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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58/507)



〈 58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보통 사람은 눈도 뜨기 힘들 물살을 헤치며 올라가 지상에 다다를  있었다.


한강 밑바닥이라 깊긴 했지만 발장구 한번 치지 바로 물 위로 올라갔다. 나는 딱히 호흡에 구애받지 않았지만 한동안 숨을 참았던 예진이는 거칠게 숨을 몰아 쉬었다.

"아.....지금 밤이구나"

"하늘은 간만에 보지?"

"거의 한달만이죠"


우리들은 물가로 이동해 땅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젖은 옷과 몸을 말렸다.


포스를 응용해서 수분만 증발시키면 되니까 얼마 안걸린다. 예진이는 차갑던 몸이 단숨에 따뜻해지자 한결 낫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하실거예요?"

"일단 나는 알리바이도 만들어야 하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지"


"아, 그렇겠죠"


문제는 예진이의 거처다.


"시설로 돌아가면 안되요?"

"넌 이미 사망처리 됐을거고. 만약 실종 신고를 했다 하더라도 놈들이 네가 돌아온걸 보고 냅둘거라고 생각해?"

아마 예진이는 이미 죽은 사람으로 처리 됐을 것이다. 내가 봤던 실험체들과 똑같이.

그리고 그대로 사회에 나가면 언젠가 그놈들이 다시 손을 뻗어올 것이다.

"거기다가 너는 더 위험해"

"왜요?"


"넌 예지 특성 보유자거든"

"네?!"


아까 테스트 했던 일로 파악했다. 예진이가 지닌건 단순히 감이 좋은 감각 같은 특성이 아니라 미래를 엿보는 예지 특성 보유자다.


지금이야 각성한지 얼마 안되어 보이고 숙련도 덜되서 몇분 앞을 감각적으로 느끼는게 전부겠지만 조금만 다듬으면 상당히 뛰어난 예지자가 될 소질이 있어보인다.


애초에 포스 유저에 대해 잘 모르는 나도 예지계 특성 보유자가 드물다는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대로 냅두면 국가에서든, 아니면 저쪽 단체에서든 손을 뻗어올게 자명한 일이다.


"일단 내 카드 줄께. 우선 옷 좀 사 입고 밥 먹은 뒤에 모텔 빌려서 거기서 쉬고 있어봐. 내가 나중에 찾아올께"


"어....저 지금은 휴대폰 없는데요. 연락할 방법 없는데 어떻게 찾아오시게요?"

"난 한번 만났던 사람이라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찾을  있어"

"우와......라쿤맨이라고 괴짜같이 생각 했는데 아저씨 의외로 능력있는 사람이였네요"

"사실 능력만 좋은 바보야"


내가 환생하면서 이런저런 지식을 가지긴 했지만 세간에서 천재라 불리는 사람에 비하면 한참 부족하다. 통찰력이라던가 상상력이라던가, 대충 그런 부류가.

그걸 환생자 짬으로 밀어붙이니까 능력이 좋아보이는거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보통 사람이 살았다고 해도 비슷할거다.


"새출발 하려면 새 신분이 필요할거야. 그런건 내가 준비할께"

"알았어요......그러면 내일 봐요"

예진이에게는  카드를 줬다. 블랙 카드 말고 내 이름으로 된 카드다.


나는 해가 뜨기 전까진 돌아가봐야 한다. 최소한 펜션에서 같이 잤다는 알리바이 정도는 만들어둬야 나중에 편하다.

"아, 그러고 보니까"


"왜요?"


"내 가면에 따로 호흡 기능이 달려 있었거든. 이럴 필요 없이 그냥 너한테  가면 씌워줬으면 이렇게 소란피울 필요 없었는데"


".........."


"난 애초에 호흡이 그렇게 필수적인건 아니라서 깜빡했어"


예진이가 한심하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구해준건 구해준거다. 헤어지기 직전에 그녀는 나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아저씨! 오늘 구해줘서 고마워요!"


예진이는 여러가지 일을 당했지만 지금만큼은 한결 밝아진 얼굴로 손을 흔들며 나를 배웅했다. 나도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어주며 인사했다.

길고  밤이 끝을 고했다.


*   * *



다음날 아침에는 뉴스로 한강에서 용오름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개천에서 용났다고 하는데 한강에서 용이 나는건 되려나?"

"아저씨, 용이 진짜 있어요?"

"있긴 있지"

가끔 잡아도 봤는데 뭐. 여의주는 홀라당 빼다가 시온한테 달여줬다.

옆에서 백리와 수정이가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솔직히 찔려서 좀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야밤에 큰 충격과 소리와 함께 용오름과 같이 물이 치솟아 올랐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한강 쪽으로 해서 다행이지 안그랬으면 대참사가 일어날 뻔 했다.


지하 연구시설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지하가 침수되서 찾기도 힘들거고. 거기 지반이 낮은것도 아니니 지상 연구 시설이 침수되어 난리가 나지 않을거다. 바보가 아니면 그쪽 조직도 정보를 은폐할테고.


나는 시온에게 거기서 있었던 일과 함께 예진이의 처우도 논했다.

"호적을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 하지만 포스 유저로 등록한다면  주시 받을겁니다"

"하긴, 다른 사람으로 등록해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란 보장은 없지"


호적상 다른 사람이더라도 같은 사람인 이상 주변 친구, 지인들이 못알아 볼리 없었다. 눈 옆에 점 하나 찍고 남인척 해봤자 통하는건 막장 아침 드라마 정도다.


"거기다가 예지 특성 각성자라......전에 있던 예지 특성 보유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아십니까?"

"뻔하지 뭐. 과로잖아. 나도 미래 예지 쓰면 머리가 욱신거리는데 평범한 인간이 그거 쓰고 다니면 멀쩡할거 같아?"

"딱히 그 조직이 아니더라도 나라에 잡혀가서 통조림이 되는거 한순간입니다"

다만 이번에는 조금 더 길게 쓸 수 있게 편의라는 이름에 구속과 감시를 가하겠지.

나라에서 제일 소망하는 포스 유저는 1위가 마스터 유저, 2위가 예지계 특성 보유자다. 내가 알기로 예지계 특성 보유자는 몇명 있었는데 그중 반은 사기꾼이고 몇명은 죽었고 진짜인 한명은 그나마 미국에서 일하고 있다고 들었다.

"평범한 사람으로 호적을 등록한다면.....결국에는 미성년자가 됩니다. 그런데 보호자가 없지 않습니까?"


"그렇네"


애초에 고아여서 나랑 똑같이 시설에서 자라던 애다. 여기서  호적 만들어봤자 고아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험한 꼴 많이 당한 아이인데 정작 돌아갈 곳은 없다니. 세상이 잔혹해도 애들한테까지 잔혹하면 안된다. 아이들에게 잔혹한 세상이라면 그건 어른들이 잘못한거다.


".......저기, 있잖아"


"안봐도 신작 드라마 다시보기 서비스입니다. 보호자를 자처할거 아닙니까?"

"어차피 집에 남는 방도 있잖아. 오래는 말고 그 애가 성인이  때 까지만"

지금 고등학생이니 길어야 3년. 짧으면 1,2년이면 성인이 될 것이다. 그때쯤 되면 본인 스스로 갈 길 정도는 찾을  있겠지.

그러면 적어도 시설에 가지 않아도 된다. 나도 시설에서 자라서 알지만 거긴 청소년기를 보내기엔 영 좋지 않은 곳이다.


"우리 남편은 누구 닮았는지 사람이 좋아서 탈입니다"

"인간됨됨이는 모르겠는데 성격은 괜찮지?"

나도 본인 스스로 사람 죽이는 놈이 인간성 따지는건 우습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먼저 시비 안털고 나름 사교적으로 대하는 성격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말 인성파탄자였으며 친구도 없고 진작에 범죄자로 찍혀 감옥에 있었겠지.

예진이는 우리가 보호자가 되어서 돌보기로 했다. 입양이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했지만 시온의 의견에 기각했다.

"20대 초반인 부부 사이에 고등학생 딸이 있다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아"

"게다가 제 모습이 이래서 오히려 제가 딸 같이 보일겁니다"


잘해야 20대 초반 부부 사이에 고등학생 딸이고, 대부분 속도위반한 젊은 부부가 초등학생 외국인 딸을 키우는 모양새가  뿐이다. 음.....어느쪽이던 일단 보호자는 하겠지만 입양은 나중에 생각 해봐야겠군.

나랑 시온은 자식 계획을 나중으로 미뤄두어서 가끔 가다가 인연이 되는 아이가 있으면 입양해서 키우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이른 모양이다. 게다가 입양하는 애가 고등학생인지라 거의 다 크기도 했고.

아무튼 호적 문제는 시온이 해결하기로 했다. 시간만 있으면 알아서 처리해줄거다.

다음으로.......

"무슨 일 있었어요 형?"

나에게 물어오는 백리다. 이미 내가 저질렀다는 확증을 가지고 물어오는 것이다.


그래서 간결하게 대답하기로 했다.

"다 조져버렸어"

"죽였어요?"

"어차피 증거도 없어"


경찰이 심증만 있다고 해서 잡아 처넣고 유죄로 만들면 그건 무슨 20세기 독재정권도 아니고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내가 죽인 사람들은 대부분 지하의 연구실이 침수되어 물고기 밥이 되었으며 그걸 증거로 들이대기 위해서는 지하 연구소의 존재를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가능하긴 할까? 나 하나 유죄 만들자고 인체실험 했다는 사실을 까발리게? 난 겨우 감옥가는게 전부지만 저쪽은 꼬리가 드러나서 나 이외의 다른 나라에도 그 존재가 드러날거다.


예로부터 이런 뒤가 구린 비밀 조직은 비밀 엄수가 중요하다. 들키면 그 순간부터 세력이 반감된다.


생각을 해봐, 누가 내 뒤통수 후려깔거라는걸 아는 것과 모르는건 대비하고 말고의 차이가 크잖아.

테러 같은것도 사전에 알고 있으면 하는 의미가 줄어드는 것이랑 같다.


"형은......형은 가끔 보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


솔직히 백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내 진짜 성격은 내 사람 외에는 무관심하고 사람을 죽여도 죄책감이 없는 인성파탄자다.

하지만 정작 나는 윤리와 도덕을 따진다. 그건 적어도 인간으로 남기 위해 인간성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인간이 윤리와 도덕이 없으면 짐승이랑 다를게 뭐냐? 그걸 생각하지 않는 놈들은 짐승이나 마찬가지다.


"네가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해.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건 넌 나같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한다는거야"


"그건 확실하네요. 저도 소아성애자는 조금....."


"야!"

 새끼 가끔 가다 시온 걸고 넘어지네?! 내가 연하라니까!

"내가 정말로 인간성을 포기했다면 도덕이던 윤리던  조까고 필요하면 죽여서 얻고 사회 따위는 신경 안쓰는 살인귀 같은게 됐겠지. 나는 인간으로 남고 싶어서 일부러 고집하는거야"

"그건 꼭....."


백리는 뭔가 걸린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형이 인간이 아니란 소리 같은데요"

"........"


솔직히, 정곡이였다.

나는 보통 사람보다 수백, 수천배의 삶을 살아왔고 거기서 잃은 것도, 얻은 것도 있다.

하지만 나보고 인간이라고 물으면 나 스스로도 대답하기 어렵다.


"나도 고민중이야. 그러니까 언젠가 대답해줄께"

뭐, 그때까지 백리 네가 살아 있을지 모르지만 말이야.


오랜기간 고민하고 있는걸 고작 이 삶 100년에 결정할 수 있을리 없다. 그러니 백리가 살아 있는동안 판단하기는 정말 운이 좋아야 할것이다.

오늘은 여행을 끝나고 돌아가는 날이다. 마지막 날은 펜션에서 놀았지만 그래도 펜션 수영장이 따로 있어서 거기서 놀고 나름 재미있게 놀았다.

"다들  놀았어?"


"사장 오빠 얼굴이 훤칠한데 어디 가서 뭔일 했어?"

"응? 딱히?"

"앗, 아앗......미안해! 내가 눈치 없게 이상한거 물었네! 확실히 부부랑  둘이 있으면 할만도 하겠지"


"야! 그 이야기가 아니야!"


나는 일단 방에서 나오지 않고 시온이랑 같이 잔걸로 되어 있다. 어차피 이 주변에는 CCTV도 없고 들어온건 봤어도 나간건 아무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나는 밤에 잠만 잔걸로 됐다.


아마 미리 말해둔 백리나 어린애 치고 눈치 빠른 수정이 정도는 알아차렸지 나머지는.......흠, 루리는 모르는척 하는건지 진짜 모르는건지 모르겠는다.

"짐 챙겨. 슬슬 돌아가자. 마지막 날에는 오래 노는 것보다 일찍 집에 들어가서 정리하고 쉬는게 제일 좋아"


세상에서 가장 잠이 오는 곳은 자기 집이다. 밖에서 하루 이틀 정도 자면 재미있긴 하겠지만 그게 오래가진 않는다.

차에 짐을 챙기고 출발 준비를 했다. 나도 얼른 돌아가서 예진이를 데려와야 한다.


차에 타고 출발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이들은 모두 잠이 들었다. 신나게 놀긴 했어도 애들은 애들인지라 피곤했는지 금새 떨어졌다.

애들은 역시 잘 때가 제일 귀엽다.

휴게소 들를 필요 없이 운전만 하자 1시간 반만에 서울에 도착했다. 주말이라서 차가 좀 막혔는데도 불구하고 이 정도면 양호하다.

거의 다 도착하자 애들을 깨워서 집에다 데려다 주었다. 삼일 동안 트러블은 좀 있었어도 그래도 재미있게 놀았다. 최소한 애들은  안봤으니까 그러면 잘 논거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백리와 루리를 내려주었다.

"아! 휴가 잘 보냈다!  먹고 잘 놀고 스트레스 다 풀었어!"


"너 수능 3달 뒤다"


"갸아아악! 구와아악! 그걸 왜 지금 말해! 최소한 오늘만큼은 그거 신경 안쓰고 마저 쉬려고 했는데!"

"수능 완성 100일부터 읽어야지?"


"꺄아아아!"

한창 준비하는 고3에게 수능은 일생일대의 시련이지. 나야 그쪽에 신경 안써서 크게 와닿진 않는다만. 이번 생의 수능도 솔직히 장래는 요식업인지라 대충봤고. 한 3등급 나왔나?


백리와 루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 수도권의 주말이라 그런지 차가 꽤 막힌다. 나와 시온밖에 없으니 단 둘이  이야기도  있다.


"지금 가는 길에 예진이나 픽업하고 가자"


"그쪽으로 가는겁니까?"

"어디  잡고 쉬고 있으라고 했으니까 거기에만 틀어박혀 있는것 같은데?"


기감을 펼쳐서 예진이의 위치를 파악하니 한 곳에서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물을 마시거나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는 정도다.

나는 조수석에서 원종의 새끼 여우를 쓰다듬는 시온에게 연구실에서 얻은 정보를 물어보았다.

"그 놈들 목적이 뭔데 그런 인체실험을 하는거야?"


"일단 기본적으로 가이아 포스와 라프 에너지의 융합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포스 유저의 가이아 포스.

적성종의 라프 에너지.


  이능이기는 매한가지지만 성질이 다르다. 내가 보기엔 기본적인 베이스는 같지만......비유하자면 내공과 마나의 차이 정도? 아, 무인과 마법사 아니면 구분 못하겠구나.

가이아 포스는 개개인의 개성마다 특성을 발현할 수 있다. 개발의 여지에 따라 커리큘럼을 만들면 간단한 특성도 깨우칠 수 있고. 그런 특성은 상당히 유용하다.


반대로 라프 에너지는 적성종의 가장 큰 특징인만큼 물리 내성을 들 수 있다.

그러면 포스 유저처럼 특성을 가지고 적성종처럼 물리 내성을 가진 하이브리드 초인이 나온다면?

그런 하이브리드에게도 포스 유저가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에는 포스 유저도, 군대도 막을 수 없는 괴물이 나온다. 사회를 붕괴시키고 지배하는건 한순간이다.


"실험 목표는 알겠지만  그런 실험을 하는것 자체는 데이터가 삭제 되서 없습니다. 복원 해보려고 해도 이미 물리적으로 날아가 버린지라"


"하드라도 뜯어올껄 그랬네"


"그래도 한가지 더 정보는 알아낸게 있습니다"

"뭔데?"

시온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놈들의 조직 이름은 '아틀라스(ATLAS)'입니다"


세계를 짊어진 그리스 신화 거신의 이름.

인간성 내버린 놈들치고는 거창한 조직명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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