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라쿤맨 비기닝]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아틀라스 이 새끼들은 죄다 꼬리까지 인성 파탄자 밖에 없는건가. 사람을 어디까지 써먹어야 만족할 생각이지?
눈에 띄면 조지려고 했지만 이 새끼들 냅두면 분명 내 주변까지 손 뻗어올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되도록이면 일찍 조져서 나중에 편한게 낫지. 그런 비밀 조직 같은건 나중에 갈수록 더 괴랄한걸 만들어서 가져오는 법이다.
"일단 행선지를 결정하실거면 러시아랑 중국, 그리고 영국으로 하시는게 좋습니다"
"확률은 30퍼센트네"
일단 래버리지 사 본사는 미국에 있다지만 그렇다고 미국에 실험실이 있을 경우는 드물다. 편하기야 하겠지만 이미 래버리지 사가 아틀라스의 끄나풀인걸 거기 보스도 아는 시점에서 껍데기만 남기지 않았을까?
그냥 냅뒀다면 거기 보스가 병신인거고. 아니면 똑똑한거고. 아무튼 미국에 있는걸 쳐서 이득 볼 일은 없다. 오히려 반대지.
"팔다리부터 자르는게 편할지도 모릅니다"
"그러긴 하네. 지금처럼 각 지부를 조지지 않으면 생기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니까....."
아틀라스 한국 지부와 마찬가지로 가이아 교도 있어서 해를 끼치는 부류다. 그런 놈들은 애초에 없는 편이 낫다. 게다가 내가 보스를 죽인다고 해도 나머지 지부들이 조용히 있으리란 보장은 없다. 지들끼리 뭉쳐서 어떻게든 바둥바둥거리겠지.
그러는 꼴 보느니 차라리 본격적으로 끝을 보는게 나을 것 같다.
"생각보다 빨라졌지만 가게는 백리한테 맡기는게 좋겠다"
"벌써말입니까?"
"그러게 말이야. 못해도 한 10년은 걸릴 줄 알았는데"
어차피 나한테 가게는 그냥 취미로 하는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한창 팔팔할 때 놀고 먹으면 좀 그렇잖아. 취미라도 좋으니까 일을 하면 얼마나 좋겠어? 그래서 하는거지.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건물까지 통째로 백리한테 맡기려고 했었다. 이 부분은 시온이랑 옛날에 이야기가 된 부분이다.
백리라면 내가 없어도 가게 운영은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자리도 좋고 레시피도 좋으면 장사가 잘 되는건 당연하겠지. 내가 빠지면 알바 하나 더 구해야 할 것 같지만 본인이 알아서 잘 할테고.
한국에서 할 일 이런저런거 끝낸 다음에는 해외로 나가서 아틀라스의 지부를 쓸어버릴 생각이다. 어디보자, 영국, 러시아, 중국이라고 했나?
"처음은 영국으로 가야지"
"왜 가장 처음이 영국입니까?"
".......매도 먼저 맞는게 낫다잖아"
요식업 종사자인 나로서는 영국이란 나라가 용서가 안된다.
어째서 맛있는 감자랑 대구로 피쉬 앤 칩스 따위를 만든거지? 시발 나한테 그 재료를 주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는데, 거기에 튀긴거잖아! 아무리 튀긴건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또 맛없게 만드는 것도 재능이다 재능!
그래, 나도 옛날에는 설마 사람 먹는 것인데 그렇게 요리가 맛이 없겠어? 같은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지. 영국이 요리 못하는건 꽤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지만 그거야 과장이 좀 포함된 이야기인줄 알았다고.
근데 진짜야!
유 퍼킹 쿠킹 테러리스트! 아무리 발상이 구져도 그렇지 어떻게 장어를 젤리로 만들어먹을 생각을 하냐! 하다못해 푹푹 삶아서 고아먹던가!
으어어어억, 죽을 것 같다. 영국 생각하니 힘이 빠진다.....요리 못하는 나라는 나한테 있어서 슈퍼맨의 크립토나이트랑 비슷한 수준이야......으윽, 거기서 며칠동안 어떻게 살지.
"가방에 김치라도 들고 갈까......아, 음식물은 반입 금지구나. 젠장. 나중에 해외 배송으로라도 보내줘. 거기서 살다가 김치 안먹으면 죽을 것 같아"
"저도 영국 요리는 먹어본 적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기겁할만한 수준은 아닙니다"
"아침만 3끼 먹었니?"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거야 영국 요리 중에 먹을만한건 그 정도니까 그렇지.
디저트로 따지면 파운드 케이크 같이 먹을 만한 것도 있긴 하지만 식사가 가능한 요리로 들어가면 그나마 나은게 아침밥 정도다.
그 왜 베이컨이랑 계란 프라이랑 버터 바른 토스트랑, 베이크드 빈즈랑 해서 같이 나오는거 있잖아. 딱 전형적인 서양식 아침 식단 같아보이는거. 근데 그거 단품만 섞어둔거라 따로 먹어도 맛있지 않냐?
"뭐, 엄밀하게 말하면 영국도 맛있는 요리는 있어"
".......그렇습니까?"
"넌 얼마나 충격을 받았길래 수긍하는게 그렇게 늦어?"
"영국에서 맛있는걸 먹어본 적보다 맛없는걸 먹어본 적이 훨씬 더 많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고"
물론 아무리 그래도 영국에 맛있는 요리가 없지는 않다. 뒤져보면 잘 하는 집은 맛있게 잘 한다.
그렇지만 그러지 못한 집이 더 많다는게 문제지......생각을 해봐. 길 가다가 손님 하나 없는 백반집 들어가서 김치찌개 주문하면 그건 그래도 먹을만은 하겠지? 이런저런 화학조미료 넣었어도 최소한의 하한선은 있을거다.
근데 영국은.......보여주마! 밑바닥에는 더욱 바닥이 있다는 것을!
영국에서 요리를 배우느니 차라리 같은 유럽 쪽인 프랑스로 가는 편이 훨 낫다. 내가 좆같은 사회 구조는 더러워도 참는다 하더라도 맛 없는 요리만큼은 지독히도 싫어한다.
"첫 목적지는 영국, 그 다음은......다음 행선지는 그 다음에 정하도록 할까"
우선 한국에서 해야할 일은 전부 처리한 다음에 해결하도록 하자.
* * * *
다음날 출근 하자, 여느 때와 같이 백리가 먼저 출근해 있었다.
"아, 형, 일은 잘 해결하고 오셨어요?"
"그럭저럭"
100퍼센트는 아니고 50퍼센트 정도만. 목적이 2가지였는데 하나는 해결하지 못했으니까 50퍼센트다. 그나마 나머지 50퍼센트도 다른 3개국에 있는 아틀라스 실험실을 조진 후에야 말끔해질 것 같고.
나는 우선 본론부터 꺼내기로 했다.
"야, 백리야"
"왜요?"
"가게 줄테니까 사장 한번 해볼래?"
"뭐라고요?!"
한창 장사 준비를 하던 백리가 기겁을 하면서 되물어왔다. 내가 분명히 가게 준다고 예전에 이야기는 했었지만 그건 나중에였지 이렇게 근시일 내는 아니였으니까.
백리는 뭔가 생각을 하다가 걸리는게 있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때문에 그래요? 이상한 비밀 조직 같은거. 이름이 뭐더라......"
"아틀라스. 혹시 모르니까 이름만 알아둬. 더 깊게 알았다가는 일만 귀찮아지니까"
"아무튼 그거 때문에 가게 그만 두시려는거예요?"
"가게를 그만 두는게 아니라 너한테 맡긴다는 소리야"
"저 혼자 어떻게 운영해요?!"
"왜 못해? 여태까지 나 운영하는거 봤으면 알아서 잘 하겠더만. 거기에다가 나 없을 때도 잘 했잖아. 일만 살짝 늘어난다 뿐이지 여태까지 했던 일이랑 비슷해"
"손 부족한건 어떻게 하고요?"
"이제 네가 사장이니까 알바 하나 더 고용해. 그러면 돼"
여러가지로 할 일이 많다. 나도 그냥 말로만 넘겨줄 생각은 없으니까 명의 이전도 해줄 생각이다. 세금 폭탄이 터지겠지만 그거야 뭐 당연히 내야 하는거고.
근데 난 포스 유저 특별세 안내냐고? 애초에 포스 유저가 아니니까 괜찮아. 포스 쓴다고 다 포스 유저면 숨쉰다고 유인원도 인간이게?
이능력이 가이아 포스 하나밖에 없는 애들만 있어서 그렇지 하다못해 평범한 판타지 세계로 넘어가도 정령력이나 영력 같은 것도 있다. 마족 있으면 마력도 있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나. 라프 에너지도 생성 가능하구나. 인피니티 포스 코어는 인지한 이능력을 전부 생성 가능하니까.
뭔 씹사기 밸런스 똥망이라고 욕할지 몰라도 그건 내가 아니라 내 사촌 녀석한테 해야 한다. 인피니티 포스 코어를 만든게 그 녀석이니까.
"너도 내가 어린애 취급 하긴 하지만 군대도 다녀왔고, 다른건 문제 없어. 혹시나 트러블 생기면 내가 아는 변호사님 소개 해줄테니까 걱정 말고"
"......알았어요 형. 잘 운영해 볼께요"
"넌 요즘 보기 드문 착한 애니까 그러는거야. 안그랬으면 차라리 가게를 닫았지"
백리는 원래 좀 호구끼가 있지만, 사람을 사귀는데 있어서 그런 사람만큼 좋은 사람도 드물다. 물론 호구끼가 있다고 이용해 먹으려는게 아니라 저쪽에서 신뢰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가 가게를 맡긴다 하더라도 백리는 가게를 팔거나 그러지 않고 순수하게 가게를 운영할 것이다. 재료를 속인다거나 하지 않고 깨끗하게 말이다.
애초에 라쿤맨 수트가 있어도 남을 돕기 위해서 목숨을 거는 녀석이 나쁜 녀석일리 없다.
일단 가게는 백리한테 맡기고......스케줄 좀 짜봐야겠는데.
다음으로는 내가 사장으로 있는 (주)시온을 찾아가봐야 할 것 같다. 한동안 가본적 없으니까 꽤 작업은 진행 되어 있겠지.
처음부터 게임을 만드려면 오래 걸리겠지만 내가 말한건 기존에 있던 원래 게임을 다시금 살을 붙여서 만드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어렵긴 해도 처음부터 만드는 것보다야 낫다.
내가 이쪽에 대해 영 모르니까 얼마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가봐야지.
"오늘 오후 일찍 게임 회사 가볼거니까 너도 가게 일찍 닫던가 해"
"아오, 가게 준다고 할 때 부터 알아봤어요. 이제 대놓고 일 빼시겠다?"
"뭐 임마. 가게 명의 이전 해줄건데 못해도 세금 값은 해야지. 그거 다 누가 내는데"
"맡겨만 주세요!"
"훌륭한 자본주의의 노예가 됐구나. 장하다 장해"
나는 말한대로 점심 먹고 오후에 한창 피크일 때 도와주다가 뜸 해질 쯤에 회사로 향했다. 미리 연락을 할 수도 있지만......몰래 가는 편이 회사가 평소에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서 좋겠지.
딱히 막히는 시간도 아니라서 얼마 걸리지 않아 회사 건물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로비로 가니 얼굴을 알아본 여직원이 인사를 건냈다.
"아, 사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오신다는 연락을......"
"아뇨, 일부러 연락 없이 온거예요. 평소에 작업을 어떻게 진행하나 한번 보려고요"
"지금 한창 회의 중이라 팀장님들은 회의실에 있을거예요"
"고마워요"
나는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기척을 죽이면 이쪽에 시선을 주지 않으니까 몰래 회의실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로비의 여직원이 말한대로 대부분의 직원들은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었지만 팀장급들은 회의실에서 뭔가 열성적으로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일 열심히 하는 모습 보니까 좋구만.......아, 근데 정작 지금 내 꼴은 몰래 시찰 나온 사단장님 꼴이네.
이거 폐 끼치는거 아닌가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이미 온거 슬쩍 무슨 회의를 하는지 들어 봐야겠다.
회의실 탁자 앞에 앉은 사람은 필연적으로 입구 쪽을 바라볼 수 밖에 없다. 몰래 들어가려고 해도 그 사람은 내가 대부분의 권한을 맡긴 정이현 팀장이였다.
나는 조용히 회의실 문을 열어서 들어가면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한순간 일어나서 인사를 건내려던 그를 향해서 조용히 해달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는게 보인다. 아니, 회의 주제가 뭔데 그러지?
"그러니까 히로인인 레아는 로리 캐릭터로 가야합니다"
"아뇨! 게임이 예전 게임인 만큼 취향에 맞춰서 거유 캐릭터로 가야합니다!"
"............"
과연.
히로인의 캐릭터성은 중대문제다!
나는 흐뭇하게 웃었다. 존나 병신같기는 하지만 히로인의 캐릭터성은 정말로 중대한 문제다. 분명 기괴한 외계인들 조지러 다니는 게임인데 무기가 폼 안나면 재미가 없듯이 이런 게임에서도 히로인의 존재는 중요하다.
기왕 히로인 구하러 가는 게임이라면 히로인이 예쁜 편이 좋잖아. 그치?
"1편이 가장 처음 나왔을 시절에도 히로인은 거유 캐릭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바꾼다니 기존 유저들의 추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새로 유입될 유저들도 생각해야죠. 요즘 게이머들은 주로 로리 캐릭터가 인기가 많습니다"
"어느 쪽 하나 버릴 수 없는 의견이기는 한데......"
솔직히, 뭘 고르라고 해도 나는 좋다. 그만큼 둘 다 매력적인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원래 나는 보통의 성인 여성에게서 성욕을 느끼는 지극히 평범한 취향......아, 물론 여자일때는 남자 좋아한다 쳐도 일단은 성인 여성 취향이라서 거유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렇지만 시온의 모습이 그거니까 로리 캐릭터도 좋아하기는 한데. 아, 그렇다고 어린애가 꼴린다거나 하는 페도필리아가 아니다. 그냥 귀엽다고.
둘을 중재해서 로리거유로 하기에는 참으로 애매하다. 아니, 어린애에 가슴을 달면 그게 로리캐야 성인 여캐야?
"로리!"
"거유!"
서로 소리치는 두명의 팀장들을 보며 가운데 앉아 있는 정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댁도 고생이 많구만. 보너스 챙겨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