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화 〉[라쿤맨 비기닝]
용산동의 차원진의 위치는 시온이 금새 파악해서 알려주었다. 어차피 그러지 않아도 접근 할수록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처음보는 형태의 적성종이 출현했습니다. 비교적 외견은 인간에 가깝지만 수준은 초대형 적성종보다 위입니다!]
"잡을 수 있을까요?!"
[당신을 믿는 당신을 믿는게 아닙니다. 당신이 믿는 제가 믿는 수트를 믿는겁니다!]
"여기서 뭔가 있어보이는 대사 해봤자 의미 없거든요?!"
라쿤맨 수트의 최대 속도는 마하 10 정도다. 이게 얼마나 빠르냐고 하면 그 유명한 전투기인 랩터라 불리는 F-22의 최대 시속이 마하 2.25 정도로 한참 미치지 못한다.
지구 한바퀴 도는데도 3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괴물같은 기능의 절반은 반중력 제어장치에 있었다. 만약 그게 없었다면 시온도 인간만한 기체에 그 정도 수준의 속도는 못낸다.
명동에서 용산동까지 오는데 몇분은 커녕 몇초 걸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오자마자 적성종으로 보이는 외눈의 괴물에게 백리는 킥을 날렸다.
[보이드 블래스터 전개!]
"라이더어어어! 보이드 블래스터 키이이이이익!!!"
[여기서는 '이 몸의 필살기 클라이맥스 버전!'으로 해주십시오!!!]
"뭔지 모른다니까요!"
각부에서 전개된 보이드 블래스터가 공간진을 일으키고 물리력과 더불어서 인간형 적성종에게 치명적이진 않지만 유효한 타격을 입혔다. 놈의 외골격 같은 갑주의 어께부분이 바스라지고 안에 있던 본래의 몸이 눈에 띈다.
마치 인간의 피부를 벗겨놓은 듯한 붉은 근육이 들어차 있었다. 인간과 같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마치 붉은 벌레들이 꿈틀거리는 엮겨움이 있었다.
[보이드 블래스터로도 데미지가 적습니다! 저 놈도 마찬가지로 개념 저항성이 있습니다! 거기다가 초대형 적성종보다 내성이 훨씬 높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지금 수트에 탑재된 무기나 기술로는 놈을 처치할 수 없습니다. 애초에 아공간 전송 장치도 설치 못했는데 뭘 바라는겁니까?]
인간형 적성종은 당황하듯 외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박살난 자신의 왼쪽 어께의 갑주를 보고 조금 떨었지만 이내 경계하듯 물러나 백리를 노려보았다.
따로 에너지 방출도 없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마찬가지로 시온도 경계했다.
[동력원은 적성종의 코어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움직임은 중력에 영향을 받는 생물의 것이 아닙니다. 저희야 반중력 제어 기술이 있어서 그런다지만 놈은......조심하십시오. 아무래도 적성종이 사용하는 힘인 라프 에너지는 '부정'이라는 개념에 중점을 둔 힘 같습니다]
"지금 그런게 중요해요?! 으아아아! 온다아!"
백리는 기겁하면서 인간형 적성종이 쏘아내는 광선을 피했다. 위력이 아닌 수를 중요시하여 연발로 쏘아지는 광선은 백리가 선회하며 피하는데도 불구하고 바로 뒤쪽까지 따라왔다.
그리고 광선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가며 위험해질 무렵, 놈의 부서진 어께 부분에 이경진이 검을 휘둘렀다.
"주의 끌어줘서 고맙군! 라쿤맨!"
카가가각!!!
있는 힘을 다해서 포스를 담아 베어냈는데도 불구하고 팔을 잘라 내기는 커녕 반 밖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리 강해도 소형이기 때문에 포스 융합 현상은 진작에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는건 순수하게 내구도가 엄청나다는 소리였다.
놈은 이경진을 향해 광선을 쏘려고 했지만 겨우 잡은 뒤를 쉽게 놓아줄 생각은 없었다.
원거리에서 공격하는 놈도 한가지 약점이 있었다. 그건 광선을 눈을 기준으로 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목이 부엉이 같은 구조여서 360도 돌아가지 않는다면 등 뒤에 있는 사람을 공격할 방법은 없다!
거리를 벌리고 싶어도 지금은 이제 한명이 아니라 두명이다.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해 경계를 하면 한명은 등 뒤를 노릴 수 있다.
"접근하는 나나 라쿤맨에게 반응하지 못한걸로 봐서 감지 능력은 형편없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다면 등 뒤에서 다가오는데도 경계하지 못할리 없다. 원거리 공격과 기동성에 특화시켜서 감지 능력은 발달하지 못한듯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놈은 등 뒤에서 깔짝거리는 이경진을 향해 신경질을 내며 광선을 쏘려고 했지만 맞출 수 있는건 그의 잔상 정도였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등 뒤를 점하긴 했어도 놈에게 치명상을 줄 방법은 오직 한가지 뿐이였다.
"라쿤맨! 잠깐이라도 좋으니 주의를 끌어주게!"
"알았어요!"
백리는 놈의 정면으로 향했다. 그리고 일부러 보이드 블래스터를 위협적으로 쏴대면서 자신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강하긴 하더라도 지성 자체는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등 뒤의 위험보다 눈앞의 위험을 더 신경쓴다. 만약 조금이라도 머리를 굴릴줄 알았다면 우선 백리부터 쓰러트린 후에 이경진을 원거리에서 공격 했겠지만 치명상은 아니여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의 공격을 날리는 백리를 노려보며 광선을 쏘았다.
"야 이 새끼야! 여기다!!!"
[큰걸로 한방 날립시다! 오른손 보이드 블래스터 최대 출력! 맥시멈 드라이브!]
"드라이브? 그건 알아요!"
[아니, 그게 아닙니다! 아 진짜! 그나마 더블은 알 정도는 되지 않습니까?!]
키이이이이잉!!!
위협적일 정도의 진동이 울리는 오른손을 뻗어 놈에게 겨누었다.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녀석은 전투기 편대를 향해 쏘았던 수준의 광선을 사용하기 위해 힘을 모았다. 백리의 눈에도 훤히 보이는 라프 에너지가 꿈틀거리며 놈의 눈에 응집된다.
공기가 떨렸다.
하지만 그건 백리의 보이드 블래스터나 인간형 적성종의 광선 때문이 아니였다.
우우웅!!
"......이만큼 완벽하게 전개한 것도 드문데"
이경진의 회색공명검은 아직 미완성이다. 하지만 회색공명검은 그것만으로도 마스터 유저 중에서 상대가 누구든 카운터 칠 수 있는 궁극의 기술이다.
더군다나 유색공명검 중 회색이 의미하는건 호승심. 효과는 '증폭'이다.
안그래도 고층 빌딩을 통째로 갈라버릴 위력이 증폭되어 필살의 검이 되어 휘둘러진다.
쩌저저저적!!!
어께죽지부터 골반까지, 단숨에 일도양단 하여 놈을 반으로 잘라냈다. 그리고 뒤이어 마지막 확인사살로서 백리의 최대출력 보이드 블래스터가 쏘아졌다.
키이잉!!!
기묘한 떨림과 함께 놈의 몸뚱이가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아직 숨이 붙어 있지만 반대로 숨만 붙어 있는 것과 같기 때문에 개념 저항성도 떨어져서 보이드 블래스터가 정확하게 들어갔다.
바스라지는 놈의 사체는 지상으로 추락했다.
한국의 마지막 차원진은 그렇데 닫혔다.
"끄, 끝났다아.......죽는 줄 알았네"
지상으로 내려온 두 사람은 상황이 끝났다는 것에 안도했다. 그리고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애도도 함께 했다.
차원진이 닫히자 상황은 정리하는 것을 분주해졌다. 여력이 남아 있는 사람들은 부서진 건물 잔해나 혹시나 모를 인명 구조를 위해 나섰고
"그나저나 자넨 누군가?"
"예?"
"라쿤맨은 내 부탁으로 미국으로 갔지. 그러니 자네는 내가 아는 라쿤맨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아닌가?"
"아.....2호예요"
"아니, 2호 같은 것도 있었나?!"
[나 좀 먹은 중년 아저씨인데도 초대 가면라이더를 모르다니, 세상이 어떻게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라이더를 알거라는 기대부터 버리세요 형수님"
자고로 특촬물 매니아는 그 중에서도 가면라이더 파와 울트라맨 파, 고질라 같은 괴수물 파, 그리고 파워레인저 같은 전대물 파가 있다.
그 중에서 가면라이더 파는 또 쇼와와 헤이세이로 나뉜다. 그나마 근래에 바뀐 레이와는 아직 많이 나오지 않았으니 둘째쳐도 현 세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게 헤이세이 파다.
하지만 시온은 쇼와던 헤이세이던 레이와던 가리지 않고 모든 라이더를 좋아한다! 자고로 가면라이더 매니아라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수트는......아니, 됐네. 더 말 안하지"
"어....."
[그이가 저 사람 융통성 없는 아저씨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싸워서 이기지 않았으면 어디 하나 잘라서 경찰서로 끌고 갔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
이경진이 융통성 없다는 소리는 백리도 잘 알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포스 유저에 관심 있는 사람은 마스터 유저를 모를리 없었고. 자국의 마스터 유저의 업적 정도는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가까운 이야기로 2년 전의 정 의원 비자금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 당시 대기업 회장이나 다른 국회의원등 연루된 사람이 많아서 검찰에 들락날락 하는 사건이였는데, 그 중에서 KFU의 고위 간부이자 이경진의 거의 20년지기 친구도 있었다.
1,2년 친구도 아니고 거의 대공황 시절부터 알고지낸 친구인데도 불구하고 직접 잡아다가 검찰에 끌고갔다.
덕분에 이미지 개선을 생각하는 국회의원들은 절대로 이경진과 상종하지 않는다. 잘못해서 비리 하나라도 걸리면 손수 잡혀다가 검찰에 넘아간다. 다른건 둘째쳐도 끌려가는 행동 자체가 위신을 다 깍아먹어서 다시는 선거에 출마하지도 못하게 된다.
"아저씨, 저 그래도 좋은 일 했는데 한번만 봐주시면 안될까요......?"
백리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아무리 마스터 유저라도 마하 10의 속도로 도망치면 잡을 수 없겠지만 바로 코앞에서 그의 검을 회피할 수 있는가 아닌가의 문제다.
인간형 적성종이야 개념 저항성이 있는데다 자체 내구력도 좋았지만, 백리는 어떨까? 수트의 방어력만 믿기에는 무서운건 확실하다.
특히나 인간형 적성종을 반으로 잘라버렸던 회색공명검을 본 뒤라면 더욱.
하지만 이경진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하하! 나도 내가 융통성이 없는건 알지만 양심이 없는건 아니네. 내가 아는 라쿤맨은 내 딸아이를 지켜주려고 미국까지 갔지. 그런데 그랑 연관있는 사람을 내가 잡으면 뭐가 되겠나?"
"아, 그렇죠!"
"그렇지만 목적이 좋은 뜻이여도 행위가 불법이여선 안되네. 봐주는건 이번 밖에 안될걸세. 위에는 지쳐서 못잡았다고 해두면 될테니까"
이번에는 인간형 적성종이라는 처음 보는 형태의 적성종도 출현했고 초대형 적성종도 나왔다. 이경진도 회색공명검을 두번이나 사용했으니 솔직히 지친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다음에도 그런 변명이 통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라쿤맨.....그러니까 최악인 1호는 싸우다 졌으니 그렇다 쳐도 2호인 백리는 일부러 놓아줬다고 하면 어떤 수작을 걸어올지 모른다.
더군다나 백리가 입은 수트의 기능은.......
"어서 가게. 더 이상 여기 있으면 나도 변호 해줄 수가 없으니까"
"고마워요! 아저씨!"
이경진이 백리를 놓아준건 최악이 그를 대신해 미국으로 갔던 일도 있지만 백리라는 개인을 좋게 봐준 덕분도 있었다.
아무리 저런 수트를 입고 있어도 목숨 걸고 싸운다는 일은 아무나 못한다.
당장 총을 쥐어준다고 해도 맹수를 사냥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 되지 않는 것처럼, 가진 능력과 용기는 비례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백리는 보기 드문 정직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팍팍해지는 사회에서 저런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경진이 눈을 감아줄 가치는 충분하다.
백리가 빠르게 날아올라 다시금 왔던 곳으로 날아가고, 뒤이어서 기자들이 몰려왔다.
그를 둘러싸고 이번 싸움에 대해, 라쿤맨에 대해 물어보는 기자들이 많지만 그는 질문에는 신경쓰지 않고 백리의 뒷모습을 쫓았다.
비록 변조된 목소리지만 나이가 젋다는건 알 수 있었다. 기껏해야 자신의 딸의 또래 정도일까.
"그 아이는 잘 있으려나......"
그리고 최악에게서 일이 끝났다는 전화가 걸려온게 그 뒤의 일이였다.
* * * *
최악의 집으로 돌아온 백리는 수트를 해제했다. 그런데 일이 끝나자 다리가 절로 풀리는건 어쩔 수 없었다.
들어가니 시온이 따뜻한 스프를 끓이고 있었다. 오래걸리기 때문에 처음부터 만들지는 못하지만 시판 제품이라면 대부분 분말 형태로 된게 있기에 만드는데 얼마 걸리지 않는다.
"고생했습니다. 긴장이 풀리고 피곤할텐데 일단 따뜻하고 부드러운걸 먹는게 좋습니다"
"뭔가 엄청 무섭긴 했는데.....그래도 나름 할만 했어요"
"아마 상대가 확실한 적이라서 그럴겁니다. 이런 상황에는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으니 첫 실전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만약 서로의 생존권을 다투며 싸우는 전쟁이라면 이렇게 마음 편히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성종은 인간을 죽이려고 드는 괴물들이다. 수백, 수천을 죽인다고 한들 양심에 꺼릴 건덕지도 없다.
백리는 스프 냄새를 맡자 문득 자신이 배가 고프다는걸 깨달았다. 실전이라는 긴장감에 자기 몸의 상태조차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리 수트가 대신해줘도 몸을 움직이는건 당신입니다. 생각보다 활동량도 많았을테니 잘 먹는게 좋습니다. 여기 스프 드십시오"
"아.....고마워요 형수님"
백리는 시온이 건내준 그릇의 스프를 수저로 떠서 입에 넣었다. 끓인지 얼마 안되서 뜨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리 뜨겁진 않았다. 딱 먹기 좋을 정도로 식어 있었고 간간히 빵을 뜯어 넣은듯 스프가 스며들어서 촉촉한 빵조각도 들어가 있었다.
시판품에 그런게 들어가 있을리 없으니 빵은 일부러 넣은거다.
"아, 바게트 먹고 남은게 있어서 조금 넣었습니다"
"형한테 형수님은 너무 과분한거 아니예요?"
"그이도 항상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칭찬 고맙습니다"
배고픈 위장에 빵 조각이 들어간 크림 스프가 들어가니 그게 비록 시판품이라도 맛은 좋았다. 단숨에 서너그릇을 비운 백리는 그제서야 배가 좀 찼는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가 선택하긴 했지만 책임은 너무나도 크다.
"한번까지는 어떻게 되지만 두번은 안되는 법입니다. 그러니 최소한 다음부터는 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저도 우리 가게에 피해만 안갔으면 나서지 않았어요"
"핑계 치고는 너무 신빙성이 떨어지는거 아닙니까?"
"......."
솔직히 건물이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를 물으면 당연히 후자다. 그렇지만 백리는 손해를 감수하고 나섰다.
다음이라는 기약없는 미래로 넘기겠지만 최소한 또 이런일이 일어난다면 백리는 다시금 라쿤맨 2호로 나설게 뻔하다.
"아, 변신 벨트 돌려드릴께요"
"일단 가지고 계십시오. 가끔 가다가 수리나 개조만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하지만 이거 비싸지 않아요?! 함부로 막 넘겨줄 물건은 아닌것 같은데!"
"비싼 물건이긴 하지만 기능이 비싼게 아니라 동력원이 비싼겁니다. 영혼에서 얻은 영자가 아니라 자연적인 영자로 만든 소울 드라이버는 시세가 장난 아닙니다. 그러니 다른건 몰라도 동력원만큼은 확보하십시오"
"......이거 크기도 있지 않아요? 주머니에 넣을 수도 없고, 벨트로 차고 다니기에는 너무 눈에 띄는데"
시온은 백리에게서 변신 벨트를 받아 그의 왼손목 위에 올리고 다시금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벨트가 축소되면서 손목시계 형태로 변했다.
"와! 쩐다!"
"변신 할 때는 여기 시계 테두리 부분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원래대로 돌아 갈겁니다"
"생각외로 기능이 많네요 이거"
"개쩔지 않습니까? 자질구레한 기능을 넣느라 무기 하나 더 넣을 수 있는 용량을 날려먹은건 자랑입니다"
"아니, 무기를 넣어요 차라리!"
그때, 시온의 전화가 진동을 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에 떠오른 이름은 당연하게도 최악이였다.
[어, 거기도 끝났지? 여기 CIA 아저씨한테 들었어. 백리는 괜찮아?]
"괜찮습니다. 그쪽은 어떻습니까?"
[여기도 잘 끝났어. 오늘 내로 돌아가기는 힘들것 같고, 하루 이틀 안으로는 갈 수 있을것 같아]
대부분 안부 인사였지만 간간히 정보를 교환하고 전화를 끊었다.
시온이 조금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워낙 무표정한 얼굴이여서 알아보기 힘들지만 미간을 찌푸리고 뭔가 생각하는 모습은 잘 모르는 백리라도 뭔가 있다는 사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왜 그래요, 형수님?"
"생각 외로 사태가 심각한것 같습니다"
"어? 뭐가요? 적성종은 다 잘 잡은거 아니예요?"
"잡기는 다 잡았습니다만......"
시온은 슬쩍 일본과 중국 쪽의 정보도 뒤져 보았다. 두 나라도 피해는 있지만 무사히 적성종을 격퇴했다. 다만 일본의 마스터 유저인 히비키는 의식불명 상태다.
그녀가 파악하려는건 전투의 승패가 아니라 거기서 출현한 인간형 적성종의 정보다.
"한국에 출현한 인간형 적성종은, 원거리 전투 중시형이였습니다"
"어......그런데요?"
"그리고 한국의 마스터 유저인 이경진씨는 원거리 공격에 취약했습니다"
"........"
최악에게서 들은 미국의 인간형 적성종도 똑같다.
"미국에 출현한 것은 근거리 전투 특화. 하지만 미국의 마스터 유저는 원거리 특화라 거리를 두지 못하면 전투력이 반감됩니다"
"두번까지는 우연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일본에 출현한 것도 스피드 특화로, 탱커 기질이 강한 히비키씨와는 상성이 나쁩니다"
"어......?"
거기까지 가면 좀 이상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에 나타난건 내구력, 그 중에서도 타격 방어 특화. 중국의 마스터 유저는 대체적으로 올라운더지만 맨손 격투가이기 때문에 이경진씨라면 고전하지 않았을 정도지만 그녀는 겨우 잡았습니다"
"거기까지 가면 노골적인데요"
"예, 분명 뭔가 있습니다"
혹자는 차원진과 적성종을 두고 다른 차원의 괴물들이 넘어오는게 아니냐는 말이 있다.
하지만 이번 일로 확실해졌다.
상대는 명백한 악의와 이쪽 세계의 정보를 가지고 넘어오는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