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3화 〉[라쿤맨 비기닝]
얼마 있지 않아서 습격해올 블러디어는 크게 3종으로 나뉜다.
서드, 세컨드, 퍼스트 순으로 나뉘는데 가장 약한 서드도 나온다면 현 지구 문명으로는 막기 힘들다. 그놈 하나만 하더라도 어지간한 물리공격으로 들어먹지도 않으니까.
지들은 일반 보병 수준으로 운용해먹는데 지성도 없는 주제에 잡몹치고는 수준이 높다. 보통은 나이트라고 불리며 붉은 갑옷을 입은 기사의 형태를 띄고 있다. 다만 핵폭탄을 여러발 끼얹으면 쓰러트릴 확률 원찬스.
세컨드는 드래곤 형태. 하지만 모습만 드래곤이지 거의 야생동물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그런지 지휘개체만 없다면 유도하기는 쉽지만......지구가 멸망할걸 각오하고 핵폭탄을 날려도 쓰러트리지 못한다. 우주 문명을 개척해서 중력자포라도 쏘지 않으면 유효타격을 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퍼스트. 여기서부터 지옥길에 들어간다. 한놈 한놈이 전원 플래닛 이터에 지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더 악랄하다. 인간이 뭐에 절망하는지 알고 성격 더러운 놈들은 그 절망감이 맛있다고 일부러 그러니까.
그들은 군단장이라고 해서 개체수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중에서 만난 녀석이 3명 정도인데 죄다 성깔이......아무튼 놈들이 온다면 선택은 두개 중에 하나다. 튀거나 저항하거나.
튈 수 없다면 저항하는 수 밖에. 그러기 위해서는 나도 마음가짐을 달리 해야한다.
요즘 너무 평화에 찌들어 있다보니 마음이 해이해졌다.
응? 아틀라스 실험체들이나 마스터 유저들? 그거야 모기 잡는 수준의 일 가지고 진심이 될리가 있나. 만약 내가 진짜로 할 마음이 있었더라면 내 주먹 한방을 버티는 놈이 없었을거다. 기껏해야 기술 몇개 쓴게 전부인데 그게 진심일리가 있나.
건물 몇개 무너진걸로 초월자? 초월자란건 인간의 문명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에 이르기에 초월자인 법이다. 핵폭탄급 파괴력도 안냈는데 싸웠다고 하기 뭐하지. 놀아줬다고 하면 몰라도.
덕분에 일주일만에 돌아와서 시온이랑 섹스도 못하고 억지로 금욕 생활중이다. 나보다 약한 상대라면 모를까 강할지도 모르는 상대와 싸우는데 섹스했다고 소모된 체력 때문에 약간의 차이로 졌다고 하면 꼴이 진짜 우습게 된다.
씨발, 이게 무슨 고생인지. 어떤 새끼가 튀어나오던 일단 7군단장만 아니면 면상에 흉제붕권(凶帝崩拳)을 처먹여주마. 아무리 군단장 클래스라도 그걸 안면에 처맞고 무시할 수 있을리는 없을껄.
그나마 불행 중에 다행이라는 점이 있다면, 킹이 아니라는 소리다.
군단장 위에 있는 퍼스트 블러디어들의 정점. 킹 블러디어. 그놈은 절대자 클래스가 오지 않고서는 상종하지 않는 편이 좋다. 나도 그놈이 상대라면 의무고 나발이고 시온 데리고 튈거다.
"혹시 모르니까 화성에 파킹해둔 호라이즌을 위성 궤도에 대기 시켜두겠습니다. 중력자포나 반중간자포를 쏴대면 아무리 의지가 깃들지 않은건 흡수해버리는 블러디어라도 견제는 가능할겁니다"
"대신 지구가 날아가겠지. 그래서는 본말전도잖아"
"당신만 멀쩡하다면 지구가 날아가도 괜찮습니다"
시온은 좋은 사람이지만 착한 사람은 아니다. 내가 시온만 멀쩡하면 다 죽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시온도 내가 멀쩡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죽던 조금은 양심의 가책은 느끼더라도 나를 선택할 것이다.
전부터 말해둔 화성에 파킹(.....)해둔 차원항행함, 이름은 호라이즌. 왜 하필 그 이름인지는 유명한 SF 스릴러 영화에서 따왔기에 그런 것이다.
내부 구조부터 시온이 부품 하나하나 주문 제작하여 만들었으며 동력원으로는 블랙홀 축퇴로는 따위로 비견될 솔리드 리액터가 탑제되어 있었다. 만약 아무 걱정 안하고 그냥 한놈 조질 생각으로 공격하면 지구가 박살내는데 10초도 안걸린다.
그런 비상식 레벨에 문명 레벨 만랩 찍은 함선도 초월자 앞에서는 의미가 떨어진다. 잘해야 견제 정도다.
"일단 아는 사람한테 연락이나 넣어둘까. 대마왕 소집하면 한두놈 정도는 오겠지. 네 사촌 오빠면 안오면 돼"
"그 사람은 이기주의자니까 불러도 안올때가 많을겁니다"
나는 간만에 영국에서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어차피 가게야 백리가 잘 하고 있을테고 (주)시온도 마찬가지다.
예진이도 무사히 돌아온 날 보고 반겨주었지만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었는지 납득하고 조용히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얼굴에서 다 티나는 타입인가? 뭐, 상관 없지만.
"인피니티 포스 코어는 한계까지 시동 걸어놓고, 되도록이면 멸룡으로 빵빵하게 뽑아둬야지. 어차피 그 정도 아니면 경상도 안먹는 놈들이니까"
"일단 아는대로 연락은 걸어두겠습니다"
"올만한 녀석이 있어?"
"군단장 클래스가 하위 개체 없이 혼자 떨어져 나왔다면 올커니 하고 잡으러 올 사람들이 몇몇 있지 않습니까?"
"그거야 자기 개성 먹은 놈들 정도나 그럴테고"
블러디어의 태생은 지성 없는 괴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별 하나를 먹어치우거나 타인에게서 개성을 얻는다면 그 순간부터 군단장 클래스로 진화한다.
이 개성이란게 참 애매해서 수억의 지성체를 먹어도 얻지 못할 때가 있지만 초월자의 인자라면 거의 100퍼센트 각성한다. 그리고 거기서 더 악랄한건 인자를 얻은 수준이 아니라 완전히 먹어치운다면 그 대상의 이름을 자기가 사용한다.
나중에 나올 군단장이 자기 이름 안쓰길 빌어야 하는 상황이다.
한가지 더 문제가 있다면 인명 피해다.
내가 아무리 초월자라고 한들 로드에 이르진 못했다. 한발자국 앞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 중요한걸 결정 못한 상태다.
어느 곳에서 놈이 등장할지는 몰라도 인명 피해 없이 쫒아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만 단위. 나라에 따라서는 억 단위도 불사한다. 그 정도도 희망적인 관측에 지나지 않는다.
놈에 의해 발생할 피해가 아니라 전투에 의한 여파로 그 수준이다.
"행성이 통째로 먹히는 것보단 낫지 않습니까?"
"최악보단 차선이라는거야? 거 참"
그래도 죽는 것보단 사는게 낫다. 멸종 직전까지 가더라도 죽지만 않으면 다시금 번성하는게 인간이다. 인류 리셋 한번 한다 생각하고 마음 가짐을 다지자.
아니, 진짜 빡치네. 대마왕 소집 한번 해야 하는거 아냐? 블러디어 이 십새끼.....!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 어디 갈 수도 없고. 마치 북한이 도발해서 한창 상황 터진 군대 같은 느낌이다. 그 왜 상시 대기하고 경계 근무만 존나 서는거 있잖아.
그거 참으로 기분이 좆같다. 사람 피곤하게 만드는데 재주가 있는 일이다.
"오기만 해봐라"
형은 상남자니까 만나자마자 필살기란다.
* * * *
최악이 영국에서 돌아온지 이틀 후.
러시아, 정확히는 러시아의 우랄 연방관구의 스베르들롭스크 주의 주도인 예카테린부르크.
거대한 러시아의 동서를 나누는 경계인 우랄 산맥의 중심 도시인 그곳은 15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살아가는 큰 도시였다.
적성종은 인구 밀도가 높은 곳에 주로 나타난다. 어떻게 그렇게 노려서 나타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통계를 비교한다면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 주로 수도권이나 도시 부근이 높았기 때문에 예카테린부르크도 마찬가지로 포스 유저를 배치하고 있었다.
물론 자랑스러운 러시아의 딸이라 불리우는 마스터 유저인 [눈의 여왕(Снежная королева)]은 수도인 모스크바에서 머무르고 있다.
러시아는 워낙 땅덩어리가 큰 나라이기 때문에 자국의 다른 도시에 파견을 나간다 하더라도 멀다면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가야 할 때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특성상 러시아는 기본적으로 마스터 유저의 파견을 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에서 중국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출동인가? 요새 자주 충동하는 것 같은데!"
"잔업 수당은 잘 나오니까 일단 열심히 하자고. 좋은 일 하는거지 않나?"
"좋은 일은 둘째 치고 쉴 시간도 제대로 없으니까 그렇지. 이대로 가다간 누구 하나 몸 축나서 큰일 나겠어"
여느 때와 같은 날이였다.
러시아라고 전부 춥고 눈이 내리는 지역만 있는게 아니라. 일교차가 큰것 뿐이지 여름에도 해가 뜨는 따뜻한 때도 있다. 애초에 러시아에서도 농사를 짓는다 사시사철 겨울이라면 농사를 지을 수 있을리 없다.
평소와 같이 차원진 경보가 울리고, 그에 맞춰서 러시아의 포스 유저들이 장비를 챙겨 출동한다. 예카테린부르크의 시내 한 곳에서 발생한 차원진을 처리하기 위해 전용 헬기를 타고 나섰다.
예카테린부르크는 러시아에서 발전이 빠른 편에 속한다. 두바이에 밀리기는 했어도 엑스포 유치까지 노렸을 정도다. 그래서 빠르게 현장에 도착하려면 차량보다는 헬기쪽을 이용하는게 빠르다.
현장에 도착하자 이미 민간인 대피는 진행 중이였다. 남은 시간은 5분. 포스 유저들은 각자 위치를 사수하고 이내 출현할 적성종을 대비해 전열을 다듬었다.
"일단 규모가 예상할 수 없으니까 평소처럼 시간을 끌다가 융합 현상 끝나면 바로 시작하자고. 전차는 어쨌나?"
"아직 도착 못했습니다"
"느려 터졌군. 그래서 어디 괴물 새끼들 때려 잡겠나!"
남자의 말에 다른 동료들이 낄낄거리며 웃었다. 낮부터 한잔 때리고 온건지 술 냄새가 나는 녀석도 있었지만 취기가 없다면 넘어간다.
일단 다른건 둘째치고 포스 유저이기 때문에 신진대사가 높아서 설령 도수가 높은 보드카라도 쉽게 취하진 않는다. 더군다나 목숨 걸린 일을 하는만큼 본인 스스로도 조절한다.
정말로 술 취해서 싸웠다가 죽었던 사람도 종종 있었다. 그래서 만약 취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진작에 후방으로 뺀 뒤에 상황 종료 후에 끌고가서 팬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술 마시는건 건드리지 않겠지만 최소한 업무에는 지장 없이 하라는 뜻이다.
"출현 1분전!"
"좋아, 오늘 이거 처리하고 한잔 하러 가지. 어차피 난 이 뒤에 퇴근이니까 말이야, 오늘 당직도 아니고"
"너무 자랑하는거 아닙니까?"
"뭐 어떠.....잠깐만"
쩌적!
난데없이 허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차원진 출현 얼마나 남았지?"
"아, 아직 40초 가량 남았습니다!"
"예상보다 빠른데! 좀 큰게 나오려는건가? 다들 준비해! 너는 공군 쪽에 연락하고! 어떤 놈이 나올진 모르지만 예정보다 일찍 나와서 좋은 꼴 본적 없어!"
남자는 베테랑답게 빠르게 현장을 정리했다. 아예 차원진이 감지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예보된 시간보다 빠르게 등장하는 경우는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출현하는 적성종의 규모나 질이 틀렸다.
이윽고 본격적으로 차원진이 발생했다. 금이 가던 수준에 불과하던 차원진이 갈라지면서 틈새가 벌어진다.
그리고 마치 인간과 같은 형태의 녹색 안광을 띄는 머리가 차원진을 비집고 나왔다.
"인간형! 다들 물러나! 저놈은 보통 수준으로 못잡아!"
적성종은 인류의 공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타입의 적성종에 대해서는 모든 나라가 정보를 공유하고 있었다.
국가 소속의 포스 유저들은 출동하지 않을 때에는 훈련을 하거나 새로운 적성종에 대해서 분석하고 교육을 받는다. 중국과 한국, 일본과 미국에서 나타난 인간형 적성종에 대해서는 이미 그들도 교육을 받아 알고 있었다.
마스터 유저에 준하는 수준의 무력. 각국에 나타난 인간형 적성종의 특징이 전부 다 달랐다고 하더라도 마스터 유저를 궁지에 몰아 넣었던건 진짜였다.
중국과 일본은 중상을 입었지만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한국과 미국은 라쿤맨 1,2호의 도움을 받아서 격퇴했다. 그것에 대한 영상 데이터도 시청각 교육으로 받았고 그에 대한 대처 방법도 받았다.
"민간인 대피를 서둘러!"
마스터 유저가 오지 않는 한 그들로서는 상대하기가 버겁다. 최대한 시간을 벌고 공군이 올 때까지 기다린 후에 미사일을 퍼부어야 한다.
인간형 적성종은 예지 특성 보유자인 엘리사 니어의 예지가 있었다고 하지만 수로 수도권이나 그에 준하는 인구밀집 지역에서 출현했다. 그런 식이라고 한다면 최소한 러시아의 수도인 모스크바에 출현했을 녀석이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불합리한 상황이였지만 애초에 현실은 불합리했다.
그리고 그 불합리한 현실은 마주하는건 그들 뿐만이 아니였다.
[키익.......!]
이윽고 인간형 적성종이 차원진을 비집고 나와 모습을 드러냈다.
절반만.
"........?"
바닥에 쓰려져 널부러진 놈의 모습에 러시아 포스 유저들이 의문을 표했다. 마스터 유저급의 추정 무력의 적성종이 왜? 갑자기?
원래부터 그런 모양새라고 보기에는 버둥거리는 모습이 심상치 않았다. 채액으로 보이는 뭔가가 허리 아래쪽에서 뿜어져 나오는걸 보면 하반신은 분명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몸의 절반이 잘려나갔는데도 불구하고 힘차게 움직이는 모습은 여타 적성종들이 인간을 적대하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마치 그것은......피식자가 포식자를 앞에 두고 쓸데없는 저항을 하는 모습과 같았다.
콰직.
그리고 차원진에서 다시금 소리가 들렸다. 이미 갈라져 있는 틈새를 누군가가 힘으로 억지로 비집어 여는듯한 광경이였다. 차원진은 그 규모에 따라 다르지만 그래도 한번 열린 차원진이 더 커지거나 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두번이나 이어지는 비상식적인 광경에 누군가 침을 삼켰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걸어 나오는건 작디 작은 소녀였다.
"어......?"
붉은색 원피스를 입은 정말 아름다운 소녀였다.
이 자리에 있는 누군가는 집에 두고 온 딸이 생각났을 정도로 작았다, 그리고 아름답다 못해 섬뜩한 외모였다.
붉은색 머리칼을 허리춤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렀지만 그 머리칼의 붉은 색은 장미보다는 피를 떠올릴만큼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소녀의 붉은색 눈동자와 마주하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저것은 포식자라고.
아무리 인간이 지성을 가졌다고 한들 인간도 동물이다. 본능적인 부분이 희미하다 뿐이지 남아있는건 당연했다. 특히나 포스 유저 같이 오감이 극도로 발달한 사람이라면 육감 또한 발달한 법이다.
그 차이가 있겠지만 적어도 이 자리의 모두가 느낄만큼 오싹한 감정이 등 뒤를 타고 올랐다. 못해도 몇년, 길다면 십년 넘게 적성종과 싸워온 역전의 용사들이지만 지금 나타난 소녀 앞에서는 그 용기도 부스러지고 만다.
"차원진에서, 여자아이가......?"
처음으로 한 것은 부정이였다. 차원진에서 나온건 '괴물'이 아니라 '여자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았다면 후들거리는 다리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붉은 소녀는 바닥을 구르며 버둥거리는 인간형 적성종의 등을 밟았다. 그리고 놈의 팔을 잡고 곤충 팔다리 뜯어내듯 가볍게 뽑아냈다.
푸확, 하고 놈의 채액이 튄다. 아무리 그래도 정보대로라면 마스터 유저가 아니고서야 충분한 데미지를 주지 못할만큼의 내구도를 가지고 있을텐데도 조금의 불편함 없는 가벼운 행동이였다.
지극히 이질적인 모습에 누군가가 두려움에 떨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이질적인건 그 다음이였다.
뜯어낸 인간형 적성종의 팔을 들어서 그대로 입가에 가져가 입을 벌려 우적, 하고 씹었다. 치아의 일반적인 구조도 인간과 다를바가 없는데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하는건지 적성종의 외갑과 살 덩어리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씹고 우물거렸다.
팔 하나를 먹어치우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번 씹고 우물거리고, 그 동작을 쉬지 않고 반복하니 팔 하나가 없어지는건 금방이였다.
그것마저도 모자라 소녀는 남은 팔과 놈의 몸뚱이를 먹어치웠다. 비상식, 비논리적인 모습에 다른 포스 유저들이 굳어서 뭔가를 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마치 포식자를 앞에 둔 피식자처럼.
이윽고 인간형 적성종을 이 세상에서 자신의 뱃속으로 존재를 지워버린 소녀가 눈을 돌렸다.
다음은 그들이다.
"잘 먹겠습니다"
쩌억, 소녀가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