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8화 〉[라쿤맨 비기닝] (88/507)



〈 88화 〉[라쿤맨 비기닝]

다음으로 우리들이 간 곳은 여기서 한층 아래의 시설이다. 아랫층에는 아마존 터널과 마찬가지로 유리 터널 시설이 있었는데. 거기는 딱히 아마존 생물이 아니라 바다 생물을  수 있는 곳이라서 물고기뿐만이 아니라 가오리 같은 생물도 눈에 띄었다.

"아, 캐리커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벽은 삭막했는데. 한장 그려다가 걸어놓을까?"

"그것도 나쁘진 않을것 같습니다"

우리집은 대부분 찍은 사진을 앨범에 보관해서 집에 한두개쯤 있을 액자 걸이도 하나 없었다. 남들에게 보여주려면 핸드폰에 넣어 다니는게 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림이라도 하나 그려서 걸어놓는게 좋을 것 같았다.


우리들은 캐리커처 그려주는 줄에 섰다. 생각보다 사람은 없어서 우리 앞사람 말고는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려주는 사람은 남녀 두명이였는데 나는 남자 쪽에, 시온은 여자 쪽에 섰다. 우리 차례가 되자 시온을 그려줄 여자 화가 쪽의 얼굴이 굳었다.

"저, 저기......제가 그려드리기에는 좀. 아니, 다른게 아니라 제가 그려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을것 같아서요....."

"됐습니다. 할 수 있는만큼만 그려주십시오"

"네, 네에....."

시온의 얼굴을 캐리커처로 그리기에는 전체적으로 너무 미모가 뛰어났다. 아마 애  먹지 않을까?


나야 눈매가 더럽다는 특징이 있으니 그걸 잘 잡고 그리면 나름 쉬울거다. 남자 쪽도 그걸 알고 손을 놀리기 시작했지만......야, 네가 그리는건 나지 시온이 아니라고.


이쪽을 봐라(죠죠풍)!!


나는 얼마 걸리지 않아서 대략적인 형태는 나왔지만, 시온은 아직도 계속해서 그리고 있었다.

슬쩍 뒤로 가서 보니까 캐리커처가 아니라 그냥 인물화를 그리고 있었다. 마치 모나리자처럼 공손히 손을 모아서 희미한 웃음을 짓고 있는 시온의 얼굴을 하나의 예술작품처럼 조금씩 그리고 있었다.


어찌나 열정을 다하는지 에어컨을 켜놓은 실내에도 불구하고 그려주는 여성 화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채색까지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아서 일부러 연필로만 그려주는 소묘 정도로 하기로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필의 명함으로 최선을 다해 그린다.

그리고 한참 뒤. 겨우 연필에서 손을 뗀 여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늘어졌다.

"새하얗게 불태웠어......"

"누나! 잠깐만요, 누나?!"


비틀거리는 그녀를 동료인 남자 화가가 부축해주고. 우리들은 그녀가 그려준 그림을 받았다. 캐리커처가 아니라 인물화지만 뭐.....우리가 돈 내고 그려달라고 한거니까 받아도 되겠지?

양심에 찔리니까 일부러 돈을 더 냈다. 누런걸로 두어장 정도. 피사체가 좋아서 그런지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그냥 들고가면 구겨지거나 찢어질것 같아서 액자를 사서 거기에 넣었다. 생각외의 수확에  기분이 좋아졌다.

"슬슬 시간이 늦었네. 여름 해가 길어도 지금쯤이면 해도 졌을 것 같고"

"레스토랑 시간도 거의 다 됐을겁니다"

"그래?"

점심에 먹은건 진작에 소화가 됐다. 슬슬 밥 먹으러 갈 시간이다.

우리들은 아쿠아리움에서 나와 발걸음을 타워로 옮겼다.


하루의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

 *   * *

내가 아는 한국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63빌딩이였는데 요즘에는 여기 타워로 바뀐 모양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건물이 높아서 옥상에 방공부대가 있다느니, 서브웨이 1호점이 지하에 개장했다느니 그런 말이 많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높은 분위기가 있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보이는 야경은 끝내줬다.

"야, 저기 반짝이는것 봐. 예쁘다"

"저것도 누군가의 야근의 산물입니다"


"으아아. 여기서 너무 현실적인 소리 하지 말아줄래? 꿈도 희망도 없잖아"


우리가 예약한 곳은 이곳 타워의 81층에 위치한 호텔 레스토랑이다. 그 위아래로 호텔로 사용하고 81층 하나를 통째로 레스토랑으로 사용하는  보인다.

호텔 전용 엘레베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가자 귀가 먹먹해진다. 다른 층에는 서지 않아서 빠르게 올라갈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속도가 장난 아니다. 한순간에 지상에 보이던 사람들이 손가락만해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81층에 도착하자 우리를 반겨주는건 물결무늬 장식에 하얀 간판에 적혀 있는 스테이(STAY)라는 이름의 글자였다. 아마도 여기 레스토랑 이름인듯 보인다.


그 아래에는 셰프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뭐라고 읽더라......야닉, 알레노? 특이한 이름이네.

"프랑스 셰프입니다. 미슐랭 6스타의 이름난 셰프라고 하니까 실망시키진 않을겁니다"

"6스타? 미슐랭 가이드의 별은 최대가 3스타 아닌가?"

"3스타 짜리 레스토랑이 2개라서 6스타입니다"

"그건 좀 쩌는군"


나도  오래전에 미슐랭 별을 받은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는 3개를 받은건 아니고 하나를 받았다.

이런 고급진 레스토랑보다는 가정식을 주로 내서 맛있는걸 많이 먹게 하는게 내가 좋아하는 식당 운영 방식이라  이상의 점수를 받기는 어려웠을거다.

미슐랭 얘네들, 지들 입으로는 맛있기만 하면 된다고 해놓고 정작  가게에 별 하나 준거 보면 분명 식당 분위기나 위생도 따질거다. 분위기는 시끄러울테고, 위생은 가게 안은 깨끗하다고 자부해도 인근 위생 생각하면  그러니까.

"여기도 미슐랭 별은 하나 받았습니다"

"그럼 알레노인지  셰프 7스타 아니야?"


"아마 여기는 자기 레스토랑이 아니라서 그럴겁니다"

하기사, 이런 타워의 호텔 레스토랑이면 고용해서 왔을 가능성이 높겠지. 돈 좀 꽤나 썼겠다.


복도를 거닐어 로비로 들어섰다. 레스토랑 직원이 시온의 얼굴을 보고 흠칫거리며 반응했지만 헤벌레거리진 않았다. 그는 웃으면서 예약 여부를 물었다.


"최시온이란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겁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예, 안으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안으로 들어서자 은은한 조명의 실내가 반겨주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건 역시 전경이다. 유리로 되어 바깥이 보이는 벽면은 바깥 전경이 한눈에 보였다. 그리고 천장에 매달려 있는 황금색 구슬 장식은 화려하다기 보다는 어울리는 분위기를 자아냈다.

일단 인테리어는 합격.


우리들은 창가의 작은 원형 테이블로 안내 받았다. 전경도 좋고 통로 쪽도 아니여서 좋은 자리라고 생각된다.


테이블 위에는 이미 메뉴판이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펼쳐들고 메뉴를 고른다.

"오늘의 메뉴 같은걸 고르는게 좋을 것 같은데. 꽝을 뽑을 가능성이 적으니까"

"이런데에 꽝이 있겠습니까?"

"최소한 100번 만들어본 요리가 10번 만들어본 요리보단 완성도가 뛰어날거 아니야?"

"그렇긴 합니다"


요리란건 연습과 경험이 만들어낸다. 아무리 고급 레스토랑에서 만든 요리라고 해도 몇번 만들어보지 않은 요리가 맛있을거란 보장은 없다.

미슐랭 가이드에서 별 한개를 받았다면 나름 맛은 보장할테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더 맛있는걸 먹는게 좋겠지.


"어뮤즈 부쉬입니다"

종업원이 어뮤즈 부쉬를 내왔다.

어뮤즈 부쉬란 식전에 먹는 식욕을 돋우는 간단한 요리를 말한다. 어떻게 보면 애피타이저랑 비슷해 보일수도 있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애피타이저는 본격적인 코스에 포함되는 요리고 종류에 따라 고를 수 있지만 어뮤즈 부쉬는 셰프 재량으로 나오는거라 누가 오던 같은게 나온다.

단지 어뮤즈 부쉬는 무료라는거. 공짜니까 감사히 먹자.

나온 어뮤즈 부쉬는  3종류였다.

하나는 네모난 홈이 파인 납작한 나무 그릇 위에 검은 콩을 올리고, 그 위에 녹색의 뭔가를 다져서 전병 과자같은 것으로 둘러싼 듯한 것과, 투명한 유리로 된  트레이의 감자칩과 그 위에 얹어진 참치 타다키와 소스. 마지막으로 작은 숟가락 위에 올려진 동그란 튀김이였다.


일단 메뉴를 고르기 전에 간단히 먹어볼까 생각해서 가장 먼저 녹색 전병 과자 같은 것을 짚었다.

 이걸 먼저 골랐냐고 하면 나무 그릇에 검은색 콩으로 장식한  위에 올려진 녹색이 시선을 끌고 식욕을 자극해서 그렇다. 보기만 해도 관심을 끄는데 맛을 보고 싶어지는건 당연지사다. 이래서 플레이팅도 중요하다 하는거다.


가까히서 보니 녹색의 뭔가를 다져서 반죽을 만들고, 그 내용물을 바삭한 전병 같은 것으로 싸서 만든 손가락만한 춘권 비슷한 것은 그냥 보면 내용물이 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일단 입안에 넣어보자, 느껴지는건 신선한 라임의 향기였다.

씹으면 바삭하게 전병 부분이 부서지고, 안에 있는 페이스트의 맛에서는 고소함과 풍부한 지방의 맛이 느껴졌다.

"피스타치오구나"

"그렇습니까? 전 아보카도인줄 알았습니다"


"아니, 아보카도도 맞아. 피스타치오만으로 이렇게 만들 수 있을리 없으니까"


피스타치오는 견과류다. 부수고 으깨면 가루가  뿐이다. 그에 비해 아보카도는 과일, 그것도 지방의 맛이 많은 과일이다. 으깨면 죽에 가깝게 변한다.

둘을 적당히 섞으면 이렇게 형태를 잡아 고정될 수 있을만한 페이스트가 만들어진다. 견과류와 아보카도,  두가지 뿐이라면 많은 지방 성분에 의해서 느끼할 수도 있지만 거기에 섞은 라임의 즙이 그걸 중화하고 한층 더 조화로운 맛을 내고 있었다.


"다음은......이걸로 먹어볼까"


두번째로 손이 간건 유리로  티 트레이 위에 올려진 것이였다. 감자칩 같은 것에 얹어진 참치 타다키와  위의 소스. 얼핏 상상이 가지 않는 조합이지만 우선 입에 넣어보기로 했다.


감자칩은 그냥 감자를 썰어 만든게 아니라 갈아서 뭔가  섞어 구운듯 보였다. 감자칩 여기저기에 검은색의 뭔가가 들어간게 보인다.


"이거.....김인가?"


입에 넣고 향을 먼저 맡았다. 참치 타다키의 향과 소스의 냄새를 뒤로 하고  집중하자 그 검은것의 정체가 김이란걸  수 있었다.

감자칩의 바삭하과 참치의 고소하고 기름진 맛, 그리고 위에 얹어진 소스는 유자를 베이스로 한 은은한 단맛이 느껴진다. 감자와 참치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거기에 들어간 김이 매끄럽게 들어가서 균형을 맞춰주었다.


이것도 좋구만.

"아, 이건 너 먹어"


".......아무리 저라도 겨우 두개 주는걸 다 뺏어먹을만큼 식탐이 심하진 않습니다"


"그냥 기름진걸 벌써 입에 넣기 싫을 뿐이야. 먹어도 돼"


마지막 남은건 작은 숟가락 위에 올려진.....뭔가를 둥글게 뭉쳐 튀긴 요리다. 내용물이 뭘지는 먹어봐야 알겠지만 난 옛날에 이거 비슷한걸 먹어본  있다.


시온은 거절하다가 내가 진짜 양보하는걸 아니까 그제서야 먹기로 했다. 숟가락째로 들어올려 작고 붉은 입술에 열리고 튀김을 입에 넣었다.


오물오물, 씹으면서 맛을 느껴보던 시온이 오, 하고 감탄했다.

"이거 내용물이 치즈입니다. 뭐였더라.....하얀색의 걸죽한 느낌의 치즈 있지 않습니까? 모짜렐라 말고"


"리코타 치즈?"


"네, 그겁니다"

일단 리코타 치즈가 엄밀하게 치즈로 분류되는건 아니다. 비유하자면 두부 만드는데 나오는 비지 같은거랄까. 물론 비지도 맛있으니 상관 안하지만 아무튼 리코타 치즈를 튀겼다니 이건 조합이 사기다.


과장 조금 보태서 튀긴건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데 하물며 유제품을 튀긴거면 게임 끝이다.


시온은 하나를 얼른 삼키더니 내가 양보한 몫도 바로 먹어치웠다.

"이제 슬슬 주문이나 할까......."

나는 다시금 메뉴판을 보았다. 첫장에는 오늘의 추천 메뉴 코스 3종류가 적혀 있었고  뒤에는 단품 메뉴들이 적혀 있었다.

추천메뉴는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로 나뉘어 있는데 각 코스마다 고를  있는게 2개씩 총 6개, 다른 코스까지 전부 합치면 18개나 되는 메뉴가 적혀 있었다.

신기하게도 코스별로 먹을 수도 있었다. 예를 들어서 애피타이저와 메인 메뉴를 먹고 디저트는 빼거나, 바로 메인 메뉴를 먹고 디저트로 끝내는 등. 나름 돈을 아낄 수 있게 배려해 뒀다.


물론 우리 둘 다 대식가라서 메뉴 전부 나와도 다 먹을  있을테지만. 솔직이 이런데는 다 좋은데 너무 텀을 두고 조금씩 나와서  그래.


......아니, 그냥 나랑 시온이 많이 먹는건가? 아무튼.

뭐 하나하나 전부 맛이 있어 보인다.  먹을까 고민하다가 이윽고 나는 결정했다.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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