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25/507)



〈 25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최악과 시온, 두사람의 신혼집의 아침 기상 시간은 6시 정도다. 가끔 6시 30분쯤에 일어나기도 하지만 보통은  쯤이다.

먼저 일어나는 쪽은 최악이다. 의외로 최악은 부지런하고 시온은 게으른 타입이라 최악이 아침을 만들고 있으면 눈을 부비면서 시온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침은 두 사람  먹는 타입이지만 밥을 먹진 않는다. 가볍게 빵으로 때운다.


"토스트 몇개 먹을래?"

"전 두개입니다"

"낸 네개는 먹어야  차더라"


"한창 먹을 때라서 그럴겁니다. 20대는 원래 많이 먹지 않습니까?"


"식욕이랑 성욕이 폭발할 시기지. 아무렴. 나도 몸 젊을 때는 좋아해. 가끔 혈기 넘쳐서 빡돌때가 있지만"


"항상 그러지 않습니까"


"아, 그거 원래 내 성격이였어?"

부부라서 닮은 점이 있지만 부부라도 다른 점은 있는 법이다. 서로 취향이 있는만큼 그 부분에서는 서로 존중해주고 있었다.


시온은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토스트 위에 계란 후라이까지 얹어서 먹는 반면에 최악은 토스트 위에 딸기잼을 바르고 그냥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오늘 쓰레기 버리는 날이지?"


"제가 버려두겠습니다"


"쓰레기 양이 만만치 않은데. 주로 휴지가"

"평소에도 그러지 않습니까"


한창 때의 20대 남성의 성욕이기 이전에 초월자에게 정력은 의미가 없었다. 두사람이 하룻밤에 정사를 벌이고 나면 그 뒤처리만으로도 대청소를 해야한다.


주로 사용되는 휴지는 따로 종량제 봉투에 넣어 처리하는데 일주일이면 10리터 들이 봉투 하나가 가득 찬다.

"분리 수거는 박스대로 해뒀으니까 그거대로 버리면 돼"


"따로 버릴건 없습니까?"

"글쎄......아, 그러고 보니 전에 일본 가서 택배로 보냈던 넨드로이드 있잖아. 그거 포장지 따로 모아논것도 있는데 그것도 좀 버려줘"

"알겠습니다"


시온이 고개를 끄덕이며 토스트를 먹었다.


아침 식사 후에는 가볍게 씻고 정리를 한다. 최악은 출근을 해야하니 남은 일은 주로 시온이 한다. 설거지 정도지만 시온의 체격으로는 제대로 설거지 하기도 힘들다.


식탁에서 의자 하나를 빼와서 싱크대 앞에 댄 후에 설거지를 한다. 몸은 작지만 할 수 있는건  할 수 있다.

"나 다녀올께. 점심은 김치찌게 끓여놓은거 있으니까 그거 먹어"

"잘 다녀오십시오. 아, 그 전에"

시온이 출근하려는 최악에게 현관까지 종종 달려가 까치발을 들어올렸다.

매일 하고 있는 일이라서 그녀가 뭘 원하는지 잘 알고 있는 최악은 허리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이러니까 신혼 분위기 엄청 난다. 그치?"

"아침 출근 전에 하는 키스는 각별한 법입니다"

깨소금과 꿀이 흐르는 모습이지만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였다. 만약 봤다면 소름이 온몸에 돋아 올랐을 것이다.


최악이 출근하고 남은 시온은 설거지를 마저 끝내고 잠깐 TV 앞에 앉았다. 집안일을 해야 하지만 요즘은 기술이 많이 발달해서 편하다.


그녀가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로봇 청소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탁기가 돌아가고 공기 청정기의 전원이 켜졌다.

물리법칙을 지배하는 종족인 하논에게 있어서 기계류를 작동시키는건 숨쉬는 것만큼 간단한 일이였다. 결국 기계는 전기로 움직이는 법이고 그렇다면 전원 스위치는 켜는건 쉽다.

한시간 정도 휴식 시간을 가진 그녀는 다른 일을 하기 위해 일어났다. 먼저 최악이 부탁한 쓰레기 버리기부터 하기 위해 준비했다.

외형은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지만 근력이나 신체 능력은 일반 성인 여성과 다를바 없었다. 종량제 봉투 몇개와 박스 한두개쯤은 체구가 작아서 들기 불편하긴 해도 힘들진 않았다.


나가는 김에 장이나 봐올 생각인 시온은 지갑과 장바구니를 챙겼다. 장바구니도 시온이 산게 아니라 은근히 알뜰한 최악이 사둔 것이다.

"플라스틱.......플라스틱......."

분리수거도 꼼꼼히. 어차피 최악이 전부 분류 해둬서 그냥 쏟아버리기만 하면 된다.

쓰레기 버리는 날은 인구 밀집 지역 공통의 모임 자리다. 특히나 두사람의 신혼집은 땅값이 비싼 단독주택 밀집 단지라 사회에서 나름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아파트 같은 수백가구가 아니라 수십가구 정도의 작은 사회가 만들어지는 곳이다.

"어머, 엄마 심부름 나왔니? 기특하네?"


어린애 취급하는 소리는 시온에게 익숙했다. 그녀가 슬쩍 돌아보니 중년 여성 한명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런 상황을 별로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 이야기 하라면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여성끼리 만들어진 작은 사회는 썩 내키지 않았다.

그 안에서 덕질이라는 시온의 취미는 쉽게 인정받지 못할뿐더러 솔직한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 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이다.

적어도 시온이 겪어온 결과 중에서 삼분지 이는 그러했었다.  때문에 상처 받았던 적도 꽤나 있었다.

그러면서 안 것이 있다면 상대와의 압도적인 차이와 격을 보여주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함부로 달려들어 물어뜯는 꼴은 당하지 않는다.

"아이가 아니라 새댁입니다.  전에는 남편이 떡을 돌려서 인사 못드렸습니다만, 몇달 전에 이사온 시온이라고 합니다"


"예? 아.......그래요?"


외국인으로 보이는 외견과는 다르게 유창하고 딱딱한 한국어가 오히려 상대에게 신뢰를 주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가 이렇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건 드무니 자기 소개한 쪽에 신빙성이 더해졌다.


"반가워요, 저는 이 동네 부녀회장을 맡고 있는 김여순이라고 해요"

"부녀회장님이시면 제가 먼저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뇨, 그나저나 몇달 전에 이사온 집이면.......최 사장님 댁이죠? 거기가?"

"네, 맞습니다"


사장님이란 호칭은 예의상 붙여주는 단어에 불과하다.

이 동네에 사는 사람 중에서 사회에 지위가 낮은 사람이 없기에 붙이는 호칭이였지만, 김여순 여사가 봤을 때 전에 떡을 돌리던 최악은 젊어도 너무 젊었다.  사회에 나온 사회초년생의 모습인데다가 눈매 또한 나빠서 인상도 좋지 않았는데 혹시나 싶었기에 사장님이라 불러주는 것이다.


"새댁은 외국 어디에서 왔나요? 미국? 영국?"

"미국입니다. 그쪽에서 살다가 귀화해서 들어온 후에 지금 남편이랑 결혼했습니다"


"남편 쪽도 젊던데, 요즘 젊은 사람들과는 다르게 결혼을 일찍 했나봐요?"

"네, 몇달 전에 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결혼식은 못올리고 그냥 서류만 써냈습니다"

"어머, 그러면 아직 신혼이겠다. 그죠?"


김여순 여사는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적어도 시온의 집안이 뭘 하는 집안인지는 알아볼 필요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주부 네트워크는 무섭다. 소문에 민감하고 특히나 나름 지위가 있는 집안들 경우에는 포용 아니면 배척, 두가지 선택지밖에 남아있지 않다.


시온의 집안이 나름 살만하면 그들만의 리그에 들여보내주고, 그렇지 않다면 무시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된다.


시온이나 최악, 둘 다 젊기 때문에 별 다른 기대는 하지 않지만 시간 때우기 정도는 될거라는 생각으로 김여순 여사는 슬쩍 웃었다.


"그런데 그쪽 새댁은 너무 젊은거 아니예요? 젊다 못해서 어려보이는데. 비법이라도 있어요?"


"어릴 때 병 때문에 쓴 약이 독해서 성장하지 못해서 그런겁니다. 얼마나 독했으면 머리까지 탈색되서  모양입니다"

"아......미안해요"

시온의 외견은 나름 짜여진 스토리가 있다. 자연적인 은발의 미소녀 처럼 보이는 유부녀가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납득시킬만한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서 합리화 시킬 수 있다.


그녀는 어릴적 해외의 병원에서 투병 생활을 하다가 간신히 몇년 전에 완치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했다는 설정이다. 은발과 어린 외형은 투병 중에 사용한 약이 독해서 성장이 멈추고 머리카락의 색소가 파괴되어 그런거라는 변명거리가 있다.

그걸 위해서 일부러 조작 해놓은 진단서를 뽑아놓은 것도 있다.

"새댁, 마침 요 앞 카페에 잠깐 부녀회 모임이 있는데 시간 있으면 같이 가지 않을래요?"


"아......저도 장보러 나온거라서 조금 곤란합니다"

"잠깐도 안되나요? 그래도 새댁인데 동네 사람들한테 얼굴 도장 정도는 찍어야죠"


은근슬쩍 권유에서 강제로 넘어갔다. 시온은 자기만 피해 보는거라면 그냥 무시하고 들어갈테지만 그녀가 욕을 먹으면 덩달아서 최악한테까지 영향이 가기 때문에 지금은 잠자코 있기로 했다.

최악이나 시온이나, 본인 스스로가 욕을 먹는건 신경쓰지 않는다. 하지만 서로에게 피해가 가는건 싫어한다. 서로가 소중한걸 알기 때문에 자기가 좀 더 손해를 보더라도 상대가 무사하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처럼 시온과 최악 두사람의 공통점이지만 다른 점도 있다.

최악이 욕먹으면 시온은 비교적 상식적인 대응을 한다. 갑질을 한다던지 비리를 터트린다던지. 그나마 법에 기반한 대응이다.


하지만 시온이 욕먹으면 최악은 분노조절장애가 되어버린다. 누군가 '니 마누라 창녀더라'라고 한마디만 하면 그 사람은 그날로 자기 목이랑 분단국가의 슬픔을 몸으로 깨우쳐야 할 것이다.


김여순 여사에게 이끌려 근처 카페로  시온은 나름  꾸며진 카페 분위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 있는 브랜드 카페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가  카페인데. 수제 빵과 케이크를 파는 제과점을 겸한 카페였다.


"아, 김 여사님! 이쪽이예요, 이쪽!"


"어머, 박 여사님도 벌써 오셨네요.   늦을줄 알았죠"

"그런데 그쪽은......."


카페에 먼저 와서 앉아 있던 사람은 세명이였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전부 곱게 나이 들었다고 표현할만한 여사님들이지만 시온의 눈에는 짙게 칠한 화장품 냄새가 거북할 따름이였다.

"몇달 전에 이사온 시온이라고 합니다. 이래뵈도 올해 스물 넷의 젊은 새댁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머, 몇달 전에 이사왔다면 공사하던 그 집 말하는거죠?"


"네, 맞습니다"

시온이 개인적으로 설계하고 지은 집이기 때문에 원래 있던 집을 허물고 공사했다. 주택이 밀집된 곳인 만큼 소음에 신경써야해서 공사비가 몇배로 더 들어간건 소소한 이야기다.

"원래  집, 전에 황 여사님이 살던 집인데 말이죠"

"황 여사도 참 안됐어요......남편 사업 부도나서 집 팔고 뭐 팔고 다 팔아서 빚 갚느라고 허리 빠진다더라고요. 아, 저는 박예정이예요. 잘 부탁해요 새댁"


"저는 주지영이라고 해요"

"한정숙이예요"

 자리에 모인 주부들 전부 가정부를 고용해 집안일에서 해방된 시간이 남는 한가한 사람들이고, 부녀회 모임이라는 명목으로 모였다면 남은건 한창 수다 밖에 없었다.


특히나 젊다 못해 어린 새댁이 더해졌다면 그걸 주제로  이야기 꽃이 만발한다.

"그나저나 새댁은 한국말  잘하네요. 한국어는 어떻게 배웠어요?"


"2년 전쯤에 독학으로 배웠습니다. 표준어로 배워서 말투는 조금 딱딱하지만 이쪽이 익숙해져서 쓰고 있습니다"

"올해 스물넷이라고요? 젊네요. 아, 혹시 젊어서 피부가 이렇게 좋은가?"


"따로 관리 안하고 있는걸 보면 아마 선천적인겁니다. 다만 피부가 흰건 햇빛을 제대로 못쬐서 그런걸수도 있습니다"


"남편분은 출근 했어요? 혹시 어떤 일 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부녀회 주부들 간에 시선이 오갔다. 그녀들에게 있어서 남편의 직업은 곧 자신의 간판이였다.

그런 면에서 따지자면 치킨집 한다고 말하는건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냥 작은 자영업 하나 하고 있습니다"

"자영업이요? 어떤 쪽이죠?"


"남편이 요리 하는걸 좋아해서 건물 하나 내줘서 치킨집 하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온의 대답에서 그녀들은 치킨집을 운영한다는 말보다 건물 하나를 내줬다는 말을 귀담아 들었다.

건물주. 자고로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는 우스갯소리가 있듯이 임대료만 먹고 살아도 되는 건물주는 안정적인 수입원이다. 게다가 건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있어도 하나만 있는 사람은 없다. 돈이 들어오면 건물주는 다른 건물을 짓는 법이니까.

게다가 시온과 최악의 신혼집은 최근까지 새로 짓던 집이라 그 공사비까지 생각하면 상당히 알부자가 분명하다.


"저희 남편은 작은 치과 하나 운영하고 있어요. 덕분에 충치 생겨도 귀찮게 굴지 말라고 항상 잔소리 하지 뭐예요"

"저희 집은 남편이 검사라 자꾸 법 이야기 물어오는 친척들이 너무 많아요. 이러는거 괜찮냐, 이러는게 좋냐, 자꾸 물어봐서 귀찮다니까요?"

"우리 그이는 애버리지 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어요. 본사가 아니라 한국 지부긴 하지만 페이는 높더라고요"


치과 의사, 검사, 계통은 잘 모르지만 전세계적 유명 기업 연구원.


돈을 잘 벌거나 사회적으로 지위를 인정받는 직업들이다.


"저희 남편은 대성 물산 대표 이사예요. 오호호, 집에 잘 안들어 오는 것만 빼면 다 좋아서 탈이죠"

"........."

김여순 여사의 남편 자랑에 시온은 조용히 커피를 마셨다. 하필이면 단걸 좋아하는 그녀에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해놔서 씁쓸한 맛이 등을 타고 오른다.

입도 쓰고 현실도 쓰고. 별볼일 없는 직업을 가진 최악을 원망하는게 아니라 그저 결혼 했을 뿐인 주제에 남편의 지위를 자기거로 착각하는 사람들 때문이다.

"대성물산이라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혹시 남편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에이, 모르는 사람이 어디있어요. 대성 그룹쪽 기업인데. 그런데 저희 남편 이름은 왜요?"

"예, 제가 그쪽 대주주니까 잘 알고 있습니다. 아마 주주총회도 두세번 가봐서 남편분을 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주총회요?"


김여순 여사의 등 뒤로 싸한 느낌이 스쳐지나갔다.

대기업 중에서 주식회사가 아닌 기업이 어디 있을까. 시온이 2년간 주식을 투자해서 벌어들인 돈도 돈이지만 더욱 값어치가 있는건 형체도 존재하지 않는 주식이다.


그녀가 대성 물산에 보유하고 있는 지분만  2퍼센트다. 주식이란게 수치로 본다면 적어 보이지만  2퍼센트라는 지분은 그룹의 다른 계열사가 가지고 있을만한 수준의 지분이다.


그렇기 때문이 대기업의 2퍼센트 수준의 지분이라면 충분히 대주주라고 해도 무방했다.

"제가 주식을 만져서 이런저런 곳에 주식 사둔 곳이 많습니다. 보통 팔긴 하지만 대기업 주식 같은 경우에는 사두는게 이득이라 매물 나올 때마다 사뒀습니다"

"음........"

부녀회 여사들의 머릿속에 한가지 결론이 스쳐지나갔다.

최악의 집은 남편이 아니라 아내 쪽이 돈을 버는 집이라고. 그것도 주식 부자. 아니, 건물도 있다고 했으니 거기에 더불어서 건물주.

설령 주식으로 망해도 건물이 있으니 평균 이상은 간다.


결론, 친해져도 좋았으면 좋았지 나쁘진 않다.

"주식이라, 예전부터 조금 관심 있었는데 알려줄 수 있어요, 새댁?"


"나중에 시간 나면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서 하기에는 조금  이야기가 될겁니다"

애초에 누가 쉬는데 일 이야기를 하나. 시온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혹시 주식만 하시나요? 건물도 있으신거 보면 부동산 쪽도 하실것 같은데........"


"그냥 땅 조금이랑 여름에 놀러갈  두개. 나중에 노후에 조용하게 살 섬 하나 정도 사둔 정도입니다"

"..................."

산 까지는 이해를 하겠는데 섬이라면 상식을 넘어간다. 시온이 말만 안했다 뿐이지 그녀의 정확한 재산은 재벌도 부럽지 않을 수준이다.


남편이 치과 의사인 박예정 여사가 작은 그녀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우리 친하게 지내봐요 동생"


"저는 님 동생이 아닙니다"


아차, 본심이 튀어나와버렸다.

  *  *  *



여자들 끼리의 대화는 지친다. 남자들의 대화는 단순해서 게임, 아니면 여자로 나뉘어지기 때문에 편하지만 여자들의 대화는 좀 더 복잡하다.


시온은  안에서 두시간 가까히 시달리다 겨우 빠져나왔다. 텁텁한 아메리카노의 쓴맛이 그녀의 입안 가득 퍼져 있었다.

"쓴건 우리 남편의 희고 끈적한걸로 충분한데 말입니다"

결혼한 유부녀만  수 있는 섹드립이다.

시온은 정신적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근처 마트로 향했다. 기분도 나쁜데 오늘 저녁은 돼지 등갈비를 구워다가 호쾌하게 뜯어먹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기! 고기!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고기!


시온에게 최악 다음으로 좋아하는게 뭐냐고 물으면 일단 덕질이라고 하겠고, 그 다음으로 뭘 좋아하냐고 물으면 섹스라고  것이다. 그 다음으로 좋아하는걸 물으면 고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고기는 항상 옳다. 슬픈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고기와 돈을 주면 된다고 했다. 기분이 상했다면 고기를 먹으면서 푸는것도 한 방법이다.

 걱정이 없는 사람의 장바구니는 지갑 만큼 무겁다. 최악이나 시온이나 많이 먹었으면 먹었지 적게 먹지는 않아서 한끼 먹을 고깃값으로도 2,30만원은 거뜬히 지출한다.


고기만 먹으면 섭섭하니까 겉절이 식으로 무칠 야채도 조금 사고, 그 외에 과자류도 산다.

근묵자흑이라고, 요리가 취미인 최악을 닮아서 시온도 나름 요리를 할줄 안다. 다만 레시피대로 맞추는 식이라 조금 심심한 면이 있다.

마지막으로 휴지.

휴지 아주 많이.

부부간의 금실이 좋다는 증거인 만큼 두사람의 원활한 성생활의 증거인 휴지 소모량에 비례하여 휴지 구입량이 많은건 당연한 일이였다. 가볍게 하는 날도 열번은 넘어가는데 그러면 뒤처리 하는 것도 일이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뒤에는 이불을 세탁하는게 일상이였다.


필요한 물건을 다 사고 나니 부피도 부피지만 무게가 장난 아니였다. 시온의 근력은 어디까지나 평균적인 성인 여성의 근력이지 본격적으로 힘을 쓰지 않으면 그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귀찮다(중요).


과자류와 휴지 같은 잡화들은 따로 배달로 시키고 고기랑 야채 쪽은 직접 가져가기로 하고 장바구니에 담아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어서 텅빈 집이 그녀를 반겨주었다.


"돌아올 때마다 조용한데 애완동물 하나 키우면 좋을것 같습니다"


어차피 최악도 반대는 커녕 고양이냐 개나 둘중에서 고민할 것이다. 여력이 없는것도 아니고 집이 좁은것도 아닌데 키우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시온은 고양이 쪽이다. 산책 시켜주지 않아도 되고 자기 혼자서 배변을 가릴줄 아니까 밥만 챙겨주면 그나마 키우기 쉬운 애완동물이다.


최악은 개 쪽이다. 애교가 많고 활동적이고 주인을 알아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사람은 은근히 차이점과 취향이 갈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몇천년 동안 신혼 같은 결혼 생활을 이어오는 것을 보면 서로간의 존중이 그 근원임을 알 수 있다.

시온은 먼저 등갈비 부분을 팩에서 뜯어 적당한 칼집과 함께 소금과 후추로 간을 했다. 생물이라기 보다는 기계에 가까운 그녀이기에 단 1그램의 오차도 내지 않고 균일한  맞추기가 가능해진다.


야채 쪽은 미리 만들어두면 물이 나와서 질척해지니까 씻어서 냉장고에 넣어둔다. 나중에 먹기 바로 전에 썰어서 무치면 된다.


밥은 최악이 좋아하는 콩밥. 압력밥솥에 콩을 섞은 생쌀을 넣고 돌린다. 버튼만 누르면 되는 일이라 편리하다.

"준비는 다 됐습니다"

및간을 한 등갈비도 다 됐고, 반찬도 다 준비 했고, 밥도 짓는 중이다.

일을 마친 시온은 그저 조용히, 아무하고도 이야기 하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에게 있어서 낯선 타인과 보내는 시간보다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시간이 훨씬 값지고 즐겁다.

철컥, 띠리릭!

누군가 현관문의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러 들어오는 소리에 시온은 종종걸음으로 달려나가 그를 맞이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응, 별일 없었어?"

"크게 별일은 없었습니다"


조용히, 아무일 없다는 듯이 시온은 아주 옅게 웃으며 그를 반겨주었다.

오로지 최악만 알아볼 수 있는 희미한 그녀의 미소는 그를 얼마나 반겨주는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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