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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6화 〉[라쿤맨 비기닝] (96/507)



〈 96화 〉[라쿤맨 비기닝]

백리는 한순간 몇배나 되는 중력을 느꼈다가 이내 그와는 반대로 무중력을 느꼈다.


허공에 체류하는 겨우 몇초, 중력을 거슬렀다는 자유감도 잠시 이윽고 지상으로 추락한다.

십수미터의 상공은 생각보다 높았다. 못해도 아파트 몇층의 높이고 무게만도 수톤에 달하는 것이 떨어지는 것이다. 그 충격은 상상도 할  없었다.

개구리 원종이야 멀쩡하겠다지만 백리는 아니다. 평소라면 멀쩡하겠지만 아까 놈에게 짓눌린 일이 있었기 때문에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보강을 통해 내구력을 강화 했어도 이 높이에서 놈에게 깔려 떨어지면 버틸 수 있을리란 보장은 없다.

"어디 누가 떨어지나 보자!!!"

지상으로 떨어질 때까지 겨우 몇초. 백리는 파이프를 붙잡고 포스를 방출해 허공에서 회전했다. 이제 위치가 역전되어 놈은 등으로 지상에 떨어졌다.

 순간에 시야가 뒤집힌 놈은 혼란을 일으키며 버둥거렸다. 백리는 거기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몸을 웅크렸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충격에 대비했다.

"윽!!"


쿠우우웅!!!

놈의 몸뚱이가 지상으로 추락하고, 지진이 난건가 의심할 정도의 충격이 땅을 타로 울렸다.


원종이 등으로 추락한 덕분에 배 위에 있던 백리는 무사했다.


하지만 충격을 완화 했어도 무시못할 충격이 그를 휘감았다. 충격에 의해 파이프도 뽑히고 같이 튕겨나왔다.

"꿰에에엑!!!"


"어떻게 해야......!"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다. 기껏해야 몇분. 원종 처리팀은 아직 오지 않았다. 여기서 더 시간을 끌면 오긴 하겠지만 그때까지 그들이 무사할 수 있을리란 보장은 없다.

"뇌를 조져!"

"......?"


"아무리 재생해도 초월자가 아니라면 뇌를 조진 이상 뒤지는건 한순간이야!"

뒤에서 루리의 충고가 들려왔다. 백리는 인상을 쓰고 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다시금 몸을 뒤집어 자세를 바로 잡고 꾸룩거리며 백리를 노려본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다리의 근육이 부풀어 오르는게 눈에 보였다.


".....좋았어"


백리는 남은 포스를 전부 끌어모았다. 겨우 한줌에 불과했지만 보강 하나 더 중첩하기에는 충분했다.

마지막 기회다. 남은 가이아 포스는 조금도 남지 않았다. 이번에 놓친다면 놈을 쓰러트릴 가능성은 제로로 떨어진다.

"꿰엑!!"


쿠우웅!


아스팔트로 된 도로가 부서질 정도로 땅을 박찬 원종이 백리에게 곧장 쏘아져 왔다. 입을 쩍 벌려서 한입에 삼키려고 들었다.

백리는 들고 있던 쇠 파이프의 한 쪽을 땅에 지지해서 대각선으로 놈을 향해 치켜들었다.


그냥 들어올리면 놈의 탄력있는 몸에 튕겨져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렇게 지지한다면 쉽게 뒤로 튕겨나가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선택이 옳았다.

푸우우욱!!


"꿰어어어어억!!!"

뭔가 긁히는 소리, 찔리는 느낌, 닥쳐오는 묵직한 충격이 순차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백리의 계획은 성공했다. 땅에 지지하여 고정된 쇠파이프는 놈의 입천장을 뚫고 들어갔다.

탄력있는 몸은 놈의 돌진에 의해 도리어 이쪽의 무기가 되었다. 무게와 속도는 힘이 되어주었고  파이프는 창이 되었다.

"꿰에에엑!"


"아직 얕아.....!"

하지만 놈의 뇌까지 닿기에는 아직 부족했다. 조금만 더 들어간다면 될텐데 아주 약간 힘이 부족했다.


"울 오빠 영화 재현하는 것 봐! 막타는 내가 칠거지만 말이야!!!"

바로 그때, 백리의 어께를 밟아 지지대 삼아서 루리가 점프했다. 그리고 원종의 머리 위로 올라가 그대로 내려찍었다.


쿵!


"한번!"


쿠웅!!

"두번!!"


쿠우웅!!!


"세번!!!"

놈의 머리 위에서 온 힘을 다해 발을 굴려 내려찍자 그대로 입천장을 뚫었던 쇠 파이프가 파고 들어갔다. 그리고 놈의 뇌에 닿을 수 있었다.

뇌란건 기억을 저장하는 중추다. 아무리 재생한다고 한들 초월자가 아니라면 뇌가 망가졌을 때 재생해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이미 망가진 뇌에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진 뇌에 과연 과거의 기억이 존재할까? 그리고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게 과거의 자신과 같을까?
기본적인 신진대사는 하더라도 결코 뇌가 재생된 생물은 예전과 같을리 없었다.

쇠 파이프에 꼬치가 되어 추욱 늘어진 모습은 아까와 같았지만 뭔가가 달랐다. 숨은 붙어 있었지만 움직이진 않았다.

마치 뇌는 살아 있는 식물인간을 보는 것처럼 보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백리는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금 쇠 파이프를 다잡았다.

"이, 겼어?"


백리가 의심에 차서 물었다. 혹시 몰라서 아까의 루리처럼 쇠 파이프를 비틀어 한번 더 뇌를 짓이겼다.


"이번엔 진짜 이겼어"

"휴우....."

백리는 한숨을 쉬며 후들거리는 다리에 출실해  자리에 주저 앉았다.

원종은 살아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누가 이겼는지는 뻔한 일이였다.

"일  끝난 뒤에 오는건 무능한 공권력들의 클리셰네"


"그러게 말이야"


뒤늦게 헬기를 타고 오는 원종 처리반의 모습을 보며 루리와 백리가 투정을 부렸다.

 *  *  *

기이하게도 숨은 붙어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는 개구리 원종의 모습을  원종 처리반드은 총기를 겨누고 경계했다.

하지만 놈이 움직이는 일은 없었다. 설령 진짜로 죽일  있을 정도의 공격을 한다 하더라도 놈은 움직이지 않는다.


본능을 비롯한 모든걸 처리할 뇌가 뭉게졌다가 재생되었으니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텅 빈 것과 다르지 않았다. 마치 갓난아기처럼 말이다.

아니, 최소한 갓난아기는 배고프면 울고 손발을 움직이는 정도는 알고 있는거에 비해 놈은 숨을 쉬는것 외에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다.

"서울 원종 처리팀의 강진 팀장입니다. 이걸 학생들이 한건가요?"

"아, 네"

"둘 다 포스 유저시고요?"

"네....."

백리는 지쳐서 그가 물어보는 질문에도 대충 대답했다. 그 태도에도 강진 팀장은 이해 해준건지 나무라지 않았다.

"팀장님! 이놈 반응 없습니다! 살아 있는것치고는 이상한데요?"

"뇌에 파이프가 박혀서 죽은건가? 그런것 치고는 숨은 쉬는데......"


"그놈 재생 특성이 있어요. 그래서 내장이 뭉게지고 뇌가 으깨졌는데도 살아는 있는거예요"


"정말입니까?"


백리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여러가지 반응이 들렸다. 환호성, 의심, 경악 등등의 감정 속에서 백리는  어떤 것에도 신경쓰지 않았다.

재생 특성은 희귀하다. 회복 특성을 가진 사람은 종종 있지만 재생 특성을 가진 사람은 예지 특성을 가진 사람만큼 희귀했다.

재생과 회복, 둘이 무슨 차이냐고 한다면 생물의 한계란 차이가 있다.

회복은 시간을 들이면 나을  있는 상처를 빠르게 치료 되는 것을 말하지만 재생은 그런것 관계 없이 설령 신체의 소실이나 중요 장기에 데미지를 입더라도 회복하는걸 말한다.

"울 오빠 오능 고생 했네. 놀러 나와서 이게 뭐하자는 짓이야"


"그러게 말이야"


"근데 팀장 아저씨. 이놈 잡았는데 뭐 콩고물 떨어지는거 없어요?"

"글쎄요.....적성종도 아니고 원종이 민간인에게 잡히는 일은 자주 있는 일은 아니라서요. 게다가 저 녀석이 진짜 재생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면 시체 값어치만도 장난이 아닐거고요"

가이아 포스는 아직 미지의 이능력이다. 지구에서 나오는 힘인건 파악하고 있지만 왜 하필 20년 전에 모습을 드러냈는지. 어떤 효과를 가지고 있는지 세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래서 연구를 위한 소재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오르고 있었다.

적성종의 사체는 물론이고 포스 유저를 통한 실험(물론 합법적인 것으로), 원종의 시체를 분석하고 데이터를 확보하는 등의 필요한 모든 것은 돈이 되었다.

살아 있는 원종의 시체. 아니, 살아 있으니 시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얼마든지 연구가 가능한 재생 특성을 가진 원종이라면 그야말로 부르는게 값이다.

"그 이야기는 따로 하는게 좋겠습니다. 두분 다 그렇게 이야기 할만한 상황은 아닌것 같거든요"

루리는 몰라도 백리는 지쳤다. 몸에  한줌의 가이아 포스도 남아 있지 않아서 탈력감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야기 하는것 보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이 근처가 저희 관할이라서 이런 원종이 있었다면 몰랐을리가 없을텐데......"

"최근에 나타난게 아닐까요?"


"그러기에는 덩치가 너무 커요. 원종이 원래 동물보다 훨씬 커지긴 하지만 그만한 시간이 필요해요. 양서류라서 포유류와는 다를지 몰라도 적어도 뭔가 다른 영향이 있어서 그런것 같은데....."

강진 팀장은 조금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기사 인간을 잡아먹는 원종이 느닺없이 나타난건 개연성이 너무 없었다. 뭔가 영향을 끼친 것이 반드시 있다.

"아,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아까 수달이들 토했는데. 흑흑, 수달이가 주거써!"

"수달이요?"


"예전에 한강에 돌아온 수달은 천호 대교쪽에 있었다는 기사를 본적 있어요. 그거 생각하면 이놈의 영역도 그 부근이거나 좀 더 상류라고 생각하는데요"

루리의 의견에 강진 팀장이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수달이 천연기념물인 만큼 희귀하고, 그 중에서 개구리 원종이 서식했던 한강 중에서 수달이 서식할만한 곳은  희귀했다.


"천호대교면....그 근처를 찾아보려면 구리시 쪽에 도움을 요청해야겠네요. 의견 감사합니다"

"아뇨, 뭘요"


루리가 아까 봤던 것에 대해 의견을 알려주었다. 그걸로 할 일은 다한듯 뒤로 빠져서 핸드폰을 들고 원종의 시체를 찍었다.

백리는 그런 루리의 모습을 보며 허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잠깐만, 나 페북하니까 이거 좀 올리고"

"여기서도 인생낭비야?"


"증거를 남기는 편이 좋잖아? 게다가 SNS의 확산 속도는 빠르니까 아무리 묻으려고 해도 묻지 못할거야. 그러면 아무리 떼어먹으려고 해도 못할껄?"

어디 두메산골에서 나타나서 잡았다면 몰라도 민간인이 잡은 것을 입만 싹 닦으면 정부 쪽에서도 이미지를 비롯해 입장이 난처해진다.

포스 유저는 군대에 소속되지 못하지만 국적을 선택할 자유가 없는건 아니다.


심지어 탈북해서 다른 나라로 귀화한 북한 포스 유저도 있는 마당에 그런 짓을 했다간 포스 유저라는 귀한 인적 자원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꼴을 보게 될거다.

"저희는 그럼 좀 쉴게도. 대신  일만 조금 처리해주세요"


"학생도 고생하겠네요. 아마 미디어에서 한참을 떠들어댈겁니다"

"이거보다 더 스펙타클한건 이미 겪어봐서"

"학생이 고생하는건 인생이자 일생이지"

"....루리 너 이과 말고 문과 갔어도 잘 했을것 같은데?"

"뭔 소리야. 재능이 있어도 난 천생 이과야"

두 사람은 잠깐 물러나 쉬기로 했다. 천천히 숨을 쉬면서 앉아 있으니 뒤늦게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피로가 몰려온다.


포스 유저라도 회복이 빠른거지 지금 당장의 고통이 없는건 아니다.


"놀긴 글렀으니까 쉬다가 밥만 먹고 들어가자. 괜찮지?"

"오키도키. 어차피  마음도 없어졌어. 뭐, 스트레스는 풀렸지만"

포스 유저가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기회는 주로 적성종이나 원종 처리시에 당연히 따라오는 일이지만 그 둘에 속하지 않은 민간인 포스 유저는 드문 일이다.

"그런데 루리야. 아까 그건 어떻게 안거야?"


"뭐가?"

"그 초월자가 아니면 뇌를 뭉게면 이길 수 있다는고 말했잖아"


백리는 나름 초월자라는 개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다.


최악이 그에게 환생자라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잡담 삼아서 간간히 말해주었고 백리는 자세하게는 몰라도 초월자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걸 루리가 알고 있는건 별개의 문제다. 루리는 최악이 환생자이며 시온이 외계인이란 사실도 모른다.


초월자라는 단어를 어디서 들은거지?


".....? 내가 그런말 했었어?"


"했었어"


"그때 기억이 애매해서 떠오르진 않는데"

"모르는척 하는거야, 진짜 모르는거야?"

"진짜 기억 안나"

".......?"

백리는 루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오랫동안 같이 살아온 여동생인 만큼 거짓말을 하면 티가 난다.


그렇지만 루리는 진짜 모른다는 표정이였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루리의 입에서 나왔던 초월자라는 단어가 너무 걸렸다.


백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루리에게 물었다.

"누구냐 너"

"뭐야, 15년동안 군만두만 처먹고 싶은거야?"

"기왕이면 군만두 대신에 치킨으로 봐주라"

"오빠 먹을 치킨이면 차라리 내가 먹는게 훨 낫지"

말하는걸 보면 언제나의 루리였다. 딱히 이상한 면도 없었다.


그렇지만 백리의 마음 속에서 한번 생긴 위화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루리가 평범한 줄 알았다.

조금 예쁘긴 했지만 어릴때부터 같이 자란 오빠로서 절대 이성으로 보지 않고, 자주 싸우긴 하지만 이렇게 놀러올 정도로 사이는 좋았다.

가족이라 생각하는건 마찬가지였지만 의심이 드는건 어쩔  없었다.

"........"


백리는 조용히 루리를 보며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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