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6화 〉[라쿤맨 비기닝]
한바탕 축제판이 벌어졌다. 돈을 딴 사람들이 대부분이라서 딜러도 당황하는 모습이 노골적으로 보일 정도로 혼돈의 도가니였다.
갑자기 도가니 하니까 설렁탕 먹고 싶어지네. 도가니 팍팍 넣은 뜨끈한 국물에 밥 말아서 깍두기 하나 얹어서 크으으으으!!!! 요새 느끼한 밥만 먹어서 그런게 땡기는 모양이다.
이런 카지노의 딜러라면 충분히 교육을 받았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기계가 아닌 사람인지리 수천만 파운드라는 금액 앞에서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또르르륵, 탁!!
"아, 죄송합니다!"
굴러가다가 룰렛에 들어갔어야 할 쇠구슬이 튕겨나왔다. 힘을 과하게 준 듯 하다.
하기사 딜러가 긴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책임 앞에서는 나약해지는 법이다. 하물며 자신이 평생 일해도 벌 수 없는 금액이라면 말이다.
거기에 더불어서 그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 외의 다른 이유가 있어 보이는데......나중에 신명나게 털릴것 때문에 그런건가?
실수 한번에 거금을 날리면 엄청 털리긴 하겠지.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딜러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이는데 다른 사람으로 바꾸겠습니다"
매니저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딜러를 바꾸는데 양해를 구했다. 슬쩍 중간에 나를 노려보는게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듯 하다.
그래서 뭐 어쩔건데. 그냥 카지노 운영하는거면 나도 이 지랄 안하고 그냥 냅뒀지. 근데 니들 뒷배가 범죄자들이잖아. 그럼 처맞아도 싸지.
여태까지 돈을 불리게 도와주었던 딜러가 빠져나가고, 단정한 복장을 차려입은 잘생긴 새 딜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응?"
그런데 그 딜러는 포스 유저였다. 서비스 장사 답게 웃으면서 다가왔지만 그 웃음에는 비웃음이 가득해 보였다.
이 새끼들이 개수작을 부리네? 물론 내가 먼저 시작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카지노가 이런 방법을 쓰면 되나, 애초에 도박이란게 카지노가 벌어가는 수익 구조인데 정작 한탕 한다고 이 지랄을 하는거야?
룰렛은 자석을 사용하거나 해서 조작하기 쉬운 종목이지만 그러면 들킬 염려가 있다. 하지만 구슬을 굴리는 딜러가 포스 유저라면 상황이 달라진다.
신체능력으로 어느 한 번호에 들어가게 만들거나, 아니면 일반인들은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포스를 사용해서 염동력으로 조작하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같은 포스 유저는 알 수 있지 않냐고? 애초에 포스 유저는 카지노 출입 금지다. 예전에 강원랜드 갔다가 크게 해먹은 포스 유저가 감옥 갔다는 이야기 듣고 법적으로도 그렇다는걸 알았다.
이 새끼들이 어디서 밑장빼기를 하려고? 그렇다면 나도 다 방법이 있지.
"이번엔 루즈!! 6500만 파운드 전부!!!"
"루즈! 루즈! 루즈!"
"잘한다 동양인! 카지노에 한방 먹여버려!"
"그럼 나도 전 재산 배팅한다!"
아니, 거기에 인생을 거는건 좀......제발 인생을 살아주세요!
아직도 옆에 있던 중년 남자는 다시금 걸어야 하나 고민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빠지려고 했다면 진작에 빠졌을 것이다. 지금 그의 눈 앞에는 수백만 파운드의 거금이 놓여 있었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성공하면 두배로 불릴 수 있다.
"........조심해, 저 딜러는 장난이 아니야. 젊어 보여도 내가 이 카지노에 들어올 때부터 있던 녀석이라고. 소문으로는 포스 유저라는 말도 있어"
"호오"
아까 이곳 딜러들의 습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했더니 누군지 알고 있는거 보면 거짓말은 아니였던것 같다. 알려주지 않았어도 상관은 없는데 있어서 나쁠건 없었다.
그런데 포스 유저라.....딜러가 포스 유저라면 수작 걸기는 쉬운 일이지. 그런 녀석을 속이는 것도 좀 어렵고.
나는 일단 밑밥부터 깔기로 했다.
"아저씨 말이 맞는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도 포스 유저로 보여"
"그런가?"
"저렇게 잘생긴 놈이 이런 곳에서 딜러나 하고 있을리는 없잖아?"
다른 쪽으로 나가도 될만한 외모인데 여기서 딜러질이나 하고 있다면 나름의 이유가 있는 법이다. 더군다나 저 아저씨가 10년이나 이 카지노에 있었단 말이 맞다면 상당히 오래 이 짓을 한다는 말이 된다.
아무리 포스 유저라도 특유의 신체능력과 포스 운용으로 습득이 빠른거지 막 처음부터 잘할 수 있는건 아니다. 특히나 이런 기술적인 부분에서는 말이다.
그러나 포스 유저가 시간을 들여서 한 기술에 매진한다면 기계보다도 더한 정확도를 자랑할거다. 원하는 칸에 쇠구슬을 넣는 것도 가능하겠지. 그쪽이 더 증거가 남지 않으니까.
어디 한번 해봐.
네놈 기술이 위일지, 내 확률 조작이 위일지. 승부는 안될테지만 비교는 해주마.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딜러가 웃으면서 게임 시작을 알렸다. 원래라면 구슬이 굴려질 때도 배팅을 할 수 있지만 이미 내가 거는 것을 보고 배팅할 사람은 다 한 뒤였다. 더 이상 할 사람은 없는것 같았다.
쇠구슬이 또르륵, 하고 굴려진다. 돌아가는 룰렛에서 이리저리 튕기며 맑은 소리를 내는 쇠구슬은 이내 어느 한 칸에 들어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숫자는 어차피 보지 않을거니까 생략하고......들어간 칸의 색은 붉은색였다.
"루즈으으으으으!!!!"
"됐다! 또 됐어! 이번이 17연승째라고!!!"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신다!"
"한번만 더! 한번만 더! 한번만 더!!!"
도박의 열기를 넘어 광기가 되어버린 주변은 축제나 다름없는 모습이 되었다. 내가 가진 돈도 1억 3천만 파운드 정도로 불어났지만 다른 사람들도 두배로 불어난 자기 칩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 와중에 주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딜러는 놀람과 분노를 내비치고 있었다. 일이 일인 만큼 그 모습을 대놓고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무표정한 얼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상당히 매서웠다.
오오, 무서워, 오오. 그러니 떡밥 좀 물어주련?
근데 1억 3000만 파운드면 얼마야......세상에 대충 2000억 정도 되네? 이야, 돈 참 잘 벌리는구만, 의미 없을만큼.
내가 이래서 도박이 싫다니까. 재미가 없어. 더군다나 불로소득이라서 더더욱 그래.
"이번엔 느와르. 1억 3000만 파운드 전부!!!"
"느와르! 느와르!"
"가자! 한번 더! 한번 더!"
"가즈아아아아아!!!"
사람들은 너도 나도 검은색에 걸었다. 솔직히 이런 좋은 판에 끼어들지 않는게 이상한 법이다. 밑져야 본전인 법이고 확률도 제법 높으니까.
근데 마지막에 말한 사람 누구야?
딜러는 한숨을 내쉬고 쇠구슬을 잡았다. 아까보다 더 진중한 표정으로 집중해서 돌아가는 룰렛에 쇠구슬을 굴려 던졌다.
스핀과 함께 돌아가는 룰렛에 부딪히며 튀기는 구슬에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집중된다. 그것이 어디로 들어가냐에 따라서 거금의 행방이 결정된다.
또르르르륵......!
그리고 이내 쇠구슬이 어떤 칸에 들어갔다. 아직도 룰렛이 돌아가고 있어서 사람들은 결과를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윽고 룰렛이 멈춰지고, 그들은 결과를 맞이했다.
검정색이다.
"하하! 하하핫! 으하하하하!!!"
"됐다! 으아아아아아!!!!"
"제로니모!!!"
"아까도 그렇고 이 중에 후비안이 있어!"
딜러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쁨에 겨워 소리를 질렀다.
괴성과 비명, 환호성이 흘러 넘쳤다. 내 돈은 2억 6000만 파운드로 무섭게 불어났으며 중년 남성의 돈만 하더라도 1300만 파운드가 되었다. 그 정도라면 어디 가서 노후 걱정 안해도 될만한 금액이다.
다들 기쁨에 잠겨있을 찰나, 딜러가 무섭게 나를 노려보면서 테이블을 넘어와 내 손목을 잡았다.
"이 사기꾼 자식!!! 네 녀석도 포스 유저지!"
딜러가 잡은 내 손목을 통해서 가이아 포스가 무섭게 흘러들어왔다.
일반인의 몸에 주입된 가이아 포스는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내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시간을 들여서 천천히 해서 몸과 융화되었을 경우다. 이렇게 갑자기 퍼부으면 포스 유저가 아니고서야 멀쩡할리 없다. 잘해야 한팔 못쓰는 정도겠지.
딜러는 내가 포스 유저란걸로 짐작하고 내가 포스 유저인걸 밝혀 내기 위해 이런 수단을 쓰는 것이다. 가이아 포스를 주입하는 김에 내가 가지고 있는 포스를 확인할 수도 있고, 만약 무사하다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포스 유저인 증거니까.
하지만 어쩌나.
나는 가이아 포스를 쓴다고 포스 유저가 아닌데.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사람들의 환호성 소리에도 묻히지 않을만큼 크고 격렬하게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개거품을 물면서 몸을 비틀며 고문받는 사람마냥 연기를 시작했다.
기쁨과 환호로 가득한 곳에 난데없이 절규가 흐르자 사람들의 시선이 몰린다. 그것 뿐만이 아니라 오늘의 행운의 여신이 미소짓는(다고 생각한) 나에게 시선을 주고 있던 사람들도 처음부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악! 아아아악!!! 아파! 아프다고! 끄아아아악!!!"
"이봐!!! 뭐하는거야!!!"
"아, 아니, 이건......"
딜러는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하기사 포스 유저인걸 확신하고 저질렀는데 정작 당사자가 포스 유저가 아닌걸 확인하자 무고한 사람을 공격한 행동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고삐리들 때문에 백리랑 경찰서 가서 안건데. 포스 유저가 일반인 폭행하면 중범죄라고 했지?
"저 딜러! 포스 유저야! 나한테 이상한 짓을 했어! 아파! 팔에 느낌이 이상해! 살려줘어어어어!!!"
"저 자식!!! 운 좋은거 가지고 이런 짓을 저지르다니!!!"
"W. 러벗 카지노도 한물 갔군!"
"당장 그 손 놓지 못해!!!"
포스 유저가 초인이라고 하지만 수십명의 사람들이 눈을 부라리며 다가와 압박하자 딜러도 할 수 있는데 한계가 있었다. 이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무력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건 해프닝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경찰에 신고해야 할 안건이다.
딜러는 하는 수 없이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나는 한층 더 오버하면서 땅을 구르며 팔을 감싸쥐고 고통을 호소했다.
"누, 누가 구급차 좀 불러줘! 파, 팔에 감각이 없어지는것 같아! 뜨겁고 차가워!"
"아는 사람이 포스 유저라서 알아! 저거 일반인에게 강제로 포스를 주입했을 때 일어나는 증상이야!"
"뭐? 딜러가 그런 짓을 했어? 이 자식들이!!!"
"돈 좀 땄다고 사람을 다치게 해? 조작한 것도 아니고 운이 좋았던걸로? 아주 그냥!!!"
조금 양심이 찔리는 말이 지나갔지만 무시하고 연기에 집중했다.
상황은 개판이 되어갔다. 몰려든 사람들은 딜러를 노려보고 있었고 그냥 둔다면 그를 가운데 두고 팰 것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포스 유저니까 일반인이 때린다고 해도 다치지는 않겠지만 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분위기가 심각해지는걸 깨닫자 카지노 측의 보안 요원들이 몰려들었다. 애초에 매니저가 딜러도 교체했었는데 모르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
보안 요원들이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포스 유저가 섞여 있어서 나름 빠르게 정리가 되어간다. 중간에 나는 따로 빼내져서 우선 카지노에 마련된 시설에 응급처치부터 받기로 했다.
.......그런데 이상하단 말이야. 보통 카지노라고 하지만 포스 유저 비율이 상당한데?
"진통제를 주사했으니 고통이 조금 가실겁니다. 저희 측 직원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에 대한 모든 배상을 해드리겠습니다"
어느정도 상황이 진정이 되고 응급처치를 하고 기다리는 동안 매니저가 고개숙여서 사과했다.
나는 아직도 고통스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리면서 쏘아붙이듯 말했다.
"내가 동양인이라고 무시하는겁니까? 뭐 조작이라도 했을까봐? 아니 조작은 그쪽이 했겠지, 포스 유저라면 자기가 원하는 곳에 넣는 것 정도는 가능할테니까. 심심해서 놀러와서 한판 했는데 운 좋다고 생각했더니 이게 뭡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우선 구급차부터 불러서......."
"됐고, 버진 그룹에 연락이나 넣어줘요"
".......버진 그룹 말씀이십니까?"
"사업 때문에 리처드 회장을 만나려고 잠깐 온겁니다. 아무래도 내가 동양인이라서 이런 짓을 한 모양인데. 어디 한번 버진 그룹 법무팀이랑 이야기 하시지요.
"자, 잠깐만요 손님!"
"그리고 내가 이번에 버진 그룹이랑 계약하면서 챙긴 로열티가 5억 유로쯤 되는데. 그거 죄다 당신들 조지는데 쓸겁니다. 어디 한번 누가 이기는지 봅시다! 어디 사람을 이 따위로 대우해?"
대기업 이름값은 여기서 나온다. 그리고 돈의 힘도.
매니저는 당황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솔직히 머나먼 타국 땅에서 동양인이 대기업 회장이랑 연이 있을 가능성은 적지, 그리고 그만큼 부자일거라는 가능성도 더 낮고.
"저, 저희가 뭘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그의 입에서 내가 바라던 대사가 나왔다.
나는 속으로는 웃으면서 겉으로는 성질 가득하게 분노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한국에 살다보면 진상들이 잘 내뱉는 대사 Top3안에 꼭 들어가는 말을 말이다.
"매니저 따위가 어디서! 가서 사장 불러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