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라쿤맨 비기닝]
내가 사회 구조를 판단할 때 외에는 비교적 어린애 같아 보여도 그래도 정신연령은 꽤나 많다. 나이는 안세고 있지만 못해도 수천살은 먹었겠지.
그렇다 하더라도 미친놈 마냥 초등학생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막 연하 취급하지는 않듯이 사회에 녹아들만큼 조절을 하는 법이다.
물론 얼굴 가리고 내 나이도 모르는데다 나이 차이도 별로 안나는 사람한테는 은근슬쩍 형 취급 받고 싶기는 하다.
가끔 이러면 괜찮아. 동생 돌봐주는건 예전부터 종종 해서 좋아하거든. 나쁘다고 생각할지는 몰라도 그렇게 해서 동생으로 생각하는 애들은 내가 잘 돌봐준다.
백리를 봐라, 이미 가게 하나 물려줘서 사장 됐잖아.
"건물 같은거 하나 주면은 고딩도 형으로 부를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널려있는데"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별거 아니야. 그냥 한국에 있는 동생이 잘 있나 싶어서"
"동생이 있으십니까?"
"친동생은 아니고 친한 동생으로"
테러 진압팀은 전원 포스 유저로 구성되었다. 애초에 상대가 포스 유저라면 같은 포스 유저가 아니고서야 상대가 힘든 법이다.
숫자는 40명. 그 중에서 20명은 나를 지원하고 20명은 윌을 지원하기로 했다.
"적은거 아닌가 모르겠네"
"마스터 유저가 둘이나 됩니다만?"
"아무리 마스터 유저라도 손은 두개인 법이잖아"
나라면 몰라도 20명으로 70명에 가까운 상대를 제압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그 이전에 소수로 돌입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으니 어쩔 수 없지만.
다짜고짜 다수가 돌입했다가 눈치 까고 폭탄이라도 터트리면 어쩔건데.
들어가기 전에 뭔가 잊어버린것 같아서 잠깐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내가 뭘 잊고 있었더라......?
"아, 그러고 보니까 그 새끼들 이상한 도핑약 같은거 가지고 있을거야"
"도핑?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쓰면 적성종처럼 물리 공격이 안통해"
"........그게 정말입니까? 그런데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겁니까!?"
아니, 나도 솔직히 깜빡하고 있었지. 애초에 그걸 쓰던 말던 나한테 중요한건 아니라서.
하지만 자세하게 생각해보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물리 공격이 안통한다는 말은 결국에는 총기류로 싸울 수 없다는 말이야. 하지만 적성종처럼 가이아 포스를 이용한 공격은 통한다는거지"
"하지만 상대도 바보가 아니라면 총기를 사용할겁니다. 포스 유저에게 총기류는 취약하다는거 잘 알고 있잖습니까?"
"그거야 보통 포스 유저 이야기고"
나는 둘째치고 윌 정도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특히나 방어력 특화인 이 녀석은 내가 봐도 상당히 뛰어난 내구력을 가지고 있었다. 풀파워로 맘 잡고 막으면 내가 대충날린 주먹 정도는 막을 수 있을껄.
그렇다는건 총기류 외에도 폭발물에도 견딜 수 있을것이다. 아마 바로 옆에서 C4같은거 터져도 목숨은 건질 수 있겠지.
"그리고 그건 디메리트가 너무 많아. 알아본 바에 따르면 사전에 복용해야 하고 지속 시간도 짧은데다 일회용이야. 두번은 못써"
"더 쓰면 어떻게 됩니까?"
"확신은 못하겠는데 둘 중 하나겠지. 죽거나 적성종이 되거나"
"흠......"
아마 후자의 경우는 드물 것이다. 내가 인체실험 결과로 나온 성과물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해도 본게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인간이 적성종으로 변이하려면 체내에 주입된 라프 에너지의 양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포스 유저의 경우에는 그 한도가 높고, 거기에 더불어서 가이아 교의 은총 같은 것도 아니고 여러가지 절차를 더해서 만들었는데 더 많이 썼다고 적성종으로 변이할 수준의 약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라프 에너지 함량도 낮을테고.
별다른 변수가 있는게 아닌 이상 그 도핑약으로 적성종으로 변이할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까 말한대로 돌입하면 너는 일반인, 나는 여왕님과 총리. 알겠지?"
"폐하를 잘 부탁드립니다"
"근데 하나 궁금한게 있는데 네가 배고프다고 하면 여왕님도 막 배 터질 정도로 밥 퍼주고 그러니?"
"........."
"어? 그래? 정말로? 진짜?"
이 세상 어디를 가던 할머니는 다 똑같은 것 같다. 여왕님도 그런데 오죽하겠냐.
난 할머니 있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애초에 가족이라고는 내 위로는 있어본 적이 드물고 보통은 아래로 있었지. 시온을 빼고 가장 가까운 친족이래봐야 동생 정도일까.
잠깐 생각난 우울한 이야기는 관두고 얼른 진압 작전으로 넘어가자.
* * * *
작전 회의실에서 지도를 본 덕분에 내부 구조 파악은 쉬웠다. 아무리 기감을 사용해도 하나하나 파악하는 것보다 지도를 보고 파악하는 편이 더 이해도 빠르고 쉽다. 솔직히 구조 파악할 정도까지 집중하는건 귀찮아.
나한테 붙은 20명의 포스 유저들은 나름 실력이 괜찮은 녀석들이였다. 일반적인 포스 유저답지 않게 특수부대에서 일할법한 중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 총 들고 있는건 애교 같아 보인다.
두터운 방검,방탄복은 무게 따위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방어에만 집중했는지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였다. 자국의 마스터 유저가 방어 중시니까 이쪽도 마찬가지로 방어 중시로 나가는건가?
하지만 한대 맞을거 두대 맞아야 끝난다는건 나름 좋은 메리트다. 저만큼 두터운걸 입어도 포스 유저니까 행동에 큰 지장은 없을거다. 그러면 방어력 좋은걸 입는게 낫지.
"라쿤맨, 여기 통신기입니다. 주파수는 이미 맞춰져 있으니 쓰시기만 하면 됩니다"
"귀에 꽂을테니까 잠깐 뒤 좀 돌아봐 있을래?"
귀에 꽂는 형태의 통신기였다. 에어팟같이 생긴거 보면 요즘 기술 참 좋네.
대놓고 말하면 시온이 자기 기술이 더 좋다고 투덜대겠지만......그렇게 따지면 무공 중에 전음이나 혜광심어 같은게 더 좋다. 그런건 나도 쓸 수 있고.
"아아, 들리십니까?"
[아아, 들리십니까?]
"잘 들리니까 되도록이면 큰 소리는 내지마. 귀 아퍼"
대충 준비는 끝났다. 남은건 돌입 밖에 없었다.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아무런 요구 조건도 내밀지 않았다. 그저 조용하게 인질만 잡고 있을 뿐이였다.
우리들을 조급하게 만들 생각이라면 그 생각 잘 들어먹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테러범이 침묵을 유지하는 것만큼 불안을 불러 일으키는 것도 없으니까.
"만약 라쿤맨 당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진작에 혼자서라도 돌입했을지도 모릅니다"
"혹시 알아? 그걸 노렸을지도. 아무튼 놈들은 폭탄을 가지고 있을테지만 기폭장치는 분명 보스인 윌리엄 러벗이 가지고 있을거야"
".......이름이 같아서 심정이 좀 복잡하네요"
"그러니까 넌 윌로 불러달라는거 잘한거야"
마치 한국사람 이름이 김정은인거랑 비슷하다고 할까......대충 그런 느낌.
준비를 마친 우리들은 은밀하게 움직였다. 아무리 포스 유저라고 하지만 버킹엄 궁전같이 큰 건물의 침입자를 막는데는 능력보다 숫자가 중요한 법이다.
하지만 놈들고 그 정도 대비는 해둔 모양이였다. 창문을 통해 들어가기 전, 이쪽 분야의 기술을 익힌 진압 부대원 한명이 우리들을 제지했다.
"동작 감지 센서입니다. 아무래도 창문을 통해 들어간다면 저쪽에 알려지게 될겁니다"
"저거 말하는거지?"
나는 복도 끝 창문 옆에 붙어 있는 기계장치를 보며 물었다. 보이지는 않지만 적외선으로 감지하는 센서인 모양이다.
"그냥 저거 개별로 쓰는건가? 아니면 따로 중앙 통제를 하는 컴퓨터가 필요한거야?"
"후자 쪽입니다. 보안 업체 쪽에서 사용하는 물품이라서 따로 관리해주는 메인 프로그램이 필요하거든요"
"그러면 이야기가 쉽지"
센서가 바짝 붙어 있어서 유리창을 깨거나 하면 반드시 걸린다. 설령 유리창을 떼어낸다 하더라도 사람이 들어갈만한 틈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한테는 시온에몽이 있다고!!!
"어, 난데. 잠깐 도와줄래? 여기 센서 같은거 해킹 좀 해줘"
[이야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거 괜찮은겁니까?]
"뭐가?"
[제가 이야기 하는건 들리지 않겠지만 당신이 말하는건 통신기로 다 들리지 않습니까?]
아차, 하고 뒤늦게 그게 생각났다. 나 지금 테러 진압부대용 통신기를 끼고 있지?
마스크에 장착된 통신 기능으로 하는거니까 서로 다른만큼 시온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아도 누구랑 대화하는 느낌의 목소리는 들릴거다. 돌아보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전부 나에게 향해 있었다.
"라쿤맨?"
[아무튼 거기에 있는 센서는 제어권을 탈취했습니다. 꽤 준비를 많이 한 모양이지만 제 앞에서는 의미가 없습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창문을 하나 떼어서 입구를 만들었다. 센서에 손을 흔들어서 확인해보니 센서 자체는 작동하고 있더라도 감지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역시나 시온이야.
단숨에 센서가 무력화되어 반응하지 않자 다들 뭔가 기이한걸 보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뭐 물어볼거 있어?"
"방금 누구랑 대화하신겁니까?"
"라쿤걸"
".......아! 설마! 진짜로 있던겁니까?"
"그럼 없었겠어?"
미국에서 이미 시온의 존재를 파악하고 있었듯이, 어지간한 나라라면 라쿤걸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시온을 알고 있었다.
이 업계 전문가인 알리언 박사도 만들지 못한 최신형 차원진 감지기를 만들어서 뿌리게 만든 장본인이니 그럴만도 하겠지. 단지 그 존재에 대해서 확신하지 않았을 뿐이라서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기계는 둘째 치더라도 포스 유저의 기감에는 어쩔수가 없을거야. 그러니까 되도록이면 거리를 유지하다가 최대한 빠르게 진압해"
"라쿤맨 당신은요?"
"나한테 붙인다는 애들 데리고.......가서 조진다. 솔직히 그건 별 문제가 안되거든"
진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그런 놈들을 붙잡아야 한다는게 귀찮지.
나는 여태까지 살인을 저질러도 허용되는 범위에서 저질렀다. 예를 들어서 아틀라스의 실험체가 되어서 기존 신분이 말소된 사람들이나 아니면 아틀라스 소속이여서 할 수 없이 증거인멸로 행방불명 취급이 되거나 하는 사람들이 그 주를 이루었다.
가이아 교에서도 죽이긴 했지만 교주는 심연에 처박아서 시체 하나 남기지 못했고 사제들은 적성종으로 변이해서 어차피 죽여야 했을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한국에서도 공적으로 크게 잡으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미국에서 영웅이 되었기 때문에 국제관계 생각해서 더 그러는 느낌이 있지만 애초에 중범죄는 저지르지 않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잡으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국회의원 하나 조졌어봐. 아주 그냥 지랄맞게 잡으러 오고 들키는건 둘째 쳐도 용의자로서도 경찰서 들락날락거릴껄?
반으로 갈라 헤어지고 나는 여왕님과 총리 쪽을 구출하기 위해 진압 대원들과 함께 움직였다.
"내부에 들어왔는데 아직 나 말고 감지 특성 멀쩡히 돌아가는 사람 있어?"
"........없습니다. 상대 쪽도 상당히 뛰어난 수준으로 보입니다"
"하기사 20년 준비 했다고 하는데 그거면 더한 것도 준비했겠다"
시온에게서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건 단순한 테러가 아니라 복수가 목적이다. 두개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르다.
테러는 기본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그 관심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있다. 약자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빠르고 간단하다. 폭탄까지 안가도 그냥 칼 하나 들고 하면 되거든.
복수라고 한다면 더 위험하다. 괜히 자살 폭탄 테러란 단어가 있는게 아니듯 테러란 것도 자기 목숨 걸고 하는 놈들은 생각외로 별로 없는 법이다.
"일단 우리가 가는 길에 15명 정도는 일정 간격을 두고 경계를 하고 있는것 같은데......."
여기 궁전 내부 구조상 통로는 넓지만 우회하는 길은 별로 없다. 있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순찰을 돌고 있는 놈들의 기척이 느껴진다.
기억해둔 지도와 기척을 구분해서 최단 루트 겸 제일 적게 놈들하고 접촉하는 루트를 찾아보았다.
"이쪽으로"
"괜찮은겁니까?"
"기감도 허접한 것들이 좀 방해한다고 기척도 못느끼면서 의심은 더럽게 많네, 그치? 내가 더 강하냐, 니가 더 강하냐?"
"........"
아마 경계를 서지 않는 한두명은 따로 일정 반경에 다른 포스 유저들의 기감이 통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특성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더 안쪽에서 그 진원지가 느껴지니까.
조심스럽게 안으로 진입한다, 그리고 처음으로 테러범들과 조우했다.
숫자는 둘, 두명이서 팀을 짜서 혹시나의 경우에 대비하는 모양인데 나한테는 소용 없다. 여기서 가장 가까운 다른 놈들도 몇미터는 떨어져 있으니 누가 보는 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
염동력으로 놈들의 입을 막고 경동맥을 살며시 눌러주었다. 그러자 몇번 버둥거리다가 이윽고 몸이 추욱, 늘어진다. 나는 쓰러지는 소리가 나지 않게 놈들의 몸을 붙잡았다.
"이놈들 어디다 둘까? 들키지 않게 숨겨는 둬야지"
".......? 죽이지는 않는겁니까?"
"어? 보통은 제압하는거 아냐?"
"원래 테러리스트는 사살이 원칙입니다만......"
잠깐만, 그걸 왜 지금 말해?!
나는 주로 테러를 저지르는 쪽이였지 저지하는 쪽이 아니여서 모른다고! 아, 방금 라임 개쩔었어! 역시 문과라서 무의식적으로 이런 드립도 잘 나오는구나!
환생자여도 변하지 않는건 수포자라는 것. 시온이랑 같이 있어서 주워 들은건 있지만 내 평생 수학이랑은 그리 가까워질 수 없다. 그래서 항상 문과로 갔지.
"아무튼 죽여도 된다는거지?"
리미터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