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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화 〉[라쿤맨 비기닝] (102/507)



〈 102화 〉[라쿤맨 비기닝]

감이 좋지 않았다.

내가 이미 늦었다는걸 확신했다.

그러니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해야할 일을 하는  뿐이였다.


"아, 네. 감사합니다. 아마 길이 엇갈렸나 보네요"


나는 대충 인사를 하고 숙소에서 빠져나왔다.

어떻게 조져야 이 새끼들을  조졌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주모자인 목사는 최대한 고통스럽게 해줄 생각이다.


어차피 1번 목적인 조 팀장의 전처는 찾을 의미가 없다. 그러니 2번 목적인 아틀라스와의 연관성을 찾자.  쪽이 오히려 의미가 있을테니까.

가장 의심스러운 사람은 역시나 목사다. 나는 조용히 기감을 넓혀서 교회를 살펴 보았다.


일단 평범한 교회다. 대부분이 아까 예배를 하던 예배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그 옆에 나름 큰 방 하나가 있었다. 아마도 거기가 목사가 쓰는 방인듯 보였다.


나는 조심스래 움직였다. 숨어서 조지는건 내 취향도 아니고 전공도 아닌지라 할 수 있는건 기척을 죽이고 움직이는 것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수준 낮은 녀석들을 속이는데는 충분했다. 비가시화는 못하니까 직접 보면 들키겠지만 보지만 않는다면 바로  뒤에 있어도 들키지 않는다.

"여긴가?"


나는 슬쩍 창문을 통해서 목사실을 들여다 보았다. 이미 기감으로 확인했지만 안에 사람은 없었다.

감시 카메라는 시온이 없다고 했으니 그건 둘째 쳐도 센서는.....흠, 센서도 없나? 이상한데?


나는 우선 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눈에 띄는건 없나......이 새끼 잡탕 종교인 주제에 방은 잘도 꾸며놨구만"

나무로 만들어진 용 장식 같은건 왜 있냐. 아무리 개신교니 천주교니, 가톨릭이니 해도 니들은 유일신 아니였냐? 왜 이런 환상속의 동물 장식 같은걸 해둬?

그 외에도 책상도 좋은 재질의 나무로 다듬은 수제로 보이고  위에 올라가 있는 명패도 나전칠기로 장식된 명품이였다.


돈  꽤나 벌었나 보구만. 아니, 벌 수 밖에 없는 환경이긴 하니까.


나는 기감을 펼쳐서 뭔가 숨기고 있는건 없나 확인을 해보았다.


그리고 바닥에 빈 공간이 있는걸 확인했다. 바닥의 카페트를 걷으니 눈으로 봐도 잘 보이지 않는 희미한 네모난 자국이 있었다.


"이 공간은......금고라기 보다는 통로 같은데? 계단도 있고"


조금 더 집중해서 어떻게 여는건지 확인을 하자, 옆에 연결된 것이 있었다. 물론 전기로 움직이는건 아니고 간단한 기계 같은 방식이다.

손바닥으로 바닥을 문질러서 확인하다가 덜컥, 하고 뭔가가 밀리듯 덮개가 떨어졌다.  안에는 금고처럼 다이얼을 돌리는 형식의 원형 숫자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런거 설치 하려면 얼마나 드려나......창고 지하에 비밀 실험실 같은거 있는 우리 집보다야 낫지만 말이지. 오히려 전자기기가 아니라 이런식으로 만들면  귀찮지 않나?"

다이얼을 비롯한 안쪽의 기관들은 금속으로 되어 있었으나 전기로 움직이는게 아니였다.

즉, 순수한 초창기 기계 같은 느낌이다. 버튼 누르면 열리고 그러는 방식 있잖아. 전기 안쓰고.

이러니까 시온이 못찾지. 전기 안통하면 시온은 나보다도 힘을 못쓴다.

"어디보자....2,18,33.....그리고 5번"


나는 손바닥에 감각을 집중해서 알맞은 암호를 돌려 맞추었다. 전자기기가 아니라 이렇게 숫자로 때려맞추는 형식이라면 나도 충분히   있다. 아주 미세한 감이라도 놓치지 않고 돌리면서 즉석해서 맞출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덜컥, 하고 바닥의 일부가 튀어나왔다. 빈틈에 손을 넣어서 여니 안쪽에는 사람 한명이 들어갈만한 계단이 보였다.

이런 비밀 통로는 참으로 두근거리는 맛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은 그저 텁텁하고 쓴맛만 입에 감돌고 있다. 상황이 상황이라서 그런가.

들어가기 전에 우선 주변에 누군가 들어올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안전이 확보된 후에 통로로 내려갔다.

계단은 상당히 깊었다. 거의 지하로 3,4층은 내려가야 하는 수준의 깊이였다. 여기 교회가 세워진 절벽의 반은 걸어서 내려가는 것과 다름 없었다.

그리고 안쪽에는 웅웅거리면서 기동하는 컴퓨터가 몇대 놓여 있었다.

"여보세요? 시온? 난데. 여기 컴퓨터 있는데?"

[어디.....아, 거기 있는건 제가 해킹 못해서 찾지 못했던겁니다. 아마 그것도 영자 컴퓨터의 영향을 받기 때문일테니 저번처럼 USB를 통해서 내부에서 부터 해킹하면 됩니다]


"그래?"

시온은 영자 컴퓨터.....그러니까 이능력이 접목된 컴퓨터는 해킹이 어렵다. 그래서 저번에 아틀라스 비밀 연구실도 내부에서 USB를 꽂아서 해킹한거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라쿤맨 가면을 쓰고 귀 부분에 달려 있는 USB를 컴퓨터에 꽂아 넣었다.


"뭔가 얻어낸거 있어?"

[5초도 안지났는데 재촉하지 마십시오. 흠......일단 여기는 연관은 되어 있지만 꽝입니다]

"꽝이라고?"

[네, 이 녀석들은 단순한 끄나풀입니다]

시온이 분석이 끝났는지 대략적인 설명을 해주기 시작했다.

[여기 있는 데이터는 대부분이 자금 관련 데이터입니다. 아마도 연구소에 지원금을 보내주던 물주 역할을 한  같습니다]


"겨우? 그러면 이런 컴퓨터 같은게 왜 있어?"


[자금 추적을 할 수 없게 교란시키는 역할이 이 컴퓨터의 주된 역할인 것 같습니다. ]


뭐가 먼저인지는 모르겠다. 교회가 만들어진게 먼저인지, 아니면 만들어진 교회에 아틀라스가 손을 뻗은 것인지.


하지만 어느 쪽이라도 상관 없었다. 어차피  다 작살낼 생각이니까.

[이 교회에서 벌어들인 돈은 장난이 아닙니다. 매달 수십억씩 몇년을 해먹었습니다. 이런 자산 유동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제 눈에 걸리지 않았다는건 역시 저쪽의 영자 컴퓨터가 꽤나 한다는 소리입니다]


"자금 추적은 가능하겠어? 아무리 그래도 한국 지부에 전부 털어 넣진 않았을텐데?"

자고로 분산 투자가 제일 안전빵이다. 하나에 밀어넣었다가는 한큐에 말아먹는 수가 있다. 이놈들도 바보가 아니라면 여기서 벌어들인 돈을 다른 지부에 보냈을 것이다.


[지금 계좌 추적 중입니다만......마찬가지로 영자 컴퓨터 때문에 중간에서 막혔지만 어느 나라로 보내졌는지는 파악 할  있습니다]


"어딘데?"


[영국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입니다]


씁, 하필이면 셋 다 마스터 유저 보유국이다. 그나마 터키랑 호주가 없는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니, 반대로 마스터 유저 보유국인만큼 연구하기가 쉬워서 거기서 연구를 하는걸지도 몰랐다. 한국같이 작은 나라에도 아틀라스의 실험실이 있던걸 보면 가능성은 있었다.


솔직히 전 세계적으로 보면 한국은 나름 잘 사는 나라이기는 해도 그 비슷하거나 위인 나라는 더 있으니까.

돈 문제는 그렇다고 치자. 다음 문제로 넘어가야 한다.

"그런데 이놈들이 괜히 돈을 지원 해줬을리 없지. 어디가 먼저든 간에 아틀라스 쪽에서 뭔가 준게 있을텐데?"

[물론입니다. 아틀라스에서 약간의 실험 결과물을 주고 그걸 통해서 교세를 확장시킨 것 같습니다]


"실험 결과물?"


뭔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유진이의 병세를 호전시킨 라프 에너지. 가이아 포스와 라프 에너지의 융합을 추구하는 놈들이라면 보통 사람에게 라프 에너지를 주입하는 실험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았다. 단지 어떤 방식으로 주냐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다.


적당히 상태만 호전될 정도의 극미량의 라프 에너지를 올바른 부위에 주입해야 하는데 그건 여기 교회의 능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였다. 아틀라스 놈들이 돈  벌어오라고 적당한걸 집어준게 분명하다.


차라리 가이아 포스를 응용할 것이지 부작용이 있을 라프 에너지를 사용한게 질이 나쁘다. 가이아 포스는 어차피 지구인 전용이니까 포스 유저가 아닌 사람에게 주입되어도 큰 문제는 없겠지만 라프 에너지는 다르다.

"그런데  이상한데. 다른 정보는 없어?"

[어떤게 말입니까?]

"그 실험 결과물이 정확이 어떤건지나 그런거"


[그런 데이터는 안에 없습니다. 직접 컴퓨터 본체에 USB를 사용해서 해킹해도 없다는건 여기에 들어있지 않다는 소리입니다]

분명 빠져있는게 있었다.


일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이미 증거를 보고 먹어보기도 한 내가 그걸  알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좋지 않으니 이런걸 생각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아틀라스와 가이아 교는 서로 연관되어 있었다.


아틀라스는 실험 결과물을 제공하여 가이아 교의 교세를 확장시키는데 도움을 주었고 가이아 교는 아틀라스에게 연구 자금을 제공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는 소리다.

그런데 내가 한달  쯤에 아틀라스의 실험실을 파괴했다. 만약 국가 단위로 존재하는 수준이라면 가이아 교가 실험 결과물을 제공받는데 차질이 생기는건 당연한 일이다.

설령 해외의 다른 지부에서 들여온다고 한들 그게 가능할까? 아무리 놈들이 비밀 조직에 영향력이 상당하다 하더라도 그건 좀 무리라고 생각하는데?

그렇다면.......


"아, 누구 온다. 다음에 연락할께"

[조심하십시오]


"누구? 내가? 저쪽이?"


[아, 실언이였습니다. 신경쓰지 마십시오]


나는 목사실 쪽으로 오는 기척에 황급히 계단을 올라가 다시금 원상태로 만들었다. 아직 정보가 모자란데 더 얻으려면 들키는건 시기상조다.

능력을 이용해서 염동력같이 응용해 내가 주변을 뒤지느라 엉망이 되었던 방을 원상태로 복귀시켰다. 그리고 다시금 창문 쪽으로 빠져나와서 벽에 붙어서 대기했다.


이내  안으로 사람이 들어왔다. 들어온 사람은 아까 봤던 목사와.......고속 버스에서 봤던 유진이네 아버지였다.

"여기 앉으시죠, 이 사장님. 마실건 커피로 괜찮으십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목사님"


유진이네 아버지는 버스 안에서도 말이 없었다. 뭔가 생각하던 느낌이라서 나도 일부러 말은 걸지 않고 유진이네 어머님이랑 이야기 하면서 정보를 모았지만 왜 하필 목사랑 지금?


나는 귀를 기울여서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창 밖에서 벽에 붙어서 그러는 것이지만 딱히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창문을 넘어서 들리는 것이지만 내 귀에는 두사람의 대화가 똑똑히 들리기 시작했다.


"요즘 유진이는 어떻습니까, 이 사장님?"

"많이 좋아졌습니다. 이게 다 목사님 덕분이죠. 이 가이아 교에 든 이후로 유진이의 몸도 많이 나아서 스스로 걸을 수도 있게 됐습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목사는 예배실에서 봤을 때와느 다르게 가벼운 옷을 입고 있었지만 흰색의 사제복 같은 것을 입고 있다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가까히서 본 그의 인상은 겉보기에는 좋은 사람처럼 보였지만......내가 보기에는 사기꾼으로 보이는데 왜일까.


"이게 모두 다 신의 은총인 덕분입니다. 유진이가 지병을 타고난건 그분께서 내린 시련이지만, 이 사장님이 그분을 믿으시면서 다시금 축복을 내리신거죠. 감사는 제가 아니라 신께 기도를 드려야 하는 법입니다"

"네,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목사님. 그리고......"

유진이네 아버님은 가지고 왔던 작은 상자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리 크진 않지만 만약 들어 있는게 5만원짜리라고 한다면 2,3000만원 정도는 하는 수준으로 보인다.

어쩐지 목사실에서 만나더라. 저런걸 대놓고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제가 요즘 사업이 잘 풀리지 않아서.....죄송하지만 이번 헌금은 이것 밖에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목사님"

"헌금의 액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건 헌금을 내는 마음이죠. 유진이가 낫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그 어떤 헌금보다도 값질테니 금액은 상관 없습니다......하지만 주신다면 교회의 번창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목사님 같이 청렴하신 분도 드물겁니다. 허허!"


어떤 미친놈이 교회에 헌금을 2,3천 만원이나 뿌리고 그걸 또 받냐.  돈이면 훨씬 더 많은 불우 이웃을 도울 수 있는데.

내가  말이 아니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나는 돈이 있으면 있는거고 없으면 없는대로 사는 편이다. 시온은 나랑은 반대로 돈이라면 차고 넘치지만 내가 죽은 뒤에 다른 차원에 환생할 나를 찾으러 떠날 때는 모든 재산을 정리해서 기부하거나 사회에 환원하고 떠난다.


그렇지만 종교에 그만한 돈을 뿌리는건 미친짓이다. 종교를 믿음으로서 구원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저놈 말대로 액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거다.

신이 과연 인간들이 만들어낸 가치를 좋아할까?

내가 아는 신 중에서 술 좋아하는 신은 있긴 있었지만 돈 좋아하는 신은 본적이 없다. 있어도 그걸로 술 산다고 좋아하는거고. 애초에 신 중에 술 싫어하는 신이 있겠냐.

"이번에도 저희 유진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마시지요, 이 사장님. 신께서 분명 굽어 살피실겁니다. 가이아님의 축복이 그대와 함께하길"


유진이네 아버님이 목사실을 나가고. 혼자 남은 목사는 그가 건냈던 헌금상자를 잘 갈무리 했다.

상자를 열어 정확한 금액을 확인하자 그는 혀를 찼다.

"3천 만원인가,손이 작아졌군. 사업 하는게 잘 안된다고 하는데 그러면 회사라도 팔던지 해야지. 하필이면 명환 공장 사장님 같은  손이 난데없이 떨어져서 저런 사람한테까지 순도 높은 은총을 내려야 한다니......여태까지 그랬던 것처럼 순도 낮은걸로도 충분할텐데"


혼자 남은 목사는 본색을 드러냈다. 하기사, 돈 많이 받는 종교인치고 청렴한 사람은 본적이 드물다.

만약 정말로 사람들을 구원하고 싶었다면 어디 아프리카 오지로 떠나서 교회를 짓던가 해야지.

잠깐만, 그런데 명환 공장?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서 들어봤더라......


기억을 뒤져보던 찰나, 명환 공장이란 단어를 경찰서에서 들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때 고삐리 4인조 중에  큰 놈의 아버지!

나름 돈 좀 버는 듯한 모습이였지만 시온의 인맥으로 탈탈 털려서 망했던 사람이다. 지금 어떻게 됐는지는 나도 모르고.


"은총이라......"


나는 불길한 단어를 중얼거리며 입 안에서 곱씹어 보았다. 보통 좋은 뜻으로 쓰이는 단어지만 지금 상황에서 저런 부패 목사의 입에서 나온 단어라면 좋은 의미는 아닌걸로 보인다.


유진에게  라프 에너지 같은걸 은총이라고 부르는건가? 만약 그런거라면......그 은총을 다른 사람에게도 준걸까?

의문은 몇가지가 더 늘어나고 조사해야 할 것도 생겼다.


우선 좀 더 돌아다녀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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