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1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31/507)



〈 31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어께, 팔꿈치, 손목, 허리, 등, 골반, 허벅지, 종아리, 발목, 그나마 급소가 아닌 부위를 노리며 날아오는 수십개의 검들은 한자루만 하더라도 강철을 베어버릴 위력이 담겨 있었다.

조종 특성과 더불어서 진동 특성은 가이아 포스로 강화한 검의 절삭력을 높혀 주었다. 마스터 유저의 검은 일격에 미터 단위의  방공호의 콘크리트 덩어리도 베어버릴 수 있는데 그런 검이 수십자루였다.

거의 동시에. 차이가 있어봐야 1초를 백으로 나눈 것 중에서 하나 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조까라고했다"

쩌저저저저저저적!!!!


최악은 몸을 움직였다. 그냥 받아쳐도 문제는 없지만 이건 이경진에게 보내는 경고였다.

수십개의 검을 손을, 다리를 움직여 전부 쳐냈다. 다시 날아와 공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쳐낸 검은 땅이나 벽에 깊숙히 박혀서 자루만 드러날 정도로 날려보냈다.


한순간에 수십개의 검을 쳐낸 움직임은 이경진조차 잠깐이지만 놓쳤을 정도다.


"빠르군. 가속 특성인가!"


"아니, 그냥 육체 강화인데"

"거짓말하지 마라. 그런 움직임을 고작 육체강화로 할 수 있다고?"


"니들이랑 나는 좀 달라서"

초월자의 육체는 그 자체만으로 효율이 다르다.

인간이 1의 힘을 사용해서 10의 효과를 낼 수 있다면 초월자는 같은 1이라도 100, 1000의 힘을 낼  있다. 소모하는 힘도, 낼  있는 효율도 극단적으로 차이가 난다.

최악이 보유한 포스량은 이경진에 비하면 많진 않지만 그걸로 강화하는 육체의 효율은 마스터 유저를 뛰어넘었다. 순수하게 무투파 마스터 유저인 히비키와 싸워서 압도적일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다.

"이제 좀 신경쓸만 하냐?"

"........."


이경진은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의 등 위에 있던  한자루가 날아와 그의 손에 쥐여졌다.

그에게 있어서 적성종은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그저 자주 처리해야할 대상에 불과할 뿐이다. 포스 유입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그가 조종하는 검 몇번 휘두르면 쓰러질 상대에 불과하다.


간간히 발생하는 포스 유저에 의한 범죄자 체포 당시에도 검을 직접 들지 않았던 그가 검을 잡았다.

"지금부턴 진심으로 가지"

"그거 은근히 패배 플래그 대사인데"


이경진의 검이 사선으로 그어졌다. 그와 동시에 최악이 허리를 틀어 피하고 아파트 벽면에 10미터가 넘는 참흔이 새겨졌다.


"아 씨! 여기 사는 사람들 집값 떨어지잖아!"


"나랑 싸우면서 그런거 걱정할 때인가?"


"이 아파트 주민 사람들은 집값 걱정할껄!!!"

자기 집 가진 사람에게 있어서 집값은 민감한 소재일 수밖에 없었다.

일본에서는 건물 하나를 통째로 무너트린 주제에 그런 소리 하면 설득력이 없었지만 말이다.

"일단 자리부터 옮기고........"


"도망치게 두진 않는다"

"자리만 옮기자고! 자리만! 너 아주 신났지 그래?"


말을 하는 순간에게 이경진의 참격이 최악에게 휘둘러졌다. 손에 든 검 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날아서 화살처럼 쏘아지는 검날의 공격도 받아쳐내니 최악의 손발은 쉴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유효타는 단 한번도 허락하지 않았다. 손에, 그리고 발에 차인 검들은 튕겨나가고 참격들은 피하거나 궤도를 비껴냈다.


한숨 들이쉴 시간에 수십번의 공방이 오갔지만 최악은 조금도 밀리는 기색이 없었다.

"재밌군"


이경진은 그렇기 때문에 들떴다.


마스터 유저는  세계에 단 9명밖에 없는 인력이다. 그리고 인간의 상식을 벗어난 초인이기도 하다.

 국가의 중요 인물이기 때문에 해외로 나간적은 손에 꼽으며 이경진 본인도 미국에 지원 나갔을 때 빼곤 해외의 마스터 유저를 만난적이 없다. 그리고 그때도 친선으로나마 미국의 마스터 유저와 싸우지 못했다.

누가누가  강하다, 라는 논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굴릴  없다.


마스터 유저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전력을 발휘할 수 없어서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

"익스퍼트급 유저라도  일검을 버틸까 말까한게 고작인데......."

"댁 눈에 지금 아주 흥미가 팍팍 솟아나고 있거든요? 나 잡는다는 목적은 어디다 팔아처먹었어?"

"잡을거다.  싸우고"

"뭐가 하나 늘었거든?"

자신의 전력을 발휘해도 받아줄  있는 상대라면 호승심이 일어나는건 당연지사. 이경진은 본래의 목적은 둘째치고 검을 휘둘렀다.

허리를 틀어 피한 참격 하나가 뒤에 대기하고 있던 군인들 앞에 상흔을 남겨냈다.  여파만으로 근처에 있던 군인 몇명이 땅을 굴렀다.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위험했다.

그걸 본 최악이 이경진의 검을 붙잡았다.

고밀도의 포스를 두르고 고속으로 진동해서 금속도 두부처럼 베어내는 검을 맨손으로 잡고도 아무런 상처 하나 없는 최악이 목소리를 깔았다.

"야, 싸우는건 좋은데 자리 바꾸자고"

"........."

눈앞의 일에 한눈이 팔려서 미처 민간인의 피해를 생각하지 못했던 이경진도 미안한 기색을 띄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자신의 검을 맨손으로 잡고 있는데도 잘리지 않는 그의 손이 더 놀라웠다.


고속으로 진동하는 검은 뛰어난 절삭력을 띈다. 설령 티타늄 합금이라도 베어낸다.

포스를 몸에 둘러서 방어력을 강화 했다고 해도 그의 검이라면 베이는 느낌은 있어야 정상이다. 1초에도 수십번은 진동하는데 멀쩡한게 도리어 이상하다.


".........좋다, 자리를 바꾸지"


이경진은 등 뒤로 흐르는 식은땀을 감추며 나직하게 말했다.


결코 쫀게 아니였다.

* * * *



두사람은 자리를 바꾸었다. 사람이 많은 주택가에서 벗어나 좀 떨어진 공원에서 한판 붙기로 했다.


"공원이라면 여의도 쪽이  가까웠을텐데?"

"거기는 항상 이용하는 사람이 많으니까 박살내면 민폐중에 민폐고. 여기는 괜찮아. 봐봐, 관리 하는것 같은 공원이 이러냐?"

두사람이 싸우기로 한 공원은 한 아파트 인근의 공터 비슷한 장소였다. 농구 같은 구기 종목이나 자전거 같은 것을 탈 수 있게 꾸며놓았지만 공터 자체가 평지보다 아래쪽에 위치해서 정작 자전거를 끌고오기 힘든 구조고 비가 오면 물이 고여서 쓰지도 못하는데다 마른 뒤에는 진흙이 잔뜩 고여 경관만 나빠지는 공터다.


사람도 없고 넓이도 괜찮고. 쓰지도 않는 곳이라 싸우다가 뭐 하나 부셔먹어도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한가지 물어보지. 아까 내 검을 잡았을 때......베이는 감촉이 전혀 없었는데 어떻게 된거지? 그게 네 특성인가?"

"내 특성은 딱 두개야.  외에는 그냥 파생적인거고"


"두개 뿐이라고?"

"많으면 깊이만 얕아질 뿐이야 열개를 각각 노력하는거랑 하나를 노력하는거랑 차이가 있는건 당연하잖아"

"그런 부분도 있지만 반대로 특성이 적은만큼 대처하는 수단도 적지"

"그거야 특성이 다른거 따라하는데 좋은 특성을 익히면 되는거지"


최악이 가진 능력인 '간섭'은 다른 능력을 따라하는데 쉬운 능력이다.

"방금 깊이가 얕다는 말을 누가 했었는지 기억 못하나?"

"만화가가 팔 하나 못쓴다고 일반인보다 그림 못그리는건 아니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다른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인보다는 그림이 잘 그릴 것이다. 그림에 대한 구도, 표현력, 구상 등에서 차이가 날테니까.

최악이 하고 싶은 말은 깊이 얕으니 어쩌니 이전에 쌓아놓은 경험치가 다르다는 소리다.

우스꽝스런 라쿤 가면에 의해 변조된 목소리라도 말투나 어조를 들어보면 생각보다 어린건 확실했다. 대충 20대 초반.

최악이 갓난아기 때 이경진은 대공황 시기를 뛰어다니며 수천이 넘는 적성종을 혼자 베어 죽였다. 이렇게 경험치를 따지자면 분명 이경진이 위겠지만......

세상에는 팬티만 입고 뉴비인척 하면서 춤추고 다니는 고인물이란 족속들이 존재하는 법이다. 싸우고 죽이는데 쌓인 경험치라면 최악을 따라올 사람이 드물다.


"그 잠깐 사이에 혓바닥이 길어진건 아니겠고. 이야기만 하다 쫑낼 생각이야?"

"아니, 가도록 하지"


우우웅!


이경진의  뒤에 떠 있는 수십자루의 검들에게 포스가 주입되자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흡!!!"

그리고 이경진이 검을 휘두르는 동시에 그의 뒤에 있던 검들도 같은 방향으로 검격이 휘둘러졌다. 방향은 같지만 수십자루의 참격이 겹쳐진 공격은 일격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틈이 없었다.


"크기만 하고 실속이 없잖아"


최악은 참격의 중심을 노리고 후려쳤다. 하나의 공격처럼 보여도 수십개의 참격이 합쳐진 공격이다. 바늘귀 같은 틈을 노리고 후려친 주먹에 의해 균형을 잃은 참격이 흩어졌다.


키이잉!!

그 틈을 노린 검 한자루가 최악의 등을 노렸다. 활에서 쏘아진 화살처럼 섬광만 남기는 검은 순식간의 최악의 등을 꿰뚫을  같이 보였으나 그는 몸을 틀어 가볍게 피해냈다.


"그 반사신경......감지 계통의 특성은 둘 중 하나쯤 있을  같군"


"정답"

"그 감지 능력이 어디까지 되는지 볼까?"

수십자루의 검들이 최악을 노리고 쏘아졌다. 그를 원형으로 둘러싸고 상하좌우, 빈틈없이포위한 후에 몇개는 동시에, 몇개는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쏘아져 막을 수 없게 쏘아졌다.


아무리 빠른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어도 빈틈없이 포위한 수십자루의 검이 거의 동시에 쏘아지면 막아낼 틈이 없다.


"미안한데 난 게임이 노답으로 흐르면 거르는 타입이라"


키기긱! 끼긱!!

쏘아진 검들은 최악의 피부 위로 조금도 파고들지 못했다. 음속에 가깝게 쏘아진 검의 관통력은 두터운 장갑차도 관통해 박살내버리는데 그런 검을 수십자루를 몸으로 받아내고도 멀쩡했다.

오히려 상한건 검 쪽이다. 포스로 강화했어도 검끝의 날이 나갔다.

"이걸로 끝?"

"아니, 아직이지"


콰아아앙!!!


 속에서 검이 솟아올랐다.

이경진은 몰래 검 한자루를  속으로 보냈다. 그리고 최악의 발 밑으로 옮긴 후에 그가 방심한 틈을 노려서 쏘아냈다.


바로  밑에서, 방심한 틈을 타고 노린 검은 최악의 턱을 노리고 치솟아 올랐다. 이미 그의 가슴팍까지 올라간 상황. 애초에 땅 속에서 느닺없이 뭔가 튀어나온다는 것 자체가 쉽게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물며 상대가 검사라면 더욱.

"요건 좀 신박하네"


카가가가각!!!

최악은 당황한 기색 없이 손으로 검날을 잡아 막았다. 그의  바로 아래에서 손가락 한마디를 두고 멈춘 검은최악의 손에 의해서 박살났다.

검의 진동이 저항했지만 최악의 방어력은 그 이상이였기에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

"방어력으로 버텨내는건 예상했어도 그걸 잡았다고.......?"

이경진은 최악의 방어력만큼은 인정했다. 무투계의 마스터 유저인 일본의 히에이 히비키도 저 정도까진 아닐거다. 그의 공격에도 작은 생채기 하나 없다는 것은 그만한 수준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럴테니까.

그렇지만 저건 반사신경을 넘어 다른 문제다.


감지계 특성은 보통 땅속까지 탐지하진 않는다. 땅 속에서 행동하는 적성종이라면 몰라도 거기까지 탐지한다면 범위가 두배 이상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이경진은 최악의 주변에서 한꺼번에 공격해 감지할 여력을 주지 않고 그때를 노려 땅속에 있던 검으로 공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막아내고, 동시에 놀란 기색 하나 없었다는건.


"예지계 특성?"


"어, 음. 비슷하긴 한데......"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극도로 발달한 감각은 조금이지만 미래조차 감지할  있다.

하지만 그래봐야 몇초 정도 앞이나  수 있는거고 그나마도 전투 중에  수 있는데다  미래는 어렴풋이, 불확실하게 알 수 있는게 전부다.


정말로 미래예지를 하고 싶다면 우선 뛰어난 감지능력과 더불어서 뛰어난 두뇌까지 가지고 있어야 한다.

불행한건지 다행인건지 최악의 머리는 썩 좋은 편은 아니다.

"예지계 특성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었지. 그나마 전에 한명 있었는데......."


"아, 뉴스에서 봤어. 근데 걔 죽었잖아"

"명목상 지병으로 죽었지"

"사실은 과로지? 안봐도 풀HD 생중계 방송이네 뭐. 예지계 능력은 죄다 머리를 혹사시켜서 그래"


최악조차 몇초 앞을 보는게 전부다. 하물며 나라 하나에서 발생하는 일을 감지하려면 설령 최악보다 뛰어난 감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과로사 확정이다.


"그런 반사 신경에 예지 특성,  공격은 이빨도 안들어간다라........"

승산이 없는 싸움이였다. 동시에 공격해도 대부분 막거나 쳐내면서 설령 통하더라도 그의 피부 한장 뚫지 못한다.


아무리 봐도 쓰러트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만약 최악이 조금이나마 상처를 입었다면 생각을 달리 해보겠지만 최악은 상처는 커녕 옷에 베인 자국 하나, 흙먼지 하나 뭍지 않았다.


자신이 쌓아올린 전부가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할법도 하지만.


남자란 오르기 까마득한 산을 올려다  때 투지가 솟아오르는 생물이다.

"후우우우"

이경진은 숨을 내쉬며 포스를 가다듬었다. 그가 조종하던 검이 힘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다.

그가 천검(千劍)이란 별명으로 불리던 장기마저 내버릴 정도로 집중한다. 지금 필요한건 천 자루의 검이 아니라 단 한자루의 검이다.

동시에 공기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 마치 물처럼. 이경진의 기세에 잠식된 공기는 마치 물처럼 묵직해져서 근처에서는 숨 쉬는 것도 힘들 정도로 변했다.

"어? 이 새끼?"


최악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여태까지 그가 전투에 임하던 자세는 어른이 떼쓰는 초등학생하고 놀아주는 식에 지나지 않았다.


뻔하게 결과도 예정되어 있고, 그만한 격차도 있기 때문에 신경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상대가 초등학생이 아니라 고등학생쯤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느정도 성장해서 떼쓰는게 아니라 확고한 의지로 달려든다면 그에 대해서 나름 진지하게 상대해줄 수 있다.


우우웅!!


이경진의 검이 '회색'으로 물들었다.

"잡념은 전부 버렸다. 전부 버리고 남은건 호승심 뿐이다. 과연 네가 강한가, 내가 강한가. 그걸 가리고 싶을 뿐"

"회색이라.......알만하네. 근데 공간 공명 뛰어넘고 유색공명기 쓰는건 또 뭔 지거리야"

위협적으로 떨리는 회색빛 검은 존재감만으로도 몸을 굳게 만들었다. 잔잔한 여파는 땅을 울리고 공기를 얼렸다.

저 기술은 최악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간섭'능력을 이용한 간섭 역장은 최악에게 있어서 최강의 방어벽이였지만 저걸 역장 하나 믿고 맨몸으로 부딪히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무엇보다 저 기술은 스스로의 의지를 확립하고 순수하게 만들어서 발현시킬  있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기술이다. 티끌 하나의 잡념이 없어야만 가능하다.

인간의 잡념은 쉽게 없엘 수 없다. 어쩌면 무의식보다도 어려운 경지. 오로지 한 감정만 칼날처럼 벼려서 뽑아낸게 저 회색빛의 검이였다.


"회색이 의미하는건 호승심. 가진 특성은 '증폭'이지. 알아둬"


"어떻게 이 기술을 아는거지?"


"아는 사람이 쓰는거니까. 나도 쓸수는 있고"


마음의 색을 발현하는 기술은 딱히 배우지 않더라도 사선을 넘으면서 익힐 수 있다. 이경진의 특성중 하나인 진동 특성은 공명과 흡사하기에 중간 과정을 습득하지 않아도 겉핥기나마 도달했다.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히 위력적이다. 아마 대충 휘두른 일검이 고층 아파트 한채는 가뿐하게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이건 포스 소모도 커서......기껏해야 일검 뿐이다"

"........"


무시할 수도 있다. 피할 수도 있다. 기껏해야 일검 뿐이고 정신집중을 요한 기술인만큼 정신을 흐트러트리면 파훼하기 쉽다.


처음부터 기술을 준비하는게 시간 또한 오래 걸렸다. 방해하려면 얼마든지 방해할 수 있었다.

최악이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상대가 필살기로 온다면 이쪽도 필살기로 받아쳐주는게 인지상정이다!


바보 같다고, 병신 같다고 욕해도 좋다. 도망치거나 피하면 될거 일부러 받아치러 간다면 미련하다고 하겠지만 최악은 그런 비열한 성정은 못됐다.

약속은 어기지 않고.

정을 중히 여기고.

도리를 지킨다.

"그러면 나도 쩌는걸로 좀 받아쳐야 되겠지!!!"


최악의 내면, 육체가 아닌 영혼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것이 꿈틀거리며 기지개를 켰다.


인피니티 포스 코어(Infinite Force Core).


영구동력 영자기관.


그 자체만으로 무한동력이라 할만큼의 힘을 내포한 힘의 심장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도시 하나를 뭉게버릴  있을법한 힘이 한순간 최악의 몸에서 꿈틀거리다 거짓말 같이 사라졌다.


그냥 방출하기만 해도 가볍게 도시를 날려버릴 에너지를 밖으로 한조각도 흘리지 않고 완벽하게 제어한 최악의 눈에 안광이 깃들었다. 마스크 너머로도 보이는 붉은색 안광은 흉흉한 기색을 풍겼다.


"똑같이 공명기도 받아쳐도 되겠지만 나는 공명기가 특기가 아니라서"


인피니티 포스 코어의 특성은 그저 무한한 에너지만이 있는게 아니였다.

자신이 인지할  있는 이능력 또한 생성할 수 있다. 지금의 최악은 무림인이 쓰는 기(氣)도, 마법사가 쓰는 마나(Mana)도, 정령들이 쓰는 정령력(精靈力)도, 마족들이 쓰는 마력(魔力), 심지어 반쪽짜리라도 신만 쓸 수 있는 신력(神力)도 쓸  있었다.

"대신 비슷한걸로 상대해줄테니까 그걸로 봐줘"


최악의 양손에서 탁한 회색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듯 꿈틀거리며 조용히 불타오르는 회색빛은 이경진의 검과 같은 색이지만 전혀 달랐다.

이경진의 회색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이 들어간 밝은 회색이였다면 최악의 회색은 검은색 바탕에 흰색이 들어간 탁한 회색이였다.


한 대마왕이 드래곤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갈고 닦은 힘. 용종에게 사용하면 즉사기나 다름없는 위력을 자랑하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닿은것을 침식해 사멸시키는 힘.


멸룡(滅龍).

물질적인 것을 넘어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에는 반드시 개념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개념 중에서도 격이 있는 법이다.

물이나 불처럼 흔히   있는 개념과 시간이나 공간같은 보이지도 않고 감지할 수도 없는 개념이 같을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가이아 포스로 부딪혀 온다면 모를까 의지의 한 갈래나 다름없는 것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와 대등한 이능이 필요하다.


파지지직!!


허공에서 두개의 기운이 충돌했다. 고요하게 떨리는 회색과 난폭하게 먹어 치우려는 회색이 만나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불꽃을 튀겼다.


기세 싸움과 더불어서 누가 먼저 달려든다는 것은 없었다. 서로를 탐색하며 틈을 노린다. 하지만 그런 기세 싸움도 오래가지 않았다.


멀리서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두사람이 격돌했다.


완성만 됐다면 건물을 박살내는걸 넘어서 단신으로 계곡도 만들어낼법한 검과.

초월종에 이른 드래곤도 일격에 격살할 수 있는 힘이 동시에 충돌했다.

검은 위에서 아래로. 특이할 것도 없는 내려베기였다. 검술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동작이지만 지금 그의 검이 있다면 공방 일체의 필살기가 된다.

최악은  동작을 놓치지 않았다. 먼저 움직인건 이경진이였지만 최악의 반사신경은 이미 그의 동작을 파악하고 대처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는 위에서 휘둘러오는 검을 향해 발을 수직으로 차올렸다.


"멸룡굉천익(滅龍轟天翼)!"

콰아아앙!!


고막이 찢어질듯한 폭음이 울려퍼졌다. 그것마저 모자라 충격파가 인근 도로까지 덮쳐서 아스팔트 바닥에 금이 갔다.

"크,윽?!"

이경진은 손목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회색으로 물든 검만큼은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힘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의 손 부분의 방어는 생각하지 않았다.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 베려는 검은 최악이 수직으로 차올린 발에 의해 막혔다.

이경진은 베지도 못하고 검을 휘두르지도 못한 어정쩡한 자세에서, 마찬가지로 최악은 다리를 수직으로 차올린 상태에서 서로 대치만 하고 있을 뿐인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힘 싸움이라도 하자는건가?"


"아니"

우우웅!


최악의 다리에서 회색빛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이거 내려찍기 기술이야"

용의 아가리처럼. 상대를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려는 멸룡의 날갯짓이 내려찍어졌다.


콰가가가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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