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화 〉[라쿤맨 비기닝]
명동의 차원진은 마무리가 되었다. 아무래도 다른 나라보다는 열린 차원진의 갯수도 적고 비교적 작은 나라다 보니 출현하는 적성종의 숫자도 적었다.
아직 용산동 쪽의 차원진이 남아 있지만 거기는 마스터 유저인 이경진이 가 있었다. 적어도 여기보단 더 안심되는 곳이다.
가게가 있는 명동은 구했으니 돌아가려던 백리는 촬영을 하던 기자들에게 붙잡혀 인터뷰를 하고......아니, 당하고 있었다.
"라쿤맨! 그 히어로 수트는 뭔가요? 마스크 외에도 그런 수트를 만들 설비가 있는건가요?"
"백화점 화재 사건과 부산에서 참치를 가지고 활동했던 라쿤맨이 맞으신건가요? 아니면 다른 인물인가요?"
"그 수트에는 적성종에게도 통하는 무기를 탑재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기술을 공개할 생각이 없습니까?"
"지금 미국에서 나타난 라쿤맨과 무슨 사이입니까?"
"어, 어....."
"라쿤맨! 라쿤맨!!"
무력적으로 보면 뭘 봐도 백리가 위지만 특종을 찾아 몰려오는 기자들의 기세는 무서웠다. 날아서 도망치려고 했다간 붙잡고 같이 딸려올 것 같은 수준이다.
[도망치면 되지 않습니까?]
"저도 그러고야 싶죠.....!"
정작 그 당사자가 되면 도망치기 뭐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시온이나 최악이라면 쌩까고 가겠지만 백리는 소시민 마인드기 때문에 무시하기에는 사람이 너무 좋다.
"어, 어.....일단 한명씩 질문해 주세요. 몇개만 대답해 드릴께요"
"라쿤맨! 평소랑은 다르게 마스크가 아니라 전신 수트를 입고 왔는데. 현재 미국에서 소재를 확인한 라쿤맨이 여태까지 활동했던 라쿤맨이고 당신은 다른 라쿤맨인가요?"
"아, 네. 맞아요, 저는 2호예요"
"수트의 기능을 알려주십시오! 방금 전에 소형인데도 불구하고 비행은 물론이고 적성종에게도 유효한 무기를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입니까?"
"아, 그것도 맞긴 맞아요"
[사실 비행 기능이랑 보이드 시스템 외에는 별 기능 없습니다. 좀 더 기능을 추가하려면 마찬가지로 수트의 크기가 좀 더 커져야 합니다]
만약 정말로 수퍼히어로 수트를 만드려면 가장 중요한건 동력원이다. 비행과 무기까지 사용 가능할 정도의 출력을 내면서 인간이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소형의 동력원은 현 지구의 기술력으로 만들 수 없다.
시온도 그 부분은 상당히 귀찮다. 순수 과학 기술로 만들기에는 빡세서 영자(靈子)를 사용한 반영구 무한동력원인 소울 드라이버(Soul Driver)를 만들어 수트에 탑재했다.
백리가 변신 하기 전에 찼던 벨트가 그 동력원이다.
하지만 동력원이 확보 되어도 인간 크기에 탑재 가능한 무기는 상당히 적다. 아공간 설비라도 하나 설치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그러면 폼이 안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화기가 먹히지 않는 적성종에게 효과적인 무기를 만들었다는 소리입니까?"
"......그것도 맞는데요"
"그 기술을 공개할 생각은요? 이번 일 처럼 적성종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 기술을 공개해서 피해자를 줄여야 하겠다는 생각은 안드십니까?"
"어......."
백리는 말문이 막혔다. 확실히, 보이드 블래스터나 블레이드 기술이 상용화 된다면 적성종 퇴치에 유효할 것이다. 멀리 갈 필요 없이 군대만으로도 적성종을 잡는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좀 무례하게 질문한 기자에 대한 분노보단 적성종에 의한 희생자들을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백리를 정신차리게 해주는건 시온이였다.
[이래서 사람들은 등신입니다. 이 나라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경제적으로 나아졌을지는 몰라도 정신적 성숙은 덜된걸 모른답니까? 기술을 뿌리는건 쉬울지도 모르지만 그 여파를 생각하면 장난 아닙니다. 일단 제가 반도체 기술 몇개만 뿌려도 컴퓨터 회사 절반은 망할텐데 실업자 문제는 어떻게 합니까?]
"........"
[저런 기자랑 상종할 필요 없습니다. 기술 뿌려서 실업자 문제를 책임질 수 있냐고 하면 지가 뭐 어쩔겁니까?]
시온은 인간의 문명 발전을 긍정한다. 설령 핵폭탄을 만들어 핵전쟁으로 멸망한다 할지라도 인간의 발전을 긍정한다.
인간은 발전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한다.
지금으로부터 몇백년 전만 하더라도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지 논쟁했지만 지금은 누구나 태양을 중심으로 행성들이 도는걸 안다.
지식이란건 스스로 깨우쳐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대가 없이 알려줘서 얻는 지식에는 무게가 없다.
그 덕분에 한번 인간에게 실망한 적 있는 시온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라쿤맨씨! 기술 공개를 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그 때문에 망하는 회사의 실업자들을 당신이 책임질 수 있다면요"
"......."
사람은 이기적이다. 말로는 공익을 위한다면서 정작 책임을 회피한다. 그걸 들이댄다면 입 다물게 만드는건 쉽다.
순순히 대답해주는 백리의 행동에 기자들이 만만하게 보고 더 몰려올 무렵, 포스 유저들이 다가와 중재해 주었다. 일단 인근에는 적성종 사체를 비롯한 차원진 현장이니 민간인의 안전을 위한다는 이유로 기자들을 물렸다.
"라쿤맨! 이쪽입니다!"
"어.....누구세요?"
백리의 위치는 애매했다. 일단 수트를 입고 있어서 포스 유저인건 드러나지 않았지만 라쿤맨이기는 해도 이미 1호인 최악은 미국에서 활동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럼으로 여기에 있는 라쿤맨은 그와는 다른 사람인게 분명하다.
라쿤맨 대책반도 백리를 잡기에는 애매하다. 라쿤맨은 어디까지나 미등록 포스 유저여서 잡으려는 이유가 반이지 수트 입고 다니는 수퍼 히어로 잡는게 일이 아니다.
그리고 현장의 포스 유저나 군인들도 그를 잡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대참사가 일어날뻔한 상황을 도와주었으니 적어도 이번 현장에서 만큼은 못본척 넘어가줄 생각이였다.
"조인형 팀장이라고 합니다......보아하니 백리 학생인 모양이죠?"
"어? 어어?!"
"괜찮습니다. 최악씨랑 알고 있는 사이니까요"
조 팀장이 일부러 나서서 정리역으로 나섰다. 이미 최악의 주변을 조사한 적 있고 특성도 그런 계통으로 발휘된 그는 한눈에 백리를 알아보았다.
전에 백화점 화재 사건 당시 TV에도 나오고 치킨집에서도 일하던 모습을 몇번 봤기 때문이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악씨가 없어서 저희들만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였는데 큰 도움이 됐습니다"
"아뇨, 저도 이유 없이 도운건 아니니까요"
반은 직장인 치킨집과 인근 지인들의 가게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것이다. 나머지 반은 그의 양심 덕분이고.
백리는 그의 감사 인사를 받으며 손사래를 쳤다. 대부분 시온이 준 수트 덕분이다. 만약 이게 없었으면 백리는 초대형은 커녕 중형 적성종 한마리에도 쩔쩔매다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수트는......"
"형수님이 주셨어요"
"......그렇군요"
조 팀장은 속으로 오싹한 느낌이 지나갔다. 전에 처음으로 최악의 집을 방문한 뒤로, 쥐도새도 모르게 삭제된 라쿤맨 조사자료를 보고 혹시나 싶었다.
그리고 쉬쉬해도 난데없이 날아온 메일에 담긴 최신형 차원진 감지기와 라쿤걸이란 이름을 보고 반신반의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에서야 확신했다. 라쿤걸은 시온이며 그녀가 가진 기술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걸.
"논란의 중심이 될겁니다. 적성종이 여태까지 두려움의 대상이였던건 현 사회가 쌓아온 기본적인 군사력과 무기가 듣질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성종에게도 효과적인 무기가 생긴다면......"
"사회의 구조가 바뀔지도 모르죠. 저도 그쯤은 알아요"
시온이 준게 얼마나 대단한건지 백리도 잘 안다. 풋내기 포스 유저인 그도 혼자서라면 마스터 유저나 겨우 죽일 수 있는 초대형 적성종을 쓰러트렸다. 더군다나 탑재된 무기또한 상식을 초월했다. 공간진이라니, 공간이란 개념을 다룬다는 의미 아닌가?
괜히 영화에서 정부가 수퍼 히어로의 수트를 빼앗으려고 한게 아니다. 그만한 기술력의 결정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그대로 돌아가실겁니까? 아니면......"
"일단 가려고요. 여기서 한 일도 문제가 될테니까 기왕이면 최소한으로 저지르는게 낫죠"
"아직 용산동의 차원진이 닫히지 않았습니다"
".......아직도요?"
백리는 의문을 표했다. 수트빨을 받긴 했지만 자신도 차원진 하나를 처리했다. 용산동의 차원진은 마스터 유저인 이경진이 가 있다.
일대 다수의 전투라면 조작 특성을 이용해 천검(千劍)이라 불릴 정도로 능숙한 사람이 아직도 싸우고 있다고?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만약 여타 다른 차원진과 같았다면 엘리사 니어가 예지하지도 않았겠죠. 혹시 모르니 용산동 쪽도 한번 봐주시겠습니까? 만약 평범하게 끝난다면 그냥 무시하고 돌아가셔도 됩니다"
"음.....알았어요"
착한 사람의 장점은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단점도 똑같이 남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는 점이고.
자기가 손해를 보더라도 그게 타당한 부탁이라면 들어주는게 백리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일단 가볼께요, 하지만 별일 없을 것 같......"
[아, 그거 플래그입니다. 망했습니다. 마치 해치웠나?! 같은 노골적인 플래그라서 우린 망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그 대사를 하는겁니까?]
"예?!"
콰아아앙!!!
저 멀리서 들려오는 폭음의 진동이 발 아래로 그들이 있는 곳까지 닿는다.
붉은 화마가 일어나는 모습은 흡사 지옥이 솟아난듯한 모습이였다.
[패턴 청! 사도입니다!]
"네?! 진짜요?! 아, 씨 망했다! 수트보다 거대로봇이 필요할텐데!"
[농담입니다. 그냥 이 대사 한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지금 장난할 때예요?!"
백리는 급하게 날아오르며 화마가 일어난 곳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 * * *
용산동에 발생한 차원진은 비교적 안전하게 흘러갔다. 차원진이 일어난 곳도 민가가 드문 평지였으며 덕분에 민간인이나 재산 피해를 신경쓰지 않고 집중포화로 시간을 끌 수 있었다. 더군다나 마스터 유저인 이경진이 있었기 때문에 초대형 적성종이 한마리 나왔어도 시간을 끌어 포스 융합 현상을 끝내고 다함께 협공해 큰 희생없이 쓰러트릴 수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경진씨! 거의 소강 상태로 들어가니까 이제 조금 쉬십쇼! 나머진 저희가 하겠습니다"
"아니, 아직일세. 뭔가 남아 있어"
"예? 하지만 초대형 적성종도 처리했고, 더 큰놈이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습니다"
전투가 끝에 다다르고 있어도 이경진은 검을 갈무리하지 않았다. 오히려 쥔 검에 예기를 더하며 대비하고 있었다.
그는 직접 전장에서 검 하나 들고 구르던 시절부터 감을 갈고 닦았다. 주관식 포함해서 찍어도 수능 1등급은 문제없을 수준의 최악의 감보단 아니지만 그의 육감은 아직도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남은 적성종이 소형 두어마리였을 때. 놈은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키잉!
"어? 소형 한마리 더 넘어왔는데?"
"한마리 정도면 포스 융합 현상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 수준에서 잡을 수 있잖아. 조금만 마무리 하자"
가벼운 마음으로 놈에게 다가서는 포스 유저 한팀을 보고 이경진이 급하게 검을 하나 날려 막으려고 했지만 한발 늦었다.
"안돼! 멈춰!!"
"네? 겨우 소형 한마리 가지고 뭘......"
놈은 인간과 비슷한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팔과 다리가 달리고 머리가 있다. 괴상한 갑옷을 입은 인간같은 외견이기에 그나마 특이한 소형 적성종으로 보인다.
하지만 녀석의 머리에는 눈이 하나밖에 달려있지 않았다. 칙칙한 녹색 눈동자 하나가 투구 같은 머리에서 데구르르 움직이면서 접근하는 포스 유저팀을 노려보았다.
지이잉!!!
놈의 눈에서 뿜어진 광선이 그들을 덮쳤다. 간발의 차로 이경진의 검이 놈의 어께를 스쳐지나갔지만 때가 늦었다.
단 한번의 공격으로 광선의 직선상에 있던 모든게 소멸되었다. 포스 유저팀을 비롯해서 그 뒤에 있던 전차 수대, 그리고 군인 십수명에 작전 본부까지 싹 다.
사정거리는 최소 수백미터에서 1킬로미터 정도로 보인다. 거리 하나를 초토화시킬법한 괴물은 다시금 녹색 눈을 데구르르 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이어서 뭔가 가스 배관이라도 터트렸는지 폭발이 일어난다. 불길이 사방으로 번지고 지옥도가 펼쳐진다.
"이 자식!!!"
이경진은 분노하며 검을 들고 돌진했다. 아까 전보단 위력이 덜하지만 충분히 살상력 있는 빔이 연달아 쏘아진다. 그는 자신의 포스를 깃들인 검을 3자루 가량 겹치고 앞세워서 방패마냥 막으며 나아갔다.
놈의 빔은 위력이 약해졌어도 무서울 정도의 파괴력이 담겨 있었다. 얼마 나아가지 않아 방패 삼았던 검들은 광선에 휘말려 가루가 되어 바스라졌다.
"큭!!"
그가 주춤한 틈을 타서 인간형 적성종은 거리를 벌렸다. 마치 중력을 무시한듯 허공에 떠오르고 빠르게 비행해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지상을 향해 무차별 포격을 날려댔다.
지이이잉!!
"이 자식이! 내가 날지 못할줄 아나! 천만에!"
이경진은 검 한자루를 밟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무협소설에서나 볼법한 어검비행(御劍飛行)이였다. 그리고 빠르게 놈과 거리를 좁히고 검을 휘둘렀다.
[킥!!]
마치 그를 비웃듯, 인간형 적성종은 재빠르게 피하여 다시금 거리를 벌렸다. 비행 속도 자체도, 기술도 놈이 위다. 애초에 이경진의 특기는 근접전이지 이런 비행 전투가 아니다.
검을 날려도 그건 자기보다 약한 소,중형 적성종에게나 효과가 있지 저놈에게는 잘해야 견제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접근전을 할 때의 이야기고 이렇게 거리를 두고 농락한다면 공군 병력 없이 이경진 혼자서 잡기는 어렵다.
"어쩐지 불길하더니......!"
놈이 눈에서 발사하는 광선의 파괴력은 마치 이 세상의 존재를 부정하듯 일직선상에 있는 것들을 소멸시킨다. 한번만 쏴도 십수명의 목숨이 날아간다.
이경진은 최대한 피해를 막기 위해 시간을 끌기로 했다. 한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놈은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하늘로 올라왔다.
적성종에게 폭격을 가하지 못하는 이유는 인구밀도가 높은 지대에 출현해 민간인과 재산 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현 시대에도 우연히 시골 깡촌 논밭 같은 곳에 출현하는 적성종은 규모 여부에 따라 폭격을 가하기도 한다. 그 편이 솔직히 더 편하다.
하늘은 놈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필드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지상으로 떨어지는 공격만 막아내면 공군의 폭격으로 집중 포화가 가능한 공간이다.
"여기는 미르! 공군 지원을 요청한다! 최대한 빨리!"
[보고는 받았다! 지금 출동했으니 잠시만 버텨달라!]
"시간 없어! 오면 바로 공격해!"
이경진의 이명은 천검이지만. 실제로 그가 들고 다니는 검의 갯수는 천개는 커녕 50자루 정도다. 단순하게 움직이는 정도라면 천개도 가능하지만 전투에 돌입하면 전투력이 유지되는 선에서 조작 가능한 검의 갯수는 그 정도다.
포스를 불어넣은 검을 놈의 광선을 막는데 사용했다. 기껏해야 한두번 막으면 부서져서 더는 쓸 수 없지만 지금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파공음이 들리며 전투기 5대가 날아왔다.
[치익, 미르. 여기는......]
"딴소린 됐으니까 쏘라고!!!"
검도 이제 들고 있는걸 포함해 두 자루 밖에 남지 않았다. 마스터 유저라고 가이아 포스 전도율이 높은 특수 합금으로 만든 검을 대부분 날려먹었다. 전부 놈의 광선이 피해를 일으키는걸 막기 위해서다.
키이잉!!!
멀리서 날아오는 전투기를 보자 놈이 눈을 빛냈다. 칙칙한 녹색 눈동자의 동공이 축소되며 눈에 보일 정도의 라프 에너지가 응축된다.
이경진이 생각한 놈의 광선의 위력의 기준은 처음 등장했을 때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력이 아니라면?
사정거리도 수 킬로미터에 육박하는 괴물같은 수준이라면?
"이런.....!!!"
그는 검을 들었다. 광선이 쏘아질 때까지 기껏해야 2초. 무얼 해도 늦었다.
하지만 이경진은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단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 검을 쥐었다.
'회색이 의미하는건 호승심. 가진 특성은 '증폭'이지. 알아둬.'
라쿤맨과의 일전 이후 그가 알려준 것이 있었다. 필살기로 사용했던 회색공명검. 그것을 끌어낸다.
만약 그를 만나기 전이였다면 이렇게 한순간에 끌어올릴 생각은 못했을 것이다. 그가 알려준 말이 힌트가 되었다. 회색이 의미하는건 호승심이라고.
지금 이 순간에도 놈을 이기고 싶은 마음을 끌어올린다. 오로지 그 생각만을 하면서 마음을 일으켰다.
우웅!
그의 검에 회색빛이 넘실거리며 검을 뒤덮었다.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놈의 공격을 완전히 받아칠만큼 완전하게 시전할 수 있겠지만 시간이 촉박했다.
그런 불완전하고 부족한 회색공명검을 휘두른다!!
콰가아아아아!!!!
마치 공간이 찢기는 듯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인간형 적성종이 뿜어낸 광선은 회색공명검과 충돌해 반으로 갈라져 부채꼴 같이 양쪽으로 갈라져 쏘아졌다.
덕분에 전투기들은 일격에 소멸되지는 않았지만 광선의 여파에 휘말려 본래 목적을 시행할 수 없게 되었다.
광선에 스친 기체는 지상으로 추락했지만 조종사는 탈출했고, 그 외의 전투기는 전자적인 오류가 생겨 비상착륙을 시도했다. 더 이상 공군 병력에 의존하는건 무리일듯 싶다.
"젠장.....!"
다른 지원 없이 놈을 혼자 상대하려면 승산은 반반이다. 하필이면 원거리 전투형여서.....
만약 근접 전투형이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리 강해도 회색공명검만 펼칠 시간이 주어진다면 반드시 죽일 자신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항상 거리를 두고 광선을 쏘아대는 놈은 그와 상성이 나빴다.
이경진에게 원거리 공격 수단은 검을 날리는 정도지만 지금은 검은 들고 있는걸 제외하고 한자루 밖에 남지 않았고. 치명상을 주려면 회색공명검을 사용해야 하는데 양손으로 잡고 집중해야 겨우 쓸 수 있는 기술을 원거리 조작을 하면서 사용할 수 있을리 없다.
목숨을 걸고 접근해 어떻게든 승부를 겨뤄야 생각하던 찰나.
"라이더어어어! 보이드 블래스터 키이이이이익!!!"
중력을 무시한 속도와 자세로 놈의 등에 발차기를 날리며 라쿤 가면을 쓴 괴인이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