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6화 〉[라쿤맨 비기닝] (136/507)



〈 136화 〉[라쿤맨 비기닝]

최악이 영국으로 떠난 동안, 그의 집에는 시온과 예진이, 그리고 댕댕이만 남아 있었다.


그런 두 사람과 한마리의 일상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침이 되면 댕댕이는 낑낑거리면서 시온의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얼굴을 핥으며 알람 대신으로 깨웠다. 잠이 많아서 바로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댕댕이가 품을 파고들어 쓰다듬어달라고 조르면 잠이 깨어 품에 안고 침실에서 나온다.

"아, 일어나셨어요? 아침은 뭘로 드실래요?"

"귀찮으니까 시리얼로 때웁시다"

시리얼로 아침을 먹는다고 가벼운건 아니다. 시온은 어디 비빔밥이나 비벼먹을 법한 양푼에 그대로 대용량 시리얼을  정도 쏟아내고 거기에 1리터 들이 우유팩을 전부 들이 부었다.


메뉴 자체가 가벼워도 양이 무겁다. 그냥 봐도 3,4인분은 되어보이는 양이다.

"요즘 밥도 많이 드시는것 같은데 살찌는거 아니예요?"

"저는 먹어도 살이 안찌는 체질입니다"


"........앗, 방금 그거 여자들에게 공공의 적이 될 말인데"

"저야 신진대사를 조절할  있으니 먹는건 대부분 소화해버리고 가만히 있어도 운동한 것처럼 열량을 소모시킬 수 있으니 그런겁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어기지 않습니다"


"어쨌든 살이 안찐다니 엄청 부럽네요"


"예진 학생도 포스 유저라서 살이 잘 안찌는데 무슨 소립니까?"


포스 유저로 각성하면 대부분 잘생겨지거나 예뻐진다. 그리고 신체는 저절로 전투에 적합한 모습으로 변화한다. 각성 전에는 배가 불룩 나온 아저씨여도 각성한 뒤로는 배에 식스팩 있는 미중년으로 환골탈태가 가능하다.


시온이랑 예진이랑 메커니즘이 다르긴 하더라도 둘  살 안찌는 여성의 적인건 확실했다.

"저도 시리얼이나 먹을께요......아, 얼마 없는데 마트 가서 더 사와야겠네요"


"다음에 사올 때는 초코맛으로 사옵시다"


"너무 달지 않아요? 주로 아침에 먹을건데 초코맛으로 먹으면 물릴것 같은데요"

"다 먹고 우유가 초코 우유가 되는게 맛있습니다"


"그렇긴 하죠......그러고 보니 이번에 신제품 나온것 같던데"

"그 시리얼 브랜드는 일단 파맛 제품부터 나와야 합니다"

"......왠 파맛?"


"나오면 일단 설렁탕 국물에 말아먹을겁니다"


요즘 애들은 모르겠지만 아는 사람은 아는 부정 선거가 있다. 벌써 10년은 가뿐하게 넘은 이야기다.

.......그거 때문에 이미 그쪽 기업 주식을 사둔 시온이 대주주 권한으로 작업이 진행중이다. 단지 제품 개발에 시간이 들어서 아직까지 나오지 않을 뿐이지.

아침을 먹으면서 이야기 하다 시온이 최악의 귀국에 대해서 말을 꺼냈다.


"그이는 아마 내일 쯤 돌아올겁니다. 저쪽에서 일은  해결됐답니다"

"이미 TV에서 봤어요. 이번에는 테러 저지했다고 수근거리던데요?"


"덕분에 우리나라 정부만 신났습니다"


일단 신원을 모르는 마스터 유저라도 국가적인 이득을 불러오니까 신바람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당장만 하더라도 미국에서 한 일 덕분에 관광객이나 무역적인 이득이 꽤나 많다.

시리얼을 퍽퍽 퍼먹고 시리얼의 설탕까지 녹아든 우유까지 전부 마셔서 아침 식사를 끝낸 시온은 먼저 씻었다.

넓은 집이라 욕실도 두개. 덕분에 예진이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씻었다.

"오늘  하실래요? 주말이라서 기왕이면 외출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음.....원래 딱히 계획은 없었지만 그렇게 말한다면 옷이나 몇벌 사러 나가는 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습니다. 디폴트 폼일때 입을 옷은 널려 있어도 성장 폼일 때 입을 옷은 별로 없어서 사야합니다. 예진 학생 옷 빌려입고 나가는 것도 좀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괜찮은데요? 어차피 제 옷도  아주머니가 사주신거고"

"입으면 가슴이랑 엉덩이가 꽉끼고 허리가 헐렁합니다"

"........."


예진이가 짜게 식은 눈으로 시온을 보았다. 포스 유저로 각성해서 예진이도 몸매가 모델 데뷔할 정도는 되는데 성장 폼의 시온 앞에서는 그 빛이 흐려졌다.

같은 여자가 봐도 경외감이 드는 외모는 둘째 쳐도 몸매 마저도 완벽해서 태클걸 건더기가 없었다.


"그러면 백화점 가봐요. 운전은.....아, 성장 폼이면 아주머니가 운전 가능하시는구나. 차는 아저씨 람보르기니가 있으니까 그거 타고 가면 되겠네요"


"간만에 여자들끼리 쇼핑 좀 해봅시다"


최악이랑 있을 때는 살것만 사서 나오는 편이다. 물론 쇼핑하겠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같이 어울려주겠지만 최악이 싫어하는걸 시온이 할리 없었다.


거리가 있는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꺼려져도 가족끼리 쇼핑하는게 싫을리 없었다. 두사람은 각자 외출할 채비를 했다.

"아, 루리 언니도 부를까요? 주말이라서 쉴텐데"

"어차피 고3 스트레스 풀려면 쇼핑이 제격일겁니다. 옷 사준다고 꼬셔보십시오"

나이도 한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예진이와 루리는 저번에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졌다. 정작 당사자인 루리는 예진이를 올케로 찍어놓은듯 싶지만 말이다.


예진이가 루리에게 전화를 해서 초대를 하자 흔쾌히 오겠다고 했다.


[옷 사러감? 오키도키,  지금 바로 갈께. 그런데 어디서 살건데?]


"음......루리 학생을 픽업하기에는 차에 자리가 없으니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편이 나을겁니다. 영등포 어떻습니까?"

"어? 거기 백화점 화재로 불타지 않았어요? 아저씨가 나온곳이라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영등포? 거기에는 타임스퀘어도 있으니까 거기서 사면 되겠다. 아무튼 그럼 거기서 만나! 가는 김에 아빠 보고 가면 되겠다!]


영등포는 꽤나 의미 깊은 곳이였다. 최악에게는 라쿤맨으로서 처음 활동한 곳이고, 루리에게는 아버지인 하정욱이 영등포 소방서에서 일한다.

그들이 쇼핑하러  타임스퀘어에서 영등포 소방서까지는 과장 없이 걸어서 5분 거리다. 만약 횡단보도가 없다면 그마저도 걸리지 않을만큼 가깝다. 가는 김에 들러서 인사 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슬슬 출발합시다"

성장 폼으로 변한 시온이 키를 챙겼다. 이미 면허증은 있지만 디폴트 폼일 때는 신체구조상 운전하기가 힘들다, 좌석에 앉아도 엑셀과 브레이크에 발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두사람은 인근 상가 건물 지하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집에 따로 주차장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대신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주머니라면  몇대 정도는 가볍게 주차할 그런 집 같은 것도 지을  있지 않아요?"


"지을수야 있지만 그이가 싫어합니다"

"왜요?"


"집이 크면 서로 같이 있을 기회가 줄어든다고 해서 그렇습니다"


"......왜 갑자기 입에서 단맛이 나지. 아메리카노가 땡기네"

"신혼부부에게는 당연한겁니다"


람보르기니가 경쾌한 엔진 소리를 내면서 시동이 걸렸다. 시온은 능숙하게 엑셀을 밟아 출발하고 빠르게 주차장에서 나와 큰길로 들어갔다.


슬슬 9월 중순이 되어가며 변하는 날씨는 조금씩 가을 분위기가 나고 있었다. 햇빛의 뜨거움은 조금이나마 식었고 에어컨 바람보다 달리는 차의 창문을 여는 편이 더 빠르고 편해졌을 정도다.


창문을 열고 달리는 차 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온다. 아마 월말이 된다면 본격적으로 가을 날씨가 들어설 것이다.

"날씨 좋네요. 태풍 소식도 없고 시원해서 매일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아직 여름 날씨가 남아 있어서 일교차가 큽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는거고요. 그래도 한창 푹푹 쪄서 땀에 쩌는 것보단 낫잖아요?"


"그이는 땀에 젖은걸 더 좋아합니다"


"아! 미성년자 앞에서는 야한 이야기 하지 마요!"


"어차피 다 알고 있으면서 뭘 그럽니까? 요즘 세상에 성적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애들은 없는 법입니다. 중학생만 되어도 알거 다 아는 판에 순수한척 하면 내숭쟁이 소리를 듣습니다"


"한창 부부 금실이 좋을때니까요.....밤에는 아저씨가 막는건지 소리는 하나도 안들리는데 뒷처리한거 보면 장난 아니던데요. 남자들은 보통 그래요?"


"울 남편이 개쩌는겁니다"


예진이가 있는걸 배려해서 두사람이 밤에 오붓한 시간을 보낼 때는 소리를 차단해서 들리지 않게 한다.

 자체의 방음도 시온이 일부러 신경써서 지었기 때문에 어지간한 소음도 막을 수 있지만 포스 유저라 오감이 뛰어난 예진이라면 들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엿보지 않는 이상 예진이가 두사람의 밤일을 볼 수 있을리 없지만 그 뒷처리한 모습은 볼 수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바닥이 보이던 종량제 봉투를 3분지 1정도 가득 채운 비릿한 냄새의 휴지들을 보면 대충 예상은 가는 법이다. 더군다나 그 휴지들이 전부 축축하다면 더욱 느낌이 와닿는다.

"예진 학생. 누가 저한테 수작 걸거든 딸인척 해주십시오. 그러면 어지간한 사람은 떨어져 나갈겁니다"


"네? 아주머니 외모면 누가 그러는건 당연하긴 할텐데  갑자기......."

한창 잘 가다가 난데없는 말에 예진이가 의문을 표했지만 이윽고  그런 말을 했는지 납득했다.

창문을 내리고 달리니 시온의 외모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사진을 찍거나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람보르기니 같은 보기 드문 스포츠카가 지나가니 시선이 쏠리고, 이윽고 그 운전석에 눈을 주니 거기에 있는 미모의 여성에게 시선이 가는건 어쩔 수 없었다.

"오, 안녕하세요? 혹시 시간 괜찮으신가요?"


신호 기다리던 찰나, 옆에서 차 한대가 붙어서 창문을 열고 누군가 말을 걸어왔다. 차에 달린 엠블럼을 보면 익숙한 삼각별이 달린 유명 고급 외제차 브랜드지만 그녀가 현재 타고 있는 람보르기니에 비하면 손색이 있었다.


아니, 회사의 격의 문제가 아니라 가격의 문제다. 한대에 수십억씩 하는 차량은 전 세계를 뒤져도 아래에서 세는 것보다 위에서 세는편이 빠르다.

"딸 아이  사주러 가는 길이라서 안되겠습니다"


"네?"

"엄마, 파란불이예요. 얼른 출발해요"

눈치 빠른 예진이가 슬쩍 엄마라고 부르자 말을 걸었던 남자는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봐도 20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미모의 여성이 미성년자라고 해도 거의  큰 아이를 자식으로 두고 있다는건 눈 앞에서 봐도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그를 무시하고 바뀐 신호를 따라 출발하여 상황을 넘겼다. 다시는 수작부릴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와, 예뻐도 좋은건 아니구나. 아주머니가 나가면 저런 사람들 많아요?"


"그래도 성장 폼일 때가 낫습니다"


"왜요? 나도 예뻐지는건 좋겠지만 그래도  가다가 노골적으로 헌팅 당하는건 별론데"

"성장 폼일  수작거는 사람들은 평범한 변태지만 디폴트 폼일  수작거는 사람은 수상한 변태입니다"


"아, 그러네"


가끔 있다. 아무리 봐도 초등학생인 디폴트 폼의 시온에게 흑심을 품는 사람들이.


시대상이 중세로만 넘어가도 조혼 같은게 있으니 거기는 그나마 그 시대상 때문이라고 넘길 수 있지만 현대 사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어린이에게 욕정을 품는 변태 새끼는 존재한다.

"어린아이한테 욕정하는건 2D로 충분합니다. 3D에 발을 들이는 순간 패죽여도 괜찮습니다"


"뭐야, 그러면 야자 하고 오다가 덮치는 사람 있으면 패도 되요?"

"김 변호사님 있으니까 걱정말고 패십시오"

"우와, 빈말로라도 적당히 하라고  줄 알았는데"


두사람이 이야기 하다보니 어느새 영등포에 도착했다. 화재 때문에 무너진 백화점 건물은 잔해만 치워진 모습으로 아직 다른 계획이 없는지 공사를 한다거나 하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단 주차장에다가 세워두겠습니다. 루리 학생은  다음에 합류하기로 합시다"


영등포 역 인근에 세워져 있던 큰 백화점 두개 중 하나가 무너졌으니 장사가 잘 되는건 남은 하나다. 그거 때문에 항간에서는 라이벌 기업에서 화재를 일으킨거 아니냐는 음모론이 돌기도 했지만 너무 터무니 없어서 금새 사라진 소문이다.

화재의 원인을 알고 있는 사람은 정부에서도 얼마 없다. 그리고  얼마 없는 사람은.....양심을 돈에 팔아넘긴 자들이다.

시온이 그들을 처리하는건 쉽지만 애초에 신경  가치도 없는 자들이다. 알고 있는 것도 적고 아틀라스와는 직접 만나기는 커녕 연락만 주고받는 자들이라 정작 아틀라스의 뒤를 쫒는데는 쓸모가 없다.


"앗, 여기!"


"루리 언니, 아침 안먹고 나왔어요? 왠 떡꼬치?"


"요 앞에서 팔던데 갑자기 땡겨서. 자고로 여고생의 피는 떡볶이 국물로 이루어져 있는 법이지"

"루리 언니는  가르면 순대가 나오겠어요"


"앗, 순화된 표현이야, 아니면 내가 아는  순대야?"

타임스퀘어 건물 내부에서 합류한 세사람은 재잘재잘 떠들면서 천천히 걸었다.

루리나 예진이만 하더라도 포스 유저이기 때문에 미모가 뛰어나서 사람들의 시설을 끌어 모으지만 그 가운데 있는 시온이 너무나 넘사벽이였다. 더군다나 눈에 확 띄는 은발인 만큼 더욱 사람들의 눈이 그녀에게 향했다.

"보통은 같이 있어야 그 미모가 더 살아난다구! 하면서 다시보니 선녀같다! 그래줘야 하는데 시온 언니는 그냥 봐도 선녀같네. 우리들이 쩌리가 됐어"

"아는 선녀가 한명 있기는 합니다"

"어? 진짜?"

"음.....과연 용왕의 딸은 선녀인지 아닌지 구분이 애매하지만 일단은 구름 타고 내려오기도 하니까 비슷합니다. 요새 결혼 했다고 듣긴 했습니다만"

"뭐야, 날개옷이라도 도둑맞았대?"

"반대로 쇼타 신선 하나 낚아서 결혼한겁니다"


"호고곡, 오네쇼타라니. 뭘 좀 아는 선녀님이네"


건물은 5층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옆에 있는 다른 백화점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화재로 불탄 영등포 백화점보다 크고 품목도 많았다.

시온도 자기 자랑만 하는 여사님들 소모임보다는 이렇게 마음 편하게 이야기 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떠들면서 쇼핑하는 자리가 더 편하다.


"근데 옷 사준다고 해서 나왔는데 한도는 얼마까지임?"

"진정한 듀얼리스트는 자신이 뽑을 카드도 결정하는 법! 나의 턴! 드로!"

"아니, 거기서 데스티니 드로우를!"


"한도 무제한 블랙 카드!"


"한장 짜리 엑조디아가 나왔다!"


예진이만 병신 보는 눈으로 두사람에게서 두발자국 정도 떨어져서 지켜보았다.


듀얼은 중대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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