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23/507)



〈 23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라쿤맨이라는 인터넷 밈에 가까웠던 가면 히어로의 첫 출현은 영등포 백화점 화재 사건 당시 민간인과 소방관을 구출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처음 등장 당시의 그에 대한 반응은 여러가지로 나뉘었다.



-뭐임? 라쿤 가면 저거 뭐임?


-감독 강판하고 나온 은하수호자 3편 기념품 같은데
ㄴ 그거 감독 페도쉑이였잖아.
ㄴ 페도 죽엇!

-가면 왜 씀? 포스 유저 같은데 미등록 유저 아님?


-그래도 좋은일 했네.


-ㅇㅇ, 좋은 일도 했는데, 간만에 이거 보고 존나 쪼갬ㅋㅋㅋ

-막판에 '땡 잡았다!'하는 기자 누나 졸귀탱.

흥미를 보이는 의견, 수상쩍다는 의견, 좋은 일을 했다는 의견, 웃기다는 의견. 여러가지가 뒤섞여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원래 밈으로 쓰이던 라쿤맨 소재도 다시 흥해서 동영상에서 캡쳐한 사진을 절묘하게 응용한 밈도 생겨났다.


그리고 다시금 나타난 라쿤맨의 활동은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한데 모았다.

-참칰ㅋㅋㅋㅋㅋㅋ

-참치ㅋㅋㅋ


-참치 워리어여뭐옄ㅋㅋㅋㅋㅋ

-두유 노 참치 워리어? 김치 워리어보단  났네.

-예로부터 냉동참치는 태극부채, 붉은 채찍과 더불어 메이플 고인물의 상징이였지.
ㄴ 그거 존1나 청동기 시대 템이잖아.
ㄴ 게다가 저거 생물임.
ㄴ 참치가 생물인건 문과인 나도 알거든?
 등신아, 살아있다는 뜻이라고 우리가 탄소 기반 생명체인지 규소 기반 생명체인지 말해보라고 해도 구분 못할 새끼가.

-엌ㅋㅋ, 저걸로 싸우고 회쳐서 먹음ㅋㅋ


-참치 마블링 오지네. 위꼴


-아, 갑자기 회가 땡긴다. 차가운 맥주도.


-참치 저거 존나 무거울텐데 한손으로 휘두르는거 뭐임. 개쩌넼.


-라쿤맨 가면 바꾼듯. 아이언 라쿤이여 뭐여. 성길이 가면 비슷한데?
ㄴ 성길이가 누구임?
 스타로드

-으앜! 플라잉 라쿤이다!


-현직 참치 요리 전문점 요리사입니다. 개인적으로  참치는 살도 잘 오른 최상품 참치네요. 시장 나가도 보기 힘든 품질인데 저놈 대뱃살 때깔 한번 보고 싶네요.

-근데 찍은 기사누나 전에 그 땡기자님 아님?



사람들의 라쿤맨에 대한 평가는 한단어로 표현해서 '괴짜'였다.

가면 히어로 행세를 하더라도 하필이면 그게 라쿤 가면인 것도 그렇고, 싸울 때 무기도 아닌 참치를 들고 싸운 것도 그렇다.

거기에 해운대에서 일어날법한 대참사를 막았으니 우호적인 시선도 늘었다. 정체를 숨긴다는 것도 그저 한종류의 퍼포먼스 정도로 인식됐다.


이후 잠깐의 인터뷰 장면은 윗선에서 잘랐는지 방송되지않았다. 그 인터뷰에는 일본과 민감한 문제도 있었기 때문에 미리 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라쿤맨에 대한 인식은 웃긴 정체불명의 히어로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깊숙히 살펴보면 그가 저지른 일에 대해서 골머리를 싸매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허어....."


라쿤맨의 정체가 최악이란 것을 알고 있는  안되는 사람인 조인형 팀장도 그중 한명이였다.

* *  * *



조인형 팀장은 뉴스를 보고 침음성을 내뱉었다. 부디 별일 없기를 기도했지만 세상은 사람 상각대로 돌아가지 않아서 사고를 터트려도 대형 사고를 터트렸다.

이번 사건에 대한 최악의 의견을 듣기 위해서 그는 최악의 집에 다시 한번 방문했다. 이번에는 혼자 방문했다. 저번과는 달리 서로 안면이 있었고 조심만 한다면 위해를 끼치지 않을것을 알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어쩐 일이야? 댁은안바쁜 모양이지?"


"저야 적성종 때문이 아니더라도 일이 많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한번 찾아와야 할  같아서 방문했습니다"

"어제 뉴스 때문에?"

".......네"

인터뷰 부분은 짤려서 그가 일본의 히비키와 싸웠던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저지른 사실은 사라지지 않아서 지금 윗선에서 그 문제로 일본과 교섭 중이였다.


히비키와 최악이 싸우면서 일어난 금전적 피해. 그리고 타국의 포스 유저가 허가 없이 입국했다는 점까지 합쳐서 보상 문제 때문에 열을 내고 있었다.


정작 당사자인 최악은 아무도 정체를 모르기에 책임소재를 물을 수 없는게 더욱 분통 터지고 있었다.


"신혼 여행 다녀오시기 전에 저에게 한말이 있지 않습니까, 최악씨?"

"..........그걸 물어오면 내가 또 할말이 없지. 솔직히, 미안해. 사과의 의미로 신혼여행 기념품 같은건 없지만 참치 먹을래? 아, 점심 먹었어?"


"아직 점심은 안먹었습니다만.....혹시 그 참치가 그 참치입니까?"

"동원이 대뱃살 남은거 있는데 어때?"


"왜 하필 참치 이름이 동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신다면 감사히 먹겠습니다"


아무리 많이 먹더라도 두사람이 1톤이 넘는 무게의 참치 한마리를 끝장낼 수는 없었다. 상당량 남은 참치는 고이 냉장고로 모셔져서 두고두고 먹을 수 있게 보관중이다.

그중에서 횟감으로 먹으려고 냉동실이 아니라 냉장실로 넣어둔 한토막을 꺼내 썰어서 내놓았다. 잡은지 하루밖에 되지 않아서 아직도 신선도가 높다.

"앞으로 어쩌실겁니까? 저야  다물면 된다지만 위에서 지금 난립니다. 지금도 감지계 유저 몇명 차출해서 라쿤맨을 포획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어요"


"곱게 잡혀줄 생각 없는데?"

"그래서  문젭니다. 아무리 최악씨라도 국가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잖아요"


최악은 의미모를 미소를 지으면서 조용히 그의 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대낮부터 술은 조금 이른 감이 있지만 메뉴가 회라면 술은 필수다.


"아, 다시 본부로 들어가봐야 하니까 조금만 주십쇼.......아무튼 지금이라도 정체를 밝히시고 국가 소속으로 들어오시는게 어떻습니까?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마무리 할 수 있을겁니다. 나중에 더 큰일 저지르기 전에 들어오시는 편이........"

"포획 다음에는 영입인가봐? 삼국지 게임도 아니고 1.등용 2. 해방 3. 사형 대충 그런식인가?"

"그럼 저는 1번을 선택하죠, 등용될 마음은 있으십니까?"

"전혀"


최악이 고개를 저었다. 완강한 거부 의사였다.


"국가 소속이 되시면 나름 좋은 면도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고, 국가적 지원과 서포트도 받을  있어서 지금보다 더욱 편한 활동을  수 있습니다"

"나도 그런건 알아. 하지만 신뢰가 없어서 하지 않는거야. 만약 국가가 신뢰를 받을만한 수준이라면 나도 이렇게 정체를 숨기진 않지"

사람과 사람간에는 신뢰가 생길  있다.


하지만 사람과 조직간에는 신뢰가 생기기 어려운 부분이다.


"최악씨는.......염세주의자입니까?"


세상을 혐오하는, 진보와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 그런 사람을 염세주의자라고 한다.

"아냐, 비슷하긴 하지만 아냐. 솔직히 몇년 전만 하더라도 염세주의자라 불릴만 했지만 지금은 의견이 다르거든. 이 나라 인간은 스스로 권리를 쟁취할 자의식이 있잖아? 그런 사회를 싫어할리 없지"

".........."

조인형 팀장은 몇년 전에 있었던 탄핵 시위를 떠올렸다. 대다수의 국민 스스로 모여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시위를 일으키고 끝내  결과를 얻어낸 민주주의 승리의 결과물이였다.


"나는 사회를 싫어하는게 아니야, 인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 단지 조직을 믿지 못할 뿐이야.개인과 개인간의 신뢰라면 나도 믿지만 개인과 조직간의 신뢰라면 쉽게 믿지 못하는 편이지"

"최악씨는 대한민국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시다는 소리군요"

"신뢰할 수 있었다면 영웅 코스프레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었을거야. 내가 있든 없든 얼마든지 발전 할  있었을테니까"

조인형 팀장이 최악의 술잔에 소주를 따라주었다. 최악은 단숨에 넘겨 잔을 비우고 참치회를 한점 입에 넣었다.

"나는 인간을 좋아해. 나만큼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드물지. 나처럼 인간의 밑바닥을 본 사람이 반대로 인간의 선량함도 알고 있거든"


"보통은 반대 아닌가요?"

"인간성의 바닥을  사람을 상대할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해?"

영웅을 상대하는 자는 분명 악당이다.


하지만 반대로 악당을 상대하는 사람은 영웅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은 어둠속에서도 빛을 발하며 끝까지 맞서려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신뢰를 보낼 수 있었다.

"사회와 조직은,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지만 개인을 변화시키기도 하지. 조직이라는 소속감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고 그게 자기 힘이라고 착각시켜. 난 그딴 새끼들을 싫어해. 혐오하고"


"갑질하는 사람들을 말하는군요?"


"응, 그런 새끼들 있으면 한대 패주고 말지"


"어이구, 그런 짓을 하면 큰일납니다"

"정말로 큰일날 짓은 죽이는거지"

한순간 은근히 돌던 취기가 단숨에 날아갔다. 조인형 팀장은 조심스레 술보다 냉수를 들이켜 제정신을 차렸다.


"나에 대해 조사했다고 그게 전부라고 생각마. 내가 왜 나보다 연상인 당신한테 반말까고 있다고 생각해? 이 정도 힘을 그냥 얻었다고 생각해? 사람 한번 안죽여봤다고 생각해?"


의문점이 너무나 많다.

전에는 몰랐지만 일본의 마스터 유저를 때려눕힌 무력.


충동적으로 보이지만 내면에 본인 스스로 굳게 쌓은듯한 신념.

어느 하나 시간이 받쳐주지 못하면 이룰  없는 부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은 믿을만하지.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좋아. 난 내 사람한테는 나름 잘 해주거든"

"그거....다행이군요"

조인형 팀장은 참치회를 한점 입안에 넣었다. 와사비 때문인지는 몰라도 회에서 쓴맛이 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나도 하나 물어보자. 요즘 차원진 경보 왜 그래? 일본에서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렇고. 경보가 아예 안울리거나 거의 차원진이 일어나기 직전에 경보가 울렸는데?"


"아, 그건 요즘 전 세계적으로 문제입니다"


쉬쉬하고 있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되는건 모든 나라가 그렇다.

차원진 감지기는 제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근래에 발생하는 차원진은 감지기를 피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는 크다. 최근 한달간 발생한 피해가 근 1년간 발생한 피해보다  정도니 이번 사안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었다.

"차원진 감지기를 좀 더 개량해서 더욱 정밀한 장비를 갖춰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더 피해가 커질겁니다"


"그거 때문에 나도 엿먹은게 한두번이 아니야. 차원진이란건 워낙 큰 문제라서 나도 항상 감지하고 다닐 수는 없거든"


차원진이란 말 그대로 차원과 차원간의 통로가 열리는 일이다. 최악은 그걸 감지할 수 있지만 자신의 감지 범위를 상당히 넓혀야 한다.

할수는 있지만 언제, 어디서 일어날지 모르는 차원진을 감지하려고 쓰고 다니기에는 너무 비효율적이다.

"아무튼 그거 때문에 문제가 큰거 맞지?"

"아, 네........그렇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야. 지금 일어나는 차원진도 최소 15분전에 감지하는 차원진 감지기가 있으면 어때?"

"예?!"

차원진 감지기는 평범한 것이 아니다. 현재 적성종 연구 분야 최고라고 일컫는 알리언 박사가 제작한 기술이다. 차원과 차원이 연결 될  생기는 비틀림을 감지하는 시스템은 그 근원부터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만들  없는 기술이다.


"혹시 그런 기술을 만드신겁니까?! 최신 차원진 감지 기술을?!"


"아니, 난 아니고. 애초에 난 문과라서 그런 쪽 분야로는  아는게 없어"


"그럼........"

"울 마누라가 만들었어"


조팀장의 시선이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시온에게 향했다. 겉보기에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이 분야의 석학도 골머리를 싸매는 기술을 만들었다고?


차라리 대학생이 과제삼아 만든 기술이 사실 노벨상 수상 수준의 기술이라고 말하는 편이 설득력이 있겠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건지 시온이 조용히 다가와 조 팀장에게 USB 하나를 건냈다.


"여기에 신형 차원진 감지기 제작법과 설계도가 담겨 있습니다. 아직 한국 정부쪽에는 보내지 않았으니 먼저 읽어보셔도 됩니다"

"정말.....입니까?"

"다른 곳도 아니고 한국 정부 쪽으로만 보낼겁니다. 적어도 일본에서 있었던 일에 대한 보상은 될겁니다"


보상 뿐이다 마다. 전세계에서 골머리를 싸매는 일은 유일한 패. 즉, 조커로 쓸 수 있다. 딱히 일본뿐만이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쓸  있는 기술이라는 소리다.

그걸 무상으로 주겠다는건 최악이 라쿤맨으로서 했던 일을  닫아달라는 소리다.


"사모님. 혹시  기술을 사모님께서 만드신거라면 부디 그 재능을 나라에..........."

콰직!!!

최악이 들고 있던 술잔이 박살나 으스러졌다. 유리가 깨지는 것으로도 모자라 가루가 되어 술과 함께 흘러 내렸다.

"내 마누라는 끼워넣지 말자? 곱게 뒤지고 싶으면 그래야지? 내가 전에도 말했는데 나한테 하는건 상관 없는데 우리 마누라한테 하는건 목숨부터 걸고 와라?"

금방이라도 심장을 멈추게 만들것 같은 살기가 그의 목을 졸랐다. 최악에게 있어서 시온은 역린이다. 건들면 죽는다.


본인 앞에서 대놓고 욕해도 상관하지 않지만 반대로 시온한테 조금이라도 무슨일이 생겼다가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조 팀장 입장에서도 최악은 걸어다니는 폭탄이다. 그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

"아무튼 내가 저지른건 이거 하나로 퉁치려고. 지들도 머리가 있으면 되겠지?"

"받고 입 싹 닫으면 어쩌실겁니까?"


"받은건 같잖아. 어차피 안쓰진 않을거니까. 그럴 때는 그냥 내 마음만 덜었다고 생각하지 뭐"


"만약 제작자를 찾기 위해서 역추적 해오면......."

"우리 마누라가 능력이 좋아서 추적 못할거야. 그건 확실해"

"그래도 만약이란게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런다면. 그래서 찾아와서 우리 마누라 귀찮게 한다면.  조까고  나라 갈아 엎어서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 다음에미국으로 이민갈거야"

"아무리 최악씨라도 나라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배트남은 미국을 국력으로 이겼나보지?"


 팀장의 머릿속으로 최악의......아니, 그러니까 그의 이름이 아니라 가장 나쁜 상상이 지나갔다.


마스터급 포스 유저가 숨어서 돌아다니면서  때려부수는 광경이. 국회의 사당이던 청와대던 전부 박살내고 유유히 사라지고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며 나라를 좀먹어가는 모습이.

포스 유저는 인간을 초월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적성종을 상대하는데  힘을 발휘하지 군대를 상대로 싸우라고 한다면 개인으로서는 상대할 수 없다. 적성종 같이 물리적 공격에 내성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마스터급 유저는 전혀 다르다. 마스터급 유저는 일반적인 포스 유저를 초월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서도 마스터급 포스 유저는 대우를 하면서도 감시하고 있다.


"내가 정체를 드러내면 분명 나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들이 생길거야. 그치?"


"......네, 공인이 되는거니까요"

"나도 나름 융통성은 있어. 잘못 했으면 그 죄값을 치루는 편이지. 솔직히 여태까지 살면서 사고 한번 친적 없어. 내 생기부 보여줄까?"


"아뇨, 괜찮습니다"

조 팀장이 거절한건 예의상 한 말이기도 했지만 이미 그의 인적사항은 전에 조사하면서 봤기 때문에 다시 볼 필요가 없었다.

전부 기억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평가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간간히 보여주는 성격과는 다르게 학창시절은 무난하게 보낸듯 하다.


"나를 이용한다고 해도. 그게 나름 납득이 가는 문제라면 나도 이해해. 국제정서나, 어디 파견 문제나, 대충 그런거면 참아"


"........."


"그런데 씨발, 그중에 분명 개념이 나가 뒤진 새끼들도  끼어 있단 말이야. 또라이 보존 법칙 때문인지 조직에는 항상 또라이가 한둘씩은  있어"

조 팀장은 '그 또라이로 분류되는 사람중 한명이 바로 당신이다' 라는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꾹 눌러 담았다. 괜히 그의 화를 돋울 필요는 없었다.


"지들이 좆같은 이유로 이용해먹으려는 주제에, 내가 거부하면 내가 아니라  주위 사람에게 손대서라도 그걸 시키게 만드려는 놈들이 있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것 같아?"


폭발해버린다.

시온을 만나기 전의 최악이라면 소중한 사람이라고 해봐야 친구 정도다. 피가 섞인 부모님은 20년전 대공황으로 인해 죽었으니 그의 핏줄은 아무데도 남아 있지 않았다.


친구를 위해서라도 어느정도 도와줄테지만 결국 가족인 시온만큼은 아니다. 그녀는 환생을 하면 인연이 끊길 친구같은 존재가 아니라 평생을 함께할 반려니까.

"그니까 우리 마누라한테 잘 보여. 가끔 나 없을 때 한우 선물 세트 같은거 사와서 인사 하면 나중에 혹시 알아?"


"아, 다음부터는 선물도 가져오겠습니다"

"일단 이 이야기는 대충 마무리 된걸로 치고. 앞으로 좀 쌔다 싶은 적성종 있으면 전화 해. 가서  그냥 조져버릴테니까"

"본격적으로 활동하시려는 겁니까?"

최악이 처음 그와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상대하기 버거운 적성종일 경우 싸워준다는 뜻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쌔다 싶은, 그러니까 약간 애먹는 수준의 적성종이라면 싸워준다는 소리다.

"영웅 코스프레 하기로 했는데 활동은 해야지. 내가 나서는게 예산 아끼고 좋잖아?"

"네, 물론이죠"

조 팀장은 그가 일본에서 쓰러트린 대형 적성종과 부산에서 쓰러트린 대형 적성종의 등급을 떠올렸다.


일본 쪽은 대형 헵타곤(칠각형).

한국 쪽은 대형 헥사곤(육각형).

어느 하나 만만한 상대가 아니였다.


대형종은 그 크기에서 나오는 물리력 때문에 소형보다 버거운데 그런 대형종을 가볍게 압살했다. 덕분에 피해는 기적적일 정도로 적었다. 일본 쪽의 경우는 오히려 최악과 히비키가 싸웠던 피해가 더 컸다.


대형 적성종도 가볍게 쓰러트리는 무력이 있다면 한번 나서는 것으로 아낄 수 있는 예산의 자릿수를 세는게 일이다.

"그런데 최악씨는 어떻게 그런 힘을 얻으셨습니까? 현대의 마스터 유저들은대공황 때부터 지금까지 단련해서  힘을 얻었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만, 당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다음에 이야기 하자.  한번 마신 사이로 하기에는 좀 그러니까"

환생자라는 사실을 숨길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몇번 보지 않은 사이에 말하기 쉽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이야기를 하려면 필히 시온에 대한 이야기까지 해야하니까 나중에  더 친분이 생기면 하기로 했다.

술은 조금만 마시겠다고 생각했던 조 팀장은 참치 몇킬로와 더불어서 소주 네병까지 마시고 나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후, 잘 마셨습니다. 참치도 맛있었고. 점심 맛있게  먹었습니다"

"다음부터 우리집 올때는 밥 먹지 말고 와. 이렇게 밥 먹으면서 이야기 하는게 얼마나 좋아?"

"저도 최악씨가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일줄은 몰랐습니다"


술이 좀 들어가고 남자끼리 이야기 하다보니 서로 통하는 이야기가 많았다. 술자리를 거치며 한결 가까워진 두사람은 깔끔하게 자리를 끝냈다.

역시 남자들은 술이 들어가야 친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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