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차원진 발생으로 인해 적성종이 넘어올 경우 포스 유저팀이 출동하는 시간은 보통 5분에서 10분 정도다. 설령 수도권, 혹은 번화가에서 떨어진 지역이라 할지라도 20분을 넘지 않는게 현재 선진국 반열에 드는 국가의 기본 대응의 수준이였다.
적성종의 수준은 출력에 의한 코어 형태와 적성종의 크기에 따라 나뉜다. 가장 높은 등급은 노나곤(구각형)이지만 현재까지 파악된 최대 등급은 옥타곤(팔각형)까지다.
그렇지만 하나, 출력에 상관 없이 까다롭고 상대하기 힘든 형태의 적성종이 있다면 대형종 적성종이다.
최소가 10미터가 넘어가는 크기에서 나오는 물리력은 한사람의 포스 유저로서는 막을 수가 없었다. 다수의 포스 유저, 그것도 원거리 공격 계열의 포스 유저가 달라붙어서 움직임을 저하시키고 나서야 간신히 잡을 수 있을만한 수준의 적성종이 대형종이다.
뭐든 크면 강한 법이다.
"조까라, 넌 오늘 나한테 썰려서 진오우가셋이나 맞추는데 쓸거야. 시온한테 줄거니까 기념품은 되겠지"
최악이 으르렁거리며 건물 벽면을 박차고 넘으며 대형종 적성종의 입 앞에 날아들었다.
자신의 눈앞에 나타난 인간을 인식한 대형종은 입을 벌렸다.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물고 씹어 죽이기 위해서였다.
대형종의 머릿속을 채운 본능보다 더한 명령은 눈앞에 보이는 인간을 죽이라고 하고 있었다. 그 명령을 충식하게 들었다.
[캬욱!!!]
"어딜!!!"
쿵!
최악은 대형종 적성종의 입 안에서도 입천장을 들어올리듯 받아내어 씹히는 것을 막았다. 대형종의 치악력을 마찬가지로 힘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일단 턱뼈"
콰직!
밟고 있는 혀를 내려 찍으며 걷어 찼다. 혀의 절반과 더불어서 턱뼈까지 으스러지며 뜯겨나간다.
포스 유저가 적성종에게 현대 화기 이상의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이유는 포스 융합 현상으로 인해 발생하는 공명 덕분이다.
적성종의 체내에 가이아 포스가 융합하여 깃들게 되면 포스 유저의 공격에 담긴 포스가 공명하여 라프 에너지의 활동을 무효화 시키기 때문에 물리 공격에 내성을 지닌 적성종이 포스 유저의 냉병기에도 데미지를 입게 된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포스 융합 현상이 완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소형 적성종은 아무리 길어도 1분이면 포스 융합 현상이 완료 되지만 대형의 경우 그 신체의 크기 때문에 길면 10분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포스 융합 현상이 일어나지 않은 적성종 앞에서 포스 유저는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싸울 수 밖에 없다.
아직 이 대형 적성종이 넘어온지 10분은 커녕 5분도 되지 않았다.
[캬아아아악!!]
"입냄새 난다 개같은 새끼야!"
혀의 절반과 아랫턱이 통째로 뜯겨나간 대형종 적성종은 괴성을 지르며 원흉인 최악을 노려보았다. 웅웅거리며 본능적으로 다룰 수 있는 라프 에너지를 집중해 고열을 일으킨다. 적성종 개체의 특성인지 전격이 튀기 시작했다.
대형종 적성종의 각력이 더해진 낙뢰와 같은 일격이 최악에게 떨어져 내렸다. 수백년을 넘어 수천년 묵은 아름드리 나무조차 불태와 쪼개버릴 일격 앞에서 최악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먹을 쥐었다.
"↓→↘-펀치! 승룡권!!"
땅을 차고 위로 어퍼컷을 날리며 점프하는 어떤 격투게임의 유명 기술 중 하나를 따라하며 날린 공격이 대형종 적성종의 앞발과 충돌하며 거대한 기파를 발생시켰다.
인근 건물에 달린 유리창이 산산히 조각나 거리로 떨어지거나 작은 지진이 아닐까 싶은 충격이 땅을 울렸다.
[키악! 캬아아아! 갸악!!]
"아프냐? 새꺄 손톱 좀 빠진걸로 질질 짜지마. 살면서 손발톱 한번 쯤 빠질 수도 있는 법이지. 정말 아픈건 그 사이를 바늘로 쑤시는거라고"
서로 충돌했지만 일방적으로 부상을 입은 것은 대형종 적성종 쪽이였다. 발톱 전부와 발가락 몇개가 전부 날아가고 남은 발가락 조차 멀쩡한 것은 없었다.
인간을 죽이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괴수는 난생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현재까지 지구에서 등장한 적성종 중에서 최고등급이지만 최악 앞에서는 답이 없었다. 그의 눈에는 사람을 지키겠다거나 투쟁심 같은 것 하나 없이 오로지 죽이려고 드는 살의 뿐이였다.
우드득!
"일단 다리 하나"
어느새 대형종 적성종의 다리를 붙잡은 최악은 비틀어 힘으로 잡아 뜯어냈다. 생물학적인 한계를 넘은 육체를 가졌지만 결국에는 생물일 뿐이다. 육체를 뛰어넘은 초월자에게 있어서 근력이란 언제든 변동 가능한 힘에 불과하다.
[키이이이......]
"도망치려고?"
꼬리를 말고 슬슬 뒷걸음질을 하던 대형종 적성종은 최악의 이죽임에 땅을 박차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인간을 죽이라는 명령보다 생존 본능이 앞섰다. 도로의 차량들은 가볍게 짓밟고 부수며 내달려 약간의 도움닫기와 함께 어지간한 빌딩을 뛰어넘을 정도로 점프했다.
"어 딜도 망가!"
[키엑!]
느닺없이 안면에 꽂힌 일격은 매서웠다. 적성종의 몸뚱이는 그대로 지상으로 추락하여 땅을 울렸다. 충격에 땅을 구른 것으로 거리 하나가 초토화 되었지만 최악이 신경쓸 바는 아니였다.
"그리고 또 다리 둘"
빠악!
발차기로 내려찍어서 다리 하나를 부러트렸다.
"셋"
뚜두둑!
맨손으로 뼈를 으스러트리고 산채로 뽑아냈다.
"마지막 넷"
서걱!
최악이 수도로 내려찍자 남은 마지막 다리 하나가 잘려나갔다.
나타날 때마다 어떤 포스 유저팀이라도 고전하는 대형종 적성종을 고작 몇분만에 다리가 잘린 오뚜기 인형이 되어버렸다. 괴성을 지르며 꿈틀거리고 있었지만 그저 발버둥에 불과했다.
이제서야 작업을 시작할 환경이 되자 최악은 손을 풀었다.
"복날에 잡아다가 탕 끓여먹을 새끼. 뿔 뽑아다가 녹용 해먹을 새끼. EMP만 안 썼어도 내가 나설 생각 따위는 없었는데"
뻐억! 하고 놈의 안면을 걷어 찼다. 그나마 멀쩡했던 윗턱이 부러져 덜렁거렸다. 인류를 위협하는 대형종 적성종의 위용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고 복날에 개패듯 두들기는 시간만 남아 있었다.
한 5분쯤 최악이 대형종 적성종을 두들기며 시간이 지나자 슬슬 포스 유저팀과 일본 자위대가 출동하여 현장에 도착하는 기색이 있었다. 포스 유저팀의 이동을 위해 CH-47 수송 헬기가 날아 왔으며 대형종을 상대하기 위해 지원 및 견제용으로 F-35A 수기가 현장 인근을 비행하며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뭐여, 액션 영화 경찰마냥 존나 무능하게 다 해결하고 나서야 출동하냐"
사실 무능한 것이 아니다.
도심에 대형종 적성종이 나타났다면 그만한 준비를 갖추고 대응하기 위해 출동에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빠른 대응이 힘들다. 특히나 차원진 경보 없이 순수하게 출현 이후를 따져서 10분이라면 오히려 급작스런 상황에 대처하는 자세가 좋았기 때문에 칭찬해줄 수준이다.
최악은 도망갈 생각이 없다.
이미 저지를 대로 다 저질렀다. 들키면 들키는거고 아니면 마는거고. 지금 중요한건 이 대형종 적성종을 좀 더 팬 다음에 목숨을 끊는 것이다.
수송용 헬기에서 십수명의 포스 유저팀이 강하했다. 상공에서 대형종과 현장의 상태를 파악했기 때문에 다른 준비 없이 안심하고 내려오는 것이다.
그들 중에서 최악은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TV에서 봤을 때는 그런 현대적인 느낌의 가면은 아니였는데 말이지"
"그런 판매용 가면은 언제 벗겨질지 모르잖아. 그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지"
최악은 목소리로 알아차릴까 생각했지만 아까와는 다르게 말을 하자 목소리가 자동으로 변조되었다.
"한국에 있어야 할 라쿤맨인지 뭔지가 여긴 어쩐 일이냐"
"관광이야. 나는 뭐 놀러오면 안되는거냐?"
"신고는?"
"우리 나라에서도 포스 유저 등록 같은거 한적 없는데 잘도 했겠다. 일반인으로 왔지 뭐"
"불법이잖냐"
"댁은 불법 저지른적 없수?"
"적어도 양심에 한점 부끄러운 일은 한적 없지"
"불법적인건 했었다는 말이네"
히비키와 함께 온 포스 유저팀. 그를 중심으로 한 정예팀이였다. 대부분 엑스퍼트 이상의 무력을 지녔으며 그러지 않더라도 그에 준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몇명은 최악의 뒤쪽에 있는 대형종 적성종의 반쯤 죽은 사체를 보고 있었고, 몇명은 히비키와 함께 최악을 노려보며 여차할 때를 준비 하고 있었다.
"저 녀석 혼자 잡은걸 보니 실력이.......흠, 솔직하게 말해서 나보다 강한가"
"평가 후하네"
"저건 나 혼자 못잡아"
마스터급 포스 유저라도 한계가 있다. 대형종, 그것도 코어의 출력이 높아보이는 적성종은 히비키라도 다른 포스 유저들의 지원이 있어야 잡을 수 있다.
그런데 다짜고짜 아직 포스 융합 현상도 끝나지 않았을 대형종을 패서 반쯤 죽여버린 힘이라면 이미 마스터 유저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니 나보다 쌘건 확실하지. 여기서 도망치면 못잡는다는 것도"
"아직은 도망칠 생각이 없거든"
"뭘 하려고?"
"이 새끼 멱은 따고 가야지. 이 뭐 같은 새끼 때문에 빡친게 있어서"
"곱게 보내줄 때 가. 나도 내 재량으로 처리해 줄 수 있는게 한계가 있으니까"
"어이구, 언제 봤다고 편의를 그렇게 봐주시나?"
"글쎄, 술 한잔 마시면 그럴지도 모르지"
"........."
가면에 가려져서 보이지는 않겠지만 최악은 슬쩍 묘한 표정을 지었다.
"타국의 포스 유저가 신고도 없이 입국하면 사건이 국제 문제로 번져"
"번지라고 하지. 어차피 어떻게 되던간에 상관 없어. 일본에서 시비를 걸던 우리 나라에서 시비를 걸던 죄다 박살내면 그만이고"
"그러다가 다른 나라에서도 간섭하면 큰일나는건 그쪽이야. 사교성이 없는것도 아닐테고 친구는 물론 가족도 있을텐데?"
"될대로 되라하면 뭐라도 되는게 인생이지. 지금 생각 없으니까 되는대로 해볼 생각 만만이다. 일단 이 새끼 좀 죽이고"
최악이 등을 돌려 대형종 적성종을 바라보았다. 주먹을 쥐고 가볍게 내질러서 두개골을 완전히 박살내었다.
박살난 형태로 보아 뇌까지 뭉게진 것은 당연한 일. 10분 전만 하더라도 인류를 죽이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괴수는 간간히 꿈틀거리는 시체가 되었다.
"이 새끼가 EMP만 안터트렸어도 신경 끄고 관광만 했었어. 아, 진짜. 다시 생각해도 열받네"
그것만으로 화가 덜 풀렸는지 다가가서 몇번이고 시체를 걷어찼다. 한번 찰 때마다 톤 단위의 시체가 들썩이며 움직이는걸로 보아 단순한 발차기에도 무지막지한 힘이 담겨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늦었나"
그런 최악을 보며 히비키가 중얼거렸다. 상황 파악이 완전히 끝난 자위대 쪽에서 사람이 나섰다.
포스 유저팀은 강하긴 하지만 강하다고 전부 전략 및 전술을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지휘 체계의 명령을 받는다. 물론 마스터 유저인 히비키쯤 된다면 그런 제약도 없지만 그래도 무시할 수는 없다.
상황이 더 귀찮아지기 전에 최악을 보내려던 히비키였지만 뜸을 들이다 보니 늦어버렸다. 최악이 싫어하는 날파리가 슬슬 꼬여들기 시작했다.
"네가 자초한거니까 적당히 해라"
"하는거 봐서"
히비키가 한발 물러났다. 더 이상 간섭하지 않겠다는 표시다. 최악은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여 감사 인사를 하고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다.
별 두개와 두줄의 문양. 최악은 자위대 쪽의 계급은 잘 모르지만 이런 상황에 짬 낮은 사람이 나서지는 않을거라는걸 알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육상자위대 수도방위대 소속의 이등육좌 하치다 토라메라고 합니다"
"뭐, 이쪽은 지나가던 라쿤맨. 대형종 적성종은 이 라쿤맨이 처리했으니 걱정말라고!"
"네, 걱정할 일은 없어보입니다"
다리가 전부 잘려나가고 얻어 맞아서 퉁퉁 부어있는데다가 아랫턱뼈는 저어기 나가 떨어져 있고 두개골은 박살나 있다. 살아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대단한 일이다.
"협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인명 피해와 재산 피해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도로랑 건물 좀 박살난거랑 차 몇대 날아간 정도면 양호하겠지. 그래서 본론은 뭔데?"
"잠시 동행을 부탁드리겠습니다"
"끝나면 집에는 보내주는거고?"
"네, 물론이죠"
최악의 두번째 능력인 '감각'이 알려주고 있었다. 그건 거짓말이라고.
"구라치고 있네. 보내줄 생각 없지?"
한국에서 등록되지 않은 포스 유저, 그것도 마스터 수준에서 최상위에 속할지도 모르는 무력이 있다는게 확실하다면 한국으로 보내는 것보다 끌어들이는 편이 낫다.
마스터급 유저가 두명이라면 그로 인해서 발생하는 이점이 너무나도 많다. 자국 방어도 훨씬 수월해지고 한명쯤은 해외로 파견을 보내 국가간의 이점을 얻을 수도 있다.
일단 한국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나 그때와 지금의 최악의 모습에는 차이가 있었다. 가장 큰 것으로는 가면의 차이. 기념품으로 파는 싸구려와 공들여서 만든 공예품 수준의 차이가 있었다.
일단 억류한 뒤에 신분을 만들면 자국의 마스터 유저로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 말이 나오면 다른 사람이라고 억지를 부리면 그만이다.
"싫은디. 저 새끼도 죽였겠다. 나는 그냥 집에 갈려고 하거든"
"포스 유저 밀입국에, 재산 및 인명 피해까지.......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십니까? 국제문제로 번질텐데요?"
"응, 아니야. 국제 문제든 뭐든 알아서 하라지. 우리나라가 고생하지 내가 고생하냐?"
".......애국심 같은건 없는겁니까?"
"이 짓을 애국심으로 했었으면 진작에 포스 유저 등록 하고 국가 소속이 되었겠지. 보상은 쥐꼬리만큼 주고서 대우는 별 같지도 않게 하는데 잘도 하겠다"
"그러면 귀화하시는건 어떻습니까? 대우라면 한국보다 몇배는 약속드리지요"
마스터급 포스 유저라면 어떤 수를 써서라도 영입해야 한다. 한 사람만으로도 국방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생각하면 그 이득을 생각해서라도 몇몇 특권 정도는 부여할 수 있다.
"나쁜 생각은 아닌데. 돈이 많으면 우리 나라만큼 좋은 곳도 없어서"
"한국보다 저희 일본이 더 경제적으로 발전한 곳입니다만?"
"방사능 터져서 폴아웃 찍게 생긴 주제에 뭐라고?"
"..........."
민감한 부분을 꼬챙이로 쑤시는것 마냥 찔러댄다. 솔직함이 도가 지나쳐서 건방져 보인다.
"크흠, 그래도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일본이 낫습니다"
"경제야 어느 나라던 문제인데 일본만 좋다는 식으로 말하지 말고. 사회는 민주주의도 아닌 것들이 그런말 해도 되냐?"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입니다만?"
"니네 나라 정치인들 하는 꼴 보면 민주주의는 커녕 귀족정이나 왕정이 아닌지 궁금한데"
몇년 전까지만 해도 최악은 한국에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국정농단으로 탄핵당한 모 대통령을 보고 그나마 한국은 시민의식이 남아 있는걸 보고 마음에 들었다.
정말로 일어서야 할 때를 알고 있으니 그것 하나만큼은 인정. 하지만 일본은 시위에 대해서 좋은 인식이 없기 때문에 정치가가 잘못된 선택을 해도 국민으로서 내세울 무기는 투표권 정도밖에 없다.
".........조금 무례하시군요. 협조해주시지 않으면 저희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겁니다"
"오, 전차나 전투기라도 끌고와서 한판 해보게?"
"아무리 마스터급 유저라도 군대를 상대로 이길 수는 없습니다. 고전하겠지만 결국에 지는건 그쪽입니다"
"그을쎄"
최악은 제자리에서 일본에 있는 국민 전부를 즉사시킬 수 있지만 그걸 모르는 상대를 앞에 두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고민했다. 어차피 가면 때문에 보이지 않겠지만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웃어야 할지, 그것도 아니면 어이없다며 화난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개인은 다수를 이길 수 없다. 숫자에서 오는 차이는 크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현대 화기로 중무장한 사람과 원시인 100명이 상대라면 개인과 다수의 관계도 무너져 내린다. 결국에는 격의 차이가 승패를 가른다.
"일단 정리부터 하자고. 저건 내가 잡았지만 재산 피해나 기타등등 손해 생긴게 있으니 니들이 가져. 거스름돈은 필요 없어"
"........예"
"그리고 난 집에 간다. 오케이?"
"거기 부분이 오케이가 아닙니다"
최악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기 때문에 편하게 빠져나갈 수는 없을거라는걸 알고 저질렀다. 지금은 그냥 억지를 부리는 것에 불과하다.
"일단은 이쪽에서 이야기를 들은 뒤에 움직이는건 어때? 너도 어차피 곱게 빠져나갈 수 있을거라고는 생각 안했을텐데?"
히비키가 잠깐 중재를 하기 위해 나섰다. 이대로 가면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물론 댁 말은 맞긴 한데. 나보고 책임을 묻는다느니 그런 식으로 몰아가놓고 은근슬쩍 귀화시키려는 짓 같은거 안하면 나도 이야기 정도야 얼마든지 응해주지"
"당신의 의사가 없는 한 저희도 그러지 않을겁니다"
"정말로?"
"............"
국가나 조직이 하는 일에 소수의 의견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옳은 일이던, 그렇지 않은 일이던, 합리화시키며 넘어간다.
"쉽게 가자고. 쉽게. 니들이 잡은걸로 하고 못본척 넘어가면 되잖아?"
"목격자가 있잖아"
"그런거야 언론조작 하면 되겠지. 어떤 국가도 제일 잘하는게 언론 조작이잖아. 그거 못하는 국가는 내가 본적이 없어. 오죽하면 정치보다 언론조작을 잘할까"
"그러면 그 다음은? 어떻게 한국으로 갈거지?"
"비행기도, 배도 못탈테니까 헤엄쳐서라도 가면 되겠지 뭐. 부산까지 넉넉하게 하루면 가겠다"
히비키가 주먹을 쥐었다.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니 해결 방법은 결국에 힘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계속 이야기가 안맞겠군"
"그래서?"
"일단 가장 잘 하는 걸로 해결 해봐야지"
우득, 하고 히비키가 주먹을 쥐어 내밀어 보였다. 최악은 이미 파악한 그의 속내를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
"아까 말했잖아. 저 적성종도 너 혼자 못잡는다고 본인 입으로 말한 주제에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괴물을 상대하는 것과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차이가 있지. 격투기 국가대표 선수가 포스 유저로 각성해도 뛰어난 포스 유저가 되지 않는 것처럼"
히비키의 말대로 두가지는 차이가 있었다. 격투기 선수가 포스 유저로 각성한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뛰어날 정도로 두각을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출발점이 다를 뿐이지 능력만 따진다면 실전 몇번 겪어본 초보 수준이다. 사람끼리 하는 안전을 확보한 시합과 매번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투는 차이가 크다.
반대로 적성종을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포스 유저도 사람을 상대로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살인을 꺼려하거나 남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은 성격의 사람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하지만 어딜봐도 최악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한판 붙자"
히비키가 그렇게 말하며 선공을 날렸다.
"잠깐만요, 히비키씨!"
누군가 그를 말리는 목소리가 튀어 나왔지만 이미 늦었다. 그의 주먹이 최악의 복부에 틀어박혔다. 대형 건물의 콘크리트 기둥조차 일격에 박살낼 수 있을 정도의 힘이 담긴 공격이 자비없이 최악을 뒤흔들었다.
히비키의 밟고 있던 아스팔트 도로 위가 한차례 진동했다. 부서지지 않은 것은 자신이 지지할 땅을 포스 능력 특성으로 강화해서 힘을 온전히 때려박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콰아앙!!
작용 반작용의 원리에 충실하게도 최악의 몸뚱이는 허공을 날아 인근 건물을 박살내고 처박혔다. 그 일격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공기가 찢겨 나가는 듯한 소리가 겹쳐들렸다.
시간을 주지 않고 뛰어들어 달려든 히비키는 최악을 향해 연속해서 주먹을 날렸다. 충격파 만으로도 건물 내무의 가게 진열장 유리가 산산조각나고 십수층 건물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본이기 때문에 내진 설계가 잘 되어 있어서 그 정도로 무너진다거나 하진 않은 것이 다행이였다.
주먹을 날리고 날리고 처먹이고 지르고. 계속되는 연타에 자신의 얼굴을 가려주는 가면만을 가드를 올려 막으며 몸이 반쯤 땅속에 처박힌 최악은 덤덤한 얼굴로 히비키를 올려다 보았다.
"다했어?"
"짜식, 입만 산 모양이군"
우웅! 하고 공기가 떨리며 히비키의 오른 주먹에 힘이 깃들기 시작했다. 견고하고 강하게. 그리고 압축해서 격돌하는 단 한순간에 방출하여 상대를 박살내는 주먹이였다.
"오, 그거 좀 있어 보이는데. 기술명 같은거 있어?"
"글쎄, 나는 딱히 정하진 않았지만 딴 놈들이 이렇게 부르더군"
지구에서 정점에 속한 수명의 포스 유저중 한명의 필살의 일격이 최악의 복부에 내질러졌다.
"[오에산 떨어트리기]!"
쿠우우우웅!!!
묵직한 중압이 인근 지반째로 최악을 땅속에 처박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