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예진이는 번화가에서 조금 떨어진 모텔에 있었다. 우선 나는 그녀를 불러서 내려오게 했다.
"밤새 잘 잤어?"
"어....어? 라쿤맨 아저씨?"
"그래"
내 맨 얼굴을 보자 조금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래졌다. 하기사 내가 아이언맨도 아니고 얼굴 까고 막 그러진 않지.
대놓고 정체 드러내고 다니는 히어로가 얼마나 될까? 애초에 그랬다간 뭔일 당하려고?
"일단 타. 우리 집으로 가자. 당분간 거기서 머무르고.....큰건 네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서"
"아, 네"
내가 라쿤맨이란걸 쉽게 믿는 눈치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일단 만나보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만큼 행동거지는 비슷하니까. 그 왜 슈퍼맨이랑 클락 켄트랑 인상이 다르고 브루스 웨인이랑 배트맨이랑 인상이 다른 것은 동일 인물인 둘을 별개의 인물로 판단하게 만드는 정체를 숨기는 방법이다.
누가 안경쓴 신문기자를 슈퍼맨이라고 생각하고 돈 존나 많은 부자 난봉꾼을 배트맨이라고 생각하겠어?
그에 비하면 나는 라쿤맨인 나를 만난 사람이 나를 직접 보면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고.
"얼굴은 못봐서 궁금하긴 했는데 생각보다, 뭐랄까......"
"인상 더럽지?"
"앗, 그건 아니예요. 개성있게 생기셨네요!"
"거 내가 생긴건 내가 제일 잘 아는데 뭘 그래"
예진이를 모텔에서 데리고 나왔다. 앞에 세워뒀던 차에 들어선 그녀는 차에 타고 있던 시온을 보고 굳었다.
"안녕하십니까?"
".......? 어? 누구세요?"
"그이 안사람입니다"
"그이?"
여기서 남자는 나 하나밖에 없다. 그러니 여기서 그이라고 부를 사람은 나 하나란 소리다.
예진이는 머리에 버퍼링이 걸렸는지 한동안 이해하지 못하다가 차에 타서 출발할 쯤 되서야 소리쳤다.
"아저씨 결혼 했어요?!"
"그럼, 총각인줄 알았냐?"
"젊어 보여서 결혼은 아직인줄 알았죠! 아저씨 20대 아니예요?"
"팔팔한 20대 초반이야"
"어.....그러면 이분은요? 설마 겉모습대로는 아니죠?"
"울 마누라는 나보다 두살 연상"
"어? 어어?"
솔직히 처음 보는 사람이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다.
내가 인상이 좋은 것도 아니고 험악하게 생겼는데 거기에 마누라는 인형같이 예쁜 은발 미소녀(합법)에다 실질적으로 나보다 연상이다.
미녀와 야수도 이렇게 안어울리진 않을거다.
"......아저씨, 혹시 설마 취향이?"
"그 말 왜 안나오나 했다. 울 마누라 본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말 하더라"
세상에 순수하지 못해서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취향이 특이한거 아니냐고.
난 원래 정상적인 성인 여성에게서 매력을 느끼지 어린애를 보고 욕정하는 변태 새끼가 아니다. 울 마누라는 사랑해서 그러는거고.
설령 시온이랑 비슷한 또래의 여자애를 눈앞에 데려와도 내가 반응할리 없다.
"우선 우리 집으로 가면서 이야기 하자. 네 처우에 대한거야"
일단 우리가 보호자로 있어 주는건 확정이다. 하지만 예진이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게 있다.
우리집에서 같이 살지. 아니면 따로 우리가 구해준 집에서 자취를 할지.
"어떻게 할래? 우린 네 선택을 존중할께. 어차피 우리 집이야 남는 방도 있고, 자취를 하겠다면 괜찮은 자취방에 지원금도 충분히 줄께"
"음......"
어느쪽이던 우리는 환영이다. 완전히 어린애도 아니고 여고생이라면 자기 프라이버시도 있을텐데 그러면 낯선 사람과 같이 사는게 불편할 수 있다.
더군다나 나이도 몇살 차이 안나는 성인 남자랑 말이지.....나는 그럴 마음 없다 해도 상대는 어떻게 느낄지 모른다.
"그럼 저는 같이 살고 싶어요"
"진짜? 딱히 강요하는건 아니니까 네 편한대로 해도 돼. 나 같은 아저씨랑 같이 살면 무섭지 않아?"
"집 있고 돈 있어도 안전하지 않으면 쓸모 없잖아요. 아저씨라면 최소한 안전하게 지켜줄테니까 오히려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확실히, 안전을 생각하면 우리 집에서 사는게 낫다.
내가 있기도 하고 시온이 직접 지은 집이라 여러가지 방호 설비 덕분에 유사시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다가 내 옆에 있다고 더 위험해지는건 아닌가 몰라.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가서 방 정리하고 그러려면 바쁘겠다"
어제 처음 본 사람이랑 같이 사는 여고생이나, 마찬가지로 어제 처음 본 여고생이랑 같이 살아야 하는 남자라......흠, 이런 레파토리를 어디선가 본것 같은데.
히토미 켜라.....큭! 머리가!
예진이는 어색해 했지만 시온이 품아 안고 있던 새끼 여우를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자고로 예쁘고 섹시한건 취향이 갈리지만 귀여운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와! 강아지예요? 귀엽게 생겼다! 키우시는거예요?"
"정확히는 새끼 여우입니다. 귀엽지 않습니까?"
"앙증맞아서 엄청 귀여워요. 우쭈쭈, 누나랑 놀래?"
새끼 여우는 한창 호기심이 폭발할 시기인지 예진이와 시온이 놀아주자 낑낑거리며 귀여운 소리를 내며 활기차게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까 이 애 사료라던가 그런거 사둬야되는데. 일단 개과니까 기본적으로 개 사료를 먹더라도 고기 같은 것도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이름도 지어줘야지.
집에 도착하고 차는 일단 집 앞에 세워뒀다. 짐은 대충 옮겨서 정리하기 위해 거실에다 두고, 예진이는 1층의 창고로 쓰던 방 하나를 내주기 위해 안에 있던 물건들을 빼냈다.
"집이 넓네요. 혹시 두분이서 사세요?"
"우리 가족은 나랑 시온 뿐이야"
"집이 이렇게 넓은데요? 2층도 있지 않았어요?"
"2층은 거의 전시실 같은 곳이고"
2층에는 방도 두어개 있지만 대부분 시온이나 내가 산 피규어, 넨드로이드 같은 조형물 전시해두는 곳이다.
"라쿤맨이라고 하더니 엄청 부자 아니예요? 막 아이언맨이나 배트맨 같이!"
"그 정도로 부자는 아닙니다"
솔직히 나도 시온이 얼마나 돈을 벌었는지는 몰라도 반신반의하는 의견이다. 건물도 몇개나 있고, 산은 물론 섬도 사뒀고, 유명한 대기업 주식은 죄다 사들였는데 추정하기 힘들다.
"설마 그보다 더 부자는 아니지?"
"아무리 그래도 픽션은 못이깁니다. 어떻게 처음부터 세계 최고의 기업이라고 설정하고 들어가는 곳 보다 부자가 되는건 2년 가지고 어림도 없습니다"
"시간 있으면 가능하다는 소리구나"
솔직히 시온이 알고 있는 기술 중에서 다운그레이드 해도 사회에 발전을 넘어서 혼란을 불러올 기술이 상당하다. 손바닥만한 주제에 일반적인 컴퓨터 수준의 성능을 내는 물건도 만드는데 독점 들어가면 큰일난다.
"여러가지 챙겨야 할게 많네. 일단 예진에 네 방에 들어갈 침대도 필요하고, 학교 가려면 수속도 필요하고.....그러고 보니 고등학교 몇학년이야?"
"2학년이요"
"루리보다 한살 어리네. 그나마 수능 안봐서 다행이겠다"
만약 그런 꼴 당했는데 올해 수능 보려고 한다면 어지간한 노력으로는 힘들거다.
뭐, 포스 유저니까 밤샘은 가뿐하겠지만.
"아옳옳옳!"
"그래, 너 밥도 사올께. 간식 같은건 고기 종류가 좋지?"
여우는 잡식성이다. 사람 먹는 간이 많이 된 것은 주면 안되지만 고기라던가 그런건 된다. 우리집에 왔으니 비싼 소고기도 먹여주마, 짜식.
"그러고 보니 여우 키우는건 처음인데. 개랑 다른가?"
"사막 여우나 북극 여우 같은 그런 부류는 잘 보이는데 그냥 붉은 여우는 생각보다 많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여우는 멸종 한거 아니였어요?"
"복원 중이긴 해도 멸종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는 우리나라 여우는 아닌듯 보입니다"
백리가 어미 원종을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소리쳤던대로, 어디선가 도망쳤던 여우가 자생하던 걸지도 모른다. 그 왜 여우하면 모피가 비싸지 않은가? 모피 얻으려고 키우던 여우 농장도 있었을테니 거기서 빠져나온 녀석들이 번식했다고 봐도 이상할건 없다.
하드웨어는 개인데 소프트 웨어는 고양이라. 개를 키울까 고양이를 키울까 생각하던 우리들 입장에서는 최고의 애완동물이다.
"잘 키울 수 있으려나......그나마 북극 여우나 사막 여우가 아니라서 다행이네. 걔네들은 사는 환경도 조성해줘야 한다더만"
"이럴 때는 정보를 검색하는 것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낫습니다"
"응? 내 지인 중에 여우 키우는 사람이 있던가?"
"제수씨 있지 않습니까?"
"아니, 제수씨는 여우를 키우는게 아니라 여우인거고"
".........?"
옆에서 듣던 예진이만 새끼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의문을 표했다.
아니, 별건 아니고 내 사촌이랑 결혼한 여자가 구미호라서. 근데 구미호한테 여우 키우는 법 물어보면 좀 그렇지 않냐.
"얘 이름은 뭘로 할까?"
"그건 제가 정해둔게 있습니다"
시온은 당당하게 새끼 여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이제부터 댕댕이입니다"
"그냥 개잖아!"
성의가 반쯤 없는 작명이였다.
* * * *
예진이는 우리 집에서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로 전학 수속을 밟기로 했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필품들을 사와서 방 안에 채워넣었다.
"가구는 이케아가 좋긴 한데 우리야 암 같은거 안걸리니 그렇다 쳐도 애 쓰는건 좋은걸로 사야지"
"생각외로 가구 조립하는건 레고 만드는것 같아서 재미있습니다"
책상이나 책장, 침대, 의자 등등의 기본적인 가구들을 사와서 조립하니까 금새 괜찮은 여고생 방이 완성 됐다.
예진이는 집안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집 구경을 했다. 대충 방 위치나 그런걸 익히려는 듯 하지만 뭔가를 찾아다니는 낌새도 있었다.
"어, 라쿤맨이면 막 집에 비밀 지하실로 통하는 통로 같은 것도 있지 않아요? 통로로 내려가면 동굴 속에 비밀 아지트 나오고!"
"그건 배트맨이고. 우리 집엔 그런거 없어"
"슈퍼 히어로인데요?"
"배트맨은 히어로지 슈퍼 히어로가 아니잖아? 가서 팝콘이나 가져오거라 예진아"
자고로 슈퍼맨 같이 짱 쌔서 다 해먹는 애들은 비밀 연구실이나 아지트가 필요 없단다. 북극에 있는거? 그건 슈퍼맨 집이고.
"있습니다"
"......."
"비밀 연구실 있습니다"
"......."
아니, 내가 모르던게 우리 집에 있었다고?!
아무리 내가 집에서 마음 놓고 다녀도 그렇지 내 기감은 이 집안에 있는건 죄다 기감 안에 넣고 찾아본 적이 있는데? 가끔 침입자 격퇴용인지 이상한 설비 빼고는 그런 아지트는 본적 없는데?
충격적인 고백에 내가 얼빠진 표정을 짓자 시온이 작게 웃었다.
"그 표정 볼려고 일부러 그랬습니다. 제가 당신 모를줄 압니까? 분명 기감에 넣어도 이 집이나 감지하지 마당까지 감지하진 않았을겁니다"
".....아하"
시온의 말에 나는 집이 아니라 마당까지 영역을 넓혀 찾아봤다. 그러자 마당 한 구석에 잡동사니 쑤셔넣는 용도로 쓰는 작은 창고에서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를 발견했다.
"와, 진짜 있는거구나. 옛날부터 슈퍼 히어로 영화 보면 그런거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거긴 아직 나도 못봤는데!
시온은 전적이 있는만큼 뭘 만들어 뒀는지 심히 궁금하다. 기감을 펼쳐서 찾아봐도 되겠지만......미리 알면 재미 없겠지. 나중을 위해 아껴두자.
"우선 전산 처리는 다 끝냈습니다. 아직 미성년이니 주민등록증도 안나오겠지만 이름이랑 주민등록번호는 기억해두는게 좋을겁니다"
"어? 벌써요?"
"전산 처리 과정은 쉽습니다"
시온에게 제일 문제가 되는건 아날로그적인 것이다. 직접 손으로 기록하고 수정해야 하는 일이면 평범한 여자애나 다름없다.
하지만 지금 사회에 컴퓨터를 쓰지 않는 작업이 더 드물듯이 행정 관련 작업이면 하루만에 한 사람 신분 만드는건 일도 아니다.
"성은 그이 성으로 바꿔서 최예진으로 바꿨습니다. 괜찮습니까?"
"아, 어차피 천예진이나 최예진이나 모음 두개 차이인데 뭘요. 저야 이렇게까지 해주시고 감사하죠"
어차피 우리 부부는 한 10년쯤 지나면 둘이 사는게 좀 쓸쓸해서 아이 하나 입양해 키웠을 것이다. 예전에도 종종 그랬으니까.
지금은 그 시기가 좀 빨랐다고 생각하면 된다.
"캥!"
"오구오구, 우리 댕댕이 배가 고파요? 간식 줄까? 아직 어리니까 살찌는 것보다 개껌 같은게 좋겠지?"
"일단 여우는 개과니까 개 먹는거 먹어도 되니 편하네요"
"거기다가 귀엽고. 그지?"
댕댕이는 낑낑거리면서 배를 드러내 보이고 꼬리를 흔들었다. 아직 어려도 여우로서의 모습은 다 가지고 있어서 푹신해 보이는 꼬리가 요망하게 좌우로 흔들린다......솔직히 귀여움은 고양이보다 더 귀엽네.
얼추 정리가 끝나고. 저녁에는 예진이의 집들이겸 작은 파티를 열었다. 경사스러운 날은 소고기지.
"그리 좋지 못한 일을 겪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좋은 일만 있기를 기도할께. 아, 무교긴 하지만"
"그럼 누구한테 기도합니까?"
"몰라, 대충 아무나 알아서 받겠지"
내가 아는 신이 한두명도 아니고, 적당히 기도하면 아무나 들어서 잘 해줄거다. 내 신앙 받아먹고 도망치기만 해봐라.
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뭘 좋아하냐, 포스 유저 각성은 언제 했냐 같은 개인에 관한 것이였다.
앞으로 서로 알고 지내야 하니까 기본적인걸 알고 있어야 하는게 당연하다.
"책 읽는거 좋아해요. 장르는 가리지 않는다 납치되기 전까지는 순문학 계통을 주로 읽었어요"
"아니, 문과였어?!"
"그럼 우리 집에는 문과만 두명입니다. 그런데 이과가 하나라니!"
"아, 시온 아주머니는 이과예요? 의외네요, 아저씨가 이과고 아주머니가 문과인줄 알았는데"
"내가 어딜 봐서 이과야. 나는 수학 공식 보면 얄리얄리 얄라셩 거리는 사람이야. 완전 빡대가리는 아닌데 심화는 영 젬병이지"
"제가 겉보기에는 문학소녀 같다는 소리입니다"
"퍽이나"
문학은 맞는데 문학(라노벨)이겠지.
평소에 독서하는 책이 뭐더라......아무튼 이세계물이겠지. 요즘 얼마나 세상이 살기 팍팍하면 살기 쉬어보이는 이세계 가서 살려고 그런 소설 많이 나오더라. 그런데 그거 아냐? 환생 아니면 이세계 가서 물갈이 때문에 뒈진다는거?
이세계 전생 좋다고 몇몇 보긴 했는데 물갈이 때문에 뒈진놈 반이고 치트 가지고 지랄하다 뒈진 놈이 그 반의 반이고 나머지 반은 나한테 시비 털다 뒈졌다.
이세계 전생자 위에 환생자가 있다는걸 알아야지. 짜식들.
"나중에 하고 싶은 일 있습니까?"
"음......그건 아직 생각 안해봤어요"
"하긴, 아직 고등학생이면 그럴만도 합니다. 천천히 생각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걸 정하십시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거 하면서 사는게 제일 좋습니다"
"아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걸로 밥 먹고 살게 되면 고문이 된다고 그러던데"
"어차피 일하는건 똑같이 고문입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자기가 좋아하는 방법으로 고문 당하는게 좋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신이 아담과 이브를 낙원에서 쫒아낼 때 준 벌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일을 하는거다. 원래 낙원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었지만 거기서 쫒겨난 뒤로 일을 해야 먹고 살 수 있게 되었던가.
아니, 나도 지나가다 들은 말이라서 맞는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성경에서 내가 아는 말이라고는 '빛이 있으라'정도 밖에 없는데 말이야.
"남의 집이고 낯선 사람이긴 하지만 하숙집이다 생각하고 편히 있어. 솔직히 시온도 나 없을 때 집에 혼자 있어서 조금 걱정 됐는데 좀 낫겠다"
"아, 학교 다니면 좀 늦게 들어올텐데요?"
"요즘 학교 몇시에 끝나더라? 4,5시 쯤 끝나지 않아?"
"학교마다 다른데 아마 그 쯤일거예요. 그런데 야자 생각하면......"
"내가 학교랑 싸워서라도 야자 빼줄께. 공부는 자율적으로 하는거지 강제로 하는게 아니야"
억지로 한다고 시키는대로 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는 억지로 하면 더 머리에 안들어오는 법이다.
"하나 물어볼게 있는데요"
"뭔데?"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솔직히 그날 두고 갔어도 구해줬으니까 책임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굳이 이렇게 도와 주시잖아요"
깊게 생각해보면 슈피 히어로는 사람을 구해줘도 그 뒤까진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히어로가 복지까지 신경 써줘? 돈이 남아나는 것도 아니고.
나는 그 시설에서 예진이를 구해줬다. 솔직히 거기서 끝내고 돌아가도 그만인걸 일부러 호적도 만들어주고 보호자를 자처했다.
"구해줬는데 죽을거 알면 찝찝하잖아. 그래서 도와준거야"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요?"
"그럼 별다른거 있어?"
물론 성인이였다면 알아서 하랍시고 어디다 던져놨겠지. 근데 미성년자잖아. 최소한 자기 스스로 뭔가 판단하고 책임 질 수 있을 때까진 돌봐줄 생각이다.
만약 내가 거기서 냅뒀으면 일단 다시 '아틀라스'인지 뭔지 하는 놈들에게 끌려가서 실험체 행이다. 결국에는 죽을거고.
그렇게 죽어버리면 내가 구해준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길 가다가 새끼 고양이 주웠는데 마땅치 않아서 키우는 느낌이다.
"아저씨는 착한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어요"
"편할대로 생각해"
어차피 남들 평가는 신경 안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