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2화 〉[라쿤맨 비기닝] (132/507)



〈 132화 〉[라쿤맨 비기닝]

상황은 정리가 되었다. 진압 대원들은 빠르게 VIP들의 구속을 벗기고 폭탄 조끼를 해체했다.


그리고 현장에서 빠져나가기 전에 여왕님이 잠깐 감사 인사를 건냈다.

"정말 고마워요, 라쿤맨. 덕분에 살았습니다"


"뭘요 여왕님. 아, 예법같은건 잘 몰라서 무례해도 이해해 주시길"

"걱정마세요. 왕실의 은인에게 그런걸로 타박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90세가 넘은 노년의 여성.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희미하게 느껴지는 고귀한 분위기는 여왕님이란 것을 부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사람 종종 보긴 했는데 주로 중세 시대 정도였지 현대 시대에 이만한 사람이 남아 있다는건 신기하다.

"같이 돌입한 가웨인이 메인 홀에 붙잡혀 있던 일반인들을 구출했다고 해요. 아마 상황은 마무리가 될겁니다"

"아, 그 아이도 같이......알겠어요. 그러면 나중에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보도록 하죠"

"저는 먹을거에는 까다로워서요. 맛있는걸로 준비해 주세요"


싱긋 웃으면서 빠져나가는 모습에 이런 상황을 겪고도 멀쩡한걸 보면 여왕같은건 아무나 못하는듯 보인다.

과연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걸까.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걸까.


"끄, 으으......."

"뭐야, 아직 살아 있었냐?"


어디선가 희미하게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가 아직 살아 있나 했더니 윌리엄 러벗이였다.


솔직히 놀랐다. 한두발 급소에 맞은 다른 테러리스트들이라면 몰라도 거의 걸레짝이 될 정도로 총에 맞았는데 살아 있다는게 신기하다. 솔직히 내가 봤어도 죽은줄 알았는데.


머리야 방탄모를 쓰고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심장에만 하더라도 세발은 맞았다. 이래도 살아 있으면 그건 좀 이상한데.......


"유언이라도 하고 죽으려고?"

"내, 가......"


마지막 가는 길에  말이 있다면 들어줄  있다. 이렇게 미련하게 유언 남기려는 애들은 안들었다간 나중에 괜히 생각나서 궁금해진다.

"왜...네 녀석 말....에 놀아줬...는지 아....나?"

".......?"

한순간 불길한 느낌이 등을 타고 올랐다. 나는 염동력으로 주변에 있던 진압 대원들을 붙잡아 당겨서 놈의 주변에서 떼어냈다.

극렬한 라프 에너지가 흘러넘친다. 여태까진 내가 겪어봤던 다른 그 어떤 적성종보다도 강한 라프 에너지가!!!

"시간을.....끌기 위해서다!!!"


"너 이 자식! 그 전부터 도핑약을?!"

우리가 처음 진압하러 들어갔을 때, 놈이 VIP 뒤로 숨었던 찰나 그때 녀석은 도핑약을 사용했을 것이다. 그때가 아니라면 사용할 틈이 없었다.


나랑 이야기 했던 것도 가웨인까지 죽이려고 그가 궁전 안에 있는걸 파악하려  이유도 있지만 도핑약의 효과가 나타나는걸 기다린거다.

VIP가 구속되어 있던 의자 근처에 유리로 된 앰플 같은게 부서져 있는걸 발견했다.

그것도 3개씩이나.

"으아아아아! 끄아아아아! 아아악!!"


놈의 몸은 마구잡이로 비틀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몸은 걸레라고 치고 쥐어짜도 저렇게 격렬한 변화를 일으키지 않을것 같았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뒤로 빼낸 진압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야! 니들 도망쳐! 이거 상황이 장난 아니야!"

"그, 그렇다면 지원을! 나이트 가웨인에게......"

"그 녀석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미국에서 나타났던 인간형 적성종은 미국의 포스 유저인 제이콥의 실력으로는 잡을 수 없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녀석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다.


몸이 비틀리고 뼈가 으스러지는 변이 속에서도 눈은 똑바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동공조차 알아볼  없지만 붉은 안광을 뿌려대는 눈은 증오가 가득해 보였다.

"네놈이 싫어"


명백한 '부정'이였다.


문득 그 순간 스쳐지나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여태까지 아틀라스의 실험체가 되어서 적성종으로 변이된 사람들은 전부 타의로 그런 짓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감수하고서 라프 에너지의 기원에 맞는 '부정'의 감정을 품는다면......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괴물이 탄생한다. 아무리 평범한 수준으로 펼친 역장이라고 하지만 그런 나를 물러나게 만들 정도의 라프 에너지가 휘몰아쳤다.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데미지를 줄 수 없다는걸 생각하면 그냥 뿜어내는 라프 에너지게 그만한 힘이 있다는 증거였다.


놈을 중심으로 폭풍이 몰아친다. 그리고 폭풍에 떠오른 주변에 있던 테러리스트들의 시체가 그 중심으로 끌려들어갔다.


같은 포스 유저의 시체. 그리고 놈의 감정에 호응된 라프 에너지.


"이 새끼가 어디서 2 페이즈를 들고 와서......!!"

막대한 양이 응집된 라프 에너지와 가이아 포스가 서로 융합된다. 불안정하지만 최소한 여태껏 봤던 그 어떤 아틀라스의 실험체보다는 훨씬 진보된 형태였다.


이윽고 놈의 육신이 완성되었다. 뼈가 우득거리던 소리가 멈추고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괴물이 된 윌리엄 러벗의 모습은 마치 인간에게서 뼈와 살의 위치를 바꾼 것 같았다. 좀 더 쉽게 말하면 인간은 보통  안에 뼈가 있는 내골격인데 놈은 게나 가재 같은 외골격으로 변했다는 소리다.


뼈와 같이 새하얀 외견.  하나 다른 색이 있다면  부분에 구멍이 뚤린 부분에서 나오는 붉은색 안광이였다. 얼핏 언데드인 스켈레톤과 같아 보였지만 인간의 골격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마치 흰색의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관절 부위만 움직일 수 있게 되어 있고 그 외에는 전부 밋밋한 그런 꼭두각시 인형 말이다.

따각, 따가각!

놈이 조금씩 움직이자 뼈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이 새끼  심상치가 않다.

"도와주러 왔습니다!"

"아니, 좀 오지 말라고!!!"


그때, 빠르게 뛰어온 윌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놈의 붉은 눈이 빛을 뿜었다. 안광 같은게 아니라 진짜 빔처럼.


키이이잉!!!

쏘아진 빔은 윌에게 직선으로 뻗어갔다. 그는 재빠르게 방패를 들고 막았지만  충격에 의해 튕겨나가는게 고작이였다.


하지만 내심 칭찬해주고 싶다. 적어도 방패가 관통당하지는 않았으니까.


벽을 관통한 빔은 격렬한 폭발을 만들어냈다. 어디  붙을만한 것을 건든게 아니라 자체 파괴력이 그 정도였다.


눈 앞에서 일어나는 화마와 폭발을 보면서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예진이가 봤던게 바로 이거였던 모양이다.


 * * *




이 세상에서 힘의 손실 없이 순수하게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의지'다.

말하자면 자신이 생각하는대로 이 세상에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며 다른 이능력에 기대지 않고 순수하게 뜻으로 힘을 쓰기에 조금의 손실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기 시간이나 공간 같은 때문에 상위 개념에도 쉽게 간섭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다른 이능력들이 있다. 개중에서 그 다음으로 효율이 좋은건 영력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고만고만하다.


이 세상에 모든 이능력은 크던 적던 영자(靈子)를 포함하고 있다. 흔한 마나나 내공도 물론이요 가이아 포스나 라프 에너지도 마찬가지다. 순수한 물리법칙에서 발생된 에너지가 아니라면 그 어떤 이능력이던 영자를 포함한다.


영자란 영혼을 이루는 최소 단위다. 세상의 근간이 되는 차원 3대 물질중 하나이며 감정에 호응해 응집하거나 변형된다. 그래서 이능력이 인간의 감정이나 의지에 반응해서 움직이는 것이기도 하고.

하지만 이능력이라도 다 같지 않고 저마다의 특징이 있다. 그 중에서 라프 에너지는 '부정'에 기원을 둔걸로 추측하고 있었다.

일반적인 적성종은 라프 에너지를 그저 가지고 있고 최소한의 한도, 즉 물리 내성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저번에 미국에서 봤던 초대형 적성종이나 인간형 적성종부터는 달라진다.

초대형 적성종만 하더라도 내가 물리로 패는데 지장이 있었는데 인간형 적성종은 본격적으로 라프 에너지를 사용해서 중력을 부정해서 날아다니는 능력을 갖추었다.


그렇지만 지금  앞에 있는 놈은  이상의 괴물이 되었다. 라프 에너지 뿐만이 아니라 가이아 포스까지 겸비한 아틀라스의 목표나 다름없어 보이는 괴물이 말이다.

"뭐....?"

"얼 빠져 있지 말고 뒤로 물러나!"

나는 폭발에 휘말릴뻔한 윌을 잡아서 내 뒤로 끌어당겼다. 역장의 범위를 넓혀서 폭발에 휘말리지 않게 붙잡았다.

[오오오! 오오오오오오오!!!]


"발성기관도 없는 주제에.....!"

윌리엄이였던 것은 라프 에너지를 통해서 의지를 전달했다. 하지만 거기에 담긴 의미는 그저 이성없는 괴물일 뿐이다. 강렬한 부정의 의지에 휘말려서 자아는 날아가 버리고 남은건 오로지 그 잔재인 사념 뿐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사념이 문제였다. 놈의 기원은 '부정', 그 중에서도 나를 향한 부정이였다.

[오오오오오오오!!]

"이경진 아저씨 다음으로  진심 나오게 만든 놈은 네가 처음이구나"

초월자에 발을 들인 수준이라면 나도 힘 좀 쓸 가치가 있다. 여태까지 내가 힘 좀 썼다고 생각될만한 일은 기껏해야 이경진 아저씨랑 처음 만났을 때 싸운거랑 미국에서 인간형 적성종을 조질 때 정도밖에 없었다.

쿠우우!

묵직한 라프 에너지가 놈의 손에 집중된다. 그리고 거기에 가이아 포스 특유의 특성이 섞여서 발화나 폭발 계통으로 추정되는 힘이 발현된다.


놈의 손에서 고속으로 사출된 에너지 구체는 눈 한번 깜빡일 사이도 없이 우리 코 앞에 도달했다. 나는 주먹을 쥐고 그대로  구체를 후려쳤다.


콰아아앙!!!


"크악?!?"


여파에 휘말려서 윌이 고통스런 소리를 냈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내가 역장 좀 쳐줬으니까 죽을 정도는 아닐거다. 본인 방어력도 있으니 운 나빠야 중상이겠지.

"라쿤맨! 저놈은 도대체 뭡니까!"


"윌리엄이였던거"


"네? 저요?"


"아, 맞다. 너 이름이 윌리엄이라고 했었지. 아니, 아무튼 그거 말고 테러리스트 보스녀석!!!"


방금 그걸로 건물의 일부가 날아갔다. 아마 바깥에서도 이미 사태를 파악했겠지. 그렇다면  더 부서져도 딱히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예를 들어서 버킹엄 궁전이 반파 된다 하더라도 내 책임 아님ㅎㅎ, 하고 넘길 수도 있다는 소리!!!


"이 새끼 미국에서 나타났던 녀석보다 쌔서 어중간한걸로는 안돼! 큰거 먹어야 하는데 궁전 좀 날아가도 괜찮냐?"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저런게 바깥으로 나간다면 인명 피해가 크게 날겁니다! 궁전이 무너지더라도 여기서 쓰러트리는 편이 낫습니다!"


"새끼 맘에 들었다! 요즘 세상에 자기 입으로 책임지겠다는 사람 별로 없는데 말이야!"


현 사회에서 책임은 손해를 입는다는 단어와 상통하기에 그 이름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당장 높으신 분만 하더라도 뭔일 생기면 자기 안위 챙기고 자리에서 물러나는걸로 책임 진다는 개소리를 잘 하잖아. 정말로 책임지고 싶으면 자살이라도 하던가.


키이이잉!!!

놈이 다시금 눈에서 안광을 빛내며 빔을 쏘았다. 나는 그런 놈의 빔을 손으로 막으며 그대로 앞으로 걸아나갔다. 손에 부딪혀 사방으로 방사되는 빔은 궁전의 천장과 바닥을 헤집었고 그 결과 건물이 무너지기 일보 직전까지 가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딜!!!"

콰아아아아아앙!!!

나는 거리를 어느정도 좁히자 그대로 놈의 면상에 주먹을 날려 후려쳤다. 역장을 통해서 충격량을 증폭했는데도 불구하고 놈의 몽달귀신 같은 새하얀 안면에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내구도도 튼튼하지만 그보다 라프 에너지가 놈의 전신을 휘감다 못해 나랑 비슷하게 희미한 역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오오오오!]

"좀 시끄럽다고 새꺄!"

쿵! 쿵! 쿠우웅!!

인간이였을 적의 급소 부분에도 몇방 더 갈겼지만 아무래도 역장 때문인지 어디든 마찬가지로 제대로 데미지를  수 없었다. 내가 역장  때는 몰랐는데 이거 은근 빡치네.

내가 공격한 충격 덕분이였는지 안그래도 여태까지의 여파로 무너지기 직전이였던 건물이 불안한 소리를 내며 무너지기 시작했다. 위에서 수백톤의 무게의 건물 잔해들이 떨어지면서 우리들을 짓눌러오려고 한다.


쿠우우우!!

그걸 알아차린 놈은 양손을 뻗어 아까와 같은 에너지 구체를 발사했다. 아까보다 더 큰데다 더 압축되어 파괴력은 배 이상으로 예상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놈의 몸이 안정화되가고 있었다. 육체의 구성뿐만이 아니라 라프 에너지와 가이아 포스의 융합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지금의 녀석은 갓난아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성인이 되었을 때의 무력은.......일단  쓰지 않으면 못잡을것 같다는데  오른팔 건다.


[오오오!!!]


놈은 무너지는 건물 잔해를 박살내고 천장을 꿰뚫어  위로 날아가 붕괴 현장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시선은 끝까지 나를 향해 있는게 느껴진다.

남아있는 사념은 나를 기반으로 해서 내 존재를 말살하려고 하고 있다. 윌리엄 러벗이 남긴 부정의 감정은 나를 죽이고 나면......그 다음이야 뻔하지. 그놈이 뭘 했었는지를 보면 될테니까.


"건물이 무너집니다!"

"탈출해야지! 뭘 꾸물거려?"


"전 못나는데요!"

"......에이씨, 일단 잡아봐! 일단 탈출해야지!"


마스터 유저 놈들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윌리엄은 비행이 불가능한 포스 유저인듯 하다. 하기사 방패를 쓰려면 땅이랑 접촉해야 하는 쪽이 편하니까 그런쪽으로 성장했어도 납득은 간다.

나는 놈이 탈출하면서 만들어낸 천장의 구멍으로 따라 올라가면서 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스탠드 파워 전개다 짜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배경을 고르라고 해봤자 이탈리아겠지만 말이야!

네놈은 몇부 보스꼴로 만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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