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라쿤맨 비기닝]
집으로 돌아오면서 꺼라위키에 적힌 영국의 마스터 유저에 대해 읽어 보았다.
혹시 충돌할지 모르니까 사전 정보는 알아두는게 좋겠지.
이름은 윌리엄 아서 필립 루이 주니어.......아, 백리랑 이야기 했을 때 나온건 넘어가자.
나이는 나보다 3살 연상인 24살. 근데 얘네는 만나이 계산 안하니까....아, 씨. 귀찮아. 그냥 만으로 따져 그냥.
마스터 유저는 10년 전에 인정 받았다고 한다. 각기 다른 3개국의 마스터 유저를 초청해서 심사를 받고 마스터 유저로서의 위치를 다졌다. 이명은 [나이트 가웨인], 아서왕 전설에서 따온 모양이다.
그때 초청된 마스터 유저는 터키, 미국, 러시아에서 왔다고 쓰여져 있었다.
일단 미국 빼고 아는 마스터 유저는 없구만.
그런데 10년 전에 그랬으면 14살? 그때 나는 한창 초딩이였는데......그때 화제가 됐어도 나는 시설 출신이니까 뉴스 보기도 어렵고 초딩들이 마스터 유저 같은걸로 대화하진 않았을테니까 기억에 없는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에 그때 이렇게 라쿤맨 할 줄 알았으면 무관심 했겠냐. 시온 없으면 내 삶은 지극히 단조롭다고.
아마 시온이 없었으면 지금처럼 라쿤맨이니 그런 짓 하지도 않고 그냥저냥 사는대로 살다가 죽었을거다. 트러블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아니, 이렇게 말하니까 무슨 모나리자 보고 발기하는 여자 손이나 모으는 연쇄살인마 이상성욕자 같은데.
"이야, 무슨 5살 때 포스 각성을 해?"
대공황 시절에 포스 유저로 각성한 사람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그렇다고 보통은 싸울 수 있는 나이대의 사람들이 각성하기 마련이다. 주로 20대라던가......그래서 그런지 이경진 아저씨도 대공황 시절에는 20대였다.
아, 근데 이 윤양 나이 생각하면 결혼을 일찍 했네. 하기사, 그 때에는 요즘과 다르게 젊을 때 결혼하는 일이 많았으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5살 짜리 어린애가 포스 유저로 각성하는 일은 드물다 못해 유일한 케이스였다. 20년이 지난 현대까지도 10살 짜리 어린애가 포스 유저로 각성하는 있어도 한자릿수의 어린아이가 각성하는 일은 없었다.
"이경진 아저씨도 그렇고, 히비키도 그렇고, 제이콥도 그렇고......."
이경진 아저씨는 유색공명기를 쓸 수 있을 정도의 재능이, 히비키는 내가 알던 과거의 어떤 초월자의 영혼을 가지고 있고, 제이콥은 다른건 몰라도 스스로 미국의 히어로를 자처할만큼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제이콥이 좀 떨어지는거 아니냐고? 사람들 앞에서 영웅이라고 나서면서
과연 마스터 유저는 되는데 그만한 재능이 뒷받침 되는건가, 아니면 그러한 재능이 있기에 마스터 유저가 되는건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선후 문제가 떠오른다.
실전 경험은 마스터 유저 인정 받을 때 기준으로 4년. 즉, 10살 때부터 적성종을 상대했다는 소리가 된다.
소년병 아님? 미친듯.
본인 의지도 있었다고 서술되어 있기는 한데 이런 위키 부류를 전부 믿는 흑우 없지?
하지만 재능이 개쩔었는지 4년만에 마스터 유저에 올랐다. 그 동안 기본적인 훈련이 없었던건 아니지만 실전 경험 없이 마스터 유저가 되는건 먼 일이다. 실전 경험이 결정적으로 됐겠지.
오, 주된 전투 스타일 같은 것도 쓰여져 있네?
"방검 전사라니 뭘 좀 아는 녀석이군!"
자고로 자기가 어떤 무기를 들지 모를 때는 방패와 검을 드는게 제일 좋다. 무겁기는 하지만 그만큼의 범용성이 있다.
검만 들면 되지 않냐고? 그래도 되는데 방패 하나 들어서 올라가는 생존률이 얼마나 되는데? 자고로 방패는 무기도 돠고 방어구도 되는 만능의 무기다. 괜히 실드로 친다는 소리가 있는게 아니야.
미국 대장님 방패술 보면 모르겠냐. 물론 방패가 개쩌는거여서 그런 것도 있지만.
정확히 말하면 그가 드는 방패는 히터 실드. 오각형 형태를 띄는 방패다. 크기도 꽤나 커서 성인이 되어 몸이 다 자란 후에도 방패는 그의 상반신을 가릴 정도로 크다.
주 전법은 방패로 막으며 대치하다가 빈틈을 노리는 스타일. 그 덕분에 방어력 하나만큼은 수준급이라고 한다.
"제이콥이랑 붙으면 누가 이기려나......"
제이콥은 화력 하나만큼은 마스터 유저 중에서도 수준급이다. 단순 순간 화력이라면 유색공명기를 쓸 수 있는 이경진 아저씨가 위지만, 지속적인 탄막과 화력을 쏟아내는 것이라면 제이콥이 위다.
마스터 유저 인정을 받기 위해 만났으니까 당사자들끼리는 이미 알고 있으려나?
간만에 꺼라위키 뒤지니까 재미있네......오! 내 항목도 있구나!
나는 마스터 유저 목록 마지막 항목에 사선이 그어져 있는 라쿤맨이랑 단어를 발견했다. 나는 어떻게 쓰여 있을까 궁금해서 들어가보았다.
[라쿤맨]
-개요-
한국 출신[1]의 마스터 유저이다. 추정 나이는 20대 초반에서 후반 사이. 무력은 마스터 유저 중에서도 상위로 추정된다[2].
영등포 백화점 화재 사건 당시부터 출현한 가면 쓴 히어로. 초창기에는 마스터 유저가 아닌 조금 강한 포스 유저로 추정 되었으나 천검 이경진과의 전투가 유출되어 마스터 유저로서 인정을 받았다.
일본의 마스터 유저인 히에이 히비키와 싸웠다는 전적도 있다는데 아시는 분은 추가 바람.
-정체-
정체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다.
정부에서 포섭 혹은 체포를 위해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흔적이 드러나지 않고 있다.
혹시나 정체가 밝혀진다면 이 부분에 대해서도 수정 바람.
-약력-
* 영등포 화재 사건[3]
* 일본 아키하바라 적성종 격퇴 및 [슈텐도지]와 격돌[4]
* 부산 해운대 적성종 격퇴[5]
* 신도림역 적성종 격퇴 및 천검 이경진과 격돌
* 아동 연쇄 납치 및 살해 사건 용의자 체포[6]
* 미국 초대형 적성종 격퇴 및 인간형 적성종 격퇴
* 제천 대지예수교 사건[7]
-----------------------------------------------------------
[1] 가장 처음 나타난 국가가 한국이다.
[2] 천검 이경진과 싸워 승리했으며 미국에서는 마스터 유저도 지원이 필요할 초대형 적성종을 홀로 잡았다.
[3] 라쿤맨이 등장하게 된 첫 사건이다.
[4] 물적인 증거가 없기 때문에 확실하지 않다.
[5] 참치로 적성종을 격퇴하여 참치 워리어랑 별명이 붙었다.
[6] 이 사건의 용의자는 인간이 아니라 적성종이란 설이 있다.
[7] 목격 정보만 확인 되었지 실제로 확인된 바는 없다. 추가 바람.
부실하긴 하지만 그래도 내가 했던 일들은 대부분 다 표시가 되어 있었다. 아틀라스 비밀 실험실 박살낸건 애초에 예진이 밖에 모르니까 둘째치고 그 외의 사건들은 기록되어 있다. 많은 사람이 쓰는 만큼 정확도는 몰라도 정보량 만큼은 인정할만 한데.
그 중에서 일본에서 저지른 일은 거기서 적성종이 EMP비슷한걸 터트린데다 자국의 마스터 유저를 줘팼으니까 은폐하려고 했을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부정확하게나마 남아 있는게 신기하다.
세상에 비밀이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런거 보면 참 신기하다니까.
아직 내가 라쿤맨으로 활동한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달? 그 사이에 이만큼이라도 적어놓은게 참 노력은 가상했다.
나도 몇자 적을까 하다가 이거 기록이 남는거라는걸 깨달아서 그냥 뒀다. 시온이라면 처리할 수 있지만 괜한 꼬리 잡힐라.
집으로 돌아오니 시온이 짐을 챙기고 있었다. 낼모레 떠날 생각이니까 지금 쯤이면 가서 쓸 옷이나 생필품 같은건 있어야 했다.
"일단 제가 필요한건 챙기긴 했지만 그래도 거기에 아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나름 편의 봐달라고 하겠습니다"
"아는 사람?"
"거기에 사업상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도 아니고 사업상이면 뭔가 무서운데"
어디 기업 회장님 같은 사람이 나오는거 아닌가 모르겠는데.
짐을 챙기는 나를 보고 예진이가 아무것도 몰랐었는지 물어왔다.
"아저씨, 어디 가요?"
"낼 모레 영국에 좀"
"어.....왜요?"
"너 가지고 실험 했던 놈들 좀 조지러"
"아"
예진이의 얼굴에 걱정어린 기색이 흘렀다.
내가 강한건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런 놈들을 또 조지러 간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그런 표정이 나올지도 모른다. 초월자로서의 격이 다른데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마스터 유저 전부 다 합쳐도 내가 있는 수준에는 따라오지 못한다. 발끝 정도까진 아니겠지만 기껏해야 발목 정도일껄. 그나마도 이경진 아저씨가 유색공명기를 써서 그런거고.
"괜찮겠어요, 아저씨?"
"뭘, 그 실험실에서 널 보호하면서 다 조지고 탈출했던게 바로 나야"
"그렇긴 하지만요......"
"가서 선물 사올께. 영국에는 뭐가 유명하......아, 미안하다. 먹을건 못 사오겠네"
"괜찮아요. 무사히만 잘 다녀오세요. 이상한 일에 휘말리지 마시고요"
"예지 능력자인 네가 그런 소리하면 어쩐지 무서운데!"
예진이는 저번 미국의 차원진을 예지한 이후로 예지 특성이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다른 예지를 하지 않았다.
능력을 잘 제어하는건지, 아니면 뭔가 계기가 없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오히려 좋은 소식이다. 미래를 보는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만약 자신이 죽는 것을 보고 그걸 바꿀 수 없다는걸 안다면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해도 평소처럼 살 수 있겠는가?
물론 즐길거 펑펑 즐기다가 갈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자기가 죽는 날은 모르는 편이 낫다.
"그러고 보니까, 저 그때 예지하기 전에 뭔가 이상한걸 만졌던 기억이 있었는데......"
"아, 차원진 감지기 말하는겁니까?"
"그게 차원진 감지기였어요?"
시온이 다운그레이드 한 것이지만 현 지구에서는 한 세대 앞선 물건이다. 덕분에 경보 없이 처들어오던 적성종도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감지하여 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거 자체는 특이한 물건은 아닌데......예진이가 하필이면 그걸 만지고 미래를 봤다는게 문제지.
"왜 차원진 감지기랑 반응한거지? 아, 차원진을 통해서 오는 적성종이라서 그런건가?"
"아뇨.....그건 뭔가 다른 느낌이였어요. 어디선가 전해받는 그런 느낌이였는데......."
내가 진짜 포스 유저도 아니고 예지 특성 보유자도 아니다. 미국에 있다는 앨리사 니어란 예지 능력자도 있지만 그 사람은 만나본적 없다.
다음에 미국 가면 예진이 생각해서라도 한번 만나봐야겠다.
"시온 아주머니. 혹시 그거 다시 한번 만져볼 수 있을까요?"
"안됩니다"
"단호하시네, 단호박인줄"
"저번에 그거 만졌다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사자라서 기억 못하는겁니까?"
거의 과부화 걸린 컴퓨터마냥 열이 장난 아니였지. 나랑 시온이 합쳐서 겨우 진정시켰다.
거기서 남은 예지가 미국의 차원진 출현이였고.....그런데 대부분 다 날아가고 그것만 남았는데 그것 마저도 며칠 뒤의 일이라면 도대체 예진이는 얼마나 많은 미래를 본거지?
"이번에는 자신 있어요. 제가 제어 해볼께요"
"왜 갑자기 그런 희생정신을 내세우는겁니까? 애들은 조용히 잘 먹고 잘 커서 착하게 잘 자라면 그만입니다"
"아저씨가 절 납치했었던 나쁜 녀석들 잡으러 간다는데 저만 혼자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잖아요"
"애들은 어른들한테 맡기는게 도와주는겁니다"
"너무 애 취급 하지 마세요. 저 2,3년만 있으면 성인이거든요?"
시온과 언쟁하는 예진이 사이에서 낑낑거리는 댕댕이만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나? 나야 물론 시온 편이고. 예진이의 마음도 이해 못하는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시온의 말이 틀린건 아니다.
애들은 애들답게 잘 놀고 잘 자라기만 하면 된다. 이런 어둡고 힘든 일은 나중에 어른 되서도 충분히 겪을테니 지금은 좋은 시절을 만끽하는게 좋다.
하지만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테니 내가 중간에서 중재하기로 했다.
"그래 그러면, 예진이 네가 원하는대로 해"
"정말요?"
"대신 이번만이야"
다음에는 기회가 없다. 미래를 보는 힘은 그만한 대가를 치루는 법이며, 너무 많은 미래를 보면 운명이 당사자를 죽이러 온다.
나는 예진이에게 딱 한번만 도와줄 기회를 주기로 했다. 저번에는 생각도 못한 기회였지만 이번에는 본인의 자의다.
"다음에 또 이렇게 징징거리면 얄짤없어. 여고생이고 뭐고 엉덩이 팡팡 때려서라도 말릴거다"
"그거 성희롱인거 아시죠?!"
"시온, 나 쇼크사로 뒈졌었던 여자 몸뚱이 있다고 했지? 그거 쓰면 같은 여자니까 성희롱 성립 안되겠네"
"해동 준비 해두겠습니다"
"앗, 아앗?! 뭔진 몰라도 죄송해요!"
이게 어디서 성별가지고 장난을 치려고!
남녀에 구분 없는 환생자 앞에서 어림도 없다, 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