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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41/507)



〈 41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시온의 전화를 끄자마자 나는 나갈 채비를 했다. 출근하자 마자 다시 나가려니 백리와 서애씨한테 미안해지지만 솔직히 그런거 보다 우리 시온이 더 중요하다.


"형수님 납치됐다고요?!"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되어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도 납치 아니예요? 경찰에 신고해야죠!"


"자고로 옛날부터 이런 일에는 경찰이 쪽도 못쓰는게 클리셰란다"

게다가 경찰에 전화하면 우리 시온 납치한 새끼를 내가 조질  없잖아.

"내 힘 절반을 뚝 떼서 시온한테 역장을 펼쳐뒀지. 아마 지구를 박살낼 정도의 공격에도 끄떡없을껄. 그러니까 이 지구 한정으로 시온이 다칠거 걱정할 필요는 없어"

"어......그러면 경찰한테 맡겨도 되지 않아요?"

"납치된 애들이 두명 더 있어. 보나마나 우리 마누라는 착해서 그 애들 생각하고 일부러 납치당해준거지. 솔직히  마누라가 내가 보호 안해줘도 어디 가서 객사할만큼 약한건 아니거든"

주머니에서 라쿤맨 가면 변신 헤드셋을 꺼내 들었다.

어떤 새끼가 우리 마누라 납치했는지 몰라도 다 조져버려야겠다.

"아, 어디에 있는지 왔네. 위치는.......종묘? 씨발 참 고풍스러운 곳에다 납치해 뒀구만. 종갓집 장손이신가? 귀한 씹새끼 납셨네"


"종묘요? 거기 관광지라 사람들 많이 오가지 않을까요?"

"출입 금지 구역이라도 따로 있는 모양이지. 그런데 한가운데다 두면 누가 알아? 사람들 몰리는데가 눈에도 안띄는데 숲 속에 나무 숨긴거나 다름없네"

위치를 대략 파악하자 나는 기감을 펼쳤다. 나를 중심으로 반경 수십킬로미터. 그것만으로도  나라의 6분지 1에 해당하는 영역을 내 기감안에 넣었다.


여기서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시온의 기척과 그 근처에 있는 어린아이의 기척 두개. 그리고 은신하고 있지만 내 기감에는 어림도 없는 놈의 기척이 느껴졌다.

딱 거기 있어라. 얼굴 갈아버리러 갈테니까.


"오늘 장사는 알아서 하고 땡쳐버려. 아니, 어차피 나 오늘 못돌아 올테니까 네가 사장님 없으니까 몰래 할인 한답시고 코식이 두마리 치킨마냥 한마리 가격에 두마리 주던가"

"장사 망해요?!"

"깜짝 이벤트로 오늘만 하라 그래. 네가 튀기면 내가 하는것보단 맛이 떨어지니까 양이라도 많아야지"


오늘 장사는 백리한테 떠넘기고 바깥으로 나왔다. 그리고 라쿤맨 변신 헤드셋을 끼고 버튼을 누르자 얼굴을 감싸는 금속질 가면이 덧씌워졌다.


초등학생 여자애나 건드리는 납치범은 이 라쿤맨이 조져버릴테니 안심하라구!

 *  *  *



시온과 수정이의 이야기 소리에 아람이도 잠에서 깨어났다. 적어도 아람이는 수정이보다 한주  늦게 납치되어 왔고 수정이가 있어서 크게 불안해 하진 않은 모양이다.


"언니처럼 보이는데 언니가 아니야? 혹시 외국에서 살다 왔어? 미국? 영국?"

"외견은 또래처럼 보여도 멀쩡한 남편도 있는 유부녀입니다. 그리고 어디서 왔냐고 물으면 일단 미국이라고 해두겠습니다"

출신성명상 일단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화한 외국인으로 되어 있다. 단지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투병 생활을 해서 그쪽에 연이 없다는 설정이다.

"그나저나 아까 뿔이 어쩌고  말. 다시 듣고 싶습니다"

"아"


아람이와 이야기를 잠시 두고 다시금 수정이에게 아까 말했던 이야기를 되물었다.

납치범의 머리에 뿔이 돋아나 있다는 말.

보이지 않는 상대의 모습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는 모르지만 신경쓰이는 말이다.

"납치당할 때 허둥지둥 거리다가 납치범의 머리를 때린적이 있었어. 그런데 이상한걸 쳐서 손에 상처가 났었거든"


수정이는 시온에게 손목에 난 상처를 보여주었다. 시간이 지나서 아물어 있다고 하지만 흉터가 조금 남아 있었다.


뭔가 뾰족한 것에 스친 듯한 흔적이였다.

"자세히 기억나진 않는데 그래도 때린데는 얼굴이 있을법한 부분으로 휘둘렀다고 생각해. 뭔가 딱딱한거에 맞은 느낌도 났고. 그런데 머리를 때렸는데 이런 상처가 나는건 이상하잖아"


멍이 들거나 물려서 이빨 자국이 난 상처라면 납득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라면 사건이 미스테리에 빠진다.

납치범이 날카롭거나 뾰족한 장식이 있는 헬멧 같은걸 썼을 가능성도 있지만 시온은 다른 가능성을 점쳐 두었다.

전에 있었던 다른 사건과 비슷한 냄새가 난다. 시온도 폼으로 최악 옆에서 수천년을 살아온게 아니다. 눈치라면 백단을 넘어서 천단에 이른다. 단지 최악 앞에서는 애교 부리려고 모르는척 넘어갈 뿐이지.

"그래도 괜찮습니다"

"어? 정말?"


"제가 아는 한 손꼽힐 정도로 강한 사람이 올테니까 문제 없을겁니다"


".......잠깐만, 경찰 아저씨가 오는거 맞아?"


".........."


"야, 자칭 아줌마. 뭐라 말좀 해봐"

수정이가 따지고 들자 시온이 묵비권을 행사했다. 그녀는 수상쩍은 눈으로 시온을 응시했다. 같은 초등학생이라고 했다면 나름 믿을만 하겠는데 처음부터 연상, 거기에다 유부녀라고 하니 더 설득력이 떨어진다.

진실을 이야기 해도 그 진실이 판타지스러우면 설득력이 없는게 당연하겠지만.


"그치만 나는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아람이는 두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어서 나긋하게 말했다.


시온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리자 아람이는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납치범 아저씨는 갑자기 납치하긴 했지만 손대거나 하지 않았는걸. 밥도 주고 햇빛 피하라고 이렇게 집도 지어주고 옷도 구해줬으니까. 만약 나쁜짓을 하려고 했다면 진작에 했을거야"

"........."

나름의 일리는 있었다.


만약 상대가 아이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했다면  대해야 하는 이유가 있겠지만,  사건 발생일로 몇주나 지난 지금 아무런 연락이 없는 지금 납치범의 목적은 돈 따위가 아니였다.

강간이나 성폭행이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죽은 첫번째 희생자를 빼고는 눈앞의  아이들은 멀쩡했다. 손도대지 않고 씻지 않은것 외에 건강상태에 지장은 없다.


시온은 그제서야 근본적인 물음에 도달했다.


도대체 납치범은 뭐가 목적이지?

"..........."

돈도 아니고, 성욕도 아니다, 납치한 아이들이 도망치려고 하면 잡아오지만 손찌검을 하지 않는다. 그저 감시만 할 뿐이다. 마치 돌봐야  아이인 듯이........어?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하자 시온은 관점을 달리했다.

애초부터 납치범에게 중요한것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았다면?


"그런거라면 직접 들어야  이야기가 있을겁니다. 적당히 제압해서 할 수 있으면 이유를 들어봐야 합니다"

"제압? 안보이는 괴물을 상대로 경찰 아저씨가 제압할 수 있을까?"


"경찰이 아니니까 될겁니다"

"........?"

수정이가 미처 시온에게 말의 의미를 되묻기 전에 주변 온도가 한순간에 싸늘하게 식었다. 아직 한여름에 해가 중천에 떠있는데도 불구하고 마음까지 오싹하게 만드는 느낌이 그들을 휘감았다.


이윽고 하늘에서 폼나게 슈퍼 히어로 랜딩을 하며 금속질 라쿤 가면을 쓴 남자가 착지했다.


얼굴을 가리고 마스크의 음성변조 기능을 쓰는 이유가 무색하게 그는 대놓고 등장 대사를 내뱉었다.

"내가 우리 마누라 구하러 가는데 5분 이상 시간을 쓸거 같냐"

"와! 라쿤맨이다!"

아람이는 환호성을 지르며 만세를 했다. 납치되긴 했어도 라쿤맨의 등장은 한달 전부터 시작된 일이다. 알고 있어도 이상할건 아니고 오히려 초등학생 애들이 더 열광하는 그런 면모가 있었다.

포스 유저도 영웅 취급을 받지만 정체를 숨기는 슈퍼히어로가  인기가 많은 법이다. 게다가 모티브는 귀여운 라쿤이다. 여자애들에게 인기 있어도 이상하진 않다.

"어디 다친덴 없어? 아, 애들도 두명 다 있네. 멀쩡한  같고. 몸에 이상 있거나 그런덴 없어?"

"저는 괜찮습니다. 그리고 괜한 걱정입니다"


"어디 한군데 까진덴 없지? 다 좋은데 몸 내구도는 일반인이랑 똑같잖아. 스치고 베여도 상처가 나는 판에 내가 걱정 안하게 생겼냐"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어른스러웠던 수정이는 두사람의 대화에서 서로 아는 사이라는걸 깨달았다.


그리고 시온이 유부녀라고 했던 이야기도 동시에 떠올랐다. 그렇다면 라쿤맨의 정체는 설마........!

까아아앙!!!

"아, 새끼 왔구만"


최악이 손을 들어 보이지 않는 공격을 쳐내자 마치 단단한 무언가가 충돌하여 울리는 진동이 울려퍼졌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라도 단숨에 척추뼈와 함께 두동강낼 보이지 않은 공격이였지만 그는 보지도 않고 막아냈다.

"일단 저 새끼 조지고 이야기 하자. 거기 애들 좀 데리고 있어"


"죽이진 말고 일단 제압으로 부탁드립니다"


"어, 왜?"

"짐작가는게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봐야 하기 때문에 제압으로 부탁하겠습니다"


"마누라 분부신데 해드려야지, 아무렴. 그래도 마지막에 죽는건 똑같다?"

"마음대로 하십시오"


만약 상대가 한명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면 시온도 재고해봤겠지만 이미 한명 세상을 떠난 여자아이가 있다. 원한이 얽힌 살인이라도 처벌을 받아야  판에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이를 죽인건 큰 죄악이다.

 대한민국 법으로도 포스 유저 범죄자가 살인을 저질렀을 경우 사형까지 선고 받을 수 있다. 유명무실한 이름만 사형이 아니라 실제로 사형이다.


여기서 죽인다고 한들 결과적으론 같을 뿐이다.


"어? 이 새끼 좀 이상한데?"

최악은 자신의 기감에 걸려드는 납치범을 인지하고 자신도 모르게 내뱉었다. 대충 위치만 감지하던 것과는 다르게 지금은 보이지 않는 상대와 전투를 펼치기 위해 머리카락 한올의 움직임도 감지하는 기감을 펼쳐둔 상태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심지어 외모마저도 이미지할 수 있을법한 기감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건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놀란 점은 상대가 인간의 외형이 아니라는 점이였다.

"머리에 뿔도 달려있고 전체적으로 뭐라고 해야하나......그 왜 곤충 외계인 같이 딱딱한 느낌의 그거"

"외골격 말입니까?"

"그래, 그거. 딱 그렇게 생겼는데?"


느긋하게 말하는 틈에 납치범은 손을 뻗어왔다. 상대는 맨손이였지만 최악이 감지한 그의 손은 유연하고 강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 외골격으로 뒤덮힌 손이였다.

총탄도 튕겨낼법한 강도에 어지간한 도검의 이도 나가게 만들 예기의 손톱은 맹렬하게 최악의 머리를 노렸지만 그는 피하지 않고 쳐냈다.

"전투센스가 형편없는데? 전문적으로 교육 받은 놈은 아닌가봐?"


냉정하게 평가한 최악은 뻗어오는 팔의 손목 부분을 주먹으로 쳐올리며 궤도를 바꿨다. 그리고 어께 위로 손이 스쳐지나가자 그대로 붙잡아서 등 뒤로 메쳐 땅에 내려 찍었다.


콰아앙!!!

뭔가 육중한 것이 추락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가벼운 유도 기술이지만 국가대표 선수도 몸이 터져나갈 듯한 힘과 속도로 내려찍어서 인간에게 쓸법한 기술이 아니였다. 상대가 괴물같이 생겼다는걸 알고 일부러 그런 것이다.


손대중을 했다고 하지만 납치범은 멀쩡했다. 최악의 다리를 노리고 다시 손을 휘둘렀으며 그걸 피하기 위해 뒤로 물러난 그와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빙글빙글 돌며 최악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면 싸우는데 큰 영향을 끼친다. 하물며 이렇게 위치를 파악할 수 없도록 돈다면 더욱.

기습을 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는 납치범은 계속해서 최악의 주위를 돌았다.


"내가 두번째 능력 각성한 이후로  앞에서 기습 성공한 새끼가 단 한번도 없었다 새꺄"


최악의 첫번째 능력은 '간섭'.

여러가지 능력을 따라할 수 있고 범용성은 높지만 깊이가 부족한 능력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수단을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그에게는 가장 잘 맞는 능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두번째 능력은 '감각'.

신체의 오감은 물론이고 육감마저 극도로 발달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을 각성한 초월자는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미래를 예지하거나 기습을 방지하고 찍어서 로또 복권 번호도 맞출 수 있는 초인적인 감각을 자랑한다.


그의 '감각'은 첫번째 능력인 '간섭'과 시너지를 일으켜서 의지역장 내부에 절대적인 기감을 형성한다. 평소 펼치고 다니는 넓이에 따라서 다르지만 대충 펼친 지금도 수킬로미터 바깥의 지나가던 행인이 들고있는 핸드폰 기종도 맞출  있을 정도의 정확도를 자랑했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장점은 없는것과 다를바가 없었다.


최악의 뒤를 노리고 달려들었지만 이미 파악하고 반응하여 허리를 비틀어 뒤를 돌면서 힘차게 옆차기. 타격음보다 폭음이 들릴 정도로 큰 소리가 남과 동시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굵직한 나무 두어그루를 박살내며 부서졌다.


"튼튼하기는 지랄맞네. 확실히 사람은 아닌데?"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내장은 단련할 수 없다. 최악도 능력으로 가드할 뿐이지 내장 자체가 튼튼한건 아니다.


포스 유저도 타격이 갈만큼 후려찼고 뼈가 부러진걸 넘어서 옆구리에 발차기를 먹였는데 내장에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을리 없다. 하지만 최악의 기감에는 비틀거리긴 해도 멀쩡하게 일어나는 납치범이 인지되고 있었다.


"귀찮으니까 일단 모습부터 드러내봐라"

최악이 공세에 나섰다. 방어만 하다가 본격적으로 공격에 나서자 전투의 양상이 달라졌다. 아까까지만 하더라도 공격하는 쪽이였던 납치범이 반대로 공격을 막는 입장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이 본다면 허공에 주먹질 하는것에 지나지 않지만 전투의 여파가 굉음과 충격을 일으키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공기를 찢는 파공성이 들리면 근처 나무에 야생동물이 남겨놓은 듯한 발톱자국이 남았다.


키이잉!!

최악은 양손을 각각 머리 위와 아래에 두고 동시에 움직이며 태극(太極)을 그렸다. 그가 쓰는 무공이나 이능력은 제압보단 살상에 특화되어 있기에 멀쩡하게 잡기 위해서는 강(强)이 아닌 유(流)를 추구해야 했다.

태극에 이치를 극도로 활성화 하여 그걸 전투적인 용도에 접목하자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최악의 주변으로 포스가 떨리기 시작하며 이내 납치범의 모습을 가리고 있던 포스마저 흩어져 놈의 모습을 드러내게 만들었다.

"크륵......."

납치범이 모습을 드러내자 그의 짐승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의 특성은 단순히 모습을 숨기는게 아니라 소리나 냄새 같은 추적할 수 있을법한 모든 것을 은폐할 수 있는 모양이다.


전체적으로 푸른색의 외골격을 띄고 두 팔과 다리, 그리고 머리가 달렸다는  외에는 인간과 흡사해 보이는 점은 없지만 한가지 인간다운 점이 있다면 너덜거리긴 해도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였다. 본디 흰색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의와 하의의 소매는 닳아서 반팔, 반바지가 되어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지만 인간이였다는 증거는 되어 보였다.

"어라?"

뭔가 기시감을 느낀 최악은 잠시 주춤했다. 인간이지만 괴물같은게 섞인 외형은 예전에 한번 본적이 있었다.

그런 잠깐의 틈을 타고 납치범, 아니 괴인은 손을 뻗어 최악의 목을 노리며 돌진했다. 그의 다리가 한순간 부풀어 오르며 땅을 박차고 덤벼들자 한순간 제로백까지 2초밖에 걸리지 않을만큼 가속했다. 그대로 몸통박치기를 먹여도 대형트럭에 충돌하는 것과 맞먹는 충격이 일어날 정도다.

그러나 최악은 긴밀하게 반응했다. 전투를 속도로 따질거면 일단 시속 세자릿수는 벗어난 뒤에 와야 했다. 뻗어오는 괴인의 팔을 숙여 피한 후 나선으로 그려낸 태극의 파장을 그의 팔에 덧씌웠다. 그러자 괴인의 팔과 손가락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꼬아 비틀어졌다.


"끄어어어어!!!"

"일단 팔 하나"

최악이 양팔을 휘저으며 만들어낸 태극이 이번엔 괴인의 양 다리에 닿았다. 그러자 괴인의 다리가 꽈배기처럼 비틀어지면서 그의 몸이 땅을 굴렀다.

"다리 두개. 우선 팔 하나는 봐줬다"


일이 마무리가 되자 최악이 시온과 아이들에게 걸어갔다. 입막음을 위해 아이들에게 이야기도 해봐야 하고 시온이 알아보려고 했던게 뭔지 알아야 했으니까.

그러나 발걸음을 옮기던 최악이 걸음을 멈추었다. 괴인은 입에서 피거품을 물며 멀쩡한 한팔로 최악의 발목을 붙잡아 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고통에 겨워서라도 움직이지 못할텐데 필사적으로 보이는  모습은 최악이 보기엔 본능적은 행동이 아니라 확실하게 이성적인 행동이였다.


"말도 못하고, 알아 듣는거 같지도 않고. 거의 짐승처럼 변했는데 인간성만 남은건 무슨 경우냐"

최악은 한숨을 쉬었다.

인간에게 주어지는 최악의 말로가 지금 괴인이 처한 상태였으니까.


최악은 조금 고민하긴 했지만 자신의 발목을 붙잡고 놓지 않는 괴인의 손목을 밟아 부러트렸다. 고통에 겨워 온몸을 비틀며 괴성을 내뱉었지만 최악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괴인은 손목에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발목을 잡은 손을 여전히 놓지 않았다.


"아무리 악의가 없었어도 죄는 죄지. 납치했던건 봐줄 수 있어도 살인은 못봐줘"

살인죄에 대한건 최악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선을 넘은 자들에게는 한없이 잔혹해질  있다.

괴인이 처음 납치하고 죽였던 소녀는 미처 청춘조차 보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 죄는 인간의 한평생으로 갚아 나가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그러니까 저 애들은 부모님한테 돌려보내주자고. 알겠냐?"


괴인이 최악의 말을 이해했는지 어떤지 모른다. 만약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면 진작에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최악의 말이 그에게 전해진 모양이였다. 필사적으로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던 괴인의 손이 덜덜거리면서 최악을 놓아주었다.


"그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었다.


최악은 그가 지은 죄는 죄지만 그에게 남은 인간성에게는 연민을 표했다. 적어도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대해주기로 생각했다.


그리고 최악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분노가 일어났다.


사람을 이렇게 만든 장본인들에 대한 분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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