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1화 〉[라쿤맨 비기닝] (101/507)



〈 101화 〉[라쿤맨 비기닝]

수백명의 사람들이 교회의 예배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교회 특유의 많이 앉을 수 있는 일자로 된 나무 의자에 빈틈없이 앉아서 누구 하나 떠드는 기색 없이 조용히 기다린다.


개중에 어린애가 없는건 아니였지만 아이들도 떠들지 않았다. 이미 떠들었다가 혼난 전적이 있는듯 발말 장난치듯 움직이면서 심심함을 달래고 있었다.

"슬슬 예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목사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사람들이 한층 더 조용해졌다. 아까 까지는 말이 없었어도 뭔가 사람이 움직인다는 기척은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돌처럼 굳은 것마냥 그런 기색도 없이 오로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얀 사제복을 입은 단상 위의 남자는 성호를 그으며 단상의 성경을 펼쳤다.

"여기 있는 여러분 모두 누군가를 잃은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자식을 잃었고, 누군가는 친구를 잃었고, 누군가는 부모를 잃었습니다. 아직도 상처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상처가 아물어서 흉터가 되어 남은 사람도 있죠. 각양각색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이라 한다면 우리들 모두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득  교회가  이렇게 사람을 모을  있는지 깨달았다.


여기 있는 사람들 상당수가 나이 좀 있는 사람들이다. 자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들은 있지만 20대 부근의 젊은이들은 없다. 그게 왜 그럴까?


그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대공황 시절을 겪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때 1,20대였다면 지금은 3,40대가 될테니까 말이다.


나는 그 시절에 부모님을 잃었지만 그거야 전생 기억 각성도 하기 전의 옛날 이야기라 잘 모른다. 나는 초월자라도 육체에 얽매이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불편함 중 한가지다.

그렇지만 나도 그런데 그 시절에 청년이였던 사람들은 오죽할까.  앞에서 소중한 사람들을 잃은 충격은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건 기댈 곳이다.

목사는 아무래도 그 부분을 노린듯 보였다.

"제가 할 수 있는건 그저 여러분들에게 말로서 보듬어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제가 신에게 받은 사명은 바로 그것이고 신은 그런 저를 굽어 살피셔서 미약한 직책을 주셨습니다"

"아닙니다, 목사님!"


"전부 목사님 덕분에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암요....."

맹목적으로 중얼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뭔가 소름이 돋았다. 마치 TV에서나 볼법한 정도가 넘은 광경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신도들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사는 말을 계속 이었다.

"다른 세계에서 넘어온 괴물들이 우리 친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앗아가고,  때문에 생기는 일들은 신이 내린 시련입니다. 시련을 이겨낸 자는 내세에 천국에 이를 것이고 모든 고통 속에서 해방될겁니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께서 지금의 우리들을 외면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네, 그렇습니다......"


"목사님 말이 맞습니다.....그럼요"

"분명 신께서는 굽어 살피시는겁니다.......!"

내가 괜히 들어왔나 싶다. 처음에는 조용하던 예배실이 신도들의 목소리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사의 목소리가 더욱 컸다.

그도 포스 유저인만큼 신체능력은 보통 사람보다 좋을테니까 당연한 일이다.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만 신은 굽어 살피시어 구원과 기적을 내려주십니다. 여러분들이 겪는  앞의 모든 일들이 신께서 안배하신 일이고 내려주시는 일입니다. 그러니 부디 그것을 잊지 마시고 살아가시면 됩니다"

한가지 의문스러운 점이 있다.


일단 목사라 불리는건 둘째 친다 하더라도 성호는 왜 그은거지? 내가 아무리 종교에 대해 잘 몰라도 성호는 천주교 쪽에서나 긋지 개신교에서는 쓰지 않을텐데?

게다가 하느님인지 하나님인지 몰라도 신을 존칭하지 않고 그냥 신이라 부르는건 왜일까? 하다못해 개신교의 신이라면 여호와라 부를텐데 그런 느낌도 없었다.

뭔가 제대로 짬뽕된 종교 같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사이비 종교가 다 거기서 거기다만.


그 뒤의 예배는 그리 특별한게 없었다. 성경 몇줄 읽고 설명을 하고 끝났을 뿐이다.


시간도 2시간 정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핸드폰도 못하고 지루해서 혼났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돌아가실 형제, 자매님 여러분들은 먼저 나가주시고 머무르시는 분들은 뒤에 식당에서 식사를 하신 뒤에 저녁 예배 시간에 뵙도록 하죠"

잠깐만, 저녁에 또 예배가 있어?


하루에 몇번이나 예배를 하는거지. 많이 한다고 좋은건 아닐텐데.


나는 사람들의 인파에 섞여서 밖으로 나갔다. 아직 정보를 모으려면 더 있어야 하기에 돌아다녀야 한다.


무엇보다 아직  팀장의 전처를 찾지 못했다. 안에 있던 수백명의 사람들을 곁눈질을 하여 찾아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찾지 못했다.

나는 조용하게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해서 시온에게 연락했다.


"어, 난데. 혹시 여기 CCTV같은거 해킹할 수 있어?"

[한번 찾아보겠습니다.......흠, 이놈들 완전 또라이입니다. 거기 정말 사람들이 있는거 맞습니까? 인터넷이 연결된 물건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죄다 아날로그 밖에 없습니다!]

"핸드폰은? 그런 것도 없어?"


[일단 한 곳에 수백개의 핸드폰을 모아둔건 파악 해뒀습니다. 그런데 그런 시설에 CCTV하나 없다니 너무한거 아닙니까?]

"신도들 핸드폰이라도 수거한건가?"

[그런 모양입니다. 아무튼 인터넷이 연결된 전자기기는 없어서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습니다]


"아냐, 괜찮아"


이런 곳에서 CCTV가 설치되어 있지 않다면 범죄 행위가 일어났을 때 용의자를 찾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건 장점이  수도 있다.

사건의 용의자가 자신이라면 말이다.


요즘 세상에 핸드폰을 거둬가는 곳이 어디있냐. 야자하는 학교도 요즘은 안그러겠다.

"조 팀장 아저씨가 여기서 행적이 끊겼다고 했으니까 분명 여기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아야 하지만 우선 밥 부터 먹기로 했다. 배가 고프면 아무것도 못하는 법이다. 내가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건 둘째 쳐도 먹어서 나쁠건 없었다.

식당은 2층짜리 넓은 건물이였는데,  층에는 한번에 70명 가량이 식사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게 2층이니 한번에 140명. 나름 큰 시설이기에 사람이 수백명이라도 돌아가는 로테이션의 시간을 생각하면 충분히 먹는데는 자리가 없을 가능성은 적었다.

요즘 세상에 식권을 파는 곳은 상당수 전자기기로 대체하지만 시온이 전자기기가 없다는 말이 사실인지 따로 식권을 파는 매점이 있었다.

더군다나 카드가 안된다! 요즘 세상에! 씨발!


어쩐지 국회의원 매수할 정도로 현찰이 많다고 했어! 이런 식으로 헌금도 현금으로 받고 식권도 현금으로 받으면 탈세도 잘 안걸리고 현금도 빠방하게 모으겠지!

"뭔놈의 식권이 하나에 3000원이야......"


메뉴는 여러개도 아니고 학교 급식마냥 그냥 주는대로 먹는 식이다. 그리고 한끼에  3000원 정도.


물론 대량으로 만들고 좋은 업체 고르면 3000원에도 충분히 괜찮은 밥이 나오지만......여기는 주변이 산이나  밖에 없는 곳이다.

어느 정도의 비주얼이냐면.......대충 먹을만한 정도의 군대밥?


말년병장도 먹고 간다는 군대리아나 소시지 야채 볶음에 고기 미역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고기 볶은 반찬 하나쯤은 있었다. 대충 불고기 소스로 볶긴 했지만 말이지.......

요식업 종사자로서 이런 요리는 용납 못한다. 메뉴 선정 이전에 정성의 문제다.

밥도 찐밥이고, 대충 만든 티가 팍팍 나는데 이게 맛이 있겠냐?

대충 먹고 끝내야겠다.

"........?"


불고기를 한입 입에 넣는 순간 싸한 느낌이 등 뒤를 타고 올랐다.


맛이 이상한건 아니다. 시판 불고기 소스를 쓴만큼 맛 자체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

문제가 있다면 고기 쪽이였다.


고기는 소고기도, 돼지 고기도 아니였다. 하다못해 닭고기도 아니였다. 하지만 내가 예전에 먹어본 맛과 비슷했다.

물론 같다는건 아니다. 내가 기억하는 맛에 비하면 뭔가 많이 달랐으니까. 소스를 뿌리고 볶아서 익혔다고 하더라도 맛이  달랐다. 내심 부정하고 싶은건지도 몰랐다.


나는 슬쩍 먹던 밥을 내려놓고 그대로 잔반 처리장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밥을 대부분 남긴 나를 보고 검은 사제복을 입은 남자가 물어왔다.


"밥이 입에 맞지 않으십니까, 형제님?"

눈에서는 의문과 의심의 기색이 읽혔다. 여기서 뭐라고 대답하냐에 따라서 들킬 가능성이 높다.


나는 대충 둘러대기로 했다. 깽판을 부리다가 저번처럼 자료가 날아가면 고생한 보람이 없다. 더군다나 여기는 전자기기도 없어서 아날로그로 기록할테니 자료도 서류뭉치라 파기되면 시온도 복구 못한다.

성질을 참자. 나는 필요하면 참을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음이 심란해서 그런지 식욕이 없네요"


"힘드신 일이 많은 모양입니다"


"네, 저번에 차원진이 명동에서 일어났지 않습니까? 그래서 거기 있던 제 건물 몇개가 부서져서......솔직히 요즘 힘듭니다"

"그러신가요?"

건물 있다는 소리에 그의 안색이 바뀌었다.


하지만 아직 의심이 덜 풀렸는지 그는 대충 둘러대기 어려운 질문을 해왔다.

"그런데 형제님. 처음 보는 얼굴인듯 싶은데 어떤분 소개로 오셨습니까?"


".......아"

이건 내가 말하기가 힘든 부분이다. 단숨에 놈을 조지고 목사란 놈을 잡아다가 불게 만들까 생각했지만 문득 스쳐지나가는 좋은 생각이 있었다.

과연, 그래서 처음에 그런 우연을 만들어 주었나. 운명의 절대자.

"유진이네 아버님한테 들어서 왔습니다"


"흠, 유진이네 아버님이라......."

"유진이가 예전부터 심장이 아파서 외출도 힘든 아이였는데  교회에 다니게  이후로 많이 좋아졌다고 해서 저도 초대를 받아 왔습니다"


"그러시군요. 유진이도 어린 나이에 딱하게 됐죠. 한창 뛰어 놀아야 할 남자아이가 그렇게 아프니 말입니다"

"네? 유진이는 여자아이인데요?"


"아! 제가 다른 아이랑 착각한 모양입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형제님"


일부러 한번 떠보기까지. 그 애를 만나지 않았으면 큰일 났겠구만.

검은 사제복을 입은 남자는 웃으면서 헤어졌다. 나는 잔반 처리장에 밥을 싹다 버리고 나왔다.

씨발, 내가 요식업 종사자라 어지간해서 먹을건 안남기는데 말이야. '먹을건'말이지.

정말 오래전에 극한 상황에 내몰려서 먹은 적은 있지만 그것도 지금의 나도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단 두번밖에 안되고. 초월자가 되서 먹지 않아도  무렵에는 입에 댄적도 없다. 그런데 여기서 먹게 될 줄이야.

하지만 그 맛이  달랐다. 두번 밖에 먹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것 외에 더 다른 맛이 있었다. 익혀서 그게 뭔지 파악되지 않지만 말이다.

 새끼들 제정신이 아닌 사이비 종교란거 파악했다. 목사 새끼가 뭔 지랄을 하면서 좋은 말을 지껄여도 이제부터  새끼들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판단할거다.

개빡치네 진짜, 내가 할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짓이 있고 못할 짓이 있지. 하는 짓이 참 잘하는 꼴이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지만 목사 놈은 내가 직접 조진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럽게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줄테다.

"저기, 제가 여기 오늘 처음 왔는데 저녁 예배까지는 자유 시간인가요?"

"아, 숙소에 있는 작은 예배실에 가서 개인적으로 기도를 하거나 사제님들이랑 대화하거나 주로 그런 시간을 보내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별거 아닌데요"

검은 옷을 입은 포스 유저들을 사제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아니, 성호 긋는건 천주교고, 목사는 개신교고, 사제는 가톨릭 아니냐?

얘네들 완전 짬뽕이구만. 다시금 사이비라는걸 깨닫게 되었다. 얘네들 근본이 없어. 근본이.


우선 나는 숙소를 돌아다니기로 했다. 어느 숙소인지 몰라도 돌아다닌다고 변명하면 되니까 손쉽게 돌아다닐 수 있다.


한 방에 다섯명씩 들어갈  있는 방이 한 층에 10개 정도. 그게 3층짜리니 150명. 그런 건물이 몇개나 있으니 수백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재우기에는 충분했다.


방의 현관문 앞에는 명단이 붙어 있었는데 그 명단을 보고 자기 숙소를 찾아가는 방식인듯 하다.

건물 두개쯤 돌고 나서야 나는  문 앞에 붙은 '한여진'이란 이름 세글자를 발견했다. 조 팀장의 전처 이름이다.


"저기, 실례합니다"


"누구신가요?"


가족끼리 지내는 곳도 있겠지만 개인이 지내는 경우 여성은 여성끼리 지내게 모아둔지라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나왔다.

사진을 봐서 얼굴도 알고 있으니 이 사람이 한여진 여사는 아닐거다. 안에  사람 외에 기척은 없고. 일단 같은 방을 쓰고 있으니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겠지.


"실례합니다. 한여진 여사님 지인인데요. 여기 있다는 말 듣고 왔는데 혹시 어디 가셨나요?"


"한 여사님이요? 한 여사님은 일주일 전에 집에 일이 있다고 돌아가셨는데요"

"네?"

서로 엇갈렸나 했지만 그랬다면 조 팀장이 나를 보냈을리 없다.


돌아가는 길에 사고를 당했나? 싶지만 행적을 찾아볼 수 없을만큼의 사고를 당할리도 없다.

만약에 그랬다면 시온이 진작에 나한테 알려 줬었겠지. 그리고 가족이였던 조 팀장에게도 연락이 갔을 것이다.

"누가 그랬는데요?  여사님이 직접?"

"아뇨, 사제님이 그러셨어요"


이놈들 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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