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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6화 〉[라쿤맨 비기닝] (66/507)



〈 66화 〉[라쿤맨 비기닝]

잠깐 방공호에서 일을 끝내고 지상으로 나온 나는, 아까 조진 초대형 적성종과 비슷한 모습의 다른 녀석이 활개치는 모습을 보았다.

아까 그놈보다  더 작긴 하지만 훨씬 날렵해 보인다. 네발로 쿵쿵거리면서 신체의 압도적인 질량으로 깔아 뭉게다가 슬슬 포스 융합 시간이 되어서 역공을 당하고 있는 놈은 이윽고 인근 건물을 휘감으며 올라갔다.

"뭐지?! 이 새끼 폼이 어디서 봤는데? 너 이 새끼 심 감독이 보내드냐!!!"

건물이 무너지면 대참사가 이만저만 아니고 그 충격으로 방공호까지 영향이 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나는 빠르게 달려 놈을 뒤쫒았다.

고층 빌딩에 마치 꽈베기마냥 베베꼬아가면서 올라가는 녀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건물 꼭대기까지 올라갔고. 거기서 놈은 아가리를 벌리고 뭔가를 뿜어내기 위해 입을 벌리고 숨을 들이쉬었다


"입냄새 난다고 새꺄!!!"

콰앙!!!

나는 땅을 박차고 올라 놈의 턱주가리를 힘차게 걷어찼다. 그러자 입에서 나오려던 뜨거운 빛이 그대로 입안에서 터졌다.


그나마 약간 열린 입으로 사방으로 폭사된 섬광은 사방에 흩뿌려지면서 주변 다른 건물들을 불태우고 박살냈다. 살짝 스쳐지나간 빛이 사선으로 그은 자국을 따라 건물 상부가 흘러내리는걸 보면 제대로 브레스를 뿜었을 때 확실히 대참사가 벌어졌을 것이다.


놈에게 한방 먹여서 얼떨떨한 틈에 지상으로 착지한 나는 아까 봤던 중령 아저씨가 흙먼지 가득 묻은 얼굴로 반겨주는게 보였다.

"라쿤맨! 아까 도망친 초대형 적성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F로 시작해서 UCK로 끝나는걸 먹여줬지!"


"훌륭하군요! 가능하시다면 저놈도 똑같이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다면 아까 봐둔게 하나 있지!!!


나는 녀석이 정신 차리기 전에 주변에서 얼핏 스쳐지나갔던 붉은색 차량을 발견했다.

쿠웅!


역장을 두른 내 몸은 내 의지가 받쳐준다면 별이라도 들어올릴  있다. 겨우 차 한대 정도야 손쉽다.

다른 차보다 크긴 하지만  차이는 없었다. 나는 차량을  채로 뛰어올라서 건물을 휘감은 초대형 적성종의 면상에 들어올린 차량을 내던졌다.

"소방차(Fire truck)다!!!"

[쿠워어어어!!!]

F로 시작해서 UCK로 끝나는건 맞잖아! 똑같잖아!!

나는 그대로 소방차까지 통째로 놈의 얼굴을 짓뭉겠다. 놈은 괴성을 지르면서 고통을 호소했지만 건물을 휘감은 몸뚱아리는 더 조이기만 할뿐 지상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포격해! 라쿤맨을 지원하라!"


지상에서는 날 도우려는건지 놈의 몸뚱이에 집중포화를 날리고 있었다. 크게 도움 되지는 않았지만 주의를 돌리는 것만 생각한다면 충분히 효과가 있었다.


"아까 그놈보다는 좀 단단한데?"


몇대 쳤는데 와닿는 느낌이 없었다. 크게 데미지가 들어가는 것 같지는 않고, 그냥 주먹으로 후려갈궈서 죽이려면 아까 방공호쪽에서 죽인 놈보단 훨씬  많이 쳐야 할것 같다.

슬슬 기술이라도 하나 쓸까 생각하다가 멀리서 헬기 소리 하나가 들려왔다.

특이하게도 군용 특유의 얼룩 무늬가 아니라 단색이였으며, 몸통 부분에 번개를 상징화한 지그제그 형태의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중령님! 썬더볼트가 오고 있습니다!"


"센트럴 파크 쪽에서 일을 끝내고 왔나!? 다행이군!!"

두두두두!!


헬기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근처까지 다가온 헬기는 문을 열어 재끼고 안에 있던 남자가 이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

여기서 대충 봐서 잘은 모르겠지만 총기 자체도 평범하진 않았다. 원종 처리팀이 특수 총기를 사용하는 것처럼 포스 유저라면 훨씬 더 맞춤 제작의 특수 총기를 사용하는게 이상할건 아니다.

타앙! 하는 격발음이 들렸다. 그리고 동시에 초대형 적성종의  하나가 터져나가면서 사방으로 격렬한 뇌전이 방사되었다.

탄의 위력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뇌전의 위력이 장난 아니였다. 그 작은 탄 한발의 여파만으로 놈이 휘감고 있던 건물의 5층 가량이 뇌전에 지져지고 유리와 금속이 녹아내린 모습이 보인다.

직격도 아니였는데 저 정도라니......총 쓴다고 해서 약간 무시하는 느낌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정도 위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쿠아아아아! 쿠악!!!]

눈 하나가 날아간 초대형 적성종은 괴성을 질렀다. 고통에 발버둥치면서 조금이나마 건물을 휘감던 힘이 약해졌을 때, 나는 놈의 발과 몸뚱이에 주먹을 날려 후려쳤다.


"이제 애꾸가 됐네? 야 이 새끼 관심법 좀 쓰겠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게?"


콰아아앙!

"니 조질 생각!!!"


쿠구구구구!!!

몇대 후려치자 놈은 건물을 휘감던 몸뚱이가 지상으로 떨어졌다. 육중하다 못해 거대한 몸이 떨어지면서 지상의 도로가 흔적도 남지 않을 정도로 큰 충격이 일어났다.

미리 거리를 두고 있어서 따로 군대의 피해는 나지 않았다. 오히려 전차들은 포신을 내리고 남은 포스 유저들이 원거리 공격을 날리는 등 다시금 집중 포화가 쏟아져 내렸다.

저 위의 번개문양 헬기도 마찬가지였다. 다시금 총구를 놈에게 겨눈 그는 이번에는 연발인지 마구잡이로 놈을 향해 탄을 쏟아냈다. 흡사 게틀링건이 아닌가 싶을 정도의 연사는 자동소총 수준으로는 비교가 안될만큼의 탄막을 쏟아부었다.

사방으로 전격이 방전된다. 아까보다는 위력이 덜하지만 쏟아낸 모든 탄들은 고층빌딩 하나를 흔적도 남기지 않을만큼의 화력 하나만큼은 나도 인정할법한 위력이 있었다.

내가 만난 마스터 유저는 여태까지 저 썬더볼트를 포함해서. 일본의 히비키, 한국의 이경진, 이렇게 세명이다.

포지션을 생각하면 히비키는 탱커고 이경진도 딜러, 썬더볼트도 딜러다. 하지만 이경진과 썬더볼트를 비교하면......화력 자체는 썬더볼트가 위다.


물론 이경진의 회색공명검을 생각하면 경지의 차이는 다르지만 나름의 장점은 있는 법이다.

이경진은 천검이라는 이명답게 여러개의 검을 조작해서 일대 다수의 전투에 효과적이지만 썬더볼트는 무식한 화력을 이용해서 이런 대형 적성종을 상대할 때 효과적이다.

기껏해야 손가락만한 총탄 하나로 어지간한 미사일급의 위력을  수 있다면 화력만으로는 손꼽힐거다.


이윽고 거의 1분 동안 잔탄 생각안하고 쏘아내던 화력이 멈추었다. 흙먼지가 가라앉자 익은 살점이 드러나 혀를 빼물고 죽어 있는 초대형 적성종의 모습이 있었다.

놈이 죽은걸 확인하자 군인들과 포스 유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자신들의 승리를 자축했다.


"이게 진짜 미국의 화력이지! 누가 진짜 남자냐!"


"썬더볼트! 썬더볼트!"

"라쿤맨! 여기요!"

나는 지상으로 내려갔다. 마찬가지로 헬기에서 누군가가 뛰어내려 지상에 착지했다.

흡사 게임에서나 나올법한.....빅 퍼킹 건이라도 든건지 형태도 구경도 상당히 커보이는 총을 든 훤칠한 백인 남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음, 당신, 라쿤맨 이다?"


"영어로 해. 영어 할 줄 아니까"

"이런, 한국어 번역기 돌린 의미가 없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그는 가볍게 내 어께를 쳤다.

"제이콥 볼드윈이라고 하지. 만나서 반갑네, 라쿤맨"

"어디갔다가 이제와? 다른데 처리하다 왔나?"


"그래, 일단 오던 도중에 센트럴 파크에 있던 놈을 처리하고 왔지"


"퀸즈랑 브루클린, 브룽스에 나타난건?"


"아, 거기까지 파악했나? 나머지에서는 자잘한 것만 나왔어. 대형에서 초대형이 나온 차원진만 내가 맡기로 했지"

나머지는 죄다 소형, 아니면 중형의 적성종인 모양이다. 그 수준이라면 여타 포스 유저와 미군의 협력이 있다면 충분히 격퇴가 가능한 수준이다.


"한국의 포스 유저가 여기까지 올줄은 몰랐군. 한국은 어쩌고 왔나?"


"거기야 이경진 아저씨가 어떻게든 하겠지. 나는 여기가 신경쓰여서"

"그게 무슨 소리지?"

나는 조금 의문과 함께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적성종은 아직 중형 한마리와 소형 몇마리가 남아 있었지만 거의 소강 상태에 들어가는 중이였다.


내가 몇방 주먹을 날려 중형을 즉사시키자 상황은 금새 끝날 정도였다.


초대형 적성종이 두마리나 나올 정도기는 하지만 그 정도 수준으로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기에는 부족했다. 만약 지금 시대가 20년 전의 포스 유저가 등장하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충분히 뉴욕은 물론 미국을 통째로 엎을 수 있는 병력이였다.


내 주먹도 제대로 안들어가는데 화기로 놈을 죽이려면 핵이라도 떨궈야 할거다. 그러면 결국 미국이 망하는건 매한가지다.

"센트럴 파크 쪽은 어땠어?"


"대형이 세마리 나오더군. 많긴 했지만 별건 아니였어"


"수준은?"


".....대형치고는 보기 드물긴 했지"


전체적으로 수준이 올랐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문득, 나는 아직 열려 있는 차원의 틈새를 보았다.


"저거 왜 아직 안닫혀 있지?"

"어?"


아직도 열린 차원의 틈새는 반투명한 육각 파편들이 흩날리고 있었다.

저기 보이는 그 파편들은 차원을 이루는 가장 최소단위다. 저걸 모아서 작게 이어붙이고 약간 특수한 자극을 주면 초월자도 꺼리는 최상위 방어벽인 차원 차단을 쓸 수 있다.

하지만 쉽게 그러지 않는건 파편들은 자연적인 수복 능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걸 강제로 뜯어내서 따로 특수 처리를 해야한다.

그래, 자연 수복 능력이 있다. 요컨데 차원진이 일어나고 적성종이 쳐들어오는 것 자체는 인위적인 일이지만 차원진이 수복되는건 자연적인 일이다.

만약, 저게 아직도 열려 있다면 마찬가지로 가해지는 힘이 있다는 소리다.

초월자라면 차원을 찢는건 힘 좀 들이면 가능하지만 만약 기술력을 응용한 일이면 에너지던, 자원이던 소모가 장난 아니다.


만약 저게 아직도 열려있다는 소리는.


"아직  나올게 있다는 소리지!"


나는 차원의 틈새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살며시, 뭔가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칙칙한 녹색의 안광을 빛내는 괴물은 인간을 닮아 있었다.


물론 인간이란 소리는 아니다. 공통점을 찾다면 다리 두개, 팔 두개, 머리가 달려있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인간보단 동물을 닮아 있었던 적성종의 종류를 생각해보면 놈은 새로운 형태였다.


놈은 딱 한마리였다. 초대형 적성종도 두마리는 왔는데 녀석은  한마리만, 그것도 상황이 마무리 되어서 아군이 다 쓸려나간 뒤에야 나타났다.

"야, 제이콥"

"What?"


"넌 다른 병력이랑 같이 피해. 천천히 뒤로 물러나는게 좋을거야"


놈은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칙칙한 녹색 안광에서는 옅긴 하지만 지성이 보였다.

적성종은 대부분 본능에 움직이는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상대하기 편했지만 이제부터는 어려워질것 같다는 느낌이 무진장 들었다.

썬더볼트, 제이콥 볼드윈은 나와 차원의 틈새에서 나온 적성종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돕는게 낫지 않나?"

"내가 물러나라 할때 물러나라 좀"


내가 앞으로 나섬과 동시에 녀석이 달려들었다. 놈은 어디서 가져온건지 몰라도 창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그 끝에는 붉은색 광석으로 이루어진 흉흉한 창날이 달려 있었다.

콰아아아!!


역장을 한층 강화해서 놈의 창을 막아냈다. 한번의 충돌로 인근의 땅에 크레이터가 파일 정도로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아니,  더 다르다. 여태까지 적성종들은 최소한 이능을 품긴 했어도 생물의 범주 안에 들어가 있었다.

놈은 조금이나마 '개념'에 간섭하여 다룰 수 있는 놈이다. 그리고 이쪽에서는 그런 존재를  단어로 칭한다.

초월자.


크든 작든 무언가의 개념 자체에 손을 뻗어 다룰 수 있다면 그 시점부터 초월자라고 부른다. 그게 최소한의 기준이다.

놈은 물리법칙을 무시한 순간 급가속으로 나를 밀어붙였다. 보통 제로백이라고 하면 100킬로미터까지 가속에 필요한 시간을 뜻하지만 놈은 그런게 없었다.

정지 상태에서 단숨에 음속을 돌파해 소닉붐을 일으키며 인근 전차 두어대를 뒤집어 반으로 잘라버리고 나를 급습해 창을 휘둘러 머리를 내려찍으려 들었다.

적성종은 여태껏 괴상한 형태를 통해서 공격을 했어도 결국에는 생물의 한계에 묶여 있었다.

최소한 중력을 거부하고 정지 상태에서 마하로 움직이고 그러진 않았다. 만약 그랬다면 적성종은 진작에 지구를 멸망으로 몰아 넣었겠지.


기껏해야 괴물 정도 수준으로 생각하고 적성종들을 생각했던 나는 처음으로 장난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로 했다.

"얼른 도망쳐! 5초만에 뒈지기 싫으면!"


예진이가 보았던,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원흉이 바로 이 녀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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