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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화 〉[라쿤맨 비기닝] (97/507)



〈 97화 〉[라쿤맨 비기닝]

저녁 뉴스에 백리가 나왔다. 아니, 라쿤맨 말고 맨얼굴의 백리가.


백리 뿐만이 아니라 루리까지 같이나왔다. 뉴스를 보니 두 사람은 놀러갔다가 한강에서 출현한 원종의 공격에 시민들을 지키기 위해 분전해서 결국에는 승리했다는 소식이였다.

그 덕분에 서울시청 쪽에서도 용감한 시민상을 주기로 되어 있고......그거 생각하면 루리 녀석 대입이나 취업은 편해지겠구만.

실제로 눈에 띄는 혜택은 별로 없지만 받았다는 것 자체가 큰 메리트다. 어디 가서 시청에서 상 받았다고 하는 편이 훨씬 보기 좋잖아.


"무슨 일 났습니까?"


"쟤네들이 쳤어. 한강, 남매, 그리고 괴물인가?"


"언제적 캐치프레이즈입니까?"


"솔직히 본지 꽤 된 영화지. 그런데 저거 덩치가 장난 아니네"


나는 뉴스에 나오는 개구리 모습의 원종 시체를 보았다. 무게만 하더라도 톤 단위.....아니, 근데 내가 요식업에 종사해서 그런지 저걸 보니까 개구리 뒷다리살 존나 나올것 같다고 생각했다.

개구리는 먹을게 많지 않다. 머리는 못먹고 내장도 대부분이라 몸통도 먹을게 없다. 그나마 다리는 쫄깃해서 닭고기 맛이 나기에 꽤 별미다.


그런데 맛에 비하면 크기가 작아서 감질맛이 났는데. 저만한 크기라면 다리 하나만 떼서 구워먹어도 먹을게 많을거다.

이야, 무슨 다리가 내 몸보다 크냐. 진짜 하나만 떼어먹으면 안될까? 개구리 은근 존맛인데.


"가게는 괜찮겠습니까?"


"뭐, 내일?"

"저거 때문에 꽤 소란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렇긴 한데 그건 백리가 고생하는거지 내가 고생하는건 아니잖아"

물론 영향이 없진 않겠지만 직접 당사자인 것보단 낫다.

그리고 지금은 영웅이 된 느낌 같은거 느껴보라고 하는게 좋겠지. 저렇게 달달한 느낌의 우월감은 생각보다 느낄 기회가 별로 없다.

어떤 면에서는 저런 기대가 악의보다  질이 나쁘긴 한데......그래도 지금은 즐길  있을테니까 낫다. 그냥 냅두라고 그러지 뭐.


"하필이면 왜 저렇게 애들 놀러갔을 때 나오냐"

"......의심가는게 하나 있긴 합니다"

"뭔데?"


"당신이 저번에 아틀라스 한국 지부 비밀 실험실을 박살내지 않았습니까?"

".......아"

나는 얼마 전에 아틀라스란 조직의 실험실을 박살냈다.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한건 아닌데 침수됐다.


그때 인근에 있던게 한강이였고......만약 원종 자체는 그냥 있었다고 쳐도 거기 있던 실험체의 시체와 약품등이 강으로 퍼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다.


조금 알아봐야 하긴 하겠지만 세상에 순전히 우연은 드물다. 인과율이라고 모든 일에는 인과가 있다.


내가 실험실을 박살냈고(因) 그래서 침수된 실험실의 약물이던 물고기 밥이 된 시체든 그거 때문에 개구리 원종이 생겼다(果). 논리 자체는 맞아 떨어진다.

물론 그런 우연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는 운명이란게 있지"

특히나 나는 내 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그 운명의 관심을 받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라면 우연으로 치부할 일도 의심해야 한다.

 예시로.....저번에 납치사건 당시 그 많은 여자애들 중에서 시온이 납치될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물론 시온의 외모가 넘사벽이긴 하지만 하필이면 그놈이  주변을 지나가다가 시온을 발견하고 납치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꺼라고 생각하나?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따지고 들어가면 극히 낮다.


그런 우연이 일어나게 만드는게 바로 운명이다.


"내일 백리랑 이야기 좀 해봐야겠네"

서로 할 이야기가 많을듯 하다.



  *  *   *


백리는 다음날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단지 조금 지친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거 괜찮냐? 오늘 안쉬어도 돼? 평소에는 내가 빠지지만 오늘은 쉬어도 될텐데?"


"포스만 많이 써서 탈력감이 조금 있는것 뿐이예요.  자체는 건강하니까 괜찮아요. 검진도 받았고요"

"그래?"

나는 백리의 어께에 손을 올리고 그대로 가이아 포스를 주입했다. 음.....내가 아는 포스 유저가 많지 않아서 얼마나 줘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평소에 백리가 가지고 있는 포스량보다 2배쯤 부어주었다.


"억?!"


"충전 다 됐지?"


"옛날부터 생각했는데 형은 손이 크네요. 차고 남을 정돈데요"

"갈무리나 잘해. 어차피 남는게 이런거니까"

"인피니티 포스 코어인지 뭔지  부럽네요. 그거 여섯개 모으면 손가락 한번 튕겨서 세상의 절반도 지울 수 있겠어요"

"여섯개나 모을 정도로 수준 오른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건 함부로 익힐만한게 아닌지라"

인간은 누구나 오욕칠정이 있다. 욕망이 있기에 쾌락에 약하고 흔들리기 마련이다.

인피니티 포스 코어의 기반이 되는 탐심무량기공(貪心無量氣工)은 그 사기적인 효과만큼 인간의 욕망을 자극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이 배워서 엇나간다면 헤아리기 어려운 참사가 일어난다.


재능 없는 녀석도 배웠다간 세상 하나 말아먹을 가능성이 높을 정도니까 말 다했지.


"나 같은 녀석도 익힌게 그나마 최씨 가문이라서 그런거거든"

"......? 어, 이런말 해서 죄송한데 형 시설 출신 아니였어요? 친척 따로 있었나요?"

"그게 아니라 영혼적인 의미로"

전 차원적으로 유명한 3대 가문이 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넘사벽일 정도로 초월자인 오른 류씨 가문.

아카식 레코드라는 성의 주인이자 지식을 수집하는 스토리텔러 가문.

그리고 내가 속한 최씨 가문.


"단순히 한국인이라서 최씨가 아니라, 핏줄을 통해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에 가문으로 인정을 받는거야"


"그냥 폼으로 그러는거 아니예요?"


"우리 집안은 개개인마다 다르지. 재능도 재각각이고 성격도 재각각. 하다못해 구성원인 사람마다 가문에 속했다는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많아"

하지만 가문이라 불릴 수 있는건 그만한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최씨 집안은 자기가 뒈져도 이타적이지. 당장 코앞에서 칼을 들이밀어도 절대적으로 남을 위하는 정신나간 이타주의자야"


"어떻게 그래요? 사람은 크던 적던 자기 중심적이잖아요? 자기 목숨보다 남의 목숨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가문대로 이어질  있어요? 아니면 그냥 우연이라던가"


백리 말이 맞긴 하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산다. 사회에 공헌을 하거나 기부를 하는 사람도 일단 자기가 먹고 산 다음의 일이다. 지금 당장 자기 먹을 것도 없는데 남을 돕는 사람이 그렇게 흔할리 없다.


그렇지만 우리 최씨 가문의 인성은 차원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나 초월자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특히나 나를 비롯한 나름 이름 있는 초월자들을 배출하기도 했으니까.

"단지  이타적인 성격이 누구를, 어떤 사람을 위하냐가 다를 뿐이야. 예를 들어서 나는 시온을 위해서라면 산채로 심장도 뜯어줄  있어. 예전에도 그런적 있고. 아, 그때 죽진 않았지만 말이야"


"아니, 어떻게 그......아, 환생자라고 하셨지"

"내 다른 친척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구하려고 드는 대영웅이고. 다른 한놈은 아무런 능력 없이 처음 본 어린애를 구하려고 20톤 트럭 앞에 달려드는 녀석이지"

한놈은 손꼽히는 대영웅이자 초월자가 되었고 다른 한놈은  학파를 만들 정도로 유명한 마법사가 되었다.

거기에 나도 들어간다. 이래보여도 능력 두개 있는 초월자는 많지 않다.


"좋은 것 밖에 없네요. 닌자 만화처럼 혈통빨을 타고나야 하나....."

"마냥 그렇지만도 않아"

이런 특징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사람이 많지 않은 이유는 가문 사람들은 죄다 단명하기 때문이다.

사고로, 혹은 사건에 휘말려서, 여러가지 이유로 최씨 가문 사람들은 단명한다. 하지만 그런 사건을 이겨낸다면 성공한다.
그런 징크스가 있어서 살아남은 최씨 가문 사람은 한가닥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저마다 대상이 다르긴 해도 기본적으로 이타적이기 때문에 탐심무량기공 같이 정신에 영향을 주는 무공이나 마법에 절대 굴하지 않아. 그래서 나 같은 녀석도 배울 수 있겠지. 그게 아니면 어떤 등신이 사람 죽이고 다니는 살인마한테 그런걸 알려주겠냐?"


"역시 혈통빨이 최고네요. 에이, 저도 다음에 태어나면 눈깔이나 타고나야겠어요"


"나 같은거 아니면 다음을 기대하지 마라. 지금 삶에 충실해"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다가 문득 백리가 뭔가 물어볼 것이 있는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마 어제 일로 그런것 같은데 아틀라스 문제인가? 아니면.....


"형,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뭔데?"

"혹시 루리한테 초월자에 대한 이야기 같은거 해줬어요?"


"......아, 루리가 그런걸 알고 있어서 그런거구나?"


"알려주신거예요?"


"아니, 나는 루리한테 아무것도 말한거 없어. 시온도 마찬가지일테고"


루리가 만약 초월자라는 개념에 대해 이해하고 있다면 단지 루리란 아이의 특이성 때문이다.

여태까지   없다가 슬슬 각성하기 시작했나.


"어제 개구리 원종을 잡을 때, 루리가 '초월자도 아니라면 아무리 재생해도 뇌를 조지면 된다'라는 식의 말을 했어요"

"맞는 말이야. 뇌는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이니까 아무리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뇌를 공격당하면 훨씬 치명적이지"

수준이 높은 재생 능력자는 설령 심장이 뜯겨나가도 몇초만에 재생해서 죽지 않는다.

그런 놈들은 죽이는데 애먹는다. 재생이라는 개념도 각각 달라서 죽이는 방법이 다르기도 하고.

하지만 초월자가 아니라면 머리를 조지면 대부분 끝난다. 생물학적으로 죽지는 않지만 인간적으로는 죽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봐라, 보통 머리 날리면  죽는데 재생했다고 멀쩡하면 그게 괴물이지 사람이냐?


"사람에게 중요한건 기억이야. 초월자가 아니라면 뇌를 공격했을 때 재생한다고 한들 뇌에 기억되어 있던 정보도 같이 재생하리란 보장이 없지. 그런걸 생각하면 루리의 선택이 맞았어"


"초월자는 뭔가 달라요?"


"기억을 저장하는 방식이 다르지. 가장 가까운 예로 내가 있고"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많은 양의 기억을 담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2백년 단위일 경우다.


나는 환생자로서 수천년을 살아왔다. 과연 이 기억을 전부 뇌에 담고 망각이 없을거라고 생각하는가?


그랬다면 진작에 내 예전 기억들은 죄다 날아갔어야 정상이다.


그리고 뇌에 저장한다면 환생을 하는 순간 내 모든 기억이 날아가야 당연한거고.

그렇다면 나는 기억을 어디에 저장하는가......그건 간단한 문제다. 환생을 하면서도 항상 유일한 것이 있다.


내 영혼.


초월자는 기억을 육체가 아닌 영혼에 저장한다.


"영혼이란건 영자가 결정화된 마음을 담는 그릇이야. 영혼이 없는 사람이 없는건 아니지만 대부분 있지. 그리고 그 영혼은 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해. 그래서 초월자들에게는 머리가 날아간 뒤에 재생을 하더라도 자아를 유지할  있어"


"그래서 루리가 초월자가 아니면 머리를 공격하면 된다고 했던거군요"


"그래"

"하지만......가장 중요한 문제가 다른거잖아요. 루리는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걸까요? 그리고 왜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도 기억 못하는거죠?"

진짜 논제는 그거다. 루리는 어떻게, 그리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왜 그걸 기억 못하는가.


그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야한다.


내가 싫어하는 녀석들의 이야기를 말이다.


"백리야, 혹시 신의 존재를 믿니?"

"아, 관심 없어요. 꺼져요"


"누굴 사이비로 아냐! 이 새끼!"

"억억억?!"


신이랑 종교를 극혐하는건 나도 마찬가지란다 이 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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