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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55/507)



〈 55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컨테이너 트럭은 우리들을 태운채 한시간 넘게 달린 차는 이윽고 정차했다.

"대충 위치는 강원도에서 벗어나서.....구리시 부근쯤인가? 동네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한적한 곳 같네"


인체실험을 하고  실험체가 탈출까지 했는데 입막음을 위해서는 목격자가 적어야 한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주변에 민가는 없는 순수 연구시설이 필요하다.

 냄새가 난다. 위치로 보아 한강에서 나는 냄새다.


연구소가 강에서 가까울 이유가 있나? 식수 보급하려고?


아무튼 연구소에는 도착했다. 나는 기감을 펼쳐 연구소의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했다.

그리고 지하로 수십미터는 시설이 만들어져 있는 모습에 꽤나 놀랐다. 아니, 이 새끼들은 무슨 엄브렐러냐?  구리시에 라쿤 시티를 만들려고 하지?


지하로 20층은 있는것 같다. 건축법에 어긋나는걸 따지기 전에 떳떳하지 못한 놈들은 지하로 파내려가는 법이다.


"여기서부턴 내가 갈테니까 넌 가라"

"사, 살려주시는 겁니까?"


나는 정보원 겸 위장용 일행이 되어주었던 남자에게 꺼지라고 손짓했다.

"정보도 술술  말해줬겠다. 써먹을대로 썼겠다. 뒈지고 싶으면 남아 있던가"

"아, 아닙니다! 갈께요, 가겠습니다!"


남자는 덜덜 떨면서 금방이라도 도망치기 위해 살금살금 뒷걸음질 쳤다.

다른 놈들 다 죽여놓고 얘 하나만 살리는거는 불공평하지 않냐고?

글쎄, 나는 살아 있는걸 더 고통으로 생각하는 녀석이다. 내가 장담하건데 저 남자는 도망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자살을 택할 것이다.


다른 놈들 다 뒈졌는데 혼자만 살아 남아서 정신상태가 멀쩡할거라고 생각하는가? 포스 유저라도 살인 앞에서 멘탈은 별개의 문제다.


그동안 최대한 악몽을 꾸고 고통받다가 자살하라지. 제일 고통스럽게 죽는 방법이다.


남자는 도망가고 나는 연구를 앞에 뒀다. 돌입하기 전에 다시금 라쿤맨 가면을 쓰고 시온에게 연락을 했다.

"어, 난데"


[또 사람 죽였습니까?]

".....미안"


[됐습니다. 어차피 죽어도 싼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시온은 초월자 치고는 마음이 여리다. 죽어 마땅해서 죽는 녀석들에게도 동정심을 가진다. 그래서 그녀 스스로 다른 사람을 해하는 일은 드물다.


그렇기에 사람을 죽이고 해치는 일은 내 전문이다. 만약 시온이 이번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면 시간도, 돈도, 노력도 많이 들어갔겠지.


"이제 곧 연구소로 돌입할거야. 여기 위치 찾았어?"


[이 위치에 이름으로는 연구소로 등록된 곳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 큰 곳은 아니고 그렇다고 작은 것은 없지만 진행중인 연구도 그리 특이한건 없는 곳입니다]


"역시 레버리지 사 소속의 연구소지?"

[그렇습니다]


레버리지 사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기업이다. 아마 이 연구소도 그저 여러개로 뻗은 가지 중 하나고 타격을 주고 싶다면 미국의 본사를 공격해야 하겠지.


하지만 그건 안된다. 인체실험을 했어도 일단은 미국 기업. 그건 테러 행위로 간주되서 미국이란 나라 자체를 적대적으로 만들  있다.

물론 강대국인 미국이라도 내가 질거라고 생각 안한다. 단지 그 과정에서 시온이 쌓은 대부분의 부가 날아가고 사회 정세도 같이 무너지고.....아무튼 지구 말아먹을거다.

일단 그 다음 이야기는 나중에 생각하고 눈앞의 일을 해결하자.

"돌입 하기 전에 주의 사항같은거 있어?"

[만약 내부에서 해킹을 한다면 저도 정보를 빼돌릴 수 있습니다. 바깥에서 뚫을 수 없다면 내부에서 뚫으면 되는 겁니다]


"아하? 안에서 파고들자고?"

시온은 이능이 결합된 기술에는 취약하지만 그건 바깥에서 안으로 침입할 수 없다는 소리지 안에서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지 못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안에서 해킹을 시도하면 시온은 이곳의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안에 들어가면 분명 연구용이던 분석용이던 컴퓨터가 있을겁니다. 어떤 형식의 컴퓨터일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사용자 권한을......]


"빠르고 쉽게"


[연구원 하나 조져서 접속 허가 받은 다음 마스크의 왼쪽 귀에 달린 USB를 꽂으면 됩니다]


"오케이"


나는 슬쩍 마스크의 머리 위에 있는 귀 부분중 왼쪽 부분을 만져보았다. 삼각형의 귀가 이리저리 돌아가더니 이윽고 뽑혔다. 그 끝 부분에는 USB같은 단말이 달려있어서 꽂을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 그냥 들어가실겁니까? 나중에 테러로 오인 받을겁니다]

"내가 주로 깽팔칠 곳은 여기 지하인데, 지들이 테러라고 지랄할 수 있으면 해보라지"

내가 박살낼 곳은 지상의 위장용 연구실이 아니라 지하의 비밀 연구실들이다.

거기서 깽판쳤는데 테러라고 하려고? 뭐가 박살났는데? 그걸 따지고 들어가면 곤란해지는건 저쪽이다. 내가 아니다.


나는 담을 넘어가서 연구소로 침입했다.


형 왔다 씹쌔들아.



 *  *  *


 기감에 걸리는 것에 의하면 지하의 비밀 연구실로 내려가는 방법은 엘리베이터 밖에 없었다. 지하 1,2층까지는 위장용 연구소의 영역인듯 보였으나 약간의 텀을 두고 더욱 지하에는 비밀 연구실이 있었다.

대충 인증하지 않으면 비밀 연구실로  수 없다는 방식이겠지. 그런데 그거 아냐?


"몸이 나쁘면 머리가 고생하는 법이지"


몰래 잠입한 나는 엘리베이터 앞에서 강제로 문을 열어 비집었다. 그리고 저 아래에 지하 1,2층 정도로 보이지 않을만큼 깊은 공간이 보인다.


그대로 몸을 던져 아래로 떨어졌다. 몇초간의 체공 시간이 흐른 후, 엘리베이터 카 위에 착지했다.

이미 아래쪽에 있었는지 상당히 깊은 곳에 도착했다. 대충 전체적인 비밀 연구실에 3분지 1 지점. 아직 초입이지만 여기서는 더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엘리베이터 카의 천장을 부숴버리고 엘리베이터 내부로 들어간 뒤에 다시금 문을 비집고 열어 본격적으로 비밀 실험실로 들어갔다.

꽤나 깔끔한 디자인의 내부다. 흰색과 밝은 하늘색을 베이스로  통로가 나를 반겨주지만 기분은 더러운건 마찬가지다.

일단 컴퓨터 부터 찾자.  전에 연구원 한놈을 조질 필요성이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사람은 주로 더 아래쪽에 깊은 연구실에 있었다. 상층에는 사람은 몇 없어서 생각보다 얻을게 별로 없어보인다.


나는 여기  목적이 두개다.

하나는 일단 이 놈들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자식들을 죄다 박멸하는 것이다.

"박멸하는데 따로 숨을 필요는 없지"


암살이란 자고로 목격자를 전부 죽이면 암살인 법이다.

복도를 조금 지나서 천장을 바라보니 감시 카메라가 있었다. 아마 엘리베이터 쪽에도 있었겠지만 반응이 없는걸 보면 지상의 연구실에서 관리하나? 아무튼.

니들 좆됐다고 엄지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쳐  해주고 더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 누구......?"


그리고  연구소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났다. 인간이라 칭하지 않는 이유는 여기 있는 놈들은 대부분 인간이라 부를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쾅! 쾅! 쾅!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라쿤맨 가면을 보고 의문을 표했다. 나는 빠르게 달려가 그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일단 벽에 몇대 쳐서 이야기 하기 쉽게 만들었다.


"으, 어어......"


"여기 직원이지? 시설에서 쓰는 컴퓨터 같은거 접근 권한 있어?"

"그, 그건 연구원이 가지고 있....."

"그래?"


가가가각!!

나는 그대로 그의 얼굴을 벽에 긁어 갈아버렸다. 벽에는 일직선으로 그어진 붉은 자국이 그려진다. 처음에는 비명을 지르려고 하다가 이내 사그라 들어서 의식을 잃어버렸다.

심한거 아니냐고 물으면 반대로 물어봐주마.


이런데서 일하는 새끼가 아무것도 모를것 같냐?

지상의 위장용 연구소면 몰라도 지하에 몰래 만들어둔 연구소에서 일하는 녀석이? 차라리 다 큰 어른이 아직 동심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믿겠다.

반쯤 시체가 된건 어떻게 해야하나 생각할 무렵. 연구실 전체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기잉, 철컥!!

천장과 벽면에서 덮개가 열리더니 안에서 침입자 격퇴용 설비가 튀어나왔다. 총구로 보이는게 이쪽을 향해 겨누어지고 레이저 조준경으로 붉은 점이  몸 이곳저곳에 보인다.


투두두두두두!!!

그리고 잠시의 지체할 시간도 주지 않고 사격한다. 사방에서 쏘아지는 탄막은 사람 하나 걸레짝으로 만들기 쉬웠고 내가 들고 있던 남자의 몸뚱이는 반 시체에서 그냥 시체가 되어버렸다.

사용하는 총탄은 대인 저지력이 뛰어난지 충격량이 장난 아니였다. 하지만  역장을 뚫기에는 부족했다. 나는 걸레짝이 된 시체를 버리고 총탄이 난무하는 복도를 걸었다.


투두두두두!!


위협적이면 박살내겠지만 내 역장도 못뚫는데 신경쓸 필요 없었다. 그저 총알만 낭비할 뿐이다.



[연구소 내부의 직원들께 알려드립니다. 현재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경계 레벨을 C에서 B로 수정합니다]



연구소 전체에 울려퍼지는 방송이 더욱 높은 수준의 경계 경보를 알렸다. 그리고 총탄 세례가 그쳤다.

아무래도 총은 소용 없다고 판단한것 같다. 일반적인 세상이라면 총이 무기의 정점이지만 여기는 다르다.


주로 냉병기를 사용하더라도 총기보다 더  위력을 발휘할  있는 자들이 포스 유저다. 일반적인 포스 유저는 화기에 약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약하다는건 아니다.


나는 이쪽으로 몰려오는 기척을 느끼고 일단 내 목표 두가지를 이루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딱히 건물의 청사진이 없어도 구조는 대략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데 이 시설은 크게 3 구역으로 나뉜다.


상층부 까지는 그나마 엘리베이터로 통할  있는데 중층부로 가려면 상층부에 있는 통로로 이동해야 하고, 하층부로 가려면 또 중층부에 있는 통로로 가야 한다.

죄다 때려 부순다면 딱히 이동 통로를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나는 우선적으로 정보를 수집해야 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그런 방법은 안된다.

내가 있는 곳은 상층부의 제일 아래. 여기에 중층부로 통하는 통로가 있다.

"왜 이렇게 번거로운 구조로 만들어둔건지 좀 불안한데....."


정보 유출이 문제라도 연구소라는 특성상 너무 비효율적인 구조다. 하지만 침입자가 들어온다면 침입하는데도, 탈출하는데도 힘이 들긴 하겠다.


본격적인 연구 시설은 중층부터 있는듯 보인다. 나는 빠르게 중층부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았다.

마찬가지로 문을 강제로 비집어 열고 아래로 향했다. 여기서는 중층부 제일 아래까지 내려갈 수 있다.

이제 중층부. 여기서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연구원도 있고 포스 유저도 있다. 그 중에서 포스 유저는 위에서도, 아래에서도 올라와 나를 추적하고 있었다.

"이야, 얘네들  많은 모양이다. 포스 유저를 이렇게 많이 고용하고"


아마 명목상 연구소에서 연구용으로 고용했겠지만 실제로는 이런 더러운 일을 하는게 대부분일거다.

일직선 통로 끝에서 문을 박차며 한팀의 포스 유저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나를 발견하고 각자 무기를 쥐었다.


"저기 있다! 라쿤맨!"


"오, 환영인사 참 격한데!"

숫자는 열명. 아무래도 두류산에서 봤던 애들을 보면 한팀에 열명으로 보인다. 분대 규모로 보아 못해도 몇팀은  있을거라고 추정된다.


일직선상 통로를 방패로 가로 막으며 뒤에서는 원거리 계통 특성이나 무기를 지닌 포스 유저가 이쪽을 향해 공격했다. 단순한 불덩이 같은 것도 있었지만 화살 같은 냉병기도 있다.

파이어볼 같은 것은 내 인근에 착탄하자 펑! 하고 터졌다. 복도의 상당 부분을 이글거리며 태우고 화살은 그 뒤에 화염을 가르며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잡았지만 이윽고 사방으로 전격이 방전된다.


"옛날부터 궁금했는데 왜 포스 유저들은 총을 안쓰나 몰라?"


난 엄밀하게 말하면 포스 유저가 아니다. 그래서 포스 유저가 알만한건 잘 모른다. 총 쓰는 포스 유저......화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미국에 한명 있다곤 하지만  외에는 들어본 적 없다.


콰앙!!

놈들에게 달려들어서 방패를 든 녀석들을 방패까지 통째로 밀어 재낀다. 순식간에 진형은 무너지고 뒤에 있던 후방 인원이 무방비 상태가 된다.


쓰러진 방패병의 팔다리를 짖밟아 무력화 시키고 그대로 뒤에 있는 놈들에게 주먹을 날렸다.

가장 먼저 아까 파이어  같은거 날리던 놈.


"커억?!"

놈의 가슴이 함몰되어 피를 토했다. 보통 픽션에서  나오는게 각혈이지만 실제로 내출혈은 상당히 중상이다.


나머지도  쓰러트리고 마지막으로 활을 들고 있는 포스 유저의 멱살을 잡아 궁금하던걸 물어보았다.

"야, 넌 와  안쓰고 활 쓰냐? 총이 더 낫지 않아?"

"어.....어?"

"솔직히 활보다 총이 폼나잖아"

뭐라고 해야하나. 활은 전통적이면서 고풍스러운 간지가 있지만 총은 텍-티컬한 간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총이 더 간지가 난다.

그래서 옛날에 람보처럼 양손에 기관총 들고 쏴봤던적도 있었다.

"그, 그야 총알 같은 작은 물건에 충분한 포스를 담는건 아무나 못하지 않습니까....."

"아, 그런 의외의 문제가 있었나?"

생각해보면 원종 처리반은 화기를 사용했지만 그건 원종이 적성종 같은 물리 내성이 없어서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침입자는 우선적으로 1차로 방위 시스템으로 아까처럼 화기로 공격해 걸러내고 그래도 격퇴하지 못하면 2차적으로 포스 유저를 투입해서 처리한다. 총보단 솔직히 포스 유저가 휘두르는 검이  효과적일 수도 있으니까.

"대답해줘서 땡큐, 대신 곱게 죽여줄께"

"자, 잠깐. 살려"

뚜둑, 하고 목을 비틀어 단숨에 즉사시켰다. 신경이 맛이 갔는데 아프진 않을거다.

포스 유저 한팀을 다 죽여버리고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꽤나 수상쩍은  하나를 발견했다.

안에는.......사람 반응은 있는데 방 안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는데? 경보 듣고 피하는 사람은 대부분 연구원이고 나를 찾아오는 사람은 포스 유저지만 이쪽은 포스 유저인데도 방에 구속된 느낌이다.

문을 박살내고 들어가자 안에는 마치 정신병동 같이 복도 양층으로 일정 간격을 두고 문이 있었다. 문은 바깥에서 봐도 두텁고 튼튼했으며 문에 달린 작은 창문조차 굵은 쇠창살로 되어 있었다. 흡사 감옥같다.


옆에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자 어느것 하나에게 반응이 왔다. 삑, 하는 소리와 함께 문에 달린 창문이 열려 안을 볼 수 있게 됐다.

안에는 사람이 있었으나 적극적인 생명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으니 살아 있는, 죽이면 저항도 안하고 그냥 죽을법한 사람만 벽에 기대 앉아 있었다. 내가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응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짓을 하면 사람이 저렇게 변할까?

일단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관계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것 같으니 구출하기로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반응이 없는 사람은 구해줘도 의미가 없다.  의욕도 없는 주제에 구해줘서 탈출시켜봤자 정신병원 행이다.


애초에 지성이 남아 있는건지 불확실하다.

"거기 아저씨! 이봐요!"

".........."


반응조차 없었다. 부르는 소리에 반응이 없는걸 보면 살 의지가 없으니 차라리 여기서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혹시 모르니  일대의 모든 방을 살펴 보았다. 구속된 사람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았다. 대충 성비는 반반이였지만 그 중에서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만났던 백화점 화재 사건이나 납치 사건의 탈출했던 사람들을 보면 뭐라고 할까......확고한 의지의 부족함 때문이라고 할까? 내가 판단하긴 뭐하지만 모든 희망을 버리고 자포자기한 사람의 모습이다.

그러던 중,  방에서 유일한 생존자를 발견했다.


"여보세요?"

"......!!"

내가 물어보자 가만히 있던 여자는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그리고 허겁지겁 문가로 다가와 철창을 두드렸다.


"저, 저기요?! 저기요? 아저씨 라쿤맨 맞죠? 그때  부산에서 참치 회쳐먹던!"

".......아, 왜 하필 사람 구해준 것도 아니고 회쳐먹은걸 대는건데?"

"아무튼 구해주세요! 저 여기 납치됐어요!"


"일단 문에서 떨어져. 박살낼거니까"


문은 엄청 두꺼웠다. 철은 아닌 특수 금속으로 거의 한뼘 정도로 두껍게 만들어서 어지간한 포스 유저는 탈출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아마 벽도 마찬가지겠지.

이번에는 조금 강하게 문을 후려쳤다. 묵직한 금속음이 들리고 모든 시큐리티를 박살내어 문을 아예 산산조각 냈다.

거의 폭탄이 터진듯한 모습과 더불어서 안에 갇혀 있던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나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기껏해야 루리랑 비슷한 또래? 잘해야 갓 성인이고 어리면 고등학생 정도다.


"라쿤맨 아저씨, 저희 구하러 온거예요?"

"아니, 그냥 나쁜 놈들 조지러 왔어"


"씨, 거기서는 그냥 구해주러 왔다고 하면 안되요?"

"거짓말은 나쁜거란다. 근데 너 몇살이니?"

".......저 고2요"


"아직 애네"


미성년자다. 이런 곳에 미성년자가 납치된걸 보면 여기 있는 놈들의 영향력을 조금이나 엿볼  있었다.


 아이도 포스 유저다. 각성한지 몇달 되지 않아 보이지만 가지고 있는 포스량 자체는 백리보다 많아 보였다.


"여긴 어떻게 오게 됐어?"

"몰라요. 밤에 길 가다가 갑자기 이상한 아저씨들이 납치해서.....눈 떠보니까 여기였어요"

"납치된지 얼마나 됐는데?"


"그리 오래는 안됐어요. 한 2,3주 정도?"

거의 한달. 아마 내가 영등포 백화점 사건 이후에 납치된 아이로 보인다.

"부모님은?"

"......없어요. 저 고아라 시설 출신이거든요"


"대공황 시절에?"

"아뇨,  뒤요"


20년 전에는 적성종과 포스 유저가 동시에 출현한 혼란의 시기다. 당연히 그때에는 사상자가 많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생겨난 고아들 때문에 따로 국립 시설을 세웠다.


지금이야 축소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도 간간히 적성종에 의해 고아들이 생겨난다. 현 사회의 20대의 일부는 시설 출신이다.

"부모님도 없어서 딱히 뒷일 생각할 필요 없는 고아나 납치하는건가? 이 새끼들 하는 짓 봐라?"


"아저씨, 우선 탈출하는게 어때요? 여기로 몰려오는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데....."


강화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 조금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도 육체를 강화해 들리는 모양이다.


짐이 하나 생겼지만 그리 신경쓸건 아니다. 하나나 둘이나 같다.

"일단 여기 정보를 빼돌린 다음에, 그 다음에 나갈건데"

"어......그거라면 여기보다 더 아래에 있을거예요. 가끔 실험이다 뭐다 해서 끌려간 적이 있거든요"

"실험?"

"네......이상한 주사를 놓거나 그랬어요"

그녀의 팔에는 주삿바늘 자국이  있었다. 포스 유저는 신체 재생력도 높아서 그런 자국 쯤이야 금방 없어지지만 흡사 거부반응이라도 일으킨듯 붉그죽죽한 자국과 그 주변에 변색된 혈관 자국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조용히 몸 안을 관조했다.


.......가이아 포스보다 더 안쪽에, 이질적인 기운이 들어차 있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냅두면 위험하기는 같다.


한순간 정신을 집중해서 그 기운을 없에기로 했다. 이걸 생각하면 인피티니 포스 코어에 시동 걸어놓길 잘한것 같다. 아무리 다른 기운이라도 인피니티 포스 코어는 모든 이능을 받아들이며 흡수한다. 그리고 내 힘으로 바꾸어낸다.


그녀의 체내에 있는 이질적인 기운을 전부 흡수하고 손목을 놓아 주었다. 심호흡을 하며 그녀는 가벼워진 몸에 안도를 표했다.

"어? 어? 아저씨, 지금 몸이 편해졌어요. 뭐 한거예요?"

"네 안에 이상한 기운을 흡수했어. 내가 봐서 아는데, 그거 그대로 두면 좋진 않을거야"

그녀의 안에 있던 이질적인 기운은 가이아 포스보다는 적성종이 가진 힘과 유사했다. 뭐라고 하더라......라프 에너지? 적성종이 가진 힘을 그렇게 부른다고 하던데.

자세한건 연구 자료를 뒤져봐야 알겠지만 만약 포스 유저와 적성종의 힘을 융합한다면 상당히 무서운 결과물이 튀어나온다.

적성종은 물리 공격이 안통하지만 포스 유저는 공격이 가능하고.


포스 유저는 적성종을 이기지만 화기는 통한다.


그럼 적성종과 포스 유저를 반반씩 섞으면?

물리 공격은 안통하는데 포스 유저와 같은 초인적인 능력은 그대로 가진 완전체가 탄생한다.


그런 존재를 뭐에 써먹을진 모르겠지만 인체실험을 하는 시점에서 탈락이다. 우선  시설에 대한 정보를 해킹한 뒤에 책임자를 찾아보자. 아마 제일 아래쪽에 있겠지.

"일단  볼일 다 끝난 다음에 같이 탈출하자. 걱정마, 집에 데려다 줄께"


"......저 집이 시설인데요"


"누가 몰라서 그래? 나도 시설 출신이야. 수학여행 가는날 2만원 챙겨주는 짠돌이 새끼들이지만 그래도 여기보단 낫잖아"


"아, 우린 3만원 챙겨주던데"


"너네 시설은 그나마 낫네"

같은 시설 출신이라고 하니까 조금은 긴장감이 풀렸는지 안심한 표정을 지었다. 피곤과 불안에 찌들어 보여도 포스 유저 중에 미남미녀가 많듯이 꽤 예쁜 얼굴이다.


비슷한 나이대의 루리랑 비교하면......루리는 귀여운 스타일의 강아지 같은 느낌이라면 이쪽은 새끼 고양이 같은 분위기다.

"이름이 뭐야? 뭐라고 부를진 알아야 하잖아"

내가 이름을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저는 천예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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