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7화 〉[라쿤맨 비기닝] (137/507)



〈 137화 〉[라쿤맨 비기닝]

날씨가 슬슬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기 때문인지 백화점 내부에서도 여름 옷과 가을 옷이 섞여서 전시 되어 있었다.

아직 낮은 더우니 여름 옷을 좀 더 사기도 하지만 나중에 올 가을 옷도 둘러본다. 사람은 저마다의 개성이 있는게 당연하기에 예진이나 루리, 시온마다 서로 고르는 옷 취향이 달랐다.


"쨘, 이거 어때? 날씨가 선선해지니까  팔도 슬슬 사야 할 것 같은데"

"음......어울리기는 한데 사이즈는  더 큰걸로 사야하지 않겠습니까?"


"좀 작게 입어야 몸매가 드러나서. 섹시하고 좋잖아?"


"누구 보여줄 사람은 있어요 언니?"

"........예진이 너 은근히 명치를 때린다? 응?"


 중에서 기혼자인 시온을 빼면 두명 다 남자 친구 한명 하나 없고 있었던 적도 없다. 요컨데 모태솔로다.

물론 사귀고자 한다면 사귈 수 있을만한 외모지만 그들도 보는 눈이 있었다. 최소한 외모에 홀려서 오는 사람들은 걸러내는데 그 중에서 괜찮은 사람을 고르는건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었다.


"그런거 생각하면 시온 아주머니는 복 받은거네요. 서로 사랑하셔서 결혼 하셨잖아요?"

"사실 그이 취향은 금발 빈유 안대를  멀쩡한 성인 여성입니다. 그걸 생각한다면 제 매력으로 꼬신겁니다. 그러니 자신의 매력을 갈고 닦아야 하는 법입니다"

"아저씨 취향은 둘째 쳐도 아무튼  꼬맹이 모습에 욕정했다는  아니야?"

"맞습니다"

"페도 죽엇!"


지금 자리에 당사자가 없다고 모함을 당하고 있다! 최악은 시온이라서 좋아하는거지 초등학생 같은 디폴트 폼의 외형에 반해서 결혼한게 아니다!

만약 시온이라고 한다면 설령 남성 대 남성이라도 사랑할 수 있는게 최악이다. 단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페도필리아로 보여서 평판이 나락으로 떨어질 뿐이지.

"결혼은 그렇다 쳐도 일단 연애부터 하고 싶다"


"루리 언니는 일단 외계인부터 찾고 봐야하지 않을까요? 루리 언니랑 결혼할 사람은 외계인 아니고서야 불가능할텐데"

"너 자꾸  디스할거야? 그리고 오빠가 하던 말인데 언제 배워먹었어?!"


"만약 결혼 한다면 신혼집은 제가 챙겨드리겠습니다"


"앗! 그건 땡큐!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데 집 준다면 염치 불구하고 받아놔야지! 근데 어디 반지하로 줄건 아니죠?"


"강남에 아파트 사둔거 있습니다"


"내 남편 될 사람은 복 받았군"


"복을 받는게 아니라 반대로 아니라 복수 받을  같은데"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옥상으로 따라와!"

"여기 옥상은 스카이 라운지니까 자리는 될겁니다"


"군필 여고생쟝 배틀이다! 더블 드래곤!"

 사람은 포스 유저이기 때문에 특수부대원 3명분의 전투력이 아니라 전차 3대분의 전투력이 있어서 싸웠다간 대참사가 난다.


둘이 싸운다면 실전 경험의 문제로 예진이가 미래를 본다 한들 루리가 이기는게 당연하다. 아무리 미래를 엿본다 하더라도 애초에 큰 격차가 있다면 소용 없다. 그걸 받쳐줄 스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전투가 아니라 전술 분야로 넘어가면 예진이의 유용성은 무궁무진해진다.

당장 미국의 예지 특성 보유자인 엘리사 니어의 예지로 인해서 저번 인간형 적성종 출현 사태는 비교적 적은 피해로 넘어갈 수 있었다. 차원진 경보가 울리는 15분간 준비하는 것보다 하루 전에 알고 있는 편이  대비할 시간이 많으니까.


그래서 각국이 눈에 불을 켜고 예지 특성 보유자를 찾는 것이다. 특히나 한국은 이미 있었던 예지 특성 보유자를 과로사로 날려먹은 전적이 있기 때문에 만약 그녀의 이야기가 정부에 들어간다면 반쯤 사육당하는 느낌으로 부려먹힐 가능성이 높다.


최악이나 시온도 그거 때문에 예진이를 집에 들인 것이고.


"3시간 밖에 안둘러 봤는데 벌써 배고프네. 아까 떡꼬치 먹었던거 벌써  소화 됐어"


"지하에 식당가가 있던데 거기서 밥 먹고 다시 볼까요?"

"그러는 편이 좋겠습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었더니 출출합니다"

".......부실해요? 양푼에 시리얼 말아먹던게?"


"어차피 살 안찝니다"


"루리도 살 같은거 안쪄"


"그러다기 큰일나요. 갑자기 뱃살이 생긴다던가"

"그래도 그이는 더 좋아할겁니다"


"와, 사장 아저씨 이상성욕 개쩐다"

자리에 없다고  매도 당하고 있다!

아무튼 지하의 식당가로 내려가지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들이 풍겨왔다.

가장 강렬한건 빵 냄새였다. 이미 완제품을 파는 빵 가게도 있었지만 방금 만들어서 내놓는 가게도 있었기 때문에 고소하고 향긋한 빵 냄새에 절로 끌려간다.


"갑자기 빵이 땡기네"

"빵은 간식이지 밥이 아닙니다"

"외국에서는 빵이 주식이잖아요?"

"그거야 외국이고 한국인은 밥을 먹어야 합니다"

"겉보기에는 은발 외국인이 그런 소리 해봤자 설득력이 없는데"

"샤브샤브 먹겠습니까?"


"고기는 항상 옳다!"


지하 식당가에는 여러 종류의 점포들이 들어서 있었지만 개중에 테이블에 앉아 1명이서 먹기 좋은 형태의 샤브샤브 점포가 있었다.

인덕션 레인지로 끓여서 먹을 수 있게 되어 있어서 바로 앞에서 끓여 먹을 수 있는 형태라 혼자서 먹어도 좋고 일행끼리 눈치 보지 않고 먹을 수 있어서 좋다.


"요즘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옛날에는 바깥에서 이렇게 샤브샤브 먹을 수 있을지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시온 언니 보면 사장 아저씨 마누라 맞단 말이야. 가끔 아재틱한 소리를 하네"

"제 동년배들 집에서 다 델몬트 유리병을 물통으로 씁니다"

".........?"


".........?"

"둘 다 델몬트 유리병이 뭔지 모릅니까?"


"그게 뭔데요?"


"......옛날에 오렌지 주스 같은거 큰 병은 유리병에 담아서 팔았습니다. 그거 깨끗이 씻어다가 물병으로 썼습니다"

"정수기는 어쩌고요?"

"그 시절에는 정수기보다 그게 더 보편화 되어 있었습니다. 어지간해서는 수돗물 그냥 마시던 수준이니 말입니다"


단지  식수를 그냥 마실  없다고 의심되는 사건이 터지고 정수기 회사가 등장하면서 정수기가 널리 공급되는 계기가 되었다.


루리와 예진이가 시온을 보면서 도대체 언제적 이야기를 하는거야, 하는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네, 뭘로 드릴까요?"

"일단 소고기 샤브샤브 세트 3인분으로 주십시오. 그리고 고기 추가해서"

각자 나란히 앉은 세사람은 이윽고 금방 세팅된 반찬과 인덕션 위에 올라가는 냄비를 보고 조금 놀랐다. 주문 하고 나서 바로 나왔는데, 아무래도 먼저 그릇에 담아서 준비를 하기 때문인것 같다.


오히려 주문한 것이 나오는 시간보다 냄비의 육수가 끓는데 걸리는 시간이 더 길었다. 성질 급한 루리는 벌써부터 야채나 버섯 종류를 넣어서 익히기 시작했다.

"벌써 넣습니까?"


"야채 같은건 먼저 넣어야지 육수가 우러나오지 않나? 우리 집에서 그렇던데"

"하지만 데쳐먹는 편이 영양분 손실 없이 더 잘 섭취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육수에다가 칼국수까지 해서 국물까지 싹싹 먹을 것 같은데 그거 의미 있어요?"


"아, 그것도 일리 있습니다"

"샤브샤브는 언제나 옳다!"

육수가 끓기 시작하자 일단 야채부터 건져서 먹는다. 나름 신경쓴 육수인지 최악의 요리 솜씨에 길들여진 시온이 맛보기에도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애초에 시온은 사람이 못먹는거 아니면 다  먹는다. 맛있는걸 좋아하는 미식가이기에 위로 한도는 높지만 아래로도 한도가 생각보다 낮다.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건데. 샤브샤브 같은건 고기가 얇아서 익혀도 얼마 안되니까 한번에 퍼부었다가 한번에 건져서 후루룩 먹어보고 싶었어"


"그럴거면 차라리 이런데가 아니라 좀 더 큰 샤브샤브 가게로 가는 편이 나을겁니다. 다음에 한번 갑시다"


"오늘은 이걸로 참아야징!"

루리가 추가로 나온 고기를 전부 자기 냄비에 들이부었다. 차돌박이 같은 비싼 부위는 아니지만 샤브샤브 용으로 둥글게 말리듯 썰려 있었기 때문에 냄비 위로 작은 동산마냥 고기의 산이 쌓였다.


하지만 점점 육수에 익혀지면서  부피가 줄어들었다. 어쩔 수 없는 물리법칙이다.

"분명  처럼 보일만큼 고기를 퍼부었는데 정작 익혀서 건지니까 한젓가락 분량이네. 슬퍼라"

"그래도 맛있으면 됐습니다"


"감질나서 그렇지!"


"그럼 고기  추가해요"


"근데 여기는 볶음밥 없어? 칼국수까지 먹고 볶음밥까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아마 편의성 때문에 없을겁니다"

따로 공깃밥이 메뉴에 있기는 하지만 냄비에 밥을 볶아먹는 볶음밥은 없었다. 회전률이 중요한 이런 가게 특성상 눌어 붙으면 설거지도 힘든 볶음밥이 메뉴에 오르긴 힘들다.


시온이 말한대로  먹고 싶거든 제대로  샤브샤브 가게를 가는 편이 좋을 것이다.


"점심 시간이라서 그런가? 사람이 갑자기 많아졌네"


"딱히 점심 시간 때문은 아닌걸로 보이는데요"

예진이가 슬쩍 둘러보자 조금 전만 하더라도 자리가 꽤나 비어 있던 옆 좌석들에는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남자 손님으로.

개중에는 시온 옆에 앉은 사람은 육수가 끓다 못해 눌어 붙어감에도 불구하고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옆에서 밥 먹는 시온을 보느라고 말이다.


"예쁜 사람은 밥 먹는 모습도 예술 작품이라더니"


"저도 나름 학교에서는 남자 애들한테 인기 많은데......"

"두 사람도 어디 가서 무시받을 외모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제가 넘사벽으로 예뻐서 그런겁니다"


"치사하게 팩트로 자랑하니까 비꼴 수도 없고, 우씨"

불을 줄였다고 하지만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냄비를 앞에 두고 있으니 매장 내부에 에어컨이 있어도 더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먹을 때마다 땀을 닦고 머리카락을 걷어 뒤로 넘기는 모습이 요염하다.

평소에는 인형 같은 모습이라서 조금 꺼려지는 부분도 지금만큼은 인간미가 엿보였다. 하기사 먹는건 인간에게 필요한 의식주 셋 중에 하나인 만큼 그럴 수 밖에.

여자 셋이서 성인 남성도 부담스러울만큼 해치운 세사람은 칼국수까지 2인분은 추가로 먹고서야 겨우 식사를 마무리했다. 그마저도 조금 부족한 눈치다.

"이제 후식을 먹어야지!"

"자고로 단거 먹을 배는 남아 있는게 정상이죠"

"아직 제 배는 절반도 안찼습니다"

"아니, 그건 좀"

셋 중에서 가장 많이 먹지는 않아도 두번째로 많이 먹은 시온이 말하기에는 좀 무서운 대사였다. 아, 가장 많이 먹은건 루리다.

"커피? 아이스크림? 아까 보니까 티라미수도 팔던데"


"그거 하나 먹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손바닥만한거 하나에 8000원이던데. 좀 비싸더라고요"

"그거 가지고 국밥 두그릇은 먹겠다!"


"아니, 거기서 국밥충이! 그래도 그런식으로 따질거면 국밥 밖에 못먹습니다. 비싸도 먹고 싶은걸 먹는게 제일입니다"


"옛날에 영등포 백화점 화재 나기 전에 거기 지하 식당가에서는 충무김밥 1인분 8000원에 팔던데......"


"그거 먹느니 차라리 국밥을 먹겠습니다!"


"아앗, 시온 언니 태세 전환이 우디르 급이군!"

디저트로 뭘 먹을까 생각하면서 걷다가 우유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다. 예진이가  가게를 가리키면서 제안했다.


"아이스크림 어때요?"

"메뉴는 나쁘지 않은데 상표가 별롭니다"

"왜요? 저기 무슨 이상한 기업이예요?"

"상표 자체는 만든지 얼마 안된건데  위에 기업이 문제입니다. 장사 안되니까 이름만 바꿔서 수작부리는거 보십시오"


예진이가 가리킨 아이스크림 가게 상표는 실제로 다른 유제품 브랜드 기업의 다른 이름이다.


여러가지 논란 때문에 문제가 되는 기업이라서 이미지가 말이 아닌데 그래도 장사는 해야하니까 저런식으로 상표명만 바꿔서 운영을 하는 것이다.


"저도 더러워서 저 기업 주식은 안샀습니다. 다른 가게를 찾아보도록 합시다"

"그럼 저기에 카페 하나 있는데 거기서 먹는건 어때요?"


케이크랑 커피를 파는 지극히 평범한 카페지만 파는 케이크가 눈에 띄었다. 커다란 홀 케이크를 잘라서 주기 때문에 시각적인 만족도가 높은 가게다.


특히나 그런 케이크 중에서 각 색으로 층층히 쌓아서 만든 무지개 케이크가 있어서 눈에 띈다.

"저거 먹어보고 싶었는데. 근데 엄마가 색소 많이 들어간거라고 안사줬어"

"저런건 생각보다 맛 없습니다. 차라리 옆에 있는 크레이프 케이크를 먹는 편이 나을겁니다"

"아, 저것도 맛있지.....그렇지만 나는 한결같이 무지개 케이크를 먹는다! 내가 사는거 아니니까!"


루리는 불러서 온 사람인만큼 오늘 쇼핑하면서 돈 한푼 쓰지 않았다. 애초에 시온의 한도 무제한 블랙 카드는 이렇게 써도 별로 티도 나지 않는다.


달달함 플러스 달달함을 위해 커피도 아메리카노가 아니라 다른 것을 시켰다. 개중에 가장 덜 단게 카페 라떼인게 말 다했지.


"무지개 케이크......음, 무지 개같은 우리 오빠한테 무지개 케이크 먹여주고 싶네"

"......? 루리 언니 혹시 문과였어요?"


"아닌데, 나 이과인데"

세상에 맙소사! 문과 감성을 가진 이과생이라니!

누가 이런 괴악한 혼종을!!!

무지개 케이크의 가장 끝 부분을 포크로 잘라서 먹은 루리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보라색 맛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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