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0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60/507)



〈 60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라쿤맨.


지난 영등포 백화점 화재 사건 당시 나타난 괴인, 혹은 슈퍼 히어로.

그의 행적은 그 사건을 시작해서 해운대 적성종 습격 사건과 신도림 적성종 출현 사건, 연쇄 초등학생 납치 사건, 그리고 천검 이경진과 격돌한 사건과 세간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본 마스터 유저 히비키와 대판 싸운 사건  크고작은 사건에 끼어들었다.

추정 무력은 초기에는 마스터 유저 미만으로 판단했으나 히비키와 이경진과의 전투로 마스터 유저, 그중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추정 무력치가 상승했다.

신출귀몰하지만 대략적인 위치는 서울. 그중에서 강북에 거점이 있는걸로 판단하고 있지만 그 이상의 정보는 찾을  없었다.

다만 한가지 불확실한 정보가 있다면 기혼자라는 것 정도. 부산에서의 인터뷰 마지막에 지나가는 말로 했기에 그게 비유인지 아니면 사실인지 확신할  없다.

"라쿤맨이란 이름은 그저 인터넷 밈에 불과하지만 추정 무력은 엄청납니다. 더군다나 전력이라고 판단되지도 않아서 마스터 유저 최상위권의 자리를 노려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추적은 가능한가?"


"우선 의심가는 사람은 몇 있습니다"

라쿤맨 대책팀.

정체를 숨기고 크고작은 사건에 끼어드는 그를 잡기 위해 창설된 조직이다. KFU 아래에 있지만 정부에서 국정원 출신 포스 유저도 받아 창설된데다 나름 지원도 받기 때문에 상당히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얼굴은 가린데다 CCTV에도 사각으로 이동하는지 특별한 정보가 없습니다. 겉으로 봐서 알 수 있는 특징은 평범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거의 없습니다"

"알아낸게 없다는 말인가요?"


"아닙니다. 한가지 라쿤맨의 정체를 추론할  있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나눠드린 자료의 7페이지를 봐주십시오"


남자의 말에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앞에 있는 자료를 넘겼다.

연쇄 초등학생 납치  살해 사건에 대한 자료였다.

"거기 나와 있듯이 아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라쿤맨이 나타나서 구해줬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건 뭐지? 납치범이 적성종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뭔가였다고 나오는데?"


"그건 저희 관할이 아니니 넘기시죠. 중요한건 라쿤인지 너구리인지 하는거 아닙니까?"

"어차피 경찰 쪽에서 조사하는 일이니까 할일만 합시다"


서서 발표를 하던 남자가 다시금 말을 이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점은 이 사건이 벌어진지 한달 가까이 되어가지만 라쿤맨은 사건 초기가 아니라 네번째 피해자가 나오고 나서야 나타났다고 합니다. 아니, 말을 다르게 하면, 네번째 피해자가 생기니 나타났습니다"


"어?"

그들도 바보는 아니다. 탐정이 증거에 범인까지 다 찾아내는 것은 만화적인 허용이다. 실제로 국가 조직이 그렇게 무능하지 않다.

애초에 엘리트만 모아놓은 곳이기 때문에 유착이나 비리가 있는게 아니고서야 충분히  역할을   있다.

"첫번째 피해자는 살해 당했지만 두번째, 세번째 피해자는 납치당해서 비교적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번째 피해자가 납치된지 일주일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았던 라쿤맨은 네번째 피해자가 생기자 곧바로 움직였습니다"

"그럼 그 네번째 피해자는?"

"바로 뒷장에 있습니다"


서류를 넘겨 뒷장을 본다. 시온의 사진과 간단한 인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름 최시온. 나이는 스물 넷.......스물 넷? 잠깐, 이 모습으로?"


"미국에서 태어나서  때문에 독일로 가서 투병 생활. 그리고 2년 전에 완치되어 주식 관련해서 재미  봤다라"

"말이 재미를 본거지 수완이 뛰어납니다. 국내 기업 중에서 그녀의 투자 안받은 대기업은 없고 발 넓은 인맥을 갖추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파악한 수준만도 이러니 해외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죠"

"......뭔가 불법적인 일이라고 관련됐나?"

"아뇨, 지극히 정직한 사업가입니다. 저도 미심쩍어서 세무 쪽에 일하는 친구한테 부탁 해봤는데.......탈세는 커녕 조세 회피조차 한게 없습니다. 안내도  세금까지 다 내고 이민 신청 한 다음에는 해외 자금 반입 관련해서 소득세도 한푼도 빠지지 않고 냈답니다. 정말 깨끗해서 상이라도 줘야 하나 싶을 정도랍니다"

"그 정도인가?"


"네, 세금 가지고  해볼 생각이라면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 있을 정도라던데요. 이건 거의 무슨 컴퓨터가 세금낸 것 같답니다"


솔직히, 반쯤 컴퓨터 맞다.

"아무튼 라쿤맨은 최시온이 납치된 다음 곧바로 움직였습니다. 연관성을 생각하기에는 충분히 일리가 있죠. 그리고 인적사항을 보시면 알겠지만 그녀는 기혼자입니다"

"이 모습으로?"

"남편 되는 사람의 취향이 어떻건 간에 일단 아래 쪽에 그 남자 인적 사항도 있습니다"


시온 바로 아래에는 최악의 인적사항도 있었다.

시온보다 2살 어린 22살. 대공황으로 부모를 잃어 시설 출신. 그리고 평범하게 초, 중, 고등학교 재학 후 군대 입대. 올해 초에 제대했다.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다. 단지 전역 후 몇달 뒤에 시온과 결혼을 했다는 정도가 특이할 뿐이다.


"요즘 젊은 사람이 결혼을 이렇게 빨리해도 되나? 뭐, 여자가 돈이 많으면 기둥서방이라도 하면 될테니 문제는 없겠지만......."

"포스 유저라면 수상한 사건 하나라도 있어야 하는데 이건 뭐 깨끗한데?"

"생기부도 좋네. 인상 더러워서 일진이라도 했나 싶었는데 선생님도 좋게 봐준 모양인데?"

학창 시절 최악을 건드린 사람은 몇 없다. 그나마 있던 몇명은 사고로 위장되어 보복을 당했지만 죽은 사람은 없었다.


덕분에 의심을 받거나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교 생활 태도는 좋았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았다.


심지어 학창 시절이라면 그 흔한 주먹다짐 한번 하지 않았다. 너무 깨끗해서 도리어 의심스러울 정도다.

"체구 같은 외견적 특징은 라쿤맨과 일치합니다. 만약 그가 진짜 라쿤맨이라면 최시온이 납치된 후 그에게 연락하여 곧바로 구출하기 위해 왔다는 이야기에 충분히 신빙성이 더해집니다"

그들은 진실에 근접했다.

여태까지는 시온이 증거인멸을 해서 괜찮았다지만 납치 사건 때는 너무 노골적이였다. 시온이 경찰 쪽에 입을 막았지만 따로 대책팀에 손을 쓰지 않는다면 이쪽에서도 추적하는건 시간문제다.

"흠"

"가능성은 있는데. 어차피 미등록 포스 유저일테니까 일반인인 것도 그렇고"


그런데 누군가 자신의 의견을 슬쩍 내밀었다.

"이렇게 노골적인데 확신해도 되는겁니까? 심증은 있지만......가장 중요한 물증은요?"

".......물증은 아직 없습니다"

"그래요? 음, 하다못해 CCTV에 찍힌 것 하나 없습니까?"

"아직 조사중이긴 하지만. 예, 그렇습니다"

"결국 추정 뿐이지 않습니까?"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그들도 그걸 알기에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여기서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뭡니까?"


"과연 납치범이 납치했던 사람이 하필이면 라쿤맨의 부인일 확률이 얼마나 되냐는 거죠"


"아......"

납치범이 활동하던 일대에는 초등학교도 세개가 있었고 여자 초등학생의 수는 수백명에 달했다. 그 중에서 하필이면 라쿤맨의 아내인 시온을 납치할 확률은? 간단히 생각해도 수백분의 일이다.


"우린 우연이나 행운에 기대지 않습니다. 그 많은 아이들 중에서 하필이면 그녀를 납치할 확률은 낮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려면 운명이 장난이라도 쳐야겠죠"


"그 말도 일리가 있기는 한데....."

"차라리 네번째 피해자가 생길 때 라쿤맨이 그걸 목격하고 끼어들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더 가능성이 높습니다"

납치범이 하필이면 납치한 사람의 남편이 슈퍼 히어로일 가능성과, 납치당하는 과정을 목격한 슈퍼 히어로가 추격을 했다는 가설 중. 가능성을 비교하자면 후자가 위다.


"하지만 그쪽 의견도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심증이 있으니 조사를 해봐도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붙일까요?"

"만약 정말로 라쿤맨이라면 사람을 붙인 것 정도는 금방 눈치챌겁니다. 우선 도청 장치나 드론으로 감시하도록 하죠. 만약  최악이라는 사람이 라쿤맨이 맞다면 분명 무슨 증거를 흘릴겁니다"


"그거 괜찮네. 그렇게 하죠"


유력한 용의자를 발견하고  조사 방식까지 결정하니 회의가 끝났다.

다른 사람들은 각자 할일을 하기 위해 회의실에서 빠져나오고......그 중에서 한명, 반대 의견을 냈던 남자가 조용히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예, 말씀하신대로 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앳되지만 감정이 희미한 무뚝뚝한 여자아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우선적으로 도청장치와 드론으로 감시하자는 의견을 추진했습니다. 아마 당분간은 감시를 하겠지만......명백한 알리바이가 증명되거나 한다면 용의선상에서 내려갈겁니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약속 했던대로 따님의 수술은 걱정하실 필요 없을겁니다. 딱 맞는 기증자를 수배해야 해서 조금 애먹었지만 충분히 시간 내에 수술을 진행할 수 있을겁니다]

"저,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는 핸드폰에 절이라도 할듯이 굽신거리며 감사 인사를 표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뚝뚝하지만 옅게 웃음을 품고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제가 더 감사합니다]

* *  *   *

아침 식사를 하는데 다짜고짜 시온이 말했다.


"아마 당분간 드론이나 도청 장치 같은게 달려있을겁니다. 솔직히 제가 조작해서 그냥 있다 뿐이지 걱정 마십시오"

"뭔놈의 도청장치?"


"라쿤맨 대책팀에서 당신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일부러 사람을 쓰지 않게 하고 기계만 쓰게 만들었으니까 조작해서 넘기면 됩니다"

"뭔일 했어?"

가끔 가다가 시온이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할 때가 있다.

물론 힘 쓰는 일은 내가 하고 머리 쓰는 일은 시온이 한다. 그렇게 나눠서 하고 있고 솔직히 내가 끼어들면 모를만한거 투성이인지라 오히려 신경 끄는게 상책이다.


내가 사람을 죽이는 일에 시온이 어지간하면 말리지 않는 것 처럼, 나도 시온이 하는 일에는 어지간해선 간섭하지 않는다.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선을 그어야 오히려 잘 지내는 법이다.


"라쿤맨 대책팀에 손을 썼습니다. 거기 있는 사람 중에 딸이 급하게 이식 수술 해야하는 사람이 있어서 약간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약점 잡고 괴롭히는거 아니지?"

"오히려 사막에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는 일입니다"

"그럼 됐어"

병주고 약주고라는 말이 있지만 그러면 차라리 병도 주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그냥 약만 준다면 이득만 있는거니까 괜찮다.


어차피  떨어질데도 없는데 끌어올려준다면 감지덕지해야 하는 부분이다. 나는 떨어진 놈 짖밟아서 뭉게도 상관 없지만 시온이 그런 더러운 짓 하는건 싫다.


"아, 두분 먼저 일어나셨어요?"


"우리야  시간이 평소 일어나는 시간이니까. 예진이 너는?"


"실험실에 있다 보니까 시간 감각이 마비되서 낮에 잠이 오고 밤에 깨어 있게 됐어요. 당분간 시차 적응 좀 해야할것 같아요"


"학교 가기 전까진 적응은 해도  자. 다음주부터 간다고 했지?"


"네"

예진이는 인근 학교로 표면상 전학을 가기로 했다. 전에도 학교를 다니긴 했으니 전학간 사람 연기는  하겠지. 반은 사실이니까.

"끼잉, 끼잉!"


"그래, 밥 달라고?"


댕댕이는 우리가 전부 일어나 있으니 마찬가지로 자다가 깨서 달려와 밥달라고 졸랐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이 보기만 해도 귀엽다.

강아지 배식용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주자 허겁지겁 먹기 시작한다. 얘가 식탐이 강한가? 밥은 항상  시간에 줘도 엄청  먹는데.

나는 옴뇸뇸 거리면서 밥을 먹는 댕댕이에게 궁디팡팡을 해주고 예진이 몪의 아침밥을 차렸다.


"오늘은 뭘 할까요? 학교 가기 전에는 딱히 할게 없는데"

"할게  없어? 가기 전에 필요한거 사야지. 카드 줄테니까 개인 용품 필요한거 전부 사"

"와! 깜장 카드! 아저씨 짱짱!"

"그 카드 제겁니다"

"아주머니 짱짱!"

태세전환이 훌륭하구나 예진아.

그 다음에는 나는 출근. 시온은 집보기. 예진이는 쇼핑.....인데 시온을 떠밀어서 같이 가게 했다. 최소한 어른 한명은 같이 있어줘야 할거 아니야.


"......어른?"

"아, 시온이랑 같이 가면 기껏해야 사촌 여동생 취급이긴 하겠네"

"아무리 그렇게 보여도 해서는 안돼는 말이였습니다!"

시온이 투닥투닥거리면서 내 어께를 두들겼다. 시온은 외견 때문에 어린애 취급하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튼 같이 쇼핑 가는걸로 하고 나는 먼저 나가기로 했다. 출근해야지. 오늘도 치킨 팔러 나가야 한다.

"그러고 보니까 나갈 때 차 필요할텐데. 태워줄까?"


"그건 김 변호사 차 타고 나가면 됩니다"


"변호사를 운전기사로 쓰지 마"

"그 차 제가 사준겁니다"


".....저번에도 그렇긴 한데 그렇게 말하면 내가 할말이 없잖아"

차 원하는걸로 한대 뽑아주는 대신에 가끔 가다가 운전기사 노릇 좀 해달라고 하면 당장 손들 사람 많다. 이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돈으로 안되는게 없는 법이다.


집에서 나가기 전에 문득 든 생각인데. 집에 애도 한명 생기고 애완 동물도 생기니 한결  활기차진 느낌이다. 내가 출근하면 시온만 남아서 썰렁한 기분이 없지 않았는데, 가족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느낌이다.


여름 휴가를 끝내고 처음 출근하는 날이다. 백리가 먼저 출근해서 재료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 형 출근하셨어요? 밤에는  잤고요?"

"평소랑 비슷하지 뭐. 너희는 잘 들어갔냐?"


"루리가 들어가서 자려다가 기어이 일어나서 문제집 펼쳐들더라고요. 내심 신경 쓰이나봐요"


"수능 스트레스가 크긴 하지. 네가 케어 잘 해줘라"


"제가 해줄 수 있는건 별로 없는데요?"


"아직도 가끔 대련 하잖아? 스트레스 풀게 상대 잘 해주면 돼"

얻어 맞으면 더 좋고.


나는 백리를 도와 재료 준비를 하다가 예진이의 일을 말했다.

"그러고 보니까 우리 집에 가족 한명 늘었어"


"가족?  새끼 여우요?"


"걔 말고, 예진이라고. 어쩌다 보니 같이 살게 됐거든. 나중에 보거든  지내. 루리랑 한살 연하야"


"고2요? 저랑 몇살 차이 안나네요"


"나랑 너도 몇살 차이 안나 임마"

"형은 안쪽이 늙었잖아요"


"아니, 이 새끼가?"


환생자인걸 들먹이면 내가 노인네인걸 부정할 수 없다. 마구잡이로 행동하는거야 난 옛날부터 그랬으니 그렇다 쳐도 노는 것보다 애들 노는걸 보는걸 좋아하는 성격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가끔 가다가 몸은 멀쩡한데 어이구야,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날 때가 있다. 몸은 멀쩡한데 마음이 늙은것 같다.

"아무튼 한살 차이니까 루리랑 알고 지내면 친구 되겠다. 나중에 네가 알아서 소개 시켜줘"

"솔직히 말해서 루리 친구 되느니 차라리 지나가던 사람 붙잡고 친구되는게  나을것 같은데요"


"여동생한테 평가가 너무 박한거 아니니?"


"여동생이라서 평가가 엄격한건데요?"


아, 이런 참남매 같으니라고. 요즘 시대에 이렇게 사이 좋은 남매는 본적이 거의 없다.

그런데 그 관계가 잘 이어질 수 있을까......루리가 평범한 애도 아니고.


성격적인 의미가 아니라 초월자적인 이야기로.


"형, 그런데 있잖아요. 그 예진이란 애요"


"왜?"

"어디서 데려온거예요?"

백리의 눈을 보니 반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럴만하게, 백리는 나에 대한건 상당수 알려줬고 내가 사람 조지러 간다고 했던 그 다음날 데려온 애다.


대충 보면 견적이 나온다. 이걸 눈치 못챌만큼 순수한 사람은 요즘 세상에 드물지.

"네가 생각하는게 맞아. 그래서 내가 보호하려고 데리고 있는거고"

"그 애도 포스 유저예요?"

"어, 너보다 유능하더라"

"......? 아무리 그래도 고2인 애한테 질만큼 약하진 않은데요. 루리랑 대련하면서 얻어맞는건 루리가 이상한 애라서 그런거고요"


"예진이는 예지계 특성 각성자야"

"어?"

사람은 누구나 다가올 미래의 불확실함에 두려워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에 희망과 확신을 가질 수 있다.


거 요즘 소설들 보면 반은 이세계고 반은 회귀자더만. 왜 그런가 하면 이세계 소설은 현실이 비참하니 이세계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거고, 회귀자는 미래가 불확실하니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발로다.


근데 이세계는 그렇다쳐도 미래 같은건 가변적이라서 상당히 보기 빡센데.


"그거 엄청 희귀한거 아니예요? 예지계 특성은 자질도 드문데다가 따로 커리큘럼도 없어서 거의 운에 의존해서 나오길 빌어야 한다던데"


"지금도 너보다 유능하더라, 대충 감에 의존하는 느낌이지만 미래도 약간 볼 수 있고"


"나중에 주식 정보 같은거 보고 투자하면......."


"그러다가 미래가 어긋나면 훅 가는거 한순간이야 얌마"


예진이는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상당히 귀한 존재다. 만약 그녀가 예지계 특성 각성자인걸 들킨다면 미성년자고 뭐고 나라에 끌려가서 차원진 예보나 하겠지. 그러다가 예전에 한명 있던 우리나라 예지계 각성자가 날아갔다.

먼 미래를 본다는건 그만큼 부담을 자기가 짊어진다는 소리다. 세상이 멸망할 위기가 아니고서야 예지자 한명에게 그만한 인과율이 주어질 일도 드물다.


"그러고 보면 미래 예지 같은게 있으니까 한번쯤 운명 같은게 있을거라고 생각했어요"

"운명?"

"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고 운명이라고 하잖아요? 혹시 운명 같은게 실제로 있나요?"


나는 대답을 한순간 망설였다.  존재를 부정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확실하게 알고 있어서다.

"있지"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직계 상사니까.

"아주 좆같은 노처녀 쌍년이 하나 있지"

그년 언젠가 뒤질거다. 내 손이던, 남의 손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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