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백리가 귀가하면 먼저 루리가 마중을 나온다.
"치킨!"
"야, 그렇게 먹으면 살쪄!"
"난 먹은만큼 공부 하니까 괜찮아!"
"내가 무슨 치킨 배달하는 아저씨로 보이냐"
"아저씨, 얼마예요? 카드 되죠? 쿠폰 가져왔어요?"
"안팔아!"
이야기는 그렇게 해서 서로 낄낄거리면서 백리는 치킨을 건내고 루리는 치킨을 받았다.
남매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집도 많지만 사이가 좋은 집도 있다. 백리의 경우에는 그가 너그럽게 받아주는 경향이 있어서 어느정도 사이가 좋은 편에 속한다.
요즘은 주로 백리가 가져오는 치킨이 목적이여서 그렇지만.
"너희들 그러다 살찐다. 밤에는 조금만 먹어야지"
"한창때의 여고생에게 치킨 한마리는 조금이예요. 엄마"
"기름진거 너무 먹으면 못써"
"치킨은 자고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세가지가 골고루 들어간 퍼펙트 요리니까 괜찮아요"
루리네 어머니가 야밤에 치킨을 먹는 루리에게 한소리 했지만 소용 없었다. 자고로 청소년기가 욕구가 가장 강한데 남자는 성욕으로, 여자는 식욕으로 많이 나오는 편이다.
"야, 루리야. 기름에 튀겼으니 지방하고, 닭가슴살에 단백질은 이해하겠는데 탄수화물은 어디있는데?"
"튀김옷에"
"그거 있다고 탄수화물이야?"
"미국에서는 피자에 토마토 소스 들어갔다고 야채라고 하잖아. 미국도 그러는데 우리라고 못하라는 법 있어?"
"어째 한마디도 안지냐"
확실히 튀김옷을 만들 때 튀김 가루 같은 것의 성분을 살펴보면 탄수화물 성분량이 높다. 밀가루 같은 곡물 재료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치킨에서 그 비중을 따져보면 가장 낮다.
백리는 기껏해야 한두조각 먹고 말았다. 하루 종일 치킨만 튀기다 보면 기름 냄새만 맡아도 식욕이 생기지 않는다. 그나마도 가슴살을 먹고 단 두개 있는 다리는 전부 루리에게 내주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까 오늘 방송국 사람 와서 촬영해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그래? 어느 방송인데?"
"VJ 특공부대"
"요즘 한물 간 프로그램 아냐?"
"너도 어릴 때는 자주 봤잖아?"
"그거야 어릴 때고. 보니까 시청률도 그렇게 많이 안나오는것 같던데"
장기 프로그램은 그렇다. 오래된 프로그램일수록 소재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그러면 필연적으로 시청률이 떨어진다.
물론 오래 방송하면 그만큼 고정 시청자가 있지만 요즘 시대 예능 프로그램과 비교한다면 별로 인기가 있는건 아니다.
치킨 한마리를 다 먹고 정리까지 하니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려면 루리도, 백리도 자야 하지만 두사람 다 방으로 가지 않았다.
"너 안자냐"
"뭐 어때, 조금 있다가 공부 더 하고 자지 뭐"
"안졸려?"
"오빠도 마찬가지잖아?"
포스 유저로 각성하고 나서 좋은 점이 있다면 몸이 쉽게 피곤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진대사도 일반인의 몇배 이상 좋아지고 체력과 근력도 늘었다. 그래서 백리도 서너시간만 자도 푹 잔것처럼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다.
포스 유저로 각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백리도 그러한데 훨씬 전에 각성한 루리는 더욱 그랬다.
"하루에 두시간만 자고 공부하니까 성적 쭉쭉 올라서 개꿀임"
"치사하다 치사해. 반칙 아니냐 그거"
"포스 유저 각성하면 됨"
"못하니까 니가 반칙인거지"
일반인보다 더 좋은 기억력과 체력, 회복력을 가지고 있다면 공부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이 된다. 하루만에 전 과정을 다 깨우친다거나 하진 않지만 남들보다 몇걸음 앞에 있는건 확실하다.
"사장 형이 네가 나보다 강하다는데 진짜야?"
"그럼 포스 유저 짬은 내가 더 먹었는데 오빠보다 약하겠어?"
"나랑 똑같이 기본 교육 빼고 받은건 없잖아?"
포스 유저가 되면 기본적으로 국가에서 포스 컨트롤을 위한 기본적인 커리큘럼을 받게 한다. 제어가 되지 않는 힘을 가지고 거리를 돌아다니면 폭탄과 다를게 없으니까.
딱히 국가 소속이 되지 않아도 기본 교육 만큼은 받아야 한다. 많이 가르쳐주진 않고 기본적인 육체 강화 능력을 획득할 수준의 교육만 한다. 그 이상은 본격적인 훈련소에 들어가야 하고.
"수능 패망하면 그냥 대학은 물건너 갔다 생각하고 몸으로 하는 일이라도 뛰어야지. 건설 업계에서는 포스 유저 대환영이라던데"
"나도 그거 생각은 해봤는데......관리직으로는 못올라가서 전망이 없다더라"
남들보다 강한 힘을 가진 포스 유저가 건설 현장에 가면 장비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도 무거운 자재들을 들고 갈 수 있다. 덕분에 포스 유저는 건설 업계의 임금이 높은 편이지만 그것 뿐이고 안전성이 없다. 포스 유저라도 공사 현장에서는 덜 다치는것 뿐이지 안다치는건 아니니까.
게다가 직접 몸을 써야 하기 때문에 관리 계통의 직위는 할 수 없다. 몇배나 되는 임금을 주고 정작 그 힘을 쓸 수 없는 보직에 올릴 바보는 없으니까.
높은 임금을 바라고 들어가기에는 그거 하나뿐인 업계다.
"근데 무슨 일? '강해지고 싶어!'같이 전형적인 이유라면 발닦고 들어가서 자라고 해주고 싶은데"
"씨, 독심술 쓰냐. 정신계 특성이라도 있어?"
"내가 오빠랑 산게 거의 20년인데 척하면 푹착푹착이지"
"......야, 비유하는게 어째 좀 야한데"
"여고생도 야한거 좋아해. 남자들이 생각하는것 보다 더. 여고생은 순수할거라는 생각은 어디서 나는거야?"
"아니, 너같은 것도 여고생이 된다는 시점에서 모든 희망은 니 입학식날 버렸어"
"오빠 동정도 입대 전날 버렸어야 했는데 말이지. 이상한데 가라고는 말 안하겠는데 여친이라도 있었으면"
"야!!"
되로 줬다가 말로 받았다. 백리가 루리랑 싸움을 하면 대부분 말싸움으로 가는데 백리가 봐주는 것도 있지만 루리의 말빨이 쌔서 못이기는 것도 있다. 아니, 대부분 후자였다.
"근데 뭐 물어보려고? 진짜 강해지는 방법 같은거 물어보려고?"
"응"
"왜?"
"어.......그냥 좋잖아? 기왕 포스 유저로 각성 했는데 나름 강해져서 어디가서 맞고 살진 않으면 좋잖아"
"한 10년 가까히 차이 나니까 그때랑 지금이랑 어떨진 모르겠는데. 오빠도 기본 교육 받을 때 들었었지? 포스 유저로 각성하려면 강렬한 감정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들었었던것 같기도 한데......."
"시벌, 나도 첫 시간에 들었던거라 지금도 기억나는데 몇달 전에 받은 오빠가 기억 안난다고?"
".........좀 졸았어"
"솔직히 첫 수업은 이론 수업이라 졸리긴 하지. 아무튼 오빠가 각성할 때 있잖아? 무슨 생각 했어?"
백리는 지금도 생각나는 그 때를 떠올렸다.
지금으로부터 십몇년 전, 아직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차원진 감지기에 의해서 느닺없이 생긴 차원진에서 튀어나온 적성종들. 놈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루리가 포스 유저로 각성해서 겨우 살았었다.
어렸을 때지만 기억은 생생하다. 방금 전에 같이 놀던 옆 아파트 동 아이가 적성종의 이빨에 갈려 내장을 바닥에 쏟아내는 광경은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바지에 오줌을 지렸을 정도니까.
공포속에서 백리가 할 수 있던건 근처에 있던 루리를 데리고 달려서 도망치는 수 밖에 없었다. 금방 잡혀서 죽을걸 알고 있었지만 해야 했던 일이다.
죽기 일보 직전의 찰나. 도리어 루리가 포스 유저로 각성해서 오히려 그녀가 백리를 구해줬지만 그때의 무력감만큼 절망스러웠던 적은 없었다.
그가 각성 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화재 현장속에 남겨진 그의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마음속의 무력감과 절망을 털어내고 일어났다. 그 순간의 감정의 변화는 그를 포스 유저로 각성 시켰다.
"나도 비슷했어. 그때는 잊고 싶어도 못잊더라. 너무 무서워서 어쩔줄 모르는데 오빠가 날 데리고 도망치던거 생각 나. 나 까지 생각할 시간도 없었을텐데 내 손 잡고 달렸잖아......그래서 같이 죽으면 안된다고 생각했더니 각성했어"
"너한테서 이 이야기 듣는건 처음인데........"
"그야 잘 할만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두사람이 잊고 싶은 기억인만큼 쉽게 꺼내는 이야기가 아니였다.
그러나 지금은 두사람 다 포스 유저였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공감대가 생긴 것이다.
"오빠 보면 국가 소속 되도 잘 할 수 있을것 같은데. 오빤 착하니까 어디가서 호구질 당해도 잘 할거야. 적성종 대응반 쪽이 아니라도 같은 포스 유저 범죄 대응팀이나 원종 처리반 쪽으로 들어가도 될텐데"
"범죄 대응팀은 허들이 높아서 힘들어. 사람 상대하는 것도 그렇고. 원종은 경쟁률이 높고"
국가 소속의 포스 유저라도 전부 적성종을 상대하는건 아니다.
우선 범죄 대응팀. 이쪽은 같은 포스 유저면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체포하기 위한 기관이다. 내일 당장 죽을것 같은 사람도 프로 격투기 선수 이상의 힘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주는게 포스 유저이기 때문에 포스 유저 범죄자의 경우 같은 포스 유저만이 체포할 수 있다. 보통은 관할 경찰서에 한팀씩 존재한다.
적성종과 달리 포스 유저는 현대의 화기가 통해서 일반인도 체포할 수 있을것 같지만 총을 가지고 있어도 일반인은 포스 유저를 상대하기 힘들다. 군대라면 모를까.
다짜고짜 총 하나 쥐어주고 호랑이를 잡아오라는 것과 같은 이유다. 선천적으로 다르다. 아니, 사람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니 오히려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
적어도 호랑이는 자길 잡으려는 사람의 가족을 뒷조사해서 보복으로 죽이려고 하진 않을테니까.
"원종 처리반이 개꿀인데"
"그치?"
적성종이 출현하고 가이아 포스가 세상에 드러난지 20년.
포스 유저로 각성하는건 그저 인간만이 아니였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 고양이에서부터 심하게는 산속에서 사는 곰, 멧돼지 같은 야생 동물들도 포스 유저로 각성하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키우던 동물이 그러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이유고 대부분은 야생동물들이 각성하여 도심 지역으로 내려와 인명피해를 내는 경우다.
이렇듯 지구 태생의 인간 외의 생물이 포스 유저로 각성하여 탄생한 생물을 '원종'이라 칭하고 따로 그 처리팀을 마련했다.
종이 다르지만 일단 원종도 포스 유저다. 화기의 효력이 있으며 원래는 야생동물이였기에 그 습성을 파악하기 쉬워서 원종 처리반은 포스 유저가 선택할 수 있는 직종 중에서는 가장 좋은 직업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에서 야생동물 중에 맹수라고 한다면 기껏해야 멧돼지가 상한이다. 토종 호랑이는 멸종한지 오래라서 맹수라고 할법한 동물이 적어서 적성종보다 허들이 낮다.
다만 지원자가 너무 많아서 덕분에 경쟁률이 빡센 직종이기도 하다. 올해 각성한 백리로서는 들어가기 힘든 직장이다. 다른 곳에서 경력을 쌓고 들어가면 모를까.
"오빠가 뭐 때문에 강해지려고 하는지 알것 같아. 나도 그러니까. 하지만 나는 내가 싸우는 것 보다 가족들이 바라는걸 하는게 더 좋을것 같아서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거야. 내가 싸우면 적성종이랑 싸우다 죽기 전에 아빠랑 엄마랑 오빠랑 걱정에 산더미다 못해 깔려 죽을테니까."
"잘 선택한거야"
"강해지고 싶으면 초심만 기억해. 최소한 어디가서 쉽게 죽진 않을거야"
"안죽는게 아니고?!"
"세상사 그렇게 물로보면 안돼. 오빠보다 강한 사람도 훅 가서 죽는 세상인데........근데 왜 갑자기 그런거에 신경쓰는거야? 최근엔 치킨 튀김옷 배합법 신경쓰더니"
문득 루리는 뭔가 떠오르는게 있는지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아, 혹시 이거 때문에 그래?"
루리는 동영상 사이트에 들어가서 가장 위에 인기 있는 동영상을 틀었다.
【천검】 이경진 VS 라쿤맨.
간결한 제목이였지만 전부 표현해주는 제목이였다. 지금 세상을 진동시키고 있는 영상이기도 했다.
"그거 영향이 없진 않은데........"
"남자들은 다 바보라니까. 이런거 보고 호승심 같은거 불태우는거야? 오빠가 이정도 되려면 산속에 틀어박혀서 개쩌는 스승한테 배우면서 한 20년은 꼬박 매진해야 할껄?"
"묘하게 현실적으로 예시를 들어서 기분 나쁘거든?"
"나도 싸우라고 하면 잘 싸울 수 있는데 이거랑 비교하면 캐허접이더라. 둘중 누가 상대더라도 5분도 못버텨"
"5분도 못버틴다는 소리는 5분 이하라면 버틸 수 있다는 소리잖아.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는게 신기한데"
백리가 이경진이나 최악이나 둘중 아무나 싸운다면 일격으로 끝난다. 일검에, 일격에 목이 잘리거나 몸뚱이가 산산조각이 나서 간단하게 끝난다.
기본 신체 능력에서부터 특성의 사용까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크다.
"빌 게이츠 보고 '나도 저렇게 부자 되야지!'하고 꿈을 크게 가지는건 좋은데 오빠는 우선 가르쳐줄 사람부터 찾는게 좋지 않을까?"
"포스 유저 선배나 선생님을 찾아보라는거야? 그거라면........"
"알아, 치킨집 사장 오빠가 종종 조언 해주지?"
".........무, 무슨말인지 모르겠는데"
백리가 애써 부정해봤지만 루리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화재 사고가 일어나고. 오빠가 그때 포스 유저로 각성하고, 그 장소에 라쿤맨이 등장해서 오빠를 구해주고, 얼마 안되서 오빠 치킨집 사장님이 와서 아빠랑 이야기 하고 가고. 거기까지 했는데 눈치 못채면 등신 새끼지?"
".........."
루리는 바보가 아니였다. 잔머리 하나만큼은 부지런하게 돌아가는 아이다. 백리의 어설픈 거짓말로는 속일 수 없었다.
"게다가 전에 치킨집 사장 오빠 만났을 때 슬쩍 탐색 해봤거든. 일반인인척 하고 있지만 이미 눈치챈 시점에서 보면 허술하게 숨긴 부분이 한두군데 정도 있더라"
"형은 마스터 유저인데 네가 그런걸 파악할 수 있어?"
"같은 모나리자 그림이라도 어느 한쪽을 '이거 위작이예요'하고 알려주면 가짜라는 부분을 알 수 있을만한게 눈에 들어오잖아? 이미 의심하고 있는 시점에서 찾아보면 약간이지만 눈에 띄어. 내 특성중 하나가 그쪽 부분인 덕분도 있지만"
"너 특성 뭔데?"
"자고로 자기 능력은 알려주지 않는게 가장 좋아. 죠죠에서 그랬어"
"아니, 거기서 죠죠가?!"
"능력자 배틀물의 시초인데 뭐 어때서? 아무튼 치킨집 사장 오빠 한테 가르쳐달라고 해. 나한테 물어보는 것보다 사장 오빠가 가르쳐주는게 더 나을껄?"
"형은 너한테 먼저 배우라던데"
"책임 떠넘기기는 높으신 분들 특기인줄 알았는데!"
루리는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러면 나도 대충 가르쳐주고 떠넘겨야겠다"
".........뭘 하려고?"
"니가 그렇게 싸움을 못해? 공원으로 따라나와!"
"..........?"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반. 야근을 하는 곳이 아닌 이상 대부분 자기 집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자고 있는 시간이다.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34분.......여동생이 오빠를 줘패도 죄책감이 들지 않을 딱 좋은 시간이군"
".......엄마, 저 루리랑 잠깐 운동 좀 하고 올께요"
계절이 여름이라 따로 옷을 챙겨 입을 필요 없이 두 사람은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두사람의 집 근처에는 가끔 동네 아저씨들이 조기축구를 위해서 쓰는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
걸어서 5분도 안되는 거리라 밤 공기를 마시며 공원에 도착하니 사람 한명도 없이 썰렁한 분위기만 감돌고 있었다.
손목과 발목을 돌리며 몸을 풀면서 루리가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나는 상당히 강해!"
"그야 나랑 네가 싸우면 내가 항상 져주잖아"
"친구 중에 오빠 있는 애들 이야기 들어보면 아주 그냥 프로레슬링 경기가 따로 없던데 그거에 비하면 울 오빠는 아주 천사지"
"어쩐일로 니가 내 칭찬을 다해?"
"지금부터 존나 팰건데 미안해서"
루리가 주먹을 쥐었다. 백리의 눈에 루리의 주먹에 깃든 포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선빵필승!"
팡!
빠르게 옷깃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면서 일반 프로 격투기 선수의 전력을 다한 공격과 비슷한 위력의 주먹이 백리의 인중을 노리고 뻗어졌다. 그에 기겁을 하며 백리는 특성을 사용해 몸을 강화했다.
"날 죽이려고 작정했어?! 어떤 미친놈이 다짜고짜 인중에다 주먹질을 해?!"
"미친놈이 아니라 미친년이 아닐까? 이봐요 미친년씨! 하고 말 걸어봐!"
"야!"
백리가 할 수 있는건 막는 것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신체 강화에, 자신의 특성인 '보강'을 더해서 두배로 강화한 몸이지만 루리의 주먹을 쳐내는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단순한 주먹질이 아니라 마치 복싱 선수처럼 어께를 확실히 사용하면서 내지르는 주먹은 하나하나가 매서웠다.
내지를 때마다 팡! 하고 옷깃이 펄럭이는 위협적인 소리는 백리에게 있어서 폭음과도 같았다.
"피하거나 막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나도 알고 있거든?!"
다행인 점이라면 루리의 주먹에 반응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두배로 강화된 신체는 간신히 그녀의 주먹을 보고 급소를 피하거나 손으로 쳐내서 대치 상태를 만들 수 있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백리가 특성을 쓰고도 반응하는게 고작이라는 소리다.
가이아 포스를 사용한 일반적인 신체 강화. 거기에 더불어서 포스 특성 '보강'을 이용한 이중 강화. 그런데도 그냥 포스로 몸을 강화한 루리를 못이겨서 쩔쩔매고 있다.
"오빠가 누구랑 싸울진 몰라도 이렇게 정직하게 잽만 날리진 않을껄? 이렇게 할 수도 있어"
루리는 다시금 잽을 날리는 척 하다가 쳐서 막으려는 백리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당기면서 동시에 그의 복부에 무릎차기를 날렸다.
정통으로 맞은만큼 묵직한 충격이 백리의 뇌까지 전달되었다.
퍼어억!!
그리고 루리가 백리에게 어퍼컷을 날려 마치 만화처럼 그의 몸을 땅에서 1미터 가량 떠올렸다.
한순간 별이 보인 백리는 얼얼한 느낌과 함께 바닥을 굴렀다. 버티지 못할 고통은 아니지만 손쓸 방법 없이 얻어맞은게 자존심이 상한다.
"한번 기절시킬 생각으로 쳤는데 맷집만 좋네. 특성 때문에 그런가?"
"어윽........."
"오빠가 뉴비중에 늅뉴비인건 이제 알았지? 그냥 냅두고 사장 오빠랑 같이 치킨집이나 운영해"
루리가 툭툭, 손을 털면서 쓰러진 백리를 일으켜주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백리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몸에 묻은 흙먼지들을 털어내고 백리는 뭔가 생각하더니 그녀에게 제안했다.
"야, 너 전에 컴퓨터 알아보던거 있지?"
"그거 왜? 솔직히 10년 전 노트북을 우리 둘이서 쓰고 있다는게 신기해. 롤도 겨우 돌아가잖아"
백리가 잠시 한숨을 쉬고 말했다.
"컴퓨터 사줄테니까 과외 좀 해주라 밤에 한 두어시간만"
"기본기 쌓는데 한달이면 떡을 치겠네. 속성 코스로 모시겠습니다 손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주는 사람이 제일이다. 아무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