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45/507)



〈 45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회사는 반쯤 정 팀장에게 맡기고, 나는 다시 내 본래 직장인 치킨집으로 돌아왔다. 정겨운 기름 냄새. 나는 일하는거에 귀천을 둘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몸으로 일하는 쪽이 좋다. 특히나 요식업.

사람들이 맛있게 먹어주면 보람도 있는거고 재미도 있는 법이다. 물론 지킬건 지키면서 일해야지. 재료의 신선도나 주방의 청결 같은것들.

"어제 게임 개발사 다녀오신건 어때요?"

"그런대로 좋았아. 거기는 그쪽 팀장한테 맡겼으니까 당분간은 조율만 해주면 될거야"

"사장이면 지시만 하면 되니까 편하겠네요"

"거 지시내리는게 편한건줄 아냐. 잘못하면 한큐에 회사 말아먹는건 한순간이야"

"아, 그러긴 하네요"


높은 위치의 직업은 그만큼 편하긴 할테지만 대신 그만한 책임을 지게 되는 법이다.

대기업 회장인 자리는 얼핏 좋아 보일진 몰라도 회사를 망하게 할 수도 있는 자리다. 좋은 판단을 내리지 못하면 차라리 안하니만 못하다.


나는 내 사람 챙기기도 힘들어서 어지간하면 그런 자리는 맡고 싶지 않다. 내가 책임  수 있는 사람은 기껏해야  품안에 안을  있는 사람 정도다.

"그나저나 요즘 어때? 내가 대충 가르쳐주긴 했는데 그래도 막 루리한테 얻어맞고 그러진 않지?"


"그거 쩔던데요. 요즘 루리랑 대련하는거 보면 호각이예요"

"루리가 봐주는 것도 있지만 태극나선경은 그 기반이 태극권에 두고 있어서 공격을 흘려내는 성격이 강해. 그래서 그런걸거야"


백리가 저번에 선택한 무공은 태극나선경이다. 아무래도 처음 들어보는 무공보다는 그나마 태극이라는 들어본  있는 개념이 들어간 무공을 선택한것 같다. 물론 나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솔직히 그중에서 아무거나 하나 고르라고 하면 나도 고를것 같은 무공이다. 태극나선경은  '간섭'이나 '감각'과 같은 능력 중에서 '분해'의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하여 태극권을 개량해 만든 무공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무공과 궤를 달리한다.

옛날에 무림 비슷한 세계에서 태어난 적도 있는데 보는 사람 죄다 신묘한 무공이라고 절찬을 하더라. 내가 만든것도 아닌데.


아무튼 태극나선경은 공방일체의 무공이다. 초반에는 방어에만 치중된 경향이 있지만 점차 능숙해지면 공격에도 전환이 가능하다. 백리가 어디까지 오를  있을지는 두고봐야 알겠지만 어디 가서 맞고 살진 않을거다.


"중요한건 네가 태극의 이치를 어떻게 깨우치냐가 중요한 법이야. 혼돈은 태극에 의해 음과 양으로 나뉘어지고, 그렇게 점차 순수한 힘으로 나뉘어져 세상의 기본 법칙과 개념을 이룩했지. 즉, 태극이란건 최상위 개념이란 소리야. 하루아침에 깨달으라는 소린 안하겠지만 어떻게 쓰는지만 알면 충분해"


"뭔가 철학적인 이야기랑 판타지적인 이야기가 반반씩 섞인것 같아요"

"무공서 하나 보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 적어놓은게 대부분이야. 아니, 검 하나 휘두르는데 하늘이 어떻고 땅이 어떻고 적어놓는 법이 어디있어. 차라리 수학 공식을 적어놓는게  낫겠다. 그건 그나마 답이 있으니까"

"한번쯤 보고 싶네요"


"그나마 태극나선경은 양반이지 뭐"

솔직히 심화 과정 들어가면 그것도 장난 아니다만.

나도 빡대가리를 위한 풀이 해석편 없었으면 못배웠다. 그레이 이 새끼......내가 지들 같은 정신나간 재능충인줄 알지?


"일단 네 목표는 좀 더 강해져서 여동생한테 맞고 다니지 않는거야. 오빠가 자존심이 있지 여동생보다 약해서 어디 지켜주고 다니겠냐?"

"루리가 어디가서 맞고 오진 않을것 같은데요. 때리고 오면 몰라도"

".....그러긴 하네"

내가 생각해도 루리가 어디 가서 맞고오는 상상은 들지 않는다. 상대를 능욕하고도 모자라 빅엿을 먹이고 시체에서 갈무리 까지 한 후에 치킨이나 뜯으면서 잠이나 푹 잘법한 애였다.

어떻게 그렇게 잘 아냐고? 환생하면서 루리란 애는 종종 만난적이 있으니까.


"그래도 오빠가 맞고 다녀서야 되냐. 그러니까.....아, 잠깐만. 전화 왔다"

이 시간에 전화할만한 사람은 별로 없는데.....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뜬 이름을 확인해 보았다. 어? 형식이네?

"오, 형식이냐? 왠일이야?"


[새꺄, 낼모레 나 전역인거 잊어먹었냐?]


"너 전역 다다음주 아니였어?"


[대대에서 말차 휴가에 기간 빼서 전역 시켜줘서 그래. 내가 말년에 부대 있기 싫어서 휴가 모아둔거 알잖아. 그리고 부대에 복귀만 안한다 뿐이지 원래 전역날 까지는 군바리야]


"원래 그렇게 해주던가?"

[난 아버지 수술 때문에 그런거고. 원래는 어림도 없지. 아, 예전에 메르스 때문에 비슷한 일은 있었다]

"아, 그러긴 하지"

보통 군인 전역일은 밀리면 밀렸지 앞당겨지지 않는다.  밀려지는 일도 영창에 가면 군 생활 시계가 멈춰서 그런거고.


예전에 한번 메르스 때문에 휴가 나갔던 병장들은 바깥에서 전역시켜주게 했다. 괜히  걸려서 들어왔다가 전염되면 큰일나니까.

형식이는 아저씨 수술 때문에 나와야 하니까 좀 일찍 전역 시켜줘도 이상할게 아니다.


"이 새끼 낼모레 전역이라니까 목소리에서 생기가 넘치는거 봐라. 오케이. 형이 차 끌고 가서 마중 나가줄께 기다려라"


[너 차도 있었냐?]


"마누라가 뽑아줬다"


[새끼, 형수님은 잘 만나서 차까지 사고 아주 팔자 폈구나. 무슨 찬데? 외제차냐?]

"외제차는 외제차지"


람보르기니는 이탈리아 기업이니 외제차 맞긴 하다. 솔직히 국산 차라도 해외에서 구매해야지, 양심없는 우리나라 기업 새끼들은 내수용이랑 수출용이랑 다르게 만들어서 그래.


"무슨 차인지는 마중 나갈때 봐라. 아무튼 간만에 다른 애들이랑 술 마셔야겠다. 상철이랑 종수도 부른다?"

[크으, 이제 우리  다 걔들 보고 미필 새끼라고 갈굴  있겠네]


"어차피 걔들도 1,2년 있으면 갈텐데 뭘 그러냐"

[일찍 가냐 늦게 가냐의 차이지]

나나 형식이는 졸업 하고 바로 가거나 좀 뒤에 군대를 갔다. 하지만 고등학교 죽마고우인 상철이나 종수는 대학교 재학중이라서 아직 안갔다.

솔직히 나랑 형식이가 일찍간거고 상철이나 종수는 내년에 가도 적당히 간거다. 늦게간 편은 아닌데 우리가 일찍 가서 비교당하는거지.

군대는 늦게 가는 편이 낫긴 하다. 요즘에도 월급 올려주고 군생활 줄이고 그런다던데......그런데 안부러움.

"아침에 내가 부대 앞으로 나가서 마중 갈께.  타지 말고 부대 앞으로 나와라. 알겠지?"

[진짜 올거냐?]

"새꺄 하루 종일  빨건데 부대에서 차 타고 터미널에서 버스타고 지하철까지 타고 돌아오려면 몇시간이나 걸리잖아. 그 시간 아깝잖아. 아, 어차피 전역이니까 널널한게 시간이구나"


[이래서 친구 새끼는 잘 둬야 한다니까. 알았어. 근데 이래놓고 안오면 군바리 주먹 맛 좀 보게 될거다]

"으악! 군인이 민간인 팬다!"


낄낄거리면서 전화를 끊었다. 모레에는 간만에 애들이랑 다같이 모여서 술이나 마시겠다. 다들 군대다 대학이나 뭐해서 요즘 만나는게 뜸했는데 전부 만나는건 오랜만이겠네.


어차피 대학 다니는 상철이랑 종수도 지금은 기말고사도 끝나고 대학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방학이거나 방학 직전일거다. 시간 없다고 하면 가서 끌고 와야지.

"누구예요? 친구?"


"응, 막 전역하는 내 친구. 그 왜 전에 아버지 아프다고 했던 걔 있잖아"

"아아, 이번에 전역하세요?"

"요즘 들어서 너무 자주 빠져서 미안한데. 전역한 기념으로 애들이랑 아침부터 한잔 하려고 하거든"

"괜찮아요. 보너스만 더 챙겨주신다면"

"딜"


"아싸!"


한창 돈 좋아할 나이니까 그럴만도 하지.

나는 다시금 핸드폰을 들어서 상철이와 종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간만에 고등학교 불알 친구들이 전부 모이는 날이다.

* *  *   *



나나 형식이나 근무하는 지역은 강원도로 비슷하긴 했지만 나는 화천 부근이고 형식이는 홍천 부근이다. 솔직히 내가  전방이긴 했지만 나는 공병으로 근무해서 전투 훈련보다는 배관 만지는 일이 많았다.


사실 공병이라고 해서 막 다리 만들고 그러는 줄 알았는데 그것보다 수리하는 일을 하더라. 편한 날에는 편하긴 했지만 겨울에는 배관이 얼어서 일이 뻥뻥 터지기 때문에 아주 환장을 한다.

일주일 동안 쉬는 시간 없이 개고생을 하면서 포상 포함 휴가 일주일 벌었다......근데 다시 하라고 하면 내가 시발 탈영하고 말지. 힘들진 않은데 좆같다.


......그리고 행보관 이 새끼 일 잘한다고 어딜 전문하사 때려박으려고 해? 지금 생각해도 개빡치네.


아무튼 나는 27사단 나왔고 형식이는 11사단에서 포병으로 근무했다. 크으으, 군대가면 철든다고 하더니 그 철을 드는구나.

아침에 전역해 부대에서 나오는 애를 마중 나가려면 최소한 아침 일찍, 거의 새벽쯤에 나와야 한다. 홍천까지 빨리 가도 한시간쯤 걸리는데 평일 군대 기상 시간이 6시 반인거 생각하면 못해도 4시 반에는 일어나야 했다.

"오늘은 집에 안들어오실겁니까?"


"일단 보고. 근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오늘 날짜 지나기 전까진 못 들어올것 같은데"


남자들끼리 간만에 만나서 대낮부터 술 마실 생각인데 일찍 들어오는건 무리다. 내가 들어가고 싶어도 다른 애들이 소주병 들이밀고 붙잡겠지.


"오늘 하루는 독수공방일것 같으니까 그럼 일찍 자겠습니다"


"그러는게 좋을거야. 미안해"

"아닙니다. 친구 만나러 가는데 당연한겁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조금 뚱한 표정이다. 슬쩍 시온을 끌어안아서 이마에 키스를 해준다. 눈에 콩깍지가 끼면 무섭다고 내 눈에는 삐진 모습도 귀엽기만 하다.

"이번에 여름 휴가 가자. 저번에 말했던 산 있잖아. 아는 사람들 몇명이랑 같이 가서 고기도 구워먹고 계곡에서 수영도 하고. 좋지?"


"......누가 보면 제가 삐진줄 알거 아닙니까?"


"삐진거 아니였어?"

"안삐졌습니다"


가끔 가다보면 우리 마누라는 고양이 같을 때가 있다. 겉으로는 아닌척 하면서 슬쩍 다가와서 애교 부리는거.

그게 짱 귀여움. 댕댕이처럼 대놓고 애교 부리는게 아니라 앙탈 같아서  귀엽다. 이래서 내가 수백, 수천년이 지나도 신혼인게 당연하다.

"아무튼 좋습니다. 생각해보니 텐트 같은건 없었는데 좋은걸로 사두겠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쓸테니까 조금 큰걸로 사는게 좋을껄. 아니면 적당한걸로 두어개 사던가"

어차피 창고에다 처박거나 하면 되니까 나중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여차하면 차에서 사도 되고.


그러고 보니 다인승 차량이 하나 필요한데. 람보르기니는 2인승이라서 여럿이서 타기에는 무리다. 애초에 가져갈 짐도 생각하면  커야 하고.


"그러면 다른 차 한대 생각해보겠습니다. 삽니까, 빌립니까?"

"여행 간다고 잠깐 쓸건데 사면 좀 아깝지. 두고두고 쓸 수는 있겠지만 우리 둘 사는 집에서 그만큼 자주 쓸것 같진 않고"

처음부터 그런 다인승 차량을 샀으면 모를까 람보르기니라는 삐까뻔쩍한 차가 있는데 여기서 차 한대 더 살 필요는 없다. 빌리는게 낫겠지.


그 뭐냐 요즘은 리스같이 좋은거 많아서 빌리는데 크게 힘들지 않을거다. 미리미리 해두면 편하겠다.


여름이라 그런지 해가 일찍 뜬다. 오전 일찍 일어났는데 슬슬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게 보였다. 고속도로 타면 본격적으로 해가  것이다.


하지만 평일 새벽이라 그런지 차는 평소보다 없었다. 그런데 쭉 빠진 람보르기니 끌고 널널한 고속도로 타고 마음껏 달리니까 속이 다 후련하다. 연비 생각하면 무섭긴 하지만 그거 신경 썼으면 애초에 안타고 다녔다.


에어컨은 안키고 창문만 살짝 열어서 바람을 쐬니까 아직 달궈지지 않은 새벽 공기가 시원하게 불어온다. 생각없이 드라이브 하는것도 나름 나쁘지 않구나.

나는 별로 지나지 않은것 같은데 어느새 홍천에 도착했다. 정확히는 홍천 터미널 쪽에. 어디보자, 형식이네 부대가 여기서 어떻게 가더라......


"아저씨, 여기 포병대대 어디있어요?"


"포병대대? 53 포병대대면 요 앞으로 쭉 가면 돼"

"아, 고마워요"

근처에서 물어서 가니까 금방 찾았다. 군 부대는 보안상 네비게이션으로 찾아도 안나오지만 인근 주민들한테 물으면 어디에 뭐가 있는지 다  수 있다.


나도 우리 부대 주변에 있던 대대, 연대, 전부 알고 있지......군생활 2년동안 안가본 부대가 없거든.

가르쳐준 방향대로 쭉 가다가 눈에 띄는 부대가 있었다. 그쪽인가 싶어서 가봤더니 맞는것 같았다.


민간 차량은 부대 안으로 못 들어가니까 그 앞에 세웠다. 간부 차량용 주차장인지 이런저런 차가 눈에 띈다.


"화랑! 어떻게 오셨습니까?"


위병소 근무를 서던 병사 하나가 와서 용무를 묻는다.

11사단은 경례 구호가 화랑인가? 우리 부대는 이기자! 이거였는데 그냥 충성으로  통일하지  그렇게 부대마다 특색이랍시고 바꾸는건지 모르겠다.

"오늘 친구 전역한다고 해서 마중 나왔거든요. 아직 시간 안됐나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확인해 보겠습니다"


아마 사수였던건지 용무를 물었던 병사가 뒤의 부사수에게 물었다.


"야! 진수야! 오늘 전역자 있냐?"

"일병 이진수! 강 병장님 오늘 나가지 않습니까? 일단 휴가로 되어 있긴 한데 어제 전역빵 맞았으니 전역일겁니다!"


"그래?"

아, 그러고 보니 일단 내보내 주고 부대 복귀만 안하는거지 휴가 같은 전역 취급이라고 했지?


"오늘 전역한다는 사람 이름이 강형식이면 내가 아는 그 사람 맞을것 같은데......얼마나 걸릴까요?"

"아마 조식 먹고 지금 슬슬 준비 중일겁니다. 당직사령님한테 신고 하고 내려올테니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아, 네"

위병소 옆의 작은 주차장에다가 차를 주차해두고 잠깐 기다렸다.

혼자 멍 때리긴 심심하서 위병소 근무 서는 애들이란 노가리나 까기로 했다. 그냥  걸면 미안하니까 중간에 휴게소에서 들러서  마실거를 조금 나누어 주었다.

"고생 많죠? 저도 올해 전역해서 남일 같지가 않네요. 그래도 올해 상병이면 몇달 안남았을텐데"

"아, 음료수 감사합니다. 그런데 강 병장님 친구분이십니까?"

"형식이랑 같은 중대에 있나봐요?"

"예, 그렇습니다"

그는 슬쩍 주차장에 주차 되어 있는 람보르기니를 보더니 오, 하고 작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살면서 람보르기니 같은거 이렇게 가까히서 보게 될줄은 몰랐습니다"


"저도 저거 타고 다니게 될줄은 몰랐거든요. 제가 산건 아니고 마누라가 능력이 좋아서"

"얼마쯤 합니까?"


"한정판이라서 60억 정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쩐다......!"

차 한대에 60억이면 진짜 정신 나간거지. 물론 브랜드 빨도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비싼 값을 하는것 같긴 하다. 승차감이 죽이거든.

잠깐 노가리 까는 사이에 어느새 30분이 지났다. 누군가 위병소 쪽으로 걸어오는데 폼이 낯이 익었다.

"화랑! 강 병장님, 전역하십니까?"


"야야, 이제 나가면 다시 안볼 아저씨야. 경례 할 필요 없어"

"잘가라 형식아!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시는 만나지 말자!"


"진수  새끼! 이등병때 PX 누가 데려다 줬는데! 태세전환 오지네 진짜!"


솔직히 전역하는 사람은 다 아저씨다. 사회에서  일은 거의 없을테니까. 일부러 만나는거 아니면 그렇겠지. 나도 군대에서 만났던 애들이랑은 거의 연락도 안하고. 애초에 페이스북 같은거 하면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서 안한다.


내가 손을 흔들어주자 진수가 마찬가지로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새끼! 마중 나왔구나! 안왔으면 가서 한대 때려주려고 했는데!"


"내가 아무리 등신같은 말이라도 내뱉은건 지키는거 알잖아"


"그렇긴 하지. 아무튼 이 더러웠던 부대도 끝이다! 다시는 안온다 여기!"


"예비군 훈련 하면 올지도 모르는데"

"전역하는 날 좆같은 소리 하지마 좀!"

이런저런 절차를 거쳐서 위병소 바깥으로 나온 형식이는 부대쪽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잘 있어라! 진수야! 종성아!  간다아아아!!!"

"잘가라 형식아! 수술 잘 하고!"

"오냐! 걱정마라!"

위병소에 있던 후임 두명과 인사를 마치고 주차장 쪽으로 이동했다.

"야, 그런데 너 차 어떤거냐? 좋은 걸로 뽑았.....와! 람보르기니다! 간지 쩐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자"

나랑 형식이랑 옷 입는건 비슷하니까 집에서 대충 챙겨왔다. 군복은 입고 있기만 해도 의욕과 힘을 감소시키는 저주받은 물건인만큼 되도록 빨리 벗어서 예비군  때까지 어디  한구석에 처박아야 한다.


내가 차키를 꺼내 버튼을 누르자 삐빅! 하고 람보르기니에 불이 들어온다.

그걸 보고 형식이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어......? 잠깐만,  차가 혹시?"


"조수석에 니가 입을  가져왔으니까 대충 갈아 입어. 옷에서 군바리 냄새나니까 군복은 비닐에서 넣어서 구석에 두고"

"와, 씨발 진짜 쩐다. 아빠 수술비로 몇억씩 그냥 주는거 보고 짐작은 했었는데 내가 상상력이 부실한 새끼였구나"

"나도 이  탄진 얼마 안됐어. 봐, 비닐도 아직 안땠잖아"

"내 생에 람보르기니를 탈 때가 올 줄이야. 잠깐만 기다려봐. 사진 좀 찍어서 페북에 올리고"

"페북은 인생의 낭비라고 했다!"


"내가 하든 말든 뭔 상관이냐! 이런건 자랑해야지!"

형식이는 핸드폰으로 이래저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대강 옷을 갈아 입고 차에 탑승. 이제 다시 서울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승차감 죽이네. 비싼 차는 비싼 값을 하는구나!"

"대신 연비가 지갑을 죽이지. 엑셀 한벌 밟을 때마다 지갑에서 만원씩 까지는 느낌이야"


"돈도 많은 새끼가 뭘"


"아껴야  살지 얌마"

"있는 놈이 더 하다더니"


"내릴래?"


"미안"

낄낄거리면서 다시금 서울까지 드라이빙 했다. 새벽보단 차가 더 많긴 해도 아직 아침인지라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슬슬 밟았는데도 10시 조금 안되서 서울에 도착했다.


"상철이랑 종수는?"

"이미 내가 연락 다 돌렸다. 상철이는 휴학했더라"


"어? 그래?"


"종수는 이번에 입대 하려고 신검 받았는데 공익 떴단다"


"어휴, 그 새끼 그러길래  좀 빼라니까.  쪄서 그런다지?"


"고혈압도 있어서 조금. 아무튼 그래서 지금 애매한 상황이래. 물론 둘 다 놀자판 난건 똑같지만"


고등학교 시절, 다 같이 모여서 놀던 우리 네명은 반이 달라져도 같이 놀던 불알 친구들이다. 군대 때문에 요즘 연락이 뜸해졌어도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나도 전역하고 형식이도 전역했으니 그거 기념 삼아서 애들이랑 오늘 모여서 한바탕  생각이다.

"뭐 먹을건데?"


"전역한 새끼가 먹을게 고기 말고 더 있냐? 그것도 소고기다!"

"돈은?"


나는 지갑에서 블랙 카드를 꺼내보였다. 겉보기에도 간지나는 장식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라고 적혀 있다.

"오늘 소 한마리 못먹으면 2차 없다"

"씨발, 아침이 소세지 야채 볶음에 미역국이라고 먹었는데 먹지 말껄"


아니, 거기서 말년병장도 먹는다는 식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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