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라쿤맨 비기닝]
능력이란 의지를 발현하는 방법의 한 갈래다.
태초에 절대자들이 이 세상을 창조할 때 사용한 것 또한 능력이기에 그것은 이능력 중에서 최상위에 속한다.
누구나 능력을 각성할 수는 있지만 아무나 각성할 수는 없다. 각성하는 허들이 낮은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그만한 과정이 있어야 했다.
최악은 재능이 떨어지는 편에 속했다. 그가 능력을 각성한건 환생 3회차 정도였다. 만약 그가 환생자가 아니였더라면 결코 능력을 각성할 수 없었을 것이다.
능력은 각자 다르다.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이 있을수도 있지만 그 사용 방법도 누구나 다르다.
예를 들어서 최악의 '간섭'과 같은 능력을 지닌 용제(龍帝), 드래곤 로드(Dragon Lord)가 있다. 겨우 한 차원의 드래곤의 대표자란 소리가 아니라 드래곤 종 최강자라는 의미에서 로드에 오른 초월자다.
그는 최악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신체 강화나 역장까지는 비슷하게 사용하더라도 최악처럼 무식하게 기감의 범위가 넓지 않다. 로드니까 그 격차 때문에 지금은 용제가 더 크더라도 같은 수준이라면 그 범위는 최악이 위다.
사람마다 성향과 재능, 취향이 다르듯이 능력의 사용 방법도 갈리는게 당연하다. 용제는 자신의 능력을 사용해 개념에 간섭하고 그것을 토대로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지만 최악은 확률에 간섭하여 확률을 조작해 싸움에 자신이 유리하게 만든다.
'지배의 대마왕'의 인자를 얻은 루루는 그 사용법이 그녀와 같았다.
순수하게 위에서 아래로, 절대적인 권력을 행하는 위압. 그 범위는 그녀를 반경으로 수천킬로미터까지 퍼져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지금 전부 난데없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건 최악도 마찬가지였다.
"크억?!"
억지로 버텨보려고 했지만 저항하려고 해도 출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최악은 인간이기에 의지의 출력은 다른 초월자들에 비해 낮더라도 회복력이 빠르다. 그에 비해서 블러디어 같은 초월종은 회복력이 느리지만......그 출력은 최악보다 위였다.
"이게 나와 아저씨의 눈높이야"
"핵 맞아도 안뒤지는 년이 개드립 치고 있네.....!"
순수하게 힘으로 밀어붙이는 싸움이라면 블러디어가 우위에 선다. 셀 수 없을만큼 인간과 별을 먹어치우는 종족의 의지력이 약할리 없으니까.
"밥 먹으러 왔는데 먹을 것보다 더 많이 힘을 쓰면 내가 손해라구. 그게 얼마나 소모가 크다고 생각해? 게다가 이 행성은 문명이 발전한 것도 아니고 이능력도 나약하기 짝이 없잖아. 먹을 것도 별로 없어"
"시발, 그냥 언령에다가 능력 써서 출력으로 때려박다니, 무식한 년......!"
"그냥 언령으로 하면 아저씨의 의지력에 몇배가 있어도 모자라지만 내 능력이 그런쪽으로 특화되서 참 편한걸~"
루루에게 있어서 지금의 지구는 별로 먹을게 못된다. 잠깐 허기나 달랠 수준이다. 인구도 고작해야 수십억, 이능력을 깨우친 사람은 그 반도 안되고 수준도 턱없이 낮다. 그런데 블러디어의 입맛에 맞는 것이 있을리 없었다.
기껏해야 군것질 수준인데 과자 하나 먹자고 걸어서 1시간 거리의 마트까지 가야 한다면 누구나 관둘 수밖에 없다.
"여기가 영양가가 별로 없어도......아저씨를 먹으면 그럭저럭 괜찮은 밥이 될 것 같네. 로드는 아니지만 로드급 중에서도 최상위잖아? 로드를 코앞에 두고 있는 초월자면 맛도 좋겠지"
"나 먹고 배탈나도 난 모른다?"
"그거야 내 뱃속에 들어간 뒤의 일이고"
블러디어에게 있어서 초월자는 성찬이다. 어줍잖은 행성 한두개 먹어치우는 것보다 초월자 하나 먹는편이 낫다.
초월자의 단련된 의지는 그들이 제일 탐하는 것이다. 지극히 탐욕스러운 성질은 블러디어의 천성이다.
"근데 그거 아냐?"
"움직이지도 못하면서, 뭐가?"
"내가 무릎을 꿇은건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다!!!"
최악은 무릎 꿇은 상태 그대로 자신의 발목과 발가락만을 사용해 땅을 박차고 루루에게 맹렬하게 돌진했다.
역장과 초월자의 신체를 이용한다면 발목과 발가락 자신의 몸 정도는 충분히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더군다나 폼은 나지 않더라도 그 속도만으로도 소리가 뒤따라오지 못한다.
콰아앙!
난데없는 기습에 루루가 반응하지 못하고 안면에 최악의 박치기가 작렬했다. 거리가 있었다면 모를까 제압했다고 생각해서 가까히 붙어 있던게 화근이였다.
집중이 풀려서 루루의 지배의 권역에서 자유의 몸이 된 최악은 그대로 루루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
"내가 시엔느를 한두번 상대해본 줄 아니? '아무것도 하지마'도 아니고 '꿇어'같이 애매한 말을 해버리면 당연히 빈틈이 나오지 멍청아!"
"이런 개......!!!"
"블러디어라도 외견이 여자아이니까 좀 그렇긴 한데. 난 페미니스트거든? 여자라고 봐주면 그것도 실례 아니냐? 아사나기 선생님이 그랬어! 오빠는 똑같이 패고 똑같이 죽이니까 맘 놔라!"
묵직한 주먹이 멸룡을 휘감고 루루의 안면에 꽂힌다. 그 충격파만으로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의 지층이 뒤흔들리고 단층이 생겨난다. 주먹에 얻어 맞고 튕겨져나간 루루는 그대로 수십 킬로미터가량 지각을 박살내며 형편없이 굴러갔다.
계속해서 머리만 집중적으로 공격받자 슬슬 두통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최악을 출력으로 밀어붙여 제압했었다고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루루가 유일한 장기인 출력으로 밀어붙이지 않으면 제압할 수 없다는 소리다.
로드가 아니더라도 로드를 죽였던 최악은 블러디어보다도 이질적이며 까다로운 상대다.
"크윽, 머리가.......하지만 거리를 준건 실수 같은데!!!"
루루는 빠르게 제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좀먹어가는 멸룡을 살점째로 뜯어냈다. 얼굴 전체를 침식해가기 전에 그 부위만 제거한 것이다.
안면의 3분지 1이 단숨에 뜯겨나갔지만 루루는 조금도 아프지 않았다. 뜯겨나간 순간부터 재생하여 곧바로 원래 모습을 되찾았으니까.
멀리서 최악이 빠르게 접근하는게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있기에 시간은 충분했다.
"학습 능력이 없는거야? 그렇다면 이번에는 진짜로 [죽.....]"
"학습능력이 없는건 너겠지!"
능력에 의지의 출력만 때려박는 행위는 비효율적이면서 불안정한 행동이다. 애초에 블러디어의 특성상 그게 까다롭기는 하지만 만약 틈만 만들어낸다면 사전에 제지하는게 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최악과 루루 사이에는 거리가 있었다. 권압이나 권풍으로 공격하더라도 닿는데는 시간이 걸리며, 그 시간은 승패를 결정하기에 충분했다.
"의지에 거리 따위는 의미가 없지"
이미 루루를 패면서 마킹을 해두었다. 블러디어이기 때문에 어중간한 공격으로는 마킹할 수 없지만 방금 전에 안면에 꽂아넣은 일격으로 완료되었다.
"백척무간(百尺無間)!"
쩌어어엉!!!
최악이 허공에 주먹을 내지르는가 싶더니 그 충격이 그대로 루루의 배에서 느껴졌다. 전조도 없는 공격에 루루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마킹 해뒀다는 뜻은 좌표를 설정했다는 뜻이다.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를 가격하는데 거리는 의미가 없었다. 한번 마킹해두면 그 흔적을 지울 때까지, 설령 지구 반대편으로 도망쳐도 얼마든지 팰 수 있다.
"끄으윽, 이게에에에!!!"
"떼 쓰는 것 밖에 못하냐! 원본 닮았구만 짜샤!"
"지금 뭐라고 했어!!!"
우르르릉!!!
분노한 루루의 감정에 호응하여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이미 죄다 박살난 도시에서는 인위적인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전부 멸룡에 의해 소멸 됐거나 싸움의 여파로 가루가 된지 오래다. 하지만 그런게 없어서 지배할 것은 많은 법이다.
"내가 블러디어 중에서 제일 성격 괜찮은거 알지? 그런데도 내 성격 자꾸 건드릴래?"
"에베베베, 건드리면 어쩔건데. 집에 가서 이를거야? 애미는 없고 애비만 둘인데 누구한테 가서 이르려고? 응? 응? 어쩔건데?"
"그러면 이 별을 인간이 못살게 만들어야겠지"
"........."
루루의 말에 그의 등에 불길한 느낌이 타고 올랐다.
그녀는 최악과 같은 역장 특화 타입. 역장의 범위를 넓히면 대충 하더라도 그 범위가 수백 킬로미터에 달한다.
그 범위 내라면 모든 것들은 그녀의 부름과 지배에 응한다. 지성과 의지가 있는 생명체조차도 죽으라고 명령할 수 있는데 초월자가 아니라면 그녀의 힘은 절대적이다.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전체적으로 울리는게 아니라 뭔가가 이곳으로 점차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발생하는 진동이였다.
최악은 기감을 집중해 그 진동의 진원지를 파악해보았다.
지금 싸우고 있는 장소에서부터 남쪽, 거기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할 생각이야?"
"꼭 트릭키 오빠가 하는 짓이지만 그렇게 도발했으면 나도 도발해주는게 인지상정 아니야? 아저씨는 되고 나는 안되는 내로남불 식으로 불평할건 아니지?"
그때, 라쿤맨 마스크에서 시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입니다! 저년이 지금 카라차이 호에 있는 방사능 폐기물들을 전부 그곳으로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뭐?!"
최악은 TV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소재로 한번 들어본적 있는 이름에 기겁했다.
카라차이 호는 그들이 있는 예카테린부르크의 남쪽에 있는 첼랴빈스크 주에 있는 호수다. 그리고 그 호수의 인근에는 미야크 핵연료 재처리 공장이 있었다.
그곳에서 핵연료를 재처리 후에 발생하는 방사선 물질을 전부 카라차이 호에 가져다 버렸다. 전문적인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기에 저지르는 생각없는 행동이였다.
그 덕분에 카라차이 호는 죽음의 호수가 되었다. 수없이 많은 방사능 폐기물이 쌓이고 그 농도는 근처에서 잠깐 산책만 하더라도 한달 안에 죽을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지독했다.
현재 그 호수의 방사능 물질의 양은 444경 베크렐.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가 37경 베크렐레 최악의 참사라 불린 체르노빌이 500에서 1200경 베크렐 정도다.
어떻게 본다면 체르노빌보다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체르노빌은 대기 중에 퍼져나간 양까지 생각해서 그런 것이다. 카라차이 호에 있는 방사능 물질은 고일대로 고인 방사능 물질이다.
[그걸 전부 터트려서 지구에 뿌리면 아예 사람이 못사는 곳이 되어서 포스트 아포칼립스는 커녕 생물이란 생물은 모두 살 수 없는 지옥별이 될겁니다!]
"사람 못살게 만든다는게 이 뜻이였냐!"
"그러길래 감당 못할건 애초에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안그래?"
루루의 말은 과연 최악에게 하는건지, 아니면 핵물질을 그런 식으로 관리한 인간들에게 말하는건지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그게 지구의 멸망을 초래할 가능성은 높았다.
"방사능 제염 물질 있지? 그걸로 어떻게 안돼?"
[시간만 준다면 작업하는데 문제가 아니겠지만 그걸 두고 보겠습니까?]
"씨발!!"
시온의 기술력이라면 방사능 물질은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동력원을 핵발전도 아니고 블랙홀 축퇴로도 아닌 더 발전된 솔리드 리액터를 사용하고 있는데 방사능을 제거하는 기술이나 물질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하다못해 테라포밍 장비를 응용하면 광범위한 방사능 물질도 제염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는 루루였다. 그걸 두고보고 있을리 없으니까.
"누구랑 이야기 하는거야? 아, 그 하논인가 보구나? 시온이라고 했었나? 유토피아가 거슬리기는 하지만 아저씨를 해치운 다음에 같이 먹어볼까?"
"너"
그 순간.
우뚝, 하고 최악의 시선이 루루를 노려보았다.
"지금"
살의가 끓어오른다. 의지력에 부스터가 걸린듯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방출되는 힘만 제대로 쓴다면 별도 부수겠지만 일부러 제어하지 않았다.
"뭐라고 했어?"
지켜야 할 대상이 달라졌다.
최악은 어디까지나 '대마왕'으로서 초월자에게 멸망당할 '문명'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
그건 어디까지나 의무와 책임이다. 대마왕으로서 살인과 파괴 행위에 대해서는 인과율이 면제받듯이, 권리가 있다면 의무도 있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방금 루루의 발언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최악'이라는 인간으로서 '시온'을 지키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마음가짐부터 바뀐다. 이 세상에 타인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은 드물고 그 의지는 생존 욕구를 초월한다.
잠깐이지만 그의 출력이 루루를 능가했다.
"이 개 씨발년이 어디서 누굴 들먹여?"
"윽?! 이 행성이 망하는 꼴 보고 싶은거야?!"
"어디 한번 해봐. 해보라고. 내가 눈 하나 꿈쩍 안하나. 이 별 따위보다 시온이 더 중요하거든?"
최악은 그녀의 머리채를 잡았다. 만약 블러디어가 아니였다면 두피째로 뜯어낼듯이 붙잡고 그대로 땅에 채찍처럼 휘둘러 내려찍었다.
콰아아앙! 콰앙! 쿠우웅! 콰아앙!!!
한번이 아니라 여러번. 걸레짝으로 만들 생각으로 땅을 부수고 지각을 가른다. 어느새 파고 들어간 구덩이는 직경만 하더라도 킬로미터 단위였지만 그런것 보다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후끈하게 만들었다.
"내가 적당히 하고 쫒아내려고 했던건. 널 조지면 킹 블러디어를 비롯한 나머지 군단장들이 쳐들어오기 때문이야"
똥이 무서워서 피한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이다.
만약 제 7군단장이 아니라 그 위의 다른 군단장이였다면 이런 싸움은 하지 못했다. 다른 군단장들은 애초에 지키지 못하거 진작에 별을 부수거나 인간만 골라 죽이는 등 성격 나쁜 짓만 할테니까. 지킬게 없다면 애초에 최악도 나설 필요가 없다.
"이쪽도 할 일이 있는 판에 괜히 적을 만들기 싫어서 몇대 때리고 쫒아내려고 했던 사람한테 뭐? 지금 시온을 처먹겠다고 했냐? 이 씨발년이 분수도 모르고 처 지랄하고 자빠졌네"
최악이 루루의 잡은 머리채를 주먹에 휘감고 끌어당겨 얼굴을 마주했다. 아름다운 얼굴에 흙먼지가 묻었지만 외견상 크게 다친 부분은 없어 보였다.
땅속으로 킬로미터 단위로 파고 들어가는데 굴삭 장비처럼 쓰였다 하더라도 그 정도로 닳아없어질 몸뚱이가 아니다.
"어디 한번 해봐, 내 앞에서 쳐먹어 보라고!"
"내가 못할것 같아!!!"
쩌어어억!!!
루루의 입이 벌려졌다. 한입에 성인 남성의 머리통을 씹어 삼킬 수 있을법한 괴물로 변이한 턱이 벌려져 최악의 어께를 노렸다.
블러디어의 초월적인 신체능력에 담긴 치악력과 깃들여진 의지를 생각한다면 의지가 깃들여지지 않은 것으로는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최악의 역장이라도 뚫리......
카가가가각!!!
"우그??"
"야, 처먹어보라고"
최악의 어께를 물었지만 기껏해야 이빨을 가져다 댄 수준이였다. 분명 역장은 뚫었는데도 불구하고 더 이상 이가 들어가지 않았다. 덕분에 피조차도 나지 않는다.
간발의 차지만 최악이 한수 위였다는 뜻이다.
"한가지 말해두겠는데"
그가 루루의 입 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아래턱 부분을 붙잡고 그대로 힘을 준다.
블러디어의 몸뚱이는 인간의 형태로 띄고 있지만 그건 의태에 지나지 않았다. 구조는 같더라도 세포 이상의 레벨에서 그 어떤 생물과도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초월종이라 불린다.
"난 니들보다 사람을 많이 죽였으면 죽였지 덜 죽이진 않았거든?"
최악이 최흉(最凶)이란 이명의 대마왕인 이유는 한가지 때문이다.
별을 부수고 문명을 파괴할 수 있는 초월자는 널리고 널렸지만 개중에서 문명을 이룩한 지성체만 골라 죽일 수 있는 초월자는 최악이 유일했다. 평소와 같은 나날속에서 아무것도 부수지 않고 오로지 '사회'만 죽인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은 최흉이란 이명을 얻었다.
그리고 그가 제일 잘하는게 사람 죽이는 일이다.
"아까 한말 돌려줄까? 그러길래 감당하지 못할건 애초에 건드리지 말았어야지, 안그래?"
그는 루루의 아랫턱을 뜯어냈다. 어차피 재생할테니 그 힘으로 몇대 더 때리는게 낫겠지만 애초에 효율을 따졌다면 좀 더 나은 방법을 썼을 것이다.
단숨에 턱이 뜯겨나간 루루는 바로 재생하기 시작했으나 그걸 두고 보고만은 있지 않았다. 안에 있는 혓바닥을 잡아 끄집어내고 목구멍을 긁어낸다. 지극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였지만 시행하는 당사자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끄으윽, 으윽!!"
"블러디어 새끼들이랑 전쟁 터져도 알게 뭐람. 시온 건들렸으면 뒈질 각오는 하고 와야지. 안그래?"
다음으로 최악이 수도(手刀)를 펼쳐들었다. 그리고 루루의 목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고 그 순간. 시간이 멈추었다.
누군가 멈춘게 아닌, 최악의 '감각'이 유래없을 정도로 경종을 울렸다.
그가 루루를 기습했을 때와 같이 차원이 갈라지면서 그 틈새로 무언가 보인다.
거대한 핏빛 대검. 단순히 크다라는 개념이 아니라 거대했다. 인간이 아니라 거인 정도나 되어야 들어올릴 수 있을법한 대검이 두사람 사이에 내려 꽂힌다.
쿠구구구구!!!
그 위력에 대지가 갈라진다. 1,2킬로미터 수준이 아니라 자릿수가 달랐다. 겨우 한번 내려 찍었을 뿐인데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보일 정도의 대협곡이 생겨난다.
덕분에 루루를 놓치고 거리를 벌릴 수 밖에 없었던 최악은 찢어진 차원의 틈새로 걸어 나오는 남자를 보며 으르렁거렸다.
"킹 블러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