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라쿤맨 비기닝]
퍼버버버버버버벅!!!!
연속해서 날리는 주먹의 러쉬는 폭풍처럼 목사의 전신을 후들겼다. 덕분에 소리는 겹쳐져서 지독하게 길어진다. 마음 같아서는 진짜로 30초 가량 허공에서 두들겨 패고 싶은데 가뜩이나 빡친 내가 그러면 죽을것 같아서 10초 정도로 봐줬다.
"오라!"
"끄헉?!"
얼굴에 죽빵을 날려서 옥수수를 털어준 일격을 마지막 마무리 삼아서 놈을 그대로 벽에 처박았다. 벽 두께 자체가 얇은 것도 아니였는데 콘크리트 벽이 박살나면서 옆방까지 날아갔다.
이 새끼 건물도 싸게 지었구만. 요즘 세상에 누가 철근 콘크리트 안쓰고 그냥 콘크리트로만 지어?
단가가 차이가 나긴 하고 건물이 높은건 아니라서 이해는 하지만 이렇게 박살날 수도 있는데 말이야. 이럴거면 하다못해 다른 방식으로 짓던가.
유진이는 일단 옆방에 두고 목사놈이 날아간 방으로 건너갔다.
목사는 사지가 부러지고 늑골도 부러진 것보다 안부러진걸 세는게 더 빠른 상태가 되어 있는데다 옥수수도 상당수 빠져서 숨 쉴 때 공기 새는 소리가 들린다.
코피는 줄줄 흐르고 바지에는 소변을 지렸는지 인상이 절로 찌푸려지는 냄새가 났다. 어딜 봐도 중상이다. 포스 유저가 아니였다면 고통 때문에 쇼크사 했을지도.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나를 보면서 낄낄거렸다.
고통 때문에 아드레날린이 쑥쑥 분출되는지 잘도 웃을 수 있었다.
"끄, 끅, 당신은 저를 모,못 죽입니다"
"내가 왜?"
"저를 주욱, 이면 본격적으로 정부에서 당신을 차,차즐테니까요"
확실히.
내가 가면 쓴 히어로로서 이름이 알려진건 어디까지나 적성종을 죽여서 그렇다. 그 과정에서 여러가지 트러블은 있었지만......최소한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
아틀라스의 실험체를 죽이긴 했어도 일단 그건 아틀라스 쪽에서 먼저 손을 써서 사망 처리가 된 사람들이였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죽였어도 이미 죽은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살인이 성립되지 않는다.
살인은 내가 중죄라고 생각하는 만큼 사회에서도 큰 죄다. 만약 내가 가면 쓰고 사람을 죽였다면 진작에 적극적인 체포팀이 결성 되었겠지.
여기서 내가 놈을 죽이면 마찬가지다. 아무리 사이비 교주에 비인간적인 짓을 했어도 법에 맡겨서 처리해야 뒷탈이 없다.
하지만 그거야 이 새끼가 적당히 했을 때의 이야기고.
"너한테는 지금 두가지 선택지가 남아 있어"
"뭐, 뭡니까......?"
"구원과 심판"
구원을 받을테냐, 심판을 받을테냐.
내가 아까 말했던 극단적인 양자택일이다. 얼핏 한쪽이 좋아보이는 것 같지만 둘 다 지옥 가는 길이 열려 있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양자택일을 시켜주는건 내가 보여주는 선의일 따름이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좋아. 결국에는 네가 선택한거니까. 개인적으로 네가 믿는 신이라면 너한테 뭘 줄지 기대가 되는데"
종교에서는 크게 그런 이야기로 나뉜다. 신을 믿는 자는 구원을 받고, 그렇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는다.
그렇다면 이 목사가 믿는 신은 과연 이 자에게 어떤 선택을 내릴까?
"당신 바봅니까? 그런 식으로 양자택일을 주면.....더 나은 것 밖에 고를텐데요?"
"그렇지. 네 마음대로 골라"
"끅, 끄윽.....!"
목사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코피가 주룩주룩 흘러서 입으로 새어 들어갔지만 그는 그것도 개의치 않아 보였다. 애초에 팔이 전부 부러져서 닦을 수도 없을테고.
그의 웃음 소리에 어께가 들썩인다. 얼마나 처웃는건지 내가 다 웃길 지경이였다.
"신께서 저를 심판 하실리 없습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신의 뜻대로 행했을 뿐이죠! 그분의 의지대로 은총을 내리고 세를 불렸습니다! 제 행동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행위입니다!"
"그래?"
선택했다.
이후의 일은 그가 선택한 것에 대한 대가일 뿐이다. 내가 더 이상 간섭할 생각은 없었다.
그나저나 취향 참 특이하구만.
똑같은 고통이면 차라리 다음이라도 있는 편이 나을텐데.
뿌득.
".......어?"
목사는 자신의 발목을 잡은 뭔가에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물론 내가 잡은게 아니다. 다른 누군가가 잡은 것도 아니다. 그랬으면 그가 그런 소리를 냈을리는 없지.
그의 그림자 속에서 나온 손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었다.
"이,건 무슨?!"
"이 세상에는 이면 차원이란 곳이 있지"
차원이란 개념은 하나의 우주를 품고 있는 것이지만 이면 차원이라는 개념은 이 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차원을 뜻한다.
가장 손쉬운 예로서 '윤회의 좌'란 곳이 있다.
그곳은 모든 영혼이라면 한번쯤 거쳐가는 곳이며 또 다른 말로는 영혼의 바다라고 불린다. 거기에 모인 영혼은 생전의 기억들이 소거된 뒤에 다시금 환생을 하곤 한다.
물론 매 초마다 영혼의 숫자가 조를 넘어서 경(京) 단위로 오가기 때문에 그런 영혼들의 기억을 전부 지우지는 못하고 간간히 기억이 남아 있는 녀석들은 환생자가 되고는 한다.
그런 케이스 중에서 시온도 그랬고. 아, 나는 특이한 케이스니까 제외. 애초에 나는 거기 프리패스라고. 지옥도 견학만 한다.
아무튼 그런 '윤회의 좌'처럼 세상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차원을 이면 차원이라고 한다.
그리고 개중에 최악이라 불리는 이면 차원이 있었다.
심연(深淵, Abyss).
이 세상 모든 부정적인 것들이 모인 곳, 그 무엇보다 어두운 구렁텅이, 새까만 지옥, 악의의 고인물.......온갖 더러운 수식어가 붙어 있는 곳이다.
"그 중에서 심연 만큼 더러운 곳도 없더라"
목사의 그림자에서 뻗어 올라온 손은 이제 손이 아니라 손들이 되었다. 크기는 제멋대로지만 하나같이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새카만 색을 띄고 있었다. 빛이 검은색을 반사시켜서 검은색이 아니라 빛을 빨아들여서 검은색으로 보이는 소름 돋는 또렷한 칠흑이였다.
내가 겪은 고통 중에서 손꼽히는게 바로 심연에 들어가는 것이였다. 죄책감 따위는 나를 얽매일 수 없지만 그런걸 가리지 않는 심연 자체가 주는 고통은 인세를 초월했다.
"구원이란 녀석은 말이지. 생각보다 선악에 뚜렷해서 너 같은 녀석한테까지 손을 뻗어줄 만큼 마음씨 좋은 위인이 못되거든?"
예수님 같은 아가페적인 사랑은 딴데가서 찾으려무나.
애초에 인간 출신이였던 녀석한테 그런 자비로움을 기대하면 안되는거지.
"내가 너를 처리할 권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 사람들에게는 있는 모양인데?"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런 수지맞는 제안을 할것 같냐? 너 같은 녀석에게 말이야.
[목사아.....!]
[나를 속였잖아......!]
[우어어어!]
"으, 으아, 으아아아아아!!!!"
선악을 가르는 그런 구원도 나름의 구원은 해준다.
단지 그게 당사자의 구원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구원이지만 말이다.
어느 정도 수준의 악의는 '윤회의 좌'에서 처리가 가능하지만 선을 넘어서면 영혼 자체가 무거워져서 '윤회의 좌'가 아니라 심연으로 흘러들어간다.
심연은 말하자면 평지 위에 생긴 구덩이다. 물이 흐르면 구덩이에 고일 수 밖에 없고 그 구덩이에는 가장 더러운 것들이 가라앉게 된다.
그래, 저 목사에게 속았던 사람들의 영혼도 모조리 심연으로 떨어진다. 그리고 원한이 털어내질 때까지 고통받게 된다.
"거기서 느끼는 고통은 진짜 제정신이 아니지.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배가 터질 때까지 먹으면 고통스러운게 당연한데. 하물며 세상에서 가장 더러운 악의 찌꺼기를 영혼에 다이렉트로 쑤셔넣으면 어떻겠냐? 미칠것 같지? 근데 거기서는 미치지도 못해. 영혼밖에 남지 않으니까"
미친다는 것 자체가 육체가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심연 속에서는 육체 따위 무의미하고 영혼만 남게 된다.
목사를 심연으로 끌고가는 것들도 마찬가지로 악의만 남은 영혼들이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그들은 구원받겠지. 원한이 풀렸으니까.
"진짜 지옥이 있다면 거길 말하는거겠지. 과연 네가 바라던 신이 너를 거기서 구해줄 수 있는지나 모르겠다. 그치?"
"으아아아아아!"
온통 새카만 모습이여도 얼굴은 알아볼 수 있는지 심연으로 자신을 끌고가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자 목사가 기겁했다.
본인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상상도 못할 지옥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애초에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봤다면 좋은 꼴을 보진 않을거라고 확신했겠지.
그는 발버둥치면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애초에 팔다리는 내가 진작에 부러트려놨다. 고통을 견디고 애쓴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서서히 그의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개미 지옥에 빠지기 시작하는 개미처럼 천천히, 그리고 확실히 지옥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사, 살려주십시오! 해달라는건 다 해드리겠습니다! 모아둔 돈도 다 드리겠습니다! 알고 있는건 다 말해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으아아! 놔! 놓으라고! 아아아악! 사, 살려줘! 으아아아아아!!! 엄마! 엄마아!! 아아악!"
목사는 마지막에는 유아퇴행까지 했는지 엄마까지 찾아가며 추한 모습을 보였다.
나는 아무말 하지 않고 조용히 그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이놈은 이렇게 죄에 대한 댓가를 치뤄야 한다. 사람에게서 인간성을 빼앗고 속이고 돈을 뜯어내고. 그래봤자 이 나라 법으로는 제대로 처벌 하지도 못하는 주제에 기껏해야 무기징역이나 받겠지.
다른 유가족들은 고통받으며 살아가는 가운데 이놈은 감옥에서 먹을거 걱정 안하고 사는 꼴은 못본다.
어느새 목사를 심연으로 끌어 들이는 손이 보이지 않았다. 별건 아니고 이미 목까지 빨려 들어가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놈의 육체는 이제 원한 가득한 다른 영혼들에게 갈기갈기 찢여지고 남은 영혼은 심연의 구렁텅이에서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고통에 빠지겠지.
구원? 그래, 저놈도 언젠가 구원 받을 수 있겠지.
최소한 자기가 원한 쌓은 사람들이 전부 구원 받은 다음에서야 말이다.
아마 1,2백년 정도로는 어림도 없을껄? 거기는 시간축도 느리니까 시간은 충분할거다.
"살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심연 속으로 처박혔다.
목사는 마지막까지 살려달라고 했지 용서를 구하지 않았다. 정말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면 사과라도 한마디 했었을텐데 말이다.
그를 삼킨 심연은 조용히 꿀렁였다. 그의 그림자 였던 매개체만 남아서 기분 나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뭐야 볼일이 남았어?"
내가 말을 걸자 심연이 꿈틀거렸다.
온몸이 칠흑같은 모습은 같았지만 인간적인 외형을 띄였던 원혼과는 다르게 뾰족하고 큼직한 상어 이빨로 벌어진 입과 소름이 절로 돋는 붉은색의 안광을 빛내는 괴인이 심연 속에서 불쑥 올라왔다.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외견이다. 입 조차도 뾰족한 이빨과 입의 구분이 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초등학생이 그린듯한 괴이한 느낌의 존재였다.
단지 그것 뿐만이 아니였다. 만약 초월자가 아닌 존재가 본다면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력이 깍일법한 뭔가가 있었다. 마치 크툴루 신화에서 보는 것만으로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는 것처럼 말이다.
[간만에 불러서 무슨 일인가 했더니. 또 심연에다가 쓰레기 수거를 했냐?]
"거 한두놈 담근다고 썩는 것도 아니고 뭘 그래? 그리고 타는 쓰레기는 월수금이니까......아, 오늘은 월요일이라서 딱이네"
[뭐, 나도 이런 놈은 심연에 처박아야 속이 후련하다만. 이야, 원한도 참 많이 쌓았네. 영혼 먼저 강간하는건 초심자가 견디기엔 빡센데 말이야]
"벌써부터 그래?"
[일단 갈기갈기 찢고 보는데 이놈은 업이 많은가보다. 내가 보기에는 1200년쯤은 그 짓을 하겠는데]
"전문가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그는 심연 속의 원혼 따위가 아니다.
심연의 주인이자 최강의 초월자. 내 직장 동료이자 '최강의 대마왕'이란 이명을 가진 자.
사이는......그래도 나름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이다. 직장의 파벌은 서로 달라도 성격이 비슷해서 그런지 그런거 신경쓰지 않고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성격도 비슷하고, 건들지 않으면 무해하단 것도 비슷하고, 요리 좋아하는 것도 비슷하고, 거기에 콧대 높은것들 싫어하고.....아, 저쪽은 드래곤 나는 신 쪽이다.
아무튼 개인적으로는 잘 알고 지내고 있다. 가끔 요리 레시피 같은거 교환하고 그러지. 내가 만든 김치찌개 맛있다고 동네방네 소문내는게 이 사람이다. 솔직히 맛있기도 하고.
그러면 일단 상투적인 인사부터 나누도록 할까.
"그래, 형수님 두분 다 안녕하시고?"
[요즘 한창 신혼이야]
우리 집이랑 똑같네.
저쪽은 두명인거 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