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산길을 올라온 차는 일반적인 승용차였다. 비싼건 아니고 적당한 수준의, 유리창 안에 비치는 사람들은 젋은 남녀 두쌍. 한창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들이였다.
먼저 차에서 내린 남자 2명이 서로 이야기 하면서 떠들었다.
"거 봐! 여기 맞다고 했지? 이번엔 확실하다고 했잖아!"
"표지판 하나 없는데 어떻게 알았냐? 승진이 이번에는 초이스 오졌네"
나는 짐을 내리려고 하는 청춘남녀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런데 혹시 어떻게 왔어요?"
"아, 여기 관리인이신가요?"
"관리인이요?"
".......여기 캠핑장 아니예요?"
약간의 오해가 있는듯 싶다. 나는 애들이랑 물놀이를 하고 있는 시온을 불러 잠깐 올라오게 했다.
머리카락을 한데 묶고 푸른색과 붉은색 선이 들어간 원피스형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예쁘다. 몸에 딱 달라붙어서 라인이 잘 드러나기도 하고.
"혹시 여기 운영하는 캠핑장이야?"
"아까 말했지만 캠핑장으로 운영하려던 곳을 제가 산겁니다. 아직 사업자 등록도 안한 멀쩡한 사유지입니다"
"그래? 이쪽 분들은 캠핑장으로 알고 올라온 것 같은데....."
"여기서 길 따라서 15분정도 가면 캠핑장이 있는데 거기랑 착각한거 아닌가 싶습니다"
산길이라서 초행인 사람들은 헤메기 마련이다. 특히나 네비게이션으로도 잘 나오지 않는 지역이라면 더욱.
캠핑장은 여기서 더 가야 나온다고 하지만 그 전에 그럴듯한 장소가 있으면 착각 하는게 이상한건 아니다. 오히려 당연할지도 모르지.
"여기 캠핑장 아니예요?"
"멀쩡한 남의 사유지입니다"
"사유지요? 어.....죄송합니다. 금방 나갈께요"
시온은 슬쩍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산 입구에 사유자 표지판이라도 설치할걸 그랬습니다"
"뭐, 헷갈릴만도 하지"
그렇지만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른건 몰라도 사람 보는 눈 하나는 있으니까 자신할 수 있다.
"뭐야? 승진이가 또 헛다리 짚은거야?"
"여기 캠핑장 아니예요? 먼저 온 사람들은 누군데요?"
아직 차에 타고 있었던 여자들도 내려서 말을 걸었다. 나는 그쪽에게도 여기는 사유지고 캠핑장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두사람의 얼굴에 실망한 표정이 깃들었다.
"뭐야, 승진이 너 자신만만하더니 또 틀렸잖아"
"아, 이번에는 진자 맞는 줄 알았는데......"
"시끄러워. 네가 왜 초등학교 때 양치기 소년이였는지 알겠다"
세사람은 승진이라고 불린 남자를 구박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러는게 아니라 장난으로 하는것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 됨됨이는 내가 보기엔 나쁘지 않다. 그리고 여럿이서 노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기에 나는 즉석해서 생각난것을 그들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여기서 캠핑하시는건 어때요? 어차피 사람도 없고 넓으니까 저희가 써도 자리 한참 남거든요"
"어? 그래도 되나요?"
"우리 캠핑장 예약한건?"
"취소하고 환불받으면 그만이지 뭐. 공짠데 자리는 여기가 더 넓고 좋잖아! 거기 가면 사람 많을테니까 놀기에도 여기가 더 좋고"
"올, 승진이 뒷걸음 치다 소 잡았는데?"
"그건 소가 아니라 쥐 아니냐?"
"아무튼 감사합니다!"
네 사람은 감사 인사를 표하면서 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텐트는 원터치가 아니라 지지대부터 쌓는 오리지날 텐트였다.
두개를 가져오긴 했지만 하나 설치하는데도 쩔쩔맸다.
"야! 그건 여기다 꽂는거야!"
"아, 일단 지지대부터 만들자니까! 그래야 편해!"
텐트를 설치하는건 남자 두명이 도맡았다. 그나마 정상적으로 군대 다녀왔다면 텐트 치는법 정도는 알기에 느리더라도 완성이 되어갔다.
슬쩍, 옆에서 시온이 물어온다.
"여기서 놀게 둬도 괜찮습니까?"
"아, 미안해. 명의는 네걸로 되어 있을텐데 너무 내 마음대로 결정했지?"
"그건 신경 안씁니다. 제건 당신건데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면?"
"사람됨은 괜찮은지를 묻는겁니다"
"괜찮아, 좋은 사람들이야"
"그럼 됐습니다"
나는 환생을 걸쳐오면서 발달한 능력이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사람의 인성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온갖 인간 쓰레기를 만나고 상대해온 나는 첫 인상 같은걸 보고 그 사람의 인성을 판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
사실 이건 내 능력 중 하나인 '감각' 덕분도 있다. 그 뭐더라......아는 사람이 말하길 '감각'의 특기는 자신이 겪은 여러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결론을 도출해내는게 특징이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이 감각이란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나에 대한 힌트를 얻기도 했다.
같은 능력을 지닌 사람은 드물어서 충고를 얻기 드문데 그 몇 안되는 사람 중에서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빡대가리라서 얻지 못한 정보를 그 형에게서 얻게 되었다.
......그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라도 하고 싶은데 배때지에 번개의 창이 처박히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텐데 말이야.
그거 존나 아퍼. 죽는거 이전에 존나 아퍼. 얼마나 아팠으면 자살은 꿈도 안꾸는 내가 자살 생각하다가 쇼크로 뒈졌지.
그때는 여자로 환생한데다 나보다 강한 초월자랑 싸웠던 삶이라 기억하고 있다.
아무튼 평범한 인간이라면 첫 만남에 됨됨이를 파악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시온도 내 사람에 대한 평가는 믿는다.
텐트를 설치하고 얼추 준비는 끝낸 네사람이 우리 쪽으로 와서 인사와 자기 소개를 건냈다.
"저는 진윤수라고 합니다. 대림 대학에 재학중인 학생이고요"
"저는 손승진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이예진이예요"
"진이슬이라고 해요. 자리를 쓰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들으니 네 명은 같은 대학에 다니는 동기 커플이라고 한다. 이번 방학에 물놀이를 하기 위해서 같이 왔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 했다.
만약 내가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저어기 옆의 캠프장 가서 사람 바글거리는 곳에서 놀았겠지.
"대학생인데 차는?"
"아빠 차 빌린거예요"
"곱게 써야겠네"
사람은 빡빡하게 살면 못쓴다. 세상에 호구 소리 듣는 사람도 있지만 그거야 자기 생각 안하고 퍼주는 사람이나 듣는거고.
다 쓰지도 못할 땅을 잠깐 쓴다고 내가 손해보나? 애초에 공유지인 계곡을 쓴다고 내가 손해보나? 결국 자기 역량을 벗어난거에 욕심을 부리면 그게 미련한 법이다. 가득 찼으면 나눌줄 알아야지.
"이쪽은 저희 집이랑 가게 직원 가족들이랑 같이 놀러왔어요. 신경 안써도 되니까 편하게 지내요"
"가게? 혹시 사장님이신가요?"
"그냥 작은 치킨집 하나 하고 있어요. 대부분은 마누라 덕분이예요"
네 사람은 시온을 보고 이런저런 상상을 하는지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오르는듯 했다. 솔직히 조직폭력배라고 해도 믿을법한 인상인 나와 인형같이 아름다운 외모에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시온이 부부라고 하면 대부분 그런 반응을 보인다.
놀 때는 젊은 사람이 있어야 즐거운 법이다......아, 이제와서 떠오른거지만 나도 육체적 나이는 20대니까 젊은거지. 저쪽이랑 나이 차이는 얼마 나지 않을 정도다.
정신 연령이란게 있어서......몸을 움직이면서 노는 것보다 애들 노는거 보면서 앉아있는게 훨씬 재미있는게 늙었다는 체감이 온다.
"사장 오빠! 여기 물 엄청 좋아! 송사리 같은게 돌아다녀!"
"루리 너 수영복 비키니로 샀구나?"
"쨔자잔! 어때! 내 몸매 죽이지!"
"여고생이 할 소린 아닌 것 같다"
"내가 봐도 슬랜더한 몸매에 라인도 쫙 빠졌는데 화보 찍으면 밥 세공기는 뚝딱이지 뭐!"
루리는 붉은색 메인인 비키니를 입었는데 막 나올데는 나온 쭉쭉빵빵한 몸매는 아니더라도 슬랜더한 몸매에 라인이 잘 잡혀있어서 상당히 매력적이였다.
솔직히 루리는 성격만 빼면 매력적인 여성이였다. 얼굴 예쁘지, 몸매 좋지, 머리도 좋지, 죄다 좋은데 성격이 말아먹는다.
그 왜 애니 보면 가끔 가다가 그런 캐릭터 있지 않은가. 외견은 나쁘지 않은데 성격이랑 행동 때문에 안꼴리는 캐릭터.
루리가 바로 그런 캐릭터다. 누가 저 애 데려가려나 몰라.
"근데 저쪽 누구? 아는 사람이야?"
"지나가다가 잘못 들렀는데. 그냥 여기서 캠핑하라고 했어. 백리랑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니까 잘 놀아"
"오빠 지금 초딩 삼총사한테 다굴당하다가 빡돌아서 포스 써서 파도풀 만들고 있던데"
"무슨 지거리야?!"
"아니! '무슨 짓거리야?!'를 '무슨 지거리야?!'로 말하는 시점부터 당신은 숨길 수 없는 죠죠러! 대답해라 도몬! 유파 동방불패는!"
"왕자의 바람이.......아니, 이게 아닌데! 장난치지 말고 놀던 곳으로 꺼져!"
"오늘도 역시납니다아아아!"
나는 루리를 냅다 계곡으로 던졌다. 어차피 루리도 포스 유저라 쉽게 다치지 않는다. 아파트 고층에서 맨땅에 떨어져도 뼈 하나 부러지지 않을텐데 고작 몇미터 안되는 물가에 떨어졌다고 다칠리 없었다.
근데 왜 떨어질 때 대사는 로켓단이니?
백리는 잠깐 놀다 나와서 돌들을 들어 옮기고 있었다. 자기 몸뚱이보다 큰 돌을 들어서 쉽게 옮기는거 보면 저 녀석도 이제 포스 유저인거 완숙해진 느낌이다.
"백리야 뭐하냐?"
"아, 여기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발판이 좀 그래서요. 저희야 괜찮은데 애들이 쓰기엔 불편해서 잠깐 손보고 있어요"
계곡의 큰 돌들을 가져와서 즉석해서 내리막을 만들었다. 더 확실히 만들고 싶지만 위에 판자나 시멘트를 부어버려야 하겠지만 물기만 없다면 충분히 쓸만한 경사로를 만들었다.
애초에 경사로에 물기가 있을 때는 비가 올 때 정도인데 비가 오는 날 누가 계곡에서 노냐? 조금만 와도 물이 불어나서 쓸려가면 대참사인데.
"잘 했다. 아, 수박 있으니까 애들이랑 나눠먹어!"
"수박이요? 지금 먹으면 저녁 못먹지 않을까요?"
"어차피 수박은 대부분이 수분이라서 소화 금방 되는데다가 한통 정도는 나눠 먹으면 얼마 안돼"
애들이 포함되어 있어도 백리나 루리, 시온이나 내가 보통 사람보다 많이 먹는다. 인원은 여덞명인데 먹는 양은 성인 남성 10명에 버금갈거다.
그런데 겨우 수박 한통? 갈증 달래는 용도로 끝나면 다행이다. 두 통 정도 챙겨오긴 했지만 그건 내일 먹는걸로 남겨둘 생각이다.
그 사이 캠퍼스 커플들도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계곡으로 들어갔다.
"오! 물 깨끗하다!"
"시원해서 좋다. 맥주 가져온거 물에다 넣어둘까?"
"그래도 좋겠네요"
따로 냉장고가 없으니까 냉장고 삼아 뭘 넣어놔도 괜찮다. 다만 안에 물 안들어가는 걸로.
나는 트렁크에 있던 아이스 박스에서 수박 한통을 꺼내 루리에게 던졌다.
"루리야 받아!"
"뭐지! 새얼굴인가!!!"
"호빵맨이 아니라 수박맨이야?"
"노노. 오빠, 난 여자니까 수박걸이야. 요즘 세상에 그런 고정관념 가지고 있다간 쿵쾅거리는 자들에게 몰매 맞을거야"
"와아! 수박이다!"
자고로 한여름에 물놀이 하면서 먹는 수박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특히나 애들은 더더욱.
과일 중에서 덜 익어서 그렇거나 애초에 신맛이 포함된 과일은 많지만 수박은 어지간하면 다 달다. 그러니 좋아할 수밖에.
"사장 오빠! 이거 좀 미지근한데?"
"어? 생각보다 더워서 아이스박스에 넣어둔 얼음이 빨리 녹았나보다. 알아서 차갑게 식혀"
".......에이. 내가 이거 쓸 수 있는거 오또케 알아찌?"
루리는 수박을 양손으로 붙잡고 포스를 둘렀다. 그리고 그 주변의 기온이 뚝 떨어진다.
보고 있던 사람도 알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변화였다. 이질적인 모습에 캠퍼스 커플들도 놀랐지만 이내 루리가 포스 유저인걸 알고 호기심을 표했다.
"우와, 포스 유저인가봐?"
"아직 어려보이는데..... 고등학생 아냐? 그런데 포스 유저라고?"
"포스 유저 되는데 딱히 나이 가리는건 아니잖아. 고등학생도 되나보지"
같은 포스 유저인 백리만 놀라서 루리에게 물었다.
"잠깐만, 그거 어떻게 한거야?"
"그냥 간단한 물리 법칙 조작? 수박 주위의 분자 활동을 억제해서 열 에너지를 빼앗은거야. 난 이 정도밖에 못하는데 정말 쩌는 사람은 영하로 내려서 물도 얼릴 수 있을껄?"
"분자에? 그게 가능해?"
"기본적인 물리 법칙 이해하고 여러 개념들을 인지하면 가능하지. 오빠는 이과가 아니라서 모르겠지만"
"......그래, 너 이과라서 잘났다"
"오빠는 수포자인 모양이군. 그리핀도르!"
루리가 했던 일은 내가 저번에 부산에서 적성종 조지고 참치 해체한 뒤에 냉동시킨 기술과 같다. 분자 활동을 정지시켜 열 에너지를 빼앗고, 그렇기 온도를 낮추어 냉각시키는 기술이다.
생각보다 쉽지만 조건이 까다로운 기술이다. 분자 활동에 간섭하는 컨트롤, 분자와 열 에너지를 이해하는 개념 등이 필요하니까. 쉽다고? 중세 시대에 태어나서 의무 교육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한번 해보시지.
분자라는 개념을 내세웠다가 교회에 잡혀가서 마녀 사냥이나 안당하면 다행이다.
"잠깐 기다려! 언니가 지금 썰어줄께!"
루리가 수도를 들어올려서 수박을 숭덩! 하고 호쾌하게 썰었다. 반으로 잘라진 수박은 새빨간 속살을 드러내 보였다. 내가 일부러 능력까지 써가면서 마트에서 잘 익은걸 골라온 수박이니까 맛있을거다.
반으로 자른 수박을 다시 반으로 자르고 그걸 또 반으로 잘랐다. 단지 수박의 폭은 그대로 두고 넓게 자른 모양새라서 양손으로 들어야 할 정도로 큼직하게 잘랐다.
"옛날부터 수박은 이렇게 큼직하게 먹어보고 싶었어! 근데 집에서는 엄마가 잘라주니까 작게 잘라서 먹어서 못했는데 오늘은 소원 풀었네!"
"아! 나도! 나도 수박!"
"여기, 떨어트리지 않고 잘 먹어야 한다?"
백리는 수박을 애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손도 작은 애들에게는 크게 자른 수박이 부담스러워 보이지만 오히려 크게 자른게 식욕을 더 돋우는건지 크게 베어물어 먹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다 나눠주고 백리는 옆에서 놀던 캠퍼스 커플들에게도 수박을 나누어 주었다.
"여기 수박 좀 같이 드세요"
"아! 감사해요! 잘 먹을께요!"
"뭘요, 그리고 저랑 나이도 별 차이 안날텐데 말 편하게 하세요"
"아....그럴까?"
백리는 우리 가게에서 취직 안했으면 진작에 대학 갔을테니까 저들과 비슷한 또래일 것이다. 아니, 백리는 군필이니까 그거 생각하면 오히려 나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수박도 나눠먹고 한결 친해진 그들은 본격적으로 물 놀이를 시작했다.
"오늘의 물놀이 팀전! 청팀은 나랑 우리 오빠! 백팀은 나머지 애들이랑 대학생 언니 오빠들!"
"어? 인원 차이가 너무 심하게 나지 않아?"
"이래야 공평하지!"
수정이와 성혜, 그리고 아람이, 캠퍼스 커플들 네명.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건 루리랑 백리 단 두명이다. 애들을 빼도 4대 2라는 열세지만 숫자로 판단하면 안된다.
포스 유저는 건장한 성인 남성 열댓이 덤벼들어도 못이기는 초인이다. 당장 어제 각성한 애송이를 올림픽에 출전시켜도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우며 프로 격투기 선수도 눈 감고 한방에 KO시킬 수 있다.
"으라차아!"
루리가 기합성과 함께 힘을 주어 물을 밀쳐내듯 손을 뻗자, 흡사 파도가 일어난듯 거세게 물살이 출렁였다.
거기에 휘말린 앤들은 서로 낄낄 웃으면서 파도를 즐겼다.
"하핫! 이거 엄청 재미있어! 아, 수정이 몸 뒤집어진거 봐!"
"잠깐?! 풉?! 웁!!"
"언니! 한번 더! 한번 더!"
애들은 완전히 살판 났다. 바닷가가 아니라서 물살 외에는 즐길만한게 없는데 포스 유저가 두명이나 되니까 힘으로 파도를 일으켜서 유사 파도풀을 만들었다.
워터 파크의 파도풀 정도는 아니지만 비슷한 정도의 파도는 출렁이면서 애들이 즐기기엔 좋았다. 그런데 애들 튜브는 좀 더 큰거 하나 가지고 올껄 그랬나. 작은 보트 같은걸로.
햇빛이 쨍쨍하고 신나게 노니까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나도 애들 노는거 보면서 물가에 발 담그고 있으니 뜨거운 날씨가 신경쓰이지 않을 정도로 시원해서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저만치 기울어져 있었다.
여름은 낮이 길다. 해가 떠 있어도 시간 파악하기 힘들고 해가 질 때는 생각보다 깊은 밤이다.
애들도 물놀이 한지 상당히 오래 됐을것 같으니 배가 고플것이다. 나는 올라가서 저녁 준비를 하기로 했다.
"도와드립니까?"
"그냥 애들이랑 더 놀아. 준비는 나 혼자 하면 충분한데 뭘"
"한손 보다는 두손이 낫지 않습니까?"
"마음대로 해"
고기를 꺼내고 통짜로 된건 적당한 크기로 썰었다. 바베큐 그릴에 숯을 넣었다. 왜 편한 연탄을 안쓰냐고 하면, 연탄은 냄새가 많이 난다. 연탄불로 고기 굽는 집도 있지만 만약 쓸거면 연탄보단 숯이 좋다. 적당히 좋은거 찾으면 숯 향 덕분에 오히려 좋다.
물론 숯이라고 압축탄 썼다간 오히려 건강에 해롭다. 압축탄에 폐목제 말고 뭐가 들어간줄 알고?
보는 사람 없으니까 슬쩍 숯 하나에 삼매진화로 불을 붙였다. 우리 집은 아무도 흡연자가 없으니 불 피울 라이터가 없어서 고육지책이다.
바베큐 그릴에 석쇠를 올리고 예열한다. 숯에 골고루 불이 붙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밥이랑 상은 제가 차리겠습니다"
"아, 부탁할께"
시온은 김치나 쌈 채소 같은 반찬들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가스 버너를 꺼내서 냄비에 물을 채우고 끓이기 시작했다.
따로 밥은 상할 염려가 있어서 준비하지 않았다. 솔직히 그런것 보다 즉석밥이 더 낫기에 데우기만 하면 된다.
물이 끓고 즉석밥을 몇개 냄비에 넣고 데운다. 몇분 정도 지나자 충분히 데워진 즉석밥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놓았다.
"슬슬 고기나 구울까?"
바베큐 그릴을 좋은걸로 사서 크기가 크다. 여럿이서 먹을 고기를 한번에 구울 수 있어서 편리하기에 잘 샀다고 생각했다.
먼저 삼겹살부터. 가장 먼저 올리자 치이익! 하는 고기 익는 소리가 올라온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고기 익는 냄새가 솔솔 올라오기도 했다.
역시 여행에는 삼겹살이지!
"그런데 쌈장은 어디있습니까?"
"아이스 박스 구석에 잘 뒤져봐. 그쯤 어디 있을거야"
"아, 찾았습니다"
마무리가 되어가고 슬슬 고기 한접시가 나올 무렵. 고기 냄새를 맡았는지 애들이 물가에서 나와 캠핑장으로 올라왔다.
"아, 고기냄새! 이 냄새는 삼겹살이구나!!!"
"누가 고기 귀신 아니랄까봐 냄새만 맡고 알아차리냐"
"삼겹살은 언제나 옳다!"
"니 배의 삼겹살도 옳고?"
".........."
"아! 아! 아! 야! 아파! 아프다고! 멍들어! 악악악!"
군살 없다고는 못하지만 적당한 몸매인데 백리가 그거 가지고 타박했다. 나는 마른것보다 살짝 나온게 건강한 증거라고 생각해서 루리의 편을 들어주고 싶다.
"다들 앉아. 서애씨도 앉으세요. 다 준비 됐으니까 먹기만 하면 되요"
"아, 준비하는거 제가 도와드렸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별거 아닌데요 뭐"
애들은 테이블에 앉고 서로 앞에 있는 즉석밥을 뜯었다. 그리고 내가 적당히 자른 삼겹살을 그릇에 담아 내가자 순식간에 고기가 사라진다. 흡사 블랙홀 같았다.
한창 먹을때의 애들이 실컷 물놀이까지 하고 올라와서 먹는 저녁인데 내가 애들 식욕을 얕본 모양이다.
"야! 루리 너 한번에 세점씩 가져가는건 반칙이야!"
"삼겹살 앞에서는 그런거 없어! 자고로 먼저 먹는 놈이 임자다! 나약한 자는 식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어!"
"와! 루리 언니 손이 여러개로 보여!"
"밥 먹는데 저러는거 보면 바보같지만 바보같아"
"냠냠냠"
한 5인분 쯤 구웠는데도 애들이 간에 기별도 안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나는 슬슬 꺼낼 때가 되어서 아이스 박스에서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아직 덜 먹었지? 그럼 이건 어때?"
".......?"
내가 꺼낸건 질 좋은 고기.......그것도 소고기다.
"한우 투쁠 꽃등심 10인분"
"아조씨 최고!"
고기는 항상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