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24/507)



〈 24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대낮의 술자리가 끝나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3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점심 먹은것 치고는 많은 시간이 지나갔지만 술을 한잔 걸친거라면 납득할만 했다.

먹고 난 자리를 정리하고 최악과 시온은 나란히 TV 앞에 앉았다.

"내일부터 출근이라니 월요병 걸리게 생겼군"


"돈은 충분하니까 맨날 놀아도 되잖습니까. 애초에 놀면 좀 그렇다고 일 하고 싶다고 한건 당신이였습니다"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내일 나가면 백리랑 서애씨가 장사 잘 했는지 한번 봐야겠다"


치킨집 운영은 취미다. 최악도 어디가서 무직이라고 말하기 그러니 적어도 명함 하나쯤은 있어야 해서 시작한 일이다.


나중에 시간이 좀 더 지난다면 가게를 두사람에게 내줄 생각이다. 두사람은 호의로 받아들인 만큼 호의로 대해야 하는 법이다.


"아, 맞다. 그리고.........사진 복구 했습니다"

"어? 정말?"


"EMP에 타버린 회로와 데이터를 복구하는게 처음인데다 까다로워서 힘이 들긴 했지만 그래도 복구했습니다"

애초에 사건의 기반은 두사람이 신혼여행 도중에 날아갔던 사진들 때문이다. 디지털 카메라에 저장되어 있던 사진은 일본에서 나타난 대형 적성종의 전자기파에 의해 날아갔다.


하지만 물리법칙을 다루는 시온은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든 데이터를 복구했다. 덕분에 어제는 잠도 안자고 밤을 꼬박 새면서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행이다......나중에 사진은 따로 뽑아서 액자에라도 걸어두자"


"이렇게 찍은 사진만 벌써 몇만장일겁니다"

"그래도 한 2,30년 뒤에 가서 보면 그것만큼 좋은 것도 없잖아. 남는건 추억이랑 사진뿐이더라"

서로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앉아 있는  시간이 제일로 행복하다.

최악이 바라는건 다른거 하나 필요없이 이것 하나 뿐이다. 만약 지금  세계에서 쌓아온 인연 전부와 시온 한명 중에서 선택하라고 한다면 잔혹하다 할지라도 시온을 선택할 것이다.

 따뜻함을 위해서라면 손에 얼마든지 피를 적실  있다.


그가 바라는건 결코 큰 것이 아니였지만 그걸 용납 못하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았다.

*  *  *   *



직장인들의 가장 큰 적중 하나는 월요일이다. 나도 평범하게 직장인 생활도 해봐서 잘 안다.


주말에 쉬고 다음날 출근 할  그 기분은 참으로 뭐같지.......더욱 뭐같은건 주말에 못쉬고 월요일에 출근하는거다. 시바, 휴무 하나 보장 못하냐.


그나마 요즘은 52시간 근무가 되서 겉으로는 칼퇴근을 한다고 하지만, 글쎄? 진짜로 그렇게 근무하는 곳이 얼마나 있을런지 모르겠다.


"형 왔다"


"........어서 오세요. 참치 워리어씨"

"아니, 멀쩡히 라쿤맨이란 이름이 있는데  그런 이름으로 부르는거야?"

"어떤 미친놈이 참치를 통째로 휘두르면서 싸워요?"

"그 미친놈이 나다 새꺄"


며칠만에 가게에 들어서니 그동안 가게를 보고 있었던 백리가 짜게 식은 눈으로 마지못해 환영해주고 있었다.


솔직히 라쿤맨으로 저지른 일이 좀 크긴 했다. 일본에서 있었던 일까지 알려졌다면  더 경멸의 눈으로 쳐다봤을지도 모르겠다.

"나 없는 동안 가게는 잘 봤어?"


"형 있을 때보다는 손님이 덜 왔지만 그런대로 잘 돌아갔어요. 평가도 나름 박하지 않았고요"


"튀김옷이랑 재료 같은건 비율만 잘 맞추면 반 이상은 먹고 들어가는거고. 잘 튀기는 법이랑 잘 볶는 법이랑 알려줬으니 못하면 그거대로 요리치지"


"2년 동안 취사병 했는데 겨우 이런거 못하겠어요?"

"그래, 너 장하다"

아직 문을  시간은 아니라서 서애씨도 출근하지 않았고 가게도 재료 준비와 청소를 하고 있었다.


나름 없던 사이에 놀랄만한게 하나 있다면 백리의 포스 컨트롤 실력이다.


"오, 나름 실력 늘었나보다?"


"한번에 여러개는 조금 힘든데 그래도 집중하면 두어개 정도는 가능하더라고요"


대걸레 두개가 저절로 움직이면서 가게 바닥을 닦고 있었다.

나야 설거지와 청소, 재료 손보기까지 동시에 가능할 정도로 컨트롤 실력이 뛰어나지만 백리는 각성한지 얼마 안된 포스 유저다. 내가 조금 요령을 가르쳐 줬어도 본인 스스로 이 정도까지  수 있다는 것은 본인의 센스가 나름 좋다는걸 의미했다.

"그 정도 되면 아마 특성 확립 정도는 된  같은데?"

"네, 형이 쓰는거랑 비슷하게 간섭 특성은 된 것 같더라고요. 어느샌가 컨트롤하기 쉬워졌는데 그때가 그때였나봐요"

"특성이란건 수학 공식같은거니까. 몸이던 정신이던 익으면 한번에 뻥 뚫리지"


마치 숫자나 배우던 아이가 수학 공식을 배우는 것과 같다. 1로 3을 만들라고 하면 못하지만 1+1+1을 한다면 3을 만들 수 있다. 특성의 역할은 얼마나 가이아 포스를 컨트롤하고 가공할 수 있느냐지 특별한건 아니다.

"그거 점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고유 특성 하나 만들어봐. 그건 본인 재능에 따른거니까 만들기는 쉬울꺼야"


"만드려는 특성이 뭔지 알아도 힘들었는데 고유 특성같은걸 만들 수 있을까요?"


"다 무시하고 니 꼴리는대로 포스를 운용해봐. 결국 고유 특성이란건 자기랑 가장 잘 맞는걸 말하거든. 마음가는대로 쓰다보면 결국에 쓸 수 있는거거든"

"그런다고 다 되면 고유 특성 하나 없는 사람이 없을텐데요?"

"어떻게 접근하냐의 문제지. 어떤 미친놈이 생각없이 지 꼴리는대로 능력 쓰다가 고유 특성 발현하겠냐? 보통은 자아성찰이랍시고 어렵게 생각하다가 우연히 발견하는 놈들이 대다수지"

"결국 접근성의 문제네요?"

"포스를 쓰다보면 네가 가장 편하게 쓸  있는 방향이 있을거야. 그게 네 고유 특성이지"

"흠"


백리는 내 말에 조금 생각하다가 주먹을 쥐고 포스를 뿜어 보았다. 아지랑이처럼 일렁이는 포스는 제멋대로 움직이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이건 아닌것 같은데......"

"공격 계통은 아닌갑다. 그지?"

"어? 그런것 까지 알 수 있어요?"

"나 정도 되면 파악은 대충 가능하지"


내가 쓰는 능력은 의지에서 비롯된 힘이다. 그래서 타인이 내뿜는 의지와 사념 정도는 구분할 수 있다.


백리의 의지의 기반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어떤 방향성으로 발현될지는 모르겠지만 타인을 해하는 방향보다는 지키는 방향으로 발현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형은 어떻게 그렇게 강해요? 저랑 나이 차이도 몇살 안나는데 막 대형 적성종도 참치로 후두려 패고 그러잖아요"


"인생 30회차 넘어간 뒤로 세지 않으면 대충 그렇게 된단다"


"........무슨 마비노기예요? 환생?"

"진짠데"

백리 정도라면 내가 환생자라는 사실 정도는 알려줄 수 있었다. 내 친구들도 알려줄 수는 있지만 걔들이 안물어보는거니까.


"형, 구라치지 말고요"


"진짜야. 1년에 1렙이라고 치면 형 누적레벨 지금 5000이 넘어간다"

"진.....짜요?"

"강하고 깊이 있는 힘이란건. 시간 없이 얻을  없는 법이야. 먼치킨이랍시고 한번에 큰 힘을 손에 얻는다 한들 그게 한순간에 얻은거면 뭔 의미가 있겠니"

나는 능력을 써서 가게 안을 전부 내 감지 영역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살균. 세균 한마리 남지 않도록 가게 안 구석구석까지 박멸시킨다. 분자레벨 간섭도 가능한데 세포레벨 간섭 하나 못할까봐?

이렇게까진 아니더라도 깨끗하게 해야 먹을걸 팔 자격이 있는거다. 솔직히 이 정도 수준으로 청결 챙길 가게가 어디있냐. 나 말고 없지.


"형이 성격 요상하다는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환생자라는건 좀 낯선데요......."

"별 차이 없어 임마. 그냥 좀 오래 살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돼"

"아재, 서요?"

"울 마누라랑 몇천년동안 신혼인거 보면 모르냐?"


"아, 그러면 형수님도......?"

"울 마누라는 환생이라기 보다는 그냥 존나 오래 사는거고"


울 마누라 동족 중에서 제일 오래 산 녀석은 거의 태고적 부터 살아왔고 마누라 다음으로 나이가 적은 사람이라도 수억살은 가뿐히 된다. 솔직히 우리 마누라가 제일 어리다.

"그럼 형........형은 얼마나 강해요?"

"강하다는건 상대적인거야. 그렇게 물어보면 나도 대답하기 힘들지"

"전력으로 한방 후려치면 어디까지 박살낼 수 있어요?"

"일단 지구 날려버릴  있다"

농담 아님.


솔직히 내 주력이 직접적인 파괴력 보다는 다른 쪽이지만 그래도 집중하면 별 하나 작살내는건 할  있다.


"스케일이 너무 크니까 오히려 현실감이 없는데요"

"뭐, 그냥 그러려니 해. 내가 우주 개발도 안한 이 지구를 박살낼 일이 뭐가 있겠냐. 애초에 난 지구 박살내는 쪽 보다는 죽이는 쪽이니까"


"뭐라고요?"

"야, 맥주 좀 부족한것 같은데 발주 넣어라"

"말 돌리지 말고 방금 뭐라고 했어요?!"

"양념치킨 소스도 좀 부족한것 같은데 오늘 장사 끝나고 만들자"

"아니, 방금 뭐라고 했냐고요?!"


"그래 새꺄, 내가 잘하는게 죽이는거라고 했다. 뭐, 5000년쯤 살면서 사람 하나 안죽였다고 하면 이상한거 아니냐?"


"보통은 안그러잖아요"


"그거야 네 보통은 100년도 못사는 인간이라 그런거고. 환생 조뺑이 치면서 치안 시궁창인 세상도 있는데 안죽이고 베기냐? 그리고 인간만 죽인게 아니라 괴물 같은것도 죽였거든?"

".......이번 삶에서 사람을 죽인적 있으세요?"

"응, 한번"

"언제요?"

"너도  알잖아"

내 말에 백리는 문득 떠오른 것이 있어서 납득하는 표정을 지었다.

영등포 백화점 화재 사건 당시.  원인이자 주범이였던 남자.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진서애씨의 죽은 남편.

"마지막에 괴물 같은 모습을 하긴 했지만. 그건 사람이였어. 인간이였지. 그러니까 일단 이번 생에서 사람 한번 죽였다"

".....네"

인간을 가르는 기준은 외형이 아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괴물, 괴물의 모습을 한 인간. 두사람의 차이를 나누는 것은 결국 내용물이다.


외형은 괴물이였을지라도 내용물은 인간이였다. 가족을 그리워 하고, 만나고 싶어했고, 죽기 싫어했던 남자는 어딜보나 인간이였다.

그러고 보니 이 일도 있었네. 어떤 개자식들인지는 몰라도 사람 가지고 장난치는거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혐오하는 새끼들이 세가지 있는데. 사람 목숨 가지고 장난치는 새끼들이랑 먹을거 가지고 장난치는 새끼들이랑 내 사람 건드리는 새끼다.


그때 일도 뻔하다. 보나마나 세계 정복이니 뭐니 하면서 적성종 연구와 더불어서 인간에게 적성종의 능력을 부여하려는 실험이라도 하는걸거다.


대의가 있다고 해서 과정이 잘못된게 합리화 될리 없다. 인간의 가장 큰 나쁜점은 다수이기 때문에, 혹은 뭔가 합리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에 잘못도 합리화 시킨다는 점이다.

그 예로 중세시대의 마녀사냥 같은게 있다. 혼란스러운 민심을 바로잡는다는 미명하에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저 왔어요. 아, 백리 학생이랑 사장님 먼저 오셨네요. 신혼여행은 잘 다녀오셨나요?"


"아, 뭐 그럭저럭 잘 다녀 왔어요. 막판에  꼬이긴 했는데 그래도 재미있게 보냈죠"


진서애씨도 출근을 하고 슬슬 가게 문을 열 때가 되었다.

아 장사하자 먹고 살자, 오늘도 방실방실 밝은 대한민국의 하늘~.

사람이 일을 해야 쓰는 법이다.

* *  *   *

우리 가게가 장사를 시작한지 몇달이 지났지만 아직 한창 장사가  되고 있었다.


일단 자리도 좋고, 건물이 마누라거니까 필요한건 재료비랑 인건비 수준이다. 장사가 안될리 없었다.

하지만 조금 생각해봐야 하는게 지금 우리집 메뉴는 허전하다. 일단 후라이드랑 양념. 이 두가지를 메인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거야 어느 치킨집이나 그런거고.


좀 더 메뉴를 늘려보고 싶다. 레시피는 많이 있지만 가게에서 팔만한걸 따지고 생각하려면 조금 생각해야 한다.

하루 장사가 끝나고. 서애씨는 먼저 들어가라고 보냈다.

"먼저 들어가도 괜찮을까요? 정리도 해야 하는데......"


"집에 애도 있으시잖아요. 어차피 다 끝나고 들어가도 늦은 시간은 아니니까 걱정말고 들어가세요"


"네, 아주머니. 저도 남아서 도우면 금방 끝나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감사합니다"


가족이 있다고 하지만 혼자서 애를 돌보는 주부는 힘들다. 게다가 집에 애가 혼자 기다리고 있을텐데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봐야지.

어차피 서애씨만 가면 능력으로 정리를 한다. 간섭 능력을 이용한 염력은 가게 정리를 단숨에 끝내버릴 수 있다.


"그러면 메뉴 개발이나 해볼까? 시식대  해줄래?"

"그런거면  말로 한사람 더 불러도 돼요?"


"누구? 부를만한 사람이 있어?"


"제 동생이요"


"아, 여동생 있다고 했었지"


이름이 뭐였더라........루리? 전에 쟤네 집에 갔을 때 들어서 기억하고 있었다. 내 이름처럼 특이한 이름이어서 기억에 남았다.

성은 하씨일테니 하루리가 되겠네.

루리라......꽤나 정겨운 이름이다. 환생도 여러번 해왔지만 그중에서 기억나는 이름을 대라고 하면 루리라는 이름이 있다.

"마침 지금쯤이면 학원 끝나고 들어올 시간이거든요. 잠깐 들러서 치킨 먹고 가라고 하면 좋아할껄요?"

"그러면 불러. 한창때의 여고생인데  좀 많이 먹여야지. 공부할 때 건강 관리도 중요한 법이야"

내 허락에 백리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루리야. 어, 난데. 잠깐 나 일하는 가게로  수 있어? 사장 형이  메뉴 고안한다고 시식좀 해달라고 하거든.  치킨 좋아하잖아. 응, 응, 알았어. 빨리 와"


얘네처럼 사이 좋은 남매 찾기 그리 쉽지 않은데 예로부터 남매란 서로 뱃속부터 서로를 죽이기 위해 태어났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나쁘다.


오빠한테  새끼 그러고 동생한테 이년 그러고 하는게 일상 다반사인 집안도 있을거다.

"동생이랑 사이 좋은가보다?"


"제가 어지간하면 다 받아주는 쪽이라 그런대로 좋은 편이예요....싸우기도 하지만"


"아니, 그래도 일부러 치킨 챙겨주는 오빠라면 사이 좋은 남매 1퍼센트 안에 들어간다. 내가 장담해"

"진짜요?"


"예전에 어떤 세계에서는 황위계승권 가진 황태자와 공주가 직접적으로 피터지게 싸우고는 했었는데. 그 사이에 낀  황제 집안 막내로 환생한 사람으로서 참극이 어땠는지 말해줄까?"

"무슨 왕좌의 게임 찍어요?!"

"참고로 그 나라 망했다"


"가족 싸움에 나라 말아먹었네요!"

사실 내가 멸망시켰다.


 새끼들이  황위 계승권 다 버리고 농사 짓고 산다니까 독살하려고 했거든. 알고 보니까 황태자 쪽이 그래서 그새끼 멱살 잡고 탈탈거리다가 그거 보고 겁낸 공주 누나 쪽에서 암살하려고 들어서 그냥 빡친김에 죄다 쓸어버렸다. 나라는 알렉산더 대왕 사후 마냥 와장창 쪼개져서 죄다 말아먹었지.

간만에 금수저로 태어났는데 내가 말어먹은 케이스라서 기억하고 있었다. 씹새끼들.

"오빠, 나왔어! 문좀!"


"아, 왔나보네요"


잠깐 이야기 하는 사이에 백리의 여동생이 도착했다. 잠가두었던 가게 문을 열어주자 귀염성 있는 여고생이 들어왔다.


어께죽지까지 기른 단발에 나름 예쁘다. 좀  표현하자면 귀여운 스타일이다.

학교 끝나고 학원 갔다 바로온건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아, 저거 내가 전에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에 있던 학교 교복인데.

"아, 루리야. 이쪽은 우리 가게 사장 형이야"


"안녕하세요 치킨 물주 아저.......아니, 오빠. 루리예요!"

"너 지금 형보고 물주라고 했지?!"


"아저씨라고 부르려고 했다가 젊어 보여서 오빠라고 불러준건데. 거기서 태클을 걸면 어떻게 해?"

백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나에게 사과했다.


"........죄송해요. 이런 성격이라"

"애가 성격이 밝아서 좋네"

나는 조심스레 그녀의 영혼을 보았다. 이름에서 혹시나 싶었고 성격에서 다시 한번 떠올렸지만 마지막까지 확인을 위해서다.

그리고 작게 웃었다. 그녀의 영혼은 예전에 기억하던 사람과 닮았기 때문이다.


닮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인건 아니였다. 아이가 성장해서 어른이 되었다고 다른 사람이 된건 아니듯이, 그 정도의 차이였을 뿐이였다.


루리는  얼굴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어왔다.

".......음? 저기 사장 오빠. 혹시  어디서 본적 있어요?"

"글쎄, 전생에 만나지 않았을까?"

"앗, 그거 작업멘트 아니예요? 저는 국가의 수호를 받는 산삼보다 좋다는 고삼이라서 작업걸면 사장 오빠가 철컹철컹 수갑 찰걸요?"

".......형?"

"아냐  새꺄. 누굴 소아 성애자로 보고 있어?"

"형수님........"

"아니, 그건 그거야. 어린 여자애를 좋아하는게 아니라 좋아하게된 사람이 어린 여자애였을 뿐인......아, 시바 이게  이상한데"


"형수님? 오빠, 사장 오빠 안사람분이 어때서 그래?"

"내 허리쯤 오는 초등학생으로 보여"

"페도 죽엇!!"


루리가 경멸의 눈으로 쳐다보았다. 여고생의 경멸의 눈빛......어느 업계에서는 포상이라고 하겠지만 나는 아니다. 우리 마누라라면 생각은 해보겠다만.


"아무튼 온김에 치킨 좀 먹고 가라. 새로 만든 것도 있고. 가게 하고 남은 재료 몇마리 있으니까 그거 쓰면 돼"

"저장된 치킨은 충분한가!"

"잠깐 기다려!"

나는 잠깐 냉장고를 뒤적거린 뒤에 말했다.

"크큭, 졸라 많군"


".........오빠, 나 갑자기 사장 오빠가 좋아질려고 그래"

"내 눈에  들어가기 전에 불륜은 안돼!"

"걱정마, 나도 임자 있는 사람은 안건드려. 그리고 고삼인데 연애 할 시간이 어디있어? 나 대학가거든 그렇게 말해"

일단 메뉴 몇개 생각해 둔게 있는데. 우선 가장 먼저 간장 치킨이다.


다른 치킨 체인점에서 나오는  간장 치킨이랑 같은거지만 간장 소스의 배합을 조금 달리해서 조금 매운 맛을 더했다. 간장의 짭짤한 맛에 약간의 매운맛이 더해져서 먹다보면 술을 부르고 마시면 치킨을 찾게 되는 그런 메뉴다.


"아, 이건 맥주가 땡기는데요?"

"나도!"

"미성년이잖아!"

"뭐 어떠냐. 어차피 파는것도 아니고 잠깐 먹는건데. 어차피 고삼이면 한잔 정도는 괜찮아"


"........괜찮아요? 미성년자가  먹는게?"

"제어 못할 애들끼리 있는것고 아니고. 어른이랑 같이 마시는데 한잔 정도야 뭐 어때. 누가 뭐라 그러면 내가 경찰서 가서 조사 받으면 되지"

"사장 오빠 융통성에 무릎 탁! 치고 갑니다!"

"갈꺼야?"

"아뇨!"

"왜 둘이 그렇게 죽이 맞아요?!"

왜냐면 니 동생은 나랑 같은 과란 소리란다. 천성적 개드리퍼 말이야.

세사람이서 두조각씩 해도 치킨 한마리 먹는건 일도 아니였다. 특히나 건장한 성인 남성 두명에 식욕 폭발할 여고생 한명이라면 오히려 한마리 가지고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는다.


다음 메뉴로는 된장 치킨이였다. 이번것은 튀긴게 아니라 구운 쪽이다. 가게에는 혹시 몰라서 들여놓은 오븐이 있어서 튀김옷을 입히지 않은 생닭에 내가 만든 된장 소스를 발라서 오븐에 구웠다.


간장 치킨과 비슷한 부류지만 이쪽은 튀기지 않아서 한결 담백하고 된장 소스 덕분에 구수한 맛이 있었다.


"흠.....이것도 괜찮네요. 간장 치킨은 체인점 쪽에서 팔아서 그리 희소성이 없는데 이건 좀 팔릴것 같아요"


"치킨 마시쩡"


"얘는 치킨이기만 하면 다 좋아할것 같은데"


"고기면  좋아하는데요?"

고기는 언제나 옳다. 그런고로 육식주의자가 됩시다 여러분!

나도 된장 치킨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튀기는게 아니라 굽는거고, 소스만 바르면 되서 준비가 간단하다. 따로 튀김옷을 입혀서 튀길 필요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거. 코코뱅  치킨"

"코코뱅?"


"코코팜?"


"그 코코넛 알갱이 들어있는 음료수 말고. 포도주를 베이스로 한 닭고기 스튜를 코코뱅이라고 하는데......이건 그 비슷하게 만들었거든"

정통이라면 야채랑 함께 여러가지를 넣어야 하지만 만들어놓은 야채 육수로 때웠다. 포도주를 넣는건 같지만 여러가지를 좀 다르게 했다고 할까. 굽거나 튀긴 것도 아니라 냄비에 푹푹 끓인 요리다.


그릇에 약간의 국물과 함께 담겨진 코코뱅식 치킨은 포도주에 졸여져서 약간의 보라빛을 냈다. 보라색이라고 기분 나쁜게 아니라 닭고기 표면에 기름진 느낌과 어우러져서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정통에 비하면 여러가지로 개량한게 많기 때문에 코코뱅이 아니라 코코뱅식 치킨이라고 할  있다.


"와, 이거 맛있다. 포도주로 했는데 술맛 하나도 안나네요?"

"술은 원래 끓이면 알콜이 날아가는게 당연한거고. 원래 잡내 없에려고 요리에 소주 넣는거 있었지? 그런거 비슷해"

"고기에서 맛이 올라오는게 좋네요. 국물도 맛있고. 포도주가 들어갔다고 해서 단맛이 날줄 알았는데 의외로 담백하고 좋아요"

"육수에 비하면 포도주가 들어간 양이 많은건 아니니까"

"가볍게 넘어가는게 해장으로 딱인데.....솔직히 우리 가게는 술 마시러 오는 곳이지 해장하러 오는데는 아니잖아요"

"다 마시고 해장도 하고 가라면 되지 않을까?"

"음.......그것도 나름 괜찮은데요"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마시고 와서 여기서 해장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여기는 명동 거리다. 저녁이 되면 술을 마시려는 사람들과 술을 마시고 꽐라가  사람들이 돌아다닌다.

한번 만들어두면 끓여서 내놓기만 하면 되는 요리라 손이 덜간다. 저녁에 끓였다가 다음날에 팔면 된다.

"선택 장애가 오는데.....흠, 이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있지"


"뭔데요?"

"그냥 싹다 메뉴에 넣는다"

"......당분간 고생 좀 하겠네요"

메뉴가 늘면 고생하는건 만드는 사람이다. 내가 출근하면 내가 만들긴 하지만 백리도 내가 없을 때 대타 뛰어야 하기 때문에 본인도 직접 만들줄 알아야 한다.

다만 소스만 만들면 되는터라 익히기는 쉬울 것이다.


"아, 잘먹었다. 오빠가 가끔 치킨 들고 오긴 하지만 세종류 치킨을 한번에 먹는건 처음이야"


"그러다 너 돼지 된다"

"요즘 대세는 육덕인거 몰라? 적당히 살집 있는 여자가 마른 여자보다  인기 있는 법이야"


"너는 육덕이 아니라 육질 아니냐. 거 A+등급 나오는거 아냐?"

루리가 아무말 없이 백리의 머리를 붙잡아 팔로 조여 헤드락을 걸었다. 포스 유저가 되어서 육체능력이 탈 인간급으로 좋아진 백리지만 포스 유저로 먼저 각성한 사람은 루리였다.

"아, 잠깐만! 아퍼! 아프다고! 야! 야!"

"하와와, 군필여고생쟝 루리는 어려운거 모르는 거시야요"

"육군 복무 신조!"


"우리의 결의!"


"우리의 결의!"


백리와 루리 두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백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루리까지 그러는걸 보면 군필여고생쟝을 자칭할 실력은 되나보구나.

"여고생 한명의 전투력은 특수부대원 2명분 정도라고 하던데. 루리는 겨우 그 정도가 아니라 혼자서 탱크도 상대할  있을것 같네"

"오또케 알아찌!"

"진짜요?!"


"애가 너보단 포스 유저로 있던 시기가 길잖아. 나름 짬 좀 먹은거지"

게다가 내가 아는 루리라면 재능도 있을테고, 설령 싸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포스를 쓰는 방법은 백리보다 위일 것이다.


"쟤 정도면 고유 특성도 가지고 있을껄? 집에서 포스 연습은 안하나 봐? 동생이 모르는거 보면"


".....정말요?"

백리가 정말이냐는 눈으로 루리를 보았다.


"하나 있긴 한데 이게 고유 특성인지는 몰라. 나도 비교해볼 사람이 없었거든"

"왜 말 안했어?"


"안물어봤잖아"

"나도 포스 유저로 각성했는데 뭐라고 한마디 해줬으면 좋잖아!"


"공부로 바쁜 고삼에게 큰거 바라고 있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가라고 잔소리 하던 사람이 누군데!"

"그런 동생 등록금 벌어두고 있는게 나거든?!"


남매 싸움은 집에 가서 하려무나.

일단 메뉴 고안은 얼추 됐으니 나중에 세세하게 소스 배합을 맞추고 레시피를 적어두면 된다. 세세하게 만드는 요령은 나중에 백리한테 가르쳐주면 된다.


"가끔 와서 먹고 가, 루리야. 공부 하면서 스트레스 쌓이면 먹는걸로라도 풀어야지"


"공짜예요?!"

"니 오빠 월급에서 깔거야"


"형?!"

"아싸, 오빠 월급 거덜내야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내가 백리의 월급을 조금 주는 것도 아니고 전부 거덜 낼 수는 없을 거다.


한 절반 정도면 몰라도.

"오늘부터 하루 10치킨 간다"


"살쪄 돼지야!"

"날 돼지라고 놀리는건 용서할 수 있지만 돼지라고 부르는건 용서할 수 없다!"

"무슨 병신같은 소리야!"

허허, 오랜만에 보는 개판이라 흐뭇한 웃음이 나온다. 요즘은 나랑 시온만 있다 보니까 겨우 두사람이서 북적한 분위기를 낼 수 없어서 조용했는데 이런 느낌  좋다.


애들이 남매 사이가 좋구나.


"돼지! 돼지! 여고생 주제에 몸무게 한 60킬로 나가는 돼지야!"


"그 돼지 족발 당수로 처맞고 싶어?"


"악! 악! 악! 잠깐만, 포스 둘러서 막았는데  이렇게 아파?!"

"방무뎀 모름? 방어 무시 데미지!"

애들 사이가 정말 좋구나.


아무렴, 남매는 이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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