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나는 주머니에서 라쿤맨 마스크 헤드폰을 꺼내 머리에 썼다.
"난 가서 살펴볼께. 시온 한테는 그렇게 전해줘"
"잠깐만요 형! 저도 같아 가면 안되요? 완전히 무관계는 아니잖아요!"
"야, 저쪽은 세상에 드러나지도 않고 사람 가지고 인체실험하는 쓰레기들이야. 네가 끼어들면 오히려 방해야"
"그래도 없는 것 보단 낫잖아요?"
"그리고 얼굴 까고 가게? 그러면 넌 좆되는건 한순간이다?"
"........"
백리의 마음은 이해한다. 자기 아빠를 죽일 뻔하고 애들을 납치하는 납치범을 괴물로 만들어 그 모든 것의 시작을 제공한 놈들의 꼬리를 어떻게 해서든 잡고 싶겠지.
그에게는 힘이 있지만 아직은 미약한 힘이다. 겨우 그런 힘으로는 나를 도울 수 없다.
백리의 표정을 보고 안타까움과 무력함이 스쳐 지나갔다. 그 기분 나도 참 잘 알지.
"만약 정말로 날 돕고 싶거든. 아마 멀지 않아서 그럴 때가 올거야"
".....그래서요?"
"그때는 네 선택에 맞길께"
나는 헤드폰의 버튼을 눌러 라쿤맨 마스크를 썼다. 그리고 땅을 박차고 사람의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달리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 근방은 군 부대 외에는 사람이 많은 장소는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금요일이라도 평일. 이미 휴가 나온 사람은 진작에 터미널 버스 타고 나갔고 보이는 군인들은 드물다.
남의 눈을 신경쓰지 않고 빠르게 산을 타며 넘어간다. 평지보다 나무나 수풀 같은 장애물도 많지만 나에게는 별로 방해되지 않는다. 뛰어넘고 부수고 돌파해 나가면 사람의 눈을 신경쓸 필요가 없기에 오히려 도심에서 달리는 것보다 빠르다.
우리가 놀던 캠핑장으로 돌아온 나는 기감을 펼쳤다. 내 능력인 '간섭'과 '감각'을 동시에 사용한 역장은 가볍게 펼쳐도 이 근방의 모든 것이 내 기감에 들어왔다.
사람의 기척이 열댓, 생물의 기척은 수십, 그중에서 작은 동물을 빼고 가이아 포스를 흘리고 다니는 녀석의 기척을 찾았다.
놈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놈의 기척 바로 지근거리에 있는 작은 기척이 또 하나.
"원종 대책팀은 아직 수색중인가"
아까 캠핑장에서 만난 이후로 1시간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포스 유저라도 이 넓은 산에서 수색하는데는 시간이 걸리는게 당연하다.
아직 원종의 위치가 발각되지 않은 지금이 적기였다. 나는 그들과 마주치지 않는 루트를 찾아 빠르게 산을 올라갔다.
트이진 않았지만 경사진 곳에 큰 바위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서너개의 큰 바위가 쌓여 만들어진 좁은 틈새에서 내가 감지했던 기척이 느껴졌다.
"크릉!"
몸집이 커져서 울음소리도 여타 여우들과는 다른건지 놈이 호랑나 사자같은 으르렁 소리를 내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털을 곤두세우고 경계하고 있다. 몸에서 가이아 포스를 줄기줄기 뿜어내는 모습은 아까와 적대하는 태도가 훨씬 다르다.
조금만 더 다가온다면 물어죽이겠다는 의사 표시가 확실하다.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오기 전에 챙겨둔 육포를 꺼냈다.
봉지를 뜯어 내용물을 꺼내서 바위굴 앞에 살짝 두고 기다렸다.
5분쯤 기다렸을까. 육포 냄새에 이끌려 굴 안에서 뭔가가 기어나왔다.
"끼잉, 끼잉!"
작은 새끼 여우였다. 낳은지 몇달 되지 않은 여우는 완전히 새끼는 아니였지만 손 위에 올릴 수 있을만큼 작았다.
새끼 여우는 엄마 마음도 모르고 내가 뿌린 육포를 물어뜯었다. 옴뇸뇸, 맛있게도 먹는다.
작은 육포 조각 하나를 다 먹고 새끼 여우는 육포 냄새가 나는 나에게 다가왔다.
여우는 원래 호기심이 많은 생물이다. 더군다나 새끼라면 뭐든지 신기할 나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끼 여우를 쓰다듬어주었다.
"내가 아까 살기를 쏘아보냈어도 도망치지 않았던 이유가 이거구나"
여자는 약하다. 하지만 엄마는 강하다. 모성애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또다른 말이다.
내가 아까 저 원종에게 뿌렸던 살기는 보통 사람은 공포로 죽을 수 있을 수준이였다. 야생동물이라면 겁을 먹고 도주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원종이라 하더라도 녀석은 겁을 먹었어도 도망치지 않았다.
새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주변은 저 원종의 영역이다. 위협을 하더라도 새끼를 위해서 끝까지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새끼를 쓰다듬기만 하자 원종은 으르렁거리던 것을 멈추었다. 경계는 하지만 아까보다는 반응이 나아졌다.
나는 육포 한조각을 더 주면서 새끼 여우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한마리 밖에 없다는건....."
새끼 여우는 검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말라붙은 핏자국은 인간의 것은 아니다. 인간의 피가 묻은건 어미인 원종 뿐이다.
여우는 새끼를 한마리만 낳지 않는다. 개가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는것처럼 같은 개과인 여우도 여러마리의 새끼를 낳는다.
그런데 한마리에 그 새끼의 몸에는 인간이 아닌 다른 피가 묻어 있다는건.....다른 새끼는 전부 죽었다는 소리다.
.....뭔가가 더 있다.
나는 조용히 생각했다. 좀 더, 좀 더 생각을 하자.
원종의 새끼는 원래 여러마리였지만 한마리 빼고 전부 죽었다.
그러면 누가 죽였을까?
인간인가? 아니, 괜히 건드려서 피보려는 바보가 있을리 없다.
다른 야생동물인가? 아니, 원종이 되어서 산주(山主)가 된 녀석의 새끼를 죽일만한 포식자는 없을거다.
다른 뭔가가 있다, 제 3자가.
나는 다시금 의식을 집중했다. 아까는 대충 찾아봐서 몰랐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감각을 집중해 기감에 걸리는 녀석을 찾아보았다.
거기서 하나.
포스 유저도 아니고 적성종도 아닌 뭔가의 기척이 여기서 좀 떨어진 곳에서 느껴졌다.
".......증거가 아직 조금 부족한데"
나는 확신을 더하기 위해 시온에게 연락했다. 라쿤맨 마스크에 달린 연락 기능을 사용하자 시온에게 바로 연결됐다.
[무슨 일입니까?]
"놀 때 미안한데 잠깐 조사해 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어떤겁니까?]
"원종 목격 최초 신고자. 그리고 사망자에 대해서"
이 원종을 목격하고 누군가 죽어 피해를 본 사람. 놈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잠시 뒤에 시온이 대답했다.
[최초 신고자는 모릅니다. 익명으로 되어서 정보가 없습니다......하지만 사망자의 정보는 있습니다]
"누군데?"
[일단 인근 연구소 직원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레버리지 사 소속의 포스 유저던가 그러지?"
[그렇습니다]
퍼즐 조각이 다 맞춰졌다.
원종이 사람을 공격한 것도, 새끼가 한마리 밖에 없는것도 전부 이해가 됐다.
이미 못해도 몇달 전에 원종으로 각성했던 녀석은 이 산의 터주로 조용히 살다가 내가 만났던 백화점 화재 사건의 채정혁, 그리고 소아납치, 살해 사건의 김정수 같은 실험체와 만났을 것이다.
지금, 이 산에 있는 놈이 그 증거다.
그리고 놈과 싸우다가 새끼를 잃은 원종은 남은 한마리를 데리고 피신했다.
.....거기서 한가지 오해가 생긴다. 실험체를 다시금 포획하러 왔던 레버리지 사 관계자는 원종과 조우했다.
"그놈들을 죽인거구나?"
다른 사람이라도 놈들이 소속된 곳과 실험체를 만든 곳이 같다면 같은 냄새가 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원종은 자기 새끼를 죽인 녀석과 같은 냄새가 나는 놈들을 물어죽였다.
혹은 새끼가 죽은 충격으로 분노에 미쳐 날뛰다가 우연히 그놈들을 마주쳤던지.
몇명은 도주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로서는 원종을 상대하기엔 인력이 부족했거나 노하우가 부족해서 원종만큼은 따로 처리하도록 신고를 했을 것이다.
"그 자식들도 하청인 모양이구나. 널 찾다가 정작 실험체를 들키면 어떻게 하려고?"
아니, 들켜도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 놈들이 하는짓을 보면 입막음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했을테니까.
원종은 피해자......아니, 사람은 아니니 피해동물이였다.
조용히 살던 녀석은 레버리지 사에서 만든 실험체로 인해서 새끼를 잃고 거기 출신인 놈들을 물어 죽였더니 그 때문에 세상에 알려져서 죽게 생겼다.
안타까운 이야기다. 여태까지 조용히 살다가 그놈들 패거리 때문에 모든게 꼬였다. 새끼도 잃고 자기 목숨도 잃게 생겼다.
비록 사람을 죽인건 용서받지 못할 짓이지만 그 분노가 이해는 간다.
자식을 잃은 고통과 분노는 세상을 불태워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끼잉, 끼이잉...."
새끼가 울자 원종은 조심스레 녀석을 핥아주기 시작했다. 화목한 여우 가족의 모습이라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결국은 어미인 원종은 죽어야 한다.
사람을 죽인 동물은 사살되어야 옳바르다. 사람을 죽인 사람도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데 동물이야 오죽할까.
"넌 인간을 죽였으니까, 죽어야 해"
"캥!"
여우 특유의 콧소리를 내며 원종이 울었다. 포스를 각성해서 지능도 올라갔는지 간단한 말은 알아 듣는 듯 보인다.
마음 같아서는 데려가고 싶다. 하지만 야생동물인데다 원종인 이 애가 좁은 집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까? 산에서 뛰놀던 기억이 있는데?
"당연한 논리야. 죽였으면 죽는 것도 각오해야 하지"
나 같은 녀석도 그러고 있다. 나는 언제나 죽을 생각을 염두해둔다. 단지 내가 원하는 죽음이 있기에 그걸 고집한다.
여태까지 환생을 하면서 내가 죽여온 생명이 몇인데 살아서 법 따위로 심판받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가? 절대 아니지.
"대신 새끼는 걱정하지 마"
"끼이이잉....."
새끼는 데려갈 수 있다. 아직 어리니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는 부모가 걱정하는건 남겨진 자식밖에 없다. 자신이 없을 세상을 살아갈 자식의 앞길이 걱정되어 눈도 제대로 못감는다.
적어도 새끼만큼은 내가 책임지고 키워줄 생각이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
원종은 아무말도 없었다. 하지만 서로 교감은 된듯 보였다.
새끼는 어미에게 애교를 부리며 원종에게 몸을 비볐지만 잠깐 새끼를 바라본 그녀는 내쪽으로 조용히 새끼를 밀었다.
어미의 행동에 당황한듯 새끼가 발버둥치며 어미에게 다가가려고 했지만 매정하게 뿌리쳤다.
나는 그런 새끼를 품안에 끌어안았다.
미안하다, 이게 전부 인간의 욕심 탓이니 원망하려거든 마음껏 원망해라.
"갈 때는 아프진 않게 가라"
나는 어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약간의 포스를 주입해 통각 신경을 마비시켰다.
감촉은 느껴져도 심한 고통은 느끼지 못할 것이다. 총에 맞은 고통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겠지.
"잘 가라"
내가 마지막 인사를 건내자 어미는 아무런 대답 없이 뛰쳐 나갔다.
어미를 찾는 새끼의 울음소리만 숲에 울릴 뿐이였다.
* * * *
다시금 일행들에게 돌아온 나는 원종의 새끼를 시온에게 건냈다.
"어? 무슨 동물입니까 이건?"
"여우"
"왜! 새끼 동물이다!"
"개야? 나 개 좋아하는데!"
"여우래!"
"뭐? 댕댕이가 아니라 호메떼 호메떼였어? 짱커엽!"
전에 애완동물 이야기가 나와서 고양이를 키울까 개를 키울까 고민했는데 생각치도 않게 입양하게 되었다. 여우는 하드웨어는 개인데 소프트웨어는 고양이라 부를만큼 애교도 많고 요망한 귀여운 동물이다.
"최 사장님? 이 여우는 어디서......?"
"혹시 싶어서 잠깐 거기에 다시 가봤는데. 근처에 얘가 있더라고요. 어미는 이미 죽을테니 냅두면 죽어버릴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서애씨는 조금 미심쩍은듯 보았지만 애들이 좋아하는 모습에 슬쩍 넘겼다. 여우는 귀엽지만 새끼 여우는 더 귀엽다. 아직 완전히 성체가 되진 않았어도 붉은 여우 특유의 갈색 털은 나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실겁니까? 이대로 휴가 끝내고 돌아갈겁니까?"
"할 일이 좀 있어서 원래 계획대로 내일 돌아가는게 나을 것 같거든"
"그러면 근처의 펜션을 알아보겠습니다"
"내가 아는 곳이 있어. 거기는 강 옆이기도 하고 펜션이 따로 수영장도 있으니까 거기 먼저 알아보자"
거기 펜션 이름이 뭐였더라....작년 여름에 다녀왔는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위치는 대충 알고 있으니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면 나올 것 같다.
아이들은 한창 새끼 여우를 귀여워 해주고 있을 무렵.
타앙, 하는 총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 주변은 산이 많아서 소리가 잘 울리니 총성은 멀리까지도 충분히 들린다. 첫번째 총성이 들림과 동시에 이어서 두세발 더 이어서 들렸다.
그리고 총성이 멎었다.
"어......"
백리가 눈치 챘듯 보인다. 벌써 잡혔을리 없지, 하고 생각하려 해도 다들 들었던 증거는 귓가에 아직도 울리고 있었다.
아이들도 뭔가 눈치 챘는지 조용히 있었다. 새끼 여우만 낑낑거리며 뭔가를 호소할 뿐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서 우리들에게 다시금 동시에 문자가 왔다. 오늘만큼 문자가 싫어지는 날은 처음이다.
두류산에 나타났던 원종을 사살했다는 소식이다.
"백리야"
"네, 형"
"세상엔 여우 한마리 목숨보다도 못한 새끼들이 참 많아, 그치?"
총성에 놀랐는지, 아니면 어미를 잃었다는 것을 눈치 챘는지 새끼 여우는 아까보다 더 발버둥치며 울었다.
왜 어미 여우 원종을 구해주지 않았느냐, 하고 원망하고 타박한다면 할말이 없다. 하지만 나도 나름의 룰이 있는 법이다.
나는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를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기를 치던 사고를 일으키던 간에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면 법에 의해 심판을 받거나 본인 스스로 속죄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살인을 한다는건 선을 넘는거다. 직접적이던 간접적이던 사람을 끝냈다는 살인의 무게는 한사람의 평생으로는 감내할 수 없다.
적어도 나는 살인은 해도 그 살인의 무게감을 알고 있다. 여태까지도 사람을 죽인 후에는 죄책감이 무겁게 억누른다.
동물도 마찬가지다. 사람만 죽이지 않았다면 몰래 숨겨주던가 도망치게 하던가 해서 도와줬겠지. 하지만 어미 여우는 사람을 죽였고 결국에는 그로 인해서 사살되어야 한다.
나는 거기서 후회가 없도록 새끼만 데려온 것이고.
"백리 넌 착한 녀석이야. 되도록이면 넌 살인은 하지 마라"
"......형?"
오늘 밤에는 좀 바쁘게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여우만도 못한 새끼들을 죄다 갈아버릴 생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