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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화 〉[라쿤맨 비기닝] (110/507)



〈 110화 〉[라쿤맨 비기닝]

시온이 성장폼으로 돌아다닌다고 화가 나는건 아니다. 그로 인해서 생길 부수적인 피해는 내가 참으면 되는거지만 시온이 겪을 일들은 그렇지 않다.

내가 맘 상하는건 괜찮은데 시온이  상하는건 내키지 않아서 그렇지.

"뭐, 중요한 자리에서만 이러면 됩니다. 오늘은 포스 유저 등록 때문에 이 모습을 한거고 평소에는 디폴트 폼으로 돌아다닐겁니다"

"거 나만 호강하겠네"

주로 눈호강 같은거.

그냥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아름답다는게 뭔지 보여주는 미모는 인간에게 허락된 것이 아니였다.

초월자 중에서 미남, 미녀가 많은 이유는 바로 영혼의 형질 때문인데. 초월자에 가까워질수록 육체는 영혼의 형태를 띄기 때문이다.

순수한 영혼의 모습은 아름답다. 초월자 중의 초월자인 절대자 클래스들은 죄다 아무것도 안해도 주변 사람들이 다 먹여 살려줄 정도니까  다했지.


근데  왜 강한 축에 드는 초월자면서 이 모양이냐고?

나야 애초에 평범한 영혼을 두들겨서 크게 만든거라서 이 꼴이다. 얼굴 자체는 평범한데 눈매가 더러워서 그 얼굴을  잡아먹어. 하지만 뭐.....눈매만 빼면 얼굴에 여드름이나 잡티 하나도 없고 깔끔하긴 하지.


"간만에 나왔는데 저녁이나 먹고 들어갈래? 기왕이면 고기로"

"저는 찬성입니다"

고기 같은건  가지고 들어가서 집에서 먹어도 되겠지만 뒷처리가 귀찮다. 가끔은 바깥에서 먹는 것도 좋은 일이다.

나는 시온이랑 이야기를 마무리 하고 사장실에서 나와서 정 팀장에게 회사 법인 카드를 내주었다.

"팀장님, 오늘 직원들이랑 같이 회식 하세요. 저는 안사람이랑 먼저 들어가볼께요"

"어이쿠! 감사합니다 사장님!"

"비싼거 먹어요. 비싼거.  아낀다고 돼지고기 사먹지 마시고요"


"역시 사장님은 통이 크시군요. 알겠습니다!"


집에 저녁 먹을 예진이가 기다리고 있겠지만......그러고 보니 요즘 예진이 신경 못써줬네. 한창 학교 생활 재미있게  때라서 깜빡하고 있었다. 다음에는 같이 나와서  먹어야지.


회사에서 나와서 잠깐 이 근처를 둘러보았다. 우리 회사 같은 사무실이 많은 지역이라서 주로 회식  수 있는 메뉴의 가게가 많지만 다른 메뉴도 많다.


고기, 고기, 고기, 시온은 고기라면 다 좋아해서 뭘 먹어도 괜찮지만 기왕이면 평소에 못먹던걸로 먹는게 어떨까?


"간만에 곱창 어떻습니까?"

"응?"

시온이 가리킨 곳에는 작은 곱창 집이 있었다. 하지만 작다는건 어디까지나 다른 가게들에 비해서 작다는거지 가게 안에는 드럼통 위에 원형 철판을 얹은 테이블이 10개 가까히 있었다.

장사도 나름 되는지 사람도 줄까지 서 있고 꽤나 많았다. 냄새는.......흠, 나름 처리는 잘 한것 같은데.

"확실히 곱창 같은건 집에서 해먹기 좀 그렇지"


냄새도 많이 나는데다가 애초에 곱창이란게 내장이라서 처리하는게 빡세다. 나도 곱창을 집에서 먹으려면 한 고생 해야 할 정도니까 말 다했지.


거의 무슨 빨래 하듯이 벅벅 닦고 냄새를 빼기 위해 마늘이나 생강, 혹은 향신료나 밀가루 같은걸 사용해야 겨우 빠지는게 곱창 냄새다. 준비도 그렇고 뒷처리도 그렇고......솔직히 집에서 해먹느니 바깥에서 먹는게 나은 음식 중에서 하나다.


후각에 감각을 집중하고 가게 내부를 탐색했다. 음......딱히 곱창 손질하는데 이상한걸 쓰지는 않는 모양이다.

아무리 우리들이  같은게 안통하는 몸이라도 몸에 나쁜게 들어간걸 먹으면 기분이 나쁜게 당연하다. 더군다나 곱창 같은건 말했다시피 손질하는게 빡세서 락스 같은걸 사용해서 손질하는 비양심적인 사람들도 있다.


내가 용서 못하는 부류 중의 하나가 바로 먹을걸로 장난치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학교 앞 불량식품이라도 먹고 탈날만한게 들어가지 않았다면 괜찮다. 그래서 나도 자주 먹었으니까.

하지만 먹으면 죽는거나 먹어서는 안되는게 들어갔다면 내 성질 건드리는 법이다.

그런면에서 저 곱창집은 합격이다. 옷에 냄새가  배이긴 하겠어도 그거 생각하면 냄새나는 요리는 못먹겠지.

"곱창에 소주라. 궁합 죽이겠구만. 좋아, 먹자"


"자리가 있나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되겠네"

줄이 조금 길었지만 세명, 네명씩 일행이라서 그들이 한 테이블 차지한다고 하면 두세팀만 빠지면 앉을 수 있을  같았다. 다 먹어가는 사람도 있었고 많이 기다려야 한 30분  기다리면 된다.


어차피 먹고 싶은거 먹는데 30분 정도 기다리는건 별로 길지도 않다. 조용히 시온이랑 같이 가게 앞에서 줄서서 기다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나 구경했다.

"우리가 사람들을 구경하는건지. 사람들이 너를 구경하는건지 모르겠다"

"그렇긴 합니다"

"사진 찍게 둬도 돼? 보니까 저번의 그 전자기기 오류내는 전자기장은 안쓰는것 같은데"


저번에 놀이공원 갔을 때 시온을 대상으로 찍으려는 사진이나 동영상은 오류가 나서 쓰지 못하게 되는 전자기장은 어떤 느낌인지 파악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온이 그걸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대놓고 찍는 사람도, 은근슬쩍 찍는 사람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허락 받지 않고 찍는건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이미 포스 유저 등록 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제가 그랬던건  모습 때문에 들킬까봐 그런거 아니였습니까?"

"그래도 괜히 알려져서 트러블 생기는 것 보단 낫지"


"어차피 그것도 시간 문제입니다. 그리고 알려진다면 나중에 유부녀란 사실도 알려질텐데 어떤 바보가 유부녀인걸 알면서 수작 부리겠습니까?"


시온의 외모가 퍼지면서 신상도 퍼지면 이미 결혼한 신혼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려질 것이다. 물론 시온이 막지 않는다는걸 가정해서.


어지간한 사람들은 임자 있는 여자한테 손대지 않는다. 그게 상식이고 정상이다.

"세상에는 남의 여자 뺏는 개쓰레기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도 있어서"

"그거야 일부입니다"


"그 일부가 빡치게 만드니까 문제야"

내가 전에 조진적 있던 워 로드(War Lord)도 그런 부류였다. 다만 그쪽은 시온의 디폴트 폼을 보고 반한거여서 더 질이 나쁘다. 페도 죽엇!

나는 로드급이지 로드가 아니다. 그와 나 사이에는  격차가 있었지만.......뭐, 상성이 좋아서 이겼다.

 앞에서 다수는 의미가 없고. 전쟁이란 개념의 로드인 놈은 다수로 싸울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1대 1이 된다면 그건 그가 자신 있어하는 전쟁이 아니라 전투가 된다.

그리고 대인전은 내 특기다. 여러가지 상황과 운이 겹쳐서 겨우 이겼었다. 대신 나도 한번 죽어서 환생했지만 말이야.

아무튼 남의 여자 탐내는 새끼들은 죄다 죽여버려야 해. 성교의 신 갓-루리루리 일 안하냐? 아직 살아있는 NTR충들은 어쨌어?

한 15분 쯤 지났을까. 내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가 났다. 가게 안에서 먹던 사람들 중에서 상당수가 시온을 보다가 얼른 자리를 비켜준게 틀림 없다. 나갈 때 곁눈질 한거 봤어.


"몇분이세요?"

"두명이요"

두명이지만 어지간한 4명보다 잘 먹을거다. 한명이서 5인분은 먹는다고 봐야지. 나나 시온이나 대식가니까.


우선 곱창부터 시키기로 했다. 한번에 많이 시키면 늦게 나올테니까  3인분 정도만 시켜서 적당히 먹다가 중간에 또 시키면 된다.

"사장님 여기 주문이요!"

"아, 네. 뭘로 드릴까요?"


"곱창 3인분이랑, 참이슬 빨간거로 하나요. 잔 두개 주시고요"


요즘은 따로 테이블 위치랑 먹은 메뉴까지 전부 나오는 타입의 계산대를 쓰는데 이 집은 아직도 아날로그 적인 계산서에 정(正)자로 그어서 주문한 것을 표시했다. 이런 가게도 상당히 오랜만에 보는걸.


가게 안은 꽤 오래 장사한듯 때묻은 티가 났다. 특히나 가게 바닥은 닦았는데도 불구하고 기름 때문에 미끄러운 느낌이 났다.


잠시 뒤에 밑반찬과 함께 주문했던 소주가 먼저 나왔다.


"밑반찬 다른건 그저 그런데 부추 무친게 맛있네"

"간을 잘 했습니다"

곱창에는 부추 무침이지. 약간 짭짤한 느낌의 부추 무침의 맛이 입맛을 돌게 해서 침을 절로 나오게 만들었다.  짭짤한 느낌도 나중에 곱창이랑 같이 먹으면 고소한 맛이랑 어우러져서 더 좋다.

한 10분 조금 안되게 시간이 지나자 미리 초벌한 곱창이 나왔다.

"주문하신 곱창 나왔습니다"

그냥 곱창 뿐만이 아니라 갈색의 염통과 양파, 그리고 얇고 넓게 썬 감자가 같이 나왔다. 뜨거운 불판에 올려진 곱창은 다른 재료들이랑 같이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를 내며 맛있게 익어가고 있었다.


"앗,  새어나옵니다"


"조금 아깝긴 하네"


곱창의 맛은 절반은 그 안에 있는 곱에 의해서 생긴다. 익어가면서 안에서 조금씩 새어나오는 하얀 덩어리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소한 맛이 있었다.


슬쩍 능력을 사용해서 곱이 새어나오는걸 막았다. 요상한데서 쓰는 섬세한 능력 사용이지만   맛있는걸 먹기 위해서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

시간이  더 지나자 곱창이 노릇노릇하게 익어갔다. 가운데 있는건 불이 강해서 그런지 벌써  있었다.


우리들은 먼저 소주를 서로의 잔에 따라 주었다. 곱창에는 역시 소주지!

"자, 일단 건배"


"건배사는 뭘로 합니까?"

"음, 일단 포스 유저 등록한걸로 할까? 명목상이지만"


"그러면 건배!"


쨍, 하고 잔을 부딪히고 한잔 쭉 들이켰다. 소주 특유의 진한 알콜 냄새가 올라온다. 뒷맛으로 약간 단맛도 조금.


그리고 안주로 노릇노릇하게 익은 곱창을 하나 집어서 소스에 찍은 뒤에 부추 무침을 얻어서 한입 먹었다.

첫 느낌의 곱창의 기름진 맛, 그리고 씹으면서 곱이 나오고 곱창의 쫄깃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입안에서 감돈다. 너무 기름진거 아닌가, 싶지만 부추 무침의 짭짤함이  맛을 중화시켜주고 있었다.


"이집 고기 맛있네"

"뭐 어디 정모 나왔습니까?"


"아무렴 어때. 맛있는건 맛있는건데. 내 입맛에도 괜찮으니까 장사 잘될만 하다"

오래 장사한  치고는 위생도 나쁘진 않고. 내가 보기에도 괜찮은 집이다. 가끔 와서 먹으면 좋겠다.


생각외로 맛집을 찾았네. 기억해둬야지.

"다 익은 곱창은 잠깐 옆으로 좀 치워봐. 부추 무침 올리게"

".......? 부추 무침도 볶아 먹습니까?"


"그건 또  맛이 별미거든. 그냥 김치랑 볶은 김치의 차이랑 비슷하지"

곱창 기름에 볶아진 부추 무침은 또 맛이 다르다. 숨이 죽어서 뻣뻣한 부추가 아니라 부드럽게 익은데다가 짠 맛도 덜해지지만 고소한 맛은 늘어난다.


너무 기름져서 느끼한거 아니냐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또 부추의 짠 맛이 남아 있어서 괜찮다.


오래 볶을 필요 없이 1분 정도면 금방 숨이 죽는다. 그러면 건져서 앞접시에다 놓고 두고두고 먹으면 그만이다.

"염통도 먹어봐. 쫄깃하고 맛있네"


"음, 염통도 괜찮습니다"

진한 갈색으로 익은 염통은 씹으면 곱창과는 다른 쫄깃함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하나, 곱창은 껌 같은 느낌이라면 염통은 치즈 같은 느낌? 늘어나지는 않지만 어느 순간 툭, 하고 끊어지면서 씹힌다.

안주가 맛있으니 술이 들어가고. 술이 들어가니 안주가 들어간다. 어느새 술은 다 마셨고, 곱창도 반이나 줄어들었다.

"지금 주문 해야겠다.  3인분 더 시킬까?"

"그러는게 좋겠습니다. 아, 소주도 한명 더 필요합니다"

"기왕이면 두병 시키자. 한병 시키면 금방 없어지겠다"

대식가인 만큼 대주가다.


초월자나  중에서 술을 조금 마시는 사람은 봤어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취하고 안취하고 이전에 취향 문제다. 그리고 뒤져보면 초월자용 술도 좀 있고.

아, 혹시 모르니까 쟁여둔거 몇개 꺼내 둬야겠다. 백리한테 좀 먹이면 어디 가서 맞아 죽지는 않겠지.

라쿤맨 수트가 있어도 맨몸으로 강하지 않으면 안된다. 라쿤맨 수트 없으면 싸우지 않을 것도 아니니까.

한창 먹고 있는 찰나, 우리 뒷자리에 있던 사람이 의자를 드르륵! 하고 시선을 모을 정도로 밀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하고 뒤를 돌아봤는데 일어난 남자의 시선이 시온에게로 향해 있었다.


"저기요!"

".......네?"

그는 핸드폰을 내밀면서 당당하게 말했다.


"전화번호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거 이 새끼 당당하네.

태도는 마음에 드는데 하는 짓은 마음에 안드네. 짜샤, 눈 앞에서 같이 밥먹고 있는 나는 눈에 안보이디?


남자의 얼굴에는 홍조가 가득했다. 부끄러워서 그런게 아니라 술을 어지간히도 처마신 모양이다. 일행이랑 같이 먹은 테이블 아래에는 소주병만 열병 넘게 놓여져 있었다.


"죄송하지만 유부녀라서 안됩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예쁘셔서!"

남자는 거의 90도 인사마냥 꾸벅 숙여 인사하고 계산대로 갔다.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들도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나쁜 녀석은 아닌데 오늘 여친이랑 헤어지고 술에 꼴아서......"

"뭐, 이상한 짓만 안했다면 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시온한테 수작 부리는 녀석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안드는  1순위가 억지로 몸에 손대는 놈, 2위가 협박하는 놈, 3위가 개수작 부리는 놈이다.


순위권은 아니라서 기분이 심각하게 더러워지지는 않았지만 태도는 나쁘지 않아서 봐줬다. 만약  취해서 개지랄을 떨었으면 달아오른 불판 얼굴에 처박아줬지.

"화 안냅니까?"


"술 취했는데  안넘고 사과까지 했잖아. 본성은 나쁘지 않다는 증거지. 거기서 더 하려고 했으면 때렸어"

아슬아슬하게 내가 화 안내는 시점. 시온한테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보는게 아니라 전화번호 정도만 물어봤고, 거절하니까 확실히 사과하고 물러났다.

남의 여자한테 눈독 들이는 어디 재벌 2세 생각하면 귀여운 축이지. 그리고 밥 먹을 때 피보면 기분이 배는 더러워.

"야, 감자 다 익었다"


"바삭하게 익을 때까지 냅둘겁니다"


"아예 튀기지 그러냐"


"오!"

"살쪄!"

약간의 해프닝을 두고 술 한잔에 잊은 후에 다시금 맛있게 곱창이나 구워먹었다.


.......나중에 볶음밥만 4인분 볶아서 누룽지까지 박박 긁어 먹었다.


음, 존맛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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