨주는걸 보면.......둘 중 하나겠지. 대인배거나 쫄았거나.
한동안은 기다려달라고 들었다.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상당수의 높으신 분들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해서 이야기 할만한 책임자가 드물다고 한다. 게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누구랑 이야기 할지도 정해야 하고.....뭐, 나야 쉬어서 좋지만.
"씁, 진통제라도 처방해달라고 해야하나"
[델타 캐슬제 포션이라도 드립니까? 지금 마친 구호용으로 대용량 포션 꺼내는 중입니다]
"됐어. 그건 먹어도 소용없을거야"
킹 블러디어의 참함대태도에 스쳐서 부러진 팔은 놈의 의지가 스며들어서 회복을 방해하고 있다. 지금 당장은 일상 생활을 하는데 지장은 없지만 금이 가 있는 상태다. 주먹 잘못 쓰면 쉽게 부러질거다.
이건 약도 소용없다. 똑같은 의지가 깃든 회복이나 재생의 능력이 아니라면 나을 방법은 시간만이 답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할걸 그랬습니다]
"누구한테?"
일단 나라도 다른 초월자들 인맥이 없는건 아니다. 내 쪽 파벌에 들어가면 나만 하더라도 사천왕 중에서 최약체라서 더 강한 초월자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것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외에는 안된다. 내 쪽 파벌은 적이 많으니까.
같은 대마왕 동료들이라 하더라도 블러디어가 상대라면 도움을 요청할만한 사람은 기껏해야 팬텀 정도다. 근데 나랑은 얼굴 붉히지는 않아도 이쪽 파벌이랑 적대적이라서 나도 양심이 있으면 도움 요청은 안한다.
유토피아는......블러디어 잡자고 지구가 아니라 태양계를 날려버릴 위인이니까 그만 두고.
만약 왔던 블러디어가 루루인걸 모르고 그 원본인 지배의 대마왕이라도 데려왔다간 둘 중 하나가 죽기 전까지 싸웠을 것이다.
자유의 대마왕 누리는 그나마 낫지만 얘도 인명피해 신경 안쓰기는 매한가지다.
내 파벌? 사람 목숨 신경 안쓰는 놈들이 대다수인걸?
절대자 한명하고 로드 두명 있는데 절대자가 오면 지구가 날아가지는 않아도 공룡이 뛰어다니는 시대로 회귀할 가능성이 높고 한놈은 변태 방구석 폐인에 한년은 인성파탄자다.
그놈들한테 도움을 바라느니 내가 발품 파는게 낫지.
그나마 한명, 내가 아는 한 최고의 대영웅이 부르면 곧바로 와줄 가능성이 높지만......그놈은 항상 바쁘다. 지금도 어디 먼 차원의 행성이나 구한답시고 바쁘게 뛰어다닐테니까 내버려두자.
결국 나 혼자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시온도 마찬가지로 강하지만 진짜 초월자들에게 비하면 방어력 빼고는 그리 특출난건 아니다. 그리고 내가 시온을 전선에 내밀리도 없다. 시발, 그러느니 차라리 혀 빼물고 죽고 말지.
[아무튼 아까 말한대로 하는겁니다]
"알았어. 그렇게 하자"
시온이랑 이야기를 마칠 무렵. 누군가 내가 쉬고 있는 방 문을 노크했다. 기척이나 목소리나 아까 보았던 소피아다.
"라쿤맨, 있나?"
"뭐야, 드디어 면접 시간이라도 된건가?"
"그래, 나를 따라오면 된다"
쉬고 있던 사이에 안가로 피난 갔던 VIP들이 이제서야 돌아온 모양이다. 협상이 내 주된 분야는 아니지만 어차피 줄 생각인거 선만 대충 그어놓고 달라는대로 주면 그만이다. 어차피 세세한건 내가 할것도 아니니까.
물론 다짜고짜 반중력 기술 같은거 줄 생각은 없다. 어디까지나 상황 수습할 정도만.
미국이랑 우주 개발 하면서 경쟁하던 러시아.....아니, 정확히 그 시절에는 소련이지만, 아무튼 미국이 달에 가기 전까지는 우위를 점하던 기술은 어디 가는게 아니다. 반중력 기술 줬다간 진짜 한 2,30년 만에 달에 호텔 짓고 난리도 아닐껄.
"만나는 사람이 누구야? 총리 정도 되나? 네가 직접 마중 나오는거 보면 보디가드를 겸하는것 같은데. 맞나?"
"기다리고 계신 분은 대통령 각하다"
"........?"
블라디미르? 아니, 형이 왜 거기서 나와?
러시아하면 보통 생각나는건 세가지다. 보드카, 불곰, 그리고 방사능 홍차. 아, 솔직히 제일 마지막 물건은 울 마누라가 톡쏘는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하기는 하지만 아무튼 그 방사능 홍차를 잘 쓴다는 블라디미르 대통령이다.
근데 사실 진짜 방사능 홍차는 잘 안써. 내가 예전에 봤는데 방사능 물질이 비싸다고 그러더라, 적게 넣으면 즉효성도 없고.
그런데 다짜고짜 대통령 만나러 가다니 상당히 의외네. 나는 적어도 아래에서부터 차근차근 낮은 사람부터 만나서 올라갈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튼 소피아를 따라서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자, 꽤나 실력이 괜찮은 포스 유저들이 경계를 서고 있는 방 앞에 도착했다. 마스터 유저에 비한다면 떨어지는건 당연했지만 그래도 내가 본 포스 유저 중에서는 손꼽힐만한 실력자들이다.
옛날 생각 나는구만. 아무리 환생을 거듭해도 내가 제일 처음 살았던 삶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데.....그중에서 스페츠나츠 출신의 퇴역 군인이랑 야전삽 들고 일기토 붙었을 때는 지금 생각해도 정겹다. 질기기도 질긴데 친구가 되면 든든한게 러시아 사람이지.
집무실인지 넓은 테이블이 아니라 책상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기 위해서 내 자리도 따로 마련되어서 서서 이야기 하는건 면한 수 있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쿤맨"
생각외로 작은 키에 머리숱이 적어서 훤칠한 이마의 중년 남성이였다. 하지만 눈매와 상당한 근육질의 몸이 그런 키를 크게 생각하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러시아의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대통령이다.
"반갑습니다. 라쿤맨이라고 합니다. 아, 정체는 일단 숨기고 있어서 얼굴을 밝히지 못하는건 이해 바랍니다"
"러시아 어를 꽤 잘하시는군요?"
"이래저래 러시아 어를 익힐 기회가 있어서. 좋은 친구를 뒀었죠"
"그거 반가운 소리군요"
물론 막 빠르게 말하고 외국인 느낌의 어투가 있는건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현지인과 대화가 가능한 수준은 할 수 있다.
내가 할 줄 아는 언어가 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영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인데 제일 못하는게 러시아 어다. 다른건 다 잘한다.
"우선 앉으시죠. 할 이야기가 많습니다. 대략적인 이야기는 이미 들었지만. 당사자의 입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니 말입니다"
블라디미르 대통령은 눈매가 꽤나 매섭다. 무표정일 때도 그러한데 표정이 바뀌면 웃지 않는 이상 심기불편해보일 정도다.
눈매가 매섭다 못해 더러운 나보단 낫지만.....본격적으로 이야기에 들어가니까 진중한 표정에 협박 받는 느낌도 들 정도다. 하기사 이 정도 카리스마가 없으면 러시아에서 독재 못해먹지.
"블러디어......적성종으로 인해서 다른 차원에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번 일은 사안이 다릅니다. 명백한 지성체, 더군다가 초월종이라는 처음 듣는 개념이 등장한거니 말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아뇨, 믿습니다"
".......?"
본디 정치가라면 의심하는게 일이다. 다짜고짜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모를 가면쓴 정체불명의 남자가 '그놈들 사실 지구출신이 아니라 딴 차원 출신인데 내가 싸워서 쫒아냈음'하고 말한다면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 의심부터 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렇게 흔쾌한 대답이 돌아올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한동안은 질문 받고 대답해주는 시간을 가지게 될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도 생각없이 그러는게 아닙니다. 나름의 물증이 있기 때문에 신뢰할 가치가있겠다고 판단했습니다"
"물증? 어지간한건 다 날아가지 않았습니까? 주변에 사람이고 건물이고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텐데"
"그 물증을 꼭 지구에서만 얻을 수 있는게 아니죠"
조금 생각하다가 나는 뭘 의미하는건지 깨달았다. 확실히 내가 루루와 싸웠던 일은 목격자도, 기록할 기기도 없어서 죄다 날아갔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구에서의 의미다.
지구에서 치고박고 싸우긴 했지만 위성 궤도에서 돌고 있을 인공위성은 남아 있었다. 더군다나 러시아는 우주 기술 강국이다.
여파 때문에 인공위성이 맛이 가더라도 사진 한두장 정도는 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이야기가 빠르겠네요. 그러면 본론으로 넘어가죠"
울 마누라 데뷔 시켜야 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