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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화 〉[라쿤맨 비기닝] (98/507)



〈 98화 〉[라쿤맨 비기닝]

신(神).


종교에서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자들이다. 흔히 세계를 창조하거나 인간을 구원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지만 뭐, 그거야 지들 신화고.

난 신이란 존재를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이번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조금 해줘야 한다.


백리도 루리의 가족이라면 알아야 할 사실이다.


"신이라면......성경에 나오거나 부처님 같은걸 말하는 거예요?"


"맞아. 하지만 네가 아는 개념과는 좀 달라"


 지구의 사람들은 신을 본적이 없기에 신이란 존재를 경외시한다.

하지만 진짜 신이란 개념은 그렇게 어려운게 아니다. 그저 다수에게서 받은 신앙이 결정을 이룬게 신이란 존재다.


의지의 힘이 모인만큼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적이라 불릴만한 일을 할 수 있지면 결국 인간에게서 나온 존재다.

비슷한 예시로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 같은거다. 국가가 국민을 두려워 해야지, 국민이 국가를 두려워 하지 않는 것과 같은 논리다.

"신이란건 진짜 있는거예요?"

"하기사, 여기 지구 출신이라면 일단 신의 유무부터 의심해야겠지. 직접  적도 없고 기적을 체험한 적도 없을테니까"

20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는 과학만 존재하는 문명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적성종과 가이아 포스가 있다.

하지만 그러더라도 신의 존재를 믿는건 별개의 문제다.

"신은 진짜 있어. 하지만 네가 생각할만큼 자비로운 존재도 아니고 전능하지도 않아"


"아무튼 있다는거네요"

"내가 아는 신만 하더라도 몇 되거든"


"신을 만나봤어요?"

"꽤 자주"

죽여보기도 했고.

신이라고 죽지 않는건 아니다. 존재하는 만큼 죽기도 한다. 이 세상은 비틀림과 불완전으로 인해 영원한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비틀림과 불완전 덕분에 세상이 재미있는거기도 하지만.


"파괴신 스사노오, 태양신 바스테트, 창생신 여화, 가슴의 신 유신, 문의 신 하까나이, 성교의 신 갓-루리루리, 패드립의 수호신 팬텀......뭐, 대충 그 정도"

"아니, 뭔가 이상한게 있는데요? 어디서부터 구라예요?"

"아, 팬텀은 구라야"

"아니, 그 앞에 있는게 죄다 진짜라고요?!"

그래, 나도 알아. 스사노오나 바스테트는 지구 출신 신이니까 백리도 이름은 들어봤을거다. 담당하는 신위가 다르긴 해도 이해 못할 부분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 뒤에 있는건 백리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신이 다수일 것이다.


"너는 들어보지 못했겠지만 내가 말한 신들은 나도 무시 못할 정도거나 전차원적으로 신앙을 받는 존재야. 그렇기 때문에 가진 힘도 남다르지"


"그게 지금 루리랑 무슨 상관인......잠깐만요. 중간에 성교의  이름이 뭐라고 했죠?"


"갓-루리루리"

괴상한 이름이지만 자기 출신 동네 언어로 루리란 성교를 뜻한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김섹스섹스던가 하겠지 뭐. 차라리 루리루리라고 부르는 편이 낫다.

"......그 신이랑 루리랑 무슨 관계예요?"

옛날에 엄청 큰 전쟁이 하나 있었다.

그 시절에는 신이라고 해도 목숨을 보장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한 초월자들이 전쟁을 주도했다. 지금의 내가 그 전쟁에 참여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초월자들이 죽어나가던 때였다.


별 하나 부술 초월자도 한순간에 갈려나가고 차원조차 몇개가 부서져 파편이 흩날리는 지옥같은 시절. 지금이야 그 시절이 끝났다지만 아무리 신이라 하더라도 PTSD에서 벗어날 수 없는 법이다.

"그 시절 전쟁을 겪은 그녀는 힘의 필요성을 느꼈지. 하지만 이미 전 차원의 신앙을 받고 있는 신으로서 힘의 총량은 변하지 않아"

그렇다면  강해질  있는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전쟁을 하거나 발전하는데 가장 필요한게 뭐라고 생각해?"

"......정보요"

"맞았어"

성교의 신은 자신의 일부를 쪼개 영혼을 만들었다. 그리고  영혼을 윤회의 고리에 뿌렸다. 아, 윤회의 고리란 말 그대로 영혼이 환생을 하는 루트다. 거기서 나온 영혼이 세상을 살고 죽으면 다시금 거기로 돌아가는게 수순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게 우리가 아는 루리다.


"성교의 신 갓-루리루리의 정보 수집 단말. 그게 네 여동생의 정체야"


"그럼 루리가 신이라는 소리예요?!"

"아니, 루리랑 갓-루리루리랑은 별개의 존재야. 정보를 어느정도 수신 받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루리가 신의 힘을 사용할 수 있지는 않아"

나도 살아오면서 저 루리들은 종종 봐 왔다. 많이는 아니고 양손으로 꼽을 정도.....하지만 죄다 성격이 괴상한건 똑같다.


애초에 그 디폴트가 되는 신의 성격이랑 닮아서 그런거지. 그나마 윤리관은 안닮아서 정말 다행이다.


"태어날 때부터 신의 권속이기 때문에 좋은 재능과 능력을 타고나지. 포스 유저라도 루리가 나이대에 비해 강한 것도 그렇고, 머리가 좋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야"

"........."

"보통은 그냥 살아가는 애들도 있지만, 종종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갓-루리루리와의 회선이 연결될 때가 있어. 그러면 다른 권속들과 정보를 교환하기에 지식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지"

"혹시 루리가 이상해진다거나 그런건......"


"그건 걱정하지 마"


보통 이럴 때 걱정하는건 그 사람에 대한 자아의 문제다.


A란 사람에게 B의 기억이 들어간다면 A는 A일까 B일까? 그런 문제다.

"어디까지나 교류가 되는건 정보지 기억이 아니거든. 네가 아는 루리가 루리가 아닐 상황은 벌어지지 않을테니까 걱정마. 유일하게 그럴 때가 있다면......그건 원본인 신이 직접 강림할 때 정도겠지"

"강림할 수도 있어요? 신이?"

"그 정도로 강대한 신이라는 소리야. 나도 그거 종종 본적 있고"


하지만 백리가 걱정할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는건 아니다. 아마 죽을 때까지 한번 볼까말까하겠지. 본다면 운이 좋은거고.

백리는 뭔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내 이야기를 듣고도 루리를 평소와 같이 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겠지. 솔직히 고민할만한 문제다.


그러나 결국에 루리는 루리다. 백리가 아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그냥 좀  괴상해졌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혹시나 나 없을 때 강림해서 뭔짓 하려거든 나한테 꼰지른다고 해. 지도 뒤지기 싫으면 자제하겠지"

"그래도 신인데......이상한 짓은 안하지 않을까요?"


"내가 아까 그 신이 무슨 신이라고 했지?"

".....성교의 신이요"

신은 누구나 관장하는 개념이 있다.  중에서 갓-루리루리는 성교의 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따로 종교를 만들 필요 없이 가만히 있기만 해도 신앙을 받는다. 성교란건 번식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위. 성별이 존재하는 모든 지성체가 멸종하지 않는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존재할 강대한 신이다.

하지만 신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은건 아니다. 신은 신 나름의 가치관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


"갓-루리루리는 성교의 신이기 때문에 무엇보다 성교를 중시해.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


"어......섹스 하면 좋다? 정조관념이 이상한가요?"


"정조관념 자체는 괜찮아, 개인 취향 때문에 남의 여자 빼앗거나 강간도 극혐하지. 하지만 서로 사랑이 있는 섹스라고 한다면 설령 근친도 오케이라고 하는 놈이야"

"엑?!"


신의 관점을 인간의 시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그나마 성교의 신이라는 갓-루리루리도 그 정도인데 다른 신은 오죽하겠냐?

그래서 내가 신이랑 상종을 안하는 것이다. 그녀는 루리의 일도 있고 예전부터 아는 사이니까 알고 지내는 정도지 여타 다른 신이랑은 보면 무시하거나 죽이는게 일상이다.

자고로 능력 하나 있는 사람이 신을 죽이면 좀 하는거고, 능력 두개 있는 사람이 신을 못죽이면 등신인 법이다. 그만큼 능력의 유무는 엄청 중요하다.

능력 없이 신 죽이면? 그건 내 스승님 업적이고.


"되도록이면 처음부터 상관하지 않는게 제일이야. 만약 만나면 잘 구슬려서 축복이나 받아라"

"아, 게임의 성직자처럼 힐이라도 걸어주나봐요?"


"그 비슷한거 걸어주지"


경지에 이른 초월자는 자신의 힘에 걸맞는 축복을 타인에게 걸어줄  있다.

로드(Lord)라는 초월자가 된다면 말 한마디로도 걸어줄 수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상위 신격이라면 비슷하게 걸어줄 수 있다.


"성교의 신이 남자한테 축복해주면  걸어주겠냐?"

"......정력?"

"체감하기로 3배쯤 늘어나더라"


"당분간 루리한테 돼지 머리 대신 삼겹살 사주고 고사 지내야겠네요"

남자에게는 그게 제일인 법이다.


문득 백리가 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형, 신이랑 알고 지낸다면서 정작 신은 별로 안좋아하는것 같은데, 맞아요?"

나는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종종 친구로서 사귈만한 사람은 있지만 신으로서 경외하지 않는다.


나는 신을 싫어한다, 혐오한다.

"응, 존나 싫어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 중에서 하나니까.

* * *



백리와 이야기가 끝나고 오늘 하루도 장사 시작했다. 그러던  오후 쯤에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인형 팀장. 내가 라쿤맨이란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낸 사람이다. 아마 전에 신도림 차원진 때 이후로 연락한 적이 없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미국 갔을 때 전화 왔다고 듣긴 했는데 내가 걸지는 않았고.

잠깐 주방은 백리에게 맡기고 나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일을 빠지는 것 같은데. 백리한테 미안해진다. 보너스라도 잘 챙겨줘야겠다.


"여보세요?"


[아! 이번에는 계셨군요.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언제나 그럭저럭이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조 팀장이 호적상이나 외견상 나이는 나보다 위지만 나는 주변 시선에 아랑곳 하지 않고 반말을 깐다.

그냥 알고 지내는 지인이라면 어느정도 예의를 표하겠지만 전에 시온을 들먹인 전과가 있어서 그때 이후로 계속 반말이다.

본인도 눈치가 있다면 내가 왜 반말 까는지 알겠지. 모르면 다음엔 뒤지는거고.

[우선 저번일은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최악씨 뿐만이 아니라 백리 학생에게도요]

"눈치 챘어?"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니까요]

나와는 다르게 백리는 전신 수트라서 아는 사람이 봐도 파악하기 어렵지만 내가 전역할 때부터 추적해온 사람이라면 그런 쪽의 특성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리고 내 주변 인물중에 그런걸 사용할만한 성인 남성을 찾으면 얼마 되지 않으니 특정하기도 쉽겠지.

[......일단 죄송하지만 지금 제가 부탁드리려는 일은 거절하셔도 상관없는 개인적인 일입니다]


"무슨 일인데? 적성종 문제는 아닌 모양이지?"


[네, 다른 일이니까요]

나는 라쿤맨으로서 나서주기로 하긴 했지만 그걸 할지 말지 결정하는건  몫이다. 물론 어지간해서는 나서주지만 그것도 때에 따라서 다르다.

더군다나 개인적인 문제라고 한다면 나서지 않을 가능성이 반이다.

[제가 이혼 했었다는 이야기는 전에 했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뭐야, 전 마누라 문제야?"


[이혼하긴 했어도 사이가 그리나쁘진 않았습니다. 최근까지도 종종 연락하고 지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전처가 최근 몇달동안 연락이 끊겼다.


요새 나 때문에 찾을 것도 많고 저번 인간형 적성종의 출현으로 인해서 여러가지로 고생한게 많으니 신경  겨를이 없었다고 하지만 겨우 몇달이다. 상황이 정리 되서 간만에 연락하려고 했을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라면 보통 경찰에 실종 신고를 넣었겠지. 뭔가 있구만?"

[마지막으로 그녀의 모습을 확인한 곳이 충청북도 제천입니다. 그나마 아는 인맥을 통해서 거기까지는 파악했지만......그 이상은 단서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산이라도 들어가서 자연인이라도 됐나?"

[그건 아닐겁니다. 거기에 있는 한 단체에 들어간걸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단체?"


[네, 최근 들어서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된 종교 단체입니다]

종교 단체란 소리에 기겁하며 손절할 생각이 머리까지 치솟아 올랐다. 애초에 종교 믿는 사람들하고 상종하는거 아니다.


개중에 본받을만한 선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상당수다. 특히나 단체라고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이런 일은 경찰한테 맡겨야 하는거 아냐?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내가 나서야 할것 같은 이유가 생겼다.


[그 단체의 이름은 가이아 교라고 하더군요]


어떤 새끼가 지었는지 알만한 이름이군.

.....그 전에 여신전생 생각한 놈들 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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