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18/507)



〈 18화 〉[인생 뭐 있나, 그냥 사는대로 사는거지]

내가 시온의 외견 때문에 경찰서에 간건 한두번이 아니다. 나름의 메뉴얼이 있다.

시온도 그걸 알고 있어서 항상 같이 찍은 사진이나 주민 등록증, 혹은 가족관계 증명서, 혼인 관계 증명서까지 전부 구비해두고 있다.

얼마나 트러블이 많으면 그걸 다 준비 해두겠냐. 아무튼 조사다 뭐다 하다 보니까 하루는 꼬박 경찰서에서 머무르게 되었다.


애초에 자정이 넘은 시간이였고 일본 경찰서 유치장도 따뜻하더라. 원래 여름이였지만.


"죄송합니다 두분, 신혼 여행이신데 폐를 끼쳐드려서......"

"아뇨, 평소에도 가끔 있는 일이니까 괜찮습니다"


별 다른 사고 없이 넘어갔다. 의심 해보고 싶어도 증거가 몇개는 있었고 여기서 딱히 범죄 같은 것은 저지르지 않아서 마음에 걸리는 것도 없었다. 저쪽도 시온의 외모에 좀 미심쩍어 했지만 몇달 전에 같이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니 그런대로 납득했다.

"이런 것도 나름대로 추억이지. 그런데 씻질 않아서 좀 찝찝한데 일단 첫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서 바로 씻은 다음에 코미케 참가하러 가자"


"아마 호텔에 주문해둔 물건이 도착 했을겁니다"

"어떤거?"

"코스프레 용품 말입니다. 준비 해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너 그때 바로 사서 보냈구나?!"

어제 이야기 할 때 잠깐 나왔던 코스프레 소재가 진짜로 튀어나왔다. 장난인줄 알았는데 진짜였다니. 웃자고 한 일이 죽자고 커지는 격이다.

그래도 시온을 보면 기대하는 눈치라서 안할 수 없다. 적당한 코스프레라면 나도 어울려주려고 한다.

다시 전철을 타고 호텔로 돌아와서 옷을 갈아입고 씻었다. 호텔 주소로 택배로 온 물건을 받아 확인하니 뭘 코스프레할지 대충 견적이 나왔다.

"난 로리콘이 아닌데"


"저랑 결혼한 주제에 설득력이 없습니다"

"난 빈유가 좋은거지 로리가 좋은게 아니라고. 가발 까지 샀어? 그래도 이거 좀 길지 않아?"


"길어야 손볼 수 있지 않습니까. 단발 쪽은 너무 짧아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걸어다니는 슈퍼 컴퓨터 수준의 전자전 능력을 지닌 시온이라면 즉석해서 인터넷 쇼핑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 프로 코스어도 코스프레 한번 하려면 준비 시간이 필요한데 우리들은 당일로 준비하고 있는걸 보니 다른 사람들 노력을 부정하는것 같아서 좀 그렇다.

"어차피 저희는 개인 흥미로 참여하는겁니다. 퀼리티는 상관 없으니 딱히 노력을 부정하는건 아닙니다"


"이 조합으로 코스프레 하면 퀼리티가 장난 아니잖아. 게다가 프로 코스어 뺨치는 네가 있는데 할말이냐"

"모든 코스프레를 넘어 동일인물 수준으로 변할 수 있는 제 능력을 칭찬해도 좋습니다"


"니 능력 아니라 종특이니까 안할래"

"뇨롱~"

덕질 문화로 치면 구석기 시절의 문화를 꺼내오며 넘어간 시온은 가위를 들고 자신이 직접 가발을 손보기 시작했다. 이런면에 있어서는 손재주는 나보다 좋다. 요리 같은건 내가 잘하지만 제작 쪽으로는 시온이 위다. 이과라서 그런가?

"다 됐습니다"


"아, 그럭저럭 나오네. 근데 내 키가 180이 조금 넘는데 캐릭터랑 많이 차이나지 않아?"


"남자와 여자 아이 조합의 캐릭터는 많겠지만 당신과 맞을만한 캐릭터는 다크히어로나 그런 쪽 계통의 캐릭터 밖에 없으니 그런대로 납득 하십시오"

"너는 그 말투 고치고 코스프레나   있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괜한 걱정을 하는 당신을 어디 아파서 그런건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덕질 경력 좀 있는 사람이라면 시온의 대사로  코스프레 할건지 대충 감이 왔을 것이다.

'어떤 마술의 금서목록'이라는 라이트 노벨에서 나오는 캐릭터인 엑셀러레이터(일방통행)과 라스트오더(최종신호)다.


시온이야 어떤 캐릭터로도, 심지어 남자 캐릭터도 변신이 가능해서 코스프레에 지장이 없다지만 기왕이면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 여자아이, 그것도 체격이 비슷한 로리 캐릭터를 하는게 좋다.

나는 인상 험악한 캐릭터가 주로  맞아서.......삼백안인 것도 그렇고 성격도 빡치면 더러운 것도 똑같으니 방금 손본 백발의 가발과 옷을 갈아입으면 그럭저럭 퀼리티 있는 엑셀러레이터 코스프레를 할  있다.


"준비는 대충 끝. 그런데 따로 신청 안해도 돼?"


"이미 처리도 끝냈습니다. 가서 코스프레 하고 부스 둘러보면서 얇은 책을  뒤에 돌아다니면 됩니다"

"그거 꼼수 아니냐?"

"들키지 않으면 됩니다"


코미케에는 코스어에 대해 선행 입장제도가 있다. 신청해서 당첨되면 코미케가 열리는 10시 이전에 입장할 수 있다. 물론 개장 시간 전에 부스를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10시 땡 치면 바로 갈  있어서 사람이 널널 할 때 살  있다는 메리트가 있다.


"통행증 같은거 필요하지 않아?"


"신분증만 있다면 게이트에서 입장 시켜줍니다. 전산  처리는 제가 다 해뒀으니 문제 없습니다"

"나보다 잘 아네. 덕질 경력이 수백년이 넘어가면 그 정도 되는거냐"


코미케가 열리는 장소는 도쿄 고토 구 인근에 있는 오다이바라는 도시다. 참고로 여기는 많은 남자들의 추억이 있는 디지몬 어드벤처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가보면 디지몬 어드벤처에서 나왔던 장소나 건물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여의도로 로컬라이징 해서 나왔는데.......둘다 일단 섬이니 맞게 번안하긴 했다. 위화감도 적고.

아무튼 거기의 도쿄 빅 사이트라는 건물. 사각뿔의 도형을 거꾸로 뒤집어서 사각기둥이랑 합체시킨걸 4개쯤 이어붙인 건물이다. 오덕들의 성지다.

"도쿄 올림픽 때문에 딴데서 합니다"


"뭐?!"

코미케는 거기서 열리는게 당연한줄 알아서 냅두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올해는 2020년이다. 확실히 도쿄 올림픽이 열렸었다. 나와 시온은 스포츠는 관심 없어서 그리 주의깊게 보지 않았다. 그냥 우리나라가 금메달 몇개 얻었고 그런 것만 알고 있을 정도로 무관심 했다.


"다행히도 그 근처입니다. 시간 문제는 걱정 없습니다"

"그럼 후딱 출발 하자고. 지갑이랑 그런건 다 챙겼지?"


"물론입니다"

갈아입을 코스프레 용품이랑 지갑 같은 물건을 챙기고 바로 코미케 회장으로 출발했다. 열리는 장소를 확인하니 확실히 도쿄  사이트가 아니라 그 인근의 새로 세워진 건물이였다.


큭, 도쿄 올림픽......이 치욕은 잊지 않겠다!

그나마 열리는 장소가 역과 가까히 있어서 내려서 오래 걸어야 하거나 하는 수고는 덜었다. 주최 측에서도 어느정도 생각한 모양이다.

8시 30분에 도착한 우리들은 수많은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한 덕질 할것 같은 사람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을 보면 확실하게 도착한 것 같습니다"


"사람 외견으로 판단하지 말라고"

"저는 외견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제가 사람을 판단하는 기준은 덕질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 입니다"


"이 자식 내가 덕질 안했으면 결혼도 안했을 기세네"

"둘  오덕이라서 개드립 치고 놀다보니 친해졌지 않습니까. 당신이 리얼충이였다면 이만큼 사이가 발전하지 않았을겁니다"

나는 친구라면 친한 녀석들 몇명만 있으면 좋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어느정도 활발하지만 나가서 놀기 좋아하는 녀석들 수준은 아니다. 그에 비해서 시온은 확실하게 잉여인간이다. 만약 덕질을 한다는 목표가 없었다면 아무것도 안했을 녀석이다.

"제가 좋아하는건 세가지. 섹스, 덕질, 먹는겁니다"

"잠을 안자도 되니까 수면욕 대신에 덕질이 들어갔구만. 그래도 욕망에 충실해서 보기 좋다"

게이트에서 여기 스태프에게 인증을 받고 입장했다. 요즘은 시대가 발전해서 대부분 전자기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절차는 간편했다. 시온의 해킹을 통해서 코스프레 참가자 명단에 우리들의 이름을 추가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다.


꼼수를, 어떻게 보면 범죄라고 해도  방법이였지만 누군가 피해보는 일은 아니니 넘어가자. 기존 참가자 중에서 이 수법으로 우리가 붙었다면 모를까, 이미 결정된 명단에서 이름을 추가한거다.

안내받은 코스프레 전용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여름이라서 새하얀 파카는 입지 못하지만 회색과 흰색이 섞인 셔츠는 입을 수 있다. 거기에 목에는 외견만 흉내낸 초커를 채우고 어디서 주문해서 받은건지 모를 현대식 목발을 들어 몇번 땅을 툭툭 두드려 보았다.

"좋구만, 아아, 음. 아아아아"


기왕 코스프레 하는김에 목소리도 좀 바꿔둘까. 오카모토 노부히코(엑셀러레이터 성우)의 목소리가 어떻더라.

간섭 능력으로 완전히 성대 구조를 바꾸어서 완벽하게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도 있지만 그건 재능낭비 수준이라 귀찮다. 하루 종일 유지하는 것도 그러니 대충 톤이 비슷한 쪽으로 하자.

원래 목소리도 좀 허스키하고 낮아서 약간 바꾼 정도로 충분했다.

........근데 남자 탈의실인데 왜 여자 같이 보이는 사람들도 있는걸까. 앗, 페이트 시리즈의 아스톨포 코스프레 한 사람도 있네. 어떻게 보면 원작 준수라서 놀랍다.


"아, 그쪽분도 참가자신 모양이죠? 잘 부탁드려요"

"아, 예. 오늘 처음 참가하는거라 많이 모르거든요. 혹시나 모르는게 있으면 부탁드리겠습니다"

"퀼리티가 좋네요. 금서목록은 작년에 3기 애니가 나왔죠? 키만  작았다면 진짜 엑셀러레이터인줄 알았겠어요. 목소리 톤도 비슷하고"

"그쪽 분도 퀼리티 좋은데요 뭘. 남자 탈의실인데 여자 같아 보이는 분이 있어서 좀 놀랐어요. 그런데 아스톨포면 원작 준수라서 납득이 가네요"


"이런걸로 놀라긴 이를껄요? 코스어 입장은 9시 까지라 저희가 늦은거라서 다른 분들도 많아요. 남자 화장실에 여자 캐릭터 코스한 사람이 볼일 보는걸 보면 저도 깜짝 놀라요"

자주 참가해본 베테랑 코스어인듯 여러가지를 듣다보니 좀 늦었다. 시온이  기다리게 해서 화를 낼지도 모른다.

"앗, 발견했다!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기다리게 만든 엑셀러레이터의 허리에 몸통박치기를 날려본다!"


"푸헥!"


목소리까지 완벽하게 똑같은 라스트오더가 급습해왔다!


정수리의 삐죽 솟아난 바보털에 하늘색 바탕에 흰 물방울 무늬의 원피스, 그리고 겉옷으로 입은 흰색 와이셔츠까지. 외견은 물론 목소리까지 완벽하다.

"너 평소에 그 딱딱한 말투는 종족 특성 아니였냐?"


"에엣, 그런 군대에서나 쓸법한 말투는 사실 감정이 희박한 캐릭터를 연기해보려는 캐릭터성인게 당연하지!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우쭐거리며 말해보기도 하고!"


"왜 난 여태껏 몰랐지.........? 같이 산 세월이 얼만데?!"


"그야 이렇게 말투도 바꿔본건 이번이 처음이니까,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중대한 사실을 선언해본다!"


뭐든 처음은 기억에 남는 법이다. 나랑 시온이랑 첫날......그러니까 수많은 환생 중에서도 정말로 처음 한 날은 지금도 기억 난다. 어우, 그때는 서른번 이후로 센적이 없어서 얼마나 했는지 몰라.


"그럼 가자고. 코스프레 회장은 저쪽이니까 아직 개장 할 때 까지 시간 있을  다른 사람들 것도 둘러보고 말이야"

"엑셀러레이터는 그런 상냥한 말투 같은거 쓰지 않는데!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놀라면서 내심 좋아해보기도 하고!"

"........어이, 빌어먹을 꼬맹이. 귀찮게 돌아다니지 말고 따라와"

"이제야  엑셀러레이터 같네!"

평소의 그 감정 희박해 보이는 안면근육이 굳은 듯한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활짝 웃으면서 시온이  손을 잡았다. 나도 터벅, 탁, 터벅, 탁, 반복적으로 목발을 짚으며 회장 쪽으로 걸었다.

진짜 코스프레.......그것은 나 자신이 캐릭터가 되는 것이다!


동인지 판매를 위한 부스와는 달리 따로 코스어를 위한 코스프레 회장은 햇빛이  드는 공원같은 분위기의 넓은 곳이였다. 부스 쪽에는 준비 중이기도 하고 선행 입장이라도 미리 들어갈 수 없어서 대기하고 있는 코스어들이 많았다.

퀼리티가 낮아도 취미와 애정으로 참가한 사람들도 있고, 전문으로 하는 프로 코스어도 있어서 여러가지로 볼거리가 많았다.

시온이 목에 어제 산 카메라를 걸고 돌아다니면서 허락을 맡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아, 금서목록의 일방통행이랑 라스트 오더를 하셨나요? 사진 찍어도 될까요?"

"아, 네, 찍으세요"

간간히, 아니 생각외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을 찍었다. 잘해야 한두번 정도 찍힐까, 생각 했는데 남이 보기에는 퀼리티가 좋은지 10분에 한번씩은 사진 요청이 들어왔다.

"인기 폭발이라서 기분 좋은 것 같은데,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기분 좋은 고양이 처럼 달라붙어 보기도 하고!"

"쳇, 더우니까 떨어져"

"아앗, 코미케는 시작도 안했는데 캐릭터와 동화 되어버렸어!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지적하면서 중2병적인 당신에 대해 좀 꺼려지고 있다........."


"성격 더러운걸 흉내내는 정도야 옛날 기억 끄집어내면 그만이야. 성격 더러운 것과 인간군상을 대해온 성격을 흉내낸다면 캐릭터 코스프레 하기는 충분하지"

가장 처음, 나를 나로서 있게 한 최초의 삶.  이름이 '최악'이라는 이름으로 정체성을 확립한 처음의 삶에서 나는 사람을 죽이고 돈을 받는 히트맨이였다.


본래 목적은 그게 아니였다. 원래는 조폭 누구 하나 죽이고 감옥 가고, 받은 돈으로 동생들에게 줄 생각이였는데 상황이 꼬여서 여차저차 하다가 전국구에서 세계급으로 진화했다.


사람 죽이는데 도가 튼 사람이 필요한 곳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뒤쪽. 온갖 인간 군상과 추악한 면을  왔다. 적어도 엑셀러레이터 본인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았을 것이다.

몇번 환생 하면서 내가 가진 생각을 정리하고 극복하면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옛날에는 이렇게 개드립치고 성격 좋지는 않았어. 장난을 쳐도 이글이글 타오르는 마약공장, 네놈 배떼지에는 데저트 이글! 하고 좀 험악한 말장난이나 했지.

아무튼 옛날 성격 흉내내는 것쯤이야 별거 아니다.


"슬슬 시간이 됐는데"

핸드폰을 꺼내서 보니 시간은 10시 1분 전이였다.

코미케가 열리는 시간은 10시. 물론 가장 쩌는게 나오는 3일째는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첫날이니만큼 몰리는 사람의 수는 장난 아니다.

이미 코스프레 회장에 모인 사람들 중 대부분은 부스가 있는 회장으로 몰려 있었다.


"야, 시온. 준비해. 거기서 너 챙겨주려면  빡셀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미 나나 시온이나 이번에는 코스프레 하고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걸 알고 원래대로 돌아가 있었다.

이윽고 10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퍼지고, 코미케가 열렸다.

인간의 열정과 애정이 폭발한다!



* * *  *


오타쿠, 그러니까 오덕후라고 하면 파오후 쿰척쿰척이니 하면서 뚱뚱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지만 생각외로 마른 사람도 있다. 안경 쓴 사람의 비율도 찾아보면 대충 반반이다.

결국 편견이라는 소리다. 상식과 편견은 인간을 도태시키는 원인  하나가 될 수 있다. 그걸 벗어나서 생각하거나 다른 상식을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하는 법이다.


아무튼 사람 졸라 많어.


"이거 하나 주십시오!"


"네, 500엔입니다!"

시온은 작은 몸으로 돌아다니면서 여러 부스의 동인지들을 사 모았다. 저걸 또 내가 들어야 하나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자기가 들었다.


"코스프레 했는데 제가 들면 모를까 당신이 들면 폼  망칩니다. 얼굴이 받쳐주지 않으면 분위기라도 맞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투 돌아왔다 너. 캐릭터성 다시 유지하기로 했냐"

"이게 디폴트입니다. 제 개성인겁니다. 딱딱한 어투의 쿨데레 로리가 가끔 감정 표현을 한다면 그 갭 만큼 귀여운 것도 없지 않습니까? 점수로 치면 100점 만점입니다"

"본인 입으로 말하는 시점에서 빵점이야"

원래 코미케는 가장 쩌는게(성적인 의미로) 3일째에 나오곤 한다. 하지만 첫날이라도 좋은게 없진 않다.

집에서 소장할 얇은 책은 점차 늘어갔다. 대충 10권 정도......물론 비유적인 의미도 그렇고 실제로도 얇은 책이라서 10권이라고 해봐야 전공책 한권보다  두꺼운 수준이였다.


"앞으로 3일은 전쟁터가 되겠군"

"슬슬 사람도 많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얼른 나가도록 합시다"


판매 부스에서 나오자 시온의 표정이 바로 변했다. 안면근육이 굳은 듯한 얼굴이 아닌 활기찬 여자아이 같은 자신만만하고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 되었다.


뭐지,  갭이 귀엽기는 커녕 도리어 무서워. 그냥 평소 모습이였다면 별 감흥 없겠는데 오히려 안하던 짓을 하니까 소오름이 돋는다.

대충 비유를 들어보자면 배트맨이 빌런한테  대해주는 것 같은 상황이라고 할까......뭐가 있는지 몰라서 무서운거랑 같다.

"사진 찍어도 될까요?"

"아, 네"


코스프레 회장에서는 벌써부터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돌아다니며 코스어들을 찍고 있었다. 우리한테도 사진 요청이 들어오긴 했는데.......주로 시온을 찍으려는 사람들이였다.

종종 순수한 촬영을 넘어서 팬티를 찍으려는 사람들이 있는데........나도 남자니까 여자 팬티 보고 싶어하는 마음은 이해 하겠는데 임자도 있고 외견상 로리인 시온의 팬티를 찍으려는 녀석들의 카메라는 슬쩍 능력으로 부속을 하나 망가트려주었다.

"딱히 팬티 정도는 괜찮습니다"

"내가 기분이 더러워서 그래"

"안에 속바지 입었습니다"


"잠깐만?! 쓸데없이 오리지널을 닮은거야?!"

"팬티가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아! 하고 미사카는 미사카는 보여질 걱정 없이 당당하게 뛰어 다녀보기도 하고!"

이럴 때만 코스프레 하지 마라!

평소에는 그나마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세련된 옷을 자주 입는데 오랜만에 어린애 같은 옷을 입고 그러니 위화감이 장난 아니다. 일해라 위화감씨!

시온이 슬쩍 팔짱을 끼자 별 다른 반응은 하지 않았다. 코스프레에 충실하자.

사람들의 사진 촬영에도 응해주고, 간간히 해달라는 포즈가 있어서 그런 리퀘스트도 응해주다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의외로 구경거리가 많다. 사람들 시선도 적당하면 나쁘진 않고. 시온이 느끼기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괜찮다고 생각한다.


"음흉한 시선이 없진 않지만 감당할 수준입니다"

"왜 그렇게 로리콘이 많은거야"

"원래 오덕 중에는 로리콘이 많습니다. 캐릭터 인기투표 하면 로리 캐릭터의 비율이 높은게 그 증거입니다. 당신 최애캐도 로리인 주제에 말이 많습니다"


"........."

이번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사실이라 0의 데미지를 입었다!

코미케라도 일반 편의점은 있기에 중간에 들러서 점심으로 도시락을 샀다. 사람이 많아서 계산하는데도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도시락 두개를 확보하는데는 성공했다.

"일본 도시락은 한국에 비해 맛있어서 좋습니다"

"가성비는 나쁘지 않지. 한국도 발전하긴 했어도 도시락은 일본이 위야"

물론 러시아에서 잘 팔리는 라면 메이커인 도시락 말고.

시온이랑 나란히 앉아서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주로 고기 반찬은 시온이 죄다 뺐어가서 채소류는 내 몫이였다.

"편식 좀 하지 마라. 골고루 먹어"


"저는 먹어도 살이 안찌니까 상관 없습니다"

"대부분의 여자들이 들으면 화낼껄"

"딱히 친해지고 싶은 여자는 없으니까 괜찮습니다"

"너도 일단 여자니까 여자 친구 사귀어 보라고. 나한테도 친구 사귀라는 명목으로 괜히 히비키랑 친구먹게 했으면서 정작 당사자가 안그러면 어쩌자는거야?"


"저는 친구 필요 없습니다. 당신처럼 환생을 계속하는 것도 아니고 죽는 것도 아닌데 인간 관계를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무서운 거잖아"

"............"

나야 원래 기억하고 있던 삶부터 시궁창이였다.

돈을 받고 사람을 죽이는 일을 하면서 온갖 인간 쓰레기란 쓰레기들을 많이 봐왔다.


인간에 대한 실망은 진작에 했었고, 인간에 대한 경의도 했었다. 인간의 대단함도 알았고, 인간의 추악함도 알았다.


시온도 처음에는 인간이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간의 추악한 면을 보았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대인 기피증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시온은 평범하지 않아서 사람들을 피하진 않지만 사람을 사귀는건 피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예전에 한번 데여서 그렇다.

.........인류를 믿고 우호적인 교류와 여러 기술을 알려줬는데 정작 돌아온건 자신을 붙잡아서 에너지를 뽑아먹으려는 시도라니, 믿은 만큼 배신감이 클 것이다.


"설령 사귄다고 해도 평범한 친구는 사귈 수 없습니다. 수명이 길거나 강하거나, 보는 시야가 다르기 때문에 그런 친구가 아니면 안됩니다. 죽을 때마다 인간관계가 초기화 되는 당신과는 다릅니다"

"그래, 미안하다. 아픈데 건드려서"


그래서 그 행성은 어떻게 되었냐고? 시온의 사촌 오빠가 와서 성계째로 갈아버렸다. 비유 아님.


좀 지나면 시온의 기피증도 사라질 것이다. 스스로 극복하는 것 외에 내가 도와줄만한 일이 없으니까. 초월자라도 만능은 아니라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리고 친구 따위 없어도. 당신만 있으면 됩니다. 당신이 죽으면 그날로 저도 죽을겁니다"

"네가 죽기 전까지, 내가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나도 네가 죽으면 거기서 인생이 끝나도 좋아"

"그러면 서로 죽지 않으니 이론상 영원히 천생연분 해피엔딩입니다"

"엔딩이 없잖아"


"그러면 무기한 연재로 가면 됩니다"


시온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내 무릎 위에 앉았다. 키 차이 때문에 앉아서 위를 올려다보면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시온이 말했다.

"이미 제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은 전부 여기 있습니다. 여기서 더 바란다면 그건 욕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식 계획은?"

"아, 방금 한말 취소입니다"

"태세전환이 빨라! 일단 좋아해야 하는건지 나쁜건지 모르겠어!"


"사랑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두명이라면 사랑은 두배로 늘어나는 법입니다"


그 뭐시냐, 노래도 있지 않던가. '조강지처가 좋더라~♪' 하는 광고 말이야.

우리 마누라가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다!

   * *  *

폭풍같은 3일이 금방 지나갔다. 인근의 숙소는 대부분 다 찼지만 코미케 한번 참가하려고 고급 호텔까지 빌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코미케가 열리는 3일간은 고급 호텔에서 머무르면서 코미케에 참가했다.

주로 시온이 동인지를 사고.......특히나 가장 쩌는게 나오는 3일 째에는 폭풍같은 눈썰미로 네임드 작가의 부스와 꽤 좋은 신인 작가의 부스를 돌아 구매했다.

심심할때 볼만한 동인지가 늘었다. 참고로 나는 그림체 70에 스토리 30을 보는 그림체 중시파고, 시온은 그림체 40에 스토리 60을 보는 스토리 중시파다.

"망가는 역시 순애 망가가 최고입니다"


"나도 순애물은 좋다고 생각해. 가끔 능욕물을 보기도 하지만"


"당신이 분신술을 쓸 수 있었으면 저도 능욕 플레이를 할  있었을겁니다"


"인술이라도 배워서 그림자 분신술이라도 써보라는 소리야? 일단 닌자가 있는 세계에 환생해야겠군"

"차원 통신 판매로 분신술 입문서를 사면 됩니다"


"진짜로 배우게 할 생각이냐. 일단 사면 보긴 하겠는데 쓸  있을거란 생각은 반쯤 버려두는게 좋을껄"


나라도 만능은 아니다.

특히나 분신술 같은건 계통마다 방법이 달라서 쓰려면 머리가 아픈게 대부분이다. 주로 마법사 같은 머리 좋은 애들만 쓰는 분야다.

도대체 나루토는 그거 어떻게 쓰는거지. 생각보다 똑똑한건가.

"즐거운 신혼 여행이였습니다"

"그러게"


데이트도 하고 목표였던 코미케도 참가했다. 원래 일주일을 머무르기로 했는데 이틀 정도 남은 지금 돌아가기로 했다.

"왜 갑자기 계획 변경입니까?"


"말이 씨가 된다고. 조 팀장 그 사람 쪽집게네. 느낌이 영 안좋아"

내 첫번째 능력은 '간섭'.


그리고 두번째 능력은 '감각'이다.


두번째 능력으로 인해서 내 오감은 물론 육감도 상식을 뛰어넘을 정도로 발달해 있다. 어느 정도냐면 눈앞에 준비 없이 수능 문제를 들이댄다 하더라도 주관식까지 전부 찍어서 맞출 수 있을 정도를 자랑한다.


위기를 감지하고 무언가를 파악하고 분석하는데는 최고의 능력이다.

평소에는 켜두면 너무 많은 정보량이 밀려들어와서 자제하고 있지만 살의에는 민감하게 설정 해두었다. 희미하게 공기를 타고 흐르는 느낌은 전에 한번 봤던  느낌이다.

차원진의 발생 직전에 발하는 악의.

보통 레이드 물에서 다른 차원에서 넘어오는 생명체의 경우에 사고인 경우도 있는데. 차원진이나 넘어오는 적성종이나 둘 다 명백한 악의가 느껴진다.


"게다가 가까워. 워낙 불안정한 차원진이라 나도 특정하기 어렵지만 도쿄 안쪽인건 확실해"


"왜 하필이면 수도권입니까"


"누군진 몰라도 악의가 느껴지지?"


인간을 보면 죽이려고 드는 적성종, 그리고 하필이면 인구가 많은 수도권 지역에 발생되는 차원진. 규모로 보면 비교 대상이 적어서 쉽게 평가할 수는 없는데 내가 휴게소에서 봤던 차원진과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크다.

"차원진 경보는 아직 울리지 않고 있습니다만?"


"그게  악의가 느껴진다는 점이야. 휴게소에서는 그나마 1분 전이라도 경보가 울렸는데. 지금은 아무런 경보조차 없을 정도로 은밀한 차원진이야. 정말 터지기 5초전이 아니면 육안으로도 안보일껄"

각 나라의 차원진 경보는 연구가 되어 있어서 최소 5분, 최대 10분 안에 파악할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차원진 감지기에도 걸리지 않는 차원진이라면 명백하게 인위적인, 그리고 기습을 위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일단 도망치자. 일본이 침몰하던 뭘 하던 상관 없으니까 튀는거야"

"호텔로 가서 짐만 챙기고 바로 공항으로 갑시다. 시간을 특정할 수 있겠습니까?"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다면 앞으로 6시간 정도야"

은밀하게 터지는 만큼 준비 시간이 길다. 차원진이란 차원간의 통로가 생길  발생하는 것으로 드릴로 벽을 뚫는 것과 같다.

있는 힘껏 뚫으면 빠르지만 소리가 요란하고, 천천히 뚫으면 비교적 조용히 뚫을 수 있는 것처럼 각각 차이가 있다.

"차원진 정도야 억지로 닫아버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건 안돼. 사건이 더 커져"

존나  포스 유저와 차원진을 미리 막을 수 있는 포스 유저의 차이는 크다.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에 설령 들킬 때의 귀찮음도 커진다.


열리려는 차원진이 느닺없이 사라졌다? 분명히 조사가 들어온다. 이미 발생하려는 차원진을 막으려면  규모 때문에 여파가 발생해서 들킬 수밖에 없다.

"결국 도망치는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이럴 때는 무능합니다"


"거 정말 미안타. 내가 열심히 해서 로드라도 올라가주리?"


"대신 침대에서 유능하니 괜찮습니다"

시온이 섹드립을 쳤다. 효과는 굉장했다!


일단 오늘 밤을 기약해두고 빠르게 움직였다. 다시 신주쿠의 시를리안 타워 도큐 호텔에서 남은 짐을 전부 챙겼다. 짐이라고 해봐야 기념품이랑 구매한 동인지들, 참고로 피규어는 전부 해외 배송으로 보냈으니 아마 지금 쯤이면 우리보다도 빨리 비행기를 탔을 것이다.

후딱 체크아웃을 하고 나온 나는 곧바로 택시를 잡기 위해 시내로 나왔다. 공항 까지는 거리가  있지만 지금은 여유롭게 지하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때가 아니다.


키이이이이이잉!!!

"아, 씨발"

"차원진이........"

앞으로 몇시간은 있어야 일어날 차원진이 너무나도 위화감이 들게도 갑작스레 발생했다. 누군가 인위적으로 손을 쓴듯 보인다.

누구지? 이미 차원진을 발생시키는 주범은 조용히 일을 벌이기 원할텐데 제 3자가 있나?

"꺄아아아아악!!!"


"도망쳐! 차원진이다!!"


"으아아아!!!"


차원진이 발생한다는 것을  시민들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허공에 일어난 균열이 갈라지면서 십수미터의 거대한 거체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갈라진 차원의 틈이 비좁인지 팔로 틈을 밀어내 빠져나오며 숨을 들이 쉰다. 순수한 라프 에너지에 반응한 가이아 포스가 적성종에게 흡수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온몸에 뿔이 돋아난 듯한 거친 늑대 같은 모습. 파직거리면서 놈의 뿔에 전격이 튄다. 만약 그냥 뉴스에서 봤다면 시온이랑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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