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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4화 〉[라쿤맨 비기닝] (74/507)



〈 74화 〉[라쿤맨 비기닝]

존 알리언, 흔하게 알리언 박사라고 알려진 그는 별로 이쪽에 관심 없는 나도 이름은 들어본 사람이다. 어떤 면에서는 마스터 유저보다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다.


적성종 및 차원진, 그리고 가이아 포스 연구 분야의 1인자이면서, 전에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서 들었다시피 미국을 지탱하는 3대 기둥 중 하나. 다른 업적은 잘 모르지만 내가 유일하게 알고 있는건 초창기에 차원진 감지기를 처음으로 만든 사람이라는 점 정도다.


그건 교과서에도 나와서 알고 있었다.


적성종의 위협이 생존과 직결되니 기본적인 교육은 하긴 하는데 나야 상관없으니 반쯤  때려서 기억에 남는건 드물다.


아무튼 대공황 시절에 차원진 감지기를 만든 알리언 박사의 업적은  당시만 하더라도 수억의 목숨을 구했다. 만약 차원진 감지기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서 차원진이 열리는 줄도 몰라서 피하지도 못했을테니까.

시온이 라쿤걸이란 이름으로 신형 차원진 감지기 설계도를 보내기 전까지 상용되던 차원진 감지기는 전부 알리언 박사의 작품이다.

"나도 종종 만나곤 하지. 성격이 나름 괜찮거든. 게다가 마스터 유저니까 이런저런 데이터를 뽑을  있다나봐. 아마 너를 만나려는 것도 그 이유에서겠지"

"글쎄, 나는 다른거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나에 대한 볼일이 30퍼센트 정도라면 시온.....그러니까 라쿤걸에 대한 볼일이 70퍼센트 정도일거다.

아틀라스란 흑막 조직의 보스도 탐냈는데 하물며 다른 과학자들이 관심갖지 않길 바라는건 날로 먹을 생각과 같다고 본다. 일반인들은 몰라도 어느정도 기밀에 접근할  있는 수준의 사람들은 다 알고 있겠지.

"자, 여기가 알리언 박사가 있는 연구소야.  넓지?"

"이야, 무슨 대학 보는줄 알았네. 연구동이 도대체 몇개야?"


"적성종 방위 예산의 몇 퍼센트가 여기에 들어간다는게 그냥 말로만 그런건 아니라고"


어제 봤던 컬럼비아 대학교에 준하는 넓이의 연구소는 눈에 보이는 건물만으로도 수개는 되어보였다. 거기다가 몇개는 고층 빌딩에 준하는 형태를 띄고 있었다.


단지 연구동 뿐만 아니라 부지 내에 공원 같은 시설도 딸려있는거 보면 복지 시설도 완벽한듯 보인다.


"어서 오십시오! 오는데 불편하시진 않았습니까? 식사는요? 컨디션은요?"


"어? 혹시 당신이?"

전화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은 목소리의 주인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그는 꽤 잘생긴 청년처럼 보인다. 나이는 중년에 들어서는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동안인지 그 나이대로는 보이지 않았다.


옅은 금발에 사람 좋은 웃음을 보이면서 환영 인사를 건내는게 순수한 의도보다는 목적이 있어 보였다.

"아! 제가 바로 존 알리언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라쿤맨"

"흠"

나는 한참 그의 얼굴을 보았다. 별 다른 느낌은 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래서 신경쓰인다.

"이렇게까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그러고 보니 당신이 맡기신 인간형 적성종의 코어는 잘 받아서 보관중입니다. 아마 슬슬 연구를 시작하겠죠"

"다른건 둘째치고 목적은?"

"일단 연구소 안으로 드실까요? 여기서 이야기 하기에는 시선도 있으니까요"


그를 따라 들어가려던 찰나, 제이콥이 나를 불러세웠다.


"이야기 끝나면 나와. 태워다 줄테니까. 난 잠깐 무기 정비나 맡기고 올께"

"무기 정비?"


"아! 여기서는 썬더볼트가 사용하는 것 같은 특수 총기류의 제작 및 수리도 겸하고 있습니다. 적성종을 연구한다는건 그런 의미니까요"


현대 사회에서 적성종을 연구한다는건 그 기술력도 있지만 무엇보다 우선 적성종을 보다 효과적으로 죽일 방법을 연구한다는 소리다.


포스 유저는 군대 소속이 될 수 없을텐데 무기를 군대에서 만들어서 주는 것도 안될지 모른다. 그래서 연구소에서 만들어 주는거겠지.

제이콥은 따로 다른 연구동으로 향하고, 나는 알리언 박사와 함께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성큼성큼 걸어가는 그의 발걸음은 도저히 중년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한창 학생일때 교과서에 나온 사람이니까 못해도 그쯤 될텐데 말이지......너무 방정맞은거 아니야?

"성격이 뭐랄까.....좀 굉장하네요"


"하하하! 저도 제 성격을 잘 알고 있습니다. 좀 괴짜같죠? 저도 알고 있지만 연구할게 눈앞에 있으면 자제가 안되서요. 평소에는 이보다 훨씬 점잖은 성격이긴 합니다"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 아닐까?

연구원치고 말 많은 사람은 그리 자주 못봤는데 말이지.....뭔가를 연구하는 사람은 말이 없어지기 마련이라고 시온이 그랬어. 대부분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했나.

"어떤  부터 이야기 해야하나.....우선 이번에 새로 출현한 인간형 적성종 이야기부터 하죠. 우선 놈은 완전히 새로 나타난 신종입니다. 비슷한 다른 사례도 없죠"

"확실히 그런놈 한둘이라도 옛날에 나타났다면 진작에 세상이 멸망했겠지"

만약 한 차원진에 지금 나타난 인간형 적성종 전부가 나타나면 그 나라는 확실히 멸망이다.

평균치는 있겠지만 보통 마스터 유저급의 적성종이 4마리다. 나타났다간 일단 그 나라의 마스터 유저는 단숨에 농락당하다 썰리고 도시가 붕괴하고 나라가 무너진다.


유일한 방법이라면 핵을 날리는 것이겠지만 차원진이 열리는건 도심 한가운데다. 사람도 많은데다 자국 내부에 핵을 날릴만한 손해를 감수할 수 있어도 직격이 아니면 쓰러트리는건 무리일테고.

방사능? 아니, 방사능 같은게 통했으면 일본에 나타나는 놈들은 냅둬도 뒤지겠다.

"더군다나 놈의 코어는 노나곤입니다. 아, 적성종 코어 분류법은 아십니까?"


"각이 많으면 많을수록 높은거였지? 노나곤이면......구각형인가?"


"네, 그렇죠. 최초의 노나곤 적성종입니다"

크기에 따라서 분류하는 것도 있지만 기껏해야 소형, 중형, 대형 식이고 쓸  있는 힘의 순도를 생각하면 코어의 형태를 봐야 한다.

예전에는 그런것도 몰랐는데 요즘에는 적성종을 하도 상대하다 보니 주워들은게 많아서 나도 알게 됐다.


"근데 그놈, 순도는 높아서 스펙은 좋지만 소형이라서 그런지 포스 융합 현상은 금방 끝나던데?"

"그렇습니다! 과연! 초청하길 잘했군요! 제가 이걸 듣고 싶었어요! 이걸로 포스 융합 현상은 개체의 강함과 상대 없이 라프 에너지의 총량에 달렸다는게 증명 됐습니다! 이걸로 눈문 하나  수 있겠네요! 연구만도 바쁜데 논문  내달라고 징징대는 녀석들에게 대충 던져줄겁니다!"

"워낙 시달린게 많아 보이네"


"전 연구잡니다! 사람들이 파벌이니 라인이니 정치 싸움하는건 진절머리가 납니다. 무시하고 싶어도 돈 대주는 놈들이니 무시할 수도 없고. 아주 돌아버리겠습니다"


뭐라고 하나.....알리언 박사는 교과서에서 보던 것보단 훨씬 인간적인 면모가 보였다.

물론 그 인간적인 면모가 스트레스 받고 이리저리 치이며 예산 걱정하는 전형적인 연구자의 모습이란게 좀 동심파괴적이지만.


마치 IMF가 국민들의 과소비가 원인이라고 가르쳐놓고 사실은 다 구라였다는 수준의 충격이다. 아니면 명성황후가 위인인줄 알았는데 한짓 보고 받은 충격 수준이나.


요즘 교과서는 제대로 고쳤나 몰라.

"아무튼 놈의 코어에서 나오는 라프 에너지의 순도는 여태까지 연구했던 그 어떤 적성종의 코어보다 순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물리현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거 물리현상이 아니라 좀 더 개념적인 문제일 것 같은데. 애초에 개념 저항성이 있는 녀석이니까 코어가 그래도 이상하진 않고"


".......!!!"


알리언 박사는 눈을 빛내며 빠르게 내 양손을 붙잡았다.


"개념적인 문제? 혹시 라프 에너지의 기원에 대해서도 파악하셨습니까?"


"부정하는거 아니야?"


"네! 맞습니다! 마스터 유저라고 해서 썬더볼트 같은 사람 좋은 바보라고 생각했는데 라쿤맨 당신은 전혀 다르군요. 혹시 라쿤걸은 이름만 그렇지 당신이 아닙니까?"


"그건 아냐, 라쿤걸은 다른사람이라고"

너무 자연스럽게 지나갔지만 시온의 별명이 지나갔다. 이미 알리언 박사도 라쿤걸의 이름을 알고 있는걸 보면 뒤에 그 목적도 있던게 확실하다.

"라프 에너지는 기본적으로 부정한다는 개념에 치우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놈들은 기본적으로 물리 내성을 가지고 있고, 이번에 나타난 인간형 적성종도 영상으로 확인하니 중력을 부정해 반중력과 같은 효과를 내어 움직이더군요. 마치 가이아 포스는 특성을 만들 수 있으니 라프 에너지는 부정이라는 개념을 가진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부정이란 개념을 가진 힘과 생물이 어떻게 동시에 존재하고 그걸 다룰 수 있는지 아십니까?"


"결국 그 힘을 사용하는건 생물의 의지니까"

"정확합니다"

알리언 박사의 눈이 아까보다 훨씬 빛나기 시작했다. 솔직히 부담되서 무섭다.


"처음에는 라쿤맨 당신을 새로운 마스터 유저의 데이터를 얻기 위해서 불렀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통하는 상대인줄은 몰랐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어디 대학을 나오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대학 안나왔는데. 고졸이 내 학력 전부야. 거기다가 과도 문과고"


"이런 세상에 맙소사! 연구자로 나갔으면 좋았을텐데요?! 기본 지식도 충분하고!"

"이과 계열은 나랑 영 맞지 않아서"


문과는 나, 이과는 시온. 이렇게 구분되어 있다. 할 수 있는 분야로 그렇게 나눈거긴 하지만 애초에 서로 재능 없는 과목인걸 아니까 손대지 않는것 뿐이다.


게다가 나와 알리언 박사가 대화가 되는건 순전히 내가 좀  많은걸 알고 있어서지 내가 그보다 머리가 똑똑해서 그런게 아니다.


중세시대 천재하고 현대의 고등학생하고 지식량을 비교하면 후자 쪽이  많을거다. 하지만 심화 부분에서는 전자 쪽이 낫고.


아무리 그래도 현대 사람이 중세시대 천재인 사람보다 머리 나쁘다는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글쎄, 일단 인공위성도 없는데 지구 둘레를 거의 비슷하게 계산한 사람을 찾아보고 오실까. 참고로 그리스 사람이다.

"라프 에너지는 순도가 높아질수록  특성이 강해집니다. 아무래도 코어의 완성형은 완벽한 원형일테죠. 만약 그런 코어를 가진 적성종이 나타난다면......지구의 모든 마스터 유저가 모인다고 한들 이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건 아냐"

내가 있으니까.

일단 초월자라도 나보다 약하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다수로 온다면 그것도 의미가 없고.

내가 라쿤맨으로서 움직일 때 그런 놈들이 나타난다면 처리해줄 용의는 있다. 하지만 언젠진 모르겠는데 라쿤맨 때려친 다음에는 국물도 없을거다. 자기가 손해보는걸 뻔히 알면서도 희생하는 고결한 행위는 나랑 가장 거리가 먼 말이다.


"음, 우선 원래 목적부터 해결하죠. 데이터 수집에 약간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내가 왜?"


일단 초대해서 오긴 왔다만 협조해줄 이유 없다. 애초에 난 미국 시민도 아니라서 그럴 의무도 없고.


"당신도 저에게 뭔가 얻을게 있는게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면 애초에 오지도 않으셨을테죠"

"흠....."


생각해보면 세계에 영향력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어서 나쁜건 없다.


더군다나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약간 협조 해주기로 했다.

*  * *   *



아무리 그래도 알리언 박사는 매드사이언티스트는 아니였다. 만약 그랬다면 연구 성과 이전에 국제적 범죄자가 되서 감옥에 갇혀 있었겠지.

좀 폭주하는 경향이 있어보여도 그건 어디까지나 연구에 한해서고 그건 열정에서 비롯된거지 나쁜게 아니다.


"우선 근력 테스트부터. 저쪽에 발판에 올라가신 다음에 바로 앞에 있는 기계를 누르시면 됩니다. 양손으로요"


"흠!"

"......이런 세상에!"


슬쩍 힘을 줬는데 기계가 파삭! 하고 무서졌다. 아니, 이거 좀 약한거 아니냐? 펀칭 머신이 훨씬 낫겠는데?

"혹시 특성을 사용하신겁니까?"


"어, 일단 그렇긴 한데?"

"아무리 특성을 사용해도 이 정도라.....강화 특성을 가진 히비키씨나 용화정씨의 근력도 이 정도는 아니였는데......"

"마스터 유저는 대체적으로  아나봐?"

"아, 저한테는 특별한 연구 자료 제공자들이니까요. 특히나 며칠 전만 해도 중국에 가서 용화정씨를 만나기도 했습니다"

세계 제일의 과학자인만큼 인맥도 넓은 모양이다. 나랑 사람이 다르네.


근력 테스트는 넘어가고 다음은 연구소 앞에 있는 공원에서 달리기 테스트를 받았다.


"이 공원 둘레는 1킬로미터 정도입니다. 한바퀴 도시고 올 시간을 측정할테니 신호하면 달리시면 됩니다"

"1킬로? 보통은 100미터 정도 아닌가?"

"100미터 정도는 한번 도약으로 뛰어넘거나 1,2초 밖에 걸리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서......능력 사용의 최소 지구력을 보는 것도 있어서 1킬로미터로 정했죠. 아무튼 시작하겠습니다!"

알리언 박사가 스톱워치를 누름과 동시에 나는 가볍게 달렸다.


역장은 육체 강화에만 쓰고 날지도 않고 순수하게 땅에 발을 디뎌서 달리느라고 평소보다도 꽤 늦었다.


한 3초 정도 걸렸나.

"3.22초?!"

콰가가가가!!!

내가 달리느라 생긴 풍압이 몰아쳤다. 얇은 나뭇가지 정도는 부러지고 공원의 나무에서는 나뭇잎이 휘날려 후두득 떨어진다.


"거의 음속에 준할 정도의 속도라니......"


"마스터 유저 중에는 음속 돌파 가능한 놈이 없어?"

"한명 있긴 있지만 대다수는 불가능합니다. 아마 그럴 필요성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필요성? 아, 그럴만도 하겠네"

마스터 유저는 이경진 아저씨도 그렇고 죄다 자기보다 강한 사람이나 하다못해 비슷한 사람과도 싸운적이 없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열정을 잃어버린다. 어차피 다른 마스터 유저랑은 싸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더 강해져봤자 적성종만 죽일테니까.


요즘 적성종의 수준이 높아져서 그 필요성이 생기긴 했지만 그건 최근이다. 아마 아시아권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의 마스터 유저는 아직도 그렇겠지.

"사람은 목적이 없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목표와 목적은 인간에게 열정을 일으키게 하고 뭐든 가능하게 만들죠"

"당신도 목표가 있어?"


"당연히 있죠, 더 이상 적성종 같은게 넘어오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게 제 목표입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을 바라는 목표이기도 하다. 누가 목숨의 위협을 받으면서 살고 싶겠는가. 나도 우리 옆집에 다짜고짜 차원진이 열리는건 바라지 않는다.

만약 이쪽에서 차원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도 연구하면 모를까, 솔직히 지금 기술력으로는 차원은 커녕 공간이란 개념조차 아득하다. 못해도 100년은  있어야 할껄.


이어서 다른 여러가지 테스트를 받았다. 가이아 포스 보유량 테스트나, 순발력  동체시력 테스트, 내구력 테스트 등등. 하나에 시간을 길게 투자하진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슬슬 점심 때가 지나가고 있었다.


"아,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요. 늦었지만 점심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어차피 밥 먹으면서도 수다 떨 생각이 만만인데 그냥 대충 커피나 한잔 마시면서 마저 떠들지? 어차피 나도 물어볼게 있으니까"


"서로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군요. 아, 연구동 1층에 카페가 하나 있습니다. 거기서 커피를 사오도록 하죠"


알리언 박사는 사람이 좋은건지 남에게 시키지 않고 자기가 직접 내려가서 커피를  왔다.


나름 원두는 좋은걸로 쓰는지 향이 괜찮다. 느긋하게 커피를 한잔 하면서 나는 슬슬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연구하면 이런저런 곳에서 이야기가 막 나오지?"

"뭐, 그렇긴 합니다. 협조를 바라는 곳은 그나마 낫고 협조란 이름의 협박을 하는 곳은 저도 참 애를 먹죠. 특히나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면 못해도   있다고 말해야 예산이 나오니까 시달리는게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나는 사람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법은 알아도 심문하는 방법은 그리 능숙하지 않다. 특히나 물리적 수단을  수 없다면 더욱.


알리언 박사는 중요 요인이니까 아무리 내가 지금은 영웅 취급을 받아도 그에게 해를 끼치면 범죄자가 될거다.

그러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아틀라스란 조직에 대해서 알아?"

"풉!!!"

알리언 박사는 마시던 커피를 성대하게 뿜었다.


슬쩍 옆으로 피해서 내 얼굴 위로 쏟아지려던 커피를 피했다. 울 마누라가 한거면 이쪽 업계가 아니라도 포상이겠지만 남자 새끼가 한거에는 관심 없다.


몇번 기침을 하고 겨우 진정한 알리언 박사가 휴지로 옷과 사무실 책상 주변에 흘린 커피를 닦고서야 이야기를 할 분위기가 됐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지겠군요"

호기심이 많은 느낌의 눈이 변했다. 좀 더 진중하고 무거운 눈이였다.

비밀이 있는 놈은 항상 저런 눈을 했었지.


"그 이야기를 하려면  옛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지루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 해주는건 지루해도 들어줘야 하는 법이지.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하는게 아니라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거니까"


"아직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그리 많지 않지만요"


동안이라서 잘났수다. 누구는 백인인데도 동안이고 누구는 동양인인데도 노안인거 보면 결국은 인종은 상관없고 유전자가 제일 좋은거다.

알리언 박사는 천천히, 자기 이야기를 꺼내놓기 시작했다.


"우선 한가지, 당신이 알고 있는 차원진은 20년 전의 대공황 시절에 일어난게 처음이라고 생각하고 있으실겁니다"


"그래, 그렇게 알고 있지.....혹시 다른가?"

"한가지가 다릅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방도 알리언 박사의 사무실이고, 바깥에도 아무도 없다. 나도 혹시나 싶어서 도청기가 있나 기감을 넓혀봤는데 걸리는건 없었다.

아무래도 도청장치를 두기에는 본인 사무실은 너무 노골적인 모양이다. 우리야 한결 편해서 좋지.

"최초의 차원진은 23년전에 일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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