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일요일에 출근하는 기분은 영 좋지 않다.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에 쉬지만 다음날이 일요일이라는 타격은 상당히 크다.
물론 사람들이 치킨을 가장 많이 먹는 날이 주말이라 장사하려면 어쩔 수 없지만.......귀찮은데 일요일도 쉴까?
나중에 백리가 완전히 내 레시피를 따라할 수 있게 된다면 알바 하나 더 들여놓고 가게 맡기고 난 쉬어야겠다. 몇년 정도 있으면 능숙해지겠지.
지금도 밑간을 하거나 닭 손질하는건 나름 괜찮지만 튀기는 실력은 아직 부족하다. 합격점이 90점대인데 백리는 80점대다.
자고로 80점까지는 올리기 쉽지만 90점대로 오르는건 힘든 법이다. 나도 년 단위로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한 요리에 정통하려면 합당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오히려 백리가 포스 유저라서 보통 사람보다 조건이 좋으니까 더 짧다.
"가게 다녀올께. 오늘 몸 조심하고"
"뭔일 있습니까?"
"아니, 그냥 감이 안좋아서"
어제부터 슬금슬금 불길한 느낌이 등을 타고 오른다. 미래예지가 불가능한 것 뿐이지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건 대충 파악할 수 있다. 이게 정확한건 아니더라도 없는것 보단 낫다.
"되도록이면 나가지 말고. 오늘 외출할 일 있는거 아니지?"
"딱히 나갈 일은 없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냉장고에 있는걸로 밥 하면 될 것 같아서 장보러 갈 생각도 없습니다"
"그럼 됐어"
집에는 나름 경비 시스템이 있으니까 괜찮다. 시온이 직접 설치한 시스템이니 어지간한 침입자는 격퇴할 수 있다.
애초에 그런것 보다 우리 마누라가 더 강하지만 만약의 경우가 있지 않은가? 이 세상에 절대란 것은 존재하지 않아서 100퍼센트도 없고 0퍼센트도 없다. 한없이 그에 가까운 확률만 존재할뿐.
"잘 다녀 오십시오"
시온이 손을 흔들며 배웅해준다. 나는 가볍게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출근했다.
분명 뭔가 있을것 같다. 되게 불안하네 썅.
기분 좋게 람보르기니 끌고 출근하는데도 기분이 찝찝하다. 오늘 하루 정도는 집에서 같이 있고 싶지만 하필이면 오늘은 손님도 많을 일요일이다.
솔직히 오늘 같은 날은 치킨 하나 먹으면서 월요일을 대비하기 때문에 싸가는 손님이 많다. 게다가 일요일이라고 내일이 오지 않을것처럼 노는 사람도 반쯤 꽐라가 되서 2차 오는 손님도 많고.
"아, 형 왔어요? 조금 늦게 오셨네요"
"오늘은 이래저래 불길해서 말이지"
내 기감을 속일만한 존재는 나보다 상위 초월자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설령 나랑 동수의 상대라 할지라도 나에게 기습같은 공격을 하는건 절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 기감은 직감과 연동하여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경고해준다. 단지 그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를뿐.
아는 사람은 이걸 알고 있는 정보를 통합해서 결과만 도출해내는 사기적인 능력이라고 했지만 솔직히 내가 천재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아냐.
나는 단지 환생자로서 경험치가 있어서 이 경지까지 올라온거지 재능은 평범하다. 그나마 재능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것 중에서 특출난 거라곤........흠, '가능성의 특이점' 하나밖에 없나. 그거 때문에 여태까지 잘 살아오긴 했지.
"불길해요? 아침에 뭔일 있었어요?"
"그냥 감"
"에이, 그럼 그냥 기분탓이겠죠 뭐"
"아냐, 초월자들의 감각도 인간의 상식을 넘었는데 나는 능력 덕분에 그중에서도 더 하거든. 내가 불길하면 뭔가 일어날거라는 징조야"
분자 활동을 일부 제어하여 동결 계통의 능력도 따라할 수 있을 정도의 직감이다. 섬세함으로 따지면 나보다 더 세밀하게 힘을 조절할 수 있는 녀석은 드물다.
그런 직감이 경종을 울리는데 무시하는게 등신이지.
"오늘은 빨리 끝내고 들어가자. 재료 남아도 6시 쯤에는 마치고 돌아가야 할것 같다"
"일찍 들어가면 저야 좋죠. 근데 그만큼 불안하세요?"
"내가 이렇게 근질거릴 때가 그리 없거든? 내가 기습 당하는건 상관 없는데 우리 마누라가 관련된거면 개미 한마리가 등을 타고 계속 발발거리는 느낌이 들어"
"으악! 기분 더럽겠다"
"그치? 우리 마누라가 어디 가서 얻어맞진 않을텐데 그래도 안겪는게 낫......."
그때 내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불길한 느낌이 한층 더 진해졌다.
전화가 온 내 핸드폰 화면에는 '울 마눌님'이라고 발신자가 적혀 있었다. 아, 나 출근한지 얼마나 됐다고.
".......여보세요?"
[아, 막 출근했을텐데 전화해서 미안합니다]
"무슨 일 있어?"
[납치 당했습니다]
"씨발"
인생사 바라는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게 이럴 때마다 실감이 난다.
* * * *
집에서 청소기 한번 돌리고 정리를 하던 시온은 되도록이면 외출을 하지 않도록 자제했다. 어차피 오늘은 일요일. 마트도 문을 닫아서 장을 보려면 시장까지 나가야 했고 멀리 나갈 생각 없으니 집에만 있을 생각이였다.
최악이 출근한 후에 TV를 보던 그녀는 문득 생각났다. 오늘은 쓰레기를 버리는 마지막날이다.
정리를 해두긴 했지만 집안에 그대로 있는 쓰레기 더미들. 특히나 정력이 일반인을 넘어선 시온과 최악은 뒷처리를 위해 사용한 티슈와 휴지가 10리터 짜리 종량제 봉투를 꽉꽉 채웠다. 그것도 겨우 일주일 모은게.
솔직히 냅둬도 되긴 하지만 사용한 용도가 그런지라 며칠만 내버려 두면 곰팡이가 생기고 버섯이 돋아날 지경이다. 더군다나 여름 날씨에는 더더욱 그렇다.
저녁에 최악이 돌아왔을 때 버려도 되긴 하겠지만 일하고 돌아온 사람보고 쓰레기 버리라고 하기에는 시온의 양심이 찔린다.
돈은 시온이 다 벌긴 하지만 버는데 드는 노력을 따지면 최악이 훨씬 위다. 그런데 겨우 쓰레기 모아서 버리는거 하나 못하겠는가.
"잠깐 나갔다 오는거니까......별일은 없을겁니다"
진짜로 코앞에 있는 거리다. 집에서 나와서 겨우 2,3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에 이 동네 쓰레기 분리수거장이 있다. 멀리 나가는거면 몰라도 왕복 5분 거리에서 뭔가 일어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온은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서 핸드폰을 챙기고 모아놓은 쓰레기들을 들었다. 체구는 작아도 일반적인 성인 여성의 신체능력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거워 보이는 물건도 가볍게 들 수 있다.
혹시 몰라서 주변을 탐색해본 시온은 아무도 없다는걸 인식하고 최대한 빨리 다녀오기로 했다.
가는 동안에는 문제 없었다. 만나는 사람도 없었고 보이는 사라도 없었다. 오로지 시온 혼자였다.
분리수거장에서 어차피 집에서 어느정도 분리수거는 했으니 종류대로 빠르게 버린 후에 돌아가는 길이였다.
뭔가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윽?!"
시온은 자신의 손을 붙잡은 사람이 누구인지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누군가 자신을 붙잡은 감촉만이 뭔가 있다는걸 알게 해줄 뿐이였다.
무지막지한 힘으로 자신을 들어올리고 처음 느끼는 기이한 힘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마치 주변에 녹아든 것처럼 그녀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시온이 그것을 깨닫고 알아차렸다. 상대는 그저께 이유성 경위에게서 들었던 초등학생 연쇄 납치사건의 범인이자 포스 유저. 그리고 그녀가 인근 CCTV를 전부 뒤져도 흔적 하나 발견할 수 없었던 이유다.
마치 카멜레온 같이 주변과 동화되어 완전히 은신할 수 있는 포스 특성으로 인해 놈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납치범은 시온을 데리고 도주했다. 빠른 속도로 달려서 어디론가로 향했다.
".........흠"
시온은 지금 당장 벗어날 수 있었다. 단지 생각할게 있어서다.
최악이 진심으로 싸우면 시온이 지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파괴적인 측면에서는 시온이 한수 위다. 겨우 포스 유저 하나 시온이 쓰러트리지 못할리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건 다른 납치 피해자들이다.
납치된 아이는 총 세명. 그중에서 한명은 살해되어 발견되었지만 나머지 두명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죽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반대로 살아 있을 가능성도 아직 충분히 있다.
곰곰히 생각하던 시온은 얌전히 납치되어 주기로 했다. 상대가 이런 은신 계열의 특성을 지닌 포스 유저라면 CCTV를 백날 뒤져도 찾을 수 없다. 찾고자 한다면 방법은 있겠지만 지금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시온도 나름 이기적이다. 가장 먼저 자신의 안위를 따져본다. 하지만 그게 확실하게 보장된다면 다른걸 생각할 여유가 주어진다.
만약 정말로 위험한 상황이였다면 할 수 있는 모든걸 사용해서 이 자리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안전은 보장되어 있고 납치당한 다른 아이들을 생각했을 때 무시하고 자신만 생각하기에는 시온의 양심이 너무 인간적이였다.
그녀는 조용히 납치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납치범은 숲이 우거진 어딘가로 그녀를 데리고 들어갔다.
"여기는.....?"
시온은 인근에 숲이 있을만한 곳이 어딘가 생각해 보았다.
오던 도중에 강을 하나 지났으니 청계천을 넘어선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부근에서 숲이 있을만한 곳은 어디일까?
서울 한가운데에 숲이라고 생각될만큼 수목이 우거진 곳은 드물다. 공원이라 하더라도 어지간한 규모가 아닌 이상 숲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경관이 멋지다고 느껴질만한 곳이라면 시온이 짐작가는 곳이 있다.
지나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지나가지만 아무도 시온과 납치범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 지나갔을 때의 여파도 강한 바람 정도로 여기고 오히려 더운 날씨에 잘 됐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멀리 떨어진 숲 한가운데서 썩은 나뭇가지로 작게 만들어놓은 움막 비슷한 것이 있었다. 비가 온다면 천장의 역할도 못할 정도로 조악하게 만들어져서 금새 부서질것만 같았다.
납치범은 시온을 그 움막 옆에 내려 두었다. 그리고 작은 소리와 함께 기척이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본 시온은 발자국도 보이지 않는 납치범의 은신에 조금 놀랐다. 아무리 이능력에 취약한 시온이라도 길어야 20년을 단련한 인간의 기술로 그녀를 속인다는건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는 증거다.
시온은 우선 주변 파악을 하기로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납치된 아이들을 확인하는게 중요하다.
"먹고 남은 쓰레기, 물병, 이런저런 비닐등.....주로 생필품 잔해입니까"
시온은 주변에 널부러진 쓰레기들을 보고 주로 생존을 위한 기본적인 생필품이란걸 파악했다. 그리고 그녀는 움막 안을 살며시 살펴보았다.
거기에는 작은 여자애 두명이 옹기종기 모여 옷가지 몇개를 이불로 덮어쓰고 있었다.
"........."
한순간 시온은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지만 다행히도 옷가지가 규칙적으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모습을 보자 안심했다.
처음으로 납치된 아이는 처참한 모습으로 발견됐다고 해서 혹시나 싶었지만 지레짐작으로 끝나서 다행이다. 시온이 아무리 오래 살아왔다고 한들 어린애들이 죽은 모습은 익숙해지지 않는 법이다.
그녀는 우선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그녀 혼자 몸을 빼는건 쉬운 일이지만 아이들까지 끼어 있다면 그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녀의 힘은 어디까지나 파괴에 특화되어 있고 남을 지키는데 쓰는게 아니다.
핸드폰을 꺼내서 최악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통화음이 미처 끝나기 전에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 있어?]
"납치 당했습니다"
[씨발]
간결한 대화로 현재 상황을 전달했다. 최악은 한마디로 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가장 중요한 것부터 차례대로 물어보기 시작했다.
[무사해?]
"저는 괜찮습니다. 애초에 대비도 해두지 않았습니까?"
[난 절대라던가 완벽이란 말 안믿어. 언제나 내 이름 같은 경우도 생각한다고]
"여기 저 말고 납치 되었던 애들 두명도 있습니다"
[살아 있어?]
"네, 지금은 자고 있지만 나름 건강해 보입니다"
시온은 조용히 자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나이가 많은것도 아니고 초등학교 저학년. 기껏해야 2,3학년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다.
아무리 현대 사회의 아이들이 나이에 비해 조숙하다 할지라도 겨우 10살짜리 어린애가 겪기에는 좋은 일이 아니다.
"인공위성을 해킹해서 정확한 위치를 찍어 드리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오십시오"
[알았어. 어떤 새낀진 몰라도 그 새낀 갈아 버릴테니까 걱정마. 애들 깨면 안심 시켜주고]
"알겠습니다"
시온은 전화를 끊었다.
커플 서비스를 통해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지만 그것보다 인공위성을 해킹해서 정확한 위치를 찍어주는 편이 더 빠르고 편하다. 또한 핸드폰이 매개인 것과 그녀 자체가 매개인 것은 정확도가 다르니까.
보이지 않는 전파가 그녀의 의지를 타고 위성 궤도의 인공위성에 닿는다. 미국쪽 위성인지 나름 방호벽은 튼튼했지만 그래봤자 종잇장과 우드락의 차이였다.
최악의 핸드폰에 이곳의 위치를 보냈다. 늦어도 10분, 빠르면 5분 안에 달려올 것이다.
"누구.......?"
대화 소리가 잠이 깬건지 자고 있던 아이중 한명이 깨어났다.
지금 생각하는 것이지만 죽었던 아이도, 지금 납치된 아이도 여자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성폭행이나 그와 비슷한 행위를 당했다고 하기엔 두사람의 상태가 비교적 괜찮았다. 오랫동안 씻지 않아서 조금 더러운 모습이지만 적어도 굶거나 맞지는 않아 보였다.
"너, 너도 잡혀온거야?"
"너라고 불릴 정도로 어리진 않습니다만......흠, 제가 당신 보다 나이가 훨씬 많으니 아줌마라고 부르면 됩니다"
"아줌마? 그치만 너, 내 또래 아니야?"
외견상으로는 시온이 1,2살 정도 위로 보인다. 그래봐야 초등학교 고학년이지 아줌마라고 불릴 정도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시온은 워낙 어린애 취급을 많이 받은터라 외견상 비슷한 또래에게마저 그렇게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 오기로라도 아줌마라고 들을 생각이다.
"저는 시온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유수정, 얘는 이아람이야"
시온은 유수정이라고 소개한 아이에게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두사람이 납치된 것은 일주일의 텀이 있었지만 먼저 납치된건 유수정이였다. 그 다음 일주일 뒤에 이아람이 납치되어 왔다.
"전화로 도움 요청할 생각은 안해봤습니까?"
"나도 있었으면 했지. 핸드폰 보면서 걷다가 납치되서 길바닥에 떨어트리고 왔을거야"
요즘 세상에 초등학생이라도 핸드폰이 없는 아이는 드물다. 그건 수정이도, 아람이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수정이는 납치되던 도중 핸드폰을 떨어트렸고 아람이의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됐다. 만약 둘중 한명이라도 핸드폰이 멀쩡했다면 일이 이렇게 오리무중으로 빠질 일은 없었을 것이다.
"탈출할 생각은?"
"몇번 해봤어. 다시 잡혀 왔지만. 가끔 사람들 소리도 들려서 소리쳐보기도 했는데 생각보다 멀어서 안들리는 모양이더라고"
도망치고, 숨어보고,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해보고. 아이가 할 수 있는건 전부 해봤지만 탈출하지 못했다.
애초에 상대는 보이지 않는 괴인이다. 기회라 생각하고 도망쳤지만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다시 붙잡혀 이곳으로 되돌아 왔다.
도망치는 시도가 열번이 넘어갔을 때 수정은 포기해버렸다. 다행이라면 납치범이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납치라는 행동에는 보통 두가지 부류로 나뉜다. 성폭행, 강간, 살해 같은 행위를 위해 저지르는 납치와 돈을 뜯어내기 위해 저지르는 납치다.
이번 경우는 둘 다 아니다. 처음 납치당한 아이 외에는 죽은 아이도, 험한 일을 겪은 아이도 없다. 그리고 납치범은 돈을 위해 저지른것 같지도 않다.
뭔가 좀 더 본능적인 이유라고 생각된다.
"잠깐만, 그러고 보니 넌 핸드폰 있어? 있으면 빨리 경찰에 전화해!"
"도움 요청은 이미 했습니다"
"정말? 다행이다.......이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거지? 그치?"
그나마 어른스러운 척 했지만 애는 아직 애다. 자신의 안전이 보장되는지 어떤지 모르는 상태에서 2주를 버텼다면 장한 일이였다.
"제발 집에 가게 해줘. 엄마 보고 싶단 말이야......."
훌쩍이면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시온은 조용히 그녀를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이런 곳에서 단 둘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걸 생각하면 가엽고 대견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온은 자식을 낳은 적은 없지만 자식이 없었던건 아니였다. 친자식은 아니더라도 최악과 같이 지내는 동안 입양한 아이도 있어서 키운 적이 있다. 외견이 어린애라고 모성애가 없는건 아니다.
불안에 떠는 수정이를 진정시켜주자 한결 편해진 얼굴로 눈물을 그쳤다. 시온은 눈물로 엉망이 된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이제 괜찮습니다. 틀림없이 잘 될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경찰이 아니라 최악을 불렀다. 최악은 경찰처럼 치안 유지같은 일은 하지 못해도 이런 일 해결하는데는 도가 텄다. 더불어서 인명피해도 줄일 수 있다.
"경찰 아저씨는 얼마나 온데? 많이 온데?"
"알아서 많이 올겁니다. 이미 수사팀도 꾸려져 있으니 못해도 한두팀은......"
"그걸로 안돼!"
시온은 경찰이 온다고 일부러 거짓말을 했지만 수정이는 소리치며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엄청, 엄청 많이 와야 할거야. 납치범은 안보이는데다 사람이 아니야.......!"
"......사람이 아니라니 무슨 소리입니까?"
시온은 예상외의 이야기에 다시 되물었다. 그리고 수정이는 작게 떨면서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의 머리에 뿔 같은게 돋아나 있을리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