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0화 〉[라쿤맨 비기닝]
고삐리 4인방은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실형을 피하기 어려울거라고 한다. 하지만 미성년이라서 형이 좀 감형 되는게 있을거라고 하지만 김 변호사가 좋은 방법을 꺼냈다.
"저 녀석들, 앞으로 두어달만 있으면 성인이더군요. 재판을 좀 끌어서 좀 괴롭혀주다가 성인이 되면 감형 없이 그대로 실형 때리면 될겁니다"
"이야, 듣도보도 못한 방법이네. 이래서 좋은 변호사 구하는 모양이네요"
"간만에 제대로 된 일인데 맡겨 주시죠. 어차피 저런 녀석들은 나와봤자 사회에 악영향만 끼칠 뿐이니까 감옥에서 썩는편이 낫습니다"
옆에서는 김 사장이 제일 키가 컸던 고삐리를 때리고 있었다. 권 경감이 말리려고 했지만 여기 지구대장인 안윤성 경정이 제지했다.
처맞는 꼴을 보니 속이 시원하다.
"야 이 새끼야! 피도 안마른 새끼가 술 처마시다가 운전까지 하고, 기어이 아버지 사업까지 말아먹어? 이 새끼 오늘 호적을 파주마, 교육을 못한 내 잘못이지, 아주 그냥!!"
"억!? 악!! 아, 아빠! 아파요! 아프다고요?!"
"넌 아파도 싸 이 새끼야! 거래처 큰손들이 다 손을 털었는데 앞으로 먹고 살것도 걱정해야돼 새꺄!!"
"아악! 악!!!"
딱히 그놈 아들 뿐만이 아니라 다른 고삐리들도 처맞았다. 허허허, 날 때리더니 되로 돌려받네. 꼴 좋다 새끼들.
나는 일단 일어나서 병원에 가기로 했다. 아니, 어디 아픈건 아니지만 김 변호사님이 병원 가서 진단서 떼오면 폭행 증거가 되니까 가서 검사 받고 오라고 했다.
어차피 놈들한테 맞은건 상처 하나 되지도 않았지만 신진대사를 조절해서 몸에 멍 들게 만드는 것쯤은 쉽다. 보통 가벼운 상처도 병원에서는 전치 2주는 기본으로 뽑아주니까 한 3,4주 나올 정도로 상처를 만들어둘까.
"저희는 이만 가봐도 되죠?"
"아, 네! 물론입니다! 조서도 다 작성 했으니 가셔도 됩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백리야, 가자"
"네, 형"
우리들이 돌아가려고 하자 안윤성 경정이 지구대 앞까지 일부러 마중을 나왔다. 잘 보이려는 눈치지만 너무 노골적이여서 별로다.
바깥으로 나오자 한결 나아졌다. 나머지는 김 변호사님한테 맡기고 좆같았던 기분은 죄다 풀어야지.
"예진이 마중은 못나가겠다. 에이씨, 괜히 트러블 생겨가지고"
"그래도 저런 사람들 엿먹이는건 재미있지 않습니까?"
"난 별로야. 차라리 죄다 죽여버리는게 편해"
"이 세상은 법치 사회니까 그러면 잡혀갑니다"
"알아, 그래서 안죽였잖아"
만약 여기 문명이 하다못해 중세만 됐어도 아가리를 뜯어버렸을거다.
그 왜 그런말도 있잖아. 문명인들은 무례한 말을 해도 대가리가 깨지지 않기 때문에 야만인보다 무례하다고.
그거 진짜다. 만약 중세였으면 저런 짓 했을 때 결투 신청 같은거 날아오고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대리인을 내세워도 거기서 생기는 손해를 생각하면 저런짓 못한다.
단지 중간에 끼어 있는데 돈이 되어서 더 더러워진 느낌이지.
"형은 보면 돈을 싫어하는거 같아요. 돈 많은 주제에"
"난 돈을 싫어하는게 아니라 돈보다 정신적인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뿐이야. 나도 돈 좋아해"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있으면 좋은 법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어느정도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생각해봐라, 100억 줄테니까 목숨 내놓으라는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나? 물론 절박한 사람은 그럴 수도 있겠지만 100에 99는 거절할거다.
나는 환생자라서 죽음에는 익숙하니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걸 중요하게 여기는건 어쩔 수 없다.
"일단 난 병원 가서 진단서나 떼어 와야지. 내일 하루는 쉴테니까 가게는 서애씨랑 알아서 해"
"아, 알았어요 형"
백리와 헤어지고, 나와 시온은 잠깐 병원에 들려서 진단서를 뽑았다. 몸 이곳저곳에 푸른 멍이 들게 만드는건 간단한 일이라서 꾀병으로 만든 진단서에는 전치 4주라는 결과가 나왔다.
생각보다 많이 나왔네. 보통 어디 한군데 부러지지 않는 이상 4주는 안나오는데. 아마 멍을 만든 부분이 많아서 그런가?
"이걸로 더 확실하게 조질 수 있겠군"
"가짜라도 몸에 멍든거 보니까 별로 기분이 안좋습니다"
"아, 그래? 그럼 원상복구 할께"
어차피 멍이란건 피의 문제이기 때문에 내 능력인 간섭을 이용하면 만드는 것도, 회복하는 것도 손쉽다. 몸 이곳저곳에 나 있던 붉고 푸른 멍들은 단숨에 하얀 피부로 돌아왔다.
전치 4주는 받았으니 내일 하루는 쉴거다. 그래야 알리바이가 성립이 되지.
"내일 꽁으로 휴일 생겼네. 뭐할까?"
"간만에 데이트 어떻습니까?"
"데이트? 나쁘진 않네. 그러자"
자주 집에만 있기는 하지만 바깥에서 시온이랑 같이 지낸 시간은 별로 많지 않다. 간만에 오붓하게 데이트 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집에 돌아오니 예진이와 댕댕이가 마중을 나왔다. 특히나 댕댕이가 시온에게 달려들어서 낑낑거리고 애교를 부리는게 장난 아니다.
"어서오세요. 그런데 좀 늦으셨네요?"
"일이 좀 있어서. 그런데 밥 냄새 나는데 밥 했어?"
"일단 냉장고에 있던 김치찌개 정도는 데웠어요. 밥도 시설에 있을 때 종종 해서 익숙하고요"
"너네 시설도 밥 해먹는건 나랑 똑같나 보구나. 아무튼 맛있겠다. 같이 먹자"
반찬은 그리 화려하지 않았다. 내가 끓여두었던 김치찌개에, 밥, 그리고 계란 후라이랑 김 정도다.
하지만 김치찌개에 돼지고기도 들어가 있고, 거기에 계란 후라이까지 있으니 솔직히 밥 한끼 먹을건 충분했다. 반찬이 많아도 다 못먹는 법이다. 게다가 김치찌개에 계란 후라이면 조합이 끝내주지.
"오늘 학교는 어땠어?"
"아, 좋았어요. 애들이 막 람보르기니 타고 와서 여러가지 많이 물어 보더라고요. 담임 선생님도 좋으신 분 같았고요"
"내일도 출근하는 김에 태워다 줄께. 아, 내일은 출근 안하는구나"
"왜요? 무슨 일 있었어요?"
"가게에 진상 때문에 시비가 좀 걸려서. 그래서 하루 쉬기로 했어"
"큰일 난건 아니죠?"
"진상들한테 엿을 먹여줬지"
"편-안"
낄낄거리면서 밥을 먹는다. 우선 김치찌개를 한국자 퍼서 밥을 비빈다음 한숫갈 먹는다. 돼지고기 때문에 기름진 국물 맛과 김치 맛이 뒤섞여서 딱 좋은 맛이 난다.
내가 끓인거라서 맛은 죽여주는구만. 자고로 나는 모든 요리 중에서 김치찌개를 제일 잘한다. 예전에 어떤 생에서는 김치찌개 전문점으로 장사 했었을 정도다.
"와, 찌개 엄청 맛있다. 어떻게 끓인거예요?"
"재료만 중요하면 일단 반은 가지"
"비법 같은거 있어요? 좀 가르쳐 주세요"
"일단 질 좋은 밭에 배추 씨를 뿌린 다음......"
"아니, 거기서부터 하는거예요?!"
사실은 농담이다. 어느정도 맛있는 김치라면 다 써도 된다.
단지 내가 처음부터 만든 김치라면 완벽에 가깝게 만들 수 있다는 소리다. 기성품보다는 직접 만드는게 김치찌개용으로 더 좋은건 당연하니까.
반찬이 좋아서 밥은 금방 먹었다. 시온도 내가 만든 김치찌개는 좋아해서 말 없이 밥까지 비벼서 밥도 두그릇이나 뚝딱 해치웠다.
"잘 먹었습니다. 아, 그리고 보니 예진양. 내일은 저랑 그이랑 같이 데이트 할거니까 저녁은 먼저 드셔도 됩니다"
"아, 외출하세요?"
"간만에 좋은 곳에서 밥 먹고 놀려고 합니다. 간만에 데이트 하면서 오붓하게 좋은 시간 보낼겁니다"
"그런데 어디로 갈까? 생각해둔 곳 있어?"
"음.....놀이공원 어떻습니까?"
"너 취향 보면 역시 어린애라니까"
"그치만 가본지 꽤 오래 됐습니다. 당신도 똑같지 않습니까?"
"그러긴 하지"
일단 놀이공원이라는 곳 자체가 어느 정도 발전된 문명이 아니면 없고. 있어도 내가 갈 수 있는 상황인지가 중요하다. 이번 생에도 시온을 만나기 전에는 수학 여행 빼고는 놀러간 적이 드물다.
기껏해야 형식이네 가족들 따라서 여름 휴가 갔던 수준이지.
......아, 그러고 보니 슬슬 아저씨 이식 수술 하는 날이구나. 기억해 둬야지.
"어디로 갈건데? 잠실? 용인?"
"음.....용인이 좋긴 한데 요즘 미세먼지가 많지 않습니까? 어차피 좋은데서 밥 먹으려면 거기 근처에 타워도 있으니 거기가 나을겁니다"
"아, TV나 인터넷에서는 많이 봤는데 정작 가본적은 없네"
"이 나라에서 가장 큰 빌딩입니다"
"응? 우리 나라에서 가장 큰 빌딩은 63빌딩 아니였어?"
"아저씨, 그거 언제적 소린데 그러세요? 저랑 몇살 차이 안나지 않았어요?"
아니, 나 때는 63빌딩 막 완공해서 아쿠아리움 가보고 막 그랬지.
정말 옛날 이야기인데 환생을 거듭해도 최초의 생은 아직도 기억난다. 나라는 존재를 만든거나 마찬가지인 삶이니까 그럴만도 하지.
아침에 일어나서 예진이 데려다주고 가서 첫번째로 입장하려면 시간이 좀 애매하다. 아마 사람이 많이 없어야 가능할것 같은데. 애초에 평일이라서 기대해볼만 하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은 일찍 자두겠습니다!"
"그래,그래"
"그리고 내일은 성장폼으로 갈겁니다"
"그래.......응?"
아니, 지금 잠깐 뭐라고?!
* * * *
시온은 하논이라는 종족으로 인간형의 외견은 그냥 의태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든지 외견은 바꿀 수 있지만 지속적인 에너지 소모가 없는 디폴트 폼은 항상 자주 다니는 초등학생의 모습이다.
그런데 거기서 성장폼. 즉, 시온이 평범하게 자라면 볼 수 있는 어른의 모습은 정말로 비상식적일 정도의 미모를 지니게 된다.
애초에 어린애의 모습이라도 인형과 같이 예쁜 미모를 자랑하던 시온인데, 거기서 아예 꽃이 핀 모습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예쁜게 당연한 일이다.
지나가던 차가 시온 얼굴 보고 한눈팔다 사고 일으키는건 예사다.
초월자 중에서도 손꼽히는 미모라서 차원 레벨로 미녀를 뽑는 미스 디멘션 후보에 나갈 수도 있었지만 시온은 미스가 아니라 미세스라서 거절했다.
진짜 농담 안하고 성장폼의 시온은 내가 아는 초월자 중에서도 수위를 다툰다. 단지 그만한 모습을 갖추려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주 몇개 만들어지고 멸망한거 본 시온네 사촌 오빠도 지금은 기껏해야 중학생 외형이다. 태고적부터 살아왔는데 그 수준이면 솔직히 얼마나 지나야 그럴지 영 감이 안잡힌다.
"좆됐네"
"데이트 가는데 욕이 왠 말입니까"
"상황이 상황 나름이여야 욕을 참지"
시온의 성장폼은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다. 가는 곳마다 사고를 불러일으켜서 오히려 디폴트 폼이 낫다. 몸이 작아서 불편하긴 해도 최소한 트러블은 덜 생기니까.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아침은 거르고 준비를 마친 우리들은 먼저 예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런데 람보르기니는 2인승이다. 그래서 일단 예진이를 먼저 데려다 준 다음에 다시 집으로 와서 시온을 픽업하고 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나랑 예진이 먼저 나갔다 올께.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화장 하고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뭐지? 오늘은 의무 방어전 치르는 날인가?"
"어차피 아직도 팔팔하면서 뭘 그러십니까? 엄살은 그만 부리고 얼른 다녀오십시오"
"알았어"
나는 예진이를 차에 태우고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
"울 마누라가 이번에는 화장까지 한다네. 안그래도 예쁜데 거기서 또 뭘 예뻐지겠다는건지"
"시온 아주머니가 예쁘긴 한건 맞는데 그래도 너무 팔불출 아니예요?"
"남자가 아내 사랑하고 딸 사랑하는건 흠이 아니야. 그나저나 너는 화장 안하니? 한창 꾸미고 뭐 그럴 시기인것 같은데"
"포스 유저라서 얼굴에 크림 정도만 바르고 끝내요"
"아, 솔직히 필요없긴 하겠네"
포스 유저는 못해도 평균 이상의 외모를 가지게 된다. 일단 피부의 잡티도 사라지고 체중도 적당한 수준으로 맞춰지고, 내가 보기에는 전투에 적합한 신체가 되는것 같은데 어찌되었건 미남미녀가 되는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포스 유저 출신의 연예인들이 없는게 아니다. 괜히 체중이나 외모관리에 돈 들일 필요가 없거든.
예진이도 포스 유저니까 화장품 종류가 많이 필요없을거다. 반에서 질투 좀 사겠는걸.
"저번 이후로 미래예지 한다거나 하진 않았지?"
"네, 그때 이후로는 괜찮아요. 뭔가 느낌이 이상하기는 한데 미래를 보는건 아니고. 아마 조금씩 연습해봐야 괜찮아질것 같거든요"
"조심해. 미래를 본다는건 위험한거니까"
"저번 일로 확실히 알고 있어요"
노닥거리다보니 어느새 학교까지 도착했다. 나는 내릴 준비를 하는 예진이에게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주었다.
블랙 카드는 좀 과하고, 내 카드다. 체크카드라서 치킨집 수익은 여기에 다 들어 있다.
"어제 못준 카드 미리 줄께. 이거 가지고 바깥에서 친구들이랑 같이 저녁 사먹고 그러고 들어와. 너무 늦게 오진 말고. 댕댕이 밥도 챙겨줘야 한다?"
"아니, 제가 무슨 어린애예요?"
"내가 보기에는 어린애야"
이게 고등학생 주제에 어디서 어른인척 하려고.
나는 손을 흔들어주면서 예진이를 배웅했다. 그리고 시온을 태우기 위해 다시금 집으로 돌아왔다.
이미 그 앞에서는 미리 기다리고 있던 시온이 있었다.
아직 여름이라서 더운 날씨라 가볍게 입은 느낌이다. 어께와 겨드랑이가 전부 노출되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었는데 어린애 모습의 디폴트 폼일 때에 비하면 노출도가 장난 아니다.
그때는 그나마 몸이 작아서 섹시한 느낌은 커녕 귀여운 느낌이였는데 이번에는 명백한 성인 여성의 매력이 물씬 풍겼다.
원피스가 몸에 딱 달라붙어서 몸매또한 노골적으로 드러났다. 결코 작지 않은 가슴에서 라인이 내려와 허리에서 잘록하게 들어가고, 거기서 다시 골반으로 올라온다. 완벽한 S자를 그리고 아래에는 각선미를 자랑하는 대리석같은 새하얀 다리가 있었다.
그러나 그건 다 무의미했다. 이미 얼굴에서 정점을 찍어서 딴건 의미가 없었다.
군청색의 원피스와 대조되는 은발을 허리까지 길러 단정하게 모아 묶은 모습은 별 다른 장식 하나 없어도 그 머리칼 자체가 예술 작품 같았다.
마치 누군가 직접 조형해 만든 오밀조밀한 느낌의 외모는 나도 한순간 넋이 나갈 정도다.
간만에 보니까 더 예쁜데?
"왜 갑자기 임전태세야"
"데이트라서 힘좀 써봤습니다"
좆된 것 같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이기는 한데.
난 좆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