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예진이가 우리 집에 온지도 벌써 거의 일주일이 되어간다. 3일 뒤에는 등교할테니 아직까지는 마음 놓고 놀라고 해줬다.
"우쭈쭈, 댕댕아. 물어와!"
"왕!"
"저게 여우야, 개야. 고양이야? 종 정체성을 모르겠네"
"댕댕이의 종은 댕댕이입니다"
"개라는거야 뭐야"
앞마당에서 댕댕이와 놀아주는 예진이는 실험실에서 있었던 일을 한결 떨쳐버린듯 하다.
생각해보면 정신력이 남다른 것 같다. 보통 사람이라면 아무리 포스 유저라도 가둬놓고 실험만 주구장창 하는 희망없는 상황에서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다니. 멘탈은 튼튼할지도 모른다.
"아, 사실 누군가 구해줄거라고 생각해서 버티고 있었던거예요. 약물 같은것도 정신이 몽롱해지는걸 자주 써서 그냥 포기할까 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는데. 그래도 어떻게든 버텼어요"
"운 정말 좋네. 내가 안왔으면 어떻게 거기서 탈출을 했......"
잠깐만, 예진이는 예지능력 각성자잖아?
그렇다는건 내가 올거라는 것도 자세하게는 몰라도 본능적으로는 알고 있었다는건가?
아직 다듬지 않았는데 본능적으로 몇주 뒤의 미래를 볼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라......내가 여태까지 예지자던 선지자던 여러 종류의 사람을 봤지만 그중에서 손꼽힐 정도의 재능이다.
"다듬으면, 최소한 어디 가서 죽지는 않겠는데"
"어, 정말요?"
"하다못해 10초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어도 바뀌는게 사람의 생사야. 위험한 일만 피해다니면 대부분 목숨은 건질 수 있지"
남의 목숨은 둘째치더라도 말이다.
일부러 그 말은 하지 않았다. 아직 애가 그런 말 듣기에는 이르다.
"그런데 싸우는 법은 가르쳐줄 수 있어도 예지계 능력을 발전시키는 방법은 모르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기껏해야 감각에 의존한 심안의 미래예지 몇초 정도고"
나는 머리가 썩 좋은 편은 아니기에 미래예지를 하더라도 감에 의존해서 기껏해야 십몇초 보는게 전부다. 내가 몇주 뒤를 보려고 한다면 아마 뇌가 과열되서 죽는다.
영혼만 남은 상태에서 해도 영혼에 과부하가 간다. 그만큼 미래를 엿본다는건 복잡하고 많은 정보 처리 능력과 인과율이 필요하다.
"여긴 내 분야가 아니라 마누라 분야지"
"저도 미래 예지는 못합니다"
"할 수 있잖아"
"그건 단순히 항목이 확정된 분야에 한정한 추측에 불과합니다. 예를 들어서 로또 당첨번호 찍기라던가"
"결국에는 머리가 좋아서 할 수 있다는 소리잖아. 그게 반이니까 반만 해먹으면 돼"
미래 예지를 하는데 필요한건 두가지다.
하나는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정보 처리 능력.
다른 하나는 그걸 허용해주는 인과율.
둘중 하나라도 없으면 죽는건 똑같다.
"정보 처리 능력이 없으면 머리가 터져 죽는건 알겠는데. 인과율은 뭐예요?"
"파이널 데스티네이션이란 영화 본적 있니?"
"......어, 미래를 보고 죽는걸 피했다가 원래 죽는 순서대로 죽는다는 이야기 아니예요?"
"그렇게 돼"
함부로 미래를 엿보고 바꿨다가는 그 대가를 치루게 되는 법이다.
예를 들어서 100명의 사람이 죽는게 확정되어 있는데 그걸 회피해서 살렸다고 치자.
운명을 거스를 방법이 없다면 어떻게든 그 100명은 죽는다. 더불어서 미래를 예지했던 사람이 100명의 목숨을 구한 업을 책임질 수 없다면 그 사람도 죽는다.
"예지 능력자의 인과율이란건 말하자면 빚을 지는거야. 내가 100만원이 있는데 미래 한번 볼때마다 10만원씩 까인다고 하자? 10번 보면 돈이 다 없어지겠지?"
"어.....그렇죠?"
"돈이 없는데 미래를 보면, 내야 하는 10만원은 빚이 되는거야. 자기 직업에 따라서 몇백만원 까지는 갚을 수 있겠지만 수억, 수십억으로 넘어가면 어떻게 될까?"
운명이란건 질 나쁜 사채업자다.
채무를 갚지 못한다면 바로 신체포기각서(죽음)가 날아온다.
"내가 보기에 너는 상당한 인과율을 가지고 있어. 너무 큰것만 보지 않으면 큰일 날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까 걱정마"
"애초에 제 마음대로 볼 수 있는것도 아닌데요 뭐"
"하긴 그렇네......일단 능력을 사용하는 방법부터 배워야겠다. 조절 정도는 해야 안심하지"
인과율이 됐다면 우선 정보 처리 능력이 문제다.
하지만 이건 의외로 간단하다. 좀 불안하긴 하지만 사람의 뇌를 활성화 시키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부작용 없는 두뇌 활성화는 간단하잖아?"
"아저씨?! 뇌를 만진다는 부분 자체가 위험한거 아니예요?!"
"아니, 그야 아직 현대 사회에서 뇌라는 부분은 미지의 영역이니까 거부감이 드는건 당연한거고. 적당히 발전하면 부작용 없이 두뇌 활성화는 쉬워"
지금으로 몇백년 전만 하더라도 불치병이라 판달될 병은 많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그 병의 대부분을 고치고 몇년 전까지만 해도 불치명의 대명사였던 암도 슬슬 정복되어가는 분위기다.
하다못해 수십년만 지나도 뇌 관련 질환은 이제 부작용 없이 치료가 가능할거다. 시온이 가진 기술력을 생각하면 뇌 좀 만지는건 간단하다.
"대부분 설비는 다른 곳에 있지만. 지하에 정신 치료용 설비가 하나 있습니다. 애초에 치료용 설비니까 손대도 문제는 없을겁니다"
"어쩔래?"
"음.....아저씨가 말하면 좀 별론데 아주머니가 말하면 신빙성이 있어요"
"난 그렇게 사람들에게 신뢰 못받는 인상인가?"
"일단 거울부터 보고 오십시오. 저 말고 누가 당신을 쉽게 믿어줍니까?"
"은근슬쩍 깨소금 뿌리고 있구만"
지하라고 한다면 시온이 저번에 말한 지하 비밀 실험실.....아니면 연구실이다. 마당 창고에 있다는 그거.
예진이가 승낙해서 우리들은 한번 구경 갈겸 해서 비밀 실험실로 가기로 했다.
마당에 있는 작은 창고는 기껏해야 우리 셋이 들어가면 조금 비좁은 정도로 작았다. 여럿이서 들어오지는 못할 것 같다.
시온이 창고 안에 있던 낡은 시계의 시곗바늘을 한바퀴 돌리자.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와! 우와! 진짜 비밀 기지같아요!"
"비밀기지 맞습니다. 남자의 로망인 그겁니다"
"넌 여자잖아"
내려가는 바닥은 얇은 판 한장 정도다. 하지만 흔들리지 않고 꽤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걸 보면 반중력 기술이 응용된게 틀림 없었다.
이내 지하로 백미터 가량 내려가자 우리 앞에 문 하나가 반겨주었다. 시온이 문 옆에 손바닥을 대자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일단 제 지문과 당신 지문을 등록 해뒀습니다. 그러니 예진양은 여기 오고 싶을 때는 저나 남편에게 말하면 됩니다"
"아, 네!"
문 안쪽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우리집 1층 넓이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근미래적인 구조와 설비, 그리고 한쪽 구석에 있는 인간형의 모습을 띈 강화 외골격이 눈에 띈다.
"어? 저거......"
"아이언맨 슈트 아닙니다"
"조금 형태가 다르긴 한데 비슷한건 아니예요?"
"저건 혹시 몰라 만들어두긴 했지만 쓸데는 없는 물건입니다. 솔직히 저런 것보다 우리 남편이 더 쌥니다"
나의 초인적인 근력이나 능력, 그리고 감지 능력은 기계로 흉내낼 수 없다.
나한테는 기껏해야 과도 정도의 편리성을 가질 뿐이다. 사과는 껍질을 깍아 먹어도 상관 없지만 깨끗히 씻어서 껍질까지 먹어도 상관 없는것처럼. 있으면 조금은 편리하겠지만 없는 편이 더 간단하다.
"일단 폐기하기는 그래도 냅두고 있었는데 당분간은 두고 볼 생각입니다"
"입고 움직일 수 있어요?"
"기동 특화형이라서 일단 기동성은 죽입니다. 지구 한바퀴 도는데 3시간 밖에 안걸립니다"
"어......시속이라고 하면 지구 둘레가 대충 4만 킬로미터, 계산하면 40000Km/h니까. 음속이 340m/s였고. 음, 음......"
"그러면 음속은 그럼 1224Km/h니까 대충 마하 10 정도 됩니다"
외계 기술로 마하10 정도라고 우습게 볼거 아니다.
이 시대에서 인간형 외견에, 사람이 탑승 가능한데 연료 보급 없이 마하 10의 속도로 상시 출력이 안정적이게 움직일 수 있는 기술이라고? 게다가 이건 추진제가 필요 없다.
추진제가 필요 없다는 소리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기름이나 연료가 필요 없다는 소리다. 순수하게 에너지로 움직인다는 소리다.
애초에 반중력 제어장치도 있어보이는데 거기서부터 현 시대에서 만들 물건이 아니다.
"집 앞마당에 이런 하이 테크놀러지 연구실이 있을지 누가 생각이나 할까"
"아이언맨과 배트맨은 진짜였어!"
"솔직히 돈 많은 백수가 만들기에는 나쁘지 않습니다"
"막 슈퍼맨이랑 싸울 수 있는 슈트도 만들고!"
"아니다 이 악마야!"
"느금마 마사!"
아이언맨은 괜찮아도 배트-슈트는 안된다! 으아아아!
"제가 너무 늦게 와서 그렇습니다! 으아아! 좆같은 PC같은게 작품 내에 들어가게 두지 않았지만 뱃대슈는 PC이전에 너무 늦었습니다! 으아아아아!!!"
"시온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이런 반응은 근 200년 내로 처음인데!"
시온의 목적은 1번이 나도 2번이 덕질이다. 하지만 그 덕질에서 치명적인 타격을 입을 때가 있는데 기대를 배신할 때다.
솔직히 뱃대슈는 너무했어. 다 아는 브랜드를 가지고 그렇게 말아먹다니!
받아라! 녹색 반지 빔!
"저도 히어로 영화 좋아해서 잘 보는데......그래도 DC영화는 나쁘지는 않은데요?"
"뭐지? 천사가 내려왔나?"
그게 나쁘지 않다고? 얼마나 취향이 매니악한거야.
나와 시온은 서로 거부반응을 일으키면서 겨우겨우 정신을 차렸다. 초월자들에게는 행성 파괴 공격을 날리는 것보다 정신적인 충격이 훨씬 타격이 크다.
아무튼 우리들은 연구실 한 구석에 있는 등받이 의자에 다가갔다. 위쪽에는 머리에 씌이는 듯한 헬멧같은 설비가 있었고 뭔가 앉아서 받는 시설인게 보였다.
"제 특기는 생명공학이 아니지만 이건 충분히 좋은 설비입니다. 델타 캐슬산 최신형 멘탈 케어입니다. 하는 김에 연구소에서 있었던 일도 살짝 건드려서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조금 불안한데요......"
"제가 만든건 불안해도 되겠지만 이건 괜찮습니다. 델타 캐슬은 잘못해서 사람 죽이면 죽는 것 만도 못한 처벌을 받는 엄한 곳입니다"
"난 거기 싫어"
차원 내부에 거점을 두지 않고 차원의 틈새를 돌아다니는 세력이 몇 있다. 그중의 하나인 델타 캐슬은 기술력 만큼은 손꼽힐만한 곳이다.
만약 거기서 살인죄를 저지르면 차라리 자살하는게 맘 편할 정도로 엄격한 곳이다. 다만 죄만 저지르지 않으면 거기만큼 살기 좋은 곳도 없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거긴 별로다. 거세당한 놈들의 조직따위 믿을게 못돼.
거기 사람은 못 믿어도 기술은 믿어도 된다. 보기 드문 엘리트들이 만든 기술은 시온이 개발한 수준에 필적할 수준이다. 특히나 시온은 생명공학 쪽에는 영 젬병이라서 사람 몸에 관련된거는 오히려 이쪽이 믿을만하다.
"잠깐 누워 있으면 전부 끝납니다"
"얼마나 걸려요?"
"때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5분쯤 걸립니다"
"라면 다섯개 끓이면 되겠네요"
"한번에 다섯개 끓이자는 소리는 아니지?"
예진이는 의자에 앉았다. 자동으로 위에서 헬멧 같은 설비가 내려와 그녀의 머리에 씌워지고 눈을 가렸다.
시온은 옆에서 버튼 몇개를 누르더니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
"그럼 시작 하겠습니다"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인다. 내가 보기에도 안정적이여서 오히려 예진이에게 득이 됐으면 됐지 해가 되진 않을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대충 20분 정도 걸리려나......
"그런데 이런 작은 실험실에 너무 일 벌려놓은거 아니야?"
"몇개 없습니다. 특수 제작 아머와 치료 설비, 그리고 저번의 일 때문에 필요했던 차원진 감지기 정도 밖에 없습니다. 워낙 손쓸게 많아서 종류가 많아 보이는거지 실제로는 몇개 안됩니다"
시온의 말을 듣고 실험실 내부를 다시 분류해보니 하나가 영역을 많이 차지하고 그 주변이 좀 널부러져 있다 뿐이지 실제로는 많지 않다.
"저런 수트는 언제 쓸려고? 솔직히 난 필요 없잖아"
"유비무환입니다"
"유비는 근심이 없다고? 솔직히 쓸데 없는건 맞잖아. 날 빼면 저런거 누가 쓴다고 그래?"
저런거 쓰고 사람들 구하러 다닐 사람은 몇 없다. 정말로 사람들 앞에서 아임 라쿤맨, 하고 말하고 그럴만한 히어로가 얼마나 있을까.
히어로라는건 자기 희생 정신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본적도 없는 남을 위해서 자기 목숨도 내던지는 희생정신을 가진 사람이 이 팍팍한 현대 사회에 얼마나 있을까?
자기 희생은 그만큼 숭고하지만 보기 드물어서 그런 것도 있다. 히어로의 기본 이념인만큼 없으면 실격이긴 하지만.
"어차피 있는거 나중에 아무나 줘버려. 어차피 가지고 있어도 안쓸거 적당히 쓸사람 주는게 낫잖아?"
"그렇긴 합니다"
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생각나는 사람은 하나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잠깐 대화를 하고 나니 예진이의 시술은 끝이 났다. 그녀의 머리에 씌워졌던 기기가 들어올려지고 조금은 어지러움을 호소하면서 깨어났다.
"괜찮아? 내 손에 이거 손가락 몇개?"
"하나요. 그리고 어지럽긴 해도......머릿속은 좀 깨끗해진 기분이라서 좋은 것 같아요"
예진이는 한결 나아진 모습이였다. 외견상 달라진 점은 없을지 몰라도 눈빛은 한결 맑아졌다.
"멘탈 케어는 피험자의 두뇌에 간섭해서 부정적인 기억이 대하여 약간 시간이 지난듯한 효과를 줍니다. 모든 일은 시간이 해결해준다니 그러면 시간이 지난듯한 효과를 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어.....무슨 뜻이예요?"
"예진양이 겪은 일이 몇주전 이야기라도 그게 몇년 전 이야기 수준으로 느껴진다는 소리입니다. 섣불리 기억 제거 같은걸 했다간 괴리감이 장난 아니니까 오히려 먼 기억 속에 묻어버리는 방식입니다"
사람의 뇌는 의외로 복잡해서 잘못 건드리면 훅간다. 나도, 시온도 뇌는 함부로 건들진 않고 기계의 도움을 받는다.
"정말로 시간을 들여서 해결한다면 트라우마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단시간에 해버렸으니 트라우마가 될 시간마저 주지 않아서 부작용은 없습니다. 오랫동안 생각 안하면 그냥 잊어버리게 될겁니다"
"일단은......꽤 괜찮은 것 같아요. 생각보다 정신도 멀쩡하고 혼란스럽지도 않고. 하길 잘했네요"
5분 정도 그 자리에 앉아 있으니 약간의 어지러움도 사라진 모양인지 예진이가 전보다 밝은 얼굴로 일어났다.
머리가 나아졌는데 몸은 왜 움직이는건지 모르겠지만 예진이는 몸을 풀면서 한결 가벼워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멘탈 케어에 몸을 개조하는 기능이라도 있나?
"어?"
예진이는 몸을 풀다가 실험실 한 구석의 테이블에 시선이 꽂혔다. 복잡한 회로와 설비가 연결된, 대충 성인 남성의 상반신만한 무언가. 저거......아마 차원진 감지기였지?
내가 말하는 차원이란 개념은 일반적인 우리들이 사는 3차원에 시간을 더한 4차원. 그리고 그 위에 우주라는 개념을 담는 포괄적인 개념의 차원이다.
요컨데 우리가 사는 우주는 차원이라는 한 개념 아래에 놓여 있는데 그게 한두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게 부대끼는 형태다.
차원진 감지기는 그런 차원들의 비틀림을 감지하는 기구다. 지구는 적성종 때문에 감지기를 개발했지만 보통 지진같은 재난 비슷하게 감지하는 용도로 쓰이는게 보통이다.
차원진도 지진은 지진인 느낌이지. 규모는 한참 다르지만.
"저게 왜?"
"아뇨,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예진이는 슬쩍 손을 뻗어 차원진 감지기를 만졌다.
그리고 뭔가에 감전된듯 부르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꺄아악!!!"
"잠깐만, 저거 전기 들어오는 물건이였어?!"
"전원도 안켰는데 무슨 전기입니까? 그리고 감전되서 나오는 반응은 절대 아닙니다!!!"
나는 황급히 차원진 감지기에서 예진이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그녀를 눕히고 발작을 일으키는 몸을 진정시키기 위해 그녀의 몸 내부에 가이아 포스를 주입했다.
하지만 문제는 몸이 아니였다. 머리 쪽이였다.
"난데없이 머리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어. 이건......미래를 볼 때 부담가는 그런 느낌인데?"
갑자기 차원진 감지기를 만지고 미래를 예지하는 예진이는 텅 빈 동공으로 간간히 떨면서 기이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이마에 손을 대니 딱 봐도 정상이 아닌 수준의 체온이 느껴졌다.
"어떻게 못합니까?"
"얘는 초월자가 아니라서 직접 뇌를 주물러야 하는데 그건 내 특기 아닌거 알잖아! 너는?"
"생명공학은 특기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전기 신호 정도야 분석해서 흉내 낼 수 있지만 예진양이 컴퓨터도 아니고 그걸 섬세하게 조작하는건 무리입니다!"
"할 수 없다! 합체다!"
"앗, 여기서 합체가!"
물론 성인적인 의미에서 합체가 아니라 서로의 능력의 합체다.
나는 시온을 어께 위에 목마를 태우고 시온은 내 머리에 손을 대서 내 머릿속에 명령을 내린다.
내 능력의 섬세함과 시온의 전기신호가 합쳐져서 사람 뇌 하나쯤은 조작할 수 있는 능력이 완성됐다.
"거 엄청 과부화 되고 있었네.......5분만 냅둬도 뇌가 익어버리겠다"
"포스 유저라서 다행입니다. 아니였으면 진작에 죽었을겁니다"
"포스 유저라서 이런건데 병주고 약주고 아니냐"
시온이 보낸 전기 신호를, 내가 섬세하게 다뤄서 그녀의 뇌를 조작한다. 현재 진행중인 예지를 중간에 멈추고 강제로 안정화시켰다.
나나 시온이나 둘 다 뇌를 만지작거릴만큼 능력이 뭐 하나쯤은 빠져 있어서......겨우 두명이서 어떻게든 했지만 부작용이 없을거라고는 보장 못한다.
뇌는 심장과 함께 가장 중요한 장기다. 전문가가 건드려도 모자랄 판에 전공도 아닌 우리 둘이 겨우 힘을 합쳐서 해결했는데 목숨 건졌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으, 아아......"
"예진아, 정신이 들어?"
그녀의 예지를 멈추고 잠시 회복할 시간을 주자 얼마 뒤에 신음성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두통이 있는지 머리를 싸매며 일어난 그녀는 오들오들 떨었다. 뭔가 두려운 것을 본 사람처럼 내 옷깃을 꾹 잡으면서.
"아, 아저씨.....어, 엄청 무서운걸 봤어요. 사람들이 엄청 많이 죽고, 도시가 무너지는게 보였어요......!"
"일단 진정하고 천천히 말해"
시온이 어디선가 물을 가져오고, 예진이는 조금씩 물을 마셔서 목을 축이며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아까 저걸 만지는 순간, 뭔가 전기 오듯이 찌릿하고 지나갔어요. 그리고......차원진에서 나온 적성종 때문에 엄청 많은 사람들이 죽고 도시가 무너졌어요"
"도시가?"
대공황 이후로 20년. 포스 유저의 수준도 높아지고 마스터 유저도 생겼겠다 어지간한 적성종으로는 그 시절 같은 피해가 나오지 않게 됐다.
사람 한둘 죽는건 있어도 도시가 무너질 정도의 괴멸적인 피해는 내가 초등학생 때 이미 끝을 고했다.
만약 다시금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만큼 강한 적성종이 나온다는 소리겠지.
"거기가 어디야? 기억 나는건 있어? 설마 우리나라야?"
"거긴......"
예진이는 인상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다가 이내 말했다.
"부서진 자유의 여신상이 보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